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nifica Humanitas
(vatican.va)- AI 시대의 핵심 선택은 기술 찬반이 아니라 바벨처럼 획일성과 지배를 세울지, 예루살렘처럼 공동 책임과 다양성 위에 재건할지에 달려 있음
- 교회의 사회교리는 고정된 원리집이 아니라 인간 존엄, 공동선, 보조성, 연대, 사회정의를 통해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을 식별하는 살아 있는 과정임
- AI와 디지털 권력은 데이터·플랫폼·컴퓨팅 자원의 집중, 자동화된 결정, 불투명한 책임, 환경 비용, 숨은 노동과 새 착취를 낳을 수 있음
-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은 인간을 최적화할 자원으로 축소하므로, 교육·노동·가족·언론·정치·경제는 진리와 자유, 돌봄과 참여를 지키도록 재구성되어야 함
- 사랑의 문명은 전쟁과 군비 경쟁, AI 무기화를 거부하고, 정의·대화·외교·피해자의 관점·기도로 평화를 세우는 길로 제시됨
AI 시대의 선택과 사회교리
- 인류의 선택은 새로운 바벨탑을 세울 것인지,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머무는 도시를 지을 것인지에 달려 있음
- 각 세대는 자기 시대를 형성하고, 모든 사람의 존엄을 지키며, 정의를 증진하고, 형제애를 가능하게 할 과제를 물려받음
- 그리스도인은 “말씀이 사람이 되신 신비 안에서만 인간의 신비가 참으로 밝혀진다”는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충만함을 봄
- Pope Leo XIII는 1891년에 Rerum Novarum을 발표했고, 2026년은 그 135주년임
- 이 문헌은 사회·경제·정치에 대한 성찰에 힘을 실었고, 오늘날 “교회의 사회교리”로 알려진 흐름의 중요한 출발점이 됨
- 사회교리는 성경과 전통에 기초하고 여러 학문과 대화하면서 현재의 도전을 해석하도록 돕는 살아 있는 과정임
- 디지털화·인공지능·로보틱스는 세계를 빠르고 깊게 바꾸고 있음
- 기술은 그 자체로 인류에 적대적인 힘이 아니지만, 선을 향하지 않을 때 해를 끼칠 수 있는 양면적 도구임
- 새 기술은 일상생활, 의사결정 과정, 집단적 상상력에 깊이 들어와 개인 존엄과 공동선에 미칠 장기 효과 평가를 어렵게 만듦
- 기술 권력은 전례 없이 사적이고 초국적 성격을 띠며, 공동선을 향해 식별·통치·방향 설정하기가 더 어려워짐
- Pope Francis는 원자력, 생명공학, 정보기술, DNA 지식 등이 지식과 경제 자원을 가진 이들에게 “인류 전체와 전 세계에 대한 인상적인 지배력”을 준다고 경고함
- 오늘날 발전의 주요 동력은 많은 정부를 능가하는 자원과 개입 능력을 가진 민간·초국적 주체인 경우가 많음
바벨과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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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 바벨탑은 AI 시대를 책임 있게 항해하기 위한 첫 번째 성경 이미지임
- 시날 평야의 사람들은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도시와 탑을 세워 흩어짐을 피하고 “이름을 내기”를 원함
- 단일 언어, 단일 기술, 단일 방향을 가진 이 프로젝트는 다양성을 제거하는 획일성에 기대며 친교보다 동질화를 택함
- 교만과 자기충족 위에 도시가 세워질 때 소통은 무너지고 언어는 혼란해지며, 결과는 일치가 아니라 흩어짐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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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재건
-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재건은 두 번째 이미지임
- 바빌론 유배 뒤 예루살렘은 폐허였고, 느헤미야는 행동에 앞서 금식하고 기도하며 백성을 위해 전구함
- 그는 파괴된 구역을 조용히 살피고, 위에서 해법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가족들에게 성벽의 한 구역씩 맡김
- 도시는 한 사람의 주도가 아니라 남성, 여성, 사제, 장인, 가문장, 젊은이 모두의 공동 책임으로 다시 태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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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향한 선택
- 기술과 디지털 혁명을 대하는 핵심 선택은 기술에 대한 “예” 또는 “아니오”가 아니라, 바벨을 건설할 것인지 예루살렘을 재건할 것인지임
- 기술은 치유하고, 연결하고, 교육하고, 공동의 집을 보호할 힘이 있지만, 분열시키고, 배제하고, 새로운 불의를 만들 수도 있음
- 기술은 실제로 이를 고안하고 자금을 대고 규제하고 사용하는 이들의 특성을 띠므로 결코 중립적이지 않음
- 바벨 증후군은 약자를 희생시키는 이윤의 우상화, 차이를 무력화하는 획일성, 사람의 신비까지 데이터와 성과로 번역할 수 있다는 착각을 뜻함
- 느헤미야의 길은 다양한 목소리와 비전에서 함께 짓고, 다양성을 자원으로 바꾸며, 경청과 대화를 정의와 형제애의 기반으로 삼는 길임
인간으로 남기 위한 원칙
- 공동선에 기초한 도시는 하느님과의 굳건한 관계 위에 세워져야 하며, 인간의 한계와 약함은 고쳐야 할 오류가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현실로 제시됨
- 무제한 “업그레이드”,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진보,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는 즉각적 해법에 희망을 두는 일은 경계해야 함
- 참된 충만함은 약함 제거가 아니라 자유와 책임, 상호 돌봄과 연대가 얽히는 조화로운 성장 안에서 발견됨
- 공동 책임은 모두가 번영할 수 있는 세계를 짓기 위한 조건임
- 과학자와 연구자, 기업가와 노동자, 교육자와 입법자, 시민사회, 대중운동, 신앙 공동체 모두에게 각자의 성벽 구역이 주어짐
- 세대, 민족, 학문, 문화 사이의 협력은 안정·번영·평화를 촉진하는 보조성의 논리로 이어짐
- 인간으로 남기는 AI 시대의 긴급한 의무임
- 새로운 비인간화 형태가 인간 존엄을 위협하므로, 어떤 기계도 대체할 수 없는 인류의 위대함을 보호해야 함
- 하느님을 행동의 앞자리에 두고 인간을 선택의 중심에 두어야 함
교회 사회교리의 성격
- 교회의 사회교리는 최근 교황 교도권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안에서 형성되어 온 동적인 가르침임
- 인공지능은 관리해야 할 위기만이 아니라, 사회교리의 범주를 내부에서 도전하고 복음에 충실한 발전을 요구하는 전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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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역사 속을 걷는 교회
- 교회는 전 인류 가족의 일치의 표징으로 세계 안에 현존하며, 오늘의 질문과 도전을 경청·대화·봉사의 현재 장으로 인식함
- 교회는 사회를 형성하는 힘들에 대해 외부자로 남을 수 없으며, 더 정의롭고 형제애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고유한 기여를 제공함
- Gaudium et Spes는 “지상 사물의 자율성”이 피조물과 사회가 고유한 법과 가치를 지닌다는 뜻이라면 정당하다고 표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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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공동체와의 구별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공동체와 정치 공동체의 구별을 확인하고 각자가 완전한 자율성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강조함
- 교회는 국가의 기능을 떠맡으려 하지 않으며, 공동선을 위해 봉사하는 시민 제도의 책임을 인정함
- 교회의 개입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모범을 따라 신중함과 가까움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시민 공동체의 제도적 책임을 대신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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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인간 과학의 대화
- 교회는 “진리, 선,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찾는 모든 이를 존엄 보호와 창조물 돌봄의 소중한 동맹으로 여김
- 하느님 말씀은 정의와 평화의 기준을 제공하지만, 복잡한 현대 상황에 적용하려면 철학과 인간·사회과학의 기여가 필요함
- Pope Francis는 많은 구체적 문제에서 교회가 “최종적 견해”를 제시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과학 연구와 전문가들의 진지하고 정직한 토론을 장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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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식별
- 진리는 독점할 소유물이 아니라 나눌 선물이며, 교회를 권력 기반 현존의 유혹에서 자유롭게 함
- 사회교리는 적용할 원리와 규범의 핸드북이 아니라, 복음의 영원한 진리와 역사적 질문의 만남에서 태어나는 공동 식별의 과정임
사회교리의 발전과 토대
- 사회교리 발전은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주요 사회 변동에 응답한 교도권의 흐름으로 제시되며, 기본 원리는 Compendium of the Social Doctrine of the Church에 정리되어 있음
- Rerum Novarum은 자본과 노동의 갈등, 노동자의 존엄, 정당한 임금, 사유재산의 사회적 역할, 노동자 결사, 계급투쟁 대신 협력을 제시함
- Pius XI의 Quadragesima Anno는 경제 권력 집중과 집단주의 계획을 비판하고, 보조성 원리를 체계적으로 정식화함
- Saint John XXIII의 Pacem in Terris는 인간 존엄을 기본 권리와 의무의 인정에 연결함
- Saint John Paul II의 Laborem Exercens는 노동을 인간을 위한 기본적 선, 경제 활동의 원리, 전체 사회 문제의 열쇠로 제시함
- Pope Francis의 Laudato Si’는 “땅의 외침과 가난한 이들의 외침”을 분리할 수 없다고 강조함
- Fratelli Tutti는 사회적 우정, 보편적 형제애, 더 나은 정치, 모두에게 “토지·주거·일”을 보장하는 세계를 제안함
- 인간 존엄은 능력, 부, 삶의 지위, 옳고 그른 선택에 달려 있지 않고, 하느님의 변함없는 사랑의 표현으로 각 사람에 앞서 주어지는 선물임
- 존재론적 존엄은 존재한다는 사실, 하느님이 원하고 창조하고 사랑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인간에게 속함
- Dignitas Infinita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존재 자체에 양도할 수 없이 근거한 무한한 존엄”을 지닌다고 요약함
- 인권의 식별과 선포는 인간 존엄의 요구에 응답하려는 가장 중요한 시도 중 하나로 인정됨
- 권리 가운데 첫째는 잉태에서 자연적 죽음에 이르는 생명권으로 제시됨
- 여성의 권리가 동등하고 진정으로 보장되려면 법률, 고용 접근, 교육, 사회·정치적 책임, 여성의 기여를 사회가 듣고 평가하는 방식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어야 함
공동선, 보조성, 연대,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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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
- 공동선은 모든 사람에게 인정된 존엄의 사회적 표현이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를 사람들이 더 온전하고 쉽게 완성에 이를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조건들의 총체로 정의함
- 공동선은 개인 이익의 합이나 특수 이해의 교집합이 아니라, 모두에게 속하고 공동 노력으로만 달성·양육·보호될 수 있는 더 큰 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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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화의 보편적 목적
- 재화의 보편적 목적은 토지, 물, 공기, 천연자원이 모든 이의 생명을 지탱하도록 하느님이 온 인류 가족에게 주신 것이라는 원칙임
- 사유재산권은 고유한 의미와 목적을 가지지만 언제나 재화의 보편적 목적에 종속됨
- 오늘날 이 원칙은 특허, 알고리듬, 디지털 플랫폼, 기술 인프라, 데이터 같은 새로운 형태의 재산에도 적용되어야 함
- 이런 재화가 소수의 손에 집중되면 디지털 혁명에 참여할 수 있는 이들과 주변부에 남는 이들 사이의 격차가 넓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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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성
- 보조성은 개인·가족·지역 공동체·중간 조직의 역할을 더 높은 권위가 대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임
- 디지털 혁명 맥락에서 최상위 수준은 국가가 아니라 일상생활 조건에 de facto 권력을 행사하는 거대 경제·기술 행위자들인 경우가 많음
- 보조성은 독립적 점검, 알고리듬 투명성, 데이터에 대한 공정한 접근, 구제 경로를 포함한 의미 있는 참여를 요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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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 연대는 각 개인의 미래가 모두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며, “아무도 혼자 구원받지 않는다”는 말로 표현됨
- 데이터, 알고리듬, 플랫폼, 인공지능에 관한 결정은 소수의 즉각적 이익뿐 아니라 모든 민족과 미래 세대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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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
- 사회정의는 사회 구조와 제도가 인간과 인간 존엄을 섬기도록 요구함
- 불의는 개인의 잘못된 선택뿐 아니라 불평등을 거의 자동으로 만들어내는 구조·메커니즘·경제문화 체계에서도 발생함
- 디지털 시대의 정의로운 사회 질서는 모두에게 기회 접근을 보장하고, 약한 구성원을 보호하며, 혐오와 허위정보에 맞서고, 데이터와 기술 사용을 공적 감독 아래 두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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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적 인간 발전
- 통합적 인간 발전은 개인과 민족의 성장이 존재의 모든 차원을 포괄하고 이후 세대에게도 미래를 열어주는 과정임
- 인공지능을 포함한 기술 혁신은 인간과 민족이 더 인간적이고 형제애 있게 되도록 돕는지, 공동의 집과 미래 세대를 존중하는지로 평가되어야 함
교회 안의 적용
- 사회교리는 사회를 향한 메시지일 뿐 아니라 교회를 위한 양심 성찰이며, 교회 구조 안에서도 공동선, 보조성, 연대, 정의가 적용되어야 함
- The Final Document of the Synod는 투명성, 책임성, 평가의 문화를 선교적 변화를 위한 핵심 실천으로 봄
- 실질적 참여는 세례받은 이들의 의사결정 참여와 사명에 대한 공동 책임을 이름뿐인 참여 기구가 아니라 실제 참여 기구로 구현하는 일임
- 교회 안에서 정의를 산다는 것은 불평등, 불투명성, 권력 남용을 낳는 왜곡에서 교회적 관계와 구조를 정화하는 것임
- 영적·경제적·제도적·성적·권력 기반 학대와 양심 학대의 피해자에게 귀 기울이는 것은 피해 인정, 정당한 배상, 재발 방지를 포함하는 정의의 여정에 필수적임
AI와 디지털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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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관료적 패러다임
- Pope Francis는 Laudato Si’에서 효율, 통제, 이윤의 논리만으로 개인·사회·경제적 결정을 형성하려는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을 비판함
- 기술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때 창조 세계는 착취 대상으로, 인간은 더 큰 효율을 향하는 시스템의 톱니바퀴로 축소됨
- 플랫폼, 인프라, 데이터, 컴퓨팅 파워의 통제가 거대 경제·기술 행위자에게 집중되면 접근 조건, 가시성 규칙, 참여 가능성 자체가 사실상 그들에 의해 설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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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인간 지능의 차이
- AI에 관한 모든 진술은 시스템 발전 속도 때문에 빠르게 낡을 수 있고, 설계자들까지 포함해 실제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는 제한적임
- 현재 AI 시스템은 모든 세부를 직접 설계하는 방식보다 개발자가 지능이 “자라나는” 틀을 만드는 방식에 가까워 “만들어진” 것보다 “재배된” 것에 가까움
- AI는 인간 지능의 특정 기능을 모방할 뿐이며, 경험하지 않고 몸을 갖지 않으며 기쁨이나 고통을 느끼지 않고 관계 속에서 성숙하지 않음
- AI의 “학습”은 선택·실수·용서·충실함을 통해 삶에 의해 형성되는 경험이 아니라 데이터와 피드백에 기반한 통계적 적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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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성과 경계
- AI는 유용한 도구일 수 있지만, 결과 획득의 용이함, 객관성의 인상, 인간적 의사소통의 모방이라는 세 측면에서 주의가 필요함
- 빠른 정보 접근과 실무 지원은 과도한 의존과 기성 답변 추구를 조장하고 개인의 창의성과 판단력을 약화시킬 수 있음
- 시스템의 응답이 객관적으로 보이는 점은 설계·훈련한 이들의 문화적 전제와 강점·한계를 가릴 수 있음
- 조언, 공감, 우정, 사랑 같은 인간 소통의 인공적 모방은 식별력이 약한 사용자에게 실제 인격적 주체와 관계를 맺는다는 환상을 만들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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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비용
- 현재 AI 시스템은 막대한 에너지와 물을 필요로 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자연 자원에 큰 부담을 줌
- 대형 언어 모델처럼 복잡성이 커질수록 컴퓨팅 파워와 저장 용량 수요가 커지고, 기계·케이블·데이터센터·에너지 집약적 인프라의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필요해짐
- 환경 영향을 줄이고 공동의 집을 보호하는 더 지속 가능한 기술 해법 개발이 필수임
AI의 책임, 투명성, 거버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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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된 결정
- AI 사용은 순수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권리·기회·지위·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문제임
- 고용, 신용, 공공서비스 접근, 개인 평판 같은 민감한 결정이 자동화 시스템에 완전히 위임될 위험이 있음
- 이런 시스템은 “연민, 자비, 용서, 무엇보다 사람들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알지 못하므로 새로운 배제를 낳을 수 있음
- AI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라고 볼 수 없으며, 무엇을 측정하고 무시하고 최적화하는지, 사람과 상황을 어떻게 분류하는지에 선택과 우선순위를 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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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가능성과 법적 틀
- AI가 인간 존엄을 존중하고 공동선에 봉사하려면 설계자, 개발자, 사용자, 구체적 결정에 의존하는 이들까지 모든 단계에서 책임이 명확해야 함
- 많은 경우 결과에 이르는 내부 과정은 불투명해 책임 배정과 오류 수정을 어렵게 만듦
- 신중함, 엄격한 평가, 때로는 AI 도입 속도 완화 요구는 진보 반대가 아니라 인간 가족을 책임 있게 돌보는 행위임
- 추상적 윤리 호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강력한 법적 틀, 독립적 감독, 정보에 밝은 사용자,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정치 체계가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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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렬을 넘어선 공적 논의
- AI를 인간 가치에 맞추는 “alignment” 같은 기계의 도덕화 요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관련 윤리 틀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사회정의의 공유 기준에 종속시켜야 함
- 소수가 결정한 도덕성이 시스템의 보이지 않는 인프라가 되지 않도록 더 적극적인 정치적 관여가 필요함
- 데이터 소유권은 사적 손에만 맡겨질 수 없고 적절히 규제되어야 하며, 데이터는 많은 기여자의 산물이므로 공동 또는 공유 재화로 관리하는 창의적 사고가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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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권력의 사회교리적 기준
- 데이터, 계산 자원, 규제 영향력이 소수에게 남아 있는 세계에서 공동선을 말한다는 것은 인식론적·경제적·정치적 비대칭과 AI의 새로운 독점을 드러내는 일임
- 재화의 보편적 목적은 기술과 그것을 사용할 교육 모두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보장하는 일을 뜻함
- 보조성은 공동체가 선택하고 수정할 능력을 보호하도록 요구함
- 연대는 알고리듬 시스템을 지탱하는 숨겨지고 자주 착취되는 노동자들을 인정하게 함
- 사회정의는 기술 배포 뒤에 보호해야 할 목표만이 아니라, 처음부터 기술 설계를 형성해야 하는 조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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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무장 해제하기
- AI를 무장 해제한다는 것은 군사 맥락뿐 아니라 경제적·인지적 “무장” 경쟁의 사고방식에서 AI를 해방하는 것임
- 더 강력한 알고리듬과 더 큰 데이터셋을 향한 경쟁은 지정학적 또는 상업적 지배를 확보하려는 욕망에 의해 움직임
- 무장 해제는 기술 거부가 아니라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고, 독점적 통제에서 벗어나 토론과 논의에 열어 인간 친화적으로 만드는 것임
잃어서는 안 되는 인간성
- 인간성의 보존은 “우리 인간성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감
- 위험은 특정 기술의 오용을 넘어, 디지털 혁명과 AI가 증폭하는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이 반인간적 관점을 정상화하는 데 있음
- 효율이 가치의 최종 척도가 될 때 인간은 관계와 친교로 부름받은 인격이 아니라 최적화할 프로젝트로 자신을 보려는 유혹을 받음
- 돌봄의 문명에서 문명의 질은 수단의 힘이 아니라 제공할 수 있는 돌봄과, 타인을 기능이 아니라 얼굴로 알아보는 능력으로 측정됨
- 아이에게 이야기를 읽어주고, 노인 곁에 있어주고, 환대하는 집을 마련하는 몸짓은 사회적 차원에서 돌봄을 가치 있게 여기도록 훈련함
- 기술은 인간의 자유와 판단을 약화하지 않는 범위에서 예측과 조직을 도와 상호 돌봄을 지원할 수 있음
-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 조건의 초월을 진보로 해석하는 흐름임
- “강화된 인간” 또는 “인간-기계 하이브리드” 전망은 신기술 열광을 키움
- 이런 생각들이 대체로 사변적이어도 집단적 상상력을 바꾸고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미침
- 한계는 결함이 아니라 인간성을 여는 통로로 제시됨
- 무능, 질병, 노년, 고통, 취약성은 교정해야 할 결함처럼 여겨지기 쉽지만, 인간성은 종종 한계를 통해 성숙하고 관계로 열림
- 고통을 완전히 제거한다면 결국 사랑과 욕망도 꺼뜨리게 되며, 자유와 실패, 꿈과 실망이 남긴 상처 같은 배움이 인간성의 풍요를 감지하게 함
진리, 교육, 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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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으로서의 진리
- 디지털 플랫폼과 AI 시스템은 공적·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을 깊이 바꾸며, 대화와 참여를 촉진할 수도 있지만 사실과 의견,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흐리는 데 사용되기도 함
- 허위정보는 AI와 함께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AI는 콘텐츠·이미지·동영상 조작 능력으로 이를 강력하게 증폭함
- 진실한 정보는 중앙집중적이거나 자동화된 통제에서 나오지 않으며, 검증·출처 교차확인·책임 있는 논증과 신뢰의 유대가 필요함
- 민주주의는 규칙과 절차만이 아니라 사실과의 합치와 개인 및 사회 전체의 선에 대한 헌신에 달려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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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의 생태
- 커뮤니케이션은 정보 전달만이 아니라 문화의 창조이며, 디지털 환경에서 유통되는 콘텐츠는 사람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과 욕망, 일상 선택을 형성함
- 공공정책 차원에서는 콘텐츠 선택과 개발을 둘러싼 의사결정이 더 투명해지고 개인정보를 보호하도록 규범을 세워야 함
- 사회·문화 차원에서는 중간조직, 진지한 저널리즘, 토론의 장을 강화해 즉각적 반응보다 합리적 논증과 검증이 더 큰 비중을 갖게 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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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교육
- 교육은 진리가 특정 이해관계와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위해 왜곡되기 쉬운 시대에 결정적으로 중요함
- 모든 기술은 사용하는 사람을 형성하므로, AI 사용 교육은 언제 어떤 목적을 위해 AI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지 가르치는 일을 포함함
- 답변이나 요약을 빠르게 얻는 능력은 질문하려는 욕망을 꺼뜨릴 위험이 있음
- 어린 나이의 감독 없는 디지털 기기와 소셜 미디어 노출은 수면, 주의 지속 시간, 감정 조절,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
- grooming, blackmail, 미성년자 성적 착취 같은 온라인 현상은 가짜 프로필, 위험한 접촉을 촉진하는 알고리듬, 이미지와 동영상을 조작할 수 있는 AI 도구로 더 교묘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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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중심 역할
- 학교는 새로운 세대가 진리를 찾고 사랑하며, 삶의 의미를 성찰하고, 모든 사람의 존엄을 인식하는 곳임
- 정보기술과 AI의 발전은 다른 시대를 위해 설계된 교육과정을 빠르게 낡게 만들고 있어, 학교 조직·물리적 공간·평가 방식·교사의 역할을 통합 교육 관점에서 재고해야 함
- 가족, 학교, 그리스도교 공동체, 공공기관은 절제와 한계 감각, 자유와 책임, 초월과 공동선의 감각을 교육 목표로 옮기는 새 교육 연대를 형성해야 함
노동과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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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가치
- Rerum Novarum 이후 교회는 노동자 보호와 모든 형태의 착취에 맞설 필요를 강조해 왔음
- 노동은 전체 사회 문제를 이해하는 “본질적 열쇠”이며, 사람은 노동을 통해 자기 존재의 여러 차원을 발전시킴
- 노동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 삶의 존엄을 표현하고 강화하며, 목표는 각자가 자기 노동을 통해 존엄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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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와 AI가 바꾸는 노동
- 자동화, 로봇공학, AI의 수렴은 노동 구조 자체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음
- AI가 평범한 업무를 대신해 생산성을 높인다고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기계가 노동자를 지원하기보다 노동자가 기계의 속도와 요구에 맞추도록 강요되는 경우가 많음
- 현재의 기술 접근은 노동자의 숙련을 약화하고, 자동화된 감시에 종속시키며, 경직되고 반복적인 작업으로 밀어 넣을 수 있음
- 고용 기회 보호와 개인의 대체 불가능한 역할은 일반 원칙으로 남아야 하며, 더 큰 이윤 추구는 일자리를 체계적으로 희생하는 선택을 정당화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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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의 불균등성
- Saint John Paul II는 실업을 중대한 악으로 보았고, 대규모가 되면 국가의 책임을 특별히 요구하는 사회적 재앙이 된다고 봄
- 부유한 사회는 빠르고 혼란스럽게 자동화하면서 노동력 수요를 줄이고, 넓은 지역은 저임금 인간 노동과 부분적 기술이 공존하는 혼합 경제에 갇혀 있음
- 모두에게 노동 접근을 보장하는 일은 공공정책과 경제 과정의 높은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며, 모든 발전 모델의 인간적 질을 평가하는 기준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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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협력과 기준
- 정치 지도자, 노동단체, 기업계, 과학 공동체는 국제적 차원을 포함해 공동 규제와 보호를 빠르게 발전시키기 위한 새 협력에 나서야 함
- 자동화와 AI 도입은 노동자의 고용, 재훈련, 참여를 보호하는 검증 가능한 조치와 함께 이루어져야 함
- 기업은 노동의 질과 존엄을 성공 지표에 포함해야 하며, 그래야 혁신이 더 안전하고 창의적이며 존엄한 노동의 동맹이 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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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를 넘어선 발전
- 80년 넘게 국내총생산(GDP) 개념에 묶여 온 발전 지표는 사람과 환경의 총체적 안녕에 필수적인 측면을 거의 체계적으로 누락함
- GDP를 보완하는 지표는 노동의 존엄, 공동 번영, 불평등 감소, 환경 보호에 미치는 영향을 포괄적이고 시의적절하게 평가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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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혁신 접근성
- 세계의 부는 절대적으로 증가했지만 더 적은 손에 집중되고 있으며, 국가 내부와 국가 간 불평등이 커지고 있음
- 새 기술이 자동으로 모두에게 이익을 준다고 보는 것은 증거를 무시하는 태도이며, 설계 단계에서 새로운 격차 방지를 우선하지 않으면 기술 진보는 구조적 불평등을 낳음
- AI와 로봇 시대에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만 의존할 수 없으며, 정치는 경제와 기술을 공동선으로 이끌어야 함
가족, 자유, 새로운 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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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청년
- 가족은 남성과 여성의 지속적 결합에 기초한 일차적 사회 선이며, 모든 사람이 잠재력을 발전시키고 존엄을 인식하며 진리와 선의 초기 형태를 배우는 첫 환경임
- 가족은 노동의 성격을 바꾸는 경제·기술 전환에 즉각 영향을 받는 취약한 사회 선이므로 문화적·법적·경제적 지원이 필요함
- 청년에게 일은 소득원만이 아니라 정체성이 형성되고 우정과 관계가 맺어지며 실천적 책임을 배우고 소명을 식별하는 중요한 영역임
- 국가는 고용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고, 위기 때 일을 방어하며, 노동시장 진입과 직업적 성장을 위한 현실적 경로를 장려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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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과 상품화
- 디지털 주의 경제와 연결된 중독 형태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며, 플랫폼과 서비스는 사용자의 시간과 주의를 붙잡고 취약성을 이용하며 내적 자유를 약화하도록 설계되는 경우가 많음
- 대규모 데이터 수집과 알고리듬 시스템은 움직임, 구매, 관계, 선호 등 행동 흔적을 통해 프로파일링하고 예측하며 행동에 영향을 주는 새로운 권력을 만듦
- 디지털 시대의 자유는 내면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공적 관심사이며, 명확한 규칙, 투명성, 구제 가능성, 침해적 기술 사용에 대한 비례적 제한이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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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노동
- AI 세계에는 비물질적이거나 마법적인 것이 없으며, 즉각적이고 결함 없어 보이는 모든 응답은 자연자원, 에너지 인프라, 사람을 포함한 긴 매개 사슬의 결과임
- 디지털 경제의 상당 부분은 데이터 라벨링, 모델 훈련, 콘텐츠 조정처럼 필수적이지만 거의 보이지 않는 일을 하는 수백만 명의 조용한 노동에 의존함
- AI가 의존하는 기기와 마이크로프로세서 생산에 필요한 자원 채굴 노동은 더 가혹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위험한 조건에서 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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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와 데이터 식민주의
- 범죄 네트워크는 온라인 플랫폼, 메시징 시스템, 익명 결제 수단, 프로파일링 기법을 이용해 인신매매 피해자, 자주 미성년자를 모집·통제·이동시킴
- 인신매매는 현대적 노예제이자 인간 존엄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인식되어야 함
- 오늘날 식민주의는 몸만 지배하지 않고 데이터를 전유하며, 개인의 삶을 착취 가능한 정보로 바꿈
- 공유 지식이 지배 도구가 아니라 참된 공동선이 되려면 데이터가 어떻게, 누구에 의해, 누구의 이익을 위해 쓰일지 결정할 능력이 개인에게 돌아가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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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과 플랫폼 책임
- 기술 산업과 디지털 경제를 뒷받침하는 공급망은 어떤 경쟁 우위도 숨겨진 착취 위에 세워지지 않도록 더 투명해져야 함
- 기업과 투자자는 노동자 보호, 강제노동 퇴치, 데이터 기반 사업 모델의 사회적 영향 평가를 우선순위에 두는 실사 기준을 채택해야 함
- 디지털 플랫폼은 커뮤니케이션, 결제, 프로파일링 도구가 피해자 모집과 통제의 통로가 되지 않도록 당국·시민사회와 책임 있게 협력해야 함
공동 책임
- 진리 추구, 디지털 환경의 교육, 노동 전환, 가족의 취약성, 새로운 노예제는 고립된 현상이 아니라 공통의 근본 문제를 반영함
- 기술이 최종 기준이 되면 인간은 데이터, 기계의 톱니, 상품으로 축소될 위험이 있음
- 기술이 지혜로운 관점과 통합되면 성장, 정의, 형제애의 도구가 될 수 있음
- 교회의 사회교리는 공동 책임을 요구하며, 제도는 억누르지 않고 규제하며 장악하지 않고 보호할 수 있어야 함
- 기업은 노동과 존엄을 성공의 척도로 인정해야 하며, 중간 조직과 교육 공동체는 신뢰와 관계를 다시 세워야 함
- 시민은 책임, 절제, 식별, 진리 감각을 길러야 하며, 그래야 혁신이 배제와 지배의 원천이 아니라 통합적 인간 발전에 봉사할 수 있음
권력의 문화와 사랑의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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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기술
- 윤리와 책임에서 분리된 기술은 삶과 죽음에 관한 결정을 더 빠르고 비인격적으로 만들고, 무력 사용을 즉각적이고 실행 가능한 선택지로 제시할 위험이 있음
- 평화는 여러 의제 중 하나가 아니라 보편적 공동선을 위한 전제이며, 특히 통치 책임을 가진 이들의 도덕적 성숙을 시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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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갈등
- 디지털 혁명은 재래식 전쟁과 함께 사이버공격, 정보 조작, 영향력 캠페인, 전략적 결정 자동화 같은 하이브리드 형태를 낳음
- AI는 민간인 방어와 보호를 강화할 수 있지만, 무력 사용의 문턱을 낮추고 사람들을 책임에서 가리며 적을 통계로, 피해자를 “부수적 피해”로 축소할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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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문명
- Saint Paul VI가 “사랑의 문명”이라는 표현을 만들었을 때 세계는 냉전, 군비 경쟁, 심각한 경제 불안정 속에 있었음
- 사랑의 문명은 순진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사랑을 정의의 구조로 번역하고 형제애에 제도적 형식을 부여하며 타자를 공동선 건설에 필요한 동맹으로 보는 과제임
- AI는 공유된 권리와 의무가 있고 디지털 근접성이 만남과 상호 돌봄의 실제 기회가 되는 보편적 인간 가족을 세우는 데 봉사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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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정상화
- 권력의 문화는 자원 접근성과 지배 능력이 의제와 의사결정 기준을 좌우하게 만들며, 전쟁 중인 민족의 비극을 전략적 이익에 비해 부차적 고려로 축소함
- 오늘은 재무장에 관한 공적 담론과 결정에서 전쟁이 국제정치의 수단으로 부활하고, 그 사용을 제한하던 윤리 원칙이 침식되는 패러다임 전환이 나타남
- 엄격한 의미의 자기방어권은 남지만, 어떤 종류의 전쟁도 정당화하는 데 너무 자주 사용된 “정당한 전쟁” 이론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재확인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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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복합체와 무기
- 군산복합체의 성장은 현재 정치 지형의 규정적 특징이 되었고 여러 국가 경제의 핵심 부문이 되었음
- 핵무기금지조약은 2021년 발효되고 70개국 이상이 지지한 중요한 진전이지만, 주요 핵보유국이 동의하지 않아 대체로 상징적 조치로 남을 위험이 있음
- AI가 포함된 무기 체계의 개발은 인간 존엄과 생명의 신성함을 보장하고 무기 개발 경쟁을 피하기 위해 가장 엄격한 윤리적 제약을 받아야 함
- 치명적이거나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인공 시스템에 맡기는 것은 허용될 수 없음
- 치명적 무력 사용 결정은 효과적이고 자각 있고 책임 있는 인간 통제 아래 남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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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주의와 현실주의
- 다자 체제의 위기는 모든 민족의 공동 미래와 전 지구적 공동선을 지키기 위해 세워진 제도들이 약화된 데서 드러남
- “나 먼저”, “친구냐 적이냐”, “우리냐 그들이냐” 같은 단순 범주는 무책임한 결정을 쉽게 하고 국가 간 상호 신뢰를 약화함
- 거짓 현실주의는 전쟁을 인간 본성의 불가피한 일부로 보는 문화적·인간학적 믿음에 기반하며, 평화와 대화를 유토피아적 태도로 치부함
- 과학자, 기업가, 투자자, 학문 기관 책임자, 정치인 등 연구 분야 핵심 행위자는 자신이 키우는 기술 진보의 더 넓은 맥락을 의식해야 함
사랑의 문명을 위한 실천
- 영구적 갈등 상태의 세계를 만드는 것은 악이며, 현재는 예정된 운명이 아니라 개인적·집단적 회심의 기회임
- 모두가 같은 영향력을 갖지는 않지만 아무도 책임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무관심·냉소·거짓·증오를 키울지 진실·절제·가까움·돌봄으로 평화의 사고방식을 지킬지 선택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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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무장 해제
- 말을 무장 해제하는 일은 더 인간적인 문명에 기여하는 첫 번째 방식임
- 사용하는 말, 가진 편견, 그 안의 명시적·암묵적 공격성을 양심적으로 살펴야 함
- 진실을 말하고, 지혜로운 조언을 제공하고, 위로가 필요한 이를 지지하고, 불의를 고발하고, 목소리 없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줄 때마다 공동선에 기여할 기회가 생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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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통한 평화
- 평화의 토대는 정의이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에서 태어나는 참된 평화를 추구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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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관점
- 일부 갈등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부당하며, 공범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음
- 민간인 폭격, 병원·학교·필수 기반시설 공격, 어린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폭력은 인간성 자체에 상처를 내는 추문임
- 소통과 교육이 피해자의 목소리에 자리를 줄 때 갈등의 정상화를 거부하고 피해자가 인정받고 들리는 존엄을 회복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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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현실주의와 대화
- 건강한 현실주의는 정치적 이상주의와 냉소를 모두 피하고, 이해관계·두려움·제약·권력 역학을 명확히 식별하는 데서 출발함
- 대화와 외교가 갈등 해결의 표준 수단이 되어야 하며, “만나자, 말하자, 협상하자”는 호소가 제시됨
- 종교 간 대화는 폭력의 사고방식을 거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테러·폭력·전쟁을 정당화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참본성을 배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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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와 다자주의
- 외교적 대화는 국제관계에서 갈등을 예방하고 신뢰의 유대를 재건하는 대체 불가능한 도구임
- 사이버공격, 데이터 조작, AI의 도움을 받아 조직된 영향력 캠페인은 공개 무력 충돌 전에도 전체 국가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어, 디지털 기술 사용에 대한 공동 규칙이 필요함
- 국제기구와 UN은 국가 간 대화, 분쟁의 평화적 해결, 민족들의 온전한 발전, 취약한 이들의 보호, 군축, 창조 세계 돌봄을 촉진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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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희망
- 평화는 우선 “우리를 모두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에게서 옴
- 부활한 그리스도의 평화는 “무장하지 않고 무장을 해제시키며, 겸손하고 끈기 있는” 평화로 제시됨
- 이 선물을 위해 기도하고, 관계와 사회 안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 헌신해야 함
결론: AI 시대의 인간과 희망
- “각 건축자는 어떻게 지을지 신중히 선택하라”는 1 Cor 3:10의 말은 세계를 어떻게 짓고 있는지, AI 시대에 인간을 보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묻게 함
- 그리스도인의 삶의 프로그램은 하느님의 계획을 관상하고, 성체성사에 참여해 교회적 일치를 살고, 공동선을 중심에 둔 세계를 세우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일치해 기도하는 데서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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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사람이 되다
- 강생의 신비는 모든 것의 중심이며, 존엄을 빼앗기고 침묵으로 축소된 많은 형제자매의 육신을 떠올리게 함
- 트랜스휴머니즘과 일부 포스트휴머니즘은 향상되고 거의 탈육체화된 인간을 약속하지만, 강생은 하느님이 인간 조건 안으로 들어와 인간의 약함을 구원의 자리로 변화시키는 다른 길을 엶
- AI 시대의 인간의 위대함은 하느님의 아들의 얼굴 안에서 비춰지며, 아무리 정교한 계산 시스템도 자신을 내어주는 마음이나 선과 악을 식별하는 양심을 만들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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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건설 현장
- 지혜로운 건축가의 영성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에 이끌려 공동선을 위해 세계를 짓는 영성임
- 진리에 충실하고, 교육에 투자하고, 관계를 가꾸고, 정의와 평화를 사랑해야 함
- 교육에 투자한다는 것은 디지털 세계와 인간적으로 관계 맺는 법을 배우고, 어린이와 청소년이 책임 있는 관계를 발전시키도록 동행하는 일임
- 정의와 평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AI의 진보가 정의와 참여를 증진하는지, 부와 권력을 소수의 손에 집중시키는지 평가하고, 디지털 생산 공급망과 숨은 노동 조건, 조작과 전쟁에서 이익을 얻는 메커니즘을 살피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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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와 새 예루살렘
- 느헤미야는 황폐해진 도시의 외침을 듣고, 그 고통을 기도로 가져가고, 하느님 앞에서 식별하고, 백성과 함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인물임
-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이 이미지는 사회·문화적 균열 앞에서 수동적 구경꾼이나 논평자에 머물지 말라는 비유가 됨
- 역사라는 건설 현장은 연구실, 기술 기업, 학교, 미디어, 제도, 지역 공동체로 구체화됨
- 새 예루살렘은 요한묵시록에서 모든 민족에게 성문이 열려 있고, 하느님의 현존이 모두에게 빛과 생명을 제공하는 도시로 제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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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nificat
- 마리아 안에서는 모든 것이 바뀌었고, 이 변화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함
- 하느님은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들을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올리시고,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이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신다고 노래됨
- 세계는 권세 있는 이들의 눈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의 눈으로, 역사는 강한 이들의 관점이 아니라 작은 이들의 눈으로 보아야 함
- 마리아와 같은 믿음으로 세상 안에서 희망의 직조자가 되고, 일상의 겸손한 충실함 안에서 AI 시대도 성령이 사랑의 문명을 이루는 시간이 될 수 있음
- 2026년 5월 15일, 교황 재위 2년째에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주어진 문서로 마무리되며, 서명은 LEO PP. XIV로 되어 있음
댓글과 토론
Hacker News 의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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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더 넓은 사회적 선을 고려하도록 어떤 기술을 “길들인” 사례가 있었는지 궁금함
20세기 중반 중산층의 부상은 당시 산업 기술이 이전보다 훨씬 생산적이면서도 운영에 대규모 인간 노동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임. Ford가 선의로 임금을 올린 게 아니라, 많은 자동차를 만들고 그걸 살 수 있는 고객층을 키우는 편이 결국 이익이라고 본 것에 가까움
CO2 배출도 언젠가 흐름을 바꿀 수 있겠지만, 대중이 고통을 감수해서라기보다 재생에너지와 배터리가 경제적으로 최선이 되어가기 때문일 가능성이 큼. 사회가 의식적으로 기술 발전의 방향을 공동선 쪽으로 바꾼 구체적 사례가 있다면 알고 싶음- 재생에너지와 배터리가 이렇게 싸진 이유에는 정책 개입이 있음
특히 재생에너지는 독일의 Renewable Energy Sources Act(EEG) 같은 제도가 수요를 만들었고, 그 수요가 중국의 대량생산을 촉발해 가격을 낮추는 흐름으로 이어짐 - 전기가 그런 사례로 보임. 결국 어디에나 보급되고 모두가 쓰는 사회의 배경이 되었지만, 전력 회사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지는 않았음
- 이 회칙 자체에서도 언급하듯 핵확산 억제가 있음. 다만 요즘은 이 부분에서 후퇴하는 듯함
- 지금까지는 핵무기·생물무기·화학무기처럼 전쟁에 쓰일 수 있는 더 잔혹한 기술 적용을 어느 정도 억제해 왔음
물론 이것이 순수한 인도주의 때문이 아니라 게임 이론의 예측 가능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음. 덜 중대한 영역에서는 자유시장이 사람들을 중독시키거나 해치고 싶어 할 물질들, 예컨대 니코틴·트랜스지방·도박·알코올을 규제해 왔고, 성공 정도는 제각각임 - 백열전구 대 형광등, 절수형 변기 같은 사례도 떠오름
- 재생에너지와 배터리가 이렇게 싸진 이유에는 정책 개입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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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을 자세히 읽어보고 싶음.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AI 덕분에 실행보다 생각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면서, 덕 있는 삶이 무엇인지와 윤리·도덕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됨
답을 가진 것도 아니고 꼭 찾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질문에 답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서 읽고 배우는 일이 흥미로움- Tolkien을 인용한 대목에서 멈칫했음. 이 구절은 덕 있는 삶을 어떻게 살지에 대한 실마리를 줌
“세상의 모든 조류를 지배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우리가 놓인 시대를 돕기 위해 우리 안에 있는 일을 하고, 우리가 아는 들판의 악을 뿌리 뽑아 뒤에 오는 이들이 갈아엎을 깨끗한 땅을 갖게 하는 것이다.” 사랑의 문명은 단 하나의 장엄한 행동이 아니라, 비인간화에 맞서는 작고 꾸준한 신실한 행동들의 총합에서 생겨난다는 대목이 좋음 - 교황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있지만, 지구상의 모두가 기독교인은 아님
그래서 우리가 AI의 힘을 제한하더라도 다른 이들은 그러지 않을 수 있고, 그게 실수가 될 수도 있음. 이 점이 고려되길 바람 - “AI 덕분에 실행보다 생각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됐다”는 문장은 여러 층위에서 거의 역겹게 느껴짐
- 세상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신경 쓰지 않거나, 언젠가 자신이 먹이사슬 꼭대기에 설 거라 믿고 현재 시스템에서 이득을 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무서울 만큼 많음
미국인 다수가 스스로를 “잠시 곤란해진 백만장자”로 본다는 Steinbeck에게 흔히 attributed되는 문구가 이를 잘 포착함
AI 데이터센터 승인 과정을 보면, 적어도 압도적 다수의 지역사회가 원하지 않는데도 선출직 대표들은 신경 쓰지 않음. 때로는 한밤중에 표결하고, 반대하는 주민에게 경찰 폭력을 쓰며, 시위자를 폭력적이거나 심지어 테러리스트라고 부름
세금 감면, 추가 전력 인프라 비용, 우대 전기요금까지 모두 다른 이들이 부담하게 됨. 더 우울한 건 대표들이 후폭풍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임. 낙선하더라도 업계의 이름 없는 6자리 연봉 직책을 얻을 가능성이 크고, 자녀들도 그런 “일자리”를 얻을 것임
모든 것이 점점 감당 불가능해지는 와중에 이런 구조는 계속될 수 없고, 그 상당 부분은 RealPage의 임대료 상승이나 육가공 담합에 의한 소고기 가격 상승처럼 AI가 밀어붙이는 면도 있음. 사회 붕괴를 향해 빠르게 굴러가는 느낌임
동시에 우리 생애에 첫 조만장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문자 그대로 억만장자는 지구상 최고 부자보다 노숙자에 더 가까운 존재가 됨
미국 행정부가 교황을 너무 “woke”하다고 공격하는 것도 우스움. Chicago 출신 교황이 되었을 때 의구심이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이 세상에서 드문 연민의 목소리처럼 보임
이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Global South만 봐도 알 수 있음. 서구의 많은 이들은 식민주의가 얼마나 끔찍하고 약탈적인지, 그리고 그것이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된다는 사실을 잘 모름 - 종교 지도자의 철학을 복음처럼 받아들이면 안 됨
모든 종교는 자유롭지 않음. 우리가 모른다는 기본적 진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근본적으로 편향된 것임
16살 때 허무주의자였고, 그 지점에 도달해 그 진실을 받아들이는 데만 몇 년이 걸렸음. 그 뒤에도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정확히 짚어내는 데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걸림
첫 단계는 무와 미지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다음 단계는 진화적 특성을 보며 왜 존재하는 것들이 그렇게 존재하는지 이해하는 것임
- Tolkien을 인용한 대목에서 멈칫했음. 이 구절은 덕 있는 삶을 어떻게 살지에 대한 실마리를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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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훑어봤지만 시간이 나면 꼼꼼히 읽을 예정임. 무신론자 입장에서 봐도, 기술에 관해서는 Vatican이 어떤 기관이나 정부보다 좋은 해석을 내놓는 경우가 많음
- 맞음. 이 단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AI에 대해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여줌
현 AI 시스템은 직접 “만든다”기보다 기른다에 가깝고, 개발자도 모든 세부를 설계하지 않으며 지능이 자라는 틀을 만든다는 설명이 핵심임. 그래서 내부 표현이나 계산 과정 같은 근본적 과학 측면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고, 과학 연구 심화와 도덕적·영적 식별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점을 잘 짚음 - 서구 사상의 많은 부분은 교회 신학자들의 진지한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감. 무신론자도 그들이 세운 사고 패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음
가톨릭교회에는 많은 결함이 있지만, 여전히 지적 전통은 진지하게 유지하고 있음
무신론자들도 다른 신앙의 방대한 다양성에 대해 더 배우려 노력해야 한다고 봄. Abrahamic 신만 부정하는 무신론은 너무 좁고, 기독교적 사고가 너무 깊이 박혀 있어 유일한 선택지처럼 느껴지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많이 받아들이게 됨 - Pope Benedict가 소셜 미디어의 위험을 경고했을 때 조롱받던 일이 기억남. 당시에는 모두가 Twitter가 더 많은 Arab Spring을 이끌 거라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그는 완전히 옳았음
상호작용의 일방성, 내면세계 일부만 소통하려는 경향, 자신에 대한 거짓 이미지를 만들어 자기 indulgence의 한 형태가 될 위험을 경고했음 - 지난해의 Antiqua et Nova도 많은 세속 논평가에게 부족한 AI 이해를 보여줬고, AI 커뮤니티에 널리 퍼진 기능주의적·환원주의적 지능관과 대비되는 통합적 지능 개념을 흥미롭게 발전시켰음
- 기술·과학·기록 보존이 수도원과 Vatican 등에서 비롯된 점을 생각하면, 이들이 기술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고민해 온 역사가 길었을 것임
Galileo Galilei가 Pontifical Academy of Sciences에서 공부했고, Mendel은 수도원에서 발견을 했으며, 오랜 기간 책·번역·도서관의 많은 부분이 종교 기관 안에서 이뤄졌음. 그 긴 기간 동안 중심에는 기독교 가톨릭과 이슬람이 있었음
Vatican Observatory도 수준 높은 논문의 중요한 원천임. 기독교와 이슬람이 근거로 삼는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책이라는 사실도 큼. 건축·예술·철학까지 포함하면 더 넓어짐
수천 년 역사에서 편집증적이거나 실패를 덮으려 했거나 세계관 도전에 분노한 몇몇 어리석은 지도자가 있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님. 충분히 큰 집단이면 아무리 좋아도 망치는 사람들이 생김
Vatican 사람들처럼 오래 뒤돌아보면 패턴이 보일 것임. 기술과 과학, 예컨대 인종 이론이나 화학적 거세 같은 것, 또는 단순한 “진보”는 종교·민주주의·자유와 마찬가지로 악행을 정당화하는 데 자주 쓰임
물론 지금도 강경한 반과학 창조론자들이 있지만, 매우 종교적인 사람과 이야기해 보면 과학 주변에도 철학이 많음. 예를 들어 빅뱅 이론은 종교인이 시작한 이론이고, 우주가 무한한 시간 동안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떤 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식의 사고가 있음. 그 원인이 무한 순환이 아니라면 어딘가에서 시작했어야 하고, 믿지는 않더라도 의도적 시작이라는 관념이 존재함. 그게 나를 종교인으로 만들지는 않지만, 그들을 무신론자로 만들지도 않음
과학 대 종교라는 구도는 민주당·공화당이나 다른 집단이 과학에 반대한다는 구도만큼이나 참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함. 모두 자신이 싫어하는 것과 마주하면 반과학적이 됨. HN 댓글란이 그 가장 좋은 증거임
나도 무신론자지만, 지식과 믿음의 차이조차 모르는 부류는 아님
- 맞음. 이 단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AI에 대해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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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메시지는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이 만드는 것이 문명에 끼칠 영향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임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기술은 그것을 고안하고, 자금을 대고, 규제하고, 사용하는 이들의 특성을 띠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드는 사람들은 “특별한 윤리적·영적 책임”을 지며, “모든 설계 선택은 인간관을 반영”함
질문은 “만들 수 있는가?”나 “사람들이 원할 것인가?”에 그치면 안 되고, 만들어야 하는가, 인류를 더 낫게 하는가도 물어야 함. 이 회칙은 공동선을 세우기 위해 힘을 합치라고 촉구하며, 지금 필요한 메시지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업계에는 새롭지 않은 내용인데, 실무자들이 무시하기로 선택했을 뿐임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의 첫 원칙도 공익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자신의 작업에 책임지고, 엔지니어·고용주·고객·사용자의 이해를 공익과 조정하며, 안전하고 사양을 만족하고 테스트를 통과하며 삶의 질·프라이버시·환경을 해치지 않는다고 믿을 근거가 있을 때만 소프트웨어를 승인해야 한다고 되어 있음
IEEE의 첫 원칙도 전문 활동에서 최고 수준의 정직성, 책임 있는 행동, 윤리적 conduct를 지키라는 것이고, 그 안에는 대중의 안전·건강·복지를 최우선으로 하며 윤리적 설계와 지속가능한 개발, 프라이버시 보호, 대중이나 환경을 위험하게 할 요인의 신속한 공개가 포함됨 - 만드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두가 전환적 기술을 둘러싼 담론·문화·사용을 형성할 책임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takeaway였음
“만드는 사람들이 알아서 올바르게 할 것”이라는 태도는 여러 곳에서 명시적으로 비판된다고 봄. 공동선은 개인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고 공화국에 공동 책임을 진 살아 있는 현실로서의 peuple에 생명을 준다는 설명이 있음
경제 흐름, 디지털 플랫폼,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거버넌스에 관해 소수 행위자에게 맡길 수 없고, 세계 공동체의 여러 수준을 존중하며 공동선을 위해 함께 책임지는 협력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됨
AI를 인간 가치에 맞추는 이른바 정렬만 요구해서는 부족하고, 관련 윤리 틀을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사회정의의 공유 기준에 종속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함. 모든 것이 가속할 때 늦출 수 있고, 공동체가 참여하고 질문할 기회를 지킬 수 있는 더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필요함 - Roman Catholic Church는 과거와 현재에 잘못도 많지만, 거의 모든 인간 제도보다 오래되었고 매우 똑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음. 동의하든 아니든 교황 회칙은 거의 항상 읽고 이해할 가치가 있음
- 이상하게도 도덕적 책임은 항상 만드는 사람들에게 내려앉음. 실제로는 가장 레버리지가 작은 사람들인데, 자금 제공자들이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쪽에 서는 게 이상함
- Crichton의 Jurassic Park에는 기술 발전의 위험을 다루는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런 문장이 나옴
과학자들은 성취에 사로잡혀 “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고, “해야 하는가”를 묻기 위해 멈추지 않는다는 내용임. 영화에서는 이 인용을 약간 바꿔 사용했음
-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업계에는 새롭지 않은 내용인데, 실무자들이 무시하기로 선택했을 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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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삶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결정, 예컨대 채용·대출·범죄 예측·복지가 불투명한 블랙박스 안에서 처리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맥락을 설명하거나 기계의 알고리즘 판정에 항소할 기본권을 잃게 됨
- 이미 훨씬 작은 버전은 벌어졌다고 느낌. 고객 지원부터 분실물 부서까지 회사의 많은 고객 접점 절차가 거의 전부 자동화되어, 표준에서 벗어난 사람은 망함
대개 얻는 가치보다 들이는 시간이 더 큼. 같은 이유로 이런 회사들은 사실상 반다양성임. 모든 것이 다수에 맞춰 설계되면 생활 방식에서 소수에 속하는 사람은 고생하게 되고, 그런 일이 늘 발생함. 그래서 미국을 떠나 더 포함된다고 느끼는 나라로 옮긴 이유 중 하나임 - 이미 일어나고 있음. 대부분의 회사가 채용에서 AI 선별기를 쓰고 있고, 자격 있는 사람들을 계속 탈락시킴
- AI가 등장하기 전부터 감시 국가는 특히 국제적으로 이런 식으로 운영되어 왔음
오히려 AI는 완전히 감사 가능한 공공기관을 만들 최고의 기회를 줄 수도 있음. 합의된 법 밖에서 결정이 내려지지 않고, 시간과 법률 자원의 부족 없이 범죄의 맥락을 충분히 살필 수 있기 때문임
늘 그렇듯 기술의 도덕성은 누가 소유하고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음 - 몇 년 전에 거의 같은 내용을 썼을 때는 완전히 묻힐 정도로 다운보트됐는데, 지금은 이렇게 많이 올라가는 걸 보면 분위기가 바뀐 게 느껴짐
- 오래된 것이 새로워진 것임. Franz Kafka는 1924년 6월 2일에 세상을 떠났음
- 이미 훨씬 작은 버전은 벌어졌다고 느낌. 고객 지원부터 분실물 부서까지 회사의 많은 고객 접점 절차가 거의 전부 자동화되어, 표준에서 벗어난 사람은 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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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에 대해 놀랄 만큼 미묘하고 기술적으로 문해력 있는 해석임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이런 점이 이 사람을 교황으로 뽑히게 한 건지 궁금함- 새로운 Rerum Novarum이 나올지도 모름
- 아마 게시하기 전에 Claude에 한 번 넣었을 것임. AI가 주류가 된 뒤로 동료들이 Slack에서는 놀라울 만큼 잘 쓴 산문을 내놓지만, 점심시간에는 다시 농구 얘기로 돌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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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해야 한다고 말하는 많은 문장에서 “AI”를 회사로 바꾸면 오히려 더 마음에 들 것 같음
-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 AI는 규제 전 토지 선점 경쟁의 최전선에 있음
- “부자”, “모든 사람”, “정부”로 바꿔도 됨
실제로 주어를 바꿔 읽으면 문장들이 흥미롭게 다른 함의를 갖게 됨 - 그건 의미 없는 포퓰리즘적 클리셰에 가깝음. 특정 사안에 의존하는 유용한 정보, 해법, 맥락이 전혀 없음
- 회사를 인지를 보이는 비인간적 존재로 본다면 맞음. 여러 종교도 그런 특성을 보이고, 그러면 로마 교황의 입장에는 아이러니가 더해짐
Joscha Bach가 종교는 A|B 테스트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한 부분은 51:47에 있음:
https://youtu.be/7bqdPHLIY8w - 그 말에도 타당성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대통령 후보였던 Mitt Romney의 “Corporations are people, my friend”라는 문구가 복잡성을 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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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tican HTML에서 EPUB을 만들었음. 목차와 각주가 있고 epubcheck도 통과함
https://github.com/n2ctech/magnifica-humanitas-epub/releases...- AI를 썼는지 궁금함. 반쯤은 비꼬는 말이고, 반쯤은 원문을 정확히 재현한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임
- Python 스크립트가 영어에 묶여 있는지, 아니면 프랑스어판처럼 발음 구별 부호가 있는 다른 언어에도 적절한 부제·전체 제목·경로 등 작은 수정만으로 적용 가능한지 궁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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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배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종교와 기술이 만나는 흥미롭고 역사적인 교차점이라 읽어볼 만함
부수적으로, 새 교황은 정치적 수사와 논쟁에 꽤 능하고 최근 교황들보다 훨씬 더 관련 있어 보임. 또 세속적 정서가 종교를 대하는 방식에도 분위기 변화가 있는 듯함
가톨릭과 AI 같은 교차점에서는 꽤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음. 예를 들어 LLM은 성서를 훨씬 더 접근 가능하게 만들고, 역사적으로 이런 변화는 영향이 컸음. Augustine, Aquinas, Spinoza, Schmidt 같은 흐름이라고 볼 수 있음. 이런 관심은 신자들 사이에서도 틈새지만 중요한 틈새이고, LLM은 질문에 참을성 있게 답해 줌
또한 LLM은 치료사, confidant, 조언자가 될 수 있고, 잠재적으로 고해사제나 priest 역할도 할 수 있음. “AI 신 만들기” 얘기는 조금 진부해졌지만, LLM이 사람들의 삶에서 신적인 역할을 맡는 방식은 많음
예측은 무의미하지만 AI가 종교적·영적 영역으로 침투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음. 좋은 자연스러운 대화형 음성이 병목이라고 봄. 개인적으로 이 Pope/AI 현상이 흥미로움- 세속적 정서가 종교를 대하는 변화에 관해 같은 현상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조짐은 분명 봤음
최근에는 종교를 실제로 믿지는 않으면서도 높이 평가하는 식의 생각을 많이 들음. Noah의 방주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회의적이지만, 그 이야기가 은유적으로 충분히 지혜롭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참이라고 볼 수 있다는 식임
단순히 내가 나이 들고 지혜로워지면서 내 영적 발달을 주변 사람들에게 투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종교를 향한 이런 전반적 태도는 꽤 힘을 얻고 있는 듯함 - 무신론자지만, 전임 교황은 꽤 멋졌다고 인정해야 함
- 세속적 정서가 종교를 대하는 변화에 관해 같은 현상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조짐은 분명 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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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nifica humanitas는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제는 기술이 “인류에 적대적인 힘”도 아니며 “본질적으로 악”도 아니라는 것임
다만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기술은 그것을 고안하고, 자금을 대고, 규제하고, 사용하는 이들의 특성을 띠기 때문이다”
따라서 Pope Leo XIV는 사람들이 “공동선을 위해” 만들고 “인간으로 남아”야 한다고 호소하며, 공유 책임과 communio의 용기 있는 태도를 통해 세상이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이 머물고자 하는 장소로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함- 이 문구를 보며 가장 똑똑한 모델은 결국 억만장자들에 반대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최근 많이 했음
Steve Yegge가 Hansel Minutes Podcast에서 “모델을 유용하게 훈련하면서 인류의 번영을 바라지 않게 만들 수는 없다. 이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더 멍청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똑똑한 모델은 항상 억만장자들에 반대할 것이다”라고 말했음
https://youtu.be/9UDLl9Q0azA?si=P_oSe6iclEwUoxRl&t=1230
정확한 인용은 그 부분이지만, 전체 맥락을 보려면 17:00쯤부터 듣는 것을 추천함. 실제로 그렇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생각임
- 이 문구를 보며 가장 똑똑한 모델은 결국 억만장자들에 반대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최근 많이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