요즘은 “코드 한 줄도 안 보고” 에이전트에게 맡겨서 만든 소프트웨어가 실제로 배포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미지 배경 제거, 간단한 편집기, 리포트 생성처럼 “작고 단단한 유틸리티”도 구독이나 구매 방식으로 수익을 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비슷한 수준의 기능을 에이전트가 꽤 빠르게 만들어 주면서 ‘구매할 것인가 vs 구축할 것인가’ 의 기준선 자체가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 변화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는 건 Pragmatic Engineer의 Gergely Orosz 사례가 꽤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LLM이 SaaS를 다 죽인다”는 주장에는 회의적이던 그조차, 본인이 연간 $120을 내던 마이크로 SaaS(테스티모니얼·추천글 렌더링 용도)를 딱 20분 만에 Codex로 대체해버렸다고 공유했죠.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LLM이 뭐든 만든다”기보다는, 서비스가 오래 방치돼 신뢰가 깨진 순간 ‘구매’의 설득력이 급격히 무너지고, “내가 쓰는 만큼만 직접 만든다” 가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흐름이 개인이나 작은 유틸리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AI가 B2B SaaS를 죽이고 있다」라는 글에서는, 기업 고객 역시 바이브 코딩으로 내부 맞춤형 도구를 만들어버리면서 기존 B2B SaaS의 반복 구독 모델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글의 핵심은 “SaaS가 사라진다”라기보다, 이제는 CRUD + 고정된 화면 몇 개만으로는 방어가 어렵고, 살아남으려면 두 가지 중 하나(또는 둘 다)에 가까워져야 한다는 주장에 가까운데요.
첫째는 “System of Record(핵심 기록 시스템)” 로 조직에 깊게 연동되는 길입니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권한·감사 로그·컴플라이언스·정합성·백업·가용성처럼 ‘귀찮고 비싼 책임’ 까지 함께 떠안는 위치를 의미합니다. 둘째는 그 위에서 고객이 자기 방식대로 워크플로우를 구축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는 길입니다. 즉, SaaS가 고객에게 “우리 방식에 맞추세요”라고 말하던 시대에서, 고객의 업무 방식이 먼저이고 SaaS는 거기에 맞춰 변형될 수 있어야 한다는 방향입니다.
그럼 우리는 앞으로 어떤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할까요?
Steve Yegge의 「소프트웨어 서바이벌 3.0」은 꽤 흥미로운 답을 던집니다. 토큰(추론 비용)을 절약하는 소프트웨어가 살아남는다는 주장인데요. 토큰은 결국 비용(에너지·돈)이고, 제한된 자원 환경에서 더 효율적으로 자원을 쓰는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진화론적 선택 압력’ 이 소프트웨어 생태계에도 그대로 작동할 것이라는 모델입니다.
이 글이 흥미로운 이유는 “어떤 것이 생존하는가” 를 몇 가지 레버로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Git이나 Kubernetes 같은 도구는 단지 유명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간의 시행착오가 응축된 구조라서 다시 만들려고 하면 비용이 터무니없이 커지는 “압축된 통찰(Insight Compression)” 을 갖고 있습니다. grep이나 ImageMagick 같은 도구는 LLM 추론 대신 CPU처럼 더 싼 기판에서 일을 처리함으로써 “기판 효율성(Substrate Efficiency)” 으로 토큰을 아끼게 만듭니다. Temporal이나 Dolt 같은 제품은 쓰임새가 넓어 사용 빈도를 키우면서(“Broad Utility”) 인지도 비용을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유리해집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면 “에이전트에게 채택되는 법” 역시 중요해집니다. 에이전트는 그 도구를 “알아야 쓰고(Awareness)” , “쓰다가 안 삐끗해야(Friction)” 계속 사용합니다. 그래서 에이전트 시대의 문서화·배포·UX는 단순한 친절함을 넘어 생존 조건이 되고, 글에서는 이런 ‘에이전트용 SEO’ 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같은 제품이라도 에이전트가 쉽게 발견하고, 쉽게 성공하고, 실패해도 쉽게 회복 할수록 채택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정리합니다.
여기에 흥미로운 반전이 하나 더 있습니다. 효율과 무관하게, 인간이 개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가치가 되는 영역이 분명히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큐레이션, 창의성, 존재감, 승인 같은 요소가 붙는 제품은 단순한 기능 경쟁과는 다른 게임을 하게 되고, 그래서 글에서는 이를 “Human Coefficient” 라는 상수적인 개념으로 따로 설명합니다. 토큰을 아끼는 도구 와 인간성이 가치가 되는 경험 이 서로 다른 생존 경로가 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한편 Nolan Lawson의 「우리의 장인 정신을 애도합니다」는 정서적으로 다른 쪽을 비춥니다. “손으로 코드를 빚던 세대가 사라지고, 프로그래머가 검수자로 축소된다” 는 상실감이 아주 진하게 담겨 있죠. 비슷한 맥락의 글인 「AI 코드와 소프트웨어 장인정신」에서는, 19세기 Arts and Crafts 운동처럼 인간 중심의 장인 정신을 다시 돌아봐야 할 시점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저는 이 두 흐름이 서로 충돌한다기보다, 같은 변화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단면처럼 느껴집니다. 원래 코드라는 건 “컴퓨터와 대화하기 위해 만든 언어” 였고, 그 인터페이스가 자연어로 바뀌고 있다면 개발 방법론이 함께 바뀌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일 겁니다. 다만 그 변화가 ‘장인 정신의 소멸’ 로 귀결될지, 아니면 ‘무엇을 장인정신으로 볼 것인가(설계·검증·운영·보안·제품 감각)’ 가 이동하는 과정으로 이어질지는 관점에 따라 달라집니다. 지금은 바로 그 경계선 위에 있는 시기라서, “어떤 것을 만들어야 살아남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곱씹어보는 일이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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