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욕망이 삶을 잠식하고 있다
(joanwestenberg.com)- 현대인은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과 허기 속에서 살아가며,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욕망을 반복함
- 글은 ‘두꺼운 욕망(thick desire)’과 ‘얇은 욕망(thin desire)’ 을 구분하며, 전자는 인간을 변화시키지만 후자는 단지 반복만 낳는다고 설명
- 소셜미디어·포르노·생산성 앱 등은 본래의 깊은 욕망에서 쾌락만 추출해 제공하며, 그 결과 피상적 만족과 중독성만 강화됨
- 이로 인해 공동체·장인정신·느린 배움 같은 두꺼운 욕망의 기반이 해체되고, 대신 즉각적 보상 구조가 일상에 침투함
- 글은 빵을 굽고, 손편지를 쓰고, 한 사람을 위한 코드를 짜는 행위처럼 확장 불가능한 경험을 통해 ‘두꺼운 삶’을 회복해야 함을 강조함
얇은 욕망과 두꺼운 욕망의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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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욕망(thin desire) 은 추구 과정에서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는 욕망으로, 충족 후에도 동일한 상태를 반복함
- 예시로 알림 확인 욕구가 제시됨
- 충족 후에도 사람은 전과 동일한 존재로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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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욕망(thick desire) 은 추구 과정에서 인간을 변화시키는 욕망으로, 새로운 능력과 시야를 확장함
- 예시로 미적분을 배우려는 욕망이 언급됨
- 학습을 통해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새로운 관심 영역이 생김
- 얇은 욕망은 자기 복제적 구조, 두꺼운 욕망은 변화적 구조를 가짐
기술 산업과 얇은 욕망의 확산
- 대부분의 소비자 기술 비즈니스 모델은 본래의 두꺼운 욕망에서 신경학적 보상 요소만 추출해 제공함
- 소셜미디어는 관계의 의무 없이 연결감을 제공
- 포르노그래피는 친밀감 없이 성적 만족을 제공
- 생산성 앱은 실제 성취 없이 성취감을 제공
- 얇은 욕망은 대규모 확산·수익화·중독성 강화가 용이함
-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감각적 자극의 식단만 소비하게 되며, 행복감은 오히려 감소함
- 조사 결과 불안·우울·고립감 증가가 보고됨
두꺼운 욕망의 비효율성과 해체
- 두꺼운 욕망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불편한 과정을 수반함
- 예: 장인 기술 습득, 느린 독서, 공동체 참여, 전통 이해
- 이러한 욕망은 의무·상호의존·지역성을 내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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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의 효율 논리는 이를 비효율로 간주하며, 관련 인프라가 점차 해체됨
- 공방 폐쇄, 종교 공동체 축소, 도제 제도 소멸, 마당 문화의 사라짐 등이 언급됨
- 반면 얇은 욕망의 인프라는 스마트폰 속에서 상시 접근 가능한 형태로 확산됨
두꺼운 삶을 회복하는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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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굽기: 효모와 반죽은 인간의 일정에 맞추지 않으며, 시간과 인내의 회복을 가능하게 함
- 4달러면 살 수 있는 빵을 직접 만드는 과정에서 주의력과 느림의 가치를 되찾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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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 쓰기: 디지털 추적이나 수정이 불가능한 비최적화된 소통을 창조함
- 발송 후 도착까지 며칠이 걸리며, 참을성과 진정성을 요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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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위한 코드 작성: 확장성이나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를 제작함
- “확장되지 않는 코드”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전제에 대한 아름다운 이단으로 표현됨
두꺼운 삶의 가치
- 이러한 행위들은 세상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아님
- 단지 공허하지 않은 일요일 오후를 보내기 위한 선택임
- 한 덩이의 빵, 한 통의 편지, 한 줄의 코드 속에서 진정으로 바랄 만한 욕망이 무엇인지 다시 느끼게 함
- 글은 ‘두꺼운 삶(thick life)’이 확장 불가능하더라도 추구할 가치가 있음을 결론으로 제시함
Hacker News 의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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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면서 뭔가 얇은 욕망(thin desires) 의 텍스트 버전처럼 느껴졌음
문장마다 단락이 따로 떨어져 있어서, 마치 각각이 깨달음을 전하려는 듯한 형식이었음
하지만 모든 걸 강조하려 하면 결국 아무것도 강조되지 않음
그래서 읽는 경험이 단절되고 만족스럽지 않았음
왜 이렇게 중요한 메시지를 이런 형식적 모순으로 전달했는지 의문이 듦
아마도 작가의 생계나 성공의 기준이 독자의 얇은 욕망을 자극하는 데 맞춰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름-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음. 나는 오히려 그 스타일이 좋았음
집중력이 짧아진 탓도 있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내용 밀도가 높았기 때문임
장황한 문단보다 짧고 밀도 높은 문장이 더 읽기 쉬움
다만 다시 읽어보니 일부는 과하게 나뉘어 있긴 했음. 그래도 방향성은 옳았다고 생각함 - 나도 같은 느낌이었음. 트위터나 LinkedIn에서 글쓰기 배운 사람의 문체 같았음
예전에 영어 교수님이 칠판에 “FORM = CONTENT”라고 쓰셨는데, 이 글을 보면 분노하셨을 듯함 - 나만 그런 게 아님. 이 작가의 글을 예전에도 읽었는데, 매 문장이 마치 큰 깨달음을 전하는 듯함
하지만 진짜 깊은 통찰은 삶의 경험이나 깊은 사유에서 나오는 법임
자신의 믿음을 소크라테스식 질문으로 검증해보고, 그 과정을 견뎌낸 생각이라면 쓸 가치가 있음 - 글의 형식만 비판하는 것도 결국 얇은 욕망의 표현 같음
- 이미 얇은 콘텐츠에 익숙한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다면 이런 글쓰기 방식도 이해됨
-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음. 나는 오히려 그 스타일이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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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개발자로 일하다가 2년 전쯤 완전히 번아웃이 왔음
하루 종일 화면만 보고 사는 게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음
그래서 치료를 받으며 새로운 걸 시도해보려다 조각(sculpting) 을 시작했음
손으로 만지고 배우고 연습하는 과정이 너무 좋았음
지금은 레진 피규어와 라텍스 마스크를 만들고 있음
이 경험이 내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음. 이제는 사람들과 더 많이 교류하고, 삶이 훨씬 두터워졌음- 멋진 변화임. 예전엔 컴퓨터도 지금처럼 얇게(thin) 느껴지지 않았던 때가 있었음
나도 당신처럼 뭔가 손으로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부러움이 생김 - 나도 비슷한 길을 걸었음. 해커스페이스에서 기계 가공(machining) 을 배우며 몰입했음
손이 더러워지거나 위험해서 휴대폰을 볼 시간도 없었음
실수 하나로 몇 시간의 작업이 날아가기도 하지만, 그게 바로 손맛과 현실감임
효율은 없지만, 그 느림이 주는 만족이 큼 - 나도 IT 기술을 영화 촬영 현장에 적용해 데이터 보안을 담당하고 있음
손으로 부딪히는 현장에서 팀과 협력하는 게 신선하고 즐거움
- 멋진 변화임. 예전엔 컴퓨터도 지금처럼 얇게(thin) 느껴지지 않았던 때가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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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정말 마음에 들었음
나는 빵을 굽는 사람인데, 맛과 효율을 모두 잡기 위해 레시피를 최적화했음
따뜻한 오븐에서 발효시키는 게 좋은 팁이고, 두 덩이씩 굽는 것도 효율적임
글쓰기 스타일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건 아쉬움
아이디어가 명확하고 읽기 쉬우면 그걸로 충분함
이런 ‘실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 이 모여서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음
요즘은 자극적인 제목이 필요하긴 하지만, 긍정적인 언어로 표현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음
어쨌든 멋진 글이었음 -
“이스트는 당신의 일정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는데, 나는 그걸 이겼음
오븐을 100°F 정도로 예열했다가 끄고, 안에 물을 넣어 습도를 유지하면 발효가 훨씬 빨라짐
겨울철 65°F인 주방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맛도 그대로임- 나는 빵은 안 굽지만, 예전에 오븐에 PID 컨트롤러를 달아봤음
그 과정에서 오븐 내부 온도와 조명 전구의 열원 역할을 알게 되었음
단순히 전구를 켜두는 것만으로도 100°F 근처를 유지할 수 있었음
직접 개조한 오븐이 그립기도 함. 온도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게 꽤 재미있었음 - “얇은 빵”이군. 진짜 사워도우 애호가라면 동의하지 않을 것임
고온에서 빠르게 발효하면 맛이 달라짐. 저온에서 천천히 숙성해보길 권함 - 시판 피자 도우에도 이 방법이 통함. 따뜻한 오븐에 잠깐 두면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옴
- 어머니도 따뜻한 곳에 두셨는데, 나는 그게 오히려 빵의 풍미를 망친다는 걸 알게 되었음
실온에서 천천히 발효시키는 게 맛과 질감을 살림 - 나도 이제 막 배우는 중인데, 구체적인 시간이나 비율을 알려줄 수 있는지 궁금함
- 나는 빵은 안 굽지만, 예전에 오븐에 PID 컨트롤러를 달아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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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술을 깊이 익히고 싶다는 두터운 욕망(thick desire) 이 있어도,
그 과정이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음
그래서 요즘은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몰입하거나 좌절하는 시간을 가지려 함
그 자체가 가치 있는 시간임. 진전(progress)을 목표로 하면 오히려 함정에 빠짐
중요한 건 그 시간 자체를 즐기는 것임- 이런 개념이 불교의 Upādāna와 ** Bhavatanha** 개념과 닮았음
- 수십 년이 지나도 프로그래밍을 다 안다고 느낀 적이 없음
분야가 너무 빠르게 확장되고, 나는 그저 느린 LLM 같음 - 그런 공상(daydream) 이 없으면 동기부여도 사라질 것임
꿈이 우리를 격려하는 방식이기도 함. 물론 거기에 갇히면 문제지만, 적당히는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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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현상을 ‘자극의 대량생산(mass production of stimuli)’ 으로 봄
산업화 이전에는 주의를 끄는 요소가 많지 않았지만,
광고와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끊임없는 자극 속에 살게 되었음
하지만 그 자극은 대부분 충족되지 않은 욕망으로 남음
철학과 종교에서도 오래 다뤄온 주제지만, 현대 기술이 그 문제를 훨씬 심화시켰다고 생각함 -
이건 불교의 핵심 개념인 Tanha(갈애) 와 유사함
관련 내용은 위키피디아 문서에서 볼 수 있음- Tanha는 단순히 변화 여부가 아니라, 해탈로 이끄는 욕망과 그렇지 않은 욕망을 구분하는 개념임
이 글의 분류와는 조금 다름 - 힌디어에서 “Tanha”는 “혼자(by yourself)”라는 뜻으로도 쓰임
- 이 개념은 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불안한 마음(restless heart)”과도 닮았음
인간은 세속적 욕망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함 - 결국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의 반복일 뿐임
- 쉬운 영어 버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함
- Tanha는 단순히 변화 여부가 아니라, 해탈로 이끄는 욕망과 그렇지 않은 욕망을 구분하는 개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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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비슷한 생각으로 글을 쓴 적이 있음
다만 문제의 근원을 개인의 심리적 갈등이 아닌 공동체의 행동 문제로 봤음
내 글 링크
단기 보상 체계의 납치가 개인뿐 아니라 집단적 대안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함 -
“소비하려는 욕망은 얇고, 창조하려는 욕망은 두텁다”는 생각을 함
결국 의미는 창조 행위 속에 있음- 어느 정도는 맞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영화를 보는 걸 얕게 본다면
그 창작도 결국 얇은 욕망임
진정한 창작자는 대상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함
영화를 만드는 욕망은 영화를 보는 즐거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함 - 소비에도 얇고 두터운 형태가 있음
틱톡·리얼리티쇼는 얇고, 다큐나 슬로우 시네마는 두터움
전자는 단순한 시간 채우기지만, 후자는 깊은 몰입과 사유를 요구함
현대의 도파민 과잉 환경에서는 두터운 소비로 전환하기가 어렵음 - 대부분의 창작자는 자신이 만든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비하고 관찰해야 함
그 경험이 창작의 연료가 됨 - 나는 창작보다 노력의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봄
얇은 소비는 일방향적이지만, 깊은 독서는 상호작용적 경험을 요구함
결국 중요한 건 창조 행위 자체보다 몰입의 노력임
- 어느 정도는 맞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영화를 보는 걸 얕게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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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다 보니 HN을 보는 것도 얇은 욕망이라는 걸 깨닫고 책을 읽으러 감
- 관계처럼 이건 선택의 우선순위 문제임
책을 먼저 읽고, 그다음에 HN을 보면 더 깊은 대화가 가능함 - 방금 그 글을 보고 같은 생각이 들었음. 나중에 또 봄
- 사실 HN에 댓글을 다는 것도 가상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일 뿐임
- 관계처럼 이건 선택의 우선순위 문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