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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 앳킨슨은 1978년 4월 27일 직원 30명 규모의 Apple Computer에 합류했고, 이 선택을 훗날 자신의 삶을 바꾼 전환점으로 회고함
  • Jef Raskin의 초대와 Steve Jobs의 설득은 그가 워싱턴대 신경과학 박사과정을 떠나 Silicon Valley로 옮기는 계기가 됨
  • Apple II용 UCSD Pascal 포팅은 이후 Lisa 개발을 부트스트랩하는 기반이 되었고, 앳킨슨은 재사용 가능한 소프트웨어 모듈의 필요성을 밀어붙임
  • Lisa와 Macintosh에서는 마우스 기본 포함, 흰 배경, QuickDraw, Window/Event/Menu Manager, 풀다운 메뉴, MacPaint 등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핵심 요소를 만드는 데 기여함
  • HyperCard까지 설계한 뒤 12년간 Apple에서 일했고, 1990년 General Magic 공동창업을 위해 떠나며 개인용 커뮤니케이터 개발에 참여함

박사과정에서 Apple로 향한 계기

  • 빌 앳킨슨은 1978년 4월 27일 Apple Computer에 합류했고, 40년 뒤 그 선택을 자신의 삶에서 큰 전환점으로 돌아봄
  • 당시 그는 University of Washington Regional Primate Research Center에서 Doug Bowden과 함께 신경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음
  • UC San Diego 학부 시절 교수이자 친구였던 Jef Raskin은 Apple Computer라는 흥미로운 신생 기업에 합류해 보라고 권유함
  • 앳킨슨이 뇌와 의식 연구에는 박사 학위가 필요하다며 거절하자, Raskin은 “그냥 주말 동안 방문만 하라, 아무 조건 없다”는 메모와 왕복 항공권을 보냄
  • 근처 Los Gatos에 아버지가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앳킨슨은 Apple 방문을 받아들임

Steve Jobs의 설득과 입사 결정

  • Steve Jobs는 앳킨슨을 하루 종일 설득하며 Apple Computer의 직원 30명 모두에게 소개함
  • 직원들은 지적이고 열정적이며 즐거워 보였지만, 그것만으로 앳킨슨이 대학원 과정을 떠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음
  • 하루가 끝날 무렵 Jobs는 새 기술이 대중에게 공개될 때 이미 발명된 지 2년이 지난 경우가 많다며, 세상을 바꾸려면 그 지연 시간보다 앞서 있어야 한다고 말함
  • Apple에 오면 미래를 발명하고 수백만 명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설득이 이어짐
  • “파도의 앞부분을 서핑하는 즐거움”과 “같은 파도의 꼬리에서 개헤엄치는 재미없음”을 대비한 이미지가 앳킨슨의 마음을 움직임
  • 앳킨슨은 2주 안에 대학원을 그만두고 Silicon Valley로 이주해 Apple Computer에서 일하기 시작함
  • 그는 신경과학 학위를 끝내지 못했고, 아버지는 10년간의 대학 교육을 낭비했다며 화를 냈지만, 앳킨슨은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느낌

Jobs와의 협업, UCSD Pascal, Lisa의 기반

  • 앳킨슨과 Steve Jobs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Castle Rock State Park에서 긴 산책을 하며 삶과 디자인을 이야기함
  • Jobs는 때때로 “미친 아이디어가 있다”로 대화를 시작했고, 아이디어는 오가며 진지한 논의나 실행 가능한 설계로 발전함
  • 앳킨슨은 Apple II에 UCSD Pascal 시스템을 포팅하고 싶어 했음
    • 재사용 가능한 모듈 라이브러리로 소프트웨어를 누적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봄
    • Apple BASIC에는 지역 변수조차 없었음
  • 매니저가 반대하자 앳킨슨은 Jobs에게 직접 요청함
  • Jobs는 Apple 사용자들이 BASIC과 6502 어셈블리 언어로 충분하다고 봤지만, 앳킨슨의 강한 주장을 듣고 2주 안에 틀렸음을 증명해 보라고 함
  • 앳킨슨은 몇 시간 안에 San Diego행 비행기를 타고 2주간 작업한 뒤 동작하는 UCSD Pascal System을 가져왔고, Apple은 이를 Lisa 개발 부트스트랩에 사용함

Lisa와 Macintosh 그래픽 인터페이스에 남긴 코드

  • UCSD Pascal 시스템 출시 후 Jobs는 앳킨슨에게 Apple의 새 Lisa 프로젝트에서 일하라고 요청함
  • Apple II에는 선택형 게임 패들 노브가 있었지만 모든 사용자가 갖고 있지는 않아, 소프트웨어 작성자가 이를 전제로 설계할 수 없었음
  • 앳킨슨은 Lisa 프로젝트 매니저 Tom Whitney를 설득해 마우스를 기본 구성품으로 포함하게 함
    • 그래야 포인팅 장치를 전제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었음
    • 그렇지 않으면 그래픽 편집기를 커서 키만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설계해야 했음
  • Apple II는 검은 배경에 흰 텍스트를 표시했지만, 앳킨슨은 그래픽을 제대로 다루려면 종이처럼 흰 배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함
    • 텍스트는 출력 시 반전해도 괜찮지만, 사진을 네거티브로 출력하는 방식은 맞지 않았음
    • Lisa 하드웨어 팀은 흰 화면이 너무 깜박이고, 스크롤 시 번짐을 막으려면 더 빠른 리프레시와 더 비싼 RAM이 필요하다고 반대함
    • Jobs는 장단점을 들은 뒤 그래픽을 위해 흰 배경을 지지함
  • Lisa와 Macintosh는 전체 비트맵 디스플레이로 설계되어 그릴 수 있는 내용의 유연성이 컸지만, 문자·선·이미지·영역을 그릴 때 많은 픽셀을 설정하고 지워야 하는 비용이 있었음
  • 앳킨슨은 Lisa와 Macintosh 애플리케이션이 픽셀을 쓰기 위해 호출하는 최적화된 어셈블리 그래픽 프리미티브 QuickDraw를 작성함
    • QuickDraw 성능은 비트맵 디스플레이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실용적으로 만듦
    • 관련 이야기: I Still Remember Regions
  • 겹치는 창과 그래픽 클리핑을 처리하기 위해 원래의 Lisa Window Manager를 작성함
  • Lisa Event Manager와 Menu Manager도 작성했고, 풀다운 메뉴를 발명함
  • Andy Hertzfeld는 이를 Mac에 맞게 조정했고, QuickDraw와 함께 앳킨슨의 코드는 원래 Macintosh ROM의 거의 3분의 2를 차지함
  • 앳킨슨은 모든 Mac에 포함된 비트맵 페인팅 프로그램 MacPaint를 만드는 일을 즐겼음
    • 초기 버전을 Susan Kare가 사용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배움
    • MacPaint는 그래픽 디스플레이와 마우스를 갖춘 컴퓨터가 얼마나 재미있고 창의적일 수 있는지 보여줌
    • 관련 이야기: MacPaint Evolution

HyperCard와 Apple 이후

  • 1985년 LSD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앳킨슨은 HyperCard 저작 시스템을 설계함
  • HyperCard는 비프로그래머가 자신만의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만들 수 있게 했음
  • 그래픽, 텍스트, 버튼, 링크를 담은 카드 스택 은유를 사용했고, 링크는 다른 카드로 이동할 수 있게 함
  • Dan Winkler가 구현한 HyperTalk 스크립팅 언어는 이벤트 기반 프로그래밍에 대한 부드러운 입문 역할을 함
  • Steve Jobs는 앳킨슨이 Apple을 떠나 NeXT에 합류하길 원했지만, 앳킨슨은 HyperCard를 완성하기 위해 Apple에 남음
  • Apple은 1987년 HyperCard를 출시했고, 이는 첫 웹브라우저 Mosaic보다 6년 앞선 시점이었음
  • 앳킨슨은 Apple에서 12년 동안 창의적인 사람들을 지원하는 도구를 만들었고, Apple이 30명에서 15,000명 규모로 성장하는 과정에 함께함
  • 1990년 John Sculley의 축복을 받고 Marc Porat, Andy Hertzfeld와 함께 Apple을 떠나 General Magic을 공동창업하고 개인용 커뮤니케이터 발명에 참여함
  • 앳킨슨은 여전히 의식 연구를 따라가고 있지만, Apple에서 이룬 기여에 충분히 만족하며 Jef Raskin과 Steve Jobs가 자신을 믿고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함

댓글과 토론

Hacker News 의견들
  • Apple에서 Marc Porat, Andy Hertzfeld와 함께 나와 General Magic을 공동 창업하고 개인용 커뮤니케이터를 만들었다는 대목을 보면, 이런 거대 혁신 기업의 출발점에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강력한 인맥으로 서로 연결돼 있는지 늘 놀랍다
    Porat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서 찾아보니 Marc Porat이 Morgan Stanley 전 CFO이자 Google의 현 CIO 겸 사장인 Ruth Porat의 오빠였음
    이런 리더들이 정상에 오르는 건 정말 재능 때문인지, 아니면 엄청난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의 연결 때문인지 궁금해짐. 아마 둘 다일 수도 있음
    재능 있게 멋진 걸 만들고 있어도 필요한 자금은 전혀 못 받는 느낌이라, 이런 사람들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듦

    • 혼자서 슈퍼스타여도 주변에 다른 슈퍼스타가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고, 이들이 성공한 건 서로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함
      생존자 편향 때문에 실패한 사람들은 알려지지 않거나 언급되지 않음
      이런 성공 기업과 명문 대학의 역할은 큰 잠재력이나 돈을 가진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고 증폭시키는 데 있음
      20세기 천재들이 한자리에 모인 유명한 사진들도 우연이 아니라, 서로가 만든 발판 위에 다음 발판을 쌓으며 같은 사다리를 함께 올라간 결과에 가까움
    • General Magic 영화/다큐멘터리(2018)는 훌륭한데 과소평가되어 있음
      세 번쯤 봤는데 볼 때마다 눈물이 났고, 진짜 구식 스타트업 이야기라는 느낌임. 사운드트랙도 아름다움
    • 제품을 설계하고 만들 수 있을 만큼 재능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본 접근성, 다른 인재에 대한 접근성, 또는 시장/사용자 접근성이 핵심 경쟁우위가 됨
    • 이건 매우 캘리포니아 중심의 현상임
      큰 기술 생태계는 사실상 MIT와 매사추세츠 주변, 그리고 Caltech/Stanford와 인근 지역의 두 축이었고, 다른 지역은 주로 정부·군사·항공우주 파생 산업에 가까웠음
      매사추세츠 쪽은 여러 이유로 90년대에 힘이 빠졌고, 죽은 건 아니지만 지배적이지 않게 되면서 무게중심이 서부 해안으로 옮겨감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공부했다면, Montana나 Dublin에서 태어난 사람보다 성공담에 올라탈 확률이 높았음
      이걸 미국 자본주의의 효율성이라고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기회가 물리적·문화적으로 심하게 제한되는 비효율에 가깝다
      다른 곳에 재능 있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가 극도로 지역화되어 있고 문화가 매우 표준화돼 있어서 다양한 아이디어와 재능이 산업적 규모로 낭비됨
    • 성공을 이끄는 건 순전히
      _Thinking, Fast and Slow_가 이 점을 꽤 설득력 있게 보여줌. 진짜 천재는 드물고, 그런 사람조차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님
  • 정말 멋진 글임
    예전에는 무엇이든 가능해 보이고 열려 있어서 신났던 옛 시절이 그리워짐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았어도, 모든 게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음
    지금은 모든 게 광고가 지배하는 닫힌 상자에 갇힌 듯하고, 로그인해서 제한된 작은 공간 안에서 살아야 하는 느낌임
    인터넷은 아직 있고 광고로 뒤덮이지 않은 사이트도 만들 수 있지만, 그런 인터넷만 골라서 돌아다닐 수 있으면 좋겠음

    • 이 이야기 속 사람들과 비슷한 나이인데, 정반대로 느낌
      중고등학생 때는 2000년대를 그리워하면서 스마트폰과 인터넷 덕분에 업계가 활짝 열려 있고 뭐든 가능했지만, 이제는 다 끝났고 거대 기업들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했음
      그런데 생성형 AI 붐이 생각을 완전히 바꿔놨고, 지금은 의지 있는 소수만으로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가능해져서 지금까지의 엔지니어 세대 중 우리가 가장 운이 좋다고 느낌
    • 80년대 초 8비트 시대에 성장했고, 90년대와 2000년대 초 인터넷 물결을 탔으며, 모바일 물결은 어느 정도 놓쳤지만 그 시기에 나중에 AI에 유용해질 아이디어들을 발전시켰고, 지금은 AI 물결을 즐기고 있음
      내가 자란 시기와 살아온 시기에 만족하지만, 삶의 각 시대마다 고유한 기회와 흥분, 정말 흥미로운 기술 문제가 있었음
      무엇보다 함께 일할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 컸음
    • https://kagi.com/smallweb
    • “그런 인터넷만 돌아다니고 싶다”는 말이 딱 답을 줬음
      90s.dev를 어디에 써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거임
  • HyperCard 같은 것의 비전을 보면 늘 감탄하게 됨
    비전문가에게 왕국의 열쇠를 쥐여주는 게 핵심이었음
    그런데 오늘날의 기술 환경을 보면 담장 친 정원과 앱 스토어 때문에 오히려 뒤로 간 느낌을 지울 수 없음

    • 아마 LSD를 더 해야 하나 봄
    • 이 맥락에서 더 나쁜 건, 이런 흐름을 만드는 데 Apple이 두드러진 주역이었다는 점임
    • 맞음, HyperCard나 MacPaint 같은 것들임
      MacPaint는 사실 QuickDraw 데모에 가까웠지만, 둘 중 하나만 만들었어도 천재로 평가받았을 것임
    • 컴퓨팅을 그것이 태어난 자본주의적·소비주의적 요람에서 떼어내기는 정말 어려움
      시, 연극, 글쓰기, 음악, 회화 같은 다른 인간의 창작 관행과 매체는 다양한 문화·사회·경제 맥락 속에 존재해 왔음
      하지만 컴퓨팅은 계산 부품을 생산하는 엄청나게 비싸고 복잡한 공장과 공급망, 그리고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기업이나 산업화가 낳은 소비자층에 판매하는 회사들 바깥에 존재한 적이 거의 없음
      그런 의미에서 컴퓨팅의 관성은 늘 컴퓨터를 만드는 기업이 그 컴퓨터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결정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Apple이 가장 강한 예임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 같은 몇몇 예외가 있었던 건 행운이고, 그것들이 업계에 미친 영향이 컸다는 사실은 그 안에 얼마나 큰 가치가 있었는지 보여줌
      하지만 냉혹한 현실은 칩 공장을 통제하면 칩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통제한다는 점임
      이에 맞서는 운동이 절실하고, 그중 하나로 과거의 싸고 풍부하며 덜 잠긴 칩에서 돌아가는 가벼운 가상 머신용 소프트웨어를 쓰자는 uxn 접근법을 좋아함
  • Apple에 12년밖에 없었다는 게 의외임. 분명 엄청난 여정이었을 것 같음
    1995년에 “Valley”로 이사했을 때 고른 아파트가 Mary Ave.의 General Magic 바로 옆이었음
    Apple의 스핀오프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곳에 어떤 거물들이 있었는지는 몰랐음
    그저 모자 속 토끼 로고가 귀여웠고, 늦게 귀가해 아파트로 들어갈 때 불이 켜져 있던 기억이 남아 있음

  • 요즘 “라이트 모드”라는 원죄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했는데, 아마 이 사람이었던 듯함
    Apple II는 검은 배경에 흰 글자를 표시했지만, 그래픽을 제대로 하려면 종이처럼 흰 배경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대목이 있음
    텍스트는 인쇄할 때 반전해도 괜찮지만 사진을 네거티브로 인쇄할 수는 없고, Lisa 하드웨어 팀은 화면 깜빡임과 스크롤 번짐을 막으려면 더 비싼 RAM과 빠른 갱신이 필요하다고 불평했지만, Steve는 장단점을 듣고 그래픽을 위해 흰 배경 쪽을 택했음

    • 읽기 쉬운 게 “죄”라니
    • 진짜 원죄는 둘 다 있게 만든 것임
  • 지난 15년 동안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더 이상 소프트웨어 개발자답게 일하지 못하게 됐다는 생각이 계속 듦
    스프린트 계획, JIRA, 프로젝트 관리자, 끊임없는 회의, “이해관계자”, 진척 추적을 진척 자체와 혼동하는 고위 엔지니어링 리더들 사이에서 도대체 언제 놀라운 일을 하라는 건지 모르겠음
    이런 걸 또 비판하는 게 낡은 얘기라는 건 알지만, 실제 문제임
    2010년 직전까지 작은 팀으로 얼마나 생산적이었는지 돌아보면, 지금과 비교해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이 빌어먹을 부가 업무 부담

  • 1985년 의식을 확장시키는 LSD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비프로그래머도 자기만의 상호작용 매체를 만들 수 있는 HyperCard 저작 시스템을 설계했다는 대목이 흥미로움
    Beatles와 그들의 LSD 경험에 관한 YouTube를 보다가, 더 최근에는 Robert Crumb의 역사도 봤음
    Crumb은 큰 산성 경험 이후 자신의 만화 캐릭터 상당수를 거의 만들어낸 셈이었음
    어딘가에서 LSD가 정신을 영구적으로 바꾼다는 말을 들었고, Beatles 음악이나 Crumb의 예술 같은 천재성이 LSD 같은 의식 변형 물질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건지 궁금해짐
    물론 LSD가 “발명”되기 전의 Edvard Munch, T.S. Eliot, William Blake 같은 예술가들도 생각해야 함
    대학 때 한 번 해봤고, 그걸로 충분했음

    • 전통적인 환각성 물질 사용 관행은 모두 준비, 올바른 마음가짐, 적절한 자극과 환경, 그리고 변형되지 않은 상태의 보호자가 근처에 있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함
      LSD가 뇌를 영구적으로 바꾼다고 알려져 있지는 않고, 그런 효과를 원하면 psilocybin 쪽임
    • 생존자 편향일 수 있음
      뛰어난 사람 중 담배를 피운 사람도 많았지만, 담배를 더 피운다고 천재가 더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지는 않음
    • 아주 오래된 관행일 가능성이 큼
      문화와 영성, 예술 속 약물 사용의 역사, Soma 같은 것을 보면 됨
  • 전설임
    처음 Mac을 만지고 고등학교에서 컴퓨팅의 즐거움을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음
    며칠씩 컴퓨터 속에 빠져 지낼 수 있었음

    • 나도 그런 느낌이 있었음
      어떻게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까?
      분명 방법이 있을 것임
    • 아마 실제로는 MacPaint였던 것 같음
  • 1985년 LSD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HyperCard를 만들었다는 대목을 보니, “좋은” 여행과 그렇지 않은 여행을 어떻게 구분하고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함

  • 이 이야기는 왜 신경과학 박사과정 학생이 코드 작성자로 채용됐는지에 대한 세부사항을 건너뜀
    이 [1] 링크에는 그와 Hertzfeld의 인터뷰가 있고, 두 사람의 배경에 관한 정보가 있음
    [1] https://archive.computerhistory.org/resources/access/text/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