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P by GN⁺ 1일전 | ★ favorite | 댓글 2개
  • 갈릴레오의 지동설 논쟁 사례처럼, 사회적 권력과 신념 체계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바뀌지 않음
  • 교회·권력·이념은 성경, 우주관, 예술, 사회 규범 등 서사와 구조적 연결을 통해 현실을 설명하고 정당화함
  • 신념 구조(그래프)는 핵심 노드와 연결(엣지)로 구성되어 있어, 한 부분만 흔들려도 전체 세계관이 동요함
  • 논쟁의 핵심은 사실이 아니라 각자의 구조적 틀(그래프)에서 노드나 연결고리를 공격·방어하는 심리적/사회적 작동
  • 구조적 복원력, 내부 결속, 감정적 공명이 강할수록 신념은 유지되며, 팩트는 구조적 틀 안에 녹아들 때 비로소 영향력 가짐

사실이 아니라 구조가 신념을 결정

  • Galileo Galilei가 지동설을 제기했을 때 교회는 단순한 무지함 또는 미신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신념 체계를 수호하기 위해 저항함
    • 지구중심 우주관이 신앙·사회 질서의 핵심 구조로 작동했기 때문
  • 이 신념 체계는 이야기, 상징, 교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권위와 질서를 정당화함
  • 성경 구절들은 지구 중심 우주관을 뒷받침하며,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사회적·도덕적 서열구조와 연결됨
  •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논쟁이 아닌, 전체 세계관, 예배 달력, 성당 건축, 예술, 일상의 규범 등에 강하게 반영
  • 한 개념에 도전한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디어만이 아니라 그 전체 네트워크와 권위를 건드리는 행위임.
    • 핵심 노드(지구중심설)를 건드리는 순간 전체 구조가 위태로워짐

신념 구조(그래프)의 예시

  • 현대에도 신념 구조는 개념(노드)과 연결(엣지) 로 이루어진 '그래프'로 설명 가능
  • 예시로, "성장 우선 자본주의""생태 지속 가능성" 구조는 각각 다른 논리와 연결망을 가짐
    • Growth-First Capitalism(성장우선 자본주의)
      • 혁신→이익→주주 수익→구매력→경쟁→혁신...
      • 각 연결이 상호 보강하여 강화하는 체계, 내부 일관성·복원력 강함
    • Ecological Sustainability(생태 지속가능성)
      • 기후위기→정책변화→재생에너지→배출감소→커뮤니티 회복력
      • 연결을 통한 선순환 구조로 인간 복지와 행성 건강의 연결, 집단 행동, 회복 탄력성을 중시
  • 이 그래프의 노드 연결(엣지) 은 심리적 힘으로 지속적으로 강화됨
    • 인지 부조화 상태에 처하면 인간의 뇌는 기존 세계관을 유지하기 위해 동기화 추론과 사후 합리화 과정을 사용
    • 이 때문에 신념 구조가 매우 견고하고 변화에 저항적임

구조적 공격—노드·엣지의 흔들림

  • 경쟁하는 신념 체계 간의 진짜 '전쟁'은 논리적 주장이 아니라 서로의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
  • 상대의 핵심 노드를 무너뜨리거나, 개념 사이의 연결을 약화시키거나, 상대의 매력적인 요소를 흡수함으로써 구조에 영향을 주려 함
  • 이로써 단순히 의견 교환을 넘어서 신념 구조 자체가 변형되는 과정이 일어남
  • 핵심 노드 공격(Node Attack) : 한 개의 핵심 노드에 대한 집중적인 공격이 신념 체계 전체를 약화시킬 수 있음
    • 예: "기후 변화 위협"이라는 노드가 공격당하면, 정책 변화 동기가 약화되어 전체 시스템이 불안정해짐.
      • 공격이 성공하면, 신념 체계의 주요 피드백 루프가 붕괴되며 구성 자체가 해체 위험에 놓임
  • 엣지 공격(Edge Attack) : 아이디어 사이의 연결(엣지) 을 공격해 신념 체계의 논리를 우회적으로 만들고 설득력을 약화
    • 예: "주주 이익"이 실질적인 구매력 증가로 이어지는지를 비판하면, 자본주의 체계의 광범위한 번영 주장이 약화됨
      • 엣지 공격이 지속되면, 시스템의 사회적 정당성이 무너지고 대안적 구조에 더 쉽게 흡수됨
  • 이 외에도 신념 체계는 경쟁하는 구조의 강점을 흡수하거나, 틈새를 통해 진화하거나, 자가 교정을 통해 회복 탄력성을 얻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함

인간 심리와 신념 구조

  • 신념 시스템(밈, 이데올로기 등)은 사람들의 뇌 구조 안에서만 실질적 작동이 일어남
  • 신념 구조는 인간의 인지 아키텍처에 의해 유지되고, 보호받으며, 때로는 '개인 정체성'과 깊이 얽혀서 도전 자체를 개인 공격처럼 느끼게 함
    • 단순 논리가 아니라, 인지 부조화·동기화 추론 등 뇌의 자동화된 심리기제에 의해 안정적으로 유지
  • 뇌는 위협적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거르고, 모순되는 증거에 직면할 때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합리화를 시도함
  • 이는 신념 구조가 외부 공격에 매우 견고하게 버티는 이유

구조적 경쟁과 실제 사례

  • 오늘날의 사회적 논쟁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신념 템플릿 간의 충돌
  • 각 진영은 자신만의 연결 구조, 핵심 아이디어,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 체계를 갖고 있고, 상대의 논리 자체를 쉽사리 수용하지 못함
  • 한 집단의 신념 네트워크가 단단하고 연결이 강할수록 외부 공격에 대한 저항력과 영향력이 커짐
  • 반면, 내부적으로 분열되거나 연결이 약화되면 집단 영향력이 급격히 약해짐
  • 이 때문에 적대적 세력이 내부 분열을 유발하면 전체 권력 균형에도 영향을 미침

조직적 허위 행동(coordinated inauthentic behavior)

  • 여론 조작을 위해 가짜 계정 여러 개가 협업하는 소셜미디어 작전
  • 단순한 허위 정보 전파가 아니라, 신념 그래프의 핵심 연결을 체계적으로 약화시키는 전략
  • 예를 들어
    • 러시아 IRA는 미국 내 인종 갈등을 심화시키기 위해, 동시에 서로 반대되는 목소리를 증폭시켜 사회적 연결 구조를 흔듦
    • BLM-반BLM, 백신 찬반, 기후 논쟁 등 분열 유도—핵심 연결을 약화해 전체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듦
  • 이러한 대규모 네트워크 공격은 한 방향의 허위 정보보다, 구조적 연결 약화에 더 중점을 둠
    • Cambridge Analytica 사례처럼, 마이크로 타겟팅 기술과 개인화 메시지는 신념 구조 내 취약 노드 및 엣지를 정밀하게 겨냥할 수 있음
    • 최근에는 LLM(대규모 언어 모델)로 인해 이런 구조적 조작의 규모와 민첩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함

우리의 신념 구조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 팩트체크, 반박, 진실만으로는 한계가 있음. '구조'와 '내적 결속', '감정적 공감력'을 강화해야만 신념 시스템이 복원력 갖춤
  • 진실은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구조적 틀 속에 있어야 지속적으로 살아남고 퍼짐
    • 조작과 분열을 막으려면, 내구성 높은 서사, 자기 신념 체계의 구조적 일관성 및 회복 탄력성 강화, 템플릿 간의 연결 다리 구축, 감정적으로도 공명하는 내러티브 형성이 필요함
  • 신념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누구나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 구조 설계자가 될 수 있음. 견고하고 적응력 있으며, 더 개방적인 새로운 신념 체계 설계가 가능함

결론

  • 우리는 단순한 정보 소비자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 구조를 설계하는 건축가가 될 수 있음
  • 구조적 이해를 바탕으로, 복원력 있고 연결적인 신념 체계 설계가 문화전쟁·여론 조작 시대의 진정한 대응책임

재밌네요. 멘탈 모델이나 밈 등에 관한 이런 글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Hacker News 의견
  • 이 블로그 글이 좋음. 두 가지 생각이 있음. 첫째, 모순된 사실이 있더라도 믿음을 바꾸라는 신호가 아닐 때가 많음. 한 가지 사실만으로 신념이 흔들릴 만큼 그 신념이 약한 게 아니라면, 단일 사건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매우 드묾. 예를 들어 기후 변화에 관한 논문에서 몇몇 과학자가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걸 안다고 해도, 기후 변화에 대한 방대한 증거를 생각하면 그 사실 자체가 기후 변화 신념을 바꿀 근거가 되지 않음. 결국 양쪽의 다양한 정보를 충분히 살필 때에만 신념을 바꿀 만큼 근거가 쌓임. 둘째, 우리가 오늘날 접하는 ‘사실’이 실제로는 전체 맥락을 대표하지 못함. 과거 대기업 중심 언론 시대에는 그래도 기자들이 주요한 사실들을 고르게 전달하려 노력했는데, 요즘에는 알고리즘이 더 많은 클릭과 참여를 유도하는 쪽으로 뉴스를 큐레이팅함. 이러한 ‘사실’들을 제공하는 콘텐츠 생산자 역시 대개 동기나 편향이 강함. 알고리즘이나 생산자 모두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 자체가 거의 없음

    • 예전에 유명한 합리주의 블로그에서 읽었던 ‘합리적 에피스테믹 회의론(rational epistemic skepticism)’이라는 개념이 생각남. 이 말은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단어가 아닐 수 있는데, 비슷한 맥락의 아이디어임. 누군가 지적으로 매우 능숙하거나, 특정 주제에 대해 아주 많이 공부한 사람이 있으면, 평범한 사람들은 그 지적 능력에 압도당하는 경험이 있음. 하지만 모든 똑똑한 사람이 항상 옳은 건 아니라는 걸 다들 암암리에 느낌. 똑똑한 사람도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으니 모두 옳을 수 없기 때문임. 그래서 평범한 사람은 자신의 신념이 쉽게 요동치지 않도록 방어적 태도, 즉 설득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 성향을 발전시킴. 이러한 방어적 자세가 오히려 합리적임. 누군가가 완벽한 논증을 제시했을 때, 그 논증이 정말로 진실해서일까, 아니면 속임수가 들어갔기 때문일까. 후자가 더 흔함

    • 거짓말의 최고의 형태는 거짓 정보를 내놓는 게 아니라, 사실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선별해서 내보이는 것임. 이런 방식은 자신이나 타인에게 의도치 않게 거짓말을 하게 만들기도 함. 수많은 뉴스 기사들이 이런 사례임

    • 두 번째 지적에 덧붙이면, 요즘의 알고리즘은 스토리텔링을 원하는 국가(특히 Russia와 China)가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을 만큼 조작이 쉬운 구조임. 최근 8년간 Russian 선거 개입 방식이 크게 변화함. 예전에는 트롤 군대가 미국인(혹은 폴란드인, 체코인 등) 척하면서 러시아 프로파간다를 유포했음. 이 방식은 비교적 쉽게 감지되고 차단되어 수명을 오래 못 가졌음. 최근에는 중국식 전략처럼 ‘고블린 군대’로 전환했는데, 이들은 더 이상 메시지 직접 유포보다 자동화된 반응(스크롤, 업보팅, 댓글 클릭, LLM 활용 리플 등)으로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을 교란하는 역할임. 실제로는 실제 미국 이용자들이 러시아에 유리하거나 미국에 해로운 메시지를 퍼뜨릴 때 그 확산만 부추기는 방식임. 이 전략이 효과적인 두 가지 이유는, 괴상하거나 혐오스러운 글을 올린 사람에게 도파민 보상을 줘서 더 자극적이 되도록 만들고, 반대하는 이용자들은 그런 글이 ‘인기 많다’고 인식해 사기를 꺾게 만드는 점임. 참고: Russian internet outage and the online goblin army

  • CS Peirce의 유명한 에세이 "The Fixation of Belief"에서는 우리가 믿음을 어떻게 형성하고 그것이 어떻게 뒤흔들릴 수 있는지를 다양한 과정을 통해 설명함. 해당 에세이는 여기에서 볼 수 있음. 이 블로그 글도 Peirce가 말한 "a priori method"에 가깝게 느껴짐. 우선 (대체로 미적 혹은 감성적 이유로) 프레임워크를 결정해 놓고, 경험을 그 프레임워크에 맞춰 해석하는 방식임. 거기서 나온 결론은 그 프레임워크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편안한 믿음이 됨. Peirce에 따르면, 모든 탐구는 놀라움에서 시작함. 때로는 의도적이지만, 대개는 의도치 않게 놀라움을 마주함. a priori 방식의 문제는, 결국 ‘취향 발전’과 비슷하다는 것임. 취향은 언제나 유행을 따라 바뀌고, 철학자들도 언제나 끝없는 논쟁을 반복하게 됨. Bacon 경이 말했듯, 결국엔 진정한 귀납적 사고로 넘어가야 함

    • 예전에 읽은 훌륭한 에세이나 블로그 글이 생각남.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정리하고, 그 다음에 그들이 예측하지 못한 놀라운 주제를 전개하는 게 좋은 발표의 필수 요소라고 했음.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새로워야 함. 청중이 크거나 다양할수록 이런 놀라움을 주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짐
  • Galileo와 교회의 논쟁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미묘한 문제였다고 이해하고 있음. 성경 직역(태양이 멈췄다는 Joshua 구절 등) 때문이 아니었음. Paul Feyerabend의 "Against Method"라는 책에서는 오히려 당시 Catholic Church가 고전적 과학적 방법론(증거를 양 쪽 모델에 대해 평가)에서 더 합리적이었다고 주장함. Galileo의 가설은 기존 모델과 비교해 합리적으로 열등하다고 평가받았다는 점이 중요함. 꽤 흥미롭게 읽었음

    • Galileo와 교회에 관한 논쟁은 흔히 과도하게 단순화되는데,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맥락이 존재함. 이미 Galileo가 등장하기 오래 전부터 Thomas Aquinas 같은 이가 Aristotle에 근거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음. Galileo 시절 Catholic Church는 현대적 과학에 대해 무지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연 철학과 천문학에 적극적으로 참여 중이었음. 실제 분쟁은 경쟁하는 모델과 그 모델이 받아들여지기 위한 증거 기준의 문제였음. 만약 이 글의 저자가 그런 배경을 모른 채 서술을 시작했다면, 글 전체의 신뢰성이 의심됨

    • 전직 역사가로서, Galileo와 교회의 에피소드는 실제로 매우 복잡함. 여러 세대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레토릭을 위해 사건을 왜곡해서 해석해옴. Feyerabend 역시 매우 독창적인 과학철학을 위해 이 사건을 사용하지만, 객관성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음. 관심 있다면 John Heilbron의 Galileo 전기가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함

    • 최근 이 주제에 대해 강연을 보고 매우 흥미롭게 느꼈음. 당시 유럽에서 사용하던 지구 중심 우주 모델은 극도로 정교하게 다듬어져서 실제로 엄청나게 정확했음. 심지어 태양 중심설로 옮겨가도 당분간 실체적인 이득이 거의 없음. 오히려 Galileo의 연구에는 수많은 오류와 해결이 필요한 수학적 문제들이 많았음. 결국 이 시기는 막대한 기술적 부채와 전환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얻을 수 있는 직접적 이점이 거의 없던 상황임

    • Feyerabend가 Galileo가 가택 연금당한 이유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지 궁금함. 단순히 경쟁 모델에 대한 합리적 토론이라면,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억압해야만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임

    • Galileo 시리즈 팟캐스트로는 Viktor Blasjo가 만든 Opinionated History of Mathematics를 추천함: Opinionated History of Mathematics

  • 내가 분석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를 정말 흥미롭게 다뤘다고 느낌. Stormfront(최초의 백인우월주의 포럼) 창립자의 딸이 대학에 진학해 유대인 학생들과 반복적으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자신의 신념이 하나씩 도전받고 결국 점차적으로 인종차별적 시각을 완전히 버리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남. 20년 가까이 가족으로부터 세뇌당했던 사람도 바뀔 수 있다면, 누구나 신념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임. 동시에, 현실에서는 비효율적이고 대규모로 적용하기 어려운 방법이기에 아쉬움도 큼. 여전히 기존 정보 소스에 노출되는 사람에게 적용하는 건 훨씬 더 어렵기 때문임

    • 그 사람이 처음부터 그들과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려 했던 점도 중요하게 생각함

    • 미래에는 AI 챗봇이 이러한 신념을 세척하는 의식의 한 과정이 될 수도 있음

    • 이건 단순한 자기만족에 불과하다고 생각함. 자녀가 대학에 진학한 후 가족의 신념을 빠르게 버리는 현상은 오히려 매우 흔한 일임. 특히 백인우월주의처럼 인기 없는 믿음 체계라면, 대학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면 포기하는 게 오히려 당연함. 그 후에도 그 학생은 다수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신념을 일부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음. 본질적으로는 단지 가정환경에서 벗어났을 뿐임

    • 나도 대학 신입생 시절을 통해 처음으로 스스로의 세계관을 확립한 기억이 있음. 이전에는 신의 존재나 사회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있었지만, 대학에서 무신론자가 됐음. 재미있게도, 동시에 내 쌍둥이 형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 됨. 그는 소셜그룹에 잘 융합했고, 대학도 끝까지 다녔지만 나는 중도에 학업을 포기함. 이후 20대 후반~30대에 접어들며, 나는 어느 순간 우리 정부는 신뢰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됨. 9/11이 내부자 범행이라는 믿음을 여전히 유지함. 당시 뉴욕에 있으면서도 사고와 일상적 경험(예: 트윈 타워 임대차 계약 문서 작업) 사이에 큰 연결 고리가 없었고, 그냥 지나쳤음. 믿음 구조가 소속된 사회나 집단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평소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게 됨. 사회에서 소외된 느낌이 클수록 기존 권위에 대한 의심이 더 쉽다고 느낌. 집단 간 경쟁에서는 상대 집단이 악하고 잘못됐다고 쉽게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단순화가 믿음 구조에 불필요한 왜곡을 만들고 위험한 신념을 강화함. 결국, 집단 분할의 근본적 요인은 지리, 경제, 민족 등의 구조적 요소임. 더 세련되고 정확한 믿음 체계가 사회적 분열을 해소할 수 있을지 궁금함. 혹은 사회 구조와 네트워크가 정체성의 핵심을 결정하는지 고민임. 혹시 인간이 본성적으로 ‘포유류 개미집단’과 비슷해서, 자원이 부족할 때마다 치열하게 싸우는 것은 아닐지 생각함. 서로 중요한 자원을 독점하려 한다면,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상대방이 규칙을 지키지 않고 솔직하지 않으며, 논의에서 미묘함까지 부정할 때는 굳이 우리 쪽만 착하게 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음. 결국 미약하나마 희망은 풍요로운 자원이 더 많아지면 그만큼 문명적 관계가 향상될 수 있다는 점임

  • 이 글쓴이에게 한마디 하자면, 블로그의 아이디어는 마음에 들었지만 읽으면서 두 가지가 불편했음. 첫째는 인용 구문(풀 쿼트)이 혼란스럽고 불필요하게 느껴졌고, 특히 바로 전 문장과 반복될 때 더 그랬음. 둘째는, 휴대폰에서 스크롤하면서 움직이는 그래프가 불편했음. 차라리 더 작은 정적 이미지나, 배경색을 따로 쓰거나 하는 게 좋을 것 같음

    • 이런 피드백을 정말 고맙게 생각함. 다음 글 전에는 꼭 모두 반영해 보겠음

    • 추가로 언급하자면, 그래프의 흰색 상자 안의 텍스트는 읽을 수 없었음. 색상 선택이 아쉽게 느껴짐

  • 이 글의 핵심 개념 중 일부는 좋지만, node/edge(노드/엣지) 구분이 너무 모호하게 느껴짐. 예를 들어 'Climate Change Threat'라는 노드는 '주장'인데, 'Efficiency'(효율성)는 주장인가? 효율성 자체의 존재를 반박할 수 있는가? 오히려 효율성의 ‘효용성’에 반박한다면 엣지에 대한 공격이 아닐까? 이처럼 본문에서 제시된 노드 예시들은 서로 동급이 아니라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짐. 그래서 내재화하기 어렵고 읽을 동기가 떨어짐

    • 엣지는 전이 동사(transitive verb)로 라벨링되고 화살표는 동사의 주어에서 목적어로 향함. 노드는 명사로 라벨링됨. 명사를 동사로 바꾸면 노드에서 엣지로, 또는 반대로도 바뀔 수 있음. 예시로 첫 번째 다이어그램에서 "Innovation"(혁신)은 "Capitalist"라는 노드와 "Improvement"라는 노드를 두고 "innovates"(혁신한다)는 엣지로 바꿀 수 있음. 결국 노드와 엣지의 경계는 흐릿함
  • "The Righteous Mind" by Jonathan Haidt를 꼭 추천함. 이 책은 사회적·심리적 관점에서 도덕성과 정치에 대한 내 생각을 깊이 있게 바꿔준 책임. 그 중 일부 아이디어는 이러함: 사람은 본능적으로 집단주의적이고 인정받기를 원함. 우리는 감정적으로 즉각적인 판단을 먼저 내리고, 그 선택을 나중에 합리화하는 이유를 찾음. 우파가 좌파보다 더 결속력이 높은 이유는 Haidt가 말하는 5가지 '도덕적 맛 수용체'(배려, 공정, 충성, 권위, 신성성)에 대해 강한 공유 가치관과 일관된 정의를 갖기 때문임. 반면 좌파는 다양성 유지와 맞바꾸는 경향이 있음

    • 나 역시 Haidt 책을 정말 흥미롭게 읽었는데, 사실 책의 각 부분이 완전히 다른 책처럼 느껴졌음. 그의 다른 저서들도 읽어보고 싶음. 좌우파에 대한 논의에 대해, 최근 들은 재밌는 점은 좌파는 연합(코얼리션)에 의해, 우파는 합의(consensus)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미국 정치 기준). Haidt의 연구에 따르면, 좌파는 5대 도덕적 맛 수용체 중 한두 가지에 집중하는 반면, 우파는 이 다섯 가지 모두에 고루 신경 씀. 이 두 특징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로를 상호 강하게 만드는 구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됨. 더 나아가 이런 점들이 정치체계 전반에 유사하게 적용될지 궁금증이 생김

    • 정치적으로 우파가 좌파보다 더 결속력이 높다는 주장에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고 느낌. 오히려 최근 사례에 국한된 왜곡된 인식일 수 있음. 미국 기준으로도 우파 역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연합체임. 예를 들면, 지금도 Trump 지지자 중 일부는 Epstein 사건 비공개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고, 또 세금 감면을 원하는 집단은 그 시위를 만류하려 함. 우파 내부에도 결속보다 갈등이 많음

  • 노드와 엣지 사이에는 (이 글에 정의된 방식대로라면) 무한히 많은 노드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론이 머릿속에서 복잡해짐. 아이디어 붕괴 구조가 전체 윤곽에서는 이해되지만, 실제로는 아이디어 사이에 핵심 노드가 몇 개인지 파악하기 어려워 현실 적용이 쉽지 않다고 생각함. 그리고 한 아이템 붕괴 과정만 거꾸로 맵핑하면 언제나 훨씬 단순해 보인다는 점에서 결국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을 피하기 어려움

  • 실제로도 많은 사람이 자신의 믿음 구조 전체를 항상 명확하게 의식하지는 못함. 중요한 이슈 99%는 이 그림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흐릿함. 그래도 이런 시각 자체가 참신하다고 느낌. 더 중요한 요인은 믿음 구조가 아니라, 정말로 신뢰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점임. 신뢰하는 사람만이 내 믿음의 빈 구석을 채워주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됨. 신뢰를 얻으려면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충돌되는 사실만 제시한다고 해서 신념이 잘 바뀌지 않는 것임. 중요한 이유는 네트워크의 구조(믿음 그래프) 때문이 아니라 ‘당신을 신뢰하지 않아서’임. 최근 내가 비슷한 내용을 다루었던 글도 있음: No one reads page 28

  • 나는 ‘팩트’가 논쟁에서 주로 상대를 설득하는 도구로만 쓰인다는 ‘arguments are soldiers’ 전제에서 벗어나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함.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탐구하는 건, 내 성향이나 이념과 관계 없이 그 자체로 궁금하고 가치 있는 일임. 내 의견과 다르더라도 흥미로운 증거가 있다면 그 기사 자체가 의미 있음. 사실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쉽게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사실을 수집하고 보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