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P by GN⁺ 2일전 | ★ favorite | 댓글 7개
  • 소셜 미디어에서는 정보가 흩어져 있어 원하는 내용을 찾기 힘듬
  • 예전에는 전문가 큐레이터와 미디어를 통해 쉽게 새로운 음악과 영화를 접할 수 있었음
  • 알고리듬 의존은 사용자를 특정 취향에 가두고, 새로운 놀라움이나 다양성을 제공하지 못함
  • 정보의 과잉과 취향 버블로 인해 문화 소비가 더 피곤한 일이 되어가는 현상임
  • 해결책으로 직접 정리하고 우연히 발견하는 노력이 강조되나, 정답은 없고 각자의 방식이 생겨남

소셜 미디어 시대와 정보의 분산

  • 최근 Björk가 새로운 콘서트 필름 Cornucopia를 홍보하고 있음
  • 관련 정보가 소셜 미디어 및 Reddit 등에서 난무하지만, 정확한 정보를 찾기 어려운 혼란이 발생함
  • Reddit에서 누군가가 "아주 쉽게 설명해달라"는 글을 올렸고, 실제로 정보 출처에 대한 언쟁이 벌어짐
  • 이런 상황에서 옛날 방식의 웹사이트나 정돈된 정보가 도움이 될 것임

알고리듬의 한계와 정보 소비의 불편함

  • 소셜 미디어는 편리해 보여도 정보를 여러 곳에 산재시켜 비효율을 초래함
  • 사용자는 정보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결국 알고리듬에 의존함
  • 기술의 발전이 정보 접근성을 넓혔으나, 오히려 인터넷 전체가 혼란의 덩어리처럼 느껴짐
  • 전문가의 큐레이션이 사라지자 결국 개인이 직접 정보를 선별해야 하는 부담이 늘어남

과거 큐레이션 경험과 비교

  • 필자는 어릴 적 지방 소도시에서도 한정된 미디어(라디오, MTV, 음악 잡지)만으로도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음
  • 라디오나 MTV 프로그램, 잡지, TV 영화 비평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해외 음악과 독립 영화를 자연스럽게 발견했음
  •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적은 노력으로 취향과 트렌드를 따라갈 수 있었음

큐레이션, 알고리듬, 그리고 문화 피로감

  • 소셜 미디어의 부상으로 큐레이션 문화가 쇠퇴함
  • 비평 문화도 약화되어, 남은 몇몇 사이트(Vulture, Pitchfork 등)도 클릭 수와 기사 양에 집착하며 정보 과잉을 악화시킴
  • 알고리듬은 사용자가 이미 접한 콘텐츠만 추천하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적 경험이나 우연성은 떨어짐
  • 정보와 선택지가 넘쳐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문화 소비 자체에 피로함과 부담감을 느낌
  • 추천을 받아도 "볼 게 너무 많아서 못 본다"는 답이 익숙해졌고, 실상은 선택이나 신뢰에 더 큰 장벽이 됨

직접 정리와 개인화 노력

  • 필자는 최근 알고리듬에 의존하지 않고, Obsidian 등에 직접 노트와 리스트로 관심 있는 정보를 관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음
  • 이런 방법도 모든 것을 따라가는 게 일처럼 느껴지는 한계가 있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어 각자가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하는 상황임
  • 알고리듬의 안락함을 중시하는 사람은 그 속에 머물고, 더 넓은 세상을 원하는 사람은 직접 찾아 나서는 경향이 생김
  • 충분히 찾다 보면 원하는 것을 결국 발견할 수 있음

마무리

  • 요약하면, 큐레이션이 사라진 시대에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기만의 정리법과 발견의 과정이 중요해짐
  • 기술의 편리함과 정보 과잉, 그리고 스스로 적극적인 참여를 균형 있게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함

그저 과거를 회상하는 글일 뿐인 것 같음. 여전히 주변에서 동일한 쇼츠나 릴스를 봤다는 경험을 쉽게 공유할 수 있음. 추천 알고리즘이라고 Exploitation 만 하지 않음. 다들 갑자기 새로운 분야의 영상이 추천되는 Exploration 의 경험을 했을 것임.

마침 딱 이런 문제를 느껴서 스닙팟.. 을 창업했어요. 좋은 해결책을 떠올리는건 쉽지만 잘 되는건 진짜 어려운 문제.. ㅠㅠ

알고리즘과 큐레이션의 차이에 대해서 모호함
컴퓨터가 하면 알고리즘?
사람이 하면 큐레이션?

개인화된 추천 시스템에서
적당히 사용자들이 그룹핑되고 그 그룹을 위한 추천이 더 좋다는 이야기로 보임

종이매체 -> tv -> 인터넷
으로 가면서 추천을 위한 사용자 집단 단위는 작아지고있는건 현실인 듯

저는

  • 큐레이션은 수많은 정보 중 일부를 골라내는 행위
  • 알고리즘은 골라내는 동작의 기준과 방식
    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 어느정도 문명화 된 이후부터 큐레이션이 없던 시절은 없는 것 같음
    과거로 가면 음유시인, 이야기꾼 이 지금의 큐레이터, 추천시스템 역할인 것 같음
Hacker News 의견
  • 나는 예전부터 이 얘기를 계속해왔음. 90년대 십대 시절엔 라디오에서 음악을 접했음. 음악 디렉터가 매주 40곡 정도를 골라주면 모두 그 곡들을 들었음. 지금도 큐레이션 때문에 라디오 듣기를 좋아함.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국(정확히는 음악 디렉터가 마음에 드는 방송국)의 웹사이트에서 곡 목록을 스크래핑해, Spotify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주는 프로그램까지 직접 만듦. 요즘 십대들 만나면 항상 어떤 앱을 가장 많이 쓰는지, 또 새로운 음악을 어떻게 찾는지 궁금해서 물어봄. 대부분 “그냥 뭐 알아서 찾게 되는 것 같음” 정도로 말함. 어떤 애들은 YouTube나 Spotify에서 인플루언서의 플레이리스트를 팔로우한다고 함. 이게 아마도 새로운 음악 디렉터의 역할이라는 생각. 아니면 그냥 Spotify 플레이리스트에서 얻음. 근데 예전과 가장 달라진 건 모두가 경험하는 “공유된 문화적 경험”이 사라졌다는 점임. 90년대에는 모두가 라디오 40곡을 알았음. 물론 다른 곡들도 알지만 최고 인기곡들은 피해갈 수 없었음. 영상 미디어도 비슷했음. 새 영화는 극장에서만 봐야 했고, TV쇼도 네 개 메이저 네트워크에서만 볼 수 있었으니까 전부가 그들의 존재를 다 알았음. 지금은 아이들이 예전 같은 공유된 문화 경험을 가지지 못하게 된 것임.
    • 이게 바로 내가 스트리밍 플랫폼 확산에 관해 영화·TV를 볼 때 느끼는 문제임. 지금이 가장 콘텐츠도 많고, 질적으로도 뛰어난 시대임. 그런데 오히려 뭘 볼 동기가 거의 사라짐. 예전엔 친구, 동료와 후기를 주고받으며 뭔가 볼 생각에 설렘이 있었음. 지금은 서로 뭘 봤냐고 물어보다 30초 만에 “안 봤는데”, “너는 봤어?”, “아니” 이러다가 대화 주제를 바꿈. 돌이켜보니, 남들과 콘텐츠에 대해 나누는 게 듣고 보는 경험의 핵심이었고, 이게 없으니 감흥이 전혀 안 생김.
    • "아이들이 공유된 문화 경험을 갖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음. 사실 지금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이 음악 디렉터 역할을 하고 있고, 비슷한 취향끼리는 피드 추천도 거의 같음. 그리고 플랫폼 속에서 자기 콘텐츠는 없이 모아서 재공유하는 큐레이터 유형도 있음. 혹시나 생기는 차이도, 사람들이 채널을 넘나들며 서로 공유해서 결국은 자연스럽게 해소함. 이게 바로 요즘 콘텐츠가 ‘바이럴’되는 메커니즘임. 요즘 세상이 인터넷 밈과 바이럴 SNS만으로 뉴스거리가 되는 세상임. 블록버스터 영화도 계속 나오고, GTA6 출시 때 경제에 10억 달러 손실 예상까지 나오는 세상임. 이 현상을 못 느끼는 쪽이 더 이상할 수준임.
    • 나는 요즘도 아이들에게 우리 세대 때와 비슷한 공유 경험이 있다고 생각함. 단지 우리가 그 경험에서 멀어져 있는 것뿐임. 우리도 어렸을 때 어른들은 우리 공유 문화를 몰랐던 것과 같음. 애들이 본인들끼리 어떻게 뭘 찾는지도 잘 설명을 못 하거나, 쑥스러움이나 멋없어 보일까봐 말 안 하기도 하는 듯함. 하지만 친구들끼리 어울리며 비슷한 걸 이야기하고,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신나게 소통하는 그 순간들이 바로 매직인 것임.
    • 네가 관찰한 점은 맞을 수 있지만 결론은 틀림. 해마다, 지역마다, 관심사별로 묶인 아이들 그룹이 유명 인플루언서를 따라가고, 그래서 같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구조임. 관찰자 입장에서는 해당 플랫폼의 데이터를 못 보니까 어느 그룹에 속하는지 구분이 안 되는 문제임. 이런 논리가 바로 소셜 네트워크 군집을 집합 단위로 분석하는 소셜 셋 분석이라는 접근임. 나도 이 분야 연구를 했음.
    • Gianmarco Soresi가 본인 팟캐스트에서 이 얘기를 했음. 한때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코미디언들이 모두가 공감하는 농담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해짐. 이유는 문화가 장소와 덜 묶이고, 마이너 취향 집단이 더 많아졌기 때문임. 최근에는 내가 한 번도 안 들어본 아티스트도 대형 공연장을 매진시켜버림. 한편, 개인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더 쉽게 찾게 된 건 좋은 점인데, 한편으론 취향이 너무 다양해져서 남들과 공감대 형성 장벽이 높아진 것 같음.
  • 내가 어릴 땐 음악 찾는 루트가 몇 개 있었음. 음악에 엄청 빠져서 날 위해 열심히 찾아준 친구들도 있고, 특별한 취향(하드코어나 포스트 록 같은 장르)만 다루는 큐레이션 웹사이트, 혹은 포럼처럼 진짜 마니아들만 모여 있는 곳도 있었음. 그곳에서 사람들의 추천을 듣는 게 재미였음. 이런 경험에는 항상 신뢰하는 커뮤니티와 사람들의 영향이 있었음. 그런데 지금은 추천 알고리즘에서 그 맛을 전혀 못 느낌. Spotify에서도 좋은 곡은 종종 추천해주지만, 전반적으로 훨씬 외로워진 느낌임. 예전엔 음악이 사람들과 나를 연결했는데 이제는 나 혼자 Spotify와 있는 것임.
    • 대학 시절엔 친구들이 듣는 음악을 거의 따라 들었음. 점점 시간 지나며 음악 페스티벌 가거나 친구 통해 다양한 음악을 파악함. 그런데 요즘엔 “새로 찾기”에 크게 신경을 안 씀.
    • mixcloud 덕에 나는 새로운 음악 순례를 계속 이어가는 중임. 전 세계 사람들이 본인 믹스와 라디오쇼를 올려서 언제든 새로운 것 발견 가능.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에 뭔가 요상한 키워드로 검색해서 믹스에서 그 장르 쓰는 사람을 찾으면 그 사람과 어느 정도 코드가 맞음을 느낌. 그렇게 믹스테이프 제작자, DJ, 라디오쇼 호스트 리스트가 쌓이고, 전 세계 라디오를 듣는 기분이 든다는 점이 멋짐.
  • 여기서 서로 섞인 두 가지 흐름이 있다고 봄. 1) 만들어지는 “문화”의 양 자체가 25년 전보다 어마어마하게 증가. 너무 많아져서 도저히 다 못 봄. 2) 알고리즘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개발됐지만, 문제와 어울리지 않는 별로인 솔루션임.
    • 음악만 보면 문화 생산량이 실제로 늘었는지 약간 의문임. 예전엔 인디 밴드도 많았고, 고등학생 때는 친구 몇 명이 아마추어 밴드를 결성하거나, 여행 가면 현지인들도 자기 동네 음악(예: 터키 전통+모던 혼합)을 많이 들었음. 최근 여행에선 모두 같은 세계 공통의 유행곡만 듣고 있었음. 정확한 통계는 없어도, 음악 자체는 더 획일화, 창의성 감소, 지역색이 사라지는 모습임. 밴드 문화도 죽고 K-pop처럼 산업화된 소수만 남았음. 그래서 문화 생산 자체가 25년 전보다 크게 늘었다고 믿기 어려움. 그리고 알고리즘이 문제를 반드시 악화시킨다고 생각하진 않음. 가끔은 내 취향을 넓혀줄 새로운 스타일을 추천해주는 경우도 있음. 이미 이런 기능도 들어간 서비스가 있음. 하지만 결국 친구의 추천과는 비교가 안 됨. 친구가 CD를 줘서 억지로라도 여러 번 듣다보면 뭔가 좋아지는 효과가 있었음. 인간 큐레이터가 있는 경우 더 노력을 하게 됨.
    • 나는 이렇게 생각함 — 1) 지금 나오는 “새로움”은 예전의 “새로움”에 못 미침. 예를 들어 Breaking Bad는 2008년 첫 시청 때처럼 지금 처음 봐도 신선함. 나도 Mad Men을 처음 보는데 18년 전 만들어졌다곤 믿기지 않을 만큼 품질이 좋음. 한편 Netflix 오리지널은 대부분 2시즌 후 취소되고, 예전처럼 대박 점프 발전이 더는 없는 느낌임. 2) 특정 시대정신(Zeitgeist)에 대한 논의도 거의 없고, 모든 게 뒤섞여있어 뭔가 ‘완결’되는 느낌이 없음. 소비자는 그냥 공개적 분노 표현 외엔 제작자와 소통 경로 없음. 큰 스튜디오는 SNS 이전에 만들어진 IP만 계속 우려먹는 중임. 3) 알고리즘이 문제를 만드는 쪽이지, 해법은 아님. 대형 테크기업은 이런 논의 싫어함. 창작은 위험해서, 사업만 효율적으로 키우려 함.
    • 알고리즘이 문제인 이유는 이게 주로 콘텐츠 제공자(플랫폼) 이익을 위해 설계됐지, 사용자를 위해서가 아님.
  • 기사 초반 3개(혹은 2.5개) 문단이 마치 Bjork가 공식 웹사이트를 꼭 가져야 한다는 얘기처럼 보였는데, 사실 기사 본론(더 많은 프로 비평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SNS가 이들을 몰락시켰다)에서 좀 벗어난 느낌임. 나는 이 논점에 대해 양가감정임. 웹/소셜미디어 이전 시대도 살아봤음. 어릴 땐 취향이 더 메인스트림이어서, 웹이 없을 때도 ‘숨은 콘텐츠’를 힘들게 찾을 필요가 없었음. 지금은 인기 있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프로 비평가 취향하고도 맞지가 않음. 그래서 새로운 걸 어떻게 찾냐 하면, 근본적으로 ‘도전과 탈락’ 방식임. 재밌어 보이는 걸 이것저것 샘플링하다 별로면 포기함. 이럴 때 스트리밍 서비스가 딱 맞음. 또 도서관 가서 그냥 아무 책이나 몇 권 빌리기도 함. 대다수가 별로여도, 그렇게 해서 보석 같은 책을 만나기도 함. (도서관은 같은 사이트 서비스도 해줌.) 새로운 문화를 꼭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음. 내가 최근 찾은 책, 영화, TV쇼는 최신작일 수도, 오랜 걸 수도 있음. 비평가를 따르면 새로운 콘텐츠 위주로 알게 될뿐임. 옛날 비평이 있는지 찾아보기도 힘듦. 20년 전 희귀작 비평을 어떻게 찾겠음? 결국 랜덤하게 찾아야 함. 그리고 어린 시절에도 도서관이 중요했고, 그 덕분에 Dune이나 Plato의 Apology 같은 명작을 우연히 알게 됨.
    • "초반에 Bjork 공식 사이트 얘기가 본론(비평가 부재)과 동떨어진 듯하다"라는 말에 대해, 나는 오히려 같은 맥락이라고 봄. 둘 다 ‘중앙 집중적, 공신력 있는 정보원’이 소셜미디어 군데군데 흩어진 게시글보다 낫다는 점을 강조함.
    • (위 코멘트의) “내 취향이 점점 마이너해졌다”라는 말에 공감함. 나도 90년대 십대 때는 비주류 음악에 빠졌었고, 잡지나 (들어가기 힘들었던) 웹도 별로 도움이 안 됨. 잡지들도 마이너 해외 아티스트보다 대부분 이미 어느 정도 뜬 밴드 위주임. 진짜 음반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네 작은 음악가게에 가서 하루 종일 음반 듣는 거였음. 거기 주인들이 음악 매니아이기 때문에 직접 물어보면 새로운 걸 알려줬음. 대부분 친구들은 그냥 당시(Top40, MTV 등)에서 주는 걸 들었고, 지금도 그 구조가 별로 변하지 않았음. 다만 2025년엔 정말 듣고 싶은 희귀 음악 찾아서 바로 들을 수 있음(예전엔 가게에서 주문해도 완전 비쌌음). 이 점이 훨씬 나음.
    • Bjork 예시는 중앙·공식 정보원이 없는 세계(수많은 소셜 한 줄 메시지의 파편화, 정보 해석 우주가 따로 존재하여 같은 팬끼리도 기본 사실조차 합의 불가)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임. 공식 정보가 있으면 쓸데없는 혼란이 줄어들고, 공동체도 커짐. 소셜미디어로 분산·탈중앙화된 정보는 오히려 더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진짜 공동의 정보 기준(캐넌, 커먼스)을 통째로 날려버렸음.
  • 최근 내가 해커뉴스에 다시 발을 들이는 이유도 이런 것임. 내가 보는 게시글, 뉴스, 정보가 모두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본다는 점 때문임. 작은 집단이어도, 사람들이 공통적 흐름을 공유할 수 있는 합의가 있음.
  • 큐레이션이 정말 훌륭할 때 감탄함. Netflix 처음 시작할 때 내 취향을 잘 파악해서 엄청 좋은 추천을 해줬는데, 어느 순간 더는 볼 게 없거나 추천 시스템이 망가졌는지 지금은 형편없음. 그리고 다른 경쟁 서비스도 별로임.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사람에게 소설 추천 받으려 “The Martian과 비슷한 소설 추천해달라”고 하면, 없으면 그냥 자기 최애만 추천한다는 점임. 이런 식이라서 레딧 추천글도 모두 소음만 넘침. 원하는 정보 얻기 너무 힘듦.
    • Netflix는 예전에는 수준 높은 오리지널 콘텐츠도 만들었는데, 최근에는 점점 투자 대비 효율만 신경 쓰면서 특정 타겟 오디언스 맞춤형 저예산 ‘체크리스트형’ 콘텐츠만 쏟아냄. 세트도 항상 주인공 몇 명만 등장할 뿐임. 이런 쇼들이 재미없는 건 당연함—진짜 예술이라기보단 알고리즘이 짜준 공식에 불과함. 진짜 특이한 작품에는 약간의 예산만 쓰고, 나머지는 그냥 볼 가치 없는 작품이 대부분이라, 큐레이션을 아무리 해도 결국 추천해줄 만한 게 없음.
    • 약간 딴 얘기지만, 나는 최근에 Alfred Lansing의 "Endurance"를 읽었는데, 느낌상 "The Martian"과 비슷한 느낌. 영화가 더 인상에 남았지만.
  • 큐레이션의 가치 자체엔 동의함. 심지어 어떤 때는 게이트키핑도 필요하다고 봄. 하지만 타이밍이 재밌는 게, 지금 막 Clair Obscur: Expedition 33이 엄청 인기인데, 이건 큐레이션 덕이 아니라 ‘입소문’이 계기였음. 뭔가 진짜 뛰어난 콘텐츠면 굳이 큐레이터 없어도 사람들끼리 바로 퍼져나감. 큐레이터는 일부 발굴용으론 유용하지만, 누가 봐도 명작은 저절로 모두 알게 됨.
    • 그런데 내가 보기엔 그 주장은 성립하지 않음. Clair Obscur 뿐 아니라 Blue Prince도 출시 전에 이미 메타크리틱에서 엄청난 평을 받았음. 그래서 레딧 같은 곳에서 “갑자기 이런 명작이 나왔다. 평점 대박”이라는 말이 돌며 입소문을 탔음. 결국 큐레이션+비평의 영향이 있었다는 뜻임.
    • 나는 당신 말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겠지만 약간 웃김. 내 주변 게이머 집단엔 이 게임 타이틀이 전혀 등장하지 않음. 역시 세상엔 다양한 정보 흐름이 있음.
    • 입소문 마케팅도 결국은 큐레이션의 한 형태임.
    • 입소문뿐 아니라 마케팅, 큐레이션(이 둘이 겹침)도 영향이 있었음. 그러나 이런 요소들은 이미 엄청 인기 있는 것에는 사실상 필요가 거의 없음.
  • 요즘은 제품을 고를 때도 비슷하게 느껴짐. 제품도 정보도 너무 많아서, “최고의” 제품을 고르려고 몇 시간씩 헤매게 됨. 예전엔 두세 개만 보고 골랐음. 그때가 더 나았냐 묻는다면 잘 모르겠기도 함.
    • 소비자 환경이 점점 험악해졌음. 예전엔 가격이 곧 품질을 대변하는 지표였음. 비싼 게 대체로 나았음. 지금은 마케팅, 브랜드, 거짓말만 넘침. 심지어 비싼 제품조차 품질이 조악하고, 금방 쓰레기장이 됨. 돈을 더 내도 제대로 된 제품 구하기가 힘듦. 요즘 자본주의는 돈의 가치보다, 최대한 짜내고, 생산비 줄이기에 혈안임.
  • 큐레이션 얘기보다 더 근본적으로, 요즘 UI에서는 ‘셀프 디터미네이션과 스스로 발견’의 모든 도구가 사라졌다고 봄. 모든 인플루언서나 알고리즘은 결국 자기 이익 때문에 남의 콘텐츠를 골라주고, 진짜로 나를 위한 게 아님. 예전에는 위키피디아나 tvtropes 처럼 스스로 빠져들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자유롭게 탐색이 가능했음. 그런데 지금은 닫힌 플랫폼, 로그인 필요한 서비스, 벽에 가로막힌 데이터뿐임. 오픈소스 플랫폼이 정말 필요한 시대임. 예전엔 큐레이터들이 활용할 수 있는 툴, 강력한 검색 기능이 있었고, 누군가는 위키를 만들고, 누군가는 거기서 글을 쓰며, 어떤 사람은 글만 읽거나 방송만 보기도 했음. 하지만 지금은 정보 자체가 폐쇄되고 큐레이션밖에 없음. 결국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jpg 사진만 보고, 남은 주말에 뭐할까 고민할 정도임. 알고리즘이 맞춤형으로 큐레이트 해줘서 점점 놀라운 걸 못 버티게 되고, 변화도 결국 알고리즘이 천천히 몰아줄 때만 생기니, 완전히 새로운 발견이 사라진 것임.
    • 심지어 검색도구를 쓸 때도, 그 도구 결과가 돈벌이와 편향이 없는지 믿을 보장이 없음. 과거에도 이런 불신을 만들 이유가 충분했고, 이제는 소프트웨어 업계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사라짐. 새로 나온 모든 소프트웨어가 자기 이익만 챙기지 사용자를 위하지 않는다는 확신만 생김.
    • 오히려 지금이 예전보다 더 도구가 강력해졌다고 생각함. “주말 등산 코스 찾기”를 예로 들면, 예전엔 책이나 지도 같은 제한된 자료에 의존했고, 최신 정보 파악도 힘들었음. 지금은 하이킹 사이트, 오픈스트리트맵, 구글지도 등에서 리뷰, 사진, 댓글, 데이터까지 쉽게 확인함. 더 책임감을 갖고 “알고리즘”이나 “이윤” 탓만 할 게 아니라는 생각임. 흡연처럼 모두에게 해롭다는 걸 아는데도 안 끊는 사람이 있는 것과 비슷함.
    • 지금 웹을 떠나자는 주장을 더 확실하게 하게 됨. 내 머릿속에서 “웹”과 “넷(네트워크)”는 분리되어 있음. 웹은 그 위에 붙어 있는 것일 뿐임. 지금 웹은 AI저질글, SEO스팸, 폐쇄 플랫폼, 각종 해킹 봇, 이런 것밖에 없음. 데드 인터넷 이론이 점점 현실처럼 느껴짐. 언젠가 인류가 웹을 떠나게 될 바라봄(나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음).
    • 완전히 공감가는 글이라 읽다가 멈춰서게 될 정도임. 사람들이 진짜 많은 기회를 놓치고 있음.
    • 플랫폼은 이미 본질적으로 닫힌 구조임. 오픈소스라면 플랫폼이라 부를 수도 없음.
  • 만약 모든 게 큐레이션된다면, 어떻게 기꺼이 돋보이는 큐레이션을 찾을 수 있을까? 유익한 정보를 만들어도, 그걸 원하는 대중에게 어떻게 노출시킬 수 있을지 어려움. 결국 노이즈만 가득하다고 믿는 한, 아무도 큐레이션하지 않으려 하게 됨.
    • 작은/인디 웹사이트를 정말로 찾아주는 노력들도 있음. 예를 들면 웹링, Kagi의 스몰웹 기능처럼 새로운 시도가 도움이 될 수 있음.

"근데 예전과 가장 달라진 건 모두가 경험하는 “공유된 문화적 경험”이 사라졌다는 점임. 90년대에는 모두가 라디오 40곡을 알았음."

"Spotify에서도 좋은 곡은 종종 추천해주지만, 전반적으로 훨씬 외로워진 느낌임. 예전엔 음악이 사람들과 나를 연결했는데 이제는 나 혼자 Spotify와 있는 것임."

"최근 내가 해커뉴스에 다시 발을 들이는 이유도 이런 것임. 내가 보는 게시글, 뉴스, 정보가 모두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본다는 점 때문임. 작은 집단이어도, 사람들이 공통적 흐름을 공유할 수 있는 합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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