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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 전 미국 항공산업은 소형 민간기 중심의 작은 산업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 동안 약 32만5천 대의 항공기를 생산하며 연합국 승리의 핵심 생산 기반이 됨
  • 영국·프랑스의 선주문, Roosevelt의 연 5만 대 목표, Lend-Lease Act, 정부 소유·민간 운영 공장이 항공기 증산의 초기 속도를 만듦
  • 항공기는 자동차보다 부품 수와 공차 요구가 훨씬 높아, 단순한 자동차식 양산이 아니라 도면 재작성, 새 공구, 검사 체계, 개조 센터가 함께 필요했음
  • 병목은 공장·공작기계 부족에서 자재 부족, 노동력 부족으로 이동했고, 여성 노동자가 항공기 노동력의 약 40% 를 차지하면서 작업 분해와 도구 재설계가 확산됨
  • 전시 항공기 생산은 복잡한 제조업도 빠르게 커질 수 있음을 보여줬지만, 실제 증산에는 수년이 걸렸고 초기 주문·산업 동원·사전 준비가 결정적이었음

전쟁 전 미국 항공산업의 작은 출발점

  •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산업 생산력은 연합국 승리에 큰 역할을 했고, 1938~1943년 미국 제조업 생산은 3배로 늘어남
  • 전쟁 동안 미국은 약 5,600척의 화물선, 8만 척의 상륙정, 240만 대의 트럭, 260만 정의 기관총, 410억 발의 탄약을 생산함
  • 항공기는 “Arsenal of Democracy”의 핵심 축이었음
    • 미국은 전쟁 기간 약 32만5천 대의 항공기를 생산함
    • 총 가치는 약 460억 달러, 2024년 달러 기준 약 8,000억 달러였음
    • 이는 독일·일본·이탈리아의 전시 항공기 생산량 합계보다 많고, 항공 역사 전체의 상업 운송용 항공기 생산량보다도 많았음
  • 출발점은 작고 낡았음
    • 1937년 미국 항공기 생산량은 약 3,100대였고, 대부분은 소형 민간 항공기였음
    • 전쟁 전 미국 항공기 생산액은 통조림 생산액의 약 4분의 1, 자동차 생산액의 3.5%에 불과했음
    • 1940년 미국 군용기는 2,665대로, 독일 Luftwaffe의 약 10분의 1 수준이었음
    • 보유 항공기도 구식이었고, Boeing B-17 주문은 1937년 시험 중 사고 이후 더 저렴하고 성능이 낮은 B-18로 대체되며 취소됨

영국·프랑스 주문과 미국 정부 목표가 만든 초기 가속

  • 미국 항공산업 확대의 첫 계기는 미국 참전 전 영국과 프랑스의 주문이었음
    • 1938년 영국은 Lockheed의 Hudson 폭격기를 최대 250대, 2,500만 달러 규모로 주문함
    • 이 주문은 Lockheed 연매출 200만~300만 달러의 몇 배였고, Lockheed는 인력을 빠르게 두 배로 늘림
    • Pratt & Whitney는 1938년 프랑스의 200만 달러 엔진 주문과 1939년 8,500만 달러 주문으로 파산 위기에서 벗어남
    • North American Aviation은 1935년 직원 150명에서 1939년 3,400명으로 성장했고, 영국의 AT-6 “Texan” 훈련기 주문도 기여함
  • 1940년까지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 제조사에 6,000대 이상, 약 5억7,300만 달러 규모의 항공기를 주문함
    • 이는 2024년 달러 기준 약 128억 달러였고, 1936년 미국 항공산업 생산액의 약 7배였음
    • 1938~1940년 항공산업 고용은 3배로 늘어남
    • 영국과 프랑스는 1940년까지 미국 항공기 공장에 7,200만 달러를 투자했고, 생산 확대 시점을 약 1년 앞당긴 것으로 추정됨
  • 1940년 독일의 서유럽 침공 이후 Roosevelt는 의회에 12억 달러의 추가 국방 예산을 요청하고, 미국이 연간 5만 대의 항공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함
    • 이는 1939년 생산량의 25배였고, 기존 항공기 확대 계획의 8배 이상이었음
    • 1941년 Lend-Lease Act는 연합국에 항공기 등 군수품을 공급하기 위해 70억 달러를 승인함
  • 1941년 12월 Pearl Harbor 공격 이후 Roosevelt는 목표를 1942년 6만 대, 1943년 12만5천 대로 다시 올림
    • 실제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지만, 미국 산업이 움직일 기준점이 됨

정부가 지은 공장과 산업 전환

  • 초기에는 항공기 제조사가 직접 필요한 공장을 지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필요한 확대 규모는 기존 산업이 감당하기 어려웠음
    • 은행도 대출을 꺼렸고, 새 공장의 재무 부담을 낮추는 방안이 논의되는 동안 항공기 조달은 거의 멈춤
    • Roosevelt의 5만 대 요구와 4억 달러 항공기 예산 승인 후 100일이 지나도 주문된 항공기는 343대뿐이었음
  • 대부분의 신규 항공기 공장은 GOCO 방식, 즉 정부 소유·계약자 운영 시설로 건설됨
    • 확장 자금의 상당 부분은 Bill Knudsen이 구상한 Defense Plant Corporation(DPC)이 지원함
    • Knudsen은 General Motors 사장직을 떠나 Roosevelt 요청으로 무급 산업 동원 업무를 맡음
    • North American Aviation은 DPC 자금으로 Dallas 공장을 짓고, Los Angeles 공장 확장을 위해 DPC가 임대한 공작기계를 사용함
  • 전쟁 말까지 미국 연방정부는 항공기 제조 역량의 약 90% 를 소유함
  • 신규 공장 다수는 노동자 확보가 쉽고 적 공격권에서 먼 중서부에 지어짐
    • Chrysler 공장은 철강 대신 철근콘크리트를 쓰도록 재설계됐고, “Trojan Horses”라는 이동식 거푸집을 사용함
    • 일부 공장은 30일 만에 지어짐
  • Albert Kahn의 설계 사무소는 전쟁 기간 거의 1억 제곱피트의 공장 공간을 설계함
    • Kahn은 자재 흐름을 극대화하기 위해 넓은 베이의 단층 대형 공장을 선호함
    • 일부 공장은 탈의실·구내식당을 생산층 아래 지하에 배치해 노동자 이동이 자재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함

자동차·가전 산업까지 동원된 항공기 생산

  • 완성 항공기의 최종 조립은 대체로 기존 항공기 제조사가 맡았지만, 여러 제조사가 같은 기종을 생산하기도 함
    • Boeing B-17은 Douglas와 Lockheed도 생산함
    • Ford는 비항공기 제조사 중 완성 항공기를 의미 있는 수량으로 납품한 거의 유일한 회사였고, 전쟁 동안 약 6,800대를 제작함
  • 부품과 하위 조립품 생산에는 항공산업 밖 제조사가 대규모로 참여함
    • Studebaker는 항공기 엔진을 만들었음
    • Nash-Kelvinator와 Frigidaire는 항공기 프로펠러를 만들었음
    • Chrysler는 B-29용 엔진·노즈 섹션·날개 가장자리와 B-17용 조종석 덮개 등 다양한 부품을 생산함
  • 전쟁 중 생산된 항공기 중량의 약 절반은 하청업체와 라이선스 생산자가 만들었음
    • 1940년에는 이 비중이 약 10%였음
    • 자동차 산업만으로도 전쟁 중 생산된 80만 대 이상의 항공기 엔진 중 약 56% 를 생산함
  • 항공기 생산 확대는 알루미늄, 항공유, 공작기계 산업까지 함께 키워야 했음
    • B-17 한 대에는 약 10톤의 알루미늄이 들어감
    • 1940~1943년 알루미늄 제조 역량은 DPC 자금 덕분에 4배 이상 늘어남
    • 정유사는 항공유 정제 역량 확대에 거의 10억 달러를 자체 투입함
    • 전쟁 중 연간 공작기계 생산량은 50배 증가함

항공기 제조가 자동차 양산보다 어려웠던 이유

  • 전쟁 전 항공기는 소규모 작업장 방식으로 만들어졌음
    • 개별 항공기를 제자리에 두고 부품별로 손으로 조립하는 방식으로, Ford Model T 이전의 자동차 생산 방식과 비슷했음
    • 중량 기준 항공기 제작 비용은 자동차보다 약 30~40배 높았음
    • 자동차 산업은 항공산업보다 1,500배 많은 자동차를 생산했지만 노동자는 8배만 많았고, 항공기 한 대에 필요한 노동력은 자동차의 거의 200배였음
  • 항공기는 부품 수와 성능 요구가 훨씬 높았음
    • 자동차는 약 5,000개 부품으로 구성됐지만, B-25 폭격기는 엔진·계기·장비 부품을 제외하고도 약 16만5천 개 부품을 가짐
    • B-25에는 동체를 잇는 리벳만 15만 개가 필요했음
    • 1930년대 Ford V8은 약 85마력을 냈지만 항공기 엔진은 1,000~2,000마력을 냈음
    • 자동차 엔진은 최대 출력의 22%를 넘는 일이 드물었지만, 항공기 엔진은 최대 출력 또는 그 이상으로 자주 운전됨
  • 높은 성능 요구는 엄격한 공차와 많은 검사로 이어짐
    • 항공기 엔진 공장은 열 변동을 줄이기 위해 냉방을 했고, 표면 녹을 줄이기 위해 습도를 50%로 유지함
    • 항공기 엔진과 구성 부품은 제조 과정에서 7만 번의 검사를 받을 수 있었음
    • Ford의 한 항공기 엔진 공장은 약 1만5,500명 중 3,000명이 검사원이었음
  • 항공기 구조 자체도 양산을 어렵게 만듦
    • 얇은 알루미늄 판을 복잡한 곡면으로 만들고, 겹쳐 붙일 수 있는 면적도 작았음
    • 일반 치수 도면만으로 곡면을 정의하기 어려워 lofting 절차가 필요했음
    • 조립 중에는 알루미늄 판을 정확한 형상으로 유지하기 위한 크고 복잡한 고정 장치가 필요했음
  • 항공산업 밖 제조사도 기존 도구를 그대로 쓸 수 없었음
    • Ford가 Rouge 공장에서 Pratt & Whitney 엔진을 만들 때 기존 도구는 필요한 도구의 10%에만 맞았고, 나머지 90%는 새로 만들어야 했음

도면·설계 변경·개조 센터가 만든 생산 통제 문제

  • 기존 항공기 도면은 대량 생산에 부적합했음
    • 소량 작업장 생산에서는 도면과 생산 통제 시스템이 비공식적이어도 가능했고, 많은 핵심 정보가 현장 감독자의 머릿속에 있었음
    • 설계 변경이 실제 도면 업데이트 없이 공구와 템플릿 변경으로 처리되는 일이 많았음
    • 도면에는 제조 공차 같은 핵심 정보가 빠져 있는 경우도 있었음
  • Ford가 B-24 생산을 시작했을 때 전체 항공기의 약 80%에 대해서만 도면이 있었고, 기존 도면에도 불일치가 많았음
    • Ford는 전체 도면 세트를 다시 만들었고, 원래 7,500장이던 도면을 항공기 제조 경험이 적은 작업자가 이해하기 쉬운 2만 장 이상으로 바꿈
    • 비슷한 도면 재작업은 거의 모든 기체 제조사에서 필요했음
  • 전쟁 중에도 항공기 설계는 계속 바뀜
    • 결함 수정, 성능 개선, 적을 이길 수 있는 항공기 제공 때문에 설계 동결이 어려웠음
    • P-47 Thunderbolt는 P-47B, C, D, G, M, N 등 5개 주요 개정과 많은 소규모 업데이트를 거침
    • B-29는 대량 생산 시작 전 비행시험 결과로 900개의 설계 변경을 겪음
    • Chrysler가 Pratt & Whitney의 Cyclone 엔진을 생산하는 동안 6,000개 이상의 변경을 반영했고, 거의 5만 개의 변경 지시가 발생함
  • 고생산량과 지속적 개선 사이의 임시 해법은 개조 센터였음
    • 공장을 나온 항공기를 별도 시설로 보내 최신 설계 변경과 임무별 맞춤 작업을 적용함
    • 미국에는 최종적으로 20개의 개조 센터가 세워짐
    • 군용기 제작 노동의 25~50%가 개조 센터에서 쓰였음
    • 완성 항공기를 고치는 작업은 비효율적이어서, 공장에서 몇 분이면 되는 부품 설치가 개조 센터에서는 수백 시간이 걸릴 수 있었음
    • 한 사례에서는 처음 제작에 9,000시간이 든 항공기를 개조하는 데 8,000 인시가 쓰임

병목은 공장·자재·노동력 순서로 이동

  • 생산이 확대되면서 주요 병목은 계속 바뀜
    • 초기에는 필요한 항공기를 만들 공장과 공작기계가 부족했음
    • 공장이 늘어난 뒤에는 자재 부족이 커짐
    • 생산량 급증과 제조사들의 자재 비축 유인이 결합해 지속적인 부족을 만듦
    • 마지막에는 공장을 채울 노동력 확보가 주요 병목으로 남음
  • 가장 큰 미활용 노동력은 여성이었음
    • 항공기 제조사들은 처음에 여성 고용을 꺼렸지만, 여성은 결국 항공기 노동력의 약 40% 를 차지함
    • 일부 공장에서는 여성 비중이 90%에 달함
  • 대규모 여성 노동자 활용은 생산 공정 재설계를 요구함
    • 공정은 비숙련 노동자가 할 수 있는 단순 단계로 쪼개짐
    • 가능한 곳에서는 부품 공차가 완화됨
    • 작업은 신체적 부담이 적도록 재배치됨
    • 부품을 고정하고 자유롭게 회전할 수 있는 trunnion jig 같은 보조 도구가 더 널리 쓰임
    • 리벳 건에는 균형추가 붙어 필요한 힘을 줄였고, 이전에는 두 명이 필요하던 리벳 작업을 한 명이 할 수 있게 됨
  • 이러한 변화는 여성과 비숙련 노동자 투입뿐 아니라 생산 공정 자체를 단순화하고 효율화함
    • 공장 관리자들은 여성이 빠르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남성도 그렇게 할 수 있음을 깨달았고, “목록의 거의 모든 작업”이 혁신됨

작업장 방식에서 라인 생산으로

  • 항공기 제조의 복잡성 때문에 자동차식 대량 생산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었지만, 고생산량에는 작업장 방식에서 라인 생산으로의 전환이 필요했음
    • 자재가 생산 라인을 따라 부드럽고 꾸준히 이동하면서 완성 항공기로 바뀌는 방식이었음
    • 기존 작업장 방식은 고숙련 노동력에 의존했지만, 그런 노동력은 충분하지 않았음
    • 실제로 이용 가능한 비숙련 노동자들이 생산 시스템의 형태를 결정함
  • 조직 관리도 크게 바뀜
    • 1935년 5대 항공기 제조사는 평균 1,400명을 고용했음
    • 1943년에는 각 회사 평균 고용이 10만 명으로 늘어남
    • 많은 경영진은 현장 중심 업무에서 회의와 정부 문서 대응 중심 업무로 이동했고, 일부 관리자는 이 전환에 실패함
  • 증산에는 시간이 걸렸음
    • 전쟁 중 생산된 거의 모든 항공기는 5번째 항공기에서 500번째 항공기까지 가는 데 1년 이상 걸림
    • Ford의 Willow Run 공장은 B-24 폭격기 대량 생산으로 주목받았지만, 첫 2년 동안은 항공기 생산 난제 때문에 거의 아무것도 만들지 못함
    • 이후 대량 생산과 낮은 노동 투입을 달성했지만, 그 시점에는 육군이 더 이상 B-24가 아니라 더 크고 장거리인 B-29를 필요로 했음
  • 새 기종의 양산은 개발과 시험 이후에야 가능했음
    • 미국이 전쟁 중 운용한 대부분 항공기는 설계 시작부터 5번째 항공기 생산까지 2~3년이 걸림
    • 전쟁 중 대량 생산된 거의 모든 미국 항공기는 Pearl Harbor 공격 1년 이상 전인 1940년 6월 이전에 설계 작업이 시작됨

학습곡선과 생산 효율 개선

  • 초기 항공기 생산은 매우 비효율적이었음
    • 제조사들은 처음 만들어보는 제품을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한 생산 방식으로 만들고 있었음
    • 전쟁 중 Liberty Ship 같은 사례의 생산 효율 개선이 극적으로 보이는 이유 중 하나도 시작점이 매우 낮았기 때문임
  • 제조사들은 빠르게 개선함
    • 컨베이어와 모노레일을 설치해 자재를 빠르게 이동시킴
    • 새 공장은 라인 생산과 자재 흐름을 고려해 설계됨
    • 작업은 더 잘게 나뉘어 하위 조립품 단위로 분업되고, 더 많은 하청과 동시 작업이 가능해짐
    • 비숙련 노동자도 운용할 수 있는 고정밀 공작기계가 도입됨
    • 일부 제조사는 자동차 산업의 transfer machine을 도입해 여러 기계를 하나로 결합하고 자재를 자동으로 다음 공정으로 이동시킴
  • 항공기와 공정도 제조하기 쉽게 바뀜
    • 항공기 자체가 생산 용이성을 높이도록 재설계됨
    • centrifugal casting, hydroforming, Guerin process 같은 공정이 개발되거나 더 널리 채택됨
    • radiographic inspection 같은 새로운 검사 방법도 개발됨
    • 더 나은 도구와 고정 장치, 짧은 자재 이동 경로, 개선된 생산·자재 통제 시스템이 도입됨
    • 품질관리 같은 영역의 표준 절차가 만들어지고 제조사 간 모범 사례가 공유됨
  • 그 결과 항공기 제작 시간은 학습곡선을 따라 줄어듦
    • 1941년 Boeing은 B-17 한 대 조립에 14만 시간 이상이 필요했음
    • 1944년에는 2만 시간 미만으로 떨어짐
    • 전쟁 동안 항공기 생산 비용은 평균 32% 감소함

과잉 생산과 전후 해체

  • 1941년까지 영국은 미국보다 더 많은 항공기를 연간 생산했지만, 1942년 미국은 독일·일본·영국·이탈리아의 합산과 비슷한 규모로 항공기를 생산함
  • 1944년에는 미국 항공기 생산량이 너무 많아 육군과 해군이 모두 처리하기 어려워짐
    • 공장을 닫으면 숙련 지식이 사라질 것을 우려해 미국은 오래된 항공기를 폐기해 새 항공기를 받을 공간을 만들기 시작함
    • 사소한 수리가 필요한 항공기는 폐기되고 새 항공기로 대체되기도 함
    • 일부 항공기는 공장에서 바로 폐차장으로 날아가 고철로 처리됨
  • 전쟁이 끝나자 거대한 생산 체계는 해체됨
    • 수만 대의 잉여 항공기가 boneyard로 보내져 방치됨
    • 정부 비용으로 지은 대형 항공기 공장은 평시 항공산업에 너무 컸고, 원하는 제조사가 많지 않았음
    • 정부는 공장을 건설 비용의 작은 일부 가격에 매각했고, 여러 용도로 전환됨
  • 일부 공장은 다른 산업 시설로 바뀜
    • Douglas 공장은 나중에 O’Hare가 됨
    • Ford의 Willow Run 공장은 Henry Kaiser의 Kaiser-Frazer 자동차 회사에 팔림
    • TuckerPlayboy Motors도 이전 항공기 공장에 자리 잡음
    • Dodge Chicago 항공기 공장은 공장 제작 주택 Lustron Home을 잠시 생산하는 데 쓰임
  • 항공기용 도구, 지그, 고정 장치도 비슷한 운명을 맞음
    • 특정 항공기에 맞춘 장비가 많아 재사용이 어려웠고, 고생산량에만 유용한 기계도 많아 폐기됨

전시 증산이 보여준 조건과 한계

  • 2차 세계대전의 미국 항공기 제조는 작은 산업이 압도적인 항공기 생산 흐름을 만들어낸 사례였음
  • 그러나 이 성공은 여러 조건에 의존했음
    • 미국은 전쟁에 들어가기 전 항공산업 확대 준비가 부족했음
    • 승리에 중요했던 중형·중폭격기는 전쟁 후반에야 대량 생산이 가능했음
    • 정부와 산업계 모두 대규모 확대를 다룰 조직 인프라나 계획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음
    • 많은 육군 동원 계획은 “M-Day”가 오면 산업이 즉시 전시 생산으로 전환될 것처럼 가정했음
  • 실제 증산은 스위치를 켜는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았음
    •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영국·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한 지 3년 뒤인 1942년에야 미국 항공기 생산이 본격적으로 증가함
    • 이는 영국·프랑스의 초기 대규모 주문과 Bill Knudsen 같은 인물의 조기 산업 동원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음
  • 전시 항공기 생산은 복잡한 제조업도 매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줌
  • 동시에 비상 상황에서도 일부 과정은 일정 수준 이상 앞당기기 어렵고, 성공은 사전에 어떤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에 크게 좌우됨

댓글과 토론

Hacker News 의견들
  • 역사에서 과소평가되는 사실 하나는, 1차대전 당시 미국이 너무 준비가 안 되어 프랑스에서 소총을 빌려야 했다는 점임
    지금은 공격받으면 “잠자는 거인”이 깨어날 거라고 당연하게 여기지만, 1차대전 때도 미국은 세계 최대 경제였고 2차대전처럼 하룻밤 사이에 무기 제조 거인으로 변신하지는 못했음
    중국과 충돌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미국이 2차대전의 성과를 반복할지, 1차대전의 경험을 반복할지는 전혀 정해져 있지 않음

    • https://www.csis.org/analysis/china-outpacing-us-defense-ind...
      중국은 탄약에 크게 투자하고 있으며, 고급 무기 체계와 장비를 미국보다 5~6배 빠르게 확보하고 있음
      중국은 세계 최대 조선국이기도 하고, 조선 역량은 미국의 약 230배에 달함
      Jiangnan Shipyard 같은 중국의 대형 조선소 하나가 미국 전체 조선소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역량을 가짐
      “U.S. Defense Industrial Base Is Not Prepared for a Possible Conflict with China”
      https://features.csis.org/preparing-the-US-industrial-base-t...
    • 중국과 충돌이 벌어진다면 미국이나 중국 본토가 아니라 어딘가의 대리전 형태일 가능성이 큼
      2차대전 이후 주요 충돌은 한국전쟁(미국/중국), 베트남전(미국/소련)처럼 대리 장소에서 벌어졌음
      한 나라를 “점령”하는 건 무의미하고 인기도 없음. 아프가니스탄의 거의 모든 사례를 보면 됨
      그래서 시애틀 상공의 중국 폭격기나 상하이 상공의 미국 폭격기는 상상하기 어렵고, 그런 충돌에서는 양쪽 모두 패배함
      대리전 후보로는 대만이 가장 뚜렷하고 남중국해도 있음. 둘 다 중국에 큰 지리적 이점을 줌
      대만은 PC를 만든다는 점에서 충분히 중요해 미국이 개입할 수도 있지만, 미군이 대만에 상륙해 시가전을 벌일 가능성은 낮아 보임
      중국군이 LA에 낙하산으로 투입되거나 미군이 티베트에 낙하산으로 투입될 가능성도 없음
      이런 점을 고려하면 1차대전·2차대전의 통계와 행동 양식은 어느 정도 관련성이 떨어짐
      다만 미중 충돌이 있다면 경제전일 가능성이 더 큼. 공급망이 끊기고 칩이 부족해지며, 그런 의미에서 군수품이 아닌 국내 생산도 국민 불만을 달래기 위해 매우 중요해짐
    • 미국은 1차대전에 1년 반밖에 참여하지 않았음. 2차대전에서도 1943년 봄까지는 물자를 많이 생산하지 못했고 모든 게 절박하게 부족했음
      그렇지 않았다면 노르망디 상륙이 왜 1년 더 일찍 일어나지 않았겠나
      1차대전 전 몇 년 동안의 준비 부족은 의도적이었음. 대중이 유럽 문제 개입에 매우 반대했고, 정치인들도 물리적으로 개입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기 때문임
      Zimmermann Telegram이 그 흐름을 바꿨음
    • 중국이 미국을 압도적으로 더 많이 생산할 거라는 예상이 더 맞아 보임
      우리의 기술적 “우위”는 2차대전 당시 독일이 미국보다 가졌던 정도, 즉 눈에 띄지만 결정적이지 않은 수준일 가능성이 큼
      생산량으로는 1차대전 수준의 성과도 간신히 낼 수 있을 듯함
    • 같은 성과를 다시 내려면 국내에 설치된 생산 역량을 가진 회사들과 매우 큰 정렬이 필요해 보여서 쉽지 않음
  • 이 글이 놓친 점은 미국의 “민간 항공기”가 일본에 직접 팔린 뒤 군용 항공기로 개조됐다는 사실임
    팔지 않은 경우에도 설계를 일본에 직접 라이선스해 줬음
    이런 일은 1930년대 후반까지 계속됐고, 일부는 잠재적 문제로 인식했지만 이익이 워낙 커서 무시됐음
    모두에게 “Human Smoke”를 읽어보길 권함. 2차대전 전후 시기의 헤드라인과 신문 발췌를 모은 책인데, 전쟁이 끝난 뒤 우리가 스스로에게 팔아온 선전 기반의 반쪽 진실과 완전한 조작을 흥미롭게 드러냄

    • Buckminster Fuller는 “Critical Path”에서 1939년 미국의 고철 업체들이 사상 최고가를 이용하려고 독일과 일본에 고철을 맹렬히 팔았다고 썼음
    • “Human Smoke” 추천 덕분에 읽어볼 생각임. 나도 “Letters from a Self-Made Merchant to His Son”[1]을 추천하고 싶음
      시카고 육류 산업으로 부를 이룬 남자가 대학에 간 아들에게 쓴 편지 모음인데, 어떤 편지에서는 사랑을 표현하고 다른 편지에서는 지각한 아들에게 실망을 드러내는 식임
      차갑고 거리감 있다고 상상하기 쉬운 시대에, 따뜻한 현대적 부모-자식 관계를 아름답게 보여줌
      [1]https://www.gutenberg.org/ebooks/21959
  • 한편 미국은 이제 포탄처럼 단순해 보이는 물건조차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러시아는 미국과 EU 전체를 합친 생산량의 2~5배를 만들고 있음
    출처:
    [1] https://www.defenseone.com/business/2023/11/race-make-artill...
    [2] https://edition.cnn.com/2024/03/10/politics/russia-artillery...

    •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 미국/NATO의 전쟁 계획은 애초에 포병전에 들어가지 않는 것임
      포병이 방해되면 미국/NATO 계획은 폭탄 몇 발을 단 항공기를 보내 제거하는 쪽임
      육군에도 포병의 자리는 여전히 있어 일부는 생산하지만, 전쟁을 치르는 주된 방식은 아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모두 잘 훈련된 소련식 계획은 대량의 포병을 쓰는 것이었음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NATO는 자신들이 직접 싸운다면 쓰지 않았을 포탄 수요를 갑자기 보게 됨
      우크라이나 장군들은 그 체계를 알고 있으니 포탄을 원함. 약속된 F-16이 오늘 모두 도착하고 훈련까지 완료돼도 NATO식 전쟁에 필요한 항공기 수에는 턱없이 부족함
    • 러시아는 군사에 국내총생산의 약 7% 를 쓰는 반면,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국방 예산이 국내총생산의 약 2% 수준임
      전쟁 분석가는 아니지만 NATO 교리는 러시아와 꽤 다름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폭격 작전 때 NATO는 포탄이 아니라 폭탄으로 대부분의 피해를 줬음
      우크라이나에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하늘을 자유롭게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포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음
    • 링크한 기사들은 첫 주장까지 뒷받침하지 않음. 미국은 생산을 두 배로 늘렸고 생산 목표도 초과했지만, 의회 예산 문제 때문에 진전이 막히고 있음
      즉 미국은 포탄을 만들 능력이 있지만, 현재 직접 전쟁 중이 아니라 대량으로 필요하지 않은 상태임
      원문 글은 제조 역량을 만드는 것에 관한 글이고, 역량은 있지만 필요하지 않은 상태와는 다름
    • 현대 포탄을 대규모로 만드는 게 단순하다고 잘못 믿으면 미국이 나빠 보일 수 있음
      러시아는 미국과 달리 잠재적 위협이 되는 군대와 거대한 바다로 떨어져 있지 않아서, 정부가 늘 육군 보급을 많이 확보하는 데 우선순위를 둔 나라임
    • 러시아는 지난 2년 동안 전쟁 중이었고, 미국과 EU는 아니었으니 예상 가능한 결과임
  • “연합군은 미국의 거대한 산업 생산력 덕분에 2차대전에서 이겼다”는 문장과 달리, 글쓴이는 그래프에서 2위로 잠깐 나온 것을 빼면 소련을 완전히 무시함
    공장 상당수가 시베리아로 대피해야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15만 7천 대의 항공기도 인상적임
    미국과 영국이 추가로 2만 2천 대를 임대해 준 것도 있음

    • 맞지만 미국의 산업 생산은 항공기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소련은 전쟁 기계를 강화하기 위해 미국에서 막대한 보급품과 장비를 받았음
    • 소련이 해낸 일도 인상적이고, 2차대전에서 독일과 싸우며 겪은 수백만 명의 사망자와 시간이 지나며 독일군을 약화시킨 영향은 잊을 수 없음
    • 맞음. 소련은 폭격을 받는 와중에도 다른 모든 연합국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전차를 만들었음
    • 서방은 2차대전에서 소련에 막대한 원조를 제공했음. 무기대여법은 미국-영국만의 일이 아니었음
      수천 대의 항공기와 전차, 그리고 공장을 계속 돌릴 원자재가 보내졌음
      이는 소련이 처음에는 히틀러 편에 섰던 뒤의 일이기도 함
      https://en.m.wikipedia.org/wiki/Lend-Lease
    • 소련 공장의 대다수는 미국 자금으로 조달됐음
      미국이 없었다면 독일이 2차대전을 쉽게 이겼을 것임
      소련이 없었다면 미국은 1946년에 베를린에 핵폭탄을 떨어뜨리고 1947년쯤 2차대전을 쉽게 이겼을 것임
  • 1차대전의 미국 경험과 비교하면 흥미로움. 1918년 7월 여름까지 항공기 2만 대를 공급하려던 계획은 그해 11월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고작 196대만 실전에 투입했음
    http://www.worldwar1.com/tgws/relairprod.htm

  • 이런 일은 드론에서 다시 일어날 것임. 중국이 러시아를 면밀히 지켜보며 생산을 늘리고 있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음
    지금 FPV와 폭격용 쿼드콥터에서 보는 것은 말 그대로 1차대전 복엽기가 수류탄과 박격포탄을 던지던 것과 같고, 그것이 수천 파운드를 투하하는 장거리 전략폭격기로 발전하는 데는 10년밖에 걸리지 않았음
    생산 체계가 갖춰지면 자율 군집 드론은 필연이고, 우리도 맞춰갈 수밖에 없음

    • 좋은 관찰임. 중국과 미래 전쟁이 난다면 피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생산과 기술 측면에서 미국은 2차대전식 비유로 독일의 위치에 있고 중국은 당시 미국의 위치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됨
      미국은 고급 기술이 뛰어나고 중국은 대량생산을 잘한다는 명백한 유사점이 있음. 중국에도 뛰어난 엔지니어와 과학자가 많아 무엇이든 파악할 수 있음
      차이점도 뚜렷함. 미국은 전 세계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도망쳐 오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특정 집단이 이념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을 도서관에서 제한하려 하고 반과학·반교육 흐름도 동반되는 심각한 후퇴기에 있음
      중국은 비정통적 아이디어를 도입하려는 사람이 가고 싶은 곳은 아님
      현재 미국과 세계에는 1920~30년대의 메아리도 있음. 서로 다른 아이디어를 밀어붙이는 국가 집단들이 블록을 이루고 있음
      즉각 통신이 가능하고 핵무기는 당시보다 모든 것을 더 심각하게 만듦. 새로 부상한 반민주 국가들도 권력과 부를 얻을 기회를 원하고 있음
    • 미국이 킬봇형 드론에서 중국의 산업 역량을 맞출 수 없을까 봐 두려움
      미국에서 이런 것들을 대량 생산할 기반 시설을 이미 시작한 곳이 있는지 궁금함
      중장비 건설 경험, CAD 기술, 임베디드 경험이 있는 사람이 거기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1939년부터 1944년 사이 미국의 연간 항공기 생산 가치는 70배 증가했고, 항공산업 산출의 일반적 척도인 생산 항공기 총중량은 64배 증가했다”
    생산량을 무게로 평가한다는 점이 늘 웃음을 줌

    • 필요한 재료를 조달하고 운송하고 가공하는 양을 생각하면 합리적인 지표로 보임
      새로 만든 항공기들이 단순히 이전보다 70배 작아진 게 아니라는 확인용으로도 쓸 수 있음
    • 소련이 이 방식을 시도했음. 그 시대에 만들어진 납 램프를 아직도 찾을 수 있음
    • 코드 줄 수와 마찬가지로 아주 유용한 지표임
      사람 평가에 쓰는 것 같은 멍청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 아직 글을 다 읽지는 못해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2차대전 동원 과정에서 미국 경제에 대한 정부 통제가 얼마나 컸는지 늘 놀라움
    공장들은 하룻밤 사이에 전쟁 물자 생산으로 전환됐음
    진주만부터 일본 항복까지 미국이 생산한 상업용 자동차는 200대도 안 됨
    이 시기의 중앙집중적 정부 통제는 엄청났고, 오늘날 미국에서도 가능할지 궁금해짐
    미국 국민이 이런 급격한 변화를 받아들일지뿐 아니라, 현대 경제와 공급망이 이런 갑작스럽고 극단적인 방향 전환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임

    • 이런 정부 주도 산업이 성공할 때는 거의 항상 큰 국가적 긴급성이 있고, 민간과 사기업이 전면적으로 동참하는 상황과 맞물림
      모두가 1960년대 NASA를 정부 생산의 완벽한 사례로 들지만, 새로 생긴 관료조직은 대체로 막 흡수한 사람들의 합에 가까움
      NASA는 대학과 민간 산업의 너드들을 긁어모았고, 그들이 자신의 작업 방식과 리더십, 태도를 조직에 가져왔음
      하지만 이런 조직이 오래되면 관리자들이 장악하고 회계 담당자들이 망치는 식의 고전적인 Iron Rule 이야기가 됨
      거대 단일 정부 조직에서 벗어나, 세대마다 새 문제를 풀 새 조직을 만드는 쪽으로 가야 할지도 모름
      모든 것을 맡지만 잘하는 것은 없고 대체될 위험도 없는 만능 조직이어서는 안 됨. 새 생명을 키우고 나쁜 관리와 마비시키는 규칙 제정의 자연스러운 발전을 끊어낼 방법이 필요함
    • 이 과정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관심 있다면 “Destructive Creation”이라는 책이 있음. 저자 인터뷰는 여기 있음
      https://m.youtube.com/watch?v=gdbjVMxdnpQ
    • 사람들은 받아들일 것임. 정부가 폭력 독점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직접 공격받으면 시민들이 항상 전쟁 지지로 결집하기 때문이기도 함
      후자의 효과는 Randolph Bourne의 글로 유명해졌음 https://en.wikipedia.org/wiki/Randolph_Bourne
      “전쟁은 국가의 건강이다”라는 문구는 분쟁 중 정부가 권한과 자원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하는 것을 한탄함
      오늘날 미국이 전면 전시 동원에서 겪을 문제는 연고주의 때문일 수 있음
      Covid 봉쇄 때 “필수” 노동자 예외가 많았던 것을 떠올리면 됨. 일부는 물론 필요하지만, 오늘 일어난다면 매우 광범위해질 것 같음
      이런 예외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과 회사의 반감을 키울 것임
    • 1954년에 문을 연 자동차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음. 200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일했음
      정부와의 자금 조달이나 계약 조건 때문에, 필요하면 날개 생산으로 재설비할 수 있도록 지지 기둥 간격을 특정 거리로 맞췄다고 들었음
      다만 오해이거나 도시전설일 수도 있음
    • 중앙집중적 통제라기보다는 그냥 엄청난 돈을 쓴 것에 가까움
      연방정부가 오늘 소비재와 기계를 생산하라고 돈을 뿌리기 시작하면, 전 세계 모든 회사가 달려들 것이라고 봐도 됨
  • “1941년 말까지만 해도 영국은 미국보다 해마다 더 많은 항공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1942년에는 미국이 독일, 일본, 영국, 이탈리아를 합친 것과 거의 같은 수의 항공기를 만들고 있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움

  • 전쟁 중에 항공기가 80만 대나 만들어졌다니 몰랐음. 그 정도일 줄은 전혀 몰랐음
    조종사만 쉽게 100만 명이 넘었을 텐데, 대체 어떻게 전부 훈련시켰을까

    • 빠르고 위험하게 훈련시켰음. 미국 비행장에서 훈련 중 사망한 RAF 조종사 후보생들을 위한 묘지가 Alabama Montgomery에 따로 있을 정도임
      https://www.findagrave.com/virtual-cemetery/622200
      https://en.wikipedia.org/wiki/Oakwood_Cemetery_(Montgomery,_...
    • 교실 수업 며칠, 실전 비행 훈련 40~100시간을 한 뒤 바로 전쟁터로 보냈음
      추축국은 석유 부족 때문에 더 적었고, 전쟁 초기 소련도 총력 비상 상태라 더 적었음
      추축국 조종사는 죽거나 중상을 입거나 포로가 될 때까지 비행했음
      영어권 폭격기 조종사는 전투 임무 약 30회를 수행하고 살아남으면 교관으로 돌려보냈음
      폭격기 조종사의 평균 전투 생존율은 약 10회 임무였지만, 비행 빈도가 낮아 대부분의 영어권 폭격기 승무원은 교대 한도에 도달하지 않고 전쟁을 살아남았음
      한편 태평양 전선에서는 폭격기 승무원이 임무를 더 많이 수행할수록 교대 한도도 커졌음. 생존율이 좋아지자 지휘관들이 더 많은 임무를 요구해도 된다고 본 것임
      당연히 항공 승무원들은 좋아하지 않았음
      전투기 조종사는 교대되기 전까지 훨씬 높은 할당량을 채워야 했음
    • 50만 명 넘는 조종사가 사용한 아날로그 비행 시뮬레이터가 도움이 됐지만, 전쟁이었기 때문에 적 행동이 아닌 이유까지 포함해 극도로 높은 사상률을 감수했음
      https://www.nasflmuseum.com/link-trainer.html
    • 생산된 모든 항공기가 미국에서 쓰인 것은 아님. 상당한 소수, 당시 자료[0]에 따르면 18% 는 판매나 무기대여로 다른 연합국에 넘겨졌음
      [0] https://www.historians.org/about-aha-and-membership/aha-h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