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P by GN⁺ | ★ favorite | 댓글 1개
  • Bertrand Russell은 산업사회가 노동을 미덕으로 보는 믿음에 묶여 과로와 실업을 동시에 만들며, 행복과 번영은 노동시간을 조직적으로 줄일 때 가능하다고 봄
  • 현대 기술은 생활필수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을 크게 줄였으므로, 일부의 과로와 일부의 실업 대신 하루 4시간 노동으로 일을 나누는 편이 합리적임
  • 전쟁 중 생산 조직과 핀 제조 비유는 같은 생산량을 더 적은 시간에 만들 수 있는데도 사회가 노동시간 단축보다 파산과 실업을 선택하는 모순을 드러냄
  • 여가는 나태가 아니라 교육, 예술, 과학, 능동적 즐거움, 시민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며, 과거 소수 유한계급의 문명적 기능을 더 넓게 나눌 수 있음
  • 과도한 노동 대신 여유와 안전이 보편화되면 사람들은 덜 지치고 덜 의심하며 더 온화해지고, 현대 생산 방식은 이미 모두에게 안락과 안전을 제공할 가능성을 만들었음

노동 미덕에 대한 반박

  • Russell은 어릴 때 “게으른 손은 악마가 쓸 일을 찾는다”는 교훈을 믿었지만, 이후 노동 자체를 미덕으로 보는 생각이 현대 세계에 큰 해를 끼친다고 판단함
  • 현대 산업국가에 필요한 것은 더 열심히 일하라는 설교가 아니라, 노동을 줄이고 게으름을 조직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임
  • 이미 생계가 가능한 사람이 교사나 타자수 같은 일을 하면 다른 사람의 밥그릇을 빼앗는다는 반론도 받아들이지 않음
    • 사람이 번 돈을 쓰면 소비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함
    • 이 관점에서 문제 되는 인물은 돈을 쓰지 않고 저축만 하는 사람임

저축, 투자, 정부 지출에 대한 비판

  • 저축을 정부에 빌려주는 행위는 당시 대부분의 문명국 정부 지출이 과거 전쟁 비용과 미래 전쟁 준비에 쓰인다는 점에서 무장력 증대로 이어짐
  • 산업 투자도 항상 유익하지는 않음
    • 성공해 유용한 것을 생산하면 인정할 수 있음
    • 실패한 기업은 인간 노동을 아무도 즐기지 못하는 기계나 설비에 투입하게 만들 수 있음
  • 파산한 투자자는 불운한 피해자로 여겨지는 반면, 친구들에게 파티를 열어 돈을 쓴 사람은 경박한 낭비가로 멸시받는 사회적 판단을 비판함

노동의 두 종류와 지배계급

  • Russell은 노동을 두 종류로 나눔
    • 첫째, 지표 근처의 물질 위치를 바꾸는 일로, 불쾌하고 낮은 보수를 받음
    • 둘째,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일로, 즐겁고 높은 보수를 받음
  • 두 번째 노동은 명령뿐 아니라 어떤 명령을 내려야 하는지 조언하는 일까지 포함하며, 서로 반대되는 조언이 동시에 주어지는 상태를 정치라고 부름
  • 유럽에는 토지 소유를 통해 다른 사람이 존재하고 일할 권리에 대해 대가를 내게 만드는 지주 계급이 있었음
    • 이들의 한가함은 타인의 노동 덕분에 가능했음
    • Russell은 이런 지주의 한가함을 찬양하지 않음

산업혁명 이전 윤리와 현대 기술

  • 산업혁명 이전에는 한 사람이 열심히 일해도 자신과 가족의 생존에 필요한 것보다 조금 더 생산하는 정도였고, 그 잉여는 주로 사제와 전사가 가져감
  • 이 체계는 오래 지속되며 노동을 바람직하게 보는 사고에 깊은 흔적을 남김
    • 러시아에서는 1917년까지 지속됨
    • 영국에서는 산업혁명 이후에도 나폴레옹 전쟁과 그 뒤 상당 기간 힘을 유지함
    • 미국에서는 혁명으로 끝났지만 남부에서는 남북전쟁까지 지속됨
  • 현대 기술은 여가를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고르게 나눌 수 있는 권리로 만들 수 있음
  • Russell은 노동의 도덕을 노예의 도덕으로 부르며, 현대 세계에는 노예제가 필요 없다고 말함

전쟁과 생산 조직이 보여준 가능성

  • 제1차 세계대전 중 많은 사람이 군대, 군수품 생산, 첩보, 전쟁 선전, 전쟁 관련 정부 업무로 이동했지만, 연합국 임금노동자의 물질적 복지는 전쟁 전후보다 높았다고 봄
  • 차입 때문에 미래가 현재를 먹여 살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직 존재하지 않는 빵을 먹을 수는 없으므로 실제 설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함
  • 전쟁은 과학적 생산 조직을 통해 현대 인구가 전체 노동능력의 작은 일부만으로도 상당한 안락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줌
  • 전쟁 후 그 생산 조직을 유지하고 노동시간을 4시간으로 줄였어야 했지만, 사회는 과거의 혼란으로 돌아감
    • 필요한 노동자는 장시간 일함
    • 나머지는 실업자로 굶주림
    • 임금은 생산량보다 근면이라는 덕성에 비례해야 한다는 도덕이 작동함

핀 제조 비유와 실업의 모순

  • 핀을 하루 8시간 일해 세계가 필요로 하는 만큼 만들던 상황에서, 발명으로 같은 인원이 두 배를 만들 수 있게 된다고 가정함
  • 합리적인 세계라면 모두가 4시간씩 일하고 이전과 같은 양을 생산하면 됨
  • 실제 세계에서는 8시간 노동이 유지되고, 핀이 너무 많아지며, 일부 고용주는 파산하고, 노동자의 절반은 실업자가 됨
  • 총 여가는 같아도 한쪽은 완전한 실업, 다른 한쪽은 과로에 놓이므로 여가가 행복의 원천이 아니라 불행의 원천이 됨

가난한 사람의 여가에 대한 거부감

  • 부유층은 가난한 사람이 여가를 갖는다는 생각을 오래 불편하게 여김
  •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남성의 보통 노동일이 15시간이었고, 아이들도 12시간 일하는 일이 흔했음
  • 노동시간이 너무 길다는 제안에는 일이 성인을 술에서, 아이를 장난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식의 반응이 나옴
  • Russell이 어릴 때 도시 노동자가 투표권을 얻은 뒤 법정 공휴일이 생겼고, 상류층은 이에 분개함

최소한의 노동과 하루 4시간 제안

  • 모든 사람은 살아가며 인간 노동의 산물을 소비하므로, 자신이 생산하는 것보다 많이 소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봄
  • 따라서 생계와 숙식에 대한 대가로 무언가를 제공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노동 의무는 인정함
  • 그러나 그 이상으로 임금노동자가 과로하거나 굶주려야 한다는 생각은 해롭다고 봄
  • 보통 임금노동자가 하루 4시간 일하면, 적절하고 온건한 조직이 있다는 조건에서 모두에게 충분하고 실업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함

러시아와 노동 숭배

  • 당시 러시아의 새 신조는 서구 전통과 다른 점이 많지만, 노동의 존엄에 대한 태도는 지배계급이 “정직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설교해온 것과 거의 같다고 봄
  • 근면, 절제, 먼 미래의 이익을 위한 장시간 노동, 권위에 대한 복종이 다시 나타남
  • 러시아에서는 육체노동의 우수성에 대한 가르침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져, 육체노동자가 누구보다 존중받는다고 봄
  • 자연자원이 풍부하고 개발이 필요한 현재 단계에서는 고된 노동이 필요하고 큰 보상을 가져올 수 있음
  • 모두가 장시간 노동 없이도 안락해질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면, 쟁점은 노동시간을 줄일지 아니면 미래 생산성을 위해 현재 여가를 계속 희생할지로 바뀜

여가와 문명

  • Russell에게 물질을 옮기는 일은 생존에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인간 삶의 목적은 아님
  • 실제 노동자들은 노동을 가장 고귀한 과업으로 즐기기보다 생계 수단으로 여기며, 행복은 주로 여가 시간에서 얻음
  • 사람들이 하루 4시간만 일하면 남은 시간을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반론은 현대 문명의 결함을 드러냄
  • 효율 숭배는 놀이와 가벼운 즐거움의 능력을 억제했고, 현대인은 모든 일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보려 함
  • 사회는 돈을 버는 일을 좋게 보고 돈을 쓰는 일을 나쁘게 보지만, 생산의 사회적 목적은 생산물이 소비자에게 주는 즐거움에 있음

교육, 능동적 즐거움, 창조적 활동

  • 하루 4시간 노동은 남은 시간을 전부 경박한 일에 쓰자는 뜻이 아님
  • 그런 사회에서는 교육이 지금보다 더 멀리 나아가야 하며, 사람이 여가를 지적으로 쓸 수 있는 취향을 기르는 데 일부 목적을 두어야 함
  • 도시 대중의 즐거움은 영화 보기, 축구 관전, 라디오 청취처럼 주로 수동적이 되었음
  • 활동적 에너지가 노동에 모두 소모되기 때문이며, 더 많은 여가가 있으면 사람들은 다시 능동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음

소수 유한계급에서 보편적 여가로

  • 과거에는 작은 유한계급과 큰 노동계급이 있었고, 유한계급은 사회정의에 근거 없는 이점을 누림
  • 그럼에도 그 계급은 예술을 기르고, 과학을 발견하고, 책을 쓰고, 철학을 만들고, 사회관계를 세련되게 하는 등 문명에 큰 기여를 함
  • 세습 유한계급 방식은 매우 낭비적이었음
    • 한 명의 Darwin을 낳을 수 있었지만, 그 반대편에는 여우사냥과 밀렵꾼 처벌 이상을 생각하지 않는 수많은 지주 신사가 있었음
  • 대학은 유한계급이 우연히 제공하던 기능을 더 체계적으로 제공하지만 충분하지 않음
    • 학계 생활은 일반 사회와 달라 보통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질 수 있음
    • 연구가 조직화되어 독창적 방향을 생각하는 사람이 억제될 수 있음

하루 4시간 노동 사회의 효과

  • 누구도 하루 4시간 이상 일하도록 강제되지 않는 세계에서는 과학적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 탐구할 수 있고, 화가는 굶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음
  • 젊은 작가는 경제적 독립을 얻기 위해 선정적인 생계용 작품에 매달릴 필요가 줄어듦
  • 경제나 정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직업인은 대학 경제학자의 현실감 부족 없이 자기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음
  • 의사는 의학의 진보를 배울 시간이 생기고, 교사는 젊을 때 배운 뒤 이미 틀린 것으로 판명됐을 수 있는 내용을 반복해서 가르치는 데 덜 시달림
  • 무엇보다 과로로 닳아버린 신경, 피로, 소화불량 대신 행복과 삶의 기쁨이 생김
  • 여유와 안전은 선량함을 낳고, 선량함은 세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도덕적 자질이라고 봄
  • 현대 생산 방식은 모두에게 안락과 안전을 줄 가능성을 만들었지만, 사회는 일부의 과로와 다른 일부의 굶주림을 선택해왔음

댓글과 토론

Hacker News 의견들
  • 13~14살 때 연장자의 추천으로 Russell의 In Praise of Idleness를 읽었고, 1935년에 쓰인 글인데도 그가 유럽 생활의 미래를 예견했다고 설득당했음
    실제로 현대 서유럽은 여가를 중시하고, 고된 노동을 최고의 미덕으로 보지 않으며, 시민들이 문화를 만들고 새로운 생각을 발명할 자유가 있는 방식으로 살아간다고 봄
    중세 수도사나 생각을 갖고 놀 시간이 있던 사람들이 많은 발견을 했고, 생각할 여유가 없던 프롤레타리아와 대비된다는 점에서 한가함은 위대한 아이디어의 전제조건처럼 보였음
    UBI도 기본 욕구가 충족되어 사람들이 자아실현을 할 수 있게 되는 비전이고, 학계의 행복한 종신재직권도 “publish or perish” 걱정 없이 몇 년간 결과를 보이지 않아도 중요한 아이디어를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함
    예전 Google도 어느 정도는 이랬고, 많은 Googler가 성과 압박이 거의 없이 몇 년씩 큰 아이디어를 찾아다니며 “resting and vesting”하는 삶을 살았음
    다만 나이가 들수록 이 비전이 순수한 형태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느끼게 됐고, 완전한 무위와 성과 압박 없음은 잘 작동하지 않았음
    이제 단순한 세계가 아니며, 낮게 매달린 과일은 이미 많이 따였기 때문에 복잡한 세계의 큰 아이디어는 여러 영역에서 점진적 진전과 꾸준한 작업을 통해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봄

    • Russell도 많은 과학자들처럼 더 많은 한가함을 허용해야 하는 매력적인 이유로 다음 큰 아이디어를 내세울 필요를 느꼈다고 봄
      하지만 “성과 압박”이 생각만큼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Russell이 맞고, 그의 시대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 정도로 세상이 크게 바뀌었다고 보진 않음
      다만 세상을 억지로라도 효율적으로 큰 아이디어를 생산하도록 조직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음
      UBI의 진짜 논거는 자기결정권이 핵심 가치라는 데 있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협상이 부유하게 태어나지 않은 모든 사람의 머리에 총을 들이대는 방식일 필요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됨
      효율, 신속함, 조급함을 과대평가하는 태도가 인류를 절벽으로 몰고 있다고 봄
    • 낮게 매달린 과일이 고갈되는 건 문제지만 대응 방법은 있음
      다음 뉴턴의 사과를 찾는 사람이 훨씬 많아질 수 있고, 더 적은 수의 큰 집단이 좁은 영역에 강하게 집중할 수도 있지만 그건 더 “노동”에 가까움
      또 새로운 영역, 특히 소프트웨어가 있음
      Google, Facebook, Microsoft, Apple은 자유 시간을 누릴 특권이 있던 땜장이들이 만들었고, 이 과정은 아직 멈추지 않았음
      모든 한가한 사람이 새 지식을 추구하진 않겠지만 괜찮고, 한가한 사람이 많아지면 그 안의 땜장이 수도 늘어남
    • 문제는 한가함이 부족한 건지, 오히려 너무 많은 건지 궁금함
      Isaac Newton은 천재로 여겨지지만, 미적분과 뉴턴 역학처럼 지금 보면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다뤘음
      물론 그와 경쟁자들이 그것을 발명하던 당시에는 훨씬 어려웠음
      지금은 더 복잡한 것을 다루지만, 현대 고등학교 수준의 내용도 예전에는 정말 복잡했음
      시간이 지나면 한 분야 주변에 이론, 틀, 언어, 교육법이 생겨 그것이 기만적으로 단순해 보이게 됨
      이것도 점진주의지만, 그 점진적 증가는 우리의 발견을 기본 전제로 자란 다음 세대에서 나옴
      우리가 더 이상 단순한 세계에 살지 않는 게 아니라, 전문가가 되어 이전 세대가 정제한 모델을 흡수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현재의 덜 정제된 모델을 가장 어려운 문제에 적용하거나 다음 세대를 위한 모델을 만드는 단계로 간 것일 수도 있음
    • 1932년에는 지루함을 얻기가 더 쉬웠다는 점도 복잡함
      오늘날에는 우리의 주의를 두고 경쟁하는 것들이 훨씬 많고 훨씬 정교함
      지루함은 과소평가되어 있음
    • 마지막 문단에 대해 말하자면, 주 60시간 과로로 번아웃되는 직원과 아무 생산적인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 어딘가에 중간 지점이 있다고 봄
      일의 성격과 환경도 중요함
      농사를 짓는다면 산출량에 상한이 있지만, 인터넷이 있는 세상에서는 누구나 충분히 “hustling”하거나 “grinding”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음
  • 모두를 먹일 만큼 식량은 충분한데도 어떤 사람들은 살 돈이 없고, 그래서 영국 같은 “선진국”에도 푸드뱅크가 있음
    미국인들을 좀 자극하자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왜 사람들을 노숙하게 놔두는지 모르겠음
    San Jose의 아름다운 공원에 노숙자가 가득했던 걸 보고, 그 많은 기술 부의 한복판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는지 의아했음
    왜 모두가 잠잘 곳을 갖지 못한 나라에서 누군가는 500억 달러쯤 되는 보상을 요구하는가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거나” “진보를 이루기 위해” 지구에 온 게 아니고, 그런 건 특별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나 Bertrand Russell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그들을 위해 노동하길 원하는 엘리트의 관점임
    무언가를 하는 데 도덕이나 미덕을 세우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노예가 되고, 아마 다른 사람의 노예 감독이 될 준비도 된 사람일 가능성이 큼

    • 미국은 부자일 때만 좋은 나라라고 굳게 믿음
      부자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부자로 만들기 위해 노예처럼 일하게 됨
      하지만 부자들은 음식을 만들고, 차를 고치고, 라떼를 내주고, 식료품을 배달해 줄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함
      진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건 수적으로 훨씬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일어서서 목을 누르는 장화를 걷어내는 것뿐임
    • “무언가를 하는 것”에 도덕을 세운 외과의사나 암 연구자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임
      어떤 사람은 혁신하고, 어떤 사람들 대부분은 유지함
      건강한 사회에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함
      근본적인 문제는 많은 사람이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는 일을 하고 있고, 의미 있는 일 상당수가 마땅한 존중과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데 있음
    • California의 노숙 위기는 어떤 종류의 한가함 때문에 생겼다고도 볼 수 있음
      NIMBY들은 변하는 도시에 적응하기를 거부하고 도시가 변하지 않도록 강요하려 함
      또 기술 업계 돈 수십억 달러를 노숙 문제에 그냥 쏟아부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진보주의자들도 있는데, 이것도 다른 형태의 한가함임
      그 결과 매년 수백만 달러를 받으면서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는 비영리단체들이 생김
    • 특정 지역의 노숙 상황이 왜 그런지 정말 알고 싶다면, “부유한 나라에 노숙자가 있다”는 막연한 구호를 넘어 그 문제에 기여하는 구체적 쟁점과 요인을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정치화된 논의를 파고들 수 있음
      또는 그 “500억 달러쯤 되는 보상” 중 하나를 골라, 그것을 San Jose 근처 토지, 주택 건설, 정신건강 치료, 실제 정신건강 개선, 돌봄 인력, 공무원, 현장 지원, 치안, 일자리 프로그램, 공공 기반시설 등으로 어떻게 바꿔 그곳의 노숙 문제를 해결할지 계획해 볼 수도 있음
      인터넷 논객들 중에는 그 계획의 문제를 무례하게 짚어줄 사람들이 반드시 있을 것임
    • 미국은 많은 사람을 제로섬 방식으로 가난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정확히 그만큼 부유한 나라임
  • 1998년에 Russell의 글 몇 편을 온라인에서 찾아 여기에 모아뒀음: http://trondal.com/russell/russell.html

  • 행운과 불운이 겹쳐 40세에 은퇴할 수 있었음
    지금은 내가 즐기면서도 사회에 순이익이 될 수 있는 방식으로 손을 어떻게 써야 할지 찾는 중이고, 이 에세이가 내가 생각해 온 많은 개념을 건드림
    사실 아직 이 글을 못 봤다는 게 놀랍고, 철학을 조금 더 깊이 읽는 데서 탐색을 시작해야 할 듯함

    • 먼저 자신과 가족에게 금전이 아닌 방식으로 순이익이 되는 일을 해보고, 그다음 가까운 공동체로 확장해 보면 좋겠음
  • “미국에서는 남자들이 충분히 잘살면서도 자주 장시간 일하고, 그런 사람들은 임금노동자의 여가를 실업이라는 가혹한 처벌이 아닌 형태로 상상하는 데 분개하며, 사실 자기 아들의 여가조차 싫어한다”는 대목은 여기 수백 명에게 정확히 들어맞을 것 같은데, HN의 인구 구성을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걸까

    •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하는 것을 당한다”
      우리가 끊임없이 항상 일하는 데는 이유가 있음
      자연은 잔혹하고, 내가 최고 수준에 속하지 않으면 고통을 겪게 될 것임
      적어도 내 트라우마가 나를 그렇게 몰아감
      나는 말 그대로 상위 1%가 되지 못하는 것이 두렵고, 내 삶을 살고 내 경험을 했다면 아마 같은 결론에 이를 것임
    • HN에 자기보다 적게 버는 사람들이 여가를 갖는 걸 원치 않는 사람이 왜 있겠음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든, 하이킹을 하든, 암벽등반을 하든, 원하는 걸 뭐든 할 자유가 있음
      다만 임금노동자가 세금을 통해 내 저축을 탐내서 Louis Vuitton 남성용 가방을 사는 건 원치 않음
      나는 힘들게 번 돈으로 고급차든 오디오 애호가용 장비든 내가 원하는 걸 살 자유를 원함
      다른 사람들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음
  • 이런 논의는 정확히 강제력이나 궁핍의 위협이 없으면 아무도 하지 않을 일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봄
    더 공정한 경제적 변화를 만들 때도, 그런 일들이 제대로 수행되도록 보장하는 방식은 제약조건이 됨
    그중 일부는 수천 명을 조직해야 함
    한 곳에서 리튬을 캐서 전 세계 200곳으로 보내려면 금전적 유인 없이 어떻게 할지, 배에 연료를 넣고, 싣고 내리고, 위치를 추적하고, 수리하고 유지보수하는 일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함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고 현재 해법이 매우 차선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동시에 해결하려는 문제가 매우 복잡하고 현재 해법은 대체로 작동함
    특히 만족스럽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일이 많고, 누구도 스스로 잘하도록 동기부여되기 어려운 일도 많음
    또한 시장이 수요를 신호하는 최선의 방식이라는 점도 분명함
    그래서 이런 것들은 유지하면서 현재 시스템의 가장 큰 착취적·수탈적 비효율을 제거하고 싶어지는 것임

    • 누구나 필요하지만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노동을 동등한 몫으로 해야 한다면, 그런 노동의 필요 자체가 최소화될 것임
      Zuckerberg나 Musk를 포함한 모두가 한 달에 하루 쓰레기를 주워야 한다면, 그들은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뭔가 대신 그런 문제를 자동화로 없애는 데 자본을 쓸 것임
    • 저자는 주 20시간 노동을 정상화하고, 다수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을 대략 두 배로 올리자고 제안함
      완전고용에 도달할 때까지 주당 노동시간을 계속 줄이는 방식임
      매력적이지 않은 일은 아마 더 높은 임금으로 여전히 유인될 것임
  • Josef Pieper의 “Leisure: The Basis of Leisure” [0]를 추천함
    여가는 오락이 아님
    실제로 “school”이라는 단어는 여가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왔고, 일을 해야 하는 상태는 여가의 결여, 즉 여가의 부정으로 정의됐음
    여가와 노동의 구분은 고전적인 자유학예와 기계적 학예의 구분에도 반영됨
    자유학예는 자유인이 지혜와 덕 등을 위해 추구하는 것이었고, 기계적 학예는 실용적 목적을 위한 것이었음
    노동은 노동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가를 위해 하는 것으로 이해됐고, 여기서 여가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오락과는 다름
    [0] https://www.amazon.com/Leisure-Basis-Culture-Josef-Pieper/dp...

  • 전체는 이해하고 핵심 명제에도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지만, 긍정적 사례로 든 소련 러시아가 문제임
    바로 그 시기인 1932~1933년에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땅에서 순전히 인위적 이유로 대규모 기근이 벌어졌고, 소련 노동자들은 보수 없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일하도록 강제됐음
    그래서 글의 해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움

    • 내가 알기로 Russell은 마르크스주의에 꽤 비판적이었음
      소련 러시아의 일부는 높이 평가했지만 전부를 그런 건 절대 아님
      적어도 대부분의 면에서 소련 러시아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 같지는 않음
  • 좋아하는 밴드 중 하나인 TTNG에 이 에세이에서 영감을 받은 정말 좋은 곡이 있음
    매스 록을 조금이라도 좋아한다면 즐길 만함: https://m.youtube.com/watch?v=dCKXg2scb_s&pp=ygUaaW4gcHJhaXN...

    • 1년째 ttng를 계속 몰아 듣고 있음
      제목을 봤을 때 그 곡이 떠올랐고, 에세이에서 영감을 받았을 수 있다는 건 몰랐음
      TTNG가 언급된 걸 보고 신나서 오랜만에 로그인해 댓글을 달게 됐음
  • 이 에세이는 좋아하지만, 한가하게 지내는 것은 어렵다고 느꼈음
    남은 인생을 느긋하게 보내려고 FIRE 흐름에 올라탔고, 31살에 한 번 일을 그만뒀다가 1년 일한 뒤 33살에 또 그만뒀음
    지금은 다시 같은 막다른 직장에서 일하고 있고, 나쁘지 않음
    일하지 않을 때는 YouTube, HN, reddit을 소비하고 있음
    한가함을 다시 사랑하는 법을 잘 모르겠음
    예전에는 한 시간씩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었음, 명상처럼

    • 그렇다면 이 에세이를 정말 잘못 이해한 듯함
      Russell은 도발적으로 “한가함”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사람들이 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충만함을 찾는다고 말하는 게 아님
      그는 모두가 충분히 넓은 범위의 주제를 배워 여가 시간에 스스로 추구할 관심사를 고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말함
      에세이에 따르면, 하루 24시간 중 4시간만 일하게 되면 사람들이 시간을 채울 줄 모를 것이라는 반론이 있는데, 현대 세계에서 그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우리 문명에 대한 유죄판결임
      예전에는 효율 숭배 때문에 억눌리기 전의 명랑함과 놀이 능력이 있었음
      노동시간을 4시간으로 줄이자는 말은 나머지 시간이 순전한 하찮은 오락에 쓰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루 4시간 노동으로 생활필수품과 기본적 안락을 얻고 나머지는 각자 원하는 대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임
      그런 사회제도에서는 교육이 지금보다 더 멀리 나아가야 하며, 사람들이 여가를 지적으로 사용할 취향을 갖게 하는 것도 목표가 되어야 함
      도시 대중의 즐거움이 영화 보기, 축구 경기 보기, 라디오 듣기처럼 주로 수동적이 된 것은 활동 에너지가 일에 모두 빼앗기기 때문이고, 여가가 더 많아지면 다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임
    • 아이를 갖는 건 하루에 목적과 충만함을 주면서도 한가한 시간을 더 소중하게 만드는 이중의 이점이 있었음
      마음은 무제한의 한가함이나 무제한의 노동이라는 극단에는 잘 맞지 않음
      아이를 키우는 리듬은 일과 한가함 사이의 완벽한 중간 지점에 맞을 수 있고, 두 영역보다 더 의미 있는 누적 결과물을 만든다는 장점도 있음
      특히 경제적으로 독립했거나 새 아기의 첫 1~2년 동안 도와줄 가족이 있다면 그 시간 균형이 더 잘 맞음
    • 한가함은 소파에 앉아 TV만 보는 게 아님
      기본적으로 그 순간 흥미로운 것을 무엇이든 추구할 수 있는 자유
    • 사람들의 성격과 기질을 모두 한 바구니에 넣을 수는 없다고 봄
      어떤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고, 만들고, 배우고, 한곳에 머물지 않을 때 잘 살고 즐거워함
      다른 사람들은 앉아서 쉬고, 적게 하고, 성찰하는 걸 즐김
      결국 개인에 따라 다르고, 각자 의미와 기쁨을 주는 영역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