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니 생각이고 (feat. 장기하와 얼굴들)
(stdy.blog)정보 소비자로서 조금 더 냉정하게 (말꼬투리 잡기가 아닌) 유효한 근거를 요구하길, 그럼으로써 정보 생산자들도 조금 더 책임감 있게 근거를 명시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쓴 글
--
단정 알러지
- "개발자 특" "소름돋는 ENTP들의 공통점" "찐 부자들의 습관" "한국 중장년층 창업가들의 특징"
- 이런 단정적인 문장을 보면 "출처가 어디냐, 누가 어떻게 수집한 데이터냐"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어지는 알러지 증상이 있음
- 유머글이 아닌 진지하게 주장하는 컨텐츠에서는 통계나 연구 결과 출처를 살핌. 그런 게 없으면 신호보다는 소음에 가깝기 때문. 신뢰할 수 있고 유효한 정보여야 삶에 적용할 수 있음
- "내가 경험한" 같은 전제조건이 딸려있으면 좀 괜찮은데 "진짜 고수들의" 같은 게 붙어있으면 다시 증상이 올라옴. 진짜 고수의 기준을 뭘로 잡았는지, 그게 유효한 기준인지 묻고 싶어지기 때문
- 내 증상과 별개로 SNS에서는 이런 글이 인기를 끄는 걸로 보임. 바넘 효과 때문일 수도 있고 숏폼 컨텐츠의 부상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음
- 즉 이런 글을 피하고 싶어도 이미 주변에 많음. 그러면 피하기보다는 유효한 정보를 선별하는 태도를 가지는 게 더 유효함
신호와 소음을 구분하며 나를 지키는 사고법
- 기본 태도는 '그건 니 생각이고' 임
- "개발자 특: 체크무늬 셔츠만 입음" 같은 말을 들었을 때,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체크무늬 입은 개발자를 많이 만나봤나보다.' 라고 가볍게 넘기는 식
- 여기에는 시점에 대한 인식도 포함됨. 모든 의견은 어떠한 창(window), 즉 특정 기간동안 특정 사람의 눈으로 관찰한, 실제 세계의 좁은 단면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짐
- 부정적 피드백에 대처할 때도 같은 자세를 취할 수 있음
- 흥미가 생기면 '개발 직군 종사자와 패션 센스에 대한 연구'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봄으로써 유효한 학습 거리를 만들 수도 있음
거꾸로 생각하기: 이건 내 생각이고
- 유머 커뮤니티의 아무개가 아닌 유명한 전문가의 말에도, 내가 신뢰하는 사람의 말에도 똑같이 적용됨. 오히려 그런 사람일수록 내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커지니 더욱 깨어있어야 함
- 거꾸로 본인에게 권위가 있다면 스스로를 성역으로 만들고 있진 않은지 주의. 그럴수록 스스로의 파워를 의도적으로 낮추고, 내가 틀릴 수 있음을 강조하며, 반박 의견과 증거를 반갑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
- 찰스 다윈이 좋은 예. 종의 기원 출판 전후로 수많은 과학자들과 서신 교류하면서, 본인이 아무리 사랑했던 가설이라도 반박 증거가 나오면 즉시 버렸다고 함. (출처: The Life and Letters of Charles Darwin, 99p)
- 이런 다윈의 태도가 존경스럽고, 나도 그처럼 살고 싶음
최근 유튜브에서 집중해서 보는 컨텐츠들이 3~4명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대화하는 컨텐츠입니다. [일반적으로 구독자에게 말하는게 아닌...]
서로 어떻게 생각하고, 이런 점은 어떻고, 저런 점은 어떻고, 그 과정에서 유머스러운 대화로 빠지고 다시 주제로 돌아오고... 이 과정에서 대화와 관련된 태도로 배울점이 너무 많더군요.
다른 의견이 있을 때 어떻게 스무스하게 전달하는지, 대화에서 벗어나는데 자연스럽게 벗어나고 다시 자연스럽게 합류하는 방법, 자신이 생각한 강점을 멋있게 어필하는 방법 등등을 배워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컨텐츠들이 누가 뭐가 맞고, 틀렸고, 조작했고 등등으로 자극적인 내용들을 일반적으로 전달하는데, 대화형 컨텐츠들을 보면 마음이 놓이고 편안합니다.
오 공감합니다. 저는 유튜브를 안보는데 그런 컨텐츠는 누가 추천해서 보면 참 좋더라고요. 그러고보면 말씀대로 혼자가 아닐 때 더 그런 게 드러나는군요.
"~가 ~인 이유" 같은 제목도 너무나 많습니다.
이유라고 하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보통 주장일 뿐이죠.
우리나라 컨텐츠가 유독 그런거 같아요 (내 생각ㅎㅎ)
현대 컨텐츠 소비에 있어 좋은 사고방식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 서문 중 일부를 발췌 해 봅니다.
"당시 미술관의 큐레이터 아서 호턴Arthur Houghton이 우리를 데리고 미술품 보관실로 내려가 조각상을 보여주었지요. 호턴이 조각상의 덮개를 확 벗기며 말했어요. '음, 이 쿠로스는 아직은 우리 소유가 아닙니다. 하지만 2주 후면 우리 것이 될 겁니다.' 다음 순간 나는 말했지요. '유감스러운 일이군요?”
해리슨은 무엇을 본 것일까?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호턴이 덮개를 벗긴 바로 그 순간, 해리슨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을 뿐 이다. 몇 달 후 호턴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장을 지낸 바 있는 토머스 호빙 Thomas Hoving을 미술관의 보관실로 데려가 조각상을 보여주었다. 호빙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볼 때마다 자신의 뇌리를 스쳐가는 첫 단어를 메모 해두곤 했는데, 그 쿠로스를 처음 본 순간 떠오른 단어는 평생 잊지 못할 표 현이었다. 호빙은 이렇게 회상했다.
"그건 '새것fresh'이라는 단어였지요. 새것.
일부만 발췌를 해서 이해가 어려우셨을 것도 같습니다. 리디북스에서 서문 전체를 '미리보기'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대표가 이전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제게 이런 말을 내뱉었습니다. 진짜 치욕 그 자체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