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P by neo 3달전 | favorite | 댓글 1개
  • 현대 산업 국가에서는 과거에 설교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필요함. 나폴리의 12명의 거지 이야기에서처럼, 게으른 자에게 보상을 주는 것이 옳은 방향임. 이를 위해서는 공공 선전이 필요할 것임.

  • 이미 생활할 만큼 충분한 돈이 있는 사람이 일을 하면 다른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음. 한 사람이 번 돈을 쓸 때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임. 오히려 문제는 돈을 저축하는 사람들임.

  •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것은 Shakespeare의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하는 나쁜 사람들과 같음. 파산하는 사업에 투자하는 것 역시 아무에게도 기쁨을 주지 않는 일임. 반면 친구들과 파티를 여는데 돈을 쓰면 모두가 기쁨을 얻을 수 있음.

일이란 무엇인가?

  • 일에는 두 종류가 있음

    • 지구 표면 근처의 물질의 위치를 다른 물질에 상대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
  • 첫번째 종류는 불쾌하고 급여가 낮은 반면, 두번째 종류는 유쾌하고 급여가 높음. 두번째 종류는 무한정 확장 가능함.

  • 정치인은 서로 반대되는 조언을 동시에 제공하는 기술, 즉 광고의 기술이 필요함.

  • 문명 초기부터 산업혁명까지 노동자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계 유지에 필요한 것 이상을 거의 생산하지 못했음. 약간의 잉여는 성직자와 전사들이 가져갔고, 기근 시에는 노동자들이 굶어 죽었음. 이 시스템은 최근까지 지속되었음.

  • 원시 공동체에서 농민들은 성직자와 전사를 부양하기 위해 잉여 생산물을 내놓지 않았을 것임. 처음에는 강제로, 점차 노동 윤리를 받아들이도록 설득당했음.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인류 전체의 이익과 일치한다고 믿게 되었음.

  • 현대 기술 덕분에 소수 특권층만이 아니라 모두가 문명에 필수적인 여가를 누릴 수 있게 되었음. 과거에는 소수의 여가를 위해 다수가 노동했지만, 그들의 노동은 일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여가가 좋기 때문에 가치가 있었음.

현대 기술과 노동 시간

  • 현대 기술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량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되었음. 전쟁 중 군수물자 생산 등에 동원된 노동력이 생산직에서 빠졌음에도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오히려 올라갔음.

  • 과학적 생산 조직이 유지되고 노동시간이 하루 4시간으로 줄었더라면 좋았을 것임. 그러나 옛 혼돈이 복구되고, 일부는 장시간 노동을 하고 나머지는 실업자로 굶주리게 되었음. 노동이 의무이고 생산량이 아니라 근면에 따라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노예 국가의 윤리 때문임.

  • 예를 들어 한 시점에 일정 수의 사람들이 하루 8시간 일해서 세상에 필요한 만큼의 핀을 생산한다고 가정함. 어떤 발명으로 생산량이 두 배로 늘어났지만, 세상은 그만큼 더 많은 핀을 필요로 하지 않음. 이성적인 세상이라면 모두가 4시간만 일하면 될 것임. 그러나 실제로는 이를 타락으로 여김. 8시간을 계속 일하고, 핀이 너무 많아져 고용주는 파산하고, 절반의 노동자는 실직함. 어느 경우나 여가 시간은 같지만, 고르게 분배되지 않고 불행만 초래함.

여가에 대한 인식

  • 가난한 사람이 여가를 갖는 것은 언제나 부자들에게 충격적인 일이었음.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하루 15시간이 보통이었고, 아이들도 12시간 일했음. 노동자들이 선거권을 얻자 공휴일이 법제화 되었지만 상류층은 분개했음.

  • 노동 윤리에 대해 솔직하게 생각해보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일정량의 인간 노동의 산물을 소비함. 노동은 대체로 불쾌하므로, 자신이 생산한 것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은 부당함. 이 정도까지만 노동의 의무를 인정할 수 있음.

  • 현대 사회에서 돈을 물려받거나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한 사람들은 이 최소한의 노동에서도 벗어날 수 있음. 그러나 임금 노동자들이 과로하거나 굶주려야 한다는 사실이 더 해로움.

  • 여가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은 문명과 교육의 산물임. 평생 장시간 노동한 사람은 갑자기 한가해지면 지루해할 것임. 그러나 상당한 여가 없이는 인간은 많은 좋은 것들로부터 단절됨. 더 이상 대다수가 이를 박탈당할 이유가 없음.

노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

  • 러시아 정부의 새로운 신념에는 서구의 전통적 가르침과 매우 다른 점이 많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음. 통치 계급, 특히 교육 선전을 통제하는 자들이 노동의 존엄성에 대해 가지는 태도가 그것임.

  • 페미니스트들이 정치권력의 가치를 깨닫고 덕행과 권력 모두를 갖기로 한 것처럼, 러시아에서도 육체노동에 대해 비슷한 일이 일어났음. 옛날부터 부자들은 "정직한 노동"을 칭송하면서도 가난한 자들에게만 강요했음. 러시아에서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육체노동자를 가장 존경하게 되었음.

  • 이는 당분간은 좋은 일임. 그러나 모두가 장시간 노동없이도 편안해질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될까? 러시아 당국은 현재의 여가를 미래 생산성을 위해 계속 희생하는 계획을 세울 가능성이 높아보임.

노동의 진정한 가치

  • 물질을 옮기는 일은 우리 존재에 필요하지만, 인생의 목적은 아님. 그렇지 않다면 Shakespeare보다 막노동꾼이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임. 우리는 가난한 자들을 달래기 위해 노동의 존엄성을 설교해온 부자들과, 기계를 다루는 새로운 즐거움에 현혹되어 이 점을 오해하고 있음.

  • 노동자들은 노동을 생계 수단으로 여기며, 행복은 여가에서 온다고 생각함. 현대인은 모든 것이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만 행해져야 한다고 여김. 영화를 보러 가는 습관은 비난받지만, 영화를 만드는 일은 돈을 버는 일이라 존경받음. 돈을 버는 것은 좋고 쓰는 것은 나쁘다고 여기는 개념이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음.

  • 하루 4시간만 일하자는 것이 모든 시간을 경박하게 보내자는 뜻은 아님. 4시간 노동으로 필수품과 기본적 안락을 누릴 자격을 얻고, 나머지는 각자 원하는 대로 쓸 수 있어야 함. 교육이 진전되어 여가를 지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취향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함.

  • 과거에는 소수의 여가 계급과 다수의 노동 계급이 있었음. 여가 계급은 사회적 정의에 근거하지 않은 특권을 누렸고, 이는 그들을 억압적으로 만들고 특권을 정당화하는 이론을 만들게 했음. 그럼에도 그들은 문명의 거의 모든 것에 기여했음. 심지어 피억압자의 해방조차 위에서 시작되곤 했음. 여가 계급 없이 인류는 야만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임.

  • 그러나 의무 없는 세습적 여가 계급은 엄청나게 낭비적이었음. Darwin 한 명의 대가로 fox-hunting이나 밀렵꾼 처벌 이상을 생각하지 않는 수만 명의 시골 신사들이 있었음. 오늘날 대학이 더 체계적으로 여가 계급이 우연히 부산물로 제공했던 것을 제공하고 있음.

  • 아무도 하루 4시간 이상 일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세상에서는 훌륭한 그림을 그려도 굶주리지 않을 것이며, 젊은 작가들도 세간의 주목을 끌기 위해 선정적인 책을 쓸 필요가 없을 것임. 의사들은 의학의 진보를 배울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임.

  • 무엇보다 행복과 삶의 기쁨, 여유가 있을 것임. 사람들은 수동적이고 공허한 오락만을 원하지 않게 될 것임. 전쟁에 대한 취향은 사라질 것임. 선한 천성이 더욱 필요한데, 이는 투쟁의 삶이 아니라 안락과 안전에서 나옴. 현대 생산은 모두에게 안락과 안전을 줄 수 있게 되었지만, 우리는 일부의 과로와 일부의 굶주림을 선택했음. 우리는 기계가 있기 전처럼 계속 열심히 살아왔지만, 영원히 어리석을 필요는 없음.

GN⁺의 의견

  • 이 에세이는 1932년에 쓰여졌지만, 현대 사회에 여전히 유효한 통찰력을 담고 있음. 기술 발전으로 노동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되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양극화만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꼬집고 있음.

  • 다만 인간에게 노동 자체가 주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는 간과한 측면이 있어보임. 이는 칼 마르크스 등 많은 사상가들이 지적한 바 있듯, 노동은 인간의 본질적 활동이며 자아실현의 계기이기도 함. 단순히 생계 수단으로서의 노동만 있는 것은 아님.

  • 저자가 언급한 대로, 여가를 보람되고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과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임. 그래야 여가가 단순한 무위(無爲)나 퇴폐로 흐르지 않을 수 있음. 이를 위

Hacker News 의견
  • 'In Praise of Idleness'라는 글이 1935년에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여가를 중요시하고 노동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 서유럽의 미래상을 제시했음. 실제로 현대 서유럽은 이런 방식으로 살고 있음.
  • 보편적 기본소득(UBI)의 비전은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사람들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는 것임.
  • 구글은 과거에는 '휴식과 귀속(resting and vesting)'의 삶을 살며 큰 압박 없이 아이디어를 모색할 수 있었음.
  • 그러나 완전한 게으름은 효과적이지 않음. 복잡한 세상에서는 점진적으로 진전을 이루어야 큰 아이디어에 도달할 수 있음.
  • 음식이 충분한데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음. 미국에서 노숙자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우리는 '위대한 일'이나 '진보'를 위해 지구에 있는 게 아님. 그런 생각은 열정이 있는 소수나 우리를 위해 일하기를 원하는 엘리트들을 위한 것임.
  • 40세에 은퇴한 저자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손을 쓰는 법을 모색하고 있음.
  • 경제 변화에 대한 논의는 강제나 궁핍의 위협 없이는 아무도 하지 않을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함.
  • 러시아 소련의 사례는 이 글의 해결책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음을 보여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