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에 AI 생성 텍스트 벽 던지기
(noslopgrenade.com)- 슬롭 수류탄은 한 문장으로 충분한 채팅이나 이메일에 거대한 AI 생성 답변을 붙여 넣어 대화 매체를 망가뜨리는 행동임
- “회의가 몇 시냐”는 질문에 일정 관리 모범 사례 10쪽짜리 분석을 던지는 식으로, 질문의 크기와 답변 형식이 어긋남
- Redis와 Memcached 선택처럼 판단이 필요한 질문에는 긴 비교 분석보다 “Redis. 알림 기능에 pub/sub이 필요함” 같은 짧은 답이 적절함
- 상대가 원한 것은 ChatGPT가 만들 수 있는 에세이가 아니라 답변자의 인간적 판단이며, 긴 텍스트 벽은 답변·반박·확인을 어렵게 만듦
- AI는 답을 길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을 더 명확하게 다듬는 도구로 써야 하며, 의미 없는 정보량 증가는 대화를 죽임
슬롭 수류탄이란 무엇인가
- 슬롭 수류탄은 사람이 한 문장으로 답할 만한 채팅이나 이메일에 거대한 AI 생성 답변을 붙여 넣는 행동임
- Slack 같은 대화 매체에 장문의 에세이를 던지는 일은 매체 자체를 망가뜨리며, AI 복사·붙여넣기가 이를 쉽게 만듦
- “회의가 몇 시냐”는 질문에 일정 관리 모범 사례 10쪽짜리 분석을 보내는 것처럼, 단순한 질문에 문서급 답변을 던지는 방식임
- Redis와 Memcached 중 무엇을 쓸지 묻는 상황에서는 긴 비교 분석보다 “Redis. 알림 기능에 pub/sub이 필요함”처럼 판단을 짧게 전달하는 답이 적절함
왜 잘못된 방식인가
- 상대가 AI 에세이를 원했다면 직접 ChatGPT에 물었을 것이며, 질문을 보낸 이유는 답변자의 판단을 원했기 때문임
- 장문의 AI 답변은 수신자의 시간을 빼앗고 대화를 망가뜨림
- 상대는 처음부터 줬어야 할 한 문장을 찾기 위해 20분을 써야 할 수 있음
- 답이 기술적으로 맞더라도 형식 자체가 인간의 의사소통 방식에 적대적임
- 거대한 텍스트 벽은 상대가 답하거나, 반박하거나, 확인하기 어렵게 만들어 대화를 죽임
- AI는 답을 더 길게 만드는 데가 아니라 생각을 더 명확하게 다듬는 데 써야 함
- Jean Baudrillard의 “정보는 점점 더 많아지고, 의미는 점점 더 적어지는” 세계와 맞닿아 있음
- 슬롭 수류탄을 마주치면 noslopgrenade.com을 공유할 수 있음
- 더 나은 비동기 커뮤니케이션 관행인 nohello.net에서 영감을 받음
댓글과 토론
Hacker News 의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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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대화는 꿈과 비슷함: 누구나 마음에 드는 꿈 하나쯤 있고 남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지만, 그 꿈이나 채팅 세션은 본인에게만 특별할 뿐 남에게는 별 의미 없음
동료나 남에게 자기 꿈 얘기로 지루하게 만들지 말고, 컴퓨터의 꿈인 AI 채팅 로그도 던지지 말아야 함- 꿈 얘기는 너무 길지만 않으면 괜찮고, 흥미롭거나 웃길 수도 있음
결국 어떤 주제든 말할 때는 듣는 사람이 관심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듣는 쪽도 반응 신호를 줘야 함. 다만 AI 채팅 공유는 사양함. 포커페이스와 예의도 오래 못 버티고, 결국 불평하거나 비꼬게 될 것 같음 - Copilot이 내가 쓴 코드 뒤에 주석을 자동완성하면서 “This is hacky, but...”라고 붙였음
웃겨서 위에 “This is what Copilot said about my code:”라고 적었더니, Copilot이 이어서 “Copilot was correct, but...”라고 자동완성함
- 꿈 얘기는 너무 길지만 않으면 괜찮고, 흥미롭거나 웃길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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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반응에 더 이상 짜증내거나, 교육으로 고칠 수 있다고만 보지 않기로 했음. 그냥 다른 문화적 소통 차이처럼 보고, 이해하려고 하고, 어느 정도 관대하게 받아들이며, 간극을 메우는 쪽으로 생각함
그 사람의 소통 문화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도와보려고 해봤다”는 뜻일 수 있음. 결국 핵심은 상대가 선의로 행동하는지 믿을 수 있느냐임. 선의를 가정할 수 없다면 응답의 형식이 진짜 문제가 아님. 물론 상대의 해석된 답이나 대화 기여가 얼마나 자주 “모르겠다”에 가까운지, 또 필요 없을 때 얼마나 자주 끼어드는지도 내 평가에 영향을 줌- 이게 정말 문화라면, 그 문화 안에서 AI 쓰레기 폭탄을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찾을 수 있어야 함
소통 문화에는 말하는 사람뿐 아니라 듣는 사람도 필요함. 말하는 사람은 보이지만 듣는 사람은 아직 못 봤음.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면 그건 바깥의 문화가 아니라 흔한 무례한 실수에 가까움. 테이블 밑에 껌 붙이기나 캣콜링처럼 흔하지만 배려 없는 행동이고, 부끄러움을 주는 것도 환경을 바꿔 행동을 줄이는 한 방법임. 나는 이 행동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쪽임 - 여러 제품 지원 사이트에서 질문에 사람들이 열심히 답하지만 실제로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음
AI 폭탄 던지기도 대체로 같은 범주에 들어감. AI가 만든 답이라도 핵심을 찌르고 간결하며 내 문제에 답하면 괜찮지만, 답을 찾으려고 장문의 벽을 읽어야 한다면 쓸모없음. 그래서 Kagi 검색 결과에서 그런 “답변” 사이트들을 차단해뒀고, Kagi는 그 점이 좋음 - 선의로 행동한다는 건 “확실하진 않지만 Claude는 이렇게 말했고, 맞는 것 같아: [Claude 장문 중 짧고 정보성 있는 부분]” 정도로 말하는 것임
자기 답변인 척하지 말고, 유용하다고 판단한 정보만 남기고, 짧게 편집해야 함 - 의미 없는 장문의 벽을 읽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들고, 그걸 낭비하고 싶지 않음
그래서 단순히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문제가 아니고, 비용이 “무료”가 아님. AI 폭탄을 읽는 건 적어도 나에게는 꽤 스트레스임 - “잘 모르겠지만 도와보려 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나쁜 도움임
객관적으로 잘해봐야 순효용이 0에 가까움. 정말 문화 차이지만 진심으로 돕고 싶다면 교육으로 고칠 수 있음. 겉모습에만 관심이 있다면 훈련이 도움 안 된다는 데 동의함
- 이게 정말 문화라면, 그 문화 안에서 AI 쓰레기 폭탄을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찾을 수 있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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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텍스트 장벽을 마주치면 “view source” 같은 버튼 대신 “view prompt” 버튼이 있었으면 함
AI가 만든 메시지나 문서는 대개 불필요하게 장황해서, 프롬프트만 읽어도 충분한 경우가 많음. 왜 어떤 사람들은 글머리표 프롬프트를 거대한 문단으로 바꾸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음. 내 시간만 낭비하고, 실제보다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게 만들 뿐임- 이유는 단순함: 더 많이 일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임
모두가 ChatGPT를 쓰기 전에는 긴 문서가 누군가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들이고, 덜 다듬어진 글머리표 목록보다 더 많은 노력을 들였다는 신호였음. 쓰는 과정에서 보통 아이디어도 정제됐음. 이제는 누구나 글머리표를 ChatGPT에 넣고 문서로 부풀려서, 깊이 생각한 듯한 환상을 만들 수 있음. 과거에 많은 일을 하던 사람들과 같은 공간을 차지하지만 실제 작업은 하지 않아도 됨 - 개인적으로 이 행동이 매우 싫고, 직접 하지도 않으며, 멈췄으면 함
좋게 지내고 싶은 사람들이 나에게도 이렇게 하는데, 상대를 자극하지 않을 좋은 대응을 모르겠음. 그들은 쉬우니까 이걸 선택하고, 나는 그 쓰레기를 읽고 의미를 파악해 질문할지, 아니면 Claude 말고 당신 의견을 달라고 거절할지 선택해야 함. 전자는 더 많은 장문으로 이어지고, 후자는 내가 불친절하거나 AI 혐오자로 보이게 만듦. 나는 AI 혐오자가 아니지만, 직장에서는 AI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음. 지금은 유행이니까. 그 글 자체에서 AI 냄새가 난다는 점도 아이러니함 - 직장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낮은 노력으로 참여하는 척하고, 뭘 아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으로 보임
- 단순하고 구조화된 답변에 필요한 사고 노력을 들이고 싶어 한 적 없는 사람들이, 이제는 단어가 많으면 그 능력 부족이 마법처럼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음
- 이유는 단순함: 더 많이 일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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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ck에서도 긴 글은 100% 씀
질문이나 요청으로 누군가에게 연락할 때 가능한 한 많은 맥락을 제공하려고 함- 모든 답변을 “좋은 질문입니다”로 시작하나? 그런 인간은 본 적 없음
“좋은 질문입니다”는 정말 어려운 질문이거나 비꼴 때 쓰는 말임. 대부분의 질문은 대단한 질문이 아니라, 질문자가 간단한 답을 필요로 하는 것뿐임 - 긴 글과 에세이는 다름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쓰면서 몇 시간씩 타이핑하고 제목까지 달아 서식을 맞추진 않음. 불필요한 창작 문장 기법을 잔뜩 넣지도 않음 - 그건 규칙을 증명하는 예외에 가까움
특정 수신자에게 필요한 맥락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임. 생성형 AI는 보통 그걸 모름 - 나도 그렇게 쓰지만, 도구와 싸우는 느낌이 듦
더 많은 사람이 이메일을 썼으면 좋겠음
- 모든 답변을 “좋은 질문입니다”로 시작하나? 그런 인간은 본 적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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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무례하게 굴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이런 페이지가 계속 필요하다는 점이 흥미로움
왜 무례하고 멍청하다고 보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이해하기가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음- 그런 페이지를 가장 읽고 배워야 할 사람들이 정작 가장 읽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서, 효과는 거의 0에 가까움
- 사람들을 깎아내리며 시작하면 행동을 바꾸게 만들기 어렵고, 오히려 싫어하는 행동을 더 키우는 경우가 많음
바꾸라고 요구하기 전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그 관점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게 도움이 됨. 남들은 자신을 이해하려는 사람의 말을 더 잘 들음 - 기술이 아무리 많아도 어리석은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 수는 없음
Meta 안경을 씌워 AI 출력물을 그대로 읽게 해도, 멍청한 사람들은 아마 단어에서 버벅일 것임 - 소셜 미디어 밖에서는 AI 쓰레기 폭탄을 거의 본 적 없음
다만 AI 이전에도 이미 존재하던 곳, 예를 들면 고객지원 답변이나 각본화된 마케팅·인사 문구 같은 곳에서는 비슷한 게 있었음. 회사 얘기를 5분 동안 하면서 끼어들 틈도 주지 않는 실제 전화도 일종의 폭탄처럼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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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AI를 써서 더 명확하게 만들라”고 하는데, 아님. AI 쓰지 말고 그냥 말하면 됨
-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동료가 AI로 글을 다듬는데, 특히 긴 문서에서 잘 활용함
다만 결과가 여전히 잘 읽히도록 엄청 공을 들임. 그 노력 덕분에 글이 강하고 정확해졌음. AI 전에는 비원어민에게서 예상되는 명백한 실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AI를 썼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명확하고 유용한 글이 됨. 가끔 어색한 표현이 들어가지만 찾기 어려움. 이게 AI 글쓰기의 올바른 사용이고, 내가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이 하는 쓰레기 폭탄과는 전혀 다름 - 고객들이 AI를 써서 문제를 설명하고 전달하는 경우가 있었음
가끔 예시처럼 장문의 벽을 만들기도 하지만, 특정 용어를 모르고 그냥 일을 처리하려는 일반인이 문제를 아예 설명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전반적으로 나은 대안임. 우리 모두 모르는 분야에서는 일반인이니 어느 정도 이해해줄 필요가 있음
-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동료가 AI로 글을 다듬는데, 특히 긴 문서에서 잘 활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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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정보를 쏟아붓지 말아야 한다는 정서에는 완전히 동의함
동시에 오프라인에서 인간인 나도 직접 이렇게 하는 나쁜 습관이 있음 -
대부분의 임원은 글을 겨우 읽는 수준 같아서, 150자 이상 보내는 건 커리어에 별 도움이 안 됨
- 전에 일했던 회사 CEO는 이메일을 전부 글머리표 형식으로 썼음
훨씬 읽기 쉬웠고, 답장도 특정 글머리표를 인용한 뒤 바로 응답하면 돼서 생활이 훨씬 편했음 - “executive summary”라고 부르는 이유는 임원이 정성 들여 만든 보고서에서 그 부분만 읽기 때문임
- 맥락이 중요한 경우에는 메시지 시작에 요약과 행동 요청을 먼저 넣고, 아래에 세부사항을 붙임
오가는 질문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고, 내 요지도 더 명확해짐. 대부분의 사람은 해야 할 일이 정해지면 나중에 참고할 때만 맥락을 봄
- 전에 일했던 회사 CEO는 이메일을 전부 글머리표 형식으로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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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is를 써야 하나 Memcached를 써야 하나?”라는 예시는 더 넓은 독자를 대상으로 할 수 없었나 싶음
IT에 있지만 나조차 Redis나 Memcached가 뭔지 거의 모르고, 둘 다 써본 적 없음- 여기 있는 사람의 90%는 그게 뭔지 알고 있음
- 이 업계가 IT라고 불리던 시절에는 Redis가 없었던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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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AI 사용은 일종의 서비스 거부 공격처럼 보임
Alice는 낮은 노력으로 Bob에게 장문의 벽을 보내고, Bob은 높은 노력을 들여 해석해야 하지만 그 노력에 비해 얻는 가치는 거의 없을 가능성이 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