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P by GN⁺ | ★ favorite | 댓글 1개
  • 정치 토론은 지적 대화처럼 시작돼도 상대가 같은 정치적 부족인지 확인하는 사회적 시험으로 바뀌기 쉬워 친구 관계를 흔들 수 있음
  • 제대로 된 정치 견해에는 경제학, 게임 이론, 철학, 군사 전략, 지정학, 역사, 사회학과 자기 편향 감지가 필요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를 직접 하기보다 집단의 견해를 받아들임
  • 부족주의는 공동체, 정체성, 공유 가치라는 보상을 주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과 관계망을 흔들 진실이라면 알고 싶어 하지 않음
  • 생산적인 대화는 설득하려는 변호사식 논쟁이 아니라 함께 발견하려는 고고학자식 대화에 가까우며, 틀렸음을 확인하는 일도 새로운 사실을 찾은 승리가 될 수 있음
  • 정치 대화를 피하거나 제한하는 이유는 상대의 결론보다 그 결론에 이른 추론 방식을 따질 때 분노와 소외가 생기기 쉬워서임

정치 토론이 사회적 함정이 되는 이유

  • 정치 분석을 좋아하더라도 친구들과 정치 이야기를 피하게 되는 이유는 세 가지 패턴에서 출발함
    • 많은 사람은 정치적 견해보다 정치적 부족을 갖고 있음
    • 부족에서 견해로 이동하려면 정치적 추론 능력을 길러야 하지만, 그 과정은 매우 어려움
    • 많은 사람은 애초에 부족에서 견해로 이동하고 싶어 하지 않음
  • “누구에게 투표했느냐”는 질문은 지적 토론의 시작이라기보다, 교회 안에서 “신을 믿죠?”라고 묻는 것처럼 집단 문화에 대한 충성 확인에 가까움
  • 겉으로는 진지한 담론처럼 보이지만, 실제 반응은 종종 종교 경찰에 가까운 방식으로 나타남
  • 지적으로 정직하지만 사회적 신호에 둔감한 사람은 선의로 대화에 참여했다가 사회적 매복을 당하기 쉬움

제대로 된 정치 견해를 갖기 어려운 이유

  • 정보에 기반한 견해를 가지려면 폭넓은 지식이 필요함
    • 경제학, 게임 이론, 철학, 영업, 비즈니스, 군사 전략, 지정학, 사회학, 역사 등이 필요함
    • 서로 대립하는 여러 집단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함
    • 자신의 편향을 감지하고 무시할 수 있어야 함
  • 제한된 자원을 치명적 결과와 함께 배분하려면 공리주의와 의무론, 즉 트롤리 문제를 이해해야 함
  • 중국-미국 관계를 보려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폭정에 대한 두려움과 침공 위협, 컴퓨터 칩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까지 고려해야 함
  • 군사력이 현실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경제가 행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사소해 보이는 소송이 소비자를 어떻게 보호하는지, 기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선거가 어떻게 이기는지도 관련됨
  • 미국의 핵가족과 30년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같은 제도도 정치적 판단의 배경이 될 수 있음
  • 지식이 있더라도 양쪽 입장에 공감해야 함
    • 가난한 세입자와 수중에 잠긴 집주인
    • 지친 노동자와 어려움을 겪는 사업주
    • 부자와 가난한 사람, 이민자와 기존 거주자, 부모와 자녀
  • 각 진영에는 악인과 피해자가 모두 있을 수 있음
    •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가해자이거나 무고한 사람일 수 있음
    • 노동자와 사업주 모두 착취당하거나 도둑맞을 수 있음
  •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경험했거나 연결된 하나의 서사에만 동일시하기 쉬움
  • 이런 지식을 얻고 올바르게 적용하며 자기 편향까지 정직하게 감지하는 일은 너무 큰 작업이어서, 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한두 명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함

부족주의가 편한 이유

  • 사람은 수천 년 동안 효과가 있었던 방식, 즉 부족을 찾고 그 믿음을 강하게 대표하는 방식으로 돌아가기 쉬움
  • 몇 주나 몇 달 동안 읽고 생각하는 대신 친구, 교회, 좋아하는 뉴스 방송 같은 부족에 판단을 외주화할 수 있음
  • 부족주의는 인간에게 내장된 행동에 가까움
    • 다른 사람이 웃으면 웃음
    • 다른 사람이 뛰기 시작하면 뜀
    • 다른 사람이 원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원함
  • 의견을 묶음으로 받아들이면, 추론된 견해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갖게 됨
  • 성에 대한 의견이 세금에 대한 의견까지 예측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며, 학습은 응원으로, 발견은 승패로 대체됨

사람들이 부족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

  • 삶의 행복은 관계에 크게 좌우되지만, 관계가 반드시 진실 위에 세워지는 것은 아님
  • 상사의 질책이 정당했는지와 무관하게 직원들은 공통의 적을 통해 결속할 수 있음
  • 집단은 참이든 거짓이든 특정 믿음을 기반으로 형성될 수 있으며, 이를 대표하는 단어가 종교
  • 조직 종교 참여가 줄어도 종교적 행동 양식은 세속 세계에 맞게 변형되어 곳곳에 남아 있음
    • 건강
    • 운동
    • 정치
    • 자기계발
  •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종교적 구성 요소는 다음과 같음
    • 믿음의 선언
    • 순환 논리
    • 악한 세력의 설정: Obama, Elon, Big Pharma, 식품 산업, 기업, 이민자 등
  • 이런 패턴은 공동체와 정체성을 찾는 데 매우 효과적임
  • 사람들은 종종 두 선택지 사이에 놓임
    • 공동체, 정체성, 공유 가치를 제공하는 단순한 세계
    • 더 많은 지적 노력이 필요하고 사회 대부분으로부터 소외될 수 있는 복잡한 세계
  • “당신 믿음의 반대가 사실이라면 알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정치 토론을 즐기는 친한 친구들 중 일부는 명시적으로 “아니오”라고 답함
  • 처음에는 “예”라고 답한 사람들 중 다수도 나중에는 실제 답이 “아니오”였음을 인정함
  • 관계와 세계관이 세워진 믿음을 완전히 깨뜨릴 수 있는 진실을 발견할 기회가 있어도, 많은 사람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 쪽을 택함
  • party A로 구성된 친구들과 결속하기 위해 party B가 악하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단순하고 행복할 수 있음
  • 사람들은 연구와 확률보다 스포츠팀과 단순한 종교적 코드에 가까운 것을 원함
  • 공동체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공동체나 정체성이 거짓 믿음 위에 세워졌을 때 그 거품을 터뜨리고 싶어 하지 않는 태도는 이해 가능하지만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움

정치 대화가 실패하는 방식

  •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근본 이유는 반대 의견이 두렵거나 싫어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 거품 안에 남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갖고 있기 때문임
  • 누군가가 스스로 거품 안에 남겠다고 의식적으로 인정한다면, 전통 종교 참여를 존중하듯 존중할 수 있음
  • 문제는 그런 태도가 지적으로 주도된 견해인 것처럼 포장될 때 생김
  • 진실을 찾으려는 욕구가 없으면 대화는 오류와 그럴듯함으로 가득 찬 무의미한 수사적 논쟁이 됨
  • 그런 논쟁은 발견하려 하기보다 설득하려 하며, 과학자보다 변호사에 가까움
  • 만족스러운 결론에 이르는 경우는 드묾

사회적 도박으로서의 정치 대화

  • 정치 대화 요청을 다루는 한 가지 방법은 대화를 완전히 피하는 것임
    • 정치 대화는 사회적 함정이 되는 경우가 많음
    • 많은 친구가 현실보다 거짓 이미지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은 우울할 수 있음
  • 그래도 대화를 지속할 이유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1%의 사람을 찾기 위해서임
  • 그 보상은 큼
    • “아하” 순간에 도달하면 더 깊은 연결과 이해를 가진 친구가 될 수 있음
  • 실패하면 분노와 소외가 생김
  • 위험을 감수할 시점을 판단하기는 어려움
  • 독단의 핵심 신호는 대화 상대의 톤이 설득하려는 변호사처럼 바뀌는 순간임
    • 전투적 태도
    • 수사적 기교와 오류 사용
    • 한 각도가 실패하면 그 실패를 이해하기보다 다른 각도로 이동함
  • 생산적인 대화는 두 명의 고고학자가 함께 발견하려는 모습에 가까움
    • 정직한 참여자는 정확성을 위해 자기 논증의 결함도 지적함
    • 변호사식 논쟁에서는 틀리는 것이 패배지만, 고고학자식 대화에서는 이전에 몰랐던 것을 발견했으므로 승리임

부족주의에 맞서는 방식

  • 친구들이 정치 대화로 끌어들일 때는 종종 부족적 방향이 섞여 있음
  • 그때의 대응은 정파적 함정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부족주의에 반대하는 쪽이 됨
  • 중요한 것은 상대가 무엇을 믿는지가 아니라 왜 그것을 믿는지임
  • 이는 답만 보는 것이 아니라 풀이 과정을 본 학생에게 부분 점수를 주는 교사와 비슷함
  • 이 방식은 Paul Graham의 Two Kinds of Moderate에 나온 효과를 낳음
    • 보수 친구들은 글쓴이를 ‘woke’ 자유주의자로 봄
    • 자유주의 친구들은 글쓴이를 우파 성향 보수주의자로 봄
  • 정통 집단의 일부가 아니므로 보호막을 얻지 못해 더 어렵다는 점도 Paul Graham의 설명과 연결됨
  • 한 가지 해법은 말로 하는 공개 토론에서 생기는 자세 잡기와 오류를 피하기 위해, 이런 생각을 정리한 글을 보내는 것임
  • 다른 해법은 이미 지적 정직성을 이해하고 중시하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우는 것임

Bay Area로 이사하는 이유

  • San Diego에서 7년을 보낸 뒤, 가족과 함께 Bay Area로 이사하기로 함
  • 이유는 새 직업 기회와 가족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찾는 것도 중요한 이유임
  • 진실 추구가 친구 관계의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아주 작은 양이라도 정기적으로 갖고 싶은 요소임
  • Bay Area의 평균적인 사람이 덜 부족주의적이라는 뜻은 아님
  • Silicon Valley에는 세상에서 아이디어를 시험하는 사람이 고농도로 모여 있고, 이들은 편향을 정기적으로 재평가하지 않으면 실패하게 됨
  • 20대 대부분을 Bay Area에서 도망치듯 보냈지만, 그곳에서 세상을 필터 없이 보려는 사람을 다른 어떤 지역보다 더 많이 만났다고 함

추론 능력을 개선하는 네 단계

  •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네 가지 단계가 있음
    • 진실 추구자가 되기
    • 추론 체계를 개발하기
    • 베팅처럼 생각하기
    • 논증을 왕복시키기
  •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을 찾고자 하는 욕구이며, 이 글의 핵심 문제도 그 욕구가 부족하다는 점임
  • 이를 위해 자기 안의 부족주의적 충동을 감지하고 저항하는 법을 배워야 할 수 있음
  •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음
  • 추론 체계를 위한 자료로 2020년에 친구와 가족을 위해 만든 cheat sheet가 소개됨
  • Eliezer Yudkowsky의 The Sequences는 이 영역의 더 발전된 정전으로 언급됨
  • Harry Potter and The Methods of Rationality는 시작점으로 훌륭한 자료임

베팅처럼 생각하기

  • 인간은 “A가 B를 일으키고 B가 C를 일으켰다”처럼 세계를 단순화하려 함
  • 실제 세계는 보통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하나의 원인만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
  • 삶은 컴퓨터 프로그램보다 포커에 가까움
    • A 때문에 성공할 확률 40%
    • B 때문에 성공할 확률 25%
    • 생각하지 못한 무언가일 확률 10%
    • 애초에 모델 전체가 틀렸을 확률 25%
  • 올바른 접근도 실패할 수 있고, 틀린 접근도 성공할 수 있음
  • 사후에도 무엇이 올바른 접근이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음
  • 미래 시나리오를 상상하면 결정 지점마다 타임라인이 갈라져 머릿속에 담아야 할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
  • 단순한 모델의 유혹이 크지만, 객관적 진실은 이런 미묘한 확률적 구조 안에 있음
  • 부족주의자는 “그는 100% 실패할 것”, “그녀는 악해서 그렇게 한다”, “주택 가격은 항상 오른다”처럼 절대적인 표현을 자주 쓰지만, 그 확신에 돈을 거는 경우는 드묾

논증을 왕복시키기

  • 진실 추구, 추론 체계, 확률적 사고가 갖춰졌다면 다음 목표는 자신의 편향을 이기는 것임
  • 완벽한 방법은 없지만, 한 가지 방법은 논증을 앞뒤로 왕복시키는 것
  • 예를 들어 염소가 지각력이 있다고 믿는다면, 반대 입장을 steelman해야 함
    • 염소가 지각력이 없다는 가장 강한 논증을 찾음
    • 그 논증에 모든 에너지를 쏟음
  • 이 과정에서 자신의 견해가 뒤집힐 수 있음
  • 견해가 뒤집히면 다시 반대 논증을 steelman함
  • 이 과정을 스프링이 위치 에너지를 소진하듯 반복하면, 더 엄격하게 테스트된 견해에 도달할 수 있음
  • 이 방식은 진실을 발견할 가능성을 높일 뿐 아니라, 반대자의 입장에 공감하고 그 논증이 어디서 부족한지 설명할 수 있게 함

결론: 무엇을 믿느냐보다 왜 믿느냐

  • 친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대개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왜 믿느냐
  • 대부분의 입장에는 유효하고 미묘한 이유가 있을 수 있음
  • 하지만 그런 이유 대신 부족주의적이고 빈약한 추론이 제시되는 경우가 많음
  • 세계는 지저분하고 회색지대가 많으며, 비슷하게 느끼는 사람은 연락해도 된다는 말로 마무리됨

댓글과 토론

Hacker News 의견들
  • 글쓴이는 장황한 자기만족적 성찰을 늘어놓으면서도 가치와 윤리를 거의 놓치고, 겨우 언급한 부분도 비합리적 부족주의로 치부함
    실제로 정치 논의에서 가치와 윤리는 핵심임. 모든 정치적 결정은 결국 인간이 사는 세계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에 관한 것이기 때문
    경제 정책도 경제의 최종 목표에 대한 공통 이해 없이는 합의할 수 없고, 외교도 국가가 인간 집단을 대표한다는 역할과 집단 간 상호작용 방식에 대한 이해 없이는 합의하기 어려움
    지난 20년 동안 미국 양당 지도부는 자신들이 대표하는 가치에 관한 메시지에 크게 투자해 왔고, 이제는 같은 목표에 도달하는 다른 정책이라기보다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상을 실현하려는 정책으로 갈라졌다고 봄
    그래서 “누구에게 투표했나”는 부족주의가 아니라 “당신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묻는 좋은 대리 질문이 될 수 있음. 근본 가치가 완전히 다르면 정책 논의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

    • 이런 사고방식 자체가 부족주의라고 봄. 결국 두 부족이 있고 각 부족이 특정 가치를 가진다고 말하는 셈이기 때문
      사람의 가치는 공화당/민주당 같은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으며, 사람을 두 바구니에 넣어 전체 도덕 나침반을 정의할 수는 없음
      트랜스젠더 혐오가 있지만 낙태권을 지지해서 늘 민주당에 투표하는 사람도 있고, 공화당 가치 대부분을 싫어하지만 Obamacare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느껴 공화당에 투표하는 사람도 있음. 왜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는지에는 사실상 무한한 뉘앙스가 있음
    • “정당의 정책이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에 기반한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상을 실현하려 한다”는 말은 틀렸고 냉소적
      한쪽은 총기 권리를, 다른 쪽은 총기 규제를 지지하지만, 이는 가치의 차이라기보다 민주당은 총기로부터의 안전을, 공화당은 폭정으로부터의 안전을 추구하는 것임. 양쪽 모두 개인 안전을 중시함
      낙태권은 개인 자유의 문제이고, 총기 권리도 개인 자유의 문제임. 양쪽 모두 개인 자유를 중시함
      민주당의 국경 정책은 연민과 인권을, 공화당의 국경 정책은 국내 번영을 앞세움. 그렇다고 공화당이 인권을 신경 쓰지 않거나 민주당이 국내 번영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아님
      진짜 문제는 공감의 부족이고, 타협은 공감 없이는 어렵다. 조금만 공감하면 오히려 덜 타협해도 될 수 있는데, 누군가를 실제로 설득할 수도 있기 때문
    • “누구에게 투표했나”가 가치의 좋은 대리 질문이라는 데 강하게 동의하지 않음. 양당 독점 정치 체제에서는 많은 사람이 양쪽 모두에서 차악을 고를 뿐임
      우리와 다르게 투표한 사람과 교류하지 않겠다고 선택하면 정치 사회는 무서울 정도로 분열되고, 친구나 이웃과 건강하고 비판단적인 정치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입장을 바꿀 기회도 잃어 양극화가 더 심해짐
      모두가 가치에 따라 투표하는 것은 아님. 지갑이나 자신이 연결된 특수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하는 사람도 있음
      낙태권·성소수자 권리·이민에 찬성하는 사람이 미국 자동차 산업에서 일하고 가족과 친구도 그 업계에 있어 공화당에 투표할 수 있음. 핵심 가치가 다르다는 뜻이 아니라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음
    • 부분적 반론은, 대부분 사람의 가치도 상당히 부족 기반이라는 것임. 가치는 완전히 고정되어 있지 않고 부족의 합의에 느슨하게 맞춰 변하는 경향이 있음
      압박 속에서도 신념을 지키는 사람은 매우 드묾. 서로 다른 문화·종교 사이에도 평균적인 공통 공리 가치가 꽤 있어 보이지만, 우리는 차이에 집착하기 훨씬 쉬움
      다만 근본 가치가 다른 집단이 공통 정책 기반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는 강하게 반대함. 기본소득처럼 양쪽 모두가 전혀 다른 가치 기반의 이유로 지지할 수 있는 정책도 있음
      많은 경우 서로 동의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공동의 손을 떼면 됨. 예컨대 정교분리가 그렇다
    • 누군가 “덜 나쁜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해서 그 후보가 내세우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볼 수는 없음
      미국 양당제에서는 다른 나라처럼 투표 후 연정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투표 전에 연합이 형성됨
      이 글의 목적은 정확히 가치를 직접 논의하고 대리 질문을 건너뛰자는 데 있음
  • 반대 관점을 보태자면, 지난 10년 동안 내 삶의 사람들 중 일부가 여성·소수자 등의 권리를 빼앗는 후보에게 투표했고, 그 때문에 친구와 가족을 잃었음
    의견 차이가 큰 것은 괜찮지만, 그들의 결정 중 일부는 내 핵심 신념에 근본적으로 반하고 내가 아는 많은 사람에게 실제 해를 끼쳤음
    그래서 가족과 친구 관계를 끊는 것은 내게 충분히 가치 있었음. 기본권이 보호되고 존중되는 세상에 살 수 있기 전까지는 공통 기반이 없고, 겉으로만 우정을 유지하며 이런 해로운 믿음을 조심스럽게 피해 가는 것은 무의미함

    • 친구와 가족에게 순수성 검사를 적용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관용하고 어디서 그런 생각이 나왔는지 이해하려는 편이 더 유용하다고 봄
      그들이 그 권리를 빼앗으려는 명시적 목적으로 후보에게 투표한 것은 아닐 가능성이 높고, 다른 정책이나 가치 때문에 투표했을 수 있음
      나도 유대인으로서 팔레스타인 관련 게시물 중 친구나 비유대인 가족이 나 자신에게 반한다고 느끼는 가치를 드러낸 경우에는 삶에서 완전히 끊어냈음. 친팔레스타인 믿음이 모두 반유대주의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 그렇다고 느낌
      다만 정당 수준의 대부분 견해는 직접 충돌이라기보다 다른 우선순위나 관점 차이인 경우가 많고, 그래서 관용이 필요하다고 봄
    • 핵심 가치에 닿는 사안의 차이를 그냥 무시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음. 거대한 가치 차이 때문에 친구나 가족과 끊는 것도 괜찮고, 실제로 좌우 양쪽 친구에게 그렇게 해 본 적이 있음
      다만 대부분은 생각을 통해 그 가치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선택한 부족에서 대량으로 맹목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봄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에 열려 있지 않다면 그것은 지적으로 추구한 관점이 아니라 종교에 가깝다
      글의 이 문장처럼, 스스로 버블 안에 머물겠다고 의식적으로 인정한다면 전통적 종교 참여를 존중하듯 존중할 수 있음. 문제는 그것을 지적으로 도달한 견해인 것처럼 속이는 경우임
    • 내가 그 집단에서 빠져나가면 반대 의견 없이 그들이 어떻게 생각을 바꾸겠나? 결국 내 정신 건강을 위해 나도 그렇게 해야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는 다루지 못하는 실제 문제라고 봄
    • 누구와도 비판단적이고 호의적인 대화를 하며 상대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갖는지 배울 수는 있음
      하지만 관계의 한계를 긋는 것도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음. 모든 사람을 환영하거나, 자신에게 견딜 수 없는 결과를 낳는 견해를 타인에게서 참아야 할 의무는 없음. 발로 투표하면 됨
    • 부럽다. 가족과 친구 수가 제한되어 있고, 둘 다 더 얻기 어렵다고 느낌. 정치 때문에 그들을 끊어낼 입장은 아니라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
  • 핵심 질문은 “정치란 무엇인가”임. 인물은 정치인가? 아니라고 봄. 정당은? 아니라고 봄. 인종, 성, 젠더, 정치적 올바름, 이민에 관한 선동적 쟁점은? 아니라고 봄
    진짜 정치는 보통 미국 시민이 합리적인 의료를 감당하고 이용할 수 있는가, 보통 미국인이 생활임금을 받는가, 한 사람이 가족을 부양할 만큼 벌 수 있는가 같은 질문임
    아이들이 성장하고 생산적인 삶을 살며 원하면 가족을 꾸릴 합리적 기회를 갖는가, 미국인의 재정 상황이 나아지는가 아니면 수입과 지출의 격차가 커지는가도 정치임
    작동하는 민주주의라면 보통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는 법을 만들고 시행할 수 있어야 하며, 각 주에서 제정되는 법 대부분이 이 조건을 충족하는지 물어야 함
    또한 보통 사람들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법과 법원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함. 피해가 발생했을 때 보통 사람들이 법원 접근을 감당할 수 있는지도 정치임
    주류 언론이 사람들의 공통 관심사와 문제를 위한 포럼으로 기능하는지도 봐야 함. NYT를 보고 하는 말임
    Cui bono? 법이 사람들의 이익에 맞지 않고 법원이 접근 불가능하며 언론이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포럼이 아니라면 누가 이익을 얻는가. Jeff Bezos를 보고 하는 말임
    광고가 주요 뉴스원을 자금 지원한다면 누구의 이익이 대표되는가. 친구들과 이런 질문을 논의하면 됨. 답이 아니라 질문이고, 어려운 일이 아님

    • 이것들은 실제 문제지만 동시에 유도 질문이기도 함. 파티에서 누가 이런 질문을 하면 진실을 찾기보다 확인을 구한다고 볼 것 같음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글쓴이의 목표가 호기심과 진실 추구라면 이 질문 대부분은 그 목표와 잘 맞는지 의심스러움
    • 좋은 질문들이고 흥미로운 논의로 이어질 수 있지만, 여러 면에서 자명한 질문이기도 함. 예컨대 의료는 부자만 감당 가능해야 하고 나머지는 거리에서 죽어도 된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더 불분명하고, 경험상 논의와 토론에서 갈등과 말싸움으로 넘어가기 쉬운 사안도 있음
      민간인이 총기를 소유할 수 있어야 하는가, 거리에서 휴대할 수 있어야 하는가
      거리의 메스암페타민과 오피오이드 문제, 그리고 관련 재산범죄·대인 폭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원전을 더 지어야 하는가
      지역적으로는 도시가 서쪽으로 확장될 때 이 동네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같은 질문도 있음
      이런 것들이야말로 정치의 영역이고, 이념적 버블 안에서만 대화하는 게 아니라면 훨씬 뜨거운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큼
    • “인종, 성, 젠더, 정치적 올바름, 이민은 정치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태도가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특권임. 무엇이 정치인지 정하고, 내 권리를 정치가 아니라고 치부할 수 있기 때문
      나는 일할 권리, 살 권리, 재산을 소유할 권리,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권리, 끌리는 사람과 성관계를 할 권리, 파트너와 아이를 키울 권리, 내 정체성을 선택하고 내 삶을 살 권리가 있는가
      백인 시스젠더 이성애 남성은 이런 권리를 당연하게 여기는데, 왜 나는 그러면 안 되는가. 같은 권리를 얻기 위한 내 투쟁이 왜 “성이나 젠더나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선동적 쟁점”으로 밀려나 정치가 아니게 되는가
      결혼했는가, 결혼하고 싶은가. 직장에 가거나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어떻게 대우받을지 걱정하는가. 장보기, 차 사기, 살 집 둘러보기, 구직과 면접, 상사와 부모와 이웃과 집주인과의 관계는 어떤가
      정말 그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다툴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가
      바로 그런 태도 때문에 지금 상황이 좋지 않음. 외면하면 평등과 정의가 알아서 해결될 것처럼 pretending하고 있기 때문
    • “보통 미국 시민이 합리적 의료를 감당하고 이용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보통 미국 시민이 그래야 하는가”가 질문임
      앞의 문장은 이미 한 나라 시민이 재정 장벽 없이 의료에 접근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전제함
      EU에 살고 있어서 기본적으로 감당 가능한 의료를 이용할 수 있고 그 방식을 좋아하지만, 미국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거나 그 의미를 이해한다고 보지는 않음
    • 인물, 정당, 인종·성·젠더·정치적 올바름·이민 쟁점을 그렇게 빠르게 비정치적이라고 치부하는 데 동의하지 않음
      무엇이 정치적인지를 사물의 내재적 속성으로 보는지, 아니면 어떤 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의도되는지를 설명하는 말로 보는지 궁금함
      나는 후자에 가깝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것이 정치적일 수 있다고 열어 둠. 예술과 비슷함
  • 글은 친구들과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시작하고, 이어서 친구들과 정치 얘기를 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임
    친구는 지지하고 북돋워야 하는 사람이지, 논쟁에서 이겨서 기분 나쁘게 만들 대상이 아님
    그렇다고 해도 건강한 사회는 개인들이 일을 어떻게 운영할지 생각을 교환하고 함께 행동할 수 있을 때 가능함. 즉 그것이 정치
    사람마다 이해관계와 우선순위가 달라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대부분은 괜찮음. 결국 존중과 의사소통 능력의 문제이니, 제발 정치 이야기는 계속해야 함

    • 그 에세이의 목적은 생산적으로 정치가 논의될 수 없는 상황, 즉 교조적 이념을 보여 주고, 스스로 교조적이 되지 않는 법을 보여 주는 데 있었음
      생산적인 정치 논의는 적극 권장함
    • “친구”를 배우자나 파트너로 바꾸면 더 복잡해짐. 피할 수 없이 불쾌한 의사결정을 함께 해야 하는 상황에서 동의 가능성 문제가 생기기 때문
    • 친구라고 해서 모든 것에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님. 어떤 주제든 피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뜻도 아님
      동의하면 좋고, 대화와 논거로 누군가 의견을 바꾸면 좋고, 바꾸지 않아도 좋음
      누군가를 친구로 두는 이유는 그 사람을 좋아하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함께 무언가 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임
      모든 것에 동의한다는 뜻도, 말하기를 두려워한다는 뜻도 아님. X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 친구 관계를 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다르게 생각한다고 우정을 끊지는 않음
    • 정치 논의의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함. 수사적 질문이 아니라, 그 뒤에 세상에서 어떤 물리적 변화를 기대하는가
      세뇌를 되돌리지는 못할 것이고, 사람들을 화나게 할 뿐임
  • “부족주의”가 잘 보이지 않음. 정치적 분열을 설명하는 인기 있는 표현이라는 것은 알겠음
    내게 중요한 것들, 믿음과 쟁점들을 생각해 보면 전부 진보적이고 좌파 성향의 이념과 맞아떨어짐. 어떤 부족이 내세우는 것을 덮어놓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 집단이 내가 믿는 모든 것을 실제로 반영함
    몇몇 세부는 다를 수 있어도 대략 95% 정렬이라고 봄
    좌파적·우파적 세계관의 토대, 변화에 대한 두려움, 공감 같은 요소를 더 똑똑한 사람들이 자세히 다뤄 왔고, 그러면 특정 성격의 사람들이 공통된 믿음과 이념을 공유하는 것도 자연스러움
    그런데 스펙트럼의 가운데에 있지 않으면 부족적이라는 함의처럼 들리고, 그것은 깎아내리는 말처럼 느껴짐

    • 누군가 특정 정치 이념 X와 정확히 일치한다면, 스스로 생각한다기보다 X 주제에 대한 자기 부족의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봄
      서로 별 관련 없는 믿음 묶음이 “X 집단은 그렇게 생각하니까” 같은 이유로 같은 사람들에게 채택되는 모습을 자주 봄. 이것은 의식적인 경우가 매우 드묾
      이런 믿음 묶음이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 변했는지 보면 더 분명해짐. 근본적 성격 특성이라기보다 유행과 집단사고에 기반한다는 것을 보여 줌. 지역 차이도 마찬가지임
      그래서 중도라고 해서 비부족적이라는 뜻은 아니고, 여러 쟁점에 대한 믿음이 한 집단의 기본값과 얼마나 일치하는지가 부족성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봄
      정치적으로 사려 깊고 독립적인 사람이라면 좌/우, 자유주의/보수주의 같은 깔끔한 범주에 잘 들어맞지 않는 의견 바구니를 가질 가능성이 높음
    • 다극 정치 체제에서는 의견 집단 간 연합이 선거 뒤에 형성되고, 양당제에서는 선거 전에 형성된다는 흥미로운 글을 읽은 적 있음
      그래서 세금은 도둑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경찰을 무조건 지지하는 사람들과 동맹을 맺고, 생명이 너무 신성해서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베개 밑마다 AR-15가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과 동맹을 맺음
      나치 깃발과 N-word는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게이·트랜스 캐릭터가 나오는 책은 금지해야 한다는 사람들과도 묶임
      개인적으로 나는 환경을 중시하고 원전도 역할이 있다고 보며, 노숙 문제는 주택 공급을 늘리고 건설업자가 짓게 해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함. 경찰은 존재해야 하지만 부패와 잔혹성을 뿌리 뽑기 위해 큰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고, 낙태와 학대 보호소의 트랜스 여성 문제 같은 여성 이슈는 나 같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결정해야 한다고 봄
      하지만 나는 원전은 나쁘고 임대료 통제가 필요하며 경찰 예산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정치 연합에 속해 있음
      비례대표제라면 서로 별 관련 없는 견해들이 각각 다른 정당이 되고, 어느 정당도 과반을 얻지 못한 뒤 선거 후 집권 연합을 만들 것임
      미국 선거 제도 때문에 누군가 이 모든 견해를 덕트테이프로 붙여 일관된 정치 이념이라고 불러야 하는 셈임
    • 글의 “정치 스펙트럼의 실제 모습” 그래프에서 독립적 사고가 가운데에서만 발견된다는 부분은 너무 웃겨서 다시 봐야 했음. 농담이나 만우절 장난인가 싶었음
      내가 빠르게 읽어 오해했을 수도 있지만, 그 그래프가 진지한 것이라면 사려 깊은 온건파라는 글쓴이의 입장을 크게 약화함
      글쓴이가 정말 좌우 양쪽 모두는 집단사고만 한다고 믿는지도 모르겠지만, 전부 부족주의는 아니라는 데 동의함
    • “부족적”이라는 말에서 자주 간과되는 특성은, 부족에 속한 사람들이 틀릴 의지가 없다는 점임
      가운데에 가까운 사람들은 Paul Graham이 말한 “우연히 가운데에 있는” 경우를 포함해 상대편을 들어 볼 마음이 있고,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에도 열려 있는 것 같음
      내가 부족적이라고 부를 사람들은 좌우 어느 쪽이든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에 열려 있지 않고, 합리적 논의조차 상대편을 진짜로 들으려 하지 않음
      예의상 듣는 척하고 토론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진정한 열린 호기심 때문은 아닌 경우가 많음
    • 정의상 이성은 정치에서 일정 지점까지만 갈 수 있음. 정치는 완전한 정보 없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영역이기 때문
      아무리 논거가 탄탄하고 정보를 잘 알아도 소속을 바꾸는 데 저항하게 됨. 그래서 내 생각에 정치는 99% 충성에 가깝다
  • 52세인데, 예전에는 성, 종교,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무례하다고 여겨지던 때가 있었음
    그러다 열린 마음, 질문하는 태도,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로 이야기하면 굉장히 재미있어졌고, 친구·가족과의 보통 위협적이지 않지만 활기찬 토론과 논쟁 속에서 내 생각도 많이 발전했음
    그런데 지난 10~15년 사이에 바뀌었음. 소셜 미디어에 친구의 친구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부족주의가 작동하기 시작함
    Maria Ressa와 Jon Stewart의 대화에서 아주 잘 설명됐고, 그녀는 훌륭하며 들어 볼 가치가 있음 https://www.youtube.com/watch?v=jsHoX9ZpA_M

    • 모든 것은 부의 불평등 증가 때문임. 거의 모든 사회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봄
      예전에는 모두가 더 안전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위협적이지 않은 토론이 쉬웠음. 사람들이 스트레스와 두려움 속에 있으면 토론은 지적 연습이 아니라 삶의 실제 기회를 잃을 수 있는 문제가 됨
      이 추세는 오래전부터 이어졌고, Piketty는 이미 돈이 있는 사람이 돈을 벌기 더 쉽다는 점을 수학적으로 보여 줬으며 이 폭주 과정이 극단에 가까워지고 있음
      오늘날 부의 분배가 70~90년대와 같았다면 문화전쟁은 크게 약해졌거나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함
      사람들이 여전히 집을 사고, 아이를 낳고, 의료를 감당할 수 있다면 종교·성·정치를 이렇게 극단적인 부족주의 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임. 경제 게임에서 “패자”가 훨씬 많아졌고 생사가 걸린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책임질 대상을 찾고 있음
    • 정말 그렇다. 세상이 바뀌었음. 예전에는 다른 사람이 정치적 이성 능력이 낮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엘리트주의라는 정치적 입장이었음
      Orwell 같은 사람들은 교육받고 사회적으로 영리한 노동계급의 아주 오래된 전통에서 나왔음
      소셜 미디어는 일상 정치 수다, 합리적 회의주의, 선의의 논쟁이 주던 즐거움을 생사가 걸린 듯 보이는 부르주아식 자존심 싸움으로 바꿔 놓음
    • Jon Stewart가 2004년 Crossfire에서도 같은 얘기를 했음 https://m.youtube.com/watch?v=aFQFB5YpDZE&t=310s
      토론이라고 통용되는 것에 대한 비판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적절함
    • 소셜 미디어가 큰 문제라는 데 동의함. 사람들이 상상 속 현실의 반향실에서 살 수 있게 해 줌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1:1로는 나와 의견이 다른 똑똑한 사람들과 여전히 좋은 논의를 할 수 있고, 우리는 그런 논의가 필요함
  • 강하게 공감됨. 사각형과 원 그림이 크게 와닿았고, 어릴 때부터 꽤 외로웠음. 환경에 따라 1%의 사람들을 찾기가 정말 어려울 수 있으니, 찾으면 소중히 여겨야 함
    비판하자면 “moderate”라는 단어 사용이 문제임. 여기서는 PG의 글이 원인으로 보이는데, 영어에서 정치에 대해 “moderate”라고 하면 사람들에게 특정 의미가 있음
    그 의미를 기준으로 독립적 사고가 사람을 “moderate”로 이끈다는 말은 그냥 틀렸음. 글이 실제로 말하는 것은 독립적 사고가 특정 이념이나 정당에 아주 잘 맞지 않는 믿음의 집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임
    그건 맞지만 “moderate”는 아님. 다양하고, 실용적이며, 비이념적이라는 말이 더 가깝다. 이 단어들도 완벽하진 않지만 “moderate”는 확실히 아님
    99%/1%도 어떤 면에서는 크게 과장되어 있음. 지역, 문화, 하위문화, 환경에 분명 의존하고, 글쓴이도 그렇게 말함
    더 중요하게는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1:1 환경을 만들면, 많은 사람은 실제로 그렇게 부족적이거나 이념적이지 않고 여러 주류 부족을 가로지르는 믿음을 갖고 있음. 하지만 대화가 끝나면 다시 부족 구성원으로 돌아감
    정책 선택지를 어느 부족 입장인지 알기 어렵게 제시하면 사람들이 자기 부족에 반해 투표하는 경우가 많지만, 미리 어느 부족이 어느 쪽에 투표했는지 알려 주면 늘 부족을 따라간다는 실험도 꽤 있을 것임

    • 글에는 그것이 그런 뜻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구체적인 부분이 있음
  • “왜 사람들이 부족에서 관점으로 이동하지 않는가”에 대한 더 쉬운 답은, 자기 믿음을 의심하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임. 실제로 그런 변화가 그렇게 일어남
    많은 사람에게 그런 이동은 원칙을 위해 충성을 약화하는 것이 거의 보상되지 않기 때문에 마조히즘처럼 보임
    Citizens United 자금으로 터보가 붙은 법률 시스템의 영향이 대중에게 퍼지고 있다고 가정함. 변호사는 의뢰인의 “열성적 대변자”가 되도록 돈을 받음. 이는 의뢰인 이익에 반할 수 있는 일에는 노력을 쓰지 않는다는 뜻임
    자기 성찰은 확률적으로 이익에 반할 수 있으니 왜 위험을 감수하겠나. 대안적 관점을 고려하는 것도 이익에 반할 수 있으니 왜 위험을 감수하겠나. 그래서 새로운 시대정신 속에서는 그런 행동이 비뚤어지고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비윤리적이고 잘못된 것이 됨
    문제는 이런 대립적 논증 체계에는 공정한 판사가 필요하다는 것임. 이론상 대중이 그 역할을 해야 하지만, 24시간 비윤리적 변호사식 장광설을 사람들 머릿속에 쏟아붓자 사람들은 판사가 아니라 변호사가 되어 감
    “The world is changed. I feel it in the water. I feel it in the earth. I smell it in the air. Much that once was is lost, for none now live who remember it.” 이는 품위, 명예, 진실성, 공정한 토론, 상대 존중의 가치를 가리킬 수도 있음
    이런 가치는 늘 공격받아 왔지만 지난 10년 사이에 너무 파괴되어, 사람들이 한때 그것들이 힘을 가졌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젊은 사람들은 그런 정치가 어땠는지 모르게 됨

    • 자기 관점을 도전하는 것은 어렵기만 한 게 아니라 꽤 위험함. 기반이 단단하지 않으면 정체성을 잃고 자신의 도덕성까지 의심하게 될 수 있음
      그래서 버티고 서서 자기 성찰을 더 “안전한” 범위로 제한하는 것이 훨씬 쉬움. 그래도 관점은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조금 두려워하는 것도 탓하지 않음
      특히 자신이 더는 100% 동의하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결론을 근거로 누군가에게 잔인하게 굴었던 과거가 있다면 더 그렇다. 이제 그것을 의심하면 큰 죄책감도 마주해야 함
    • “왜 내가 틀렸다는 걸 알게 될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 내 주변 모두가 이미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데”가 답임
    • 믿음이 정체성과 너무 얽혀 버림. 정체성을 느슨하게 붙들고 자신의 행동에 귀속시키면, 특정 사안에 대해 생각을 바꾸거나 믿음을 점진적으로 갱신하기가 쉬워짐
    • “우리는 자유를 기억하는 작가들이 필요할 것이다” — Ursula Le Guin
      진실에 도달하는 최고의 두 방식인 저널리즘과 과학은 온갖 모순된 생각을 품고 따라가 본 뒤 관찰된 현실과 비교하는 데 의존함
      특히 대학은 물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이어야 하며, 그 안에서는 모든 종류의 생각이 무자비하게 공격받을 수 있어야 함
      오래 걸려 쌓은 것을 잃어가고 있음
  • 한 가지만 덧붙이면,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나 정치 성향보다 무엇을 실제로 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 배웠음
    이제는 우리가 동의할 수 있고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 뒤, 거기서부터 쌓아 가는 편이 훨씬 실용적이라고 봄
    일반적인 정치 논쟁은 실행 가능성이 낮고, 글에서 말한 사회적 이유로 위험하기도 해서 대체로 부정적 외부효과가 있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함

    • 마음에 드는 생각이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결국 투표임. 일과 아이들 사이에서 더 이상 “무언가 할” 시간이 없음. UNICEF에 기부하는 정도가 전부임
  • 7년간 San Diego에 산 뒤 Bay Area로 가족을 옮기기로 했고, 새 직장 기회와 가족 등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진실을 추구하는 공동체를 찾는 것도 큰 이유였다는 문장이 웃김
    내가 Bay Area를 떠난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진실 추구와 진실 말하기의 부재였기 때문

    • 안타깝게도 어디를 가든 의심 없는 교조주의는 있을 것임
      그래도 어느 정도 지적 엄밀성으로 알려진 대학을 나온 사람들 주변에서는 정치적 생각을 합리적으로 평가할 확률이 올라가는 편임
      물론 여전히 훌륭하진 않음. 살면서 만난 가장 교조적인 사람들 중 일부는 교수와 학부생이었음. 하지만 그 반대였던 사람들은 충분히 그 단점을 상쇄했음
    • 그렇게 말해 놓고 어디로 이사했는지 안 알려주면 안 됨. Bay Area에 살지 않아 방어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궁금함
    • 어디로 이사했는지 궁금함. 우리가 찾는 것이 거기에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은 완전히 이해함. 그래서 이것도 가족과 새 직장이라는 더 큰 요인들 중 하나였을 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