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P by GN⁺ 7시간전 | ★ favorite | 댓글 3개

파인만이 옛 제자에게 보낸 편지

  • 파인만은 진정 가치 있는 문제란 직접 풀거나 기여할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하며, 작고 단순해 보이는 문제라도 자신이 직접 풀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다고 설명함
  • 학생에게 스스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찾으라고 조언하며, 단순하거나 사소해 보여도 실제로 해답을 얻는 경험과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기쁨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함
  • 학계에서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거대한 문제만을 쫓는 태도에 경계를 나타내며, 본인은 “마찰 계수 실험”, “플라스틱에 금속 도금 접착”, “종이 접기 알고리듬” 등 매우 다양한 소박한 문제에 도전하며 즐거움을 느꼈음을 예시로 듦
  • 학생에게 자신의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 찾은 문제에 집중하라고 당부하며, 주변 동료의 질문에도 답해주는 사람이 되라고 격려함
  • 자신을 이름 없는 존재라 여기지 말고, 가족과 동료, 주변 사람들, 그리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존재임을 잊지 말라고 따뜻하게 위로함

파인만에게 축전을 보낸 제자에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는 답장을 보냈더니
"난류 대기를 통한 전자기파 전파에 대한 몇 가지 응용을 포함하여 결맞음 이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소박하고 현실적인 유형의 문제입니다."

아래는 위의 답장에 대해서 다시 보낸 답장임

Dear Koichi,

네가 연구소에서 일하게 된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어. 그런데 너의 편지에서 슬픔이 느껴져 마음이 무거워졌구나. 아마도 선생님의 영향이 너에게 가치 있는 문제란 무엇인지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심어준 것 같아. 진정 가치 있는 문제란 네가 실제로 풀 수 있거나,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 누군가 아직 풀지 못한 문제고, 네가 조금이라도 진전을 이룰 수 있을 때, 그 문제는 충분히 위대한 문제야. 그러니 더 단순하거나, 네 표현대로 ‘하찮은’ 문제라도 네가 실제로 쉽게 풀 수 있는 것을 찾았으면 좋겠어.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스스로 풀어낸 성공의 기쁨과 누군가의 질문에 답해줄 수 있다는 뿌듯함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해.

네가 나를 만났던 때는 내 경력이 정점일 때였지. 너에게는 마치 신들의 문제를 다루는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때 나와 함께 했던 다른 박사과정 학생은, 바람이 바다 위에서 어떻게 파도를 일으키는지 같은 문제에 도전했단다. 나는 그가 직접 선택한 문제이기에 그 학생을 받아들였어. 그런데 너에게는 내가 문제를 주고, 네가 정말로 흥미를 느끼거나 즐길 수 있는 주제를 직접 찾도록 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구나. 이 편지로라도 그 잘못을 조금이나마 바로잡고 싶어.

나는 네가 ‘하찮다’고 생각할 만한 문제들에 정말 많이 도전했어. 아주 매끈한 표면의 마찰 계수 실험(실패였지만), 결정의 탄성, 플라스틱에 금속을 잘 붙이는 방법, 중성자가 우라늄에서 퍼져 나가는 방식, 유리 표면에 얇게 입힌 금속 필름에서 전자기파가 반사되는 원리, 폭발에서 충격파가 형성되는 과정, 중성자 검출기 설계, 어떤 원소가 왜 특정 궤도의 전자만 잡아먹는지, 종이접기 장난감의 원리, 원자핵의 에너지 준위, 그리고 수년간 실패했던 난류 이론까지… 이런 다양한 ‘작은’ 문제들을 풀면서 즐거움과 만족을 느꼈단다. 물론 그 외에 ‘더 위대해 보이는’ 양자역학 문제들도 있었지만 말이야.

정말 중요한 건, 네가 실제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면 그 문제의 크기나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네가 자신을 이름 없는 사람이라고 했지. 하지만 너는 네 아내와 아이에게는 결코 그런 존재가 아니야. 동료들이 네게 질문을 하러 찾아왔을 때 답을 줄 수 있다면, 곧 너의 주변에서도 이름 있는 사람이 될 거야. 나에게도 너는 이름 없는 사람이 아니야. 자신을 그런 식으로 여기지 말아줘. 젊을 적 네가 가졌던 순진한 이상이나, 선생님의 기준을 잘못 짐작해 만든 잣대가 아닌, 지금 이 자리에서 너만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해주길 바라.

행복과 행운을 빌며,
Richard P. Feynman

인생은 퀘스트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RPG 게임인 거 같습니다. 선생님의 기준은 단지 주어진 퀘스트일 뿐이죠. 스스로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야 스스로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만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길 바라는 마지막 문장은 정말 울림이 있네요.

파인만은 정말 좋은 스승이었네요.

Hacker News 의견
  • 정말 아름다운 편지라는 느낌을 받음, 인생에 관한 단순하면서도 깊은 지혜를 학생에게 전하는 내용임에 감사함을 느낌, 이 글이 Hacker News에 올라와서 읽을 수 있게 된 것에 고마움을 느낌

  • Feynman이 천재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가 얼마나 명확하고 철학적이었는지는 저평가 받는 부분이라 생각함,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언제나 그가 얼마나 적절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감탄함, 이 편지에서는 그의 이런 면모가 잘 드러남

    • Feynman은 복잡한 개념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줄여주는 능력이 있음, “이 입자는 여섯 방향 중 하나로 하나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완벽한 강철 베어링이다” 라는 예시를 정말 좋아함, Feynman the Explainer 글에서도 볼 수 있음, 그리고 “반사된 음파라고 말하지 말고, 에코라고 해”, “로컬 미니마 같은 말은 잊고, 결정 안에 거품이 갇혀 있고, 흔들어서 빼내야 하는 거라고 해”, Feynman은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포장하는 것에 매우 화가 났던 사람이었음
    • 이런 능력 덕분에 Feynman이 더욱 사랑받는 이유라고 생각함
  • “성공의 기쁨”이나 “동료의 머릿속에 있는 질문에 답해주는 것” 등, 페인만이 언급한 여러 구절들이 문제 해결자로서 겪는 고민을 잘 드러냄, 우리는 새로운 문제에 맞서기 위해 격려가 필요하고, 우리가 직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함, 약간의 건강한 자존감도 필요함(‘건강하다’의 정확한 정의는 모르겠음), 좋은 학습/직장 환경은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함, 하지만 자존심이 과하면 좌절, 소외, 착각, 자격 의식, 방어적인 태도 등 부정적 결과도 있을 거라 생각함,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은 채 일하는 사람이 정말 있다면 만나보고 싶음

    • ‘원죄’ 같은 숙명적 한계에 대한 인식이 중요함, 인간으로서 신적인 무언가를 동경하면서도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을 겪어야 함,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자신에게 친절해야 함
  • “스스로에게 이름 없는 존재로 남지 마라. 세상에서 네 자리를 찾고, 네 어린 시절의 순진한 이상이나, 네가 교사의 이상이라고 잘못 짐작하는 것들이 아닌 스스로를 제대로 평가하라”라는 내용이 매우 현명하다고 느낌

  • 이 편지는 내 커리어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좋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지만 내가 참여한 제품에 특별한 열정을 느껴본 적은 없음, 결국 내 일은 돈을 벌기 위한 ‘회사’라는 생각임, 하지만 남을 도와 문제를 해결하고, 동료의 질문에 답해주는 것, 가족을 부양하고, 스스로 가족의 롤모델이 되는 것에는 분명한 기쁨이 있음, 가끔은 내 삶에 더 큰 의미가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함, Kubernetes, ChatGPT, Google 같은 ‘세상에 영향 주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난 그렇게 야망이 크지 않음, 내 가족과 동료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면이 있음

    •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음'이라는 생각에 동의함, 최근 동료들과도 거대한 혁신이나 프로젝트에 대해 대화한 적이 있음, 인프라의 보이지 않는 작은 나사 같은 역할도 플래시한 부분 못지않게 중요함, 때론 더 중요할 수도 있음, 결국은 대단한 포부보다도 문제를 푸는 기쁨과 주변에서 꾸준히 필요한 존재라는 성취감에 더 의미가 있다고 느낌
    • 수백만 년간 인류의 대부분 시간은 힘든 노동의 연속이었음, 냉방이 잘 된 사무실에서 CRUD 작업으로 돈을 버는 삶에 대해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음
    • 어떤 문제를 ‘다루는 것’이 본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중요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그 문제에 기여하고 싶다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향임, 구글/ChatGPT/AI/기후변화 등의 이면에는 이론적인 재미와 성취가 있고(쿠버네티스는 다름), 이런 이론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서 쉽게 나오지 않음, 최근 스스로 소프트웨어 만들기도 이론적 문제풀기만큼 즐거운 활동임을 발견함, ML 엔지니어들이 과학자 역할로 전향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봄
    • “신에 가까운 문제” 다음에 “쿠버네티스 같은 것 만들기”가 나오는 게 놀라웠음, 내 경우에 신에 가까움을 요가에서 찾았음, 단순히 소프트웨어 만드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더 즐거운 삶이나 신체적 건강을 주는 것이 내 목적에 더 가까움
    • 야망이나 동력이 아닌 그냥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음, “이거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식의 궁금증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음
  • 관련 링크로 What Problems to Solve라는 논의 추천함

  • 정말 아름다운 글이라는 느낌, 깊은 인간미와 지적 사고가 한 에세이에 어우러짐, 처음엔 저자가 누군지 모르고 감탄했는데, 알고 보니 유명 인사였음, Hacker News에서도 이 조언은 모두에게 유용함, 세상에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건 그 이면에 평균적인(무언가의 평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 명심

  • 문제를 해결하고 ‘이겼다’ 혹은 ‘해냈다’는 느낌만 있으면, 크고 작은 건 상관 없이 충분한 만족감이 든다는 내용에 깊이 공감함

  • “난류 대기를 통과하는 전자기파 전파에 응용된 Coherence theory 연구”는 한때 ‘소박한 문제’로 불렸지만, 실제로는 지상 천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큰 문제였고, 상당 부분 해결된 문제임

  • 이 글을 올려줘서 매우 고마움, 페인만이 언급한 flexagon을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을 강력 추천함, 수학적 배경도 흥미롭고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장난감임, 어른도 아이처럼 재밌게 놀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