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Power On: The Story of Xbox
(youtube.com)Microsoft의 콘솔 게임기 XBOX의 역사를 다룬 6부작 다큐멘터리 [Power On: The Story of Xbox]가 XBOX 공식 YouTube 채널에 올라왔습니다. (한국어 자막 지원)
아직 1부만 보고 왔는데, 1990년대 당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에 대한 MS의 시각이나 사내 정치에 따른 뒷이야기 같은 것이 소개되어 아주 재미있습니다. 애초에 XBOX 프로젝트 자체가 생산성 소프트웨어 중심이던 MS 사내의 “이단자들”(1부의 제목)이라 불리던 DirectX 팀에서 기획된 것이었다거나, 4초 이내로 부팅이 완료되는 프로토타입 제품을 빌 게이츠 앞에서 시연하여 단순 PPT 파일만 준비했던 다른 팀을 제쳤다는 일화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이걸 끝까지 봐야겠군요.
# 제6장: TV냐, 아니냐? (TV…Or Not TV)
* 돈 매트릭은 키넥트 다음으로 Xbox 사용자 층을 늘릴 방도를 TV에서 찾았다. 그래서 다음으로 집중할 대상을 홈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선정했다. Xbox에서 TV 편성표를 보여주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한 영상 컨텐츠를 확보하고,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와 협력하기로 하였으며, Xbox 브랜드로 자체 컨텐츠 제작을 시작하려 하였다.
* 2013년 5월 21일, Xbox One이 공개되었다. 그런데 이 공개 행사에서는 게임 이야기 대신 온통 TV에 대한 이야기만 나왔다. 발표 직후부터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Xbox 팀은 게임 관련 이야기는 몇 주 뒤에 열릴 E3에서나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상당수 게이머들은 이를 게이머에 대한 배신으로 받아들였다.
* 문제는 더 있었다. E3에서 공개된 Xbox One의 가격은 499달러였는데, 같은 날 공개된 경쟁 제품인 Playstation 4의 가격은 399달러였다. 게다가 성능은 Playstation 4 쪽이 오히려 더 우위였다. 특히 Xbox One에는 본체에 키넥트 센서가 내장되어 있었는데, 이는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람들은 고작 지능형 셋톱박스 따위에 499달러를 쓰고 싶지 않았다.
* 정책 관련 문제도 있었다. Xbox One은 기본적으로 상시 온라인 연결이 필요한 컨셉으로 만들어졌으며, 게임 디스크를 넣고 나서 온라인 인증을 통해 라이선스를 부여받도록 되어 있었다. 이러한 정책은 친구에게 게임 공유하는 것도 못하게 막고, 중고 게임을 사고 팔 때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소니는 이 점을 저격하는 광고 영상을 만들었다.
* E3 행사 18일 뒤인 2013년 7월 1일, 돈 매트릭의 사임이 발표되었다. Xbox One의 판매가 개시되었으나, 초기에 충성 고객층이 제품을 구입한 시기 뒤로는 계속 Playstation 4에 판매량이 밀리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필 스펜서(Phil Spencer)가 Xbox를 맡게 된다.
* 필 스펜서는 먼저 Xbox의 주 고객층은 어디까지나 게이머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다시금 게임에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이를 위해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중단하고, 자체 컨텐츠 제작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는 폐쇄하였다. 또, 키넥트 센서가 빠진 399달러짜리 Xbox One을 출시하였다. 다른 조치로는, 인디 게임 개발자를 위한 새로운 플랫폼을 준비하고 게임의 자체 배급을 허용하였다. 이를 ID@Xbox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 이후 MS는 마인크래프트를 만든 모장(Mojang)을 25억 달러에 인수했다. 사람들은 MS가 마인크래프트를 Xbox에서만 돌리게 제한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 게임 구독 서비스인 게임 패스를 만든 것도 큰 변화 중 하나였다. 수십 달러짜리 게임을 여러 개 구입하는 것이 힘든 사람이라도,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는 구독 라이브러리를 통해 여러 종류의 같은 게임을 즐기는 것이 가능했다. 이는 진입장벽을 낮추어 플레이어의 수를 늘리는 효과를 내었다. 실제로 게임 구독을 하는 사람들이 게임을 더 많이 한다고 한다.
* Playstation 4에 비해 뒤쳐진 성능 우위를 되돌리기 위해, 성능이 향상된 Xbox One X도 출시한다. 또한 그 무렵부터 필 스펜서는 여러 게임 스튜디오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많은 게임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 정점은 베데스다(Bethesda) 인수였다. 베데스다 인수는 MS 역사상 3번째로 큰 인수였다고 한다.
* MS는 Project xCloud라는 이름으로 클라우드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한 장애가 있거나 개발도상국과 같은 환경의 사람들도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는 비디오 게임을 하는 전세계 25억 명을 기회로 보는 것으로, MS 정도의 회사가 추구해야 할 규모이다.
* 게임으로 인해 직접 만나본 적 없는 멀리 있는 사람들과 유의미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서, 아이들은 마인크래프트를 통해 서로 만나곤 한다. 이러한 커뮤니티는 계속 성장할 것이다. 우리는 좋은 기회를 잡아 Xbox라는 플랫폼을 통해 문화를 형성하였다.
# 제5장: 죽음의 붉은 고리 (The Red Ring of Death)
* Xbox 360은 경쟁 제품이던 Playstation 3를 능가하기 위해, CPU 등을 직접 설계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기성 제품이 아닌 부품의 준비가 늦어지게 되자, 개발 및 생산의 다른 분야에서도 연쇄적인 지연이 발생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출시 9개월 전인 2005년 2월이 되어서야 겨우 주문한 CPU가 처음 도착하였다. 그래서 개발팀은 디자인 수정 및 생산 라인 준비를 동시에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 Xbox 360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자 불량이 발생하는 사례가 속출하였다. 제품 100개를 생산하면 고작 50~60개만 QC(품질검사)를 통과하였다. 설계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테스트 절차가 잘못된 건지 판단할 시간도 없어서 일단 불량품은 한 곳에 쌓아두고 있었다. 이를 “뼈 더미”라고 불렀는데, 가장 많을 때는 불량품이 60만 개를 넘겼다.
* 정확한 문제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하여튼 엔지니어들은 몇 달만에 문제를 해결하고 대량생산을 진행하여 정해진 일정에 출시할 수 있었다. 이는 크리스마스 전의 놓칠 수 없는 대목이고, 동시에 Playstation 3가 출시되기 1년 전이었다. Xbox 360은 적절한 시기에 399달러라는 적절한 가격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경쟁 제품인 소니의 Playstation 3는 블루레이 디스크 재생이 가능한 고급 엔터테인먼트 기기였지만, 북미에서의 판매 가격이 599달러에 이르렀다. 그래서 Xbox 팀은 경쟁사의 가격 책정에 안도하였다.
* 그런데 2006년 6월경부터 이전에는 본 적 없는 새로운 종류의 문제가 인터넷 게시판에서부터 눈에 띄기 시작했다. Xbox 360이 고장나는 사례가 자꾸 보고되는 것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전원부 주변에 한쪽이 뚫린 붉은 고리 모양의 불빛이 깜빡거린다는 것이었다.
* Xbox 360에는 컨트롤러의 Xbox 로고 및 전원부 주변에 4분할된 고리 모양의 LED 불빛을 보여주는 기능이 있었다. 원래는 함께 모여 게임을 할 때 각자 잡고 있는 컨트롤러를 구분하기 쉽게 하기 위한 기능이었지만, 무언가 문제가 있을 때 빨간색으로 표시를 하는 기능도 있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문제를 “코어 디지털 에러”라고 부르는데, 비유하자면 자동차의 엔진 점검 표시등과 같았다.
* 제품 고장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교체 기기를 받는 데 걸리는 시간도 늘어났다. 더 큰 문제는 교체받은 기기에서도 동일한 증상이 반복되었다는 것이었다. 사용자들은 제품 교체를 위한 반송 상자를 ‘골판지 관짝’(Cardboard Coffin)이라고 불렀다.
* MS는 해당 문제의 원인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문제가 발생한 제품의 옆면이 뜨거워지는 현상이 있었기 때문에 발열이 원인일 것으로 보는 사용자들이 대다수였으나, 정확한 원인이 공식적으로 공개된 적은 이 다큐멘터리 공개 전까지는 없었다.
* 사실, 당시에는 MS도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고장 원인을 오판하고 뼈 더미에 있는 제품을 고친 뒤 그걸 교체품으로 사용자들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렇게 보낸 제품들이 다시 고장나는 것을 보고서야 문제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고장의 원인을 계속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채 생산을 일시 중단하고야 말았다.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을 밝히는 데는 몇 달이 걸렸다고 한다.
* 이 고장의 근본 원인은 (다들 추정했던 것처럼) 소위 말하는 냉납(Cold Solder Joint) 현상이 GPU(Graphics Processing Unit) 쪽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제품이 켜졌다 꺼질 때마다 GPU 칩에서 많은 열이 발생하였다 식는데, 이게 반복되면 칩과 기판을 연결하는 납땜 부위에 열응력(Thermal Stress)이 가해져 금이 가거나 아예 접촉이 끊어지는 것이다.
* 원인은 알아내었지만, 이걸 고치는 것도 문제였다. 제품을 리콜하는 데는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이었다. 판매 손실까지 고려하면 지불해야 할 총 비용은 11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계산되었다. 스티브 발머는 이 비용 지불을 즉각 승인하였다. 만약 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더라면 Xbox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MS는 모든 Xbox 360의 보증 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늘렸으며, 이 문제로 인한 제품 교환은 2011년까지 이어졌다.
* Xbox가 재기할 수 있었던 데에는 2가지 요인이 있었다. 유명한 게임 타이틀들을 보유하고 있었던 점과, 프로그래밍하기 쉬운 콘솔에 대한 게임 개발자들의 지지가 그것이었다. 예를 들면 2006년 11월 7일 출시된 기어스 오브 워는 발매 당시 기종을 막론하고 가장 뛰어난 그래픽을 구현한 게임으로, 2주만에 백만 장이나 팔리며 하드코어 게이머에게 크게 어필하였다. 그 외에도 매스 이펙트, 스플린터 셀, 콜 오브 듀티, 포르자 등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아는 게임 시리즈를 확보하고 있었다.
* 2007년 9월 25일, 헤일로 3의 판매가 개시되었다. 첫 하루 동안에만 1억 7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려 일일 수익 신기록을 세웠다. 모든 것이 잘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Xbox 팀의 수장이었던 피터 무어(Peter Moore)는 EA 스포츠로 이직하기로 하였다.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Xbox 팀의 수장으로는 EA의 전 사장이었던 돈 매트릭(Don Mattrick)이 임명되었다.
* 돈 매트릭은 Xbox의 사용자 폭을 더 넓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는 Xbox가 좀 더 일상적인 체험에 쓰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한 영화를 확보하기 시작했으며, 당시에는 우편 DVD 대여 업체였던 넷플릭스(Netflix)에 Xbox를 통해 볼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안하였다. 이것이 넷플릭스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 서비스도 Xbox로 쓸 수 있게 하였다.
* 한편, 게임 업체의 또다른 강자인 닌텐도는 2006년 연말연시에 Wii를 출시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다. 움직임을 기반으로 신체활동을 통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은 참신하였으며, 건강 관리에도 도움이 되었다. 닌텐도가 이런 방식으로 노인과 여성, 부모와 자식 등 전통적으로 게이머가 아닌 사람들을 공략하는 것을 보고, 빌 게이츠는 Wii 리모콘을 베끼지 않으면서도 비슷한 것을 하고 싶어했다.
* 돈 매트릭은 아예 손에 아무런 컨트롤러도 쥐지 않고 카메라를 통해 동작을 기록하여 직관적으로 게임을 조작한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었다. 그래서 TV 쪽에 붙일 수 있는 적외선 기반 모션 컨트롤러인 키넥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걸 만들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기술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키넥트는 2010년 11월 4일 처음 발매되었는데, 2달만에 8백만 개 이상 판매되었다. 이 센서는 진지한 게이머에게는 별로 흥미를 주지 못했지만, VR/AR 연구 등에는 큰 영향을 주었다. 요즘 키넥트는 대체로 게이밍 이외의 분야에서 사용된다고 한다.
# 제4장: 멋지네요, 이 다음은요? (Cool…Now What?)
* MS에 인수된 번지 스튜디오(Bungie Studio)에서 Xbox 독점 게임으로 만들던 헤일로는 Xbox의 성공에 있어 매우 중요했지만, 정작 출시일이 임박해서도 버그가 많고 프레임 레이트가 너무 낮았다. 출시까지 얼마 남지 않게 되자, 결국 MS 게임 스튜디오의 수장이던 에드 프리스(Ed Fries)는 헤일로 개발팀을 가둬놓다시피 했다. 소위 말하는 “크런치 모드”였다. 이제는 게임의 완성도보다도 제때 출시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었다.
* Xbox와 함께 출시된 헤일로 게임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몰입감이 대단하다는 것이 공통적인 평가였다.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 현상이 되었다. Xbox 사용자의 절반이 헤일로를 플레이했다.
* 헤일로는 콘솔 게임기 컨트롤러로도 FPS를 몰입감 있게 플레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 헤일로의 멀티플레이어 기능은 그 당시의 다른 어떤 플랫폼에서도 체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PC로 게임하던 컴퓨터 괴짜(Geek)들이 복잡한 설정을 통해 LAN 파티를 열던 경험을 이제 Xbox의 이더넷 포트를 통해서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디스플레이가 모자라도 화면 분할 기능이 있었다. 다들 한 집에 모여서 같은 게임을 즐기는 현상이 일어났다.
* Xbox 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Xbox Live 개념을 구상하였다. 인터넷을 통해 멀티플레이를 한다는 개념은 당시로서는 대담하였으며 그때까지 만들어진 적 없는 첨단 신기술을 요구하였다. 이 기술의 개발을 위해 몇십억 달러가 투자되었다.
* 또한 미국 곳곳에서 게이머들을 인터뷰하여 Xbox Live에 들어갈 기능 요구사항을 도출하였는데, 그 중에는 실시간 보이스챗이 있었다. 이건 스카이프(Skype)가 생겨나기도 전의 일이었기 때문에, 결국 직접 만들어야 했다.
* 다른 요구사항으로는 여러 게임에서 공통으로 쓸 수 있는 ID 개념이 있었다. 이는 게이머태그(Gamertag)라고 불리게 된다. 이 게이머태그를 통해 친구 추가나 게임 플레이 통계 등을 기록하게 된다.
* Xbox Live 개발에 관한 의구심도 있었다. 과연 거기에 게이머들이 돈을 지불할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특히 당시는 초고속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걸 쓰기 위해 인터넷 연결 비용까지 추가로 내어야 할 수도 있었다. 반대하는 사람들만으로 한 부서를 꾸릴 수 있을 지경이었다.
* Xbox Live는 Xbox 출시 1주년인 2002년 11월 15일에 출시되었는데, MS 사내의 낙관론자조차 놀라게 할 정도의 대성공이었다. Xbox Live의 커뮤니티 기능은 큰 영향을 주었다. Xbox Live를 통해 커뮤니티가 생성되면 거기에 있는 친구들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떠나지 못하는 효과가 있었다. Xbox Live를 하는 중년 남성이 많은데, 이들은 퇴근 후 게임을 통해 놀면서 잡담을 나눈다. 지금은 헤드셋을 낀 채 게임으로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이 매우 일반화되었지만, 당시로서는 Xbox Live가 처음이었다. 어찌 보면 Xbox Live는 매우 선도적인 SNS 플랫폼이었다.
* 헤일로의 대성공은 번지 스튜디오에 헤일로 2에 대한 큰 중압감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중요한 것만 남기고 덜어내는 능력이나 제작 일정 관리 기술이 부족했고, 결국 게임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헤일로 2 작업물의 대부분을 재작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에드 프리스는 헤일로 2의 출시 일정을 1년 늦추려 했지만, MS 입장에서는 헤일로 2가 빨리 나올수록 좋았기 때문에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간신히 로비 바흐가 일정 연기를 승인해줘서 양보하기는 했지만, 에드 프리스는 그때 처음으로 MS 퇴사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2004년 1월, 에드 프리스는 퇴사하였다. 그러나 그가 벌어주고 간 1년의 추가 시간은 헤일로 2에 큰 차이를 가져다준다.
* 헤일로 2는 출시 첫날에만 240만 장이 팔리며 그때까지의 어떤 영화보다도 높은 첫날 매출을 기록하였으며, 게임을 넘어 일종의 문화 현상이 된다. 또한 이러한 성공은 Xbox Live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에서 Xbox가 닌텐도의 판매량을 제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 이러한 성공에 고무된 MS는 차기 Xbox인 Xbox 360을 준비하였다. 이건 게임에 덧붙여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허브로서의 기능을 추가하였으며, 온라인 게임 다운로드가 가능한 디지털 상점이나 ‘업적’ 달성과 같은 신개념도 추가하였다. 고성능을 달성하기 위해 기성 제품이 아닌 자체적인 칩셋을 개발하여 사용하는 등 많은 엔지니어링 노력도 투입되었다.
* Xbox 360은 2005년 11월 22일 출시되었다. 다들 Xbox가 크게 성공하였음을 인정했고, 앞으로의 미래도 탄탄대로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온라인 게시판이나 게임 언론, 소매업자 등로부터 서서히 부정적인 의견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 제3장: XBox는 시들해졌나? (And It Didn't Turn On)
* Xbox는 2001년 11월에 출시될 예정이었는데, 공개 후 고작 18개월만에 제품 개발을 마치고 대량생산하여 판매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5~7년 정도 걸리던 일반적인 콘솔 게임기 개발 기간에 비하면 미친듯이 짧았다. 설상가상으로 지금껏 이 프로젝트를 이끌던 릭 톰슨이 퇴사하였다.
* 그래서 로비 바흐(Robbie Bach)가 프로젝트 리더가 되었는데, 그는 이 기간을 “최악의 18개월”이라 하였다. 젊은 괴짜(Nerd)밖에 없는 팀에서 유일하게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맡았고, 게임을 해본 적조차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모든 것을 배워 나가느라 실패가 잦았으며, 무엇보다도 일정 압박이 심했다.
* 처음에 4명으로 시작했던 팀은 수천 명 규모로 불어났기 때문에, MS 본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밀레니엄 캠퍼스로 이사하였다. 팀원들이 업무시간 뒤에도 퇴근하지 않고 모여서 게임을 하는 (별로 건강하지 않은)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마치 대학 기숙사 같은 분위기였다. 잘못된 의사결정을 한 적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다들 젊고 열정 넘치며 자유로웠다. 이는 여타 다른 MS 조직의 분위기와는 이질적이었다.
* 첫번째 마일스톤은 2001년도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였다. Xbox는 기존에 MS가 만들던 인체공학 위주의 주변기기와는 완전히 다른 분류의 제품이었으므로 디자인을 결정하는 것 또한 어려웠다. 최종 결정된 디자인은 마치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자동차 엔진 덮개처럼 보였다. 또한 CES에서 더 락(Dwayne Johnson)을 데려와 빌 게이츠와 만나는 장면을 연출하여, 기술적으로는 보여준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데 성공했다.
* 게임기와 동시에 출시할 게임 타이틀을 확보하는 것도 난관이었다. 출시까지 시간이 촉박하였으므로 처음부터 새로운 게임을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북미, 유럽, 일본의 게임사들을 돌며 현재 개발 중인 게임을 Xbox용으로 출시하도록 설득하였다. 돌이켜보면 GTA 3의 가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놓치는 등 아까운 실수도 있었지만, 헤일로를 Xbox 독점 출시 타이틀로 확보한 것처럼 큰 성과도 있었다.
* 그 당시 FPS(First-Person Shooter)는 키보드 및 마우스로만 할 수 있는 PC 전용 게임 장르로 여겨졌으나, 헤일로의 성공은 콘솔 게임기 컨트롤러로도 충분히 FPS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의미가 있었다.
* Xbox의 컨트롤러는 처음부터 너무 크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수정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 2001년 5월 17일의 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 행사 또한 중요한 마일스톤이었다. 제품 출시 이전 대중이 실질적으로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첫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아침 8시에 제품을 발표하는데, 발표 중에 전원 스위치를 눌러도 제품이 켜지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킬러 타이틀 기대작인 헤일로의 데모 버전은 프레임 레이트가 너무 낮아 뚝뚝 끊기는 것이 눈에 보였다. 명백한 위기 상황이었다. 로비 바흐는 이 일로 사직서까지 냈지만,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는 이를 반려하였다.
* 무리한 출시 일정으로 데스마치(Death march)가 이어졌다. 그러나 연말연시를 놓치면 한 해를 날리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세계 각국의 규제를 통과하는 과정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고, 부품 공급이 지연되는 것도 문제였다. 하루하루가 도전이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제품을 출시하는 데 성공하였다.
* 오리지널 버전의 Xbox는 2001년 11월 15일 뉴욕 타임스 스퀘어의 토이저러스 매장에서 처음 출시되었다. 빌 게이츠는 출시 현장에서 처음으로 Xbox를 구매한 20살 고객 에드워드 글럭스먼(Edward Glucksman)에게 직접 제품을 건네며 자신이 대신 돈을 지불했다. 그는 Xbox를 구입하기 위해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뉴욕에 왔는데, 귀가할 때는 리무진을 타게 되었다고 한다.
# 제2장: 밸런타인데이 대참사 (The Valentine's day Massacre)
* 릭 톰슨은 1987년부터 MS 하드웨어 부문에서 일했던 사람이었지만, 콘솔 게임기 제조는 MS로서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었다.
* 콘솔 게임기는 소니, 닌텐도, 세가 등 일본 회사들이 점유하던 시장이었고, 그들은 게임기 자체는 손해 보면서 팔되 게임 소프트웨어 판매로 수익을 얻고 있었다. 만약 MS가 이 시장에 뛰어든다면 사업 초기에는 20억 달러를 손해 볼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 이후의 불확실한 수익을 위해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 처음에는 하드웨어 생산을 위해 다른 PC 생산 업체와 협업하려 했으나, 협업에 나서는 회사가 아무도 없었다. 콘솔 게임기에서 하드웨어는 손해 보면서 파는 것이라는 점을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직접 하드웨어를 만들어야 했지만, 경험도 없는 데다 주어진 일정이 촉박하였다. 하다못해 닌텐도를 인수할까 하는 시도까지 했지만, 닌텐도는 회사를 전혀 팔고 싶어하지 않았으므로 무산되었다.
* OS 준비도 문제였다. Windows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게 되면 너무 무거운 데다가, 다른 팀에서 간섭할 가능성도 높았다. 예를 들어, Office 팀은 Xbox에서 MS Office를 실행시킬 수 있는지 물어왔다. 그래서 Xbox 팀은 Windows NT 커널만 떼어다 개조해서 사용하고 싶었으나, Windows 팀에서는 그걸 공유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Xbox 팀은 한밤중에 서버에서 Windows 소스 코드를 훔쳐와서 필요없는 부분은 다 잘라내거나 재작성하여 Windows NT 커널의 극히 작은 부분만 남겨 사용했다. 이건 빌 게이츠나 스티브 발머의 허가를 받지 않은 행동이었다.
* 2000년 2월 14일 오후 4시경, Xbox 프로젝트의 진행 가부를 결정할 최종 회의가 열렸다. Xbox에서 Windows가 있는 그대로 실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빌 게이츠는 분노하여 오랫동안 미친 듯이 화를 내었다. 그러나 소니의 위협에 관해 누군가 지적하자 빌 게이츠는 잠시 생각하더니 결국 스티브 발머와 함께 5분만에 프로젝트 진행을 결정하였다. 프로젝트 초기 개발자금으로 10억 달러를 승인받았다.
* 게임기의 성공을 위해서는 게임 타이틀을 제작할 개발자들의 지지 또한 얻어야 했다. MS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의 성공으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비롯한 일부 PC 게임에 경험이 있었지만, 콘솔 게임기를 플레이하는 게이머는 완전히 다른 고객층이었다. 그런 고객들은 MS가 게임 사업을 하고 있다고 인식하지조차 않았다. 이런 인식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콘솔용 게임을 제작하는 개발자들을 확보해야 했다.
* 게임 개발자를 확보하기 위해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 2000에서 발표를 하려면 먼저 시연용 프로토타입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통짜 알루미늄을 깎아 18kg이나 되는 커다란 X자 형태의 프로토타입 기기를 만들었으나, 내부는 엉망진창이었다. 2000년 3월 20일 발표 당일, 행사장으로 운반된 프로토타입 3대는 모두 고장나서 동작하지 않았다. 급히 현장에서 기판을 납땜하여 수리한 끝에, 간신히 빌 게이츠와 여러 청중 앞에서 프로토타입 Xbox로 돌아가는 DirectX 8의 각종 고급 기술 데모를 보여줄 수 있었다. 다행히 물리 엔진이나 사실적인 물 표현 등을 통해 개발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데 성공하였다.
* 프로젝트의 작명도 문제였다.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재미없는 회사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MS로서의 이미지를 환기시키지 않을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수백개의 작명 후보들이 모두 영 시원찮았고, 결국 프로젝트의 코드명이던 XBox를 그냥 그대로 브랜드명으로 쓰기로 하였다.
# 제1장: 아웃사이더들 (The Renegades)
* 빌 게이츠(Bill Gates)가 세운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Windows 95 출시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나, 악의 제국 이미지를 지닌 거대 기술기업이 되었다.
* 한편, 1990년대 후반 소니가 지녔던 ‘Playstation 콘솔 게임기가 거실의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이 되는 미래’라는 비전은 MS에는 가정용 PC를 대체할 수 있는 실질적 위협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MS는 Windows 운영체제 및 그 위에서 돌아가는 Office 소프트웨어로 돈을 버는 회사였으므로, 구성원들 스스로도 게임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겼다.
* 한편, MS 내에서도 소수 조직이던 DirectX 개발팀은 모두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는데, DirectX를 네이티브하게 실행시킬 수 있는 PC와 유사한 아키텍쳐의 기기(Box)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기가 있다면 전용 칩셋을 사용하기 때문에 프로그래밍이 어려운 일본의 콘솔 게임기보다 게임 개발자 친화적일 것이었다.
* 그러나 그들은 이런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경험이 전혀 없었다. 일단 경영진을 설득해야 했다. 그래서 DirectX 팀은 MS라는 거대 조직의 구성을 잘 아는 냇 브라운(Nat Brown)을 영입하였다. 냇 브라운은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면 먼저 코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DirectX를 네이티브하게 실행시키는 박스니까 DirectX Box라 불렸고, 나중에는 X-Box가 코드네임이 되었다.
* 한편 MS의 게임 그룹 또한 처음에는 소수 조직이었지만,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의 성공으로 수익이 나면서 빌 게이츠의 신임을 얻는다. 그러나 MS는 여전히 일부 PC 게임 영역에만 국한된 회사였다. 그때 DirectX 팀이 게임 그룹을 찾아와서 Xbox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구조적으로는 사실상 PC나 다름없는 기기로, MS가 콘솔 게임기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 두 팀은 동맹을 맺는다.
*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1999년 3월 2일 소니가 Playstation 2를 발표하면서 “PC의 종말”을 언급하자, 빌 게이츠가 DirectX 팀에 이 게임기에 관한 기술적 분석을 요청한다. DirectX 팀은 Playstation 2의 칩셋인 Emotion Engine이 지닌 강점과 약점을 분석한 보고서 말미에 ‘우리도 콘솔 게임기를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을 어필한다.
* 빌 게이츠는 그해의 연례 생각 주간 때 ‘소니가 AOL 같은 케이블 업체와 손을 잡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였고, 이것이 Windows PC를 가정에서 몰아낼 위험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사내 공지를 통해 종합 게임 전략을 논의할 사람이 있는지 불러모았다. 이때 DirectX 팀은 준비해 두었던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이 회의에서 공개하여 사내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 그러나 사내에 다른 경쟁자도 있었다. Windows CE 팀이었는데, 그들은 세가와 협업하여 드림캐스트에 Windows CE를 탑재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팀은 콘솔 게임기 하드웨어 관련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임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3DO 등 전통적인 콘솔 게임기와 유사한 게임기 개발을 주장하였다.
* DirectX 팀의 주장은 달랐다. 차세대 게임기는 PC와 유사한 아키텍쳐로 만들어 하드디스크와 이더넷(Ethernet) 포트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큰 논쟁으로 이어졌다. 빌 게이츠는 의도적으로 이 두 팀 간에 사내 경쟁을 붙였다.
* 그래서 DirectX 팀은 PC를 개조하여 3~4초만에 부팅이 끝나는 프로토타입 Xbox를 만들어 툼 레이더를 돌리는 시연을 빌 게이츠에게 직접 보여준다. 이는 빌 게이츠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긴다. 고작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만 준비했던 Windows CE 팀의 패배였다.
* 당시 빌 게이츠는 CEO 역할을 스티브 발머(Steven Ballmer)에게 넘기고 있었다. 따라서 회사가 돈이 많이 드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면 스티브 발머의 동의 또한 얻어야 했다. 스티브 발머는 처음에는 비디오 게임 사업에 회의적이었으므로 설득하기 어려웠으나, 곧 본격적으로 시작될 3D 온라인 게임 분야에서 Windows로 개발한 게임을 거실마다 놓아 각 가정에 독특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하여 간신히 설득할 수 있었다.
* 스티브 발머는 이 새로운 분야의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키보드 및 마우스 등 주변기기를 만들던 MS 하드웨어 부문의 임원이던 릭 톰슨(Rick Thompson)을 XBox의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MS의 거대한 뻘짓들도 모두 다뤄서 아주 흥미로웠어요. 11억 달러짜리 레드링과... TVTV텔레비전 참사...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는지 나와서 다 아는 것임에도 두근거렸습니다.
"윈도우나 오피스 같은 지루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에서 나온 게임기 하드웨어라, renegades 라는 제목이 참 어울리네요
재미나네요. 아직 다 보진 못했는데 초기 부분만 나온게 아쉽습니다.
전 Xbox는 하위호환 프로젝트가 가장 흥미로운데 그 부분도 추가되면 좋을 것 같아요.
Xbox 하위호환 작업 팀, 재미있는 비화 공개! https://bbs.ruliweb.com/xbox/board/300003/read/2114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