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찬사를 급식실의 여성들에게
(bittersoutherner.com)- 미국 남부의 학교 급식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세대를 넘어 이어진 공공 급식의 헌신과 공동체 돌봄을 조명
- 작가의 할머니 Beulah Culpepper는 1950년부터 30년간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며, 배고픈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누던 인물로 묘사
- 현대의 급식 관리자와 조리사들은 예산 삭감과 행정 규제 속에서도 지역 농산물 사용과 건강한 급식 제공을 위해 노력
- 연방 보조금 축소로 지역 농가와 학교의 협력 프로그램이 중단되는 사례가 이어지며, 현장 인력들은 자구책으로 대응
- 급식실은 여전히 학교 공동체의 ‘심장’ 역할을 하며, 세대와 지역을 잇는 돌봄과 연대의 상징으로 남아 있음
작가의 어린 시절과 할머니의 급식실
- 작가는 어린 시절 조부모의 집에서 정부 보조 치즈를 먹던 기억을 통해 급식실 노동의 의미를 회상
- 할머니는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며 남은 식재료를 활용하고, 점심값이 없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던 인물로 묘사
- “아무 아이도 배고픈 채로 급식실을 떠나지 않는다”는 신념을 지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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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ulah Culpepper는 43세에 Blue Ridge 초등학교에서 급식 일을 시작해 1980년대 초까지 근무
- 학력은 낮았지만 메뉴 예산을 직접 계산하며 야채 수프, 이스트 롤, 땅콩버터 쿠키로 명성을 얻음
- 정부 규정 강화로 직접 조리 대신 가공식품 사용이 늘어난 점에 아쉬움을 느꼈다고 전함
현대 급식 노동자들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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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anie Dillard(앨라배마)는 5만 명 이상이 속한 School Nutrition Association의 회장으로, 지역 농산물과 신선식품 도입을 추진
- 예산 부족이 직접 조리 확대와 농장-학교 연계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애로 지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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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보조금 삭감으로 지역 농가와 학교 간 협력 사업이 중단된 사례 다수
- 테네시의 Lisa Seiber-Garland는 보조금으로 지역산 상추·완두콩을 공급했으나, 지원 종료 후 규모 축소
- Samantha Goyret와 Caroline Ideus는 농가와 학교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으나, 정부가 이미 배정된 예산을 철회했다고 언급
정책과 제도적 변화
- 1946년 제정된 National School Lunch Act 이후 급식 정책은 정치와 예산 논쟁의 중심에 있었음
- 최근 Robert F. Kennedy Jr. 는 건강한 급식 기준을 지지했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관련 프로그램이 중단
- 일부 주(캘리포니아 등)는 모든 학생에게 무상 급식 제공을 시행
- Dillard는 “학교 점심은 교통·교재처럼 무상이어야 한다”고 강조
- SNAP·Medicaid 삭감이 급식비 지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지적됨
급식실을 지탱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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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Waters는 1995년 Edible Schoolyard Project를 설립해 학교 정원과 유기농 급식 운동을 확산
- 신간 『A School Food Revolution』에서 급식실을 “학교의 심장”으로 표현
- 전 Noma 셰프 Dan Giusti는 Brigaid를 설립해 8개 주 40개 학군과 협력
- “가공식품을 줄이려면 예산·장비·교육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
- 급식 노동자들은 잦은 정책 변화 속에서도 꾸준히 현장을 지키는 존재로 묘사됨
지역 공동체와 돌봄의 연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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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 North(테네시)는 27년째 급식 일을 하며, 여름철 ‘Chow Bus’ 이동 급식 프로그램을 운영
- USDA 보조금 축소로 세 대였던 버스가 한 대로 줄었으며, “버스를 잃으면 사람들이 굶게 된다”고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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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Ridge 지역은 부유한 관광지로 변했지만, 여전히 모든 학생에게 무상 급식 제공
- Martha Williams와 GiGi Thomas는 급식을 통해 학생들의 생활 변화를 관찰하고, 정서적 돌봄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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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iber-Garland는 학생이 집에 가져갈 음식을 챙기거나, ‘공유 테이블’ 을 만들어 음식 낭비를 줄이는 등 자발적 지원 지속
- “그 아이들은 반드시 먹게 될 것,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말로 세대 간 연대의 정신을 이어감
결말
- 작가는 급식실 여성들의 헌신 속에서 공공 급식의 인간적 가치와 공동체 정신을 재발견
- 할머니의 말 “네 몫을 다하라(You take your part)”가 오늘날 급식 노동자들의 신념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
Hacker News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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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흥미로운 글이었음. 10년째 텍사스 서부의 작은 마을에서 급식 일을 하는 여자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보냈음
그녀 말로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있음. 50~60년대에 같은 학교에서 일했던 친척은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고, 채소도 지역 농가에서 샀다고 함
Michelle Obama의 “Let’s Move” 정책이 시행됐을 때, 아이들이 통밀 파스타와 빵을 싫어해서 음식 낭비가 심했다고 함. 특히 소금 없는 통밀 맥앤치즈는 최악이었다고
내가 직접 먹어본 학교 급식은 생각보다 맛있었음. 내가 어릴 때 먹던 것보다 훨씬 나았음
학교 급식에 정부 지원이 더 많지 않은 게 정말 화남. 영양은 아이들의 두뇌와 신체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함. 결국 이 아이들이 우리를 돌보게 될 세대임- Michelle Obama의 계획에 저염식이 포함된 이유를 이해할 수 없음. 아이들이 고혈압 문제를 겪는 것도 아닌데 말임
- 학교 급식에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는 말에 공감함. 하지만 그 논리를 확장하면 학교가 의료, 의복, 양육까지 다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
현실적으로 급식은 학교의 한정된 역할 중 하나이고, 아이들이 함께 식사하며 사회화를 배우는 과정이기도 함.
다만 요즘 교사들이 무급 사회복지사나 상담사 역할까지 떠맡는 경우가 많음.
또 “학교에 돈이 간다”는 것과 “학교가 제대로 운영된다”는 게 별개임. 교육계에는 이념형 비전문가와 컨설턴트, 사기꾼이 너무 많음. 반면 학교 운영을 제대로 감시하는 관심은 거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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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가들의 급식 사진을 보면 늘 감탄하게 됨. 영양가 있고 보기 좋은 음식을 직접 만들어 제공함
미국의 급식 조리사들도 아이들에게 그런 음식을 주고 싶어 하지만, 연방 정치의 변덕과 “누군가 공짜로 혜택을 받는 걸 두려워하는” 문화 때문에 막혀 있음
이런 현실 속에서도 급식 조리사들에게 더 큰 힘을 보내고 싶음- 반대편 시각으로는 NeverSeconds라는 사례가 있음. 2012~2014년 스코틀랜드의 한 여학생이 학교 급식을 매일 사진 찍어 블로그에 올렸는데, 교장이 이를 금지시킴
그녀가 “Goodbye”라는 글을 올리자 언론이 주목했고, 정치인과 BBC까지 나섰음. 결국 “올해의 공공 캠페이너” 상을 받았고, 교장은 곤경에 처했음
NeverSeconds 위키 문서 - “누군가 필요하지 않은 걸 공짜로 받을지도 모른다”는 사고방식이 미국 정치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 같아 슬픔
- 프랑스에서 10년 넘게 학교를 다녔는데, 댓글에서 말하는 ‘유럽 급식의 아름다움’과는 달리 내 학교 급식은 별로였음
오히려 미국 학교에서 먹은 음식이 더 맛있었음. 아마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건 아닐까 싶음 - 캘리포니아가 2022년에 모든 학생에게 무상 급식을 제공한 첫 주가 되었음. “교통, 교재가 무료라면 급식도 무료여야 한다”는 논리가 인상적이었음
다만 이런 논리가 확산되면, 오히려 통학버스 요금을 받자는 반발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음
- 반대편 시각으로는 NeverSeconds라는 사례가 있음. 2012~2014년 스코틀랜드의 한 여학생이 학교 급식을 매일 사진 찍어 블로그에 올렸는데, 교장이 이를 금지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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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Los Alamos에서 다녔던 학교에는 급식이 없어서 도시락을 싸갔음.
그러다 지역 사서가 하루 2달러에 직접 만든 따뜻한 점심을 팔길래 그걸 먹기 시작했음. 감자, 칠리, 라자냐 등 모두 집밥 수준으로 훌륭했음
그런데 어느 날 학교가 Aramark 계약을 맺으면서 그녀의 급식이 금지됨. 이후 음식의 질이 급격히 떨어졌고, 결국 다시 도시락으로 돌아감 -
어릴 때 무료 급식 대상자였는데, 우리를 따로 세워놓고 다른 아이들이 다 받은 뒤에 반쪽짜리 샌드위치를 줬음
그때의 모욕감은 잊을 수 없음.
그래도 몇몇 급식 아주머니들이 몰래 음식을 더 챙겨주셨고, 그 따뜻함이 평생 기억에 남음- 예전에 급식비 체납 문제로 졸업이 막히는 사례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학교 전체의 체납액을 대신 내준 기사 생각이 남
- 내 경험은 완전히 달랐음. 우리 학교는 모두 같은 줄에 서서 계산했고, 누구의 급식이 무료인지 몰랐음.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자본주의의 냉정함을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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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근처에서 자랐는데, 1920년대에 지어진 초등학교에는 주방도, 식당도 없었음.
1970년대 중반까지 도시락을 싸갔는데, 그때부터 냉동식 급식이 도입됨.
“피자버거”라는 메뉴는 치즈피자 위에 식은 햄버거 패티를 얹은 끔찍한 음식이었음.
신선한 채소는 없었고, 사과도 대부분 버려졌음.
아마도 정부 보조금으로 무료 급식을 제공하려다, 학교들이 제대로 조리할 능력이 없어서 가장 싼 외주를 택한 것 같음
내 아이들이 다닐 때는 초등학교 급식 자체가 사라졌고, 대신 가정에서 도시락을 싸줬음- 네덜란드에서는 여전히 대부분의 초등학교가 도시락 문화임. 문제라고 느끼지 않음
- 나도 보스턴 근처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우리 학교는 정부에서 받은 재료(치즈, 분말 달걀 등)로 직접 요리했음.
빵은 매일 구웠고, 음식은 의외로 괜찮았음. 학교는 엉망이었지만 급식만큼은 좋았음 - 지금은 매사추세츠의 모든 학생이 백만장자세로 지원되는 무료 급식을 받지만, 음식은 여전히 맛이 없음.
연방 기준 때문에 저지방·저염·고당분으로 맞춰야 해서 생긴 문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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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버스 기사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함.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야 함
- 왜 그래야 하는지 묻는다면, 내 어머니도 버스 운전사였음.
아이들을 돌보며 일할 수 있는 파트타임 일자리로 좋았음.
교사들의 질을 높이려면 급여 인상과 함께 성과 기반 해고도 가능해야 함 - 버스 기사 수준을 높이면 어떤 실질적 이익이 생길지 의문임
- 왜 그래야 하는지 묻는다면, 내 어머니도 버스 운전사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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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출처를 못 봤지만, 읽자마자 “이건 The Bitter Southerner 기사 같네”라는 생각이 들었음
실제로 그 잡지는 훌륭한 콘텐츠를 많이 다룸.
내가 자란 곳이지만, 지금 내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완전히 다름
관련 기사: Let Everybody Sing -
The Bitter Southerner가 2020년까지 두 시즌의 훌륭한 팟캐스트를 운영했었음.
지금은 중단돼서 아쉽지만, 정말 인상 깊은 프로그램이었음 -
예전에 우리 학교의 급식 아주머니들이 모두 해고되고, SodexoMAGIC이 계약을 맡으면서 “재고용 가능” 상태로 전환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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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서부의 외딴 시골학교에 다녔는데, 학생이 5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였음
모든 음식을 직접 조리했고, ‘수프 나치’라 불리던 엄격한 조리사가 주방을 관리했음
나이든 학생들이 교대로 주방 일을 도왔고, 그 과정에서 위생과 협동심을 배웠음
그 경험이 지금까지도 내 삶에 큰 도움이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