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전 미국 항공산업은 소형 민간기 중심의 작은 산업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 동안 약 32만5천 대의 항공기를 생산하며 연합국 승리의 핵심 생산 기반이 됨
- 영국·프랑스의 선주문, Roosevelt의 연 5만 대 목표, Lend-Lease Act, 정부 소유·민간 운영 공장이 항공기 증산의 초기 속도를 만듦
- 항공기는 자동차보다 부품 수와 공차 요구가 훨씬 높아, 단순한 자동차식 양산이 아니라 도면 재작성, 새 공구, 검사 체계, 개조 센터가 함께 필요했음
- 병목은 공장·공작기계 부족에서 자재 부족, 노동력 부족으로 이동했고, 여성 노동자가 항공기 노동력의 약 40% 를 차지하면서 작업 분해와 도구 재설계가 확산됨
- 전시 항공기 생산은 복잡한 제조업도 빠르게 커질 수 있음을 보여줬지만, 실제 증산에는 수년이 걸렸고 초기 주문·산업 동원·사전 준비가 결정적이었음
전쟁 전 미국 항공산업의 작은 출발점
-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산업 생산력은 연합국 승리에 큰 역할을 했고, 1938~1943년 미국 제조업 생산은 3배로 늘어남
- 전쟁 동안 미국은 약 5,600척의 화물선, 8만 척의 상륙정, 240만 대의 트럭, 260만 정의 기관총, 410억 발의 탄약을 생산함
- 항공기는 “Arsenal of Democracy”의 핵심 축이었음
- 미국은 전쟁 기간 약 32만5천 대의 항공기를 생산함
- 총 가치는 약 460억 달러, 2024년 달러 기준 약 8,000억 달러였음
- 이는 독일·일본·이탈리아의 전시 항공기 생산량 합계보다 많고, 항공 역사 전체의 상업 운송용 항공기 생산량보다도 많았음
- 출발점은 작고 낡았음
- 1937년 미국 항공기 생산량은 약 3,100대였고, 대부분은 소형 민간 항공기였음
- 전쟁 전 미국 항공기 생산액은 통조림 생산액의 약 4분의 1, 자동차 생산액의 3.5%에 불과했음
- 1940년 미국 군용기는 2,665대로, 독일 Luftwaffe의 약 10분의 1 수준이었음
- 보유 항공기도 구식이었고, Boeing B-17 주문은 1937년 시험 중 사고 이후 더 저렴하고 성능이 낮은 B-18로 대체되며 취소됨
영국·프랑스 주문과 미국 정부 목표가 만든 초기 가속
- 미국 항공산업 확대의 첫 계기는 미국 참전 전 영국과 프랑스의 주문이었음
- 1938년 영국은 Lockheed의 Hudson 폭격기를 최대 250대, 2,500만 달러 규모로 주문함
- 이 주문은 Lockheed 연매출 200만~300만 달러의 몇 배였고, Lockheed는 인력을 빠르게 두 배로 늘림
- Pratt & Whitney는 1938년 프랑스의 200만 달러 엔진 주문과 1939년 8,500만 달러 주문으로 파산 위기에서 벗어남
- North American Aviation은 1935년 직원 150명에서 1939년 3,400명으로 성장했고, 영국의 AT-6 “Texan” 훈련기 주문도 기여함
- 1940년까지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 제조사에 6,000대 이상, 약 5억7,300만 달러 규모의 항공기를 주문함
- 이는 2024년 달러 기준 약 128억 달러였고, 1936년 미국 항공산업 생산액의 약 7배였음
- 1938~1940년 항공산업 고용은 3배로 늘어남
- 영국과 프랑스는 1940년까지 미국 항공기 공장에 7,200만 달러를 투자했고, 생산 확대 시점을 약 1년 앞당긴 것으로 추정됨
- 1940년 독일의 서유럽 침공 이후 Roosevelt는 의회에 12억 달러의 추가 국방 예산을 요청하고, 미국이 연간 5만 대의 항공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함
- 이는 1939년 생산량의 25배였고, 기존 항공기 확대 계획의 8배 이상이었음
- 1941년 Lend-Lease Act는 연합국에 항공기 등 군수품을 공급하기 위해 70억 달러를 승인함
- 1941년 12월 Pearl Harbor 공격 이후 Roosevelt는 목표를 1942년 6만 대, 1943년 12만5천 대로 다시 올림
- 실제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지만, 미국 산업이 움직일 기준점이 됨
정부가 지은 공장과 산업 전환
- 초기에는 항공기 제조사가 직접 필요한 공장을 지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필요한 확대 규모는 기존 산업이 감당하기 어려웠음
- 은행도 대출을 꺼렸고, 새 공장의 재무 부담을 낮추는 방안이 논의되는 동안 항공기 조달은 거의 멈춤
- Roosevelt의 5만 대 요구와 4억 달러 항공기 예산 승인 후 100일이 지나도 주문된 항공기는 343대뿐이었음
- 대부분의 신규 항공기 공장은 GOCO 방식, 즉 정부 소유·계약자 운영 시설로 건설됨
- 확장 자금의 상당 부분은 Bill Knudsen이 구상한 Defense Plant Corporation(DPC)이 지원함
- Knudsen은 General Motors 사장직을 떠나 Roosevelt 요청으로 무급 산업 동원 업무를 맡음
- North American Aviation은 DPC 자금으로 Dallas 공장을 짓고, Los Angeles 공장 확장을 위해 DPC가 임대한 공작기계를 사용함
- 전쟁 말까지 미국 연방정부는 항공기 제조 역량의 약 90% 를 소유함
- 신규 공장 다수는 노동자 확보가 쉽고 적 공격권에서 먼 중서부에 지어짐
- Chrysler 공장은 철강 대신 철근콘크리트를 쓰도록 재설계됐고, “Trojan Horses”라는 이동식 거푸집을 사용함
- 일부 공장은 30일 만에 지어짐
- Albert Kahn의 설계 사무소는 전쟁 기간 거의 1억 제곱피트의 공장 공간을 설계함
- Kahn은 자재 흐름을 극대화하기 위해 넓은 베이의 단층 대형 공장을 선호함
- 일부 공장은 탈의실·구내식당을 생산층 아래 지하에 배치해 노동자 이동이 자재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함
자동차·가전 산업까지 동원된 항공기 생산
- 완성 항공기의 최종 조립은 대체로 기존 항공기 제조사가 맡았지만, 여러 제조사가 같은 기종을 생산하기도 함
- Boeing B-17은 Douglas와 Lockheed도 생산함
- Ford는 비항공기 제조사 중 완성 항공기를 의미 있는 수량으로 납품한 거의 유일한 회사였고, 전쟁 동안 약 6,800대를 제작함
- 부품과 하위 조립품 생산에는 항공산업 밖 제조사가 대규모로 참여함
- Studebaker는 항공기 엔진을 만들었음
- Nash-Kelvinator와 Frigidaire는 항공기 프로펠러를 만들었음
- Chrysler는 B-29용 엔진·노즈 섹션·날개 가장자리와 B-17용 조종석 덮개 등 다양한 부품을 생산함
- 전쟁 중 생산된 항공기 중량의 약 절반은 하청업체와 라이선스 생산자가 만들었음
- 1940년에는 이 비중이 약 10%였음
- 자동차 산업만으로도 전쟁 중 생산된 80만 대 이상의 항공기 엔진 중 약 56% 를 생산함
- 항공기 생산 확대는 알루미늄, 항공유, 공작기계 산업까지 함께 키워야 했음
- B-17 한 대에는 약 10톤의 알루미늄이 들어감
- 1940~1943년 알루미늄 제조 역량은 DPC 자금 덕분에 4배 이상 늘어남
- 정유사는 항공유 정제 역량 확대에 거의 10억 달러를 자체 투입함
- 전쟁 중 연간 공작기계 생산량은 50배 증가함
항공기 제조가 자동차 양산보다 어려웠던 이유
- 전쟁 전 항공기는 소규모 작업장 방식으로 만들어졌음
- 개별 항공기를 제자리에 두고 부품별로 손으로 조립하는 방식으로, Ford Model T 이전의 자동차 생산 방식과 비슷했음
- 중량 기준 항공기 제작 비용은 자동차보다 약 30~40배 높았음
- 자동차 산업은 항공산업보다 1,500배 많은 자동차를 생산했지만 노동자는 8배만 많았고, 항공기 한 대에 필요한 노동력은 자동차의 거의 200배였음
- 항공기는 부품 수와 성능 요구가 훨씬 높았음
- 자동차는 약 5,000개 부품으로 구성됐지만, B-25 폭격기는 엔진·계기·장비 부품을 제외하고도 약 16만5천 개 부품을 가짐
- B-25에는 동체를 잇는 리벳만 15만 개가 필요했음
- 1930년대 Ford V8은 약 85마력을 냈지만 항공기 엔진은 1,000~2,000마력을 냈음
- 자동차 엔진은 최대 출력의 22%를 넘는 일이 드물었지만, 항공기 엔진은 최대 출력 또는 그 이상으로 자주 운전됨
- 높은 성능 요구는 엄격한 공차와 많은 검사로 이어짐
- 항공기 엔진 공장은 열 변동을 줄이기 위해 냉방을 했고, 표면 녹을 줄이기 위해 습도를 50%로 유지함
- 항공기 엔진과 구성 부품은 제조 과정에서 7만 번의 검사를 받을 수 있었음
- Ford의 한 항공기 엔진 공장은 약 1만5,500명 중 3,000명이 검사원이었음
- 항공기 구조 자체도 양산을 어렵게 만듦
- 얇은 알루미늄 판을 복잡한 곡면으로 만들고, 겹쳐 붙일 수 있는 면적도 작았음
- 일반 치수 도면만으로 곡면을 정의하기 어려워 lofting 절차가 필요했음
- 조립 중에는 알루미늄 판을 정확한 형상으로 유지하기 위한 크고 복잡한 고정 장치가 필요했음
- 항공산업 밖 제조사도 기존 도구를 그대로 쓸 수 없었음
- Ford가 Rouge 공장에서 Pratt & Whitney 엔진을 만들 때 기존 도구는 필요한 도구의 10%에만 맞았고, 나머지 90%는 새로 만들어야 했음
도면·설계 변경·개조 센터가 만든 생산 통제 문제
- 기존 항공기 도면은 대량 생산에 부적합했음
- 소량 작업장 생산에서는 도면과 생산 통제 시스템이 비공식적이어도 가능했고, 많은 핵심 정보가 현장 감독자의 머릿속에 있었음
- 설계 변경이 실제 도면 업데이트 없이 공구와 템플릿 변경으로 처리되는 일이 많았음
- 도면에는 제조 공차 같은 핵심 정보가 빠져 있는 경우도 있었음
- Ford가 B-24 생산을 시작했을 때 전체 항공기의 약 80%에 대해서만 도면이 있었고, 기존 도면에도 불일치가 많았음
- Ford는 전체 도면 세트를 다시 만들었고, 원래 7,500장이던 도면을 항공기 제조 경험이 적은 작업자가 이해하기 쉬운 2만 장 이상으로 바꿈
- 비슷한 도면 재작업은 거의 모든 기체 제조사에서 필요했음
- 전쟁 중에도 항공기 설계는 계속 바뀜
- 결함 수정, 성능 개선, 적을 이길 수 있는 항공기 제공 때문에 설계 동결이 어려웠음
- P-47 Thunderbolt는 P-47B, C, D, G, M, N 등 5개 주요 개정과 많은 소규모 업데이트를 거침
- B-29는 대량 생산 시작 전 비행시험 결과로 900개의 설계 변경을 겪음
- Chrysler가 Pratt & Whitney의 Cyclone 엔진을 생산하는 동안 6,000개 이상의 변경을 반영했고, 거의 5만 개의 변경 지시가 발생함
- 고생산량과 지속적 개선 사이의 임시 해법은 개조 센터였음
- 공장을 나온 항공기를 별도 시설로 보내 최신 설계 변경과 임무별 맞춤 작업을 적용함
- 미국에는 최종적으로 20개의 개조 센터가 세워짐
- 군용기 제작 노동의 25~50%가 개조 센터에서 쓰였음
- 완성 항공기를 고치는 작업은 비효율적이어서, 공장에서 몇 분이면 되는 부품 설치가 개조 센터에서는 수백 시간이 걸릴 수 있었음
- 한 사례에서는 처음 제작에 9,000시간이 든 항공기를 개조하는 데 8,000 인시가 쓰임
병목은 공장·자재·노동력 순서로 이동
- 생산이 확대되면서 주요 병목은 계속 바뀜
- 초기에는 필요한 항공기를 만들 공장과 공작기계가 부족했음
- 공장이 늘어난 뒤에는 자재 부족이 커짐
- 생산량 급증과 제조사들의 자재 비축 유인이 결합해 지속적인 부족을 만듦
- 마지막에는 공장을 채울 노동력 확보가 주요 병목으로 남음
- 가장 큰 미활용 노동력은 여성이었음
- 항공기 제조사들은 처음에 여성 고용을 꺼렸지만, 여성은 결국 항공기 노동력의 약 40% 를 차지함
- 일부 공장에서는 여성 비중이 90%에 달함
- 대규모 여성 노동자 활용은 생산 공정 재설계를 요구함
- 공정은 비숙련 노동자가 할 수 있는 단순 단계로 쪼개짐
- 가능한 곳에서는 부품 공차가 완화됨
- 작업은 신체적 부담이 적도록 재배치됨
- 부품을 고정하고 자유롭게 회전할 수 있는 trunnion jig 같은 보조 도구가 더 널리 쓰임
- 리벳 건에는 균형추가 붙어 필요한 힘을 줄였고, 이전에는 두 명이 필요하던 리벳 작업을 한 명이 할 수 있게 됨
- 이러한 변화는 여성과 비숙련 노동자 투입뿐 아니라 생산 공정 자체를 단순화하고 효율화함
- 공장 관리자들은 여성이 빠르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남성도 그렇게 할 수 있음을 깨달았고, “목록의 거의 모든 작업”이 혁신됨
작업장 방식에서 라인 생산으로
- 항공기 제조의 복잡성 때문에 자동차식 대량 생산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었지만, 고생산량에는 작업장 방식에서 라인 생산으로의 전환이 필요했음
- 자재가 생산 라인을 따라 부드럽고 꾸준히 이동하면서 완성 항공기로 바뀌는 방식이었음
- 기존 작업장 방식은 고숙련 노동력에 의존했지만, 그런 노동력은 충분하지 않았음
- 실제로 이용 가능한 비숙련 노동자들이 생산 시스템의 형태를 결정함
- 조직 관리도 크게 바뀜
- 1935년 5대 항공기 제조사는 평균 1,400명을 고용했음
- 1943년에는 각 회사 평균 고용이 10만 명으로 늘어남
- 많은 경영진은 현장 중심 업무에서 회의와 정부 문서 대응 중심 업무로 이동했고, 일부 관리자는 이 전환에 실패함
- 증산에는 시간이 걸렸음
- 전쟁 중 생산된 거의 모든 항공기는 5번째 항공기에서 500번째 항공기까지 가는 데 1년 이상 걸림
- Ford의 Willow Run 공장은 B-24 폭격기 대량 생산으로 주목받았지만, 첫 2년 동안은 항공기 생산 난제 때문에 거의 아무것도 만들지 못함
- 이후 대량 생산과 낮은 노동 투입을 달성했지만, 그 시점에는 육군이 더 이상 B-24가 아니라 더 크고 장거리인 B-29를 필요로 했음
- 새 기종의 양산은 개발과 시험 이후에야 가능했음
- 미국이 전쟁 중 운용한 대부분 항공기는 설계 시작부터 5번째 항공기 생산까지 2~3년이 걸림
- 전쟁 중 대량 생산된 거의 모든 미국 항공기는 Pearl Harbor 공격 1년 이상 전인 1940년 6월 이전에 설계 작업이 시작됨
학습곡선과 생산 효율 개선
- 초기 항공기 생산은 매우 비효율적이었음
- 제조사들은 처음 만들어보는 제품을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한 생산 방식으로 만들고 있었음
- 전쟁 중 Liberty Ship 같은 사례의 생산 효율 개선이 극적으로 보이는 이유 중 하나도 시작점이 매우 낮았기 때문임
- 제조사들은 빠르게 개선함
- 컨베이어와 모노레일을 설치해 자재를 빠르게 이동시킴
- 새 공장은 라인 생산과 자재 흐름을 고려해 설계됨
- 작업은 더 잘게 나뉘어 하위 조립품 단위로 분업되고, 더 많은 하청과 동시 작업이 가능해짐
- 비숙련 노동자도 운용할 수 있는 고정밀 공작기계가 도입됨
- 일부 제조사는 자동차 산업의 transfer machine을 도입해 여러 기계를 하나로 결합하고 자재를 자동으로 다음 공정으로 이동시킴
- 항공기와 공정도 제조하기 쉽게 바뀜
- 항공기 자체가 생산 용이성을 높이도록 재설계됨
- centrifugal casting, hydroforming, Guerin process 같은 공정이 개발되거나 더 널리 채택됨
- radiographic inspection 같은 새로운 검사 방법도 개발됨
- 더 나은 도구와 고정 장치, 짧은 자재 이동 경로, 개선된 생산·자재 통제 시스템이 도입됨
- 품질관리 같은 영역의 표준 절차가 만들어지고 제조사 간 모범 사례가 공유됨
- 그 결과 항공기 제작 시간은 학습곡선을 따라 줄어듦
- 1941년 Boeing은 B-17 한 대 조립에 14만 시간 이상이 필요했음
- 1944년에는 2만 시간 미만으로 떨어짐
- 전쟁 동안 항공기 생산 비용은 평균 32% 감소함
과잉 생산과 전후 해체
- 1941년까지 영국은 미국보다 더 많은 항공기를 연간 생산했지만, 1942년 미국은 독일·일본·영국·이탈리아의 합산과 비슷한 규모로 항공기를 생산함
- 1944년에는 미국 항공기 생산량이 너무 많아 육군과 해군이 모두 처리하기 어려워짐
- 공장을 닫으면 숙련 지식이 사라질 것을 우려해 미국은 오래된 항공기를 폐기해 새 항공기를 받을 공간을 만들기 시작함
- 사소한 수리가 필요한 항공기는 폐기되고 새 항공기로 대체되기도 함
- 일부 항공기는 공장에서 바로 폐차장으로 날아가 고철로 처리됨
- 전쟁이 끝나자 거대한 생산 체계는 해체됨
- 수만 대의 잉여 항공기가 boneyard로 보내져 방치됨
- 정부 비용으로 지은 대형 항공기 공장은 평시 항공산업에 너무 컸고, 원하는 제조사가 많지 않았음
- 정부는 공장을 건설 비용의 작은 일부 가격에 매각했고, 여러 용도로 전환됨
- 일부 공장은 다른 산업 시설로 바뀜
- Douglas 공장은 나중에 O’Hare가 됨
- Ford의 Willow Run 공장은 Henry Kaiser의 Kaiser-Frazer 자동차 회사에 팔림
- Tucker와 Playboy Motors도 이전 항공기 공장에 자리 잡음
- Dodge Chicago 항공기 공장은 공장 제작 주택 Lustron Home을 잠시 생산하는 데 쓰임
- 항공기용 도구, 지그, 고정 장치도 비슷한 운명을 맞음
- 특정 항공기에 맞춘 장비가 많아 재사용이 어려웠고, 고생산량에만 유용한 기계도 많아 폐기됨
전시 증산이 보여준 조건과 한계
- 2차 세계대전의 미국 항공기 제조는 작은 산업이 압도적인 항공기 생산 흐름을 만들어낸 사례였음
- 그러나 이 성공은 여러 조건에 의존했음
- 미국은 전쟁에 들어가기 전 항공산업 확대 준비가 부족했음
- 승리에 중요했던 중형·중폭격기는 전쟁 후반에야 대량 생산이 가능했음
- 정부와 산업계 모두 대규모 확대를 다룰 조직 인프라나 계획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음
- 많은 육군 동원 계획은 “M-Day”가 오면 산업이 즉시 전시 생산으로 전환될 것처럼 가정했음
- 실제 증산은 스위치를 켜는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았음
-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영국·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한 지 3년 뒤인 1942년에야 미국 항공기 생산이 본격적으로 증가함
- 이는 영국·프랑스의 초기 대규모 주문과 Bill Knudsen 같은 인물의 조기 산업 동원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음
- 전시 항공기 생산은 복잡한 제조업도 매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줌
- 동시에 비상 상황에서도 일부 과정은 일정 수준 이상 앞당기기 어렵고, 성공은 사전에 어떤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에 크게 좌우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