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P by GN⁺ 8시간전 | ★ favorite | 댓글 1개
  • 주의력(Attention) 은 현대 사회에서 희소하고 값비싼 자원으로, 과거의 사치품과 같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지표로 기능함
  • 사치품(Luxury Good)의 본질은 품질이나 효율성이 아니라, 불필요하게 보일 정도로 시간과 자원을 낭비할 수 있는 여유의 표현
  • Birkin 백, 논픽션 독서, 공영 라디오 청취, 유료 공연 관람 등은 모두 주의력을 '낭비'함으로써 자신의 선택과 여유를 보여주는 예
  • 우리는 즉각적인 성과나 효율성 대신, 서사·뉘앙스·경험에 주의를 쏟음으로써 자신에게 ‘나는 여유가 있다’는 신호를 보냄
  • 이런 ‘주의력 사치품’을 제공하는 사람(창작자나 매체)은 그것을 빠르고 편하게 만들려 할수록 그 가치가 사라진다는 역설을 강조함

주의력의 사치적 속성

  • 사치재(Luxury)는 본질적으로 희소성과 과시성을 통해 가치를 가짐
    • 더 비싸고, 덜 실용적일수록 ‘불필요한 여유’를 드러내는 신호로 작용함
  • 주의력도 같은 메커니즘을 따름
    •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엇에 집중하느냐가 곧 사회적 신호로 작용함
    • 즉, ‘주의를 어디에 쓴다’는 것은 돈을 어디에 쓰느냐보다 강한 정체성 표현이 됨

‘낭비’의 미학

  • Birkin 백을 사는 행위처럼, 시간을 비생산적 활동에 쓰는 행위가 새로운 사치의 형태로 등장함
    • 예: 논픽션을 끝까지 읽기, 라디오 생방송 청취, 무료로 들을 수 있는데도 공연장에 가는 행동 등
  • 이런 ‘주의의 낭비’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선언적 행위로 해석됨

최적화 사회에 대한 저항

  • 오늘날 대부분의 콘텐츠는 ‘효율적 요약’과 ‘즉시성’ 을 목표로 하지만, 이는 사치적 주의력의 반대 방향
  • 저자는 ‘효율성의 시대’에서 느림과 몰입이 오히려 희소한 가치로 변했다고 지적함
    • 즉, ‘빠른 요약’보다 ‘깊은 몰입’이야말로 사치의 상징

창작자에게의 역설적 조언

  • 만약 당신이 사치품으로서의 콘텐츠, 즉 ‘주의력을 사치스럽게 소비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빠르고 편리하게 만들려는 시도는 그 가치를 스스로 파괴하는 일임
  • 진정한 사치품은 불편함, 느림, 그리고 낭비의 여유 속에서만 의미를 가짐

시사점

  • 현대의 정보 과잉 사회에서 ‘주의력’은 새로운 사회적 자본으로 부상함
  • ‘빠름’과 ‘생산성’이 당연한 시대일수록, 느림과 집중은 사치이자 정체성의 표현이 됨
  • 개인과 창작자 모두, 무엇을 ‘낭비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함
Hacker News 의견
  • 이 글 내용은 한 문장만으로도 충분함을 느낌, 모든 경험이 이제는 기업들이 얼마나 방해하고 주의를 산만하게 할 수 있나 경쟁하는 느낌을 줌, 8년 만에 새 휴대폰을 구입했을 때 모든 설정(광고 차단, 알림 끄기 등)을 한꺼번에 하다 보니 얼마나 상황이 나쁜지 잠깐 경험하게 됨, 요즘 폰은 사용자가 원하지 않는 걸 끊임없이 제안하거나 동기화하고 귀찮게 함, 이제 어떤 제품도 소비자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그저 광고하거나 사용자의 주의와 돈을 더 빼앗으려는 최소한의 명분만 남은 상태임, 결국 사방에서 주의를 빼앗으려는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끊임없는 주의력 지키기 싸움이 됨

    • Adblocker 없이 YouTube를 보는 건 불가능하게 느껴짐, 광고 자체도 싫지만 진짜 문제는 YouTube가 끊임없이 무언가를 더 보라고 유도하는 점임, 비디오 일시정지 시 뜨는 카드, 배지, 여러 썸네일 등 모든 방해요소를 가릴 필요가 있음, 사이드바 영상도 추천될 다음 영상만 남기고 다 숨김, 오토플레이 켜놓을 때 뭘 볼지 확인하는 용도로만 사용함, YouTube가 이렇게 된 게 놀랍고, Google이 광고 기업인 건 알지만, 이제 YouTube는 몇 초 이상 집중하지 못하도록 설계됨

    • 아내가 새 Android 폰을 샀는데, 사진 갤러리 앱에 광고가 나오기 시작함, 내 5년 전 Android 폰은 카메라 앱에서 바로 사진을 볼 수 있는데 아내 건 그렇지 않고 사진을 보려면 광고를 봐야 함, 이거 완전히 악의적임

    • 20년 가까이 모든 PC와 스마트폰에 GNU/Linux를 써온 입장으로 이런 문제를 겪지 않아 행복함을 느낌, 웹상에서도 이미 상황이 나쁜데 내 기기에서조차 이런 요소가 추가된다면 상상하기 힘듦

    • chatgpt 같은 최신 AI 챗 인터페이스가 기존 디지털 인터페이스보다 뛰어난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함, 질문을 하면 딱 답변만 동일한 형식으로 깔끔하게 받을 수 있음, 광고도 없고 방해도 없음, 굉장히 깨끗함, 하지만 구독이나 api 수익이 고비용을 커버하지 못하면 이런 방식이 오래 갈 수 없다는 점이 걱정임

    • 동의하는 바이며, 사람들이 기계에 집중하느라 타인과의 관계, 동료와의 연대, 인간관계에 집중하지 못하는 현실이 슬프게 느껴짐

  • 글의 핵심은 마지막 문장이라고 생각함: “주의-사치재를 제공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빠르고 편리하게 만들 때 그 가치를 훼손하게 됨”, 이런 의미로 볼 때 문화도 사치재임, 예를 들어 Shakespeare 희곡의 위키 요약을 읽으면 내용만 표면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실제 등장인물의 동기나 깊이까지는 느낄 수 없음, 즉, 어떤 면에서 공감 능력 또한 요즘은 ‘사치재’에 가까운 것으로 느껴짐

    • 공감은 선택 사항이 아니고,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필수 요소임, 이제 일부 사람들이 공감 자체를 의심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사회의 쇠퇴 신호라고 생각함

    • 마지막 문장이 레스토랑의 픽업 주문 트렌드가 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지 설명해줌, 레스토랑에 가는 이유는 사치와 경험인데, 코로나 이후에 마음에 들었던 식당까지 저렴해지고, 플라스틱 그릇과 포크로 먹게 되니 더 이상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음,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면 사치를 잃으며 결국 대형마트나 패스트푸드와 경쟁하게 됨,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고 서로 집중하는 행위 자체가 레스토랑을 주의-사치재로 만들어줌

    • ‘문화도 사치재다’라는 정의에 동의함, 상류층이 자신들을 정의하는 주요 방식 중 하나가 세련됨 혹은 ‘감수성’ 임, 오트쿠튀르, 순수 예술도 마찬가지임, ‘좋은’ 취향이나 감수성은 유동적이지만 이게 본질임, Cambridge Dictionary의 sensibility 참고 바람

    • 공감이 사치로 보인다는 점에 어느 정도 동의는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고 봄, 공감은 협동을 부르고 게임 이론적으로도 최적에 가까운 행동을 이끌어 생존과 번영을 증대시킴, 지금은 과거의 공감 덕분에 쌓인 관성이 있지만 공감 없이는 점점 lose-lose 구도로 빠진다고 생각함, 공감도 다른 모든 것처럼 시대와 세대별로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우상향 한다고 봄, 지금 시대에는 사치품만 가진 나르시시스트나 희생자 마인드가 더 잘 보이지만, 미래엔 공감이 더 커질 거라는 희망을 가짐

  • 단어 자체는 어느 정도 임의적이고 용어로 논쟁하는 게 큰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만, 글에서 말하는 현상은 이미 다른 이름이 있음, 글쓴이는 사치재보다는 과시적 소비/여가에 대해 이야기함, 예를 들어 Birkin bag은 사치재이자 Veblen good(가격이 오를수록 수요도 늘어나는 물건)임, 또, 주의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비싸지 않고, 그저 계속 ‘가격이 붙어 있는’ 상태임, 하루에 쓸 수 있는 주의가 10~14시간이고, ADHD이면 더 빠르게 전환 가능함, 온라인 콘서트 감상이나 실제 필하모닉 방문 모두 주의면에서 큰 차이는 없음

  • “Birkin bag은 사치재고, 비소설 전체 책을 읽거나 공영 라디오 청취도 그렇다” 라는 부분이 자기 고백처럼 느껴짐, 나는 오히려 집이 없던 시기에 책도 더 많이 읽고 팟캐스트도 더 많이 들었음, 오히려 저자가 그 두 가지를 진짜로 즐기는 게 아니라 ‘신호 보내기’를 가치로 보는 것 같음

  • 투표를 해야 할지 모르겠음, 주의는 중독적인 행동에도 집중되기 때문에 그 자체는 사치가 아니라, 착취당한 사람들이 도피하거나 삶이 망가질 때 나타나는 현상임, 중독은 사치에서 오지 않음, 주의는 사치가 아니라 시간이며, 가장 소중한 자원임, 그래서 ‘낭비’되는 이유는 뭔가 심각하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임

    • 중독이 사치에서 온다고만 볼 수도 없는 것 같음, 예를 들어 자동차의 경우 많은 이들이 생활 전체를 자동차에 의존하게 되고, 거대한 기계를 늘 밖에 세워두는 일이 자금도 빨아들이고 신체나 사회성도 쇠퇴시킴, 버튼만 누르면 충분하다는 경험에 익숙해지는 것도 콘텐츠 중독, 스마트폰, 전자담배와 비슷함, 차를 없애면 고통스럽게 느껴짐, 몸을 움직이고 타인과 상호작용을 해야 함

    • 사치의 정의는 “필수는 아니지만 쾌락과 안락을 주는 것”임, 그래서 오히려 사치품에만 중독될 수 있다고 봄, 생존에 꼭 필요한 음식, 물, 집에 중독됐다고 하진 않으니까

  • 글을 3번이나 정독해야 이해하게 됐음, 유독 워딩이 읽기가 어려웠음, 내가 특별히 똑똑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뭔가 조합이 이상하게 느껴짐

    • 그런 면에서 저자는 자기가 말하는 걸 실천하고 있음, 만약 읽는 자체가 ‘사치’가 되는 블로그 글을 의도했다면, 일부러 쉽게 쓰지 않아야 하니까,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여러모로 재미있는 상황임
  • 사람들에게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긴 전략 보드게임을 하거나, C-SPAN을 시청하고, 산책이나 긴 하이킹을 하라고 말할 수 있음, 하지만 정보와 인정이 쉽게 다가오는 경로를 인간 두뇌가 본능적으로 더 원하게 설계돼 있음, 빠른 도파민 히트가 가능한 기기나 물질이 계속 있을 때 이런 현상은 점점 악화될 수밖에 없음

  • 최근 팟캐스트에서 Taylor Swift가 **“자신의 에너지를 비싼, 사치재처럼 생각해야 한다. 모두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했음, 작성자는 이 말을 바탕으로 글을 쓴 것 같음

  • 나는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로 세상을 향해 신호를 보낸다고 생각하지 않음, 적응적 생존에 최적화해 시간을 쓰는 것도 아님, 내가 진짜 외계인 같은 생각을 하는 건지, 아니면 저자 쪽이 그런 건지 헷갈림, 내가 음악 행사에 가는 것도 집에서 듣는 것과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기 때문임, 하고 싶은 걸 할 뿐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엔 아무 관심 없음

    • 나도 비슷하게 느꼈고, 이제 돈으로 삶을 해석하려는 언어가 너무 진부하고 생기 없게 느껴짐
  • 최근 Adam Grant가 Daniel Immerwahr와 함께 **“주의력은 정말로 짧아졌는가”**라는 주제로 이야기한 적 있음, SNS와 짧은 콘텐츠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주의력이 짧아졌다고 단언하지만, 역사가 Immerwahr는 이런 주장이 수세기 동안 반복됐으며 실제로 바뀌는 건 주의력 자체가 아니라 ‘무엇에 집중하는가’라고 봄, 둘은 도덕적 공황, 비디오 게임과 오페라의 인지적 효과, Marvel 영화가 시간 낭비인지에 대해서도 얘기함, 팟캐스트 링크

    • 주의력이 짧아진 주된 원인은 예전과 달리 끊임없이 멀티스레딩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느낌, 예를 들어 이 댓글을 쓰면서 시스템도 모니터링하고, 음악도 듣고, 저녁도 생각하는 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