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P by kunggom 2020-06-04 | favorite | 댓글 1개

2019년 11월, ISS(국제우주정거장)의 실험실에서 Astrileux라는 회사가 개발한 EUV(극자외선) 대역의 빛을 위한 광학 코팅에 관한 실험이 있었습니다. 실험의 목적은 이 광학 코팅이 우주공간의 방사선을 극복한 채 태양에서 나오는 EUV 빛을 문제없이 다룰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실험은 성공이었습니다.

현대의 반도체는 nm(나노미터) 단위의 패턴을 실리콘 웨이퍼에 찍어내는 리소그래피(Lithography) 공정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지금까지 주로 사용되고 있는 리소그래피 방법은 193nm의 빛을 사용하는 포토 리소그래피(Photo-Lithography) 방식인데, 물리적 한계 때문에 일정 수준 이하의 선폭을 가진 반도체는 만들 수가 없습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좀 더 짧은 파장의 빛을 사용해야 하므로, TSMC나 삼성전자 등에서는 13.5nm의 EUV 빛을 사용하는 EUV 리소그래피를 7nm 반도체 공정에 적용하여 이제 막 양산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EUV 리소그래피는 빛이 지나는 모든 경로를 진공으로 유지해야 하는 등 빛을 다루기도 까다롭고 높은 출력의 빛을 만들기도 어려워 그동안 도입이 늦어져 왔습니다.

한편, 근래에 들어 SpaceX와 같은 민간 주도 우주개발이 조금씩 활성화되면서, 지구가 아닌 우주 기반의 생산에 대한 논의도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중력이 비교적 강한 지구에서 우주로 물자를 수송하는 것은 에너지 소모량이 무척 많기 때문에, 가능하면 달과 같은 위성이나 소행성 등 중력이 약한 곳에서 원자재를 현지 조달하는 것이 우주 개발에 크게 유리하기 때문이지요. 위 기사에서 설명한 기술이 발전한다면 미래에는 지구가 아닌 곳에서 채취한 원자재로 초정밀 반도체를 만드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며, 이는 필요한 부품 수급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줄여서 우주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우주 공간은 지구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진공보다도 훨씬 더 완벽에 가까운 진공 상태이며, 모든 파장으로 강력한 빛을 뿜어내는 태양은 지구에서 만들기 까다로운 EUV 빛을 무진장 제공하는 대단한 광원입니다. 이는 우주 방사선 등의 문제만 극복한다면 우주 공간은 반도체 EUV 리소그래피 공정에 알맞은 곳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언젠가는 우주 공간에서 생산한 반도체가 뛰어난 가격 경쟁력을 지니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삼전이 우주에 투자하는 상상을 잠깐 해봤는데... 흥미롭네요. 디스토피아 영화가 떠오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