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 벅스턴은 미국 정부가 앨라배마 터스키기에서 흑인 남성 수백 명을 매독 치료 없이 관찰한 연구를 세상에 알린 내부고발자로, 86세에 사망함
- 1932년 시작된 터스키기 연구는 매독에 감염된 흑인 남성 400명을 대상으로 했고, 1940년대 항생제 치료가 가능해진 뒤에도 보건 당국이 약물 제공을 막음
- 벅스턴은 1966년 CDC에 윤리 문제를 제기했지만 거부당했고, 1972년 AP에 문서를 넘기면서 연구 종료로 이어진 공개적 분노가 확산됨
- AP 보도 뒤 의회 청문회, 집단소송, 1,000만 달러 합의, 약 4개월 뒤 연구 종료가 이어졌으며, 1997년 Bill Clinton 대통령은 연구를 “shameful”이라고 공식 사과함
- 이 폭로 이후 미국 정부는 의료 연구 규칙을 새로 마련했고, 터스키기 연구는 일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의료 연구 참여를 꺼리는 대표적 이유로 남아 있음
피터 벅스턴의 사망과 역사적 역할
- Peter Buxtun은 5월 18일 California Rocklin에서 Alzheimer’s disease로 사망했으며, 향년 86세였음
- 미국 공중보건 학자와 윤리학자들은 그를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의료 연구 스캔들을 드러낸 인물로 평가함
- 벅스턴이 Associated Press에 제공한 문서와 AP의 조사·보도는 1972년 터스키기 연구 종료로 이어진 공개적 분노를 촉발함
터스키기 매독 연구가 진행된 방식
- 1932년 연방 과학자들은 Alabama Tuskegee에서 매독에 감염된 흑인 남성 4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시작함
- 1940년대 항생제가 매독 치료에 사용 가능해졌지만, 연방 보건 당국은 해당 약물을 제공하지 않도록 지시함
- 연구는 시간이 지나며 질병이 신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관찰하는 형태가 됨
- 이 연구는 완전히 비밀은 아니었고, 이전 20년 동안 관련 의학 저널 논문이 약 12편 출판됐지만 연구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는 거의 없었음
- CDC의 Ted Pestorius는 2022년 연구 종료 50주년 프로그램에서 이 연구가 당시 미국 의료계에 완전히 받아들여졌다고 말함
벅스턴의 문제 제기와 기관의 거부
- 벅스턴은 1960년대 중반 San Francisco에서 연방 공중보건 직원으로 일하던 중 동료에게서 연구 이야기를 듣고 이를 알게 됨
- 연구 내용을 더 파악한 뒤 1966년 CDC 관계자들에게 윤리적 우려를 담은 편지를 보냄
- 1967년 Atlanta 회의에 소환됐고, 기관 관계자들은 그의 문제 제기를 무례하게 받아들이며 질책함
- 기관 지도부는 터스키기 남성들을 치료해야 한다는 벅스턴의 요구와 불만을 반복적으로 거부함
- 이후 그는 US Public Health Service를 떠나 법학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연구 문제를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음
AP 보도와 연구 종료
- 1972년 벅스턴은 San Francisco에서 알게 된 AP 기자 Edith Lederer에게 연구 관련 문서를 제공함
- Lederer는 해당 문서를 AP 탐사보도 기자 Jean Heller에게 넘기며 “여기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함
- Heller의 기사는 1972년 7월 25일 보도됨
- 보도 이후 의회 청문회와 집단소송이 이어졌고, 1,000만 달러 합의가 이뤄짐
- 약 4개월 뒤 연구가 종료됨
- 1997년 Bill Clinton 대통령은 이 연구에 대해 공식 사과하며 “shameful”이라고 표현함
- 연구 참가자의 기억을 기리는 단체의 Lille Tyson Head는 벅스턴의 정직함과 용기에 감사한다고 말했으며, 그의 아버지도 연구 대상자였음
개인사와 이후 평가
- 벅스턴은 1937년 Prague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Jewish였음
- 가족은 Nazi 점령하의 Czechoslovakia를 떠나 1939년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이후 Oregon의 Irish Bend에 정착함
- 벅스턴은 연방 보건 당국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터스키기 연구를 Nazi 의사들이 Jews와 다른 수감자들에게 수행한 의료 실험과 비교함
- 연방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같은 종류의 도덕적·윤리적 죄를 저질렀다고 보지 않았지만, 터스키기 연구 폭로 이후 정부는 의료 연구 수행 방식에 대한 새 규칙을 마련함
- 오늘날 터스키기 연구는 일부 African American이 의료 연구 참여를 꺼리는 이유로 자주 지목됨
- CDC의 Ted Pestorius는 벅스턴의 삶의 경험이 그가 연구를 즉시 도덕적으로 방어 불가능한 일로 인식하고, 남성들의 치료라는 정의를 추구하게 했다고 말함
- 벅스턴은 University of Oregon에 다녔고, US Army에서 전투 의무병과 정신의학 사회복지사로 복무했으며, 1965년 연방 보건서비스에 합류함
- 이후 터스키기 연구와 관련해 글을 쓰고 발표했으며, 여러 상을 받음
- 그는 세계를 여행했고 골동품을 수집·판매했으며, 특히 군용 무기와 칼, California 골드러시 시대의 도박 장비에 관심을 가짐
- Nazi가 몰수한 가족 재산을 되찾기 위해 20년 넘게 노력했고, 일부 성공을 거둠
- 오랜 친구 David M Golden은 벅스턴을 지혜롭고 재치 있으며 세련되고 관대한 사람으로 기억했고, 개인의 자유를 지지하며 마약·성매매·총기 금지에 자주 반대했다고 말함
- 또 다른 오랜 친구 Angie Bailie는 벅스턴이 터스키기 발표를 눈물을 참지 않고 끝낸 적이 없었다고 말함
- 2018년 Johns Hopkins University 포럼에서 내부고발의 도덕적 힘을 어디서 얻었느냐는 질문에 벅스턴은 “힘이 아니었다. 어리석음이었다”고 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