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어떻게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가

이 글이 겨누는 표적은 “AI가 교육을 돕는다”는 순진한 기대가 아니다. 대학은 예산을 줄이고 교수·학과·학생지원부터 도려내면서, 그 빈자리를 챗봇 라이선스로 메우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팔아치우고 있다. 표절 공포로 시작된 패닉은 곧 “AI-레디”라는 재포장으로 바뀌고, 그 끝에서 대학은 교육을 지키는 대신 교육을 자동화·외주화한다. 저자는 이 과정을 제도적 자기 잠식(=institutional auto-cannibalism) 이라 부른다. 대학이 “혁신”을 외칠수록, 실제로는 학문·노동·비판적 사고를 깎아내며 자신을 더 가볍고 값싼 ‘인지 서비스 유통망’으로 전환시키는 역설이 벌어진다.

🔍 주요 쟁점 심층 분석

1. 제도적 모순: 해고되는 교수, 도입되는 챗봇

  • CSU는 OpenAI와 1,700만 달러 규모 파트너십을 발표하며 “AI-Empowered”를 자처한다. 동시에 3억 7,500만 달러 예산 삭감을 추진하며 교수·학과·학생서비스를 정리한다.
  • “수백만 달러는 OpenAI로, 해고 통지서는 강의실로”라는 장면 배치가 핵심이다. 교육 투자가 아니라, 교육 기능을 유료 플랫폼에 아웃소싱하는 선택이다.
  • 아이러니는 더 날카롭다. AI의 사회·윤리적 영향을 연구할 역량이 있는 학과(예: 젠더연구, 인류학)가 재정난으로 중단되는 와중에, 캠퍼스는 “모두에게 ChatGPT Edu”를 배포한다. 즉, AI를 비판할 학문을 해체하고 AI를 인프라로 심는다.
  • 대학 행정의 언어는 “재정 지속가능성, 최적화, 효율”로 변하고, 그 언어가 곧 교육의 목적을 대체한다. “해고를 피하고 싶으면 더 일하라”는 협박이 “응원 메일”로 포장되는 냉소가 이 체제의 정서다.

2. 테크노폴리(Technopoly)와 교육의 아웃소싱

  • 저자는 AI를 “도구”가 아니라 환경을 재구성하는 기술로 본다. 펜은 글쓰기를 돕지만, 플랫폼 기술은 ‘무엇을 글쓰기라 부를지’까지 바꾼다. 여기서 테크노폴리(Technopoly) 란 판단과 가치가 기술의 명령(속도, 최적화, 자동화)으로 대체되는 상태다.
  • 테크노폴리의 캠퍼스 버전은 “교육=물류”다. 과제는 생성되고, 채점은 자동화되고, 대화·망설임·혼란·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느린 과정은 비용 절감의 이름으로 퇴출된다. 남는 것은 시뮬레이션된 학습—그럴듯하지만 텅 빈 학습의 연극이다.
  • 이 흐름은 ‘학문적 자본주의(academic capitalism)’와 결합한다. 지식은 상품, 학생은 소비자, 학과는 수익/성과 지표로 정당화된다. 대학은 공공재가 아니라 사기업의 시장 진입로가 되고, “혁신”은 종종 ‘민영화의 다른 이름’이 된다.

3. 부정행위의 산업화: '우로보로스'의 딜레마

  • 표절을 막겠다며 AI 감지를 도입하지만, 그 자체가 또 다른 AI 기업의 수익 모델이 된다. 학생은 생성형 AI로 과제를 만들고, 대학은 감지 AI로 단속하고, 다시 더 교묘한 생성/회피 도구가 팔린다. 저자가 말하는 우로보로스(자기 꼬리를 물어 스스로를 소모하는 뱀) 는 여기서 정확한 구조다.
  • 이 악순환은 “부정행위=브랜드”로 진화한다. ‘부정행위를 돕는 기능’을 대놓고 마케팅하는 사례, ‘아이비리그 진학=배우자/창업파트너 찾기’ 같은 냉소가 등장하는 이유는 대학의 학습 가치가 이미 약해졌기 때문이다.
  • 더 비극적인 모순: 표절 방지 명분으로 감시가 강화되면서 피해는 취약 집단(ESL, 흑인 학생 등)에게 불균형하게 돌아갈 수 있다. 즉, 대학은 “공정”을 내세우며 감시 자본주의적 통제를 교육에 이식한다.
  • “학생에게는 금지, 교수에게는 편의”라는 위선도 구조적이다. 교수의 강의자료 생성, 채점 자동화 유혹은 대형 강의·과중한 행정·축소되는 인력에서 합리적으로 ‘발생’한다. 시스템이 사람을 몰아넣고, 사람은 AI에 기대고, 대학은 그 결과를 “AI 리터러시”로 미화한다.

4. 최후의 대가: '인지적 부채(Cognitive Debt)'와 뇌의 퇴화

  • 저자가 던지는 결정타는 효율의 비용이다. AI에 글쓰기·사고를 맡길수록 단기적 편의는 커지지만, 장기적으로는 사고 근육이 약화된다. 이것이 인지적 부채(Cognitive Debt)—지금의 쉬움을 위해 미래의 인지 체력을 담보로 잡는 행위다.
  • 글은 MIT 연구를 인용해, ChatGPT 의존 시 뇌 신경 연결성 저하, 내용 회상 능력 붕괴, “매끈하지만 영혼 없는 글” 평가, 그리고 제거 후 성과 악화 같은 경로를 제시한다. 핵심은 “참여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덜 생각하는” 메타인지적 착시다.
  • 결론은 단순한 학업 능력 문제가 아니다. 대학이 학생에게 “생각하지 않는 법”을 학습시키면, 졸업장은 남아도 판단력은 사라진다. 즉, AI는 단지 과제를 대신하는 게 아니라, 학습의 생리학 자체를 바꾼다.

📉 결론 및 시사점: 교육적 파산의 시대

  • 저자가 말하는 무의미한 학위(Bullshit Degrees) 는 ‘전공이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다. 학위가 더 이상 학습·숙련·판단력의 증거가 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학생은 돈을 내고, 대학은 자동화로 비용을 줄이고, 기업은 인프라를 장악하며, 고용주는 ‘학위=역량’이라는 신뢰를 잃는다.
  • 대학이 예산을 깎으며 AI에 투자하는 모순은 우발적 실수가 아니라, 공교육을 시장에 넘기는 정치경제적 선택으로 제시된다. 표절을 막겠다며 AI를 도입하는 악순환은 ‘규범을 지키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규범 붕괴로 성장하는 산업’이 된다.
  • 시사점은 냉혹하다. 대학이 “혁신”을 외치며 교육을 플랫폼에 위탁하는 순간, 대학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인지 편의의 유통업이 된다. 그리고 그 끝에는 학습 없는 졸업, 판단 없는 전문성, 의미 없는 자격이 남는다.
  • 저자의 경고는 결국 한 문장으로 수렴한다. 대학은 OpenAI와 “파트너십”을 맺은 게 아니다. 자기 목적을 클릭 한 번으로 ‘Accept’ 했고, 그 대가로 교육의 영혼을 담보로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