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 강연
(budlebee.wordpress.com)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교수의 대중강연 발췌문.
관계와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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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사전 찾기 놀이를 많이 했는데, 아무 단어의 정의를 찾아보고, 정의에 나오는 단어에서 마음에 드는 단어의 정의를 찾아보고, 그걸 계속 이어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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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식으로 단어의 정의를 이어가다보면 언젠가는 원래의 단어로 되돌아옴. 우리가 갖고 있는 단어는 유한하기 때문에 항상 원래대로 되돌아오는 고리를 만들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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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생각하기에는 정의하려는 단어를 통해 스스로를 정의하는게 엉터리 논리 같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언어가 정말 훌륭하게 작동하고 언어를 통해 멋진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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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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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몇개의 공리를 뿌리로 두고 있는 나무처럼 보이지만, 수학 전체를 아울러 보면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언어와 더 비슷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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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증명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명제라는 점들이 화살표로 이어져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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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미 참으로 알고 있는 명제가 있고, 우리가 알고 싶은 명제가 있음. 명제를 증명한다는 것은 알고 있는 점에서 유한번의 추론을 통해 화살표를 뻗어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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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명제들은 굉장히 가까워서 쉽게 추론해낼 수 있지만 어떤 점들은 굉장히 멀어서 추론하기 어려움. 마치 명제들의 공간에 거리라는 기하학적 구조가 있는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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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모든 수학적 명제들로 구성된 공간은 어떻게 생겼을까? 말도 안되는 비유지만, 마치 우주 거시구조 처럼 생겼을 것. 은하들이 균질하게 퍼져있는게 아니라 어떤 곳은 방대하게 비어있고 어떤 곳은 오밀조밀하게 연결돼 있는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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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명제들의 공간에서 굉장히 유명한 두가지만 주목하자면 4색 정리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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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명제중에서 수학자들이 4색 정리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소중하게 여기고 특별히 유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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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명제들이 다른 명제들보다 특별히 흥미로운 이유는 분명히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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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제들에 사용된 단어와 표현들은 굉장히 익숙하고 쉬운 단어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힘든 우회로를 거쳐야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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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있는 명제에서 몇발자국만 걸어가면 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떤 수를 써도 쉽게 갈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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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이곳과 저곳 사이에 우리를 가로막는 엄청난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마치 우주 거시구조의 거대한 암흑 공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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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조가 우리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이 명제가 증명하기 힘들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구조를 유추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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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것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우리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는지를 강력하게 시사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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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종류의 직관을 갖고 있고 어떤 방식의 편견을 갖고 있는지, 이런 경험을 반복함으로써 스스로에 대해 알 수 있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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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들이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은 명제 공간의 수많은 관계를 최대한 자세하게 그려냄으로써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는지 이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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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고, 더 일반적으로는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또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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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추측들을 발견하는게 왜 중요하냐면 끊임없이 경계를 벗어나길 요구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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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순수수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중요한 가치중 하나. 우리 스스로가 타고난 편견을 넘어설 기회를 준다는 것.
허준이 교수님 강연은 23분부터 시작해요. 굉장히 훌륭한 강연이기에 영상으로 보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