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P by GN⁺ 3일전 | ★ favorite | 댓글 1개
  • 전근대 농민의 실질적인 토지 보유 규모와 노동력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가구는 자급에 필요한 농산물을 충족시키기 어려움
  • 지주(‘Big Man’)와 엘리트 계층이 광범위한 토지를 소유하며, 소농민은 제한된 자유 토지 외에 임차 또는 지대 형태로 타인의 토지에서 경작하는 구조 발생
  • 소작 및 지대의 일반적인 분배 구조는 농민에게 매우 불리하며, 보통 생산의 50% 이상이 지주에게 돌아감
  • 농민 경제는 정상적인 해에도 생존 또는 약간의 여유 수준에 머물며, 농민의 노동 초과분은 국가나 엘리트의 다양한 사업(군사, 토목, 종교 등) 수취 대상으로 이용됨
  • 농업 생산성이나 토지 접근성이 개별 농민의 삶과 사회 구조에 직접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침

도입 및 전제 변화

  • 전근대 농민 경제의 전 시리즈를 통해, 이상적인 조건(비교적 비옥하고 무제한적인 토지)에서는 농민 가구가 자급 및 소량의 잉여 생산을 달성할 수 있음
  • 그러나 현실적으로 토지는 유한하고 무료가 아니며, 농경사회의 구조 자체가 농민 잉여를 극대화해 엘리트에게 수취하는 것에 설계됨

토지 보유와 현실

  • 한 가구의 이상적인 농경 규모(30~56에이커)와 달리, 실제로 대부분 농민은 3~6에이커의 소규모 토지를 보유함
  • 예를 들어, 고대 로마, 중국, 이집트, 중세 프랑스 등에서 평균 혹은 중위값 기준 3~6에이커에 불과함
  • 큰 토지를 보유한 ‘부유한 농민’은 소수이며, 대부분의 농민 가구는 노동력에 비해 매우 협소한 농지를 소유함
  • 보리, 밀, 콩의 혼합재배 및 윤작(경작지 중 1/3 휴경) 을 감안할 때, 소규모 농가는 자급에 필요한 곡류생산조차 채우지 못할 때가 많음
  • 특정 상황에서는 부추 등 고밀도 정원작물로 부분적 보완 가능하나, 전체 영양 수요를 대체하기에는 한계 존재
  • 핵심 문제는 하나의 농가에 노동력이 비해 토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임
  • 농민 가족 구성원의 유휴 노동력은 타인의 토지를 경작하거나, 지역 내 임노동·소작 등 방식으로 밖에서 수입을 얻음

토지 확장 한계와 대농

  • 새로운 토지 개간은 막대한 노동집약적 투자가 필요함
  • 관개, 산림 벌채(그루터기 제거 포함), 경사지 개간, 석제 제거 등으로 인해 즉각적이고 단기적인 농지 확대는 대개 불가능함
  • 이에 따라 소농민은 지주(‘Big Man’), 부유 농민, 혹은 토지 남는 소가구의 토지를 임차(소작)함
  • 실제로 전체 농경지의 1/3이 소농민, 1/3이 부유 농민, 1/3이 지주 혹은 사원계 소유 형태로 배열된 경우 많음
  • 소농민 가구는 거의 항상 잉여 노동력을 활용하여 타인의 토지를 경작(임차농/소작농)하는 구조가 일반적임

소작과 임대 조건

  • 일반 소작·임대(sharecropping) 조건은 매우 불리
  • 역사적/민속학적 연구에 따르면, 토지, 노동, 가축, 종자, 물 등 투입요소에 따라 지분 배분이 달라짐
  • 대표적 분배 사례: 노동만 제공 시 생산의 18.75%, 주요 투입 대부분 제공 시 40~60%, ‘모두 제공’ 시 생산의 81.25% (극소수)
  • 유럽에서는 생산 50:50 분배가 널리 퍼짐(계약 구조에 따라 다름)
  • 평균 소작농은 자급 또는 근근이 ‘존엄성’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최선이며, 임대토는 자체소유지에 비해 효율과 보상이 현저히 낮음

소작의 경제적 의미와 노동 동기

  • 농민 입장에서 추가 노동의 한계수익(효율)한계효용(쾌적함) 개념이 작동함
  • 본인 소유의 비옥한 토지부터 우선 경작하고, 이후 점차 산출량이 떨어지는 임차지로 옮겨감
  • 소작지가 많아질수록 같은 노동량 대비 실질 곡물 획득량이 급격히 감소함
  • 이로 인해 대다수 농민은 자급+약간의 잉여(‘subsistence and a little more’) 에서 노동을 멈추는 경우가 흔함
  • 연간 추가 노동(공구수선, 울타리 보수 등)이나 불확실성(흉작 등)에 대응해 적정 수준에서 생산을 조절함

수취(추출) 구조

  • 농민 외의 계급(지주, 국가, 엘리트)은 주로 잉여 농산물과 노동을 원천으로 다양한 사회 활동(전쟁, 공공사업, 종교 건축, 엘리트 생활 등)을 영위함
  • 농민의 노동 초과분이 국가나 지주 수취 체계의 핵심이며, 이로 인해 실질적인 소득 및 삶의 질 향상은 어려움
  • 군사 징집, 공공노역(‘corvée labor’) , 각종 세금·공물 등을 통해 추가적 노동력과 산출물이 지속적으로 추출됨
  • 예) 고대 로마의 군사동원(전체 남성 중 10~20% 동원), 중세 유럽의 농민 합동노동/공공노역 체계 등
  • 생산성이 높은 토지는 더 높은 수취율로 이어지며, 국가 혹은 지역사회 복잡성(도시, 문명, 건축물 등)은 결국 농민 계층의 착취에 기반을 둠

결론 및 영향

  • 농민 가구는 허약한 토지 소유 구조와 불공정한 지대·소작 조건아래, 대체로 근근이 생존함
  • 생산성과 토지 접근성이 낮은 농민일수록 군사·노역·과세 의무에서 제외되기도 하며, 이는 각 계층의 생존 구조와 국가 통합에도 영향을 줌
  • 전근대 사회의 크고 다양한 성취(도시화, 예술, 국가 체계)는 결국 농민 계층의 노동력과 산출물 수취의 역사적 산물임
Hacker News 의견
  • 로마 시대에도 실업, 불완전 고용, 그리고 노동력 이탈이 존재했음은 다양한 기록과 사례에서 알 수 있음. 농민이 땅을 떠나는 일이 흔한 선택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그랬던 사례가 있고, 이를 되돌리려는 조치들과 결혼, 토지 상속 관련 문서들을 보면 쉽게 추정할 수 있음. 농민 반란은 종종 기존의 권리 유지, 혹은 비공식적이더라도 ‘지키려는 권리’에 대한 싸움이었음. 노동 이동성은 현대 이전에도 존재해왔음
    • 영주가 농민을 땅에 묶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음. 예를 들어, 농노의 경우 도시에서 1년하고도 하루를 주인에게 들키지 않으면 자유인 신분을 얻을 수 있었음. 이들은 ‘villein’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본질적으로 주인의 영역을 벗어난 자유 농민이었던 것임
    •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휩쓴 뒤, 엄청난 인구 감소로 농민들이 임금과 토지에서 유리한 입장을 갖게 되었고, 실제로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이동하게 됨. 이에 귀족과 왕들은 이동 제한, 임금 인상 제한, 심지어 농민들의 번영을 과시하는 것까지 엄격히 규제하려 했음 (많은 농민이 상업 활동으로 소득을 다각화하기도 함). 하지만 현실의 경제·사회 흐름을 억지로 막으려던 이러한 법들은 결국 서서히 실패하며 봉건제는 무너짐(다만 모든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일어나진 않았고 러시아, 시칠리아처럼 오랜 기간 남았던 곳도 존재). 이 과정에서 흑사병은 역설적으로도 유럽의 사회적·경제적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준 셈이며, 르네상스의 시작으로 이어져 다음 시대도 변화시켰음
  • 이 시리즈는 과거뿐 아니라 오늘날 존재하는 사회 계층 구조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듦. 계층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느끼게 해줌
    • 이런 계층 구조는 우연히 생긴 게 아니라, 보통 남는 이익을 위쪽으로 끌어모으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되어 온 것임을 금방 깨닫게 됨
    • 현대의 사회적 구조도 오랜 시간 인센티브와 역사에 따라 진화해온 결과임. 그런데 오늘날 심리학(특히 정신병리학) 지식과 우리가 중시하는 가치(자유, 균형, 기회의 평등)로 최적화한다면 더 나은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됨
    • “부자들이 일종의 음모로 우리를 억누른다” 식의 단순한 논의보다는, 계층은 소규모 단위에서는 자기 유지를 스스로 하지만, 대부분은 자생적으로 진화해왔다는 점에 집중해야 함. ‘누군가가 나의 상승을 막고 있다’라는 생각은 자기 위안일 뿐임
  • 농민 가정 대다수는 땅이 없으면 노동력이 많아도 도움이 안 됨. 그리고 땅이 귀족 등 권력층이나 사찰에게 묶여 있다면, 이 시스템은 겉보기엔 비효율적이지만 실제로는 착취자에게 매우 유리하게 Excess 노동력이 갇히는 구조임
    • 시스템이 모두에게 똑같이 비효율적이고 착취적이라 오해하기 쉬움. 토지나 규칙을 소유하고 만든 이들은 사실상 모든 것을 누리고, 건설·의료 등 서비스가 끊이지 않음. 이들이 현실이나 경제가 어렵다고 불평하는 목소리도 듣겠지만, 실제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상황임
  • Bret Devereaux의 이 블로그 시리즈는 흑사병이 노동 관계를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떠오르게 만듦. 부자들이 얼마나 많은 잉여 노동을 뽑아갈 수 있었는지, 그리고 노동력이 줄자 교섭력이 생긴 사회적 충격이 정말 잘 설명되어 있음. 흑사병과 그 이후의 사회 변화가 농민 계층에겐 역설적으로 최고의 기회였을 수 있음
    • 오늘날 인구 구조에서 만약 대규모 이주가 차단된다면 유사한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듦. 다만 지배계층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음
    • 내 생각에는 부자들은 재산을 실제로 생산적인 곳보다 안전하지만 소득을 못 내는 곳에 보관하는 경향이 있고, 인구가 크게 줄고 노동자가 더 많은 부의 배분을 요구할 때 실질적으로 이 부가 더 생산적으로 쓰이면서 사회 전체가 더 윤택해짐. 그래서 인구 감소가 걱정되지 않고, 오히려 노동력 교섭력이 늘면서 부유층이 끌어안던 부가 생산적인 곳에 쓰이게 되어 사회 전반적으로 발전할 것임
  • Peasants, Knights, and Heretics라는 책을 이 주제에 관심 있는 이에게 적극 추천함
  • 현대 영국의 리스홀드 제도(leasehold system)는 사실상 중세적 토지 소유방식의 연장선임. 영국에서는 주택을 구매해도 토지를 완전히 사지 않고 임대해 임대료를 주는 경우가 있음. 계약기간이 대체로 80년 이상이지만, 가끔 몇 년 남지 않은 리스홀드가 팔릴 때도 있음. 갱신권이 보장되지 않으며, 프리미엄을 내야 하고, 제도 개선 시도가 많았지만 여전히 남아 있음
    • 대다수 주택은 리스홀드가 아니고, 보통 125년 이상임. 임대료 자체도 최근 몇십 년만 잠깐 실제로 생겼고 지금은 사라짐
    • 스코틀랜드에서는 리스홀드가 아주 드문 편임. 런던 근처 집을 알아보다가 이 내용을 처음 들어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음
    • 영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는 굳이 빚을 내지 않아도 토지 소유와 임대만으로도 언제든 불안정한 위치에 처할 수 있음. 한 통의 서면 통지로 집을 잃거나 장기 법정다툼이 시작될 수 있음
  •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의 삶을 잘 표현해주는 제목임
    • 이 시리즈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음. 특히 중세 농민이 우리보다 훨씬 덜 일했다는 잘못된 인식에 대해 설명함
    • Technofeudalism 정의가 아주 잘 나와 있음
  • 시리즈 마지막 부분에서는 흑인들이 더 효율적인 농법의 도입 이후 땅에서 쫓겨나 거의 대부분 아무 것도 받지 못했던 역사를 꼭 기억해야 함. 소수만이 자작농이었고, 그마저도 대출이 막히며 천천히 밀려남. 1910년 흑인들은 약 1500만 에이커의 땅을 소유했으나 지금은 100만 에이커만 남아 있음
    • 이런 변화가 단지 "효율성"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실제로는 정책 및 권력 구조가 누구에게 혜택이 주어지고 누구는 제외·배제됐는지 왜곡하게 됨
    • 1910년 이후 미국 전체 1인당 토지 소유도 얼마나 줄었는지 궁금함. 인종차별의 심각함을 결코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크게 바뀌었을 수 있음
    • 산업혁명 전까지는 80% 대부분이 농지에서 일했음
  • ACOUP의 글들은 기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꼭 읽어볼 만함. 아직 이 시리즈 전체는 못 읽었지만, 산업혁명, 철강 제조, 혹은 반지의 제왕 속 포위 공격전을 실제 전술과 비교한 글처럼 시스템 관점에서 사회를 분석하는 방식이 정말 인상적임. 역사적 배경지식 없이도 원리를 이해하기에 충분한 깊이로 다룸
    • 별 것 아니게 느껴질 수 있는 ‘빵 만들기’ 과정을 다룬 시리즈도 아주 재미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