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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를 더 안전하게 키우려는 보호 본능이 위험한 놀이와 자유를 줄였지만, 그 결과 아이들이 스스로 위험을 판단하고 회복하는 기회를 잃을 수 있음
  • 위험한 놀이는 높이 오르기, 빠르게 움직이기, 도구 쓰기, 물·불 근처에서 놀기, 거친 몸놀이처럼 불확실성과 흥분을 다루는 활동을 포함함
  • 1975~2015년 영국 아이들의 야외 놀이는 29.4% 감소했고 화면 기반 활동은 22.4% 증가했으며, 미국에서는 매일 밖에서 노는 아이가 1997년 16%에서 2003년 10%로 줄어듦
  • 1980년대 이후 확산된 집중 양육은 감독과 구조화된 활동을 늘렸지만, 자유시간 감소는 실행 기능 발달과 정신 건강에 부담을 줄 수 있음
  • 아이들이 잘 자라려면 매일의 야외 놀이 시간, 상상과 위험 탐색이 가능한 공간, 어른의 불안을 낮추고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자유가 필요함

부모의 안전 추구가 만든 역설

  • 부모는 아이가 다치거나 실패하지 않게 하려는 마음으로 위험을 제거하고 감독을 늘리지만, 그런 노력이 오히려 아이들의 안전과 성장 가능성을 낮출 수 있음
  • Mariana Brussoni는 20년 넘게 아이 발달, 부상 예방, 야외 위험 놀이를 연구하며, 아이가 스스로 고른 방식으로 놀 수 있는 놀이 우선 환경이 아이와 청소년의 성장에 중요하다고 봄
  • “아이들은 가능한 한 안전하게가 아니라, 필요한 만큼 안전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문장은 위험을 모두 없애기보다 발달에 필요한 자유를 남기는 접근을 압축함

사라진 동네 놀이와 세대 변화

  • 1990년대 이전에 태어난 많은 서구권 성인은 친구들과 동네, 공원, 버려진 장소에서 어른 감독 없이 규칙을 만들며 놀던 기억을 갖고 있음
  • 당시의 놀이는 달리고, 뛰고, 실내에서 허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며 자유, 독립성, 자기 판단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음
  • 세대가 바뀌며 야외 놀이와 자유는 뚜렷하게 줄어듦
    • 1975~2015년 영국 아이들의 야외 놀이는 29.4% 감소
    • 같은 기간 화면 기반 활동은 22.4% 증가
    • 미국에서는 매일 밖에서 노는 아이가 1997년 16% 에서 2003년 10% 로 줄어듦
  • 부모 세대는 동네 모험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1990년 이후 태어난 아이들은 어른이 지켜보는 스포츠 같은 구조화된 활동을 어린 시절 놀이 기억으로 말할 가능성이 큼

위험한 놀이가 아이에게 주는 발달 기회

  • 아이들에게 시간, 공간, 자유가 주어지면 스스로 높은 곳에 오르거나, 비밀 공간을 만들거나, 자전거 경주를 하며 위험한 놀이를 시작함
  • 위험한 놀이는 물리적 위험을 감수하고, 흥분을 찾고, 호기심을 채우는 놀이임
    • 높은 곳에서 놀기: 오르기
    • 빠른 속도로 놀기: 썰매 타기
    • 도구 쓰기: 망치, 칼
    • 자연 요소 근처에서 놀기: 불, 물가
    • 거친 몸놀이
    • 어른 감독 없이 동네에서 놀기 같은 독립적 이동
    • 호수에 뛰어드는 것 같은 충격을 동반한 놀이
  • 아이들은 이런 놀이에서 이전 한계를 넘고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을 만나며 스릴과 두려움을 동시에 경험함
  • 다칠 가능성은 있지만, 아이들은 성장하며 마주칠 도전을 다루기 위한 신체적·인지적 기술을 낮은 비용으로 익힘
  • 신체적으로는 더 다양한 움직임을 탐색하고 움직임 기술을 얻는 데 도움이 됨
  • 인지적으로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며, 어려운 상황에 독립적으로 대처하는 연습이 됨

불안과 위험 놀이의 관계

  • 위험한 놀이는 아이들이 불확실성과 강한 감정을 다루는 연습장이 됨
  • 불안한 아이들은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려워하고, 모호함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며,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신의 대처 능력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음
  • 위험한 놀이에서는 흥분과 스릴이 두려움이나 공포로도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한 감정을 경험함
  • 아이들은 일이 잘못될 때도 자신이 회복력 있고 대처할 수 있음을 몸으로 배울 수 있음
  • 위험한 놀이 기회가 더 많은 아이들은 불안장애의 특징인 내재화 증상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음
  • Canadian Paediatric Society는 위험한 놀이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소아과 의사가 환자의 삶에서 이를 지원하도록 권장하는 성명을 냄

위험한 놀이가 줄어든 이유

  • 위험한 놀이와 어린 시절 자유가 줄어든 핵심 요인 중 하나는 1980년대 이후 확산된 집중 양육
  • 부모, 특히 어머니는 아이의 삶을 세밀하게 관리하고, 경험을 큐레이션하고, 장애물을 제거하고, 다양한 구조화된 활동에 등록시키라는 압박을 받아옴
  • 이 양육 방식은 북미에서 널리 받아들여졌고, 시간·돈·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는지와 관계없이 다양한 배경의 부모에게 비현실적 기준으로 작동함
  • 구조화된 활동 등록은 발달 결과 향상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연구가 있으며, 자유시간 감소는 기본적인 실행 기능 발달에 해로울 수 있음
  • 집중 양육의 긍정 효과가 나타난 경우에도 그 효과는 작았고, 부모가 치르는 큰 비용을 상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음
  • 영국의 종단 연구는 아이들의 신체 건강에는 소폭 긍정 효과를 보였지만, 정신 건강에는 해로운 영향을 보임
  • 다른 연구들은 아이가 청년기로 성장하며 불안·우울 증가와 독립성 손상 등 정신 건강에 부정적 효과를 보임

실제 위험에 대한 오해

  • 오늘날 부모는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언제나 아이를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받음
  • 아이들이 놀기에 세상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지만, 통계상 아이로 살기에 지금보다 안전한 시기는 없었음
  • 서구권 대부분에서 부상 관련 사망은 역대 최저 수준임
  • 미국에서는 1973~2010년 사이 비의도적 부상으로 인한 사망이 남아 73%, 여아 85% 감소함
  • 오늘날 아이들의 주요 사망 원인은 친구들과 어른 없이 밖에서 노는 것이 아니라 교통사고와 자살
  • 부모가 아이를 안전하게 하려고 쓰는 차량 이동, 감독 극대화, 자유 최소화는 의도치 않게 부상과 사망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음

위험한 놀이를 되살리는 세 가지 조건

  • 아이가 잘 자라는 놀이 환경에는 시간, 공간, 자유가 필요함
  • 시간: 매일의 야외 놀이를 우선순위로 두기

    • 매일 야외 놀이 시간을 스포츠나 다른 방과후 활동처럼 일정에 넣을 수 있음
    • 학교도 야외 수업과 쉬는 시간을 우선해야 함
    • 안전하고 자극적인 야외 환경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취약 가정 아이들에게는 학교의 야외 시간과 쉬는 시간이 특히 중요함
    • U.S. Play Coalition의 recess position paper는 학교 쉬는 시간 확대를 요구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음
    • 연구실에서 만든 무료 교사용 도구는 야외 학습을 장려하고 교사가 마주치는 일반적 장벽을 다루는 짧은 방법 영상을 포함함
  • 공간: 상상과 위험 탐색이 가능한 장소 만들기

    • 아이들에게는 지루한 놀이 구조물과 엄격한 규칙이 지배하는 공간보다, 상상력을 쓰고 위험을 탐색할 수 있는 유연한 공간이 필요함
    • 자동차 증가에 맞춰 주차장과 고속도로가 늘어나면서 이런 공간은 점점 찾기 어려워짐
    • 입법 차원에서는 자동차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도시 계획으로 옮겨갈 필요가 있으며, 북미의 여러 도시는 이미 그런 조치를 취함
    • 개인 차원에서도 작은 공간을 바꿀 수 있음
    • 막대기, 목재, 돌, 상자, 방수포 같은 비정형 재료(loose parts) 는 지루하고 빈약한 놀이 공간을 즐겁고 놀라운 장소로 바꿀 수 있음
    • 어른에게는 잡동사니처럼 보여도 아이들은 이런 재료를 좋아함
    • 스코틀랜드는 시작하려는 사람을 위한 loose parts toolkit을 만들었음
    • 일부 도시는 비정형 재료가 풍부한 아이 중심·아이 주도 놀이 공간인 모험 놀이터를 갖고 있음
    • 이런 놀이터에는 항상 어른 직원이 있지만, 심각한 안전 위험이 생기기 전까지는 뒤로 물러나 있음
    • 뉴욕의 play:groundnyc가 한 예임
  • 자유: 어른의 불안을 관리하고 아이에게 선택권 주기

    •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놀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함
    • 아이들의 자유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어른과 어른의 두려움 관리 욕구임
    • 이 두려움을 넘는 일은 어렵지만, 다른 부모들과 함께할 때 더 쉬워짐
    • Peter Gray는 이웃과 더 촘촘한 관계를 만들면 부모가 아이들을 밖에서 놀게 하는 데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봄
    • 미국 단체 Let Grow는 부모와 학교가 독립적인 어린 시절을 지원하도록 돕고 있음
    • OutsidePlay.org의 부모 도구는 부모가 두려움과 놀이 접근 방식의 변화를 다루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고, 변화 계획을 세우도록 돕기 위해 개발됨
    • 이 도구는 엄격하게 테스트되었고 효과가 있음

화면 시간과 야외 놀이의 대체

  • 야외 놀이 감소를 볼 때 화면 시간의 영향도 함께 봐야 함
  • 영국 아이들은 2000년에 하루 3시간을 화면에 썼고, 이는 스마트폰 확산 전의 수치였음
  • 2015년에는 하루 4시간 45분으로 늘어남
  • 다른 추정치는 하루 480분, 즉 8시간까지 올라감
  • 일부 아이들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기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냄
  • 화면에 쓰는 시간은 어딘가에서 빠져나와야 하며, 주로 수면과 야외 놀이 시간을 대체해왔음

작은 변화로 시작하는 회복

  • 아이들이 잘 자라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압도적이거나 불가능하게 느껴질 필요는 없음
  • 변화는 작고 관리 가능한 한 걸음에서 시작할 수 있음
  • 아이들의 일상과 현실 속에서 놀이와 자유를 우선순위로 두는 선택이 필요함
  • 위험을 모두 없애기보다, 아이가 감당 가능한 위험 속에서 성장하도록 시간·공간·자유를 회복해야 함

댓글과 토론

Hacker News 의견들
  • 예전 학교에는 2층 높이 철제 정글짐이 있었고, 어느 순간 안전 때문에 밑에 고무 조각을 깔더니 몇 년 뒤 1층 높이로 잘라냈고, 나중에는 아예 철거됨
    그들이 말하는 두려움, 흥분, 위험이 뭔지 정확히 앎. 위험해서 재미있었지만, 아이가 떨어져 다치는 일은 극히 드물었음
    수많은 손에 닳아 반짝이던 철봉이 아직도 어제처럼 그립고, 지금은 아마 “너희 부모가 너희를 겁쟁이로 만들었다”는 큰 표지판이나 있을 듯함

    • 부모 세대가 이런 변화와 참가상 같은 걸 두고 우리 세대를 버릇없고 유리멘탈이라고 부를 때 웃김
      정작 그런 변화를 만든 건 그들의 감정 때문이었고, 아이였던 나는 5등으로 서서 메달 받는 게 바보 같다고 느꼈음. 부모가 뭔가 뿌듯해하려고 만든 장치였음
    • 할아버지는 우리가 숲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안전한 놀이터에서 논다고 겁쟁이라 불렀음. 모든 세대는 다음 세대가 과보호받는다고 생각할 것임
    • 우리 학교에도 그런 게 있었고, 체인이 15피트는 넘는 그네도 있었음. 쉬는 시간마다 거의 위쪽 가로봉과 평행할 정도로 올라가다 뛰어내리고, 뒤돌기까지 했던 기억이 남
      아이들이 “마녀 모자”라고 부르던 특히 위험한 놀이기구도 있었음. 15피트쯤 되는 둥근 중앙 금속 기둥 위에 자유롭게 도는 캡이 있고, 거기에 10피트짜리 체인 여러 개가 달려 거대한 팔각형 또는 십각형 금속 링과 연결된 구조였음
      사실상 거꾸로 된 회전목마라 양쪽에 몇 명씩 매달려 같은 방향으로 뛰어야 했고, 무게중심이 바뀌며 아이들이 들렸다 내려오면서 땅에 닿는 순간 죽어라 달려야 했음
      어떤 아이가 날아가 쇄골을 부러뜨린 뒤 교사들이 안 볼 때만 타는 식으로 사실상 금지됐고, 결국 폐기됨. 놀이터의 슬픈 날이었음
    • 약함을 여성과 여자아이, 특히 여성 성기와 연결하는 표현은 이제 그만했으면 함
    • 완전히 동의함. 어릴 때 집 근처 공원에 정말 재미있는 철제 정글짐이 있었고 자주 놀았음
      두려움은 분명 재미 요소 중 하나였는데, 지방의회가 아이가 다칠까 봐 철거해버림. 슬픈 일임
  • 아이 양육에서의 위험 회피는 기본적으로 가족 규모가 작아진 결과라고 봄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집에 다른 아이가 넷 더 있으면 첫째가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는 걸 부모가 더 받아들이기 쉬운 반면, 외동을 잃는 건 가계의 끝처럼 느껴질 수 있음
    아이가 유전적 백업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부모의 위험 평가에 무의식적 영향을 주는 건 확실해 보임
    어느 사회의 평균 연령이 높을수록 전쟁 성향이 커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아이 행동의 위험 수용에도 비슷한 현상이 적용되고 여기서는 출산율과 연결된다고 생각함

    • 이 가설에 두 가지를 덧붙이면, 아이를 지켜볼 형제자매가 없으면 부모가 그 역할을 맡게 되고, 부모는 형제자매보다 더 위험을 피하고 책임감 있는 보호자인 경향이 있음
      또 미국 교외에는 살아본 적 없지만 밀도가 높아 보이지 않음. 멕시코에서 자랄 때는 아이 밀도가 높았고, 모두 형제자매가 있던 영향도 컸을 것임
      근처 이웃과 나이가 맞을 가능성도 아이가 많을수록 커졌고, 우리는 늘 밖에 있었음. 형들이 동생들을 무리에 데려오고, 우정이 생기고 깨지고 회복되고, 모험도 많았음. 엄마가 알면 싫어했을 상황도 한두 번이 아니었음
    • 빠뜨린 게 있음. 200년 전에는 아이 5명 중 1명이라도 5살까지 살면 운이 좋은 편이었고, 질병이 큰 사망 원인이었음
      그래서 아이에게 너무 애착을 가지면 죽었을 때 마음이 산산조각 나니, 아이들이 뭘 하든 어느 정도 놔뒀음. 살아남으면 좋고, 못 살아남아도 어차피 위험한 놀이 때문이 아닐 가능성이 컸음
      그렇다고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됐다는 뜻은 아님. 돌봄은 있었지만 현대 가정처럼 밀착되진 않았고, 대체로 안전하면 충분하다는 수준이었음
    • 더 작은 가족이 원인일 수는 있지만, 이유는 다를 수 있음
      첫째 때 부모는 아직 배우는 중이라 위험에 민감하고 모든 걸 걱정함. 둘째 때는 특정한 두려움 몇 가지는 생기지만 나머지는 덜 걱정하게 됨
      셋째, 넷째쯤 되면 경험이 훨씬 많아져 많은 일을 덜 걱정함. 큰 가족이 흔하면 이런 태도가 사회 전체에 반영되지만, 작은 가족에서는 부모가 첫째·둘째 단계에서 멈춰 계속 걱정을 떨치지 못함
    • 이 설명은 맞지 않는 것 같음. 내가 사는 곳은 내가 어릴 때와 지금의 자녀 수가 거의 같은데, 예전에는 완전히 평범했던 아이들의 활동이 지금은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이 됨
      전반적인 위험 회피 증가와 맞물려 있음
    • 가족 규모 축소 때문 같지는 않음. 형제는 한 명뿐이었지만 어릴 때는 꽤 자유롭게 다녔고, 부모 둘 다 일해서 우리는 열쇠 목걸이 아이들이었음
      규칙은 저녁 시간에 집에 돌아오는 것뿐이었고, 방과 후에는 완전히 무감독으로 발이나 자전거가 닿는 어디든 돌아다녔음. 그때는 가족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아이가 그랬음
      달라진 건 아이에게 닥칠 위험을 부추기는 미디어 공포라고 봄. America's Most Wanted 같은 프로그램이 부모를 겁먹게 했고, 집단 심리에 큰 손상을 남김
      인터넷의 부상도 초판단적인 잔소리꾼들에게 양육관을 퍼뜨리고 헬리콥터 부모가 아닌 사람을 꾸짖을 무대를 줬음. 이제 그런 인터넷 잔소리꾼들이 사회 거의 모든 영역을 장악한 듯함
  • 그리고 조랑말도 있음
    오랫동안 승마장 주변에 있었고 오늘도 탔지만, 이제 아이들의 활동이 아님. 기수 대부분은 어른이고, 그중에서도 나이 든 어른이 많음. 승마 수업을 듣는 아이는 적고, 늙은 조랑말들은 덜 쓰임
    15년 전만 해도 조랑말은 보통 10대 초반 여자아이들이 타거나 손질하고 있었고, 아이들끼리 감독 없이 산책로로 나가는 것도 흔했음. 한 시간쯤 나갔다 오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음
    지금 아이가 있다면 대개 부모가 말 좋아하는 사람이라서임. 아이들을 가르치는 마방은 매우 조직화돼 있고, 아이들은 절대 어른 시야 밖에 있지 않음. 부모들은 보통 앉아서 지켜봄
    슬픈 일임. 말 주변에서 자란 아이들은 괴롭힘 문제를 잘 겪지 않는 편임. 거대한 이빨과 쇠굽을 가진, 약간 밀어붙이는 반 톤짜리 동물을 상대하는 데 익숙해지면 덩치 큰 애들이 그렇게 커 보이지 않음

    • 개인 경험 때문에 시야가 조금 색칠된 것 아닐까 싶음. 조랑말이나 말을 취미로 타는 건 언제나 인구의 95%에게는 경제적으로 닿기 어려운 취미였음
      카트 레이싱이 평범한 취미가 아닌 것처럼 승마도 그다지 평범한 취미는 아니었음
    • 말 타는 여자아이들은 자동차 좋아하는 남자들처럼 비슷한 속도로 사라지는 듯함. 화면 관련 활동은 덜 힘들면서 비슷한 수준의 만족을 주는 것 같음
    • 어릴 때부터 승마를 많이 했고 자기 말까지 있던 여자아이를 아는데, 아이였을 때 괴롭힘을 많이 당했음
    • 더 싸고 친환경적인 대안은 자전거
    • 말뿐 아니라 반려동물 전반이 아이의 삶을 여러 방식으로 풍요롭게 할 수 있음
  • 다섯 살 아이가 붐비는 동네 거리에서 감독 없이 축구공을 갖고 놀게 하는 건 괜찮지 않음. 열세 살 아이가 친구들과 동네에서 놀게 하는 건 좋음
    하지만 그 사이의 나이는 어떨까? 몇 살부터 아이가 수영장에서 부모가 지켜보지 않아도 놀 수 있을까? 언제부터 띠톱을 감독 없이 쓰게 믿을 수 있을까?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8인치 부엌칼을 제한 없이 쓰기엔 몇 살이 너무 어릴까?
    대부분 수사적 질문이고, 핵심은 계속 필요한 위험 계산이 지치게 하며 부모가 조심하는 쪽으로 기우는 건 합리적이라는 것임
    미국의 공공공간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성인 공간이고 아이들은 겨우 용인될 뿐이라는 관찰이 있음. 따라서 대부분의 공공공간은 성인 수준의 위험과 위해를 갖게 됨

    • 좋은 지점이지만, 이런 조심 편향이 어디서 왜 생겼는지 궁금함
      아이를 키우는 행동은 인류에게 아주 깊고 오래된 행동인데, 과거 세대나 역사 기록을 떠올리면 늘 방목형 양육에 가까웠음
      아마 최근 한두 세대 사이에야 어린 시절이 탐험과 자유에서 제한과 분 단위 일정으로 바뀐 듯함. 아이들에게 이 독특한 양육 방식이 이로운지는 확실치 않고, 아이들의 정신건강 문제는 늘고 있음
      반대로 감시·제한 도구와 빈 하루를 채울 활동·서비스를 팔아 돈을 벌 수 있으니, 좋든 나쁘든 이 행동을 문화 안에 유지할 유인이 어느 정도 있음
    • 5살 때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가로질러 친구를 보러 다녔음. 부모에게 어디 가는지만 말하고 나갔음
      6살 때 첫 Victorinox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받았고 면도날처럼 갈아 쓰는 법을 배웠음. 7살 때는 일주일 용돈을 모아 동네 수영장에 혼자 가서 수영하고 사탕도 샀음
      8살 때 가장 친한 친구가 이사 갔고, 그걸 놀리던 친구들의 형들과 여러 번 싸웠음. 나이 차를 감안하면 꽤 맞서 싸웠음
      9살 때는 동네 끝까지 가서 친구 집 옆에 자전거를 세우고, 4분의 1마일을 걸어 강 웅덩이에서 낚시했음
      요즘 부모들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음. 아이의 신체적 안전만 지키려 하고, 아이가 스스로 위험을 정확히 평가하는 발달 능력은 뒷전으로 둠. 그렇게 실패가 대물림됨
      제대로 자기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삶의 경험을 갖지 못한 채 자라는 아이들을 만들기 때문임. 세상은 그렇게까지 무섭지 않음
    • 활동과 개인에 따라 많이 달라짐. 거의 40살이지만 아직도 우리 집 띠톱은 감독 없이 쓰지 않음. 내가 덤벙대서 앞으로도 스스로를 믿을 나이는 없을 것 같음
      나와 여동생은 자라면서 영역별로 다른 나이에 독립성을 받았음. 감독 없이 할 자신이 생겼는지, 부모의 신뢰를 얻었는지가 기준이었음
      대체로 나는 혼자 집에 있기, 취침 시간 정하기, 숙제 일정 관리 같은 책임 기반 과제를 여동생보다 일찍 했고, 여동생은 칼 쓰기, 가스레인지 쓰기, 위험한 스포츠 같은 신체적으로 위험한 일을 나보다 일찍 했음
      모든 경우 점진적 과정이었음. 먼저 부모가 가르치고, 지켜보는 앞에서 해보게 하고, 도움을 부르면 올 수 있는 상태에서 해보게 하고, 마지막에 혼자 하게 했음. 각 단계는 부모나 우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만큼 걸렸음
      부모님 둘 다 불안과 조심이 큰 사람들이라 이런 자유를 주기가 쉽지 않았을 테지만, 우리가 성인이 되기 훨씬 전부터 연습해야 한다는 걸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음
      부모 없이 독립적으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칠 시간이 몇 년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우리는 계획해서 낳은 아이들이라 어떻게 키울지 많이 고민했음
    • 사실 아이 문제가 아니라,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 전체가 얼마나 후견주의적이 되었는지가 문제임
    • 프레임을 바꾸고 싶음. 아이들에게는 위험의 스릴과 감각이 필요하지만, 실제 위험 자체를 추구하는 건 어리석음
      원하는 건 스릴은 높고 실제 위험은 낮은 활동임. 예를 들어 헬멧 없이 미니바이크를 타는 건 멍청한 일임. 헬멧을 쓰면 스릴의 99%는 그대로 얻으면서 실제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고 손해도 없음
  • 이 주장에 꽤 공감하지만, “지금이 아이에게 가장 안전한 시대이므로 부모의 두려움은 잘못됐다”는 논리는 나쁘다고 봄
    “서구 대부분 국가에서 부상 관련 사망이 사상 최저이고, 미국에서는 1973년부터 2010년 사이 비의도적 부상 사망이 남아 73%, 여아 85% 줄었다. 위험에 대한 오인이 부모의 역설을 만든다”는 식의 주장은 별로 말이 안 됨
    부모들이 대규모로 다른 양육 방식으로 이동했고, 같은 기간 아이들의 삶이 훨씬 안전해졌음. 그러니 예전 방식으로 되돌려도 위험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봐야 한다는 건가?
    이런 약한 논리가 이 운동 자체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함

    • 동의함. 새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이 동네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감독 없이 함께 놀게 하자는 제안은 보행자 위험을 다루지 않으면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움
      “지금은 40여 년 만에 보행자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임
      https://www.cnn.com/2023/07/04/us/dangerous-time-pedestrian-...
      딸이 내가 그랬듯 동네를 돌아다닐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 도시에서 가장 안전하고 교통량이 적은 동네 중 하나를 골랐고 제한속도도 25mph인데도, 휴대폰을 얼굴 앞에 둔 채 들어 올린 트럭을 타고 그 두 배 속도로 달리는 운전자를 자주 봄
    • 이 부분이 나도 눈에 들어왔음. 글쓴이는 이 논리를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음
  • 이런 글들의 큰 문제는 대개 실제로 위험하지 않은 활동을 위험하거나 위험한 것처럼 나열한다는 점임
    결국 위험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위험 감각만 키움. 합리적이고 안전한 활동을 위험 감수로 프레이밍하면, 사람들은 그 활동이 위험하다고 결론 내릴 것임
    또 하나는 밖에서 노는 걸 제한하는 다른 문제들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임. 예를 들어 감독 없이 노는 아이들은 관련 없는 많은 성인에게 성가시고, 아이들을 강하게 싫어하며 어디서든 배제하고 싶어하는 성인도 매우 흔함
    친구를 만나려 해도 미리 약속한 놀이 약속과 차 이동이 필요한 경우가 많음. 예전에는 방에서 지루했고 밖에는 할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집에 컴퓨터·태블릿·휴대폰 같은 재미있는 게 있고 7살이 넘으면 밖에 할 일이 별로 없음
    이 중 절반은 공포와 싸운다면서 위험과 위협을 새로 더하는 느낌임. 위험을 더하지 않으면 아이가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를 겪을 거라고 겁주고, 안전한 활동을 위험 감수로 걱정하면서 동시에 충분히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또 걱정하게 만듦

  • 변호사와 사회 전반의 소송 증가도 잊으면 안 됨
    사고가 나면 언제나 소송당할 위험이 있으니 모든 것이 “안전하게” 만들어짐

    • 핵심 문제임. 엄마, 아빠, 아이들을 설득해서 위험하게 놀게 해도, 주된 “위험”이 경찰에 붙잡혀 가족이 아동보호서비스 관료제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라면 소용없음
      사회는 위험한 놀이를 없애라고 권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강제하고 있음. 아이가 혼자 자전거를 타고 길을 간다는 신고를 받았을 때, 경찰이 아이나 부모에게 형식적 경고조차 하지 않고 신고자를 꾸짖도록 훈련되기 전까지는 변화가 없을 것임
    • 방 안의 400파운드 고릴라 같은 문제임
    • 미국에서는 이게 150% 근본 원인
  • 어릴 때, 대략 10살 무렵에는 더 어린 4살쯤 아이들의 엄마들이 몇 블록 떨어진 식료품점에 아이를 보내면서 우리에게 몰래 따라가 길을 잃거나 차에 뛰어들지 않는지 봐달라고 했음
    그렇게 하면 비교적 안전하게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음. 지금은 일부 관할구역에서 불법일 것 같음

    • 지금 상황은 슬프지만, 그들과 우리가 그렇게 자랄 기회를 가졌다는 건 다행임
  • 이건 결국 트레이드오프이고, 추가 안전의 비용은 나중의 정신건강 문제로 나타남

    • 아니면 그냥 타블로이드에 도배되는 최신 Oprah식 유행담을 반복하는 걸 수도 있음
    • “추가 안전의 비용은 나중의 정신건강 문제”라는 말은 물리 법칙 같을 정도로 맞음
  • 70년대에 자라면서 우리는 안에 들어올 수 없었거나 부모가 일하러 가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냈음
    모든 게 감독 없이 이루어졌고 약간 파리대왕 같았지만 살아남았음. 혼자 자전거를 타고 도시 어디든 원하는 곳을 다니던 기억이 많음
    멋져 보이고, 우리 대부분도 즐겼다고 생각함. 하지만 인생에서 정말 앞서나간 아이들은 집 안에 남아 공부하던 아이들이었음
    수십 년이 지나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대체로 재미있게 지내게 했지만, 요즘은 판돈이 훨씬 커져서 아이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는 건 비현실적임. 장기 비용과 잃는 기회가 너무 큼

    • 판돈이 훨씬 커졌다는 게 궁금함. 어떤 면에서 판돈이 더 커졌는지 설명해줄 수 있음?
    • “잃는 기회가 너무 크다”는 게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유행병의 이유라고 봄
      아이의 삶을 최적화하지 않으면 미래에 취업이나 대학 입시 같은 경쟁에서 밀리게 됨. 정말 지치는 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