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P by GN⁺ | ★ favorite | 댓글 6개
  • 기술적 정확성을 앞세워 코드 리뷰와 설계 회의에서 논쟁하던 경험은 “맞았지만 사람을 잃는” 결과로 이어졌고, 논쟁의 효용과 한계를 다시 보게 함
  • 사실의 정확성이 항상 그 순간의 선은 아니며, 논쟁에서 이김은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틀린 사람으로 만드는 관계적 비용을 낳음
  • 많은 논쟁은 아이디어 검증보다 자아 방어로 흐르고, 강한 논거일수록 상대의 저항과 확신을 키울 수 있음
  • 도움을 명시적으로 요청한 경우에는 예외가 생기며, 그때는 방어가 낮아져 조언이 실제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커짐
  • 남을 바꾸려는 에너지보다 스스로 피드백을 구하고 듣는 태도가 더 중요하며, 겸손이 계속 나아지는 조건이 됨

기술적 정확성이 관계를 이기지 못할 때

  •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코드 리뷰, 설계 회의, 메일링 리스트,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가 틀렸다고 느끼면 정확한 이유를 알려주려 했음
  • 논리를 충분히 명확하게 제시하면 상대가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었지만, 실제 대화는 거의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음
  • 때로는 논점에서는 이겼지만 사람을 잃었고, 더 자주 아무것도 얻지 못함
    • 반박당한 사람이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더 확신하는 모습을 보기도 함
    • 방 안의 분위기는 상대 쪽으로 기울고, 기술적으로 맞았던 본인만 고립되는 결과가 생김

맞음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님

  • 사실의 정확성과 특정 순간의 좋음은 같지 않음
  • 『Tao Te Ching』 2장의 “존재와 비존재, 어려움과 쉬움, 길고 짧음, 높고 낮음, 소리와 침묵”처럼 어떤 것은 반대항과의 관계 속에서 성립함
  • “맞음”은 “틀림”을 동반하고, 논쟁에서 높은 곳에 서려는 순간 다른 누군가는 낮은 곳에 놓임
  • 논쟁에서 이기는 일은 패자를 만들고, 공개적으로 맞는 사람이 되는 일은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틀린 사람으로 만듦
  • 정확성을 절대적인 선으로 보지 않게 되면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필요도 줄어듦

논쟁은 쉽게 자아 방어가 됨

  • 논쟁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이디어를 다룬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자기 인식을 건드리는 경우가 많음
  • 어떤 사람에게 의견은 단순히 보유한 입장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결합된 위치임
    • 아이디어가 틀렸음을 보이면 사실을 교정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공격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
    • 이때 상대는 이성보다 저항으로 자신을 방어함
    • 논거가 강할수록 더 깊이 버티는 결과가 생김
  • 이런 대화는 애초에 논쟁이라기보다 누구의 자아가 온전하게 남는지에 관한 싸움에 가까움
  • 그래서 똑똑한 사람과는 장단점을 논의하되, 자아 중심적인 사람과는 옳고 그름을 두고 다투지 않기로 선을 그음
    • 전자는 더 나은 답을 함께 찾는 과정이 됨
    • 후자는 답을 찾는 대화가 아니라 방어해야 할 자아만 남김

사람은 먼저 느끼고 나중에 합리화함

  • 인간은 가끔 감정을 느끼는 합리적 동물이라기보다, 가끔 생각하는 감정적 동물에 가까움
  • 많은 사람은 결론에 이성적으로 도달한 뒤 감정을 갖는 것이 아니라, 먼저 느끼고 그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거꾸로 추론함
  • 사람들은 군중을 따르고, 자신감을 정확성으로 착각하며, 주변 사람들이 이미 믿는 것을 받아들임
  • 독립적 사고는 흔하지 않으며, 스스로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드묾
  • 이런 전제를 받아들이면 논리로 논쟁하는 일은 감정에 증명을 들이미는 것처럼 작동함
    • 증명은 빈틈없을 수 있지만, 감정은 그 증명을 읽지 않음

좋은 의도의 교정도 잘 닿지 않음

  •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알려줘서 다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는 동기는 고상하게 들리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 동기를 보지 못함
  • 상대가 보는 것은 비판이며, 왜 굳이 지적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고마워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
  • 많은 사람은 조언이 아니라 결과에서 배움
    • 말은 튕겨 나가지만 고통은 남음
    • 스스로 뜨거운 난로를 만져야 배우는 상황에 가까움
  • 그래서 때로는 상대가 자신의 결과를 만나도록 두는 일이 가장 존중하는 태도가 됨

도움을 요청할 때만 예외가 생김

  • 예외는 상대가 명시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때임
  • 요청이 있으면 원인과 결과가 뒤집힘
    • 원치 않는 판단을 밀어붙이는 상황이 아님
    • 상대의 요청이 원인이 되고, 도움은 그 결과가 됨
  • 이때는 상대가 들을 준비가 된 상태이며, 자아가 낮아지고 방어가 내려가 조언이 닿을 수 있음
  • 그래서 먼저 밀어붙이기보다 안쪽에서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고, 누군가 문을 열면 가진 것을 모두 제공함

차이는 설득보다 구축에 쓰는 편이 낫다

  • 서로 세상을 다르게 볼 때 선택지는 두 가지임
    • 에너지를 써서 자신이 맞다고 설득하려 함
    • 그 차이를 자산으로 보고 그 위에 무언가를 만듦
  • 진심으로 남들이 믿지 않는 무언가를 믿는다면, 그것은 이겨야 할 토론이 아니라 우위가 됨
  • 시장은 논쟁보다 현실에서 맞는 것을 보상함
    • 회의적인 사람을 설득하는 대신, 그들이 틀렸다고 보는 것을 출시하고 현실이 판단하게 둘 수 있음
    • 모두가 이미 동의한다면 남은 기회도 없음
  • 창업에서는 특히 이 차이가 중요함
    • 차별화는 비즈니스의 부수 효과가 아니라 비즈니스 자체임
    • 스타트업은 창업자가 세상이 아직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믿기 때문에 존재함
    • 회의에서 그 논쟁을 이길 수 있다면, 회사로 만들 가치가 없을 수 있음
  • 말로 간극을 닫기보다 구축을 통해 그 간극에서 이익을 얻는 쪽으로 방향이 바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임

  • 배우자, 친구, 자녀, 인터넷의 낯선 사람까지 포함해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임
  • 이는 냉소나 포기가 아니라, 실제로 효과가 있는 곳에 에너지를 쓰는 태도임
  • 요청하지 않은 사람을 바꾸려는 시간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자신에게서 빼앗은 시간임
  • 자신이 더 명확하고, 차분하고, 숙련되고, 정직해지면 주변 세계의 경험도 달라짐
    • 누군가를 강제로 바꾸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 자신에게 반응하기 때문임
  • 더 나아지는 방법은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타인에게 피드백을 요청하고 진심으로 듣는 것임
    • 이때는 자신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되므로 조언이 받아들여질 수 있음
    • 이 과정을 막는 것은 이기려는 자아임
  • 논쟁을 멈춘 이유는 맞음에 대한 관심을 잃어서가 아니라, 맞는 것보다 계속 더 나아지는 것을 원하게 되었기 때문임

댓글과 토론

진짜 좋은 글이네요. 주기적으로 보면서 자신을 돌아볼만한 글인것 같습니다

정말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도움이 되는 글인 것 같습니다.

상대의 업무 결과에 제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때가 문제네요...

저도 한번 더 반성하고 갑니다

Hacker News 의견들
  • 간단한 생각 하나: “이성으로 도달한 입장이 아니라면, 이성으로 그 입장에서 끌어낼 수도 없다”
    이 말에는 세 가지 해석이 가능함. 0번은 상대가 비합리적으로 틀린 입장에 집착하니 논쟁은 헛수고고 떠나는 게 낫다는 기본 해석. 1번은 가끔 그 상대가 바로 나일 수 있다는 깨달음. 2번은 애초에 그 입장이 논리적 최적화가 아니라 가치관에서 나온 것이라면,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서로의 가치와 접점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해석. 세 가지 모두 어느 시점엔 유용했음

    • 온라인 참여 방식은 두 가지 생각에 크게 좌우됐음: 내 세부 입장을 나도 완전히 이해하는 경우는 드물고, 글쓰기는 고쳐 쓰기라는 것
      포럼 글은 남을 설득하려고 쓰기보다 내 관심사, 믿음, 추론을 정리하려고 씀. 올리기 전에 여러 번 수정하고, 이후 답글은 무시하기도 하며, 나중에 누가 내 의견을 물으면 그 글을 참고하게 됨. 20년쯤 전부터 글쓰기는 남 설득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일이 됐고, 남들이 보기엔 실존적 자기몰두처럼 보여도 개의치 않음
    • “여기서 뭘 이루려는 거지?”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던 훌륭한 교수가 있었음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깊이 생각하게 됐고, 때로는 방어적으로 굴기도 했지만, 한 걸음 물러나 진지하게 생각하는 과정이 있어야 자기 생각을 바꿀 가능성도 생김
    • “이성으로 도달한 입장이 아니라면 이성으로 끌어낼 수 없다”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아님. 종교를 떠난 사람들 중에는 합리적 논증에 설득된 반례가 많음
    • 3번: 그 사람이 정말로 틀렸다고 확신할 수 있나?
    • “상대가 비합리적으로 틀린 입장에 집착하니 떠나라”는 해석에는 동의하기 어려움
      대부분의 사람은 여러 입장에 비합리적 애착을 갖고 있고, 논쟁이 헛수고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떠나는” 건 불가능함. 특히 그 사람들이 같은 프로젝트나 조직의 동료라면 계속 함께 일해야 함
  • 이 글은 크게 와닿음.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할 때는 누군가의 논증을 해부하고, 왜 틀렸는지 난해하고 미묘한 방식으로 짚어내는 일이 높이 평가됐음
    당시 분위기는 “내가 틀리고 싶다. 내가 틀렸다는 걸 알게 되면 더 똑똑해진 것이니까”에 가까웠고, 지적으로 가장 충만한 시기였음. 특히 내 비판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 순간도 최고의 순간이었고, 이기는 게 아니라 협업에 가까웠음. 졸업 후에는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고, 대화의 진정성보다 대화의 분위기를 훨씬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됨. 결국 “모르는 사람”, “아는 사람”, “서로 알고 신뢰하는 사람”이라는 세 가지 상호작용 방식을 나눠 쓰게 됐고, 철학과 휴게실에서는 당연했던 열린 토론이 현실에서는 매우 드물다는 걸 배우는 과정이 인생에서 가장 슬프고 힘 빠지는 일 중 하나였음

    • 고도로 전문화된 DoD 연구소에서 기업 세계로 옮겼을 때도 비슷하게 끔찍한 충격을 받음. 모두가 일을 승진을 위한 헝거게임으로 바꾸는 게 정신 건강에 참 좋았음
    • 어른처럼 대화할 수 있음. 핵심은 그 대화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임
      진실 탐구는 수많은 목적 중 하나일 뿐임. 어른이 된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목적에 별 관심이 없고, 대신 공유된 의미 만들기, 서로의 가치 이해하기, 신뢰 쌓기, 정서적 지지 주고받기, 슬픔 처리하기 같은 선택지가 아주 많다는 걸 배우는 일임. 의사결정처럼 사실에 기반해야 할 것 같은 일조차 많은 “사실”이 흐릿하고 주관적이며, 이는 사회적 구조 안에 내장돼 있음
    • 나도 비슷한 방식인 듯함. 겉으로는 상대와 “논쟁”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내 내부 모델과 논쟁하는 중임
      “그런데 …는?”, “만약 …라면?”, “그럼 어떻게 …?”라고 말할 때는 정말 질문인 경우가 많고, 상대 논증의 구멍을 찔러 틀렸다고 증명하려는 게 아니라 내 이해의 구멍을 찾으려는 것임
    • 세 가지 상호작용 방식으로 깔끔하게 나누는 건 타인에 대한 이해의 빈틈을 보여줄 수도 있음. “선의의 대화”에 대한 정의가 하나뿐이거나 반드시 그 정의만 맞는 건 아님
      사람들이 신경 쓰는 분위기는 대화의 암묵적 채널임. 몸짓, 감정, 말로 나오지 않는 생각들이 거기에 있고, 상대에게는 그 분위기를 돌보거나 우선하는 대화가 선의의 대화일 수 있음. 철학자는 아님
    • 이런 일들은 대화적·계산적 처리 가능성의 문제로 보게 됨. 사람에게는 시간이 제한돼 있고 대부분의 대화는 여러 제약을 받음
      사람들은 말하고 싶은 핵심만 전달하고, 나머지는 상대 쪽의 압축 해제 알고리즘이 알아서 처리해주길 기대함. 대부분은 손실이 크거나 아예 망가져 있지만, 그래도 대안보다는 충분히 쓸 만함
  • 우리 세대의 가장 해로운 변화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타인과 단절된 채, 아무 도전도 받지 않는 완벽한 청중에게 포획된 관점을 널리 퍼뜨리는 것임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 논쟁이 답답한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 이유를 완전히 말로 정리하지 못하기 때문임. 나이가 들고 논쟁에 익숙해질수록 덜 다투게 되는데, 말의 밑바탕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고, 그래도 상대가 설득되지 않으면 할 만큼 한 것이기 때문임

    • 이게 실제로 문제의 일부임. 오늘날 삶은 너무 복잡함
      풍력 터빈 같은 단순해 보이는 주제만 해도 재료, 전 생애 탄소 상쇄량, 환경 이슈, 재활용, 용량, 입지 등을 진짜로 이해하려면 엄청난 지식이 필요함. 한 주제에 대한 피상적 이해만 얻는 데도 여러 입장을 읽고 조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림. 그래서 실제로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쟁점을 고른 뒤, 그 입장에 동의하는 집단을 모든 이슈에서 믿을 만한 출처로 간주하게 됨. 이는 소속 욕구와 부족주의 때문이고, 문제는 이런 입장을 밀어붙이는 집단들이 돈을 더 벌기 위해 타자화를 이용해 분열을 만든다는 것임
    • 여기서 얻을 교훈은, 내가 모든 것에 옳다고 생각하고 내 생각을 조금이라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드물다면, 실제로는 그냥 타인과 너무 고립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임
    • 언제 멈춰야 하는지 아는 것이 지혜의 핵심 학습임
      돌아보면 우리는 모든 면에서 초개인주의 상태에 있음. 틀렸냐고 하면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 자유의 결과이기도 함. 생물학적 차원의 진화는 어느 정도 해결했고 이제는 이념적 차원의 진화가 진행되는 것처럼 보임. 안타까운 건 선의로 반박해줄 친구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임. 나는 반대 성향이 강하지만 두려움 없이 논쟁할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이 있음
    • 더 나쁜 건 “일부 사람들”이 아니라 다수가 그렇게 행동할 때임
    • 인터넷 논쟁이 답답한 이유는 사람이 무한히 공급되고, 뭔가 진전되기 전에 90% 이상은 필요한 역량이 없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임
      최소한 유효한 논증과 그렇지 않은 논증을 구분할 정신적 능력이 없는 90% 이상을 걸러야 시작이라도 가능함. 체스를 두려는데 대부분은 규칙도 모르고, 일부 규칙을 알아도 유효한 수와 무효한 수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며, 캐슬링 같은 수는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워함. 거기에 애초에 체스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자기 집에서는 말이 이렇게 움직인다고 이야기하려는 사람도 많으니, 에너지만 낭비됨
  • 맹자가 말하길 “사람의 병은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하는 데 있다”고 했음
    또한 어진 사람은 활쏘기와 같아서, 활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자세를 바로잡고 쏜다고 했음. 맞히지 못해도 자신을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음. 또 남을 사랑했는데 친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인을 돌아보고, 남을 다스렸는데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신의 지혜를 돌아보며, 예를 다했는데 응답이 없으면 자신의 공경을 돌아보라고 했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모두 반구저기, 즉 자신에게서 원인을 구해야 한다는 말임

    • “사람의 병은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하는 데 있다”는 말을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정말 맞는 듯하고, 왜 그런지 알고 싶음
      아주 어린아이들과 상호작용하려고 할 때 일부러 뭔가 모르는 척하면 아이들이 엄청 기뻐하며 가르쳐주는데, 매번 통함
  • 저자가 던지지 않은 당연한 자기성찰 질문, 즉 “내가 틀렸다면?”을 제외하더라도, 조건이 맞으면 논쟁할 가치가 있다고 봄
    나도 맞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토론은 양쪽 모두 이기는 게임이 될 수 있음. 내 생각이 맞았다면 검증되고 상대가 다르게 생각하게 되며, 내 생각이 틀렸다면 상대가 고쳐주거나 거기까지 가도록 도와줌. 다만 혜택을 얻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함. 예의 바르고 성찰적으로 남을 수 있는지, 주제가 상대에게 민감한지, 기업 회의나 큰 모임처럼 경쟁적 환경인지, 쟁점에 머물고 과열되면 멈출 수 있는지 등을 봐야 함. 조건이 맞지 않으면 대부분과 논쟁을 멈추는 게 맞을 수 있지만, 소통 자체를 끊지 않는 한 사람들과의 논쟁을 완전히 멈추는 건 어려움

    • 글쓴이가 이런 논쟁에서 옳다고 가정하면 그 글을 더 강하게 해석하는 셈임. 어떤 입장이 다른 입장보다 더 옳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자주 옳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글쓴이가 상대하는 사람들보다 자주 더 옳은 상황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음
  • 논쟁에는 매우 다른 두 종류가 있음. 상대를 설득하려는 논쟁과 구경꾼을 설득하려는 논쟁임
    상대를 설득하려면 겸손하고 부드럽고 은근해야 하며, 질문을 던지고 상대가 스스로 떠올렸다고 느끼게 해야 함. 구경꾼이 보면 상대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 상대를 설득할 가능성은 가장 높아짐. 반대로 구경꾼을 설득하려면 자신감 있게 보이고, 강한 증거를 제시하며, 상대 논증의 결함을 드러내야 함. 이러면 상대는 더 완고해지고 나를 싫어할 가능성이 크지만 중립적 관찰자를 설득하는 데는 유리함. 1:1 대화에서 “토론 전술”을 쓰면 데이터와 논리가 아무리 좋아도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려움

    • 이 구분은 좋지만, 그런 자신감 게임이 필요 없는 사람들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됨
      Feynman에게는 선배 과학자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격렬하게 논쟁하던 일화가 있음. 누가 맞는지 명백해 보였지만 그들은 모든 입장을 놓고 따져본 뒤, 아이디어와 대안을 검증하고 결국 합의했음. 내가 팀에 원한 건 이런 사람들임. 옳아야 한다는 욕구나 상대가 겸손해야 한다는 요구, 게임 없이도 사안을 흔들어볼 수 있는 사람들임
    • 청중을 설득하려 한다면, 논쟁 상대를 어떻게 대하는지도 중요함. 무례하게 굴지 말아야 함
      사람들은 그걸 보고 판단하고, 그 판단은 입장에도 영향을 줌. 지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감정적으로는 영향을 받음. 최선은 증거로 앞서고, 논증으로 앞서고, 친절함으로도 앞서는 것임. 사실이 내 편이라면 무례하거나 조작적일 필요가 없음
  • 젊은 사람들에게 조금 관련 있는 조언을 하자면, 새 팀에 합류하자마자 첫 주부터 팀 도구나 프로세스를 바꾸려 들지 말아야 함
    대부분은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되어 있음. “명백히 더 나은” 내 아이디어에는 전체 맥락이 빠져 있을 수 있음. 먼저 관찰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이해와 역사적 맥락을 쌓고, 너무 빨리 결론 내리지 않는 게 좋음. 물론 신입의 눈은 오래된 가정에 기반한 비효율을 잘 찾아내고, 새 피는 팀을 잘 작동하게 만들고 레거시를 개선하는 데 중요함. 하지만 계속 개선하고 다시 쓰는 데도 비용이 있음. 너무 빨리 많이 바꾸면 팀은 오래 안정됐던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를 잃고, 내가 너무 많은 영역에서 “마지막으로 건드린 사람”이 되어 병목이 될 수 있음. 특히 AI 시대에는 뭐든 한 시간 안에 바이브 코딩할 수 있어 보이니 개선 제안의 양을 신중히 조절해야 함. 한 달에 한 번 도는 코드의 성능 개선처럼 “객관적으로 더 나은” 일에도 사업적 정당성이 없을 수 있음

    • 체스터턴의 울타리임. 이 개념과 논리적 오류 같은 다른 사고 모델들을 더 읽어보길 권함
  • 글에는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이 거의 나오지 않음. 저자는 늘 자신이 옳고, 다른 사람을 옳은 쪽으로 설득하거나 논쟁하는 일이 가치 없다고 가정하는 듯함
    어쩌면 내가 틀렸고 상대의 생각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음. 내가 맞다고 생각할 때도 토론이나 논쟁, 말을 덮어씌우기보다, 말하는 만큼 듣고 차분하고 친절하게 이야기하며 새 관점을 보려는 편이 나음. 물론 이 생각도 틀렸을 수 있음

    • 핵심은 싸울 일을 고르라는 것임
      설령 100% 옳더라도 모든 싸움을 하는 건 자신과 주변 모두에게 해로움. 내가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넘어, 어차피 들일 가치가 없는 노력일 수 있음을 보라는 얘기임. 이제 반대 답글에 답하지 않으려고 휴대폰을 내려놓아 보겠음. 땀이 난다…
    • 동의함. 자기개선으로 끝나긴 하지만, 글쓴이에게 별다른 자기인식이 있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음
      예를 들어 “누군가와 논쟁할 때 아이디어를 논한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상대의 자아감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해놓고, 논쟁 중독의 감정적 이유를 인정하나 싶더니 “똑똑한 사람하고만 장단점을 논한다”로 이어짐
    • 저자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논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큼
      많은 사람이 거치는 단계임. 젊고 다혈질인 엔지니어가 기술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 확신하는 시기. 결국에는 보통 자신이 맞더라도, 어쩌면 특히 맞을수록 논쟁에 지치게 됨
    • 내 생각도 정확히 그랬음. 경험상 논쟁에서는 행동 방식이 거의 전부임
      상대를 비난하면 방어적으로 변하고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음. 일반화해서 돕고 지지하는 방식으로 말하면 상대가 스스로 잘못을 보고 고치게 됨. 보통은 많은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고, 나도 내 논증의 결함을 진심으로 찾으려 함
    • 자신이 틀렸을 수 있다는 부분이 없다는 점이 눈에 띄었음. 글쓴이는 왜 남을 고치고 싶어 하는지, 그 행동을 밀어붙이는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듯함
      흑백식으로 옳고 그름을 나누는 사고도 오류임. 회사를 운영해본 감각이 별로 없고, 누군가를 해고하거나 어려운 재무 결정을 내려본 적 없는 엔지니어 냄새가 남
  • 철학계에서 시작했다가 나중에 진로를 바꿨음. 학문적 철학자들 사이에 있으면 논쟁이 기본 상호작용 방식이 되는 데 익숙해짐
    사람들은 자기 주장에 이유를 대야 하고, 그 이유가 검토되고 도전받을 거라고 기대함. 똑똑하고 몰입한 상대와 이런 논쟁을 하면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음. 물론 자아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 건 아니고, “패자”가 꼭 틀렸다고 인정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모두가 믿음에는 이유가 필요하고 강한 반론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함. 논쟁은 그런 빈틈을 찾게 해줌. 사람들은 옳고 싶어서 논쟁하지만, 옳다는 건 어렵기 때문에 노력해야 함. 지배력을 과시하려는 게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자신에게 올바른 믿음을 가졌음을 증명하려는 것임. 그 세계를 떠나고 보니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믿음을 정당화해야 한다는 강한 필요를 느끼지 않고, 정당화를 요구하는 행위 자체를 개인적 공격으로 받아들였음. 이걸 배우기 전까지 인간관계도 잃었음

    • 이유는 많음. 대부분의 사람은 진짜 직업이 있고 저녁에는 도전자보다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함
      상대가 배우지 않은 규칙으로 토론하는 건 무장하지 않은 사람을 때리는 느낌도 남. 당하는 입장에서는 더 재미없음. 직장에서는 논쟁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음. 학계에서는 사형제나 징병제를 두고 토론하고 끝내면 되지만, 직장에서 이런 논쟁을 받아들이고 지면 앞으로 몇 달 동안 마음에 안 드는 남의 아이디어를 구현해야 할 수도 있음. 어차피 대부분의 논쟁은 임의로 잡은 입장에 대해 모자에서 논거를 꺼내는 식이라 크게 나아지지 않음
    • 이 글과 위 경험이 정말 와닿음. 철학과에서의 경험이 거의 같았음
  • “Slartibartfast: 나는 언제든 옳기보다 행복한 편을 택하겠네. Arthur: 그래서 행복한가요? Slartibartfast: 아니. 바로 거기서 다 무너지지.”
    어른이 되고, 커리어를 쌓고, 결혼하고, 부모가 되는 거의 모든 과정은 10대 무렵 처음 읽은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의 이 대화가 사실상 모든 것의 열쇠라는 점을 천천히, 고집스럽게 배우는 일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