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P by GN⁺ 5일전 | ★ favorite | 댓글 1개
  • 미국에서 남성 고립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오프라인 소셜 클럽이 런칭됨
  • 해당 클럽은 Boston, NYC, SF 등에서 활동을 시작함
  • 현대 사회에서 많은 남성들이 심리적 외로움과 사회적 연결 부족을 경험함
  • 이 클럽은 소셜 네트워크와는 구별되는 실질적 만남을 지향함
  • 친목 도모와 건강한 사회적 유대감 형성을 목적으로 다양한 오프라인 모임을 제공함

소개

  • wave3.social은 미국 여러 대도시에서 시작된 새로운 남성 대상 오프라인 소셜 클럽 서비스임
  • 이 클럽은 Boston, New York City, San Francisco에서 첫 런칭됨
  • 현대 사회에서 남성 고립과 외로움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함
  • 기존의 온라인 중심 소셜 미디어와 달리 실질적 만남과 교류의 장을 제공함

목적 및 특징

  • wave3.social의 주요 목표는 남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외로움과 사회적 단절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소속감을 제공함
  • 회원들이 실제로 만나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는 정기적인 오프라인 모임을 중심으로 구성됨
  • 각 도시에서 다양한 활동 및 친목 프로그램을 통해 건강한 사회적 연대감 형성을 도모함
  • 온라인 커뮤니티와는 달리 실제 인간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차별성이 있음

기대 효과

  • 남성들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사람과 연결될 기회를 제공함
  •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남성 고립 문제에 긍정적 해법 가능성을 제시함
  • 다양한 도시에서 서비스가 확대되면 지역사회 내 남성 네트워크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음
Hacker News 의견
  • 이 아이디어는 자주 등장하는데, 그만큼 요즘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임. 흥미로운 점은 해결책이 항상 특정 장소에 묶이지 않고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임. 즉, 특정 카페나 레스토랑, 축구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여러 장소에 모이도록 돕는 앱이나 서비스가 중심이 된다는 점임. 과거에는 생생한 사회적 교류가 있었던 장소들이 항상 ‘특정 장소’였음을 언급하고 싶음. 동네 주민들이 언제든 들를 수 있는 카페, 퇴근 후 일주일에 두 번씩 모두가 들르는 바 같은 고정된 물리적 공간에서는 사전 계획, 앱, 일정 등이 필요하지 않음

    •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방식이 더 많이 회자되는 경향임. 그만큼 넓은 범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인 듯함. 예를 들어 Men’s Sheds 같은 경우, 영국에 천여 개의 거점이 있음. Men’s Sheds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거나 수리하고 지역사회를 돕는 공간으로, 복지 향상, 외로움 감소 및 사회적 고립 해소라는 목표가 있음. 2023년 조사 결과 구성원의 96%가 외로움이 줄었다고 답함. (menssheds.org.uk) 하지만 이런 공간에서도 변화가 생기는 경우가 있음. 예전엔 남성만 받았던 곳에 여성이 합류하면서, 지금은 남녀 반반이 됐고 모두가 좋아함. 남성들만을 위한 조용한 공간(모형 기차 전시)도 남아있긴 하지만, 남자 멤버들은 그곳에서 때때로 쉬면서 이야기를 나눔 (BBC 기사)

    • 과거에 ‘아무 때나 들를 수 있는 동네 카페’나 ‘퇴근 후에 늘 가는 바’처럼 고정되어 있던 장소들이 소멸한 원인에 대해 다양한 이론을 접함. 1) 소셜 미디어가 실제 만남보다 더 흥미로워졌고, 2) 문화적·인종적 다양성이 커지면서 사회적 신뢰가 낮아지고 결국 공공장소에서 멀어짐(Robert Putnam 참조), 3) 독립 바·카페들이 프랜차이즈에 흡수되면서 회전율 중심 운영에 치우침, 4) 시민권 운동 이후로 미국이 이상한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 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공장소에 가길 기피, 5) 임금이 인플레이션을 못 따라가면서 이런 공간에 쓸 수 있는 여유 자금이 줄어듦, 6) 과거 바나 카페의 운영 주체였던 친목 단체나 참전 용사 클럽 등이 쇠퇴함

    • 내가 보기에는 이른바 ‘소셜’ 앱의 근간에는 사용자들이 실제 사람과의 만남을 회피하려는 욕구가 깔려있는 느낌임. 삭막하고 안전하며 거리감 있는 인간관계를 원하는 것 같음. 물론 누구나 실제 접촉을 갈망하긴 하지만, 과거에는 사회·공공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시기도 있었음. 그러나 요즘에는 이런 걸 우회하는 앱이 대세가 된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동시에 다른 이들과 가까이에서 어울리지 않으려는 욕망도 분명히 가지고 있음. 진짜 관계를 원한다면 실제로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서 두려움을 내려놓고 스스로 인사해보라는 조언을 하고 싶음

    • 이건 그저 기술의 변화라는 생각임. “몇십 년 또는 한 세기 전”에는 장소 중심 사회 모임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여러 선택지가 존재함. 물론 카페나 펍을 직접 골라서 친구랑 만나기 시작하고, 조금씩 그곳 단골들과도 대화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가능함. 처음엔 과하게 머무르지 않고, 서로 관심사를 파악하거나 부탁하거나 농담을 주고받으며, 친근한 경쟁이나 토론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런 게 다 사회적 유대 형성의 일상임. 장소 기반 모임은 필터가 약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게 강점이자 약점임. 반면,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모임은 특정 활동이나 관심사에 집중해서, 이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이라 서로 좀 더 쉽게 연결됨. 이런 방식에도 약점은 있지만 특별히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함

    • 장소 기반 커뮤니티에는 대체불가의 매력이 있다는 감각임

  • 진정한 우정이 부족한 현상이 세 가지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봄. 1. 가짜가 아닌 진짜 모습을 드러내면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에게 찍혀 인터넷에 남고, 누군가는 그걸 빌미로 자신의 도덕성을 과시하고 명성을 쌓으려 들기 때문에 애초에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없게 됨. 2. 모두가 모바일하고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다 보니 굳이 주변 사람과 대화를 시도할 필요가 없고, 결국 사회적 기술이 퇴화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익히지 못하게 됨. 최소한의 예의만 가지고 있지, 쉽게 말문을 트거나 친분을 쌓는 법은 모름. 3.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함께 자라지도 않고, 교회나 로터리 클럽, 남성 전용 공간에도 가지 않음. 모두 쿨하고 자유로운 척만 하며, 진한 유대감이나 명확한 신념을 가지면 종교적이라고 손가락질받게 됨. 표면적으로는 다들 괜찮은 척 미소만 짓지만, 속으로는 진심어린 관계를 맺지 못함. 남성 호르몬 감소, 학교가 여성 위주로 운영, 항상 남녀 혼성 공간, 세대단절 등도 추가 요인임

    • “진짜 모습을 드러내면 인터넷에 남는다”는 점이 정말 많은 남성에게 걱정거린지 궁금함. 난 한 번도 그런 걱정을 하거나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음. “주변 사람과 말문을 터야 할 필요 없다”는 지적도 동의하지 않음—직장에서도 늘 얘기하고, 별난 사교 모임(예로 역사 펜싱 동호회)에서도 엄청 수다스럽게 지냄. 최근에는 야생동물 재활 자원봉사도 시작해서 말할 기회가 많음. “진정한 유대나 신념을 내비치면 종교적으로 보인다"는 주장도 과장이라 생각함—난 종교가 있든 없든 강한 신념을 openly 갖고 사는 사람(예: 채식주의자 친구들)들을 많이 알고 있음. 결국 남성 경험은 정말 다 다르고, 글쓴이 주위엔 유난히 판단적이고 비사교적인 사람이 많았던 게 아닌가 싶은 감상임. 많은 남자들이 공감할 수도 있겠지만, 내 경험은 정반대였음을 전하고 싶음. 소속된 집단에 따라 이것이 갈리는 점이 크다 생각함

    • 내 경험상 위에서 언급된 이유들이 진짜 깊은 우정을 가로막지 않음. 1) 난 그런 걱정 한 적 없음. 2) 낯선 사람과 직접 대화도 잘하지만, 크게 외로움을 덜거나 깊은 우정을 키우는 데엔 한계가 있음. 3) 무신론자임에도 종교성으로 타인을 판단하거나 불안함을 느낀 적 없음. 내 삶을 분석해보면 핵심은 우정엔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임. 난 부모로서 직장인이고, 자동차 중심 도시에서 바쁘게 지냄. 겨우 일주일에 한 번 외출하거나 모임에 참석하는 정도라, 얼마나 많은 우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자연스럽게 한계가 있듯함. 뭐 하나를 다 누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봄. 운동, 건강한 식사, 친구, 가족, 커뮤니티, 일, 각종 커뮤니티… 이 모든 건 시간이라는 자원을 소비함. 요즘 아빠들은 과거보다 자녀와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통계도 있듯, 내 또래(밀레니얼 아빠)는 친구들과 시간을 아이와 바꾸고 있다고 생각함

    • 진짜 친구라면 진짜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함. 내가 주로 어울리는 씬에서는 동의 없이 사진 찍는 걸 극도로 싫어함. 내가 주로 가는 행사에서는 카메라 전부에 스티커를 붙임. 난 그런 문화가 좋음—사람을 만나러 간 거지 인스타그램하려고 간 게 아니기 때문임. 물론 몰래 구석에서 조용히 찍는 경우도 있지만, 실수로 남이 찍히는 경우가 없도록 김새지 않게 함. 다들 더 안전하고 진정하게 느끼기 때문에 스티커는 일종의 리마인더 역할임. 2) 어색함은 아이스브레이킹 게임 몇 번이면 충분히 해소된다고 봄. 3) 소도시에서는 친밀감이 훨씬 깊지만, 동시에 남의 시선이 엄청나게 부담됨. 그건 못 견디겠음. 작은 도시도 마찬가지라 결국 다 아는 사이라 뒷담도 심함. 대도시가 좋은 점은 새로운 사람들과 장소를 만날 수 있고, 다양함을 누릴 수 있다는 점임. 소도시는 종종 종교 등으로 동질성과 순응 압력이 심해 다름을 인정받기 힘들고, 결국 위선적으로 행동함. 그런 게 진정한 유대가 아니라고 생각함. 대도시에선 진짜 내 모습을 드러낼 수 있고, 동질적인 사람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커뮤니티도 찾을 수 있음. 남성 전용 공간은 별로임—남끼리 얘기하는 걸 터부시하는 분위기라 정서적으로 깊이 교류하기 어려움. 남자들끼리 있는 모임은 맥주 마시고 허세 부리고 TV 보거나 재미없는 스포츠·유치한 농담만 있음. 전혀 재미없고 피곤함. 이제는 그런 모임엔 빠짐. 여성 친구들과 훨씬 깊은 관계를 맺고 있고, 개방적이고 판단이 적어서 더 안전하게 느껴짐. 혼성 모임이 나에겐 필수임

    • 이런 식의 관점은 지나치게 비관적임. 나 역시 부모가 이민자로 지역사회도 없고, 교외에서 소외된 어린 시절과 ‘온라인에만 빠진 20대’를 겪음. 그 영향이 컸지만,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방식에 적응하려고 노력함. 30대엔 깊은 친구관계들을 구축함. 나이·성별·배경 다양함. 에너지가 한정적이라 얕은 관계도 많지만, 종종 깊은 대화를 나눌 때도 있음. 자기 생각의 틀을 바꿔보기를 권장함

    • 난 항상 ‘진짜’임. 내가 뭘 놓치고 있는지 궁금함

  • 가끔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젠틀맨스 클럽’(미국 성인클럽이 아님) 같은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임. 남성끼리 가서 책을 읽거나 대화·카드 놀이·식사·술 한잔을 할 수 있는 ‘제3의 공간’임. 서로 알고 있는, 일정 규칙이 존재하는 비교적 제한된 커뮤니티 공간이 문명화된 분위기를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이런 게 없어졌음

    • "서로 알고 규칙이 존재하는 제한적 공간"은 사실상 컨트리 클럽과 매우 유사함. 태생적으로 계급주의와 배타적 규칙이 내포됨

    • 모두에게 Lodge 49 시리즈를 추천함. 광고 포함 무료로 볼 수 있음. 관계·외로움·현대 소외감을 에서 조금은 신비주의와 연금술을 가미해 훌륭히 다룸. 마치 할아버지 세대가 다니던 친목단체가 개인주의, 임대료 상승, 밀려남 등으로 사라진 걸 조명함. 그렇다고 Soho House 같은 고급 사교클럽을 만들 필요는 없고, 책과 적당한 회비, 바와 가끔 공개이벤트만 있으면 충분한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 수 있음. 개발자, 철학·문학, 음악가 등 분야별로도 만들 수 있고, 손익분기점만 맞추면 큰 비용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운영 가능한 계산임

    • 이런 공간들이 미국에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회원 수가 크게 줄었음. 예시로 프리메이슨, Odd Fellows, Fraternal Order of Eagles, 엘크클럽, 무스클럽 등이 있음. 내가 사는 작은 마을에도 Eagles 클럽이 있는데, 1층엔 만찬장, 지하엔 회원 전용 바와 당구대, 강을 내려다보는 데크가 있음

    • 이 아이디어를 실제로 시작한 기업도 있음. 슐츠는 Starbucks를 집과 직장 사이의 제3의 공간으로 구상함으로써 커뮤니티와 연결을 촉진함 (출처)

    • 샌프란시스코의 Mechanics Institute Library도 훌륭한 사례임. 내가 회원이었음. 윙백 의자에 기대어 졸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라이브러리 자체도 훌륭함

  • 이런 노력들이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함. Men’s Sheds나 유사 모임이 모든 사람을 포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함. 미국(또는 다른 나라)의 백인 남성과 소년의 사회적 고립과 자원봉사 위축은 몇 년간 문제가 되어왔음. Robert Putnam의 Bowling Alone, Do Good Institute의 자원봉사 보고서, Scott Galloway 관련 최신 연구 등이 원인과 해결책을 다루고 있음. 20년 넘게 공공 정책을 연구한 입장에서 정부도 부분적 해법이 될 수 있지만, 지속적 재원과 평가에서 변덕이 심하고, 비영리 단체도 효과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드묾. 개인과 커뮤니티가 종종 스스로 일어서서 수요에 맞춰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방향임. 참여 정도나 파급력 증감도 괜찮음. 한 시도가 사라져도 금세 또 다른 시도나 대안이 나오게 마련임. 사회복지사로서 제대로 된 이론과 모범사례에 근거한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자금이나 권력을 쥐고 있는 입장이 아니니 그 결정권은 없다는 결론임

  • 내가 사람들과 가장 연결감을 크게 느꼈던 곳은 뉴욕임. 이웃도 알고, 네트워크도 컸지만, 뉴욕 자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음. 내가 진짜로 비판하고 싶은 건 주거 지역구조임. 이웃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은 늘 코너 숍이나 1층 샵, 동네 술집, 미용실, 피자집 등이었는데, 집에서 두세 블럭 이상 걸어야 하는 동네로 가면 그런 기회가 다 사라짐

    • 대도시 사람들이 비사교적이고 공동체 의식이 없다는 고정관념을 자주 듣지만, 내 경험은 정반대임. 수백 명 살던 시골에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 알지만, 그 인맥도 오래된 것일 뿐 진정한 유대감은 약함. 오히려 모두 서로를 싫어하고, 자기네 그룹 내에서도 어쩔 수 없이 어울리는 관계가 대부분이었음. 직접 옆집 이웃과 별로 어울리지 않음. 반대로 대도시에 와서는 가게 주인이 내가 좋아할 만한 상품을 예약해주거나, 이웃들이 인사하고, 가게에서 다른 단골이 환영 선물도 주고, 동네 사람들이 나를 매우 자연스럽게 환영해줬음. 도시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좋았음. 물론 “우리 시골은 네 시골이랑 다르다!”는 주장도 이해하지만, 내가 보기엔 도시도 시골만큼 충분히 환영적임. 방에만 처박혀 인상만 쓰는 생활만 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잠재적 친구가 넘쳐남. 전 세계 도시에서 사람들이 밖에서 대화하고 웃으며 어울리는 모습을 자주 봄
  • 볼더링(실내 클라이밍)은 내가 접해본 스포츠 중 가장 사교성이 높다고 느낌. 혼자 가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이어폰만 안 끼면 다들 기꺼이 대화함. 볼더링장은 자유롭게 움직이고, 튜터나 선생 같은 위계 없이 각자 다른 난이도 코스를 시도함. 자신이 못 하는 코스를 상대가 하면 팁을 물어볼 수 있고, 반대로 내가 할 수 있는 걸 못 하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기도 하고, 누군가 어려운 걸 성공할 때 함께 응원도 해줌. 대화할 거리가 넘쳐나고, 혼자 가서 약간의 허심탄회함을 보이면 모두가 호감을 느낌

    • 피클볼도 굉장히 좋은 선택임. 오픈플레이 피클볼은 볼더링보다 사교성이 더 뛰어남. 비용도 저렴하고, 요즘은 경기장이 여기저기 많음

    • 주로 자연에서 야외로 하나, 체육관 같은 실내에서 하나 궁금함

    • 서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자연스럽게 모인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함. 다만 누구나 자연스럽게 대화 나누는 분위기가 생기지는 않음. 내가 가는 유럽 지역(특히 스위스)에서는 사람들 대부분이 수줍음이 많고 남의 프라이버시를 매우 존중해서, 그냥 간단하게 인사만 해도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경우가 많음. 그리고 클라이밍할 때 이어폰은 정말 NO임. 커뮤니티 전체에서 안 좋게 보기도 하고, 안전 위험도 증가, 그리고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보이기 때문임. 식당에서 음식 먹으며 이어폰을 끼는 것과 마찬가지임

    • 난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음. 볼더링은 고소공포, 이전 부상 등 mobility 문제가 있으면 접근이 굉장히 어렵고, 신체·정신적으로 최상의 상태가 아니면 위험하고 힘들기만 함. 나도 주변의 분위기에 따라 억지로 해봤지만 재미를 느끼지 못했음. “서열이 없다”는 점도 완전히 맞지 않음. 남성 집단에서는 어떤 스포츠든 암묵적으로 경쟁심이 작동해서 능력에 따라 위계가 생김. 굳이 감추려 해도 모두가 인식함. 상대적으로 축구, 핸드볼, 배구, 테니스, 탁구, 무술 같은 팀 스포츠가 더 사교성이 뛰어남—실제로 파트너와 함께 협동하고, 더불어 겨루게 됨. “혼자 가면 친구를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해당 지역의 사회 분위기에 따라 다름. 내가 사는 독일어권에서는 정말 모르는 사람이 먼저 말을 걸지 않고, 주로 그룹 단위로 가서 단체끼리만 어울리고 싶어함. 혼자 가는 사람들도 대부분 방해받지 않고 싶어 하고, 헬스장처럼 볼더링장도 대화를 나누려고 가는 곳이 아님

    • 성인들을 위한 데이케어 놀이터 같은 느낌임. 물어뜯기 사고만 적었으면 좋겠다는 농담임

  • 남성들 대다수가 서로 진지하게 교류하기엔 너무 불안감이 심하다고 생각함. 지나치게 경쟁적이거나, 대화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상대방의 얘기를 듣기보다는 자기자랑이나 상대를 이기려드는 경우가 많음

    • 정말 공감함. 통계적으로 남성은 서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음. 반대로 여성이나 딸에 대해 더 신경 쓰는 경우가 많음. 이는 진화적 이유와도 연관 있음. ‘여성과 아이들’이라는 표현이 괜히 생긴 게 아님

    • 이런 남성들에게서 공통점이 단순히 성별 외에는 뭔지 궁금함. 나는 프로그래머, 과학자들과 어울릴 때 이런 경우를 겪어본 적 없음. 최근에는 예술가나 IT 전문가들과 교류하면서도 전혀 해당되지 않았음

    • 문제의 뿌리는 훨씬 더 깊으며, 해결 위한 접근도 그만큼 어려워야 한다고 봄. 작년에 'Seek You'라는 그래픽노블을 읽었는데 이 주제를 아주 깊이 다룸. 고장난 TV 스테레오 타입(고독한 영웅) 등도 핵심적인 원인 중 하나임

  • 조금 반론을 제기해보고 싶음. NYT 기사에서 논하는 핵심은 Gell-Mann 효과로 설명 가능함. 인류의 대다수 역사에서 원래도 여러 굵직한 관계를 유지하긴 어려웠고, 인터넷 이전엔 장거리 소통 자체가 어려웠음. 요즘도 관심사별로 친구를 찾을 수 있는 기회(컨퍼런스, 콘서트, 스포츠 바 등)가 많음. 이 논의가 모호한 개념에 의존하다 보니 사실상 데이터로 증명하기 힘든 도덕적 공포심이 유발된 것은 아닐까 생각함

  • 전체적으로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적합한 도시나 국가에 살고 있고 이미 비슷한 게 없다면, 랜딩페이지 사진만 보고 “20대 백인 남성만을 위한 곳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닫을 것 같음

    • 이 댓글이 역설적으로 이런 클럽이 불가능한 이유를 드러냄. 항상 누군가는 사진 속 인종·성별을 따짐. 실제로 잘 운영되는 남성 사교클럽들은 암묵적 규칙(예: “쩔쩔매지 않는 게이 남성은 괜찮지만 이상하게 굴진 마라”, “좌파 성향은 피한다” 등)이 존재하지만, 그런 암묵적 규칙은 요즘 더 이상 용납되지 않음. 그래서 남성 사교클럽은 결국 모두를 환영해주는 ‘보드게임형 클럽’이 되어 트렌드를 주도하는 최상위 남성들은 떠나게 됨
  • 어머니가 1976년쯤 “남자는 결혼하면 친구를 다 잃고, 아내 친구들만 갖게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예언 같다고 느낌. 물론 그 친구들의 남편들도 함께임

    • 대부분 남성은 학교, 직장, 교회, 동호회, 이웃 등 외부 환경이 친구를 붙잡아주지 않으면 우정을 유지하지 않는 편임. 고등학교 절친들도 대학 가면서 다 끊겼고, 대학 때 친구들도 졸업 후 딱히 이어진 경우가 없음. 직장 동료랑 매일 점심을 먹다가 그 사람이 은퇴하자 그게 마지막이었음. 아이가 같은 스포츠 팀을 뛰던 아빠들과 친하게 지내다가도,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그 관계도 소원해짐. 이런 우정을 유지하려면 상황이 도와주지 않으면 본인이 노력해야 함. 여성도 비슷하겠지만, 내 경험상 여성이 연락이나 모임에 더 적극적임

    • 내 경험으로는 결혼 자체가 우정을 단절시키진 않음. 우정을 잃는 진짜 원인은 아이를 가지지 않는 경우임. 결혼 유무보다 자녀 유무가 훨씬 더 중요한 경계선임

    • 내 경험상 어머니 말씀은 사실이 아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