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으면서 뭔가 얇은 욕망(thin desires) 의 텍스트 버전처럼 느껴졌음
문장마다 단락이 따로 떨어져 있어서, 마치 각각이 깨달음을 전하려는 듯한 형식이었음
하지만 모든 걸 강조하려 하면 결국 아무것도 강조되지 않음
그래서 읽는 경험이 단절되고 만족스럽지 않았음
왜 이렇게 중요한 메시지를 이런 형식적 모순으로 전달했는지 의문이 듦
아마도 작가의 생계나 성공의 기준이 독자의 얇은 욕망을 자극하는 데 맞춰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름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음. 나는 오히려 그 스타일이 좋았음
집중력이 짧아진 탓도 있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내용 밀도가 높았기 때문임
장황한 문단보다 짧고 밀도 높은 문장이 더 읽기 쉬움
다만 다시 읽어보니 일부는 과하게 나뉘어 있긴 했음. 그래도 방향성은 옳았다고 생각함
나도 같은 느낌이었음. 트위터나 LinkedIn에서 글쓰기 배운 사람의 문체 같았음
예전에 영어 교수님이 칠판에 “FORM = CONTENT”라고 쓰셨는데, 이 글을 보면 분노하셨을 듯함
나만 그런 게 아님. 이 작가의 글을 예전에도 읽었는데, 매 문장이 마치 큰 깨달음을 전하는 듯함
하지만 진짜 깊은 통찰은 삶의 경험이나 깊은 사유에서 나오는 법임
자신의 믿음을 소크라테스식 질문으로 검증해보고, 그 과정을 견뎌낸 생각이라면 쓸 가치가 있음
글의 형식만 비판하는 것도 결국 얇은 욕망의 표현 같음
이미 얇은 콘텐츠에 익숙한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다면 이런 글쓰기 방식도 이해됨
웹 개발자로 일하다가 2년 전쯤 완전히 번아웃이 왔음
하루 종일 화면만 보고 사는 게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음
그래서 치료를 받으며 새로운 걸 시도해보려다 조각(sculpting) 을 시작했음
손으로 만지고 배우고 연습하는 과정이 너무 좋았음
지금은 레진 피규어와 라텍스 마스크를 만들고 있음
이 경험이 내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음. 이제는 사람들과 더 많이 교류하고, 삶이 훨씬 두터워졌음
멋진 변화임. 예전엔 컴퓨터도 지금처럼 얇게(thin) 느껴지지 않았던 때가 있었음
나도 당신처럼 뭔가 손으로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부러움이 생김
나도 비슷한 길을 걸었음. 해커스페이스에서 기계 가공(machining) 을 배우며 몰입했음
손이 더러워지거나 위험해서 휴대폰을 볼 시간도 없었음
실수 하나로 몇 시간의 작업이 날아가기도 하지만, 그게 바로 손맛과 현실감임
효율은 없지만, 그 느림이 주는 만족이 큼
나도 IT 기술을 영화 촬영 현장에 적용해 데이터 보안을 담당하고 있음
손으로 부딪히는 현장에서 팀과 협력하는 게 신선하고 즐거움
이 글이 정말 마음에 들었음
나는 빵을 굽는 사람인데, 맛과 효율을 모두 잡기 위해 레시피를 최적화했음
따뜻한 오븐에서 발효시키는 게 좋은 팁이고, 두 덩이씩 굽는 것도 효율적임
글쓰기 스타일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건 아쉬움
아이디어가 명확하고 읽기 쉬우면 그걸로 충분함
이런 ‘실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 이 모여서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음
요즘은 자극적인 제목이 필요하긴 하지만, 긍정적인 언어로 표현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음
어쨌든 멋진 글이었음
“이스트는 당신의 일정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는데, 나는 그걸 이겼음
오븐을 100°F 정도로 예열했다가 끄고, 안에 물을 넣어 습도를 유지하면 발효가 훨씬 빨라짐
겨울철 65°F인 주방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맛도 그대로임
나는 빵은 안 굽지만, 예전에 오븐에 PID 컨트롤러를 달아봤음
그 과정에서 오븐 내부 온도와 조명 전구의 열원 역할을 알게 되었음
단순히 전구를 켜두는 것만으로도 100°F 근처를 유지할 수 있었음
직접 개조한 오븐이 그립기도 함. 온도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게 꽤 재미있었음
“얇은 빵”이군. 진짜 사워도우 애호가라면 동의하지 않을 것임
고온에서 빠르게 발효하면 맛이 달라짐. 저온에서 천천히 숙성해보길 권함
시판 피자 도우에도 이 방법이 통함. 따뜻한 오븐에 잠깐 두면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옴
어머니도 따뜻한 곳에 두셨는데, 나는 그게 오히려 빵의 풍미를 망친다는 걸 알게 되었음
실온에서 천천히 발효시키는 게 맛과 질감을 살림
나도 이제 막 배우는 중인데, 구체적인 시간이나 비율을 알려줄 수 있는지 궁금함
어떤 기술을 깊이 익히고 싶다는 두터운 욕망(thick desire) 이 있어도,
그 과정이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음
그래서 요즘은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몰입하거나 좌절하는 시간을 가지려 함
그 자체가 가치 있는 시간임. 진전(progress)을 목표로 하면 오히려 함정에 빠짐
중요한 건 그 시간 자체를 즐기는 것임
수십 년이 지나도 프로그래밍을 다 안다고 느낀 적이 없음
분야가 너무 빠르게 확장되고, 나는 그저 느린 LLM 같음
그런 공상(daydream) 이 없으면 동기부여도 사라질 것임
꿈이 우리를 격려하는 방식이기도 함. 물론 거기에 갇히면 문제지만, 적당히는 필요함
나는 이 현상을 ‘자극의 대량생산(mass production of stimuli)’ 으로 봄
산업화 이전에는 주의를 끄는 요소가 많지 않았지만,
광고와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끊임없는 자극 속에 살게 되었음
하지만 그 자극은 대부분 충족되지 않은 욕망으로 남음
철학과 종교에서도 오래 다뤄온 주제지만, 현대 기술이 그 문제를 훨씬 심화시켰다고 생각함
이건 불교의 핵심 개념인 Tanha(갈애) 와 유사함
관련 내용은 위키피디아 문서에서 볼 수 있음
Tanha는 단순히 변화 여부가 아니라, 해탈로 이끄는 욕망과 그렇지 않은 욕망을 구분하는 개념임
이 글의 분류와는 조금 다름
힌디어에서 “Tanha”는 “혼자(by yourself)”라는 뜻으로도 쓰임
이 개념은 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불안한 마음(restless heart)”과도 닮았음
인간은 세속적 욕망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함
결국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의 반복일 뿐임
쉬운 영어 버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함
나도 비슷한 생각으로 글을 쓴 적이 있음
다만 문제의 근원을 개인의 심리적 갈등이 아닌 공동체의 행동 문제로 봤음 내 글 링크
단기 보상 체계의 납치가 개인뿐 아니라 집단적 대안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함
“소비하려는 욕망은 얇고, 창조하려는 욕망은 두텁다”는 생각을 함
결국 의미는 창조 행위 속에 있음
어느 정도는 맞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영화를 보는 걸 얕게 본다면
그 창작도 결국 얇은 욕망임
진정한 창작자는 대상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함
영화를 만드는 욕망은 영화를 보는 즐거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함
소비에도 얇고 두터운 형태가 있음 틱톡·리얼리티쇼는 얇고, 다큐나 슬로우 시네마는 두터움
전자는 단순한 시간 채우기지만, 후자는 깊은 몰입과 사유를 요구함
현대의 도파민 과잉 환경에서는 두터운 소비로 전환하기가 어렵음
대부분의 창작자는 자신이 만든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비하고 관찰해야 함
그 경험이 창작의 연료가 됨
나는 창작보다 노력의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봄
얇은 소비는 일방향적이지만, 깊은 독서는 상호작용적 경험을 요구함
결국 중요한 건 창조 행위 자체보다 몰입의 노력임
글을 읽다 보니 HN을 보는 것도 얇은 욕망이라는 걸 깨닫고 책을 읽으러 감
관계처럼 이건 선택의 우선순위 문제임
책을 먼저 읽고, 그다음에 HN을 보면 더 깊은 대화가 가능함
Hacker News 의견들
이 글을 읽으면서 뭔가 얇은 욕망(thin desires) 의 텍스트 버전처럼 느껴졌음
문장마다 단락이 따로 떨어져 있어서, 마치 각각이 깨달음을 전하려는 듯한 형식이었음
하지만 모든 걸 강조하려 하면 결국 아무것도 강조되지 않음
그래서 읽는 경험이 단절되고 만족스럽지 않았음
왜 이렇게 중요한 메시지를 이런 형식적 모순으로 전달했는지 의문이 듦
아마도 작가의 생계나 성공의 기준이 독자의 얇은 욕망을 자극하는 데 맞춰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름
집중력이 짧아진 탓도 있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내용 밀도가 높았기 때문임
장황한 문단보다 짧고 밀도 높은 문장이 더 읽기 쉬움
다만 다시 읽어보니 일부는 과하게 나뉘어 있긴 했음. 그래도 방향성은 옳았다고 생각함
예전에 영어 교수님이 칠판에 “FORM = CONTENT”라고 쓰셨는데, 이 글을 보면 분노하셨을 듯함
하지만 진짜 깊은 통찰은 삶의 경험이나 깊은 사유에서 나오는 법임
자신의 믿음을 소크라테스식 질문으로 검증해보고, 그 과정을 견뎌낸 생각이라면 쓸 가치가 있음
웹 개발자로 일하다가 2년 전쯤 완전히 번아웃이 왔음
하루 종일 화면만 보고 사는 게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음
그래서 치료를 받으며 새로운 걸 시도해보려다 조각(sculpting) 을 시작했음
손으로 만지고 배우고 연습하는 과정이 너무 좋았음
지금은 레진 피규어와 라텍스 마스크를 만들고 있음
이 경험이 내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음. 이제는 사람들과 더 많이 교류하고, 삶이 훨씬 두터워졌음
나도 당신처럼 뭔가 손으로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부러움이 생김
손이 더러워지거나 위험해서 휴대폰을 볼 시간도 없었음
실수 하나로 몇 시간의 작업이 날아가기도 하지만, 그게 바로 손맛과 현실감임
효율은 없지만, 그 느림이 주는 만족이 큼
손으로 부딪히는 현장에서 팀과 협력하는 게 신선하고 즐거움
이 글이 정말 마음에 들었음
나는 빵을 굽는 사람인데, 맛과 효율을 모두 잡기 위해 레시피를 최적화했음
따뜻한 오븐에서 발효시키는 게 좋은 팁이고, 두 덩이씩 굽는 것도 효율적임
글쓰기 스타일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건 아쉬움
아이디어가 명확하고 읽기 쉬우면 그걸로 충분함
이런 ‘실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 이 모여서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음
요즘은 자극적인 제목이 필요하긴 하지만, 긍정적인 언어로 표현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음
어쨌든 멋진 글이었음
“이스트는 당신의 일정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는데, 나는 그걸 이겼음
오븐을 100°F 정도로 예열했다가 끄고, 안에 물을 넣어 습도를 유지하면 발효가 훨씬 빨라짐
겨울철 65°F인 주방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맛도 그대로임
그 과정에서 오븐 내부 온도와 조명 전구의 열원 역할을 알게 되었음
단순히 전구를 켜두는 것만으로도 100°F 근처를 유지할 수 있었음
직접 개조한 오븐이 그립기도 함. 온도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게 꽤 재미있었음
고온에서 빠르게 발효하면 맛이 달라짐. 저온에서 천천히 숙성해보길 권함
실온에서 천천히 발효시키는 게 맛과 질감을 살림
어떤 기술을 깊이 익히고 싶다는 두터운 욕망(thick desire) 이 있어도,
그 과정이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음
그래서 요즘은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몰입하거나 좌절하는 시간을 가지려 함
그 자체가 가치 있는 시간임. 진전(progress)을 목표로 하면 오히려 함정에 빠짐
중요한 건 그 시간 자체를 즐기는 것임
분야가 너무 빠르게 확장되고, 나는 그저 느린 LLM 같음
꿈이 우리를 격려하는 방식이기도 함. 물론 거기에 갇히면 문제지만, 적당히는 필요함
나는 이 현상을 ‘자극의 대량생산(mass production of stimuli)’ 으로 봄
산업화 이전에는 주의를 끄는 요소가 많지 않았지만,
광고와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끊임없는 자극 속에 살게 되었음
하지만 그 자극은 대부분 충족되지 않은 욕망으로 남음
철학과 종교에서도 오래 다뤄온 주제지만, 현대 기술이 그 문제를 훨씬 심화시켰다고 생각함
이건 불교의 핵심 개념인 Tanha(갈애) 와 유사함
관련 내용은 위키피디아 문서에서 볼 수 있음
이 글의 분류와는 조금 다름
인간은 세속적 욕망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함
나도 비슷한 생각으로 글을 쓴 적이 있음
다만 문제의 근원을 개인의 심리적 갈등이 아닌 공동체의 행동 문제로 봤음
내 글 링크
단기 보상 체계의 납치가 개인뿐 아니라 집단적 대안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함
“소비하려는 욕망은 얇고, 창조하려는 욕망은 두텁다”는 생각을 함
결국 의미는 창조 행위 속에 있음
그 창작도 결국 얇은 욕망임
진정한 창작자는 대상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함
영화를 만드는 욕망은 영화를 보는 즐거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함
틱톡·리얼리티쇼는 얇고, 다큐나 슬로우 시네마는 두터움
전자는 단순한 시간 채우기지만, 후자는 깊은 몰입과 사유를 요구함
현대의 도파민 과잉 환경에서는 두터운 소비로 전환하기가 어렵음
그 경험이 창작의 연료가 됨
얇은 소비는 일방향적이지만, 깊은 독서는 상호작용적 경험을 요구함
결국 중요한 건 창조 행위 자체보다 몰입의 노력임
글을 읽다 보니 HN을 보는 것도 얇은 욕망이라는 걸 깨닫고 책을 읽으러 감
책을 먼저 읽고, 그다음에 HN을 보면 더 깊은 대화가 가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