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과 자기표현은 한 시대의 분위기를 압축해 보여주지만, 권력에 맞서 세계를 바꾸는 정치적 행동을 대신하기는 어려움
- 1970년대 초 이후 자기표현은 “새로운 정치”처럼 떠올랐지만, 현대 자본주의가 이미 자기표현을 중심으로 작동하면서 반항이 아니라 동시대의 순응이 됨
- 히피와 신좌파의 붕괴 뒤 개인적 표현이 집단 행동의 대안처럼 부상했고, 자본주의도 개인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파는 방식으로 재편됨
- 개인주의적 자유는 각자의 욕망 안에 머물게 만들 수 있지만, Civil Rights Movement처럼 자신을 더 큰 집단에 내어주는 방식은 공통 정체성과 집단의 힘을 만들어냄
- 컴퓨터는 사람들을 상관관계와 패턴으로 묶어 볼 수 있지만 주로 판매에 쓰이고 있으며, 합리적·관료적 세계의 탈주술화를 넘어설 새로운 신화와 멜로드라마적 상상력이 필요함
예술과 자기표현의 한계
- 예술은 세계와 시대의 분위기를 응축하고 묘사하는 방식으로 유용함
- 19세기 강도 남작들의 아내와 가족을 그린 그림은 당시 세계가 어땠는지 많은 것을 알려줌
- 그러나 예술과 자기표현은 세계를 바꾸고 권력에 도전하는 정치적 행동의 대체물이 아님
- 1970년대 초 이후 자기표현은 “새로운 정치”이자 세상의 나쁜 것에 도전하는 방식처럼 자리 잡음
- 지금의 세계 전체가 자기표현에 기반하기 때문에, 자기표현만으로는 그 세계에 도전하기 어려움
- 모든 사람이 매일 자신을 표현하는 시대에는 자기표현이 반항이 아니라 동시대의 순응이 됨
- 1930년대 술집 사진 속 남성들이 같은 옷과 모자를 쓴 것처럼, 후대에는 모두가 자기표현을 했다는 점이 순응으로 보일 수 있음
- 자기표현이 나쁘거나 가짜라는 뜻은 아니지만, “급진적 외부자”나 “힙스터식 멋진 외부자”의 위치는 아님
개인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
- 현대적 자기표현의 역사는 히피 문화와 연결되며,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신좌파의 붕괴 속에서 뚜렷해짐
- Patti Smith의 회고록 Just Kids는 Robert Mapplethorpe와의 관계를 통해 집단 행진에 자신을 내어주는 방식에 대한 피로감을 보여줌
- 집단으로 행진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감각이 있었음
- 체제에 대한 분노를 상상력 있게 표현하는 방식이 좌파의 실패에 대한 대안처럼 등장함
- Curtis의 다큐멘터리 The Century of Self는 1970년대 자본주의의 큰 전환을 다룸
- 자본주의는 모두가 비슷한 상품을 사는 방식에서 벗어남
- 개인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훨씬 넓은 범위의 상품을 파는 방식으로 재편됨
- 예술가들에게 반항처럼 보였던 자기표현은, 그들이 싫어하던 권력 구조 내부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었음
- 예술의 메시지가 아무리 급진적이어도 비판의 형식이 자기표현이라면, 전복하려던 권력 구조를 오히려 먹여 살릴 수 있음
- 자본주의도 자기표현을 궁극적 목표로 삼음
- 예술도 자기표현을 중심에 둠
- 그래서 예술은 급진적 외부 운동이 아니라 현대적 순응의 중심에 놓임
권력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서 보임
-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면 권력이 어디로 갔는지에서 출발해야 함
- 자신을 독립된 개인으로 보는 세계에서는 권력을 생각하기 어려움
- 개인은 자신의 영향력만 생각하게 됨
- 자신을 어떤 것의 일부로 보도록 장려받지 않음
- 과거에는 집단 속에서 사람이 강력해질 수 있다는 감각을 더 잘 볼 수 있었음
- 집단은 변화를 만들 수 있음
- 일이 잘못될 때도 혼자일 때보다 더 큰 자신감을 줄 수 있음
- 컴퓨터는 사람들을 개인이 아니라 큰 집단으로 볼 수 있음
- 사람들의 욕망, 야망, 두려움에는 유사성이 있음
- 컴퓨터는 상관관계와 패턴을 통해 이를 포착함
- 다만 컴퓨터가 사람들을 묶어 보는 방식은 주로 물건을 팔기 위한 집계에 머물러 있음
- 컴퓨터 안에는 사람들 사이의 새로운 집단과 공통 정체성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
- 그 가능성은 아직 제대로 쓰이지 않음
자유의 두 가지 형태
- 정치란 집단적 자기표현이었고, 사람들은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다른 사람들과의 단결을 표현했음
- 미국에서 가장 최근의 강력한 사례는 Civil Rights Movement임
- 1950년대 젊은 백인 활동가들은 남부로 내려가 젊은 흑인 활동가들과 여러 해 동안 함께 일함
- 많은 이들이 폭행당했고, 일부는 살해당함
- 그들은 자신을 더 큰 것에 내어주었고, 그 힘으로 세계를 바꿈
- 현대의 자유 개념은 매우 개인주의적임
- 개인으로서 내가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형태임
- 다른 자유 개념은 자신을 더 큰 것에 내어줌으로써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이라는 좁은 감옥에서 벗어나는 방식임
- “주님을 섬김 안에 완전한 자유가 있다”는 식의 정의가 한 예임
- 자신보다 더 큰 것의 일부가 되면서 더 큰 사람이 된다는 감각임
- 개인적 자기표현은 개인주의 시대의 이념 안에서는 무한해 보이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자신의 욕망만 남기 때문에 제한적일 수 있음
탈주술화된 세계와 새로운 신화
- Curtis는 Max Weber가 1920년대에 말한 합리성의 철창을 가져옴
- Weber는 관료적 시대가 좌파든 우파든 모든 것을 관리하고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세계를 만들 것이라고 봄
- 그 대가로 세계의 신비롭고 경이로운 감각, 즉 주술성이 사라진다고 봄
- 음모론은 세계를 왜곡된 방식으로 다시 주술화하려는 시도일 수 있음
- 음모론자들에게서는 합리적인 것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어둡고 신비한 무엇에 대한 거의 낭만적인 경외감이 느껴짐
- 이는 종교적인 감각과 비슷함
- 주술성은 이상하고 왜곡된 형태로만 돌아올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음
- 자본주의의 몰락은 합리적·기술관료적 탈주술화에 포획되어 철창이 된 데 있음
- 사람들을 가두는 구조가 됨
- 새로운 형태의 주술적 신화가 돌아와야 함
- 신화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설명하고, 개인의 존재를 넘어서는 위안을 줄 수 있음
- 종교 같은 신화적 힘은 권력처럼 평범하고 제한적인 합리적 기술관료 저널리즘이 다루기 어려운 것을 극적으로 다룰 수 있음
- 멜로드라마는 금융이나 긴축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제한적이고 지루한 합리적 기술관료의 철창을 뛰어넘는 방식이 될 수 있음
- 현대의 초개인주의가 병 속으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임
- 사람들은 여전히 독립된 개인이라고 느껴야 함
- 동시에 자신보다 경이롭고, 더 크고, 더 강력하며, 자신의 존재를 넘어 미래로 이끄는 것에 자신을 내어줄 수 있어야 함
Adam Curtis의 주요 작업
- The Century of Self: Freud와 PR의 발명을 통해 개인주의와 자본주의의 부상을 다룬 4부작
- The Power of Nightmares: 정치인들이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약속을 사람들이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신 악몽으로 사람들을 겁주는 과정을 다룸
- All Watched Over by Machines of Loving Grace: 히피와 기술을 다룸
- It Felt Like a Kiss: 내레이션이 없는 작업
- HyperNormalisation: 세계가 왜 말이 되지 않는지 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