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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 베르기나 왕릉 II의 황금 유골함에서 나온 미확인 물질이 알렉산더 대왕의 성스러운 튜닉 sarapis일 수 있다는 식별이 나옴
  • 물리·화학·현미경 분석상 이 물질은 보라색으로 염색된 면직물이며, 내부에 huntite가 주성분인 흰색 물질 1~2개 층을 끼운 구조였음
  • 왕릉 II의 연대 논쟁에서 면의 존재는 더 늦은 시기로 보는 downdating 근거로 쓰임
  • 물질의 특징은 고대 문헌 속 알렉산더의 성스러운 페르시아 mesoleucon sarapis 묘사와 맞는 것으로 해석됨
  • 왕릉 II 프리즈의 여섯 번째 사냥꾼과 페르시아 가젤도 알렉산더 관련성과 늦은 연대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됨

황금 유골함에서 나온 미확인 물질

  • 베르기나 왕릉 II의 황금 유골함에는 남성 피장자의 뼈와 금관이 있었고, 그 안에서 정체가 불분명한 물질이 발견됨
  • 분석 결과 이 물질은 보라색 면직물로 확인됨
    • 직물 사이에는 흰색 물질 1~2개 층이 끼어 있었음
    • 흰색 물질은 주로 huntite 광물로 구성돼 있었음
  • 면직물의 존재는 왕릉 II의 연대를 더 늦게 보는 근거로 중요하게 다뤄짐

알렉산더 대왕의 sarapis로 보는 근거

  • 물질의 물리적 특징은 고대 문헌에 나오는 성스러운 페르시아 mesoleucon sarapis와 정확히 맞는 것으로 해석됨
  • 이 sarapis는 파라오이자 왕인 알렉산더 대왕의 소유였고, 고대에서 가장 귀중한 물건으로 묘사됨
  • 왕릉 II 프리즈에는 여섯 번째 사냥꾼에게 이 sarapis가 묘사돼 있으며, 해당 인물은 알렉산더로 식별됨
  • 프리즈에 함께 묘사된 페르시아 가젤도 왕릉 II의 연대를 늦추는 근거로 쓰임
  • 이런 근거를 바탕으로 왕릉 II의 여러 유물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속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짐

댓글과 토론

Hacker News 의견들
  • 이 연구의 학술적 견고성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함
    몇 군데만 훑어봤는데 “남성 유골에 무릎 부상이 있으므로 Philip임이 결정적으로 증명된다”, “여성 유골이 18세였으므로 사료상 젊었다는 Cleopatra임이 증명된다” 같은 식의 문장이 보여 놀랐음
    이 정도면 “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그냥 무릎 부상이 있던 다른 사람과 18세쯤 된 다른 여성일 가능성은 없는지 의문임
    뒤쪽에는 저자의 작업을 비판한 다른 연구자들을 향한 거의 개인 공격처럼 보이는 문장도 있어 놀라웠고, 이게 제대로 된 연구인지 모르겠음

    • 길지만 답하자면, 전문 고고학자는 아니지만 박사후 과정에서 고고학 연구를 했고 관련 논문을 꽤 읽어 학계 맥락은 어느 정도 이해함
      짧은 글 안에 판단 근거가 되는 모든 자료를 제시하는 건 불가능하고, 책 한 권이어도 어렵다 보니 고고학 논문은 보통 같은 주제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소수 연구자들과의 진행 중인 논쟁 일부로 쓰임
      여기서 중요한 맥락은 이 무덤들이 Alexander 가문의 왕릉이라는 점이 이미 잘 확립되어 있고, 아버지와 아들을 포함한 몇 세대에 걸친 왕족 무덤으로 여겨진다는 것임
      따라서 저자의 주장은 수백만 명 중 한 명을 찾는 게 아니라, 10명도 안 되는 후보군 안에서 누구인지 가리는 성격에 가까움
      동시에 저자가 영어 원어민이 아니고 고고학 문체 특유의 표현도 작용함
      예컨대 “화가가 페르시아에서 페르시아가젤을 직접 봤음이 틀림없다. 너무 자연스럽게 그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Tomb II의 화가는 Eretria의 Philoxenus여야 한다”는 문장은 큰 비약처럼 들리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곧이어 Tomb I도 Nicomachus of Thebes가 급히 그렸을 것이라는 또 다른 가설을 제시한 뒤 “이 가설들은 무덤 연대와 일치한다”고 덧붙임
      즉 사실처럼 단정하는 영어 표현이 일상어에서의 확신을 뜻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 분야 대화에서는 모든 단정이 사실상 “아마도”라는 전제를 공유하는 축약 표현에 가까움
      다른 저자들에 대한 반응은 과하게 해석하는 것 같지만, 문화 충격은 이해됨. 고고학자들은 평가가 직설적인 편이고 여기에 그리스식 직설성이 더해진 듯함
      전반적으로 정당한 연구로 보이지만, 인용한 화가 식별 같은 몇몇 대목은 내가 썼다면 저렇게 단정적으로 쓰지 않았을 것임
      그래도 핵심 논거 대부분은 설득력이 있고, 몇몇 공격적인 단정이 연구 전체의 가치를 흐리는 게 아쉬움
      고고학은 코드도 물리학도 아니며, 반복 실험으로 검증하기 쉬운 보편 진리가 아니라 물리적 단서와 고대 사료를 엮어야 하는 고유한 역사적 진실을 다룸
      물의 화학식을 확정하는 수준의 확실성으로 이런 세부를 세울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쓸모없거나 순전한 창작이라는 뜻은 아님
    • 특히 질문에서 든 쟁점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널리 논의되어 왔음. 여기서 말하는 증거는 수학적 증명 같은 절대적 증명이 아니라, 여러 요소를 함께 묶어 세운 강한 단서에 가까움
      어느 쪽도 명확히 결론난 사안은 아니고, 한 가설이든 다른 가설이든 적극적 증거가 많지는 않지만 글의 표현은 대체로 근사치로 볼 수 있음
      연구 자체는 진지해 보이나, 첫인상으로는 Vergina를 둘러싼 지배적 가설들을 반박하진 못하는 듯함
      “Tomb II에 누가 있는가?”는 여전히 열린 질문임
      최근 연구는 매장자가 Philip II가 아니라 Philip III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냈지만, Philip II 쪽 증거도 아직 상당함
      Vergina 박물관의 인상적인 전시에서 제시하는 Philip II 가설은 잘 설명되어 있음
      Cleopatra 가설은 더 약하지만, 역시 매우 잘 설명되어 있음
    • 학자도 전문가도 아니지만, 이 시기 지배층 역사는 여러 사료에서 꽤 잘 기록되어 있음
      일부 방계 왕족, 예컨대 셋째나 넷째 아들처럼 작위와 영지만 조금 알려진 인물도 있지만, 특히 Philip II의 일곱 번째 아내 Cleopatra Eurydice처럼 충격적인 이야기를 가진 인물들은 기록이 포괄적이고 정확한 편으로 여겨짐
      논문의 출발점은 “Tomb III가 Alexander 대왕의 아들인 Alexander IV의 것이라는 데 만장일치가 있다. 이는 Great Tumulus가 주로 Argead 왕조의 왕들에게 속함을 보여주며, Tomb I과 II를 Philip II 또는 Arrhidaeus의 것으로 식별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는 대목으로 보임
      이 만장일치가 충분히 근거 있고 Tomb III가 Alexander IV의 것이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넘는다면, Tomb I과 II가 Philip II나 Arrhidaeus의 것일 가능성이 매우 커짐
      그다음 논문은 어느 무덤이 누구의 것인지 가리려는 것으로 보임
      사료를 보면 Philip에게 젊은 아내 Cleopatra Eurydice가 있었고, 그녀에게 살해된 어린 아들이 있었다는 자료가 여럿 있음. 그런 다음 남성 유골과 함께 젊은 여성, 영아 아들이 합장된 무덤을 발견한다면 Philip II와는 맞고 Arrhidaeus와는 맞지 않음
      다른 무덤의 유골은 Arrhidaeus와 더 잘 맞는 것으로 보임
      이는 과학적 의미의 증명도 아니고 반박 불가능한 결론도 아니지만, 그 젊은 여성과 영아가 Cleopatra Eurydice와 Caranus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인지 물어야 함
      알려진 역사 기록에 맞는 다른 인물이 있는지, 기록 밖 인물이라면 Alexander IV의 이웃 무덤이라는 특정 맥락에 묻혔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야 함
      물론 Alexander IV라는 전제 자체를 해체할 수도 있지만, 그 경우 꽤 무게 있는 집단적 판단과 증거에 맞서는 셈임
      지난 60년간 나온 논문들의 논리를 더 파고들어 주장을 보강하지만,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이나 유골 간 친족관계를 보여주는 DNA 분석 같은 더 나은 과학 자료가 없으면 “현재 아는 바로는 가장 그럴듯한 설명”에서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기 거의 불가능”으로 넘기기는 어려울 듯함
      https://en.wikipedia.org/wiki/Cleopatra_Eurydice
    • “2 더하기 2를 해서 Cleopatra가 나온다”는 게 바로 문제임. 역사는 이야기 위에 이야기를 쌓는 구조이고, 공인된 역사학자들은 기존 역사를 보강할 수 있음
      그 이야기들이 실제로 일어났을 법한 진실과 반드시 관련될 필요는 없음
      어떤 주장에 대한 원전을 찾으려 하면, 특히 고대사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고, 시도할 때마다 사실처럼 제시된 결론에 매우 불만족스럽고 동의하기 어려웠음
      내가 예전에 HN에서 조사했던 예시는 여기 있음: https://news.ycombinator.com/item?id=37927639
    • Cleopatra는 39세에 죽지 않았나? 그래서 댓글이 헷갈림
  • 기사에서 못 본 튜닉 잔해 사진은 여기 있음:
    https://img-s-msn-com.akamaized.net/tenant/amp/entityid/AA1t...
    “이 숭배받는 튜닉은 파편 상태이며 많은 조각이 6cm 미만이다. 사진은 1977년 Vergina에서 발견될 당시의 모습이다”
    출처: https://www.msn.com/en-ae/news/other/alexander-the-great-s-l...

    • 진지하게 묻자면, 이게 뭘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음. 너무 심하게 훼손돼서 알아볼 수 없는 건가?
    • 상자만 해도 꽤 흥미로운 물건임. 금으로 만든 것 같고, 모듈식 경첩도 보임. 3D 스캔을 했으면 좋겠음
  • 와, 이건 정말 큰 발견임
    고대 문헌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장소와 물건이 정말 많이 나오고, 예컨대 Herodotus는 나중에 실제로 발견된 장소와 사물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함
    물론 아직도 꽤 신뢰할 만한 장소와 물건 중 미발견인 예가 많음
    덧붙이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Herodotus의 역사를 비판하는 게 괜찮거나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매우 훌륭함
    그는 자신이 직접 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이지만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인지를 늘 밝힘
    자신의 추정과 방법도 항상 드러내며, 솔직히 가장 큰 문제는 책이 너무 길어서 실제로 끝까지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 같음
    Thucydides는 더 뛰어남
    Alexander를 직접 알던 사람들의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건 정말 아쉬운 일임
    그의 부상은 Thucydides 전체에서 이미 예고되는 듯한데, 그 책이 Alexander보다 훨씬 앞선 시기의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움

    • Alexander의 삶이 얼마나 짧았는지도 놀라움. 그래서 1차 기록이 드문 데에도 영향을 줬을 것 같음
      그는 16세에 군사 원정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20세에 왕이 되었으며, 32세에 죽었음
      Wikipedia에는 그에게 역사가가 한 명 이상 있었다고 나오는데, 그 기록들이 오늘날까지 남지 않은 건 아쉬움
      당시 기대수명이 지금 같지 않았다 해도 그는 꽤 젊었고, 10년 동안 놀라운 정복과 확장을 해냈음
    • Bob Briar가 Herodotus를 고대의 관광객 겸 기자처럼 묘사하는 방식이 마음에 듦
    • Alexander를 직접 알던 사람의 기록이 거의 남지 않았다고 했는데, 우리 문명의 토대가 된 글을 남긴 사람을 잊은 건가?
      Aristotle의 저작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Alexander의 스승이 남긴 글은 아직 읽을 게 많음
  • “파라오이자 왕인 Alexander 대왕에게 속했던 성스러운 페르시아 mesoleucon sarapis”라는 표현에서, sacred는 종교적이거나 신적인 의미를 가짐
    Alexander 대왕이 매우 유명하긴 하지만, 후대에 그를 신적인 존재로 본 사람이 있었나?
    예컨대 Abraham Lincoln을 매우 존경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를 신성과 연결하지는 않음
    다른 댓글에서는 저자가 영어 원어민이 아닐 수 있다고 했으니 sacred가 정확한 의미로 쓰인 건 아닐 수도 있음
    영어 화자라도 부정확하게 쓰거나 과장 표현으로 쓸 수는 있지만, 출판된 연구라면 적합하지 않을 듯함
    그래도 약간의 과열과 미묘한 용어 변화가 한 인물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흥미로움
    더 정확히 말하면, 현대 역사가가 sarapis를 sacred라고 부르는 이유가 뭔가? 누구에게 성스러웠다는 건가?

    • Alexander는 생전에 꽤 유명하게도 자신에게 신성한 혈통이 있다고 주장했음
      이를 강조하기 위해 리비아 사막의 유명한 종교 유적지까지 일부러 먼 길을 갔음
      일부는 믿었을 것이고, 일부는 믿지 않았을 것임
      그가 모든 전투의 최전선에서 싸우고도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와, 저 사람은 불멸인가”라는 논쟁에서 여론이 기울 수 있었음. 이 점에서 비교할 만한 군사지도자는 Khalid bin Walid 정도뿐임
      그의 사망 소식이 그리스에 도달했을 때 사람들은 축하를 미뤘는데, 그가 정말로 “그저 인간”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았기 때문임
      참고로 Alexander는 여전히 그리스인이 아니라 마케도니아인으로 인식되었고, 실제로 그리스 중장보병 5만 명이 Rhodes의 Memnon을 따라 Alexander에 맞서 이란 편에서 끝까지 싸웠음
      그리스 사회가 그를 자기들 인물로 받아들인 건 훨씬 나중의 일임
      역사 기록을 보면 Alexander 자신도 그리스인이 되려는 열망에 싫증을 내고, 말년까지 이란 궁정과 체제의 많은 요소를 받아들였음
    • 고대 근동에서 통치자들이 자신을 이거나 신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음
      Alexander가 이집트를 정복했을 때 그는 파라오 역할을 받아들였고, Ra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음
      또한 자신을 Zeus의 아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음
      Abraham Lincoln은 신으로 여겨지지 않지만, 미국 정치 문화는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 정치 문화와 매우 다름
    • Lincoln을 신격화하진 않더라도 Washington은 확실히 그렇게 함:
      https://www.aoc.gov/explore-capitol-campus/art/apotheosis-wa...
    • https://en.wikipedia.org/wiki/Ptolemaic_cult_of_Alexander_th...
    • “특정 종교, 집단, 개인에게 큰 존경과 경외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이라는 의미도 있음. 예를 들어 “Mexican 문화에 성스러운 동물” 같은 용례임
  • 요약하면, 저자들은 증거를 바탕으로 Alexander 대왕의 성스러운 보라색 sarapis 또는 튜닉, 그리고 어쩌면 그의 다른 물건들을 찾았다고 주장함

    •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저자들은 이것이 Alexander의 무덤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Alexander의 유물과 함께 묻힌 사람, 즉 그의 형제의 무덤이라고 보는 것임
  • 이 주장은 꽤 논쟁적
    https://www.nytimes.com/2024/10/30/world/europe/alexander-th...

  • 다시 The Man Who Would Be King을 보고 싶어짐

  • 이런 그리스 관련 사안이 여기서 헤드라인이 될 줄은 전혀 예상 못 했음. 알고 보니 Alexander 대왕은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인물이었음
    다만 내가 읽은 바로는 이건 추측일 뿐이고, 그리 강한 추측도 아님

    • 그리스인이 Alexander 대왕을 지역 영웅 정도로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게 오히려 놀라움
      미국에서는 고대사를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Alexander 대왕을 기억함
      그는 모든 세계사 교육과정에 들어가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
      실력이든 운이든, 그는 생전에 유라시아 대부분을 다시 빚어 놓았음
    • 서구 세계 전체는 고대 그리스 문명을 통해 문화적 계보를 이어받았고, 대부분은 무의식적으로 고대 그리스 역사를 우리 역사로 여김
      지구 반대편의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New Zealand 사람들도 Alexander 대왕이 누구인지는 앎
    • 그냥 그런 인물이었다면 “the Great”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임. Caesar, Napoleon, Genghis, Attila 같은 반열에 있음
    • 미국 고등학교 세계사 수업에서 Alexander 대왕을 배웠음
      그의 생애 세부, 시대, 정확히 어디 출신이고 무엇을 했는지는 흐릿했지만, 그는 고대 그리스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꽤 큰 인물이었음
    • Hans Gruber가 “Die Hard”에서 그를 언급했으니, 나한텐 그걸로 충분함
  • 이 튜닉의 이미지가 어디엔가 있나? 이런 기사나 논문은 늘 독자가 보고 싶어 하는 핵심 사진 공유를 피하는 것 같음

    • 아마 HN 같은 곳에서 작은 디테일 하나를 집어내 주장을 무너뜨릴까 봐 두려운 듯함
      이미지를 넣을 수 있는 형식이라는 건 분명한데 굳이 공개하지 않는 다른 이유는 떠오르지 않음
  • 다른 사이트에서 이미지를 볼 수 있지만, 훈련되지 않은 내 눈에는 상자 안의 보라색 찢어진 종이 더미처럼 보일 뿐임
    https://www.ancient-origins.net/news-history-archaeology/s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