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S에 인수된 번지 스튜디오(Bungie Studio)에서 Xbox 독점 게임으로 만들던 헤일로는 Xbox의 성공에 있어 매우 중요했지만, 정작 출시일이 임박해서도 버그가 많고 프레임 레이트가 너무 낮았다. 출시까지 얼마 남지 않게 되자, 결국 MS 게임 스튜디오의 수장이던 에드 프리스(Ed Fries)는 헤일로 개발팀을 가둬놓다시피 했다. 소위 말하는 “크런치 모드”였다. 이제는 게임의 완성도보다도 제때 출시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었다.
* Xbox와 함께 출시된 헤일로 게임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몰입감이 대단하다는 것이 공통적인 평가였다.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 현상이 되었다. Xbox 사용자의 절반이 헤일로를 플레이했다.
* 헤일로는 콘솔 게임기 컨트롤러로도 FPS를 몰입감 있게 플레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 헤일로의 멀티플레이어 기능은 그 당시의 다른 어떤 플랫폼에서도 체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PC로 게임하던 컴퓨터 괴짜(Geek)들이 복잡한 설정을 통해 LAN 파티를 열던 경험을 이제 Xbox의 이더넷 포트를 통해서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디스플레이가 모자라도 화면 분할 기능이 있었다. 다들 한 집에 모여서 같은 게임을 즐기는 현상이 일어났다.
* Xbox 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Xbox Live 개념을 구상하였다. 인터넷을 통해 멀티플레이를 한다는 개념은 당시로서는 대담하였으며 그때까지 만들어진 적 없는 첨단 신기술을 요구하였다. 이 기술의 개발을 위해 몇십억 달러가 투자되었다.
* 또한 미국 곳곳에서 게이머들을 인터뷰하여 Xbox Live에 들어갈 기능 요구사항을 도출하였는데, 그 중에는 실시간 보이스챗이 있었다. 이건 스카이프(Skype)가 생겨나기도 전의 일이었기 때문에, 결국 직접 만들어야 했다.
* 다른 요구사항으로는 여러 게임에서 공통으로 쓸 수 있는 ID 개념이 있었다. 이는 게이머태그(Gamertag)라고 불리게 된다. 이 게이머태그를 통해 친구 추가나 게임 플레이 통계 등을 기록하게 된다.
* Xbox Live 개발에 관한 의구심도 있었다. 과연 거기에 게이머들이 돈을 지불할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특히 당시는 초고속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걸 쓰기 위해 인터넷 연결 비용까지 추가로 내어야 할 수도 있었다. 반대하는 사람들만으로 한 부서를 꾸릴 수 있을 지경이었다.
* Xbox Live는 Xbox 출시 1주년인 2002년 11월 15일에 출시되었는데, MS 사내의 낙관론자조차 놀라게 할 정도의 대성공이었다. Xbox Live의 커뮤니티 기능은 큰 영향을 주었다. Xbox Live를 통해 커뮤니티가 생성되면 거기에 있는 친구들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떠나지 못하는 효과가 있었다. Xbox Live를 하는 중년 남성이 많은데, 이들은 퇴근 후 게임을 통해 놀면서 잡담을 나눈다. 지금은 헤드셋을 낀 채 게임으로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이 매우 일반화되었지만, 당시로서는 Xbox Live가 처음이었다. 어찌 보면 Xbox Live는 매우 선도적인 SNS 플랫폼이었다.
* 헤일로의 대성공은 번지 스튜디오에 헤일로 2에 대한 큰 중압감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중요한 것만 남기고 덜어내는 능력이나 제작 일정 관리 기술이 부족했고, 결국 게임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헤일로 2 작업물의 대부분을 재작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에드 프리스는 헤일로 2의 출시 일정을 1년 늦추려 했지만, MS 입장에서는 헤일로 2가 빨리 나올수록 좋았기 때문에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간신히 로비 바흐가 일정 연기를 승인해줘서 양보하기는 했지만, 에드 프리스는 그때 처음으로 MS 퇴사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2004년 1월, 에드 프리스는 퇴사하였다. 그러나 그가 벌어주고 간 1년의 추가 시간은 헤일로 2에 큰 차이를 가져다준다.
* 헤일로 2는 출시 첫날에만 240만 장이 팔리며 그때까지의 어떤 영화보다도 높은 첫날 매출을 기록하였으며, 게임을 넘어 일종의 문화 현상이 된다. 또한 이러한 성공은 Xbox Live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에서 Xbox가 닌텐도의 판매량을 제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 이러한 성공에 고무된 MS는 차기 Xbox인 Xbox 360을 준비하였다. 이건 게임에 덧붙여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허브로서의 기능을 추가하였으며, 온라인 게임 다운로드가 가능한 디지털 상점이나 ‘업적’ 달성과 같은 신개념도 추가하였다. 고성능을 달성하기 위해 기성 제품이 아닌 자체적인 칩셋을 개발하여 사용하는 등 많은 엔지니어링 노력도 투입되었다.
* Xbox 360은 2005년 11월 22일 출시되었다. 다들 Xbox가 크게 성공하였음을 인정했고, 앞으로의 미래도 탄탄대로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온라인 게시판이나 게임 언론, 소매업자 등로부터 서서히 부정적인 의견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 제4장: 멋지네요, 이 다음은요? (Cool…Now What?)
* MS에 인수된 번지 스튜디오(Bungie Studio)에서 Xbox 독점 게임으로 만들던 헤일로는 Xbox의 성공에 있어 매우 중요했지만, 정작 출시일이 임박해서도 버그가 많고 프레임 레이트가 너무 낮았다. 출시까지 얼마 남지 않게 되자, 결국 MS 게임 스튜디오의 수장이던 에드 프리스(Ed Fries)는 헤일로 개발팀을 가둬놓다시피 했다. 소위 말하는 “크런치 모드”였다. 이제는 게임의 완성도보다도 제때 출시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었다.
* Xbox와 함께 출시된 헤일로 게임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몰입감이 대단하다는 것이 공통적인 평가였다.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 현상이 되었다. Xbox 사용자의 절반이 헤일로를 플레이했다.
* 헤일로는 콘솔 게임기 컨트롤러로도 FPS를 몰입감 있게 플레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 헤일로의 멀티플레이어 기능은 그 당시의 다른 어떤 플랫폼에서도 체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PC로 게임하던 컴퓨터 괴짜(Geek)들이 복잡한 설정을 통해 LAN 파티를 열던 경험을 이제 Xbox의 이더넷 포트를 통해서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디스플레이가 모자라도 화면 분할 기능이 있었다. 다들 한 집에 모여서 같은 게임을 즐기는 현상이 일어났다.
* Xbox 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Xbox Live 개념을 구상하였다. 인터넷을 통해 멀티플레이를 한다는 개념은 당시로서는 대담하였으며 그때까지 만들어진 적 없는 첨단 신기술을 요구하였다. 이 기술의 개발을 위해 몇십억 달러가 투자되었다.
* 또한 미국 곳곳에서 게이머들을 인터뷰하여 Xbox Live에 들어갈 기능 요구사항을 도출하였는데, 그 중에는 실시간 보이스챗이 있었다. 이건 스카이프(Skype)가 생겨나기도 전의 일이었기 때문에, 결국 직접 만들어야 했다.
* 다른 요구사항으로는 여러 게임에서 공통으로 쓸 수 있는 ID 개념이 있었다. 이는 게이머태그(Gamertag)라고 불리게 된다. 이 게이머태그를 통해 친구 추가나 게임 플레이 통계 등을 기록하게 된다.
* Xbox Live 개발에 관한 의구심도 있었다. 과연 거기에 게이머들이 돈을 지불할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특히 당시는 초고속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걸 쓰기 위해 인터넷 연결 비용까지 추가로 내어야 할 수도 있었다. 반대하는 사람들만으로 한 부서를 꾸릴 수 있을 지경이었다.
* Xbox Live는 Xbox 출시 1주년인 2002년 11월 15일에 출시되었는데, MS 사내의 낙관론자조차 놀라게 할 정도의 대성공이었다. Xbox Live의 커뮤니티 기능은 큰 영향을 주었다. Xbox Live를 통해 커뮤니티가 생성되면 거기에 있는 친구들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떠나지 못하는 효과가 있었다. Xbox Live를 하는 중년 남성이 많은데, 이들은 퇴근 후 게임을 통해 놀면서 잡담을 나눈다. 지금은 헤드셋을 낀 채 게임으로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이 매우 일반화되었지만, 당시로서는 Xbox Live가 처음이었다. 어찌 보면 Xbox Live는 매우 선도적인 SNS 플랫폼이었다.
* 헤일로의 대성공은 번지 스튜디오에 헤일로 2에 대한 큰 중압감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중요한 것만 남기고 덜어내는 능력이나 제작 일정 관리 기술이 부족했고, 결국 게임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헤일로 2 작업물의 대부분을 재작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에드 프리스는 헤일로 2의 출시 일정을 1년 늦추려 했지만, MS 입장에서는 헤일로 2가 빨리 나올수록 좋았기 때문에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간신히 로비 바흐가 일정 연기를 승인해줘서 양보하기는 했지만, 에드 프리스는 그때 처음으로 MS 퇴사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2004년 1월, 에드 프리스는 퇴사하였다. 그러나 그가 벌어주고 간 1년의 추가 시간은 헤일로 2에 큰 차이를 가져다준다.
* 헤일로 2는 출시 첫날에만 240만 장이 팔리며 그때까지의 어떤 영화보다도 높은 첫날 매출을 기록하였으며, 게임을 넘어 일종의 문화 현상이 된다. 또한 이러한 성공은 Xbox Live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에서 Xbox가 닌텐도의 판매량을 제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 이러한 성공에 고무된 MS는 차기 Xbox인 Xbox 360을 준비하였다. 이건 게임에 덧붙여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허브로서의 기능을 추가하였으며, 온라인 게임 다운로드가 가능한 디지털 상점이나 ‘업적’ 달성과 같은 신개념도 추가하였다. 고성능을 달성하기 위해 기성 제품이 아닌 자체적인 칩셋을 개발하여 사용하는 등 많은 엔지니어링 노력도 투입되었다.
* Xbox 360은 2005년 11월 22일 출시되었다. 다들 Xbox가 크게 성공하였음을 인정했고, 앞으로의 미래도 탄탄대로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온라인 게시판이나 게임 언론, 소매업자 등로부터 서서히 부정적인 의견이 몰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