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조력 자살을 선택한 Daniel Kahneman
(bluewin.ch)- 노벨상 수상자 Daniel Kahneman이 2024년 3월 27일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을 결정함
- 그는 정신적·신체적 급격한 쇠퇴를 미리 예방하고 싶다는 이유로 이 선택을 함
- 가족 및 가까운 이들과 파리에서 마지막 생일과 추억을 보내며 자신의 결단을 알림
- Kahneman은 자신의 자율성과 마지막 순간의 품위 유지를 중시했으며, 충분히 숙고된 결정임을 강조함
- 그는 자신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싶지 않았으며,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며 조용히 삶을 마무리함
Daniel Kahneman의 마지막 선택
주요 내용 요약
- Daniel Kahneman은 2024년 3월 27일, 90세 나이로 스위스에서 자발적이고 자기 결정적인 조력 자살을 선택함
- 그는 생애 마지막 날들을 파리에서 파트너 Barbara Tversky, 딸과 가족들과 함께 보내며 평온과 만족감을 느꼈음
-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였던 Kahneman은 “정신적·육체적 쇠퇴를 피하고 싶다”는 개인적 신념을 밝혔음
- 자신의 어머니, 아내 Anne Treisman 등 사랑하는 이들의 노쇠 경험을 본 이후, “자연스럽게 무력하게 쇠약해지는 것을 피하고 싶음”을 밝힘
- Kahneman은 마지막까지 배우고, 기억하고, 글을 쓰며 연구자로서의 삶을 유지했고, 자신의 결정은 성찰에 기초함을 강조함
마지막 결정의 배경
- 그는 휠체어나 투석 치료가 필요하지 않았고 치매도 없었음
- 그러나 “정신 집중의 잦은 오류와 신장 기능 저하”를 느끼며, 삶의 질이 현저히 낮아지기 전 스스로 끝을 결정하기로 결심함
- Kahneman은 가족, 가까운 친구들에게 이메일로 작별 인사를 전하며 자신의 선택을 설명함
- 그는 “삶이 분명히 더 이상 가치 없다고 느껴질 때는 이미 늦은 시점”임을 강조하며, 조금 이른 결단을 내린 이유를 밝힘
- 가족과 지인들 중 처음엔 반대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결국 그의 선택을 존중함
조용한 마무리와 감사의 마음
- Kahneman은 이번 결정이 대중적 논쟁거리나 메시지가 아니기를 희망함
- “내 선택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지만, 공개적으로 거론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직접 전함
- 사후, 미디어나 부고에서 자신의 죽음이 부각되지 않기를 바랐음
- 마지막 순간까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며, 연구자로서의 호기심과 자세를 유지함
- 마지막 이메일에서 “이 삶을 좋은 인생으로 만들어 준 모든 분들께 감사함을 전함”
자살 위기 시 도움 서비스 안내
- Dargebotene Hand 상담 전화: 143 또는 www.143.ch
- Pro Juventute 아동·청소년 상담 전화: 147 또는 www.147.ch
- 추가 정보와 기관: www.reden-kann-retten.ch
- 자살로 인한 유족 지원 단체: Refugium, Sea of fog
Hacker News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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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거의 1년 전에 돌아가신 오래된 선생님이 있었음 친구 많고 사교적인 분이었으며, 작은 마을의 모두를 알 정도였음 제자들과도 꾸준히 연락하며 좋은 이웃이자 친근한 분이었음 하지만 알츠하이머에 걸리셔서 기억이 점점 사라지고, 이 때문에 많이 좌절하셨음 위험하게 운전하다가 면허를 빼앗겼고, 의사에게 욕을 퍼붓기도 했음 병 든 닭을 요리하려다 내가 지적하니 화를 내셨고, 나 뿐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관계를 망치게 되었음 이 병 때문에 이웃, 경찰, 의료진 등 자신을 돕는 모든 사람과 관계가 모조리 악화되었음 결국 집에서 가스를 틀어놓고 있다가 온 마을을 위험에 빠뜨릴 뻔했고, 요양원에 가서 자기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되었음 만약 교통사고나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면 모두가 친절한 예술가 아저씨로 기억했을 텐데, 결국 모두에게 원망을 사고 동네를 날려버리려 한 83세 노인으로 남게 되었음 치매 같은 병에 걸리면 자신에 대한 타인의 인상이 정말 안 좋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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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한가에 집중하는 결론은 이상하게 느껴짐 치매로 인해 인격도 사라지고 결국 죽게 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건 그런 환자를 사회가 관리할 방법이 부족하다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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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본인에게도 끔찍한 경험임 기억의 공백이 계속 커지고, 순간순간 예전의 자신을 떠올릴 때마다 고통스러움 그런데도 법적으로는 고통을 끝낼 방법이 없고, 사전 동의서에 명시했어도 현재의 의식으로 동의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불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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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년간 공동체에 불편함을 준다는 이유로 환자가 죽는 게 더 낫다는 시각이 너무 냉정하게 느껴짐 80년간 마을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이 3년 고생하고, 결국 모두의 도움과 이해가 아닌 마치 ‘자비로운 살인’처럼 여겨짐 노인들은 홀로 힘들게 살면서 가족들에게 부담될까 두려워 낯선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실제 가족들도 도와주지 않는 경우가 많음 이렇게 몇 년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죽음을 권하는 건 정말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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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 남으로, 치매를 앓는 엄마와 몇 년째 함께 살고 있음 전에는 이런 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자꾸 잊게 됨 가장 단순한 일도 엄마에게는 50단계가 필요함 배고프거나 목이 마르거나 화장실이 급할 때도 스스로 표현을 못 해서 계속 물어봐야 함 항상 피곤하고 집 안을 빙빙 도는데, 침대에 가라고 해도 대부분 거칠게 반응함 몇 초 이상 집중도 못해 TV조차 1분이면 흥미를 잃고 취미도 없음 말은 알아들을 수 없는 웅얼거림이고, 다른 사람들의 대화에 본인이 끼지 못하면 짜증을 냄 아빠와 나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음 병이 엄마에게서 모든 걸 앗아갔고, 우리 역시 조금씩 잃고 있음 재가 요양 서비스를 쓰는 게 답일 듯한데, 엄마는 낯선 사람을 극도로 싫어해서 집에 들이는 걸 극도로 경계함 정답은 없음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기를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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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태에 들어서면, 주변 사람들이 문제로 보이고 정작 본인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음 치매 초기에야 인생이 살 만하지만, 병이 심해지면 이미 무엇이 잘못됐는지 자각하지 못하는 게 문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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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갈로르의 Jain 커뮤니티에 속해 있음 우리 사회에는 ‘Sallekhna’라는 오랜 전통이 있는데, 수천 년에 걸쳐 발전했고 사회에서 존중받는 관습임 본질은 물질적 삶의 포기를 뜻함 내가 지난 1년간 목격한 다섯 번의 사례에서는, 주로 임종이 가까운 사람들이 선택하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평화롭게 생을 마감함 (통증이 있을 때는 약으로 케어하며, 음식과 물을 중단하면 몸이 서서히 기능을 멈춤) 이 과정은 엄숙히 옆에서 지켜보며 존중되는 행사임 일단 시작하면, 환자와의 대화가 독특하고 분위기상 소소한 이야기도 잘 오가지 않음 Sallekhna 위키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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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눠주셔서 고마움 나도 올해 97세로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봄 신장암을 발견했고 치료하지 않고 집에 모셔다드리기로 가족이 결정함 마지막 며칠간은 반응이 없었고, 의사들은 위관영양(관을 통한 영양공급)을 제안했으나 받아들이지 않고 약만 투여함 가족 모두가 며칠 동안 노래와 오디오북을 들려드리며 할아버지를 지켜봄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곁을 지킬 기회를 가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힘들지만, 마지막이 온전히 존중받는 모습에 감사함 본의 아니게 Sallekhna와 유사하게 보내드린 셈이며,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고 확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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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호스피스’라는 형태가 딱 이와 유사함 치료를 중단하고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데 집중함 임종이 다가오면 더 이상 먹거나 마시지 못할 때, 진통제를 점증적으로 늘려 고통 없이 보내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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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는 ‘Thalaikoothal’이라는 전통도 있는데, 이것은 자살보다는 살인의 성격이 더 강함 Thalaikoothal 위키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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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전부터 어떻게 통증을 관리했는지 궁금함 진통제가 없던 때에는 어떤 방식으로 고통을 줄였는지 궁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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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그분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i> 궁금해서 기사에서 그 내용을 찾아봄 Kahneman은 스위스 Nunningen의 Roderis에 있는 Pegasos를 이용해, 수트와 넥타이를 매고 침대에 누워 스스로 sodium pentobarbital 주입을 작동시켰음 동반자가 그의 손을 잡으며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까지 전한다'고 함 Kahneman의 마지막 말은 “나는 그들의 사랑을 느껴”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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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gasos 협회가 여기 맞는 것 같음 Pegasos는 스위스를 기반으로 하는 비영리단체로, 합리적이고 정신적으로 온전한 성인이라면 건강 상태와 상관 없이 죽음의 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함 ‘상태에 상관없이’라는 문구가 매우 흥미로웠음 가족도 없고 인생에서 특별히 더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사람이 고령이 되면 그냥 끝내고 싶어할 경우, 혹은 삶이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은 55~60세부터도 가능한가 궁금함 국적에 관계없이 허용되는지도 궁금하고, 관련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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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충격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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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Kahneman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Thinking: Fast and Slow’의 저자임 경제학, 행동심리학, ‘생각에 대한 생각’에 관심이 있다면 특히 1부가 매우 인상적이니 꼭 추천함 그의 죽음이 안타깝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마지막을 맞은 점이 위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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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일부가 심리학계의 ‘재현 위기’에 휩쓸렸음 많은 주요 연구 결과들이 재현되지 않아 원 저자의 연구까지 의심받게 됨 4장 ‘연상 기계’에서 인용된 논문의 재현지수(R-index)가 14로, 거의 신뢰할 수 없는 수준임 Kahneman 본인도 블로그에서 "너무 약한 연구에 너무 많은 믿음을 뒀다"고 결함을 인정함 이후 분석에서는 책에 인용된 대다수 아이디어가 취약한 과학적 근거 위에 있고, 원 연구들이 거의 재현되지 않는다고 지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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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워낙 극찬을 받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저자가 노벨상을 받았음에도 메시지가 너무 ‘진하다’고 느꼈음 도저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소화가 안 됐고, 거의 2장도 못 넘김 내가 멍청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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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일부 내용이 재현성에 문제가 있어 분명 업데이트가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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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hneman이 돌아가신 줄도 몰랐음 ‘Thinking: Fast and Slow’는 정말 명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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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신간인 ‘Noise’도 어쩌면 이 책보다 더 좋을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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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in Williams의 슬픈 죽음 이후로 나는 안락사(assisted suicide)에 찬성하게 됨 누구나 존엄하게 떠나는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함 하지만 실제로 일부 국가에서는 안락사가 장애인 등 죽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권유되는 문제가 있음 이 점은 반드시 해결해야 함 단순히 하지 않으면 되는 쉽게 해결 가능한 문제라고 생각함 비용 절감이라는 유인이 있어서 발생한다고 보임 건강한 사람에게는 운동, 식이조절 등을 권하며 비용 절감을 유도하는 것처럼, 같은 논리로 잘못된 방향으로 오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음 결국 우리는 사람을 아끼는 결정을 내려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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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국가에서 비자발적 안락사가 광범위하게 발생한다는 근거가 있는지 궁금함 많은 토론에서 항상 등장하는 두려움인데, 실제로 그런 나라가 있는지 알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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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ter Thompson도 이런 방식을 택한 것 같음 내 친구 중 한 명도 투석치료를 받다가 이식이 불가능하니 치료를 중단하고 스스로 마지막을 결정함 60대 후반이었음 가톨릭 신자라 적극적 안락사는 택하지 않았지만, 그 과정을 함께 지켜본 건 슬프면서도 한편으로 뜻깊은 경험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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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적 유인이 있다면 누군가가 어떡해서든 밀어붙이게 됨 이것이 내가 건강한 사람이 몇 년 노쇠를 피하려는 목적으로 안락사를 택하는 데 대해 가장 꺼림칙한 지점임 가족이 재산 문제 등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안락사를 택하면 그 가족에게는 유산을 줄 수 없도록 법적으로 제한하면 그나마 덜 위험하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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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MAID(의료적 보조 죽음)에 찬반을 오가며 고민함, 특히 미국에선 윤리 문제가 상당히 사회·경제 환경에 달려있다고 생각함 가난한 집안에서 중증 질환으로 치료비가 과도해지는 상황에서, 남아 있는 가족들이 엄청난 채무로 몰리느니 MAID가 결국 더 ‘저렴한’ 선택이 됨 미국 사회·계급 구조 상, 결과적으로 취약 집단이나 소수자들에게 이 제도가 더 많이 적용되는 상황도 가능하다는 게 우려임 모든 보조자살제가 곧 우생학은 아니지만, 경제적 이유만으로 본인의 생을 마치게 되는 현실 자체는 정말 아프게 느껴짐 정답은 사람들이 빨리 죽게 두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이런 선택을 강요받지 않아도 되는 의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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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CHF 1만 프랑을 내고 주사로 생을 마감하면 <i>존엄</i>하다고 하고, 반대 방식은 존엄하지 않다고 하는 게 참 이상함 어떤 방식이든 고인을 존중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함 그리고 갑자기 몇 문장 사이에 안락사 얘기하다가 섬유소 섭취 얘기로 넘어간 점이 너무 신기함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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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레드에서 안락사나 자살의 도덕성, 합법/불법 상황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음 Cryonics(동결 보존) 커뮤니티에서는 법적으로 환자가 죽기 전까지는 동결할 수 없다는 게 큰 불만임, 이 때문에 최상의 조건에서 보존이 거의 불가능함 엔드오브라이프(임종) 케어 대신 cryopreservation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면 비용도 크게 차이나지 않을 거라 봄 Cryonics는 죽음의 최종성이 없어서 윤리적 논란도 일부 해소할 수 있음 미래 기술이 발전하면, 2500년쯤 태어난 사람이 1900년생의 삶 이야기를 해주는 멋진 광경도 가능하지 않을까 함 어느 나라라도 법적으로 환자가 죽기 전에 cryonics를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정말 좋겠음
- Cryonics을 마치 검증된 과학기술처럼 말하지만, 실은 널리 사이비과학으로 간주되며 실질적으로 효과 없는 기술임 엔드오브라이프 케어 비용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고, 대신 시체 보관료를 무한히 내야 한다는 현실도 감안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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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이런 것이 합법이라는 사실이 놀랍고 흥미로움 네덜란드처럼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도 엄격한 조건이 붙음 (‘환자의 고통이 참을 수 없어야 하며 개선 가능성이 없어야’ 하는 등) Kahneman의 케이스는 이런 기준에서 상당히 동떨어져 있음 네덜란드 안락사 기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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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도 알츠하이머 등 치매를 이유로 미리 안락사를 준비하는 게 허용되어 마치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절차와 서류를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원하던 대로 진행되지 않고 고통스럽게 삶을 마무리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함 평화롭게 기억 없이 살다 죽는 게 아니라, 훨씬 더 비참한 과정을 겪는 케이스가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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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의료적 자살 허용주에서도 반드시 본인이 약을 스스로 먹어야 하고, ‘정신적으로 온전’하다는 진단이 필요하며, 마지막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이어야 하는 등 조건이 많음 이 때문에 특히 치매 초‧중기 환자들이 스위스를 찾는 경우가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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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에서는 두 명의 의사가 6개월 미만 시한부 진단을 내려야 해당 제도가 가능함 내 어머니 친구분도 암으로 이 절차를 이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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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안락사가 이윤 중심의 산업처럼 운영되는 반면, 네덜란드에서는 주로 불치병 환자에게만 적용됨 흥미롭게도 스위스에선 ‘불법’이지만 실제로는 법의 맹점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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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젊고 여러 조부모의 죽음을 지켜봤는데, 이런 경험을 하면서 점점 안락사에 찬성하게 됨 긴 투병 끝에 스스로 움직일 수 없거나 생활 기능을 잃는 시기가 인생의 가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지 않음 현대 의학이 노인의 생명을 억지로 연장하는 데 집착하는 게 결과적으로 마지막이 훨씬 더 고통스러워진다고 느꼈음 내 친척 중엔 84세에 1년에 5번 수술, 2번 집중치료실에 입원하고 여러 장기 문제가 반복된 경우가 있음 ‘혹시 돈 벌려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임 고대 인도의 풍습인, 마지막에 숲에 들어가 절식하며 생을 마감하는 것도 존엄 있고 신성한 이별이라고 생각함, 오히려 현대 의료는 인간의 마지막을 왜곡하고 존엄성을 빼앗는 면이 있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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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본 WSJ 기사(Daniel Kahneman - WSJ - 원문)의 블로그 복붙임 표현도 어색하고, 배우자의 죽음을 앞뒤 다른 내용과 묘한 맥락에서 다루는 등 원문이 훨씬 뛰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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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해서 참고할 수 있는 무료 논문(PDF, 5쪽)이 있음: Should assisted dying be legalised? 중대한 고통에 직면해 수개월 시한부 환자에게 죽음의 가속을 선택할 권리, 의료인의 역할 변화, 자율성과 동의의 본질, 사회에 미치는 영향, 실현 가능한 모델, 법적·윤리적 프레임워크 내에서의 보완점 등에 대한 2013년 옥스퍼드-케임브리지 의료 찬반 토론 요약임
- 위 논문 인용문: 자신이 몸으로 할 거의 모든 일(극한 스포츠 참여, 성형수술 등)이 허용되는데, 정작 시한부 환자가 마지막 몇 달간의 고통과 존엄 상실을 피할 권리는 없는 게 모순스럽다는 의견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