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P by GN⁺ 18시간전 | ★ favorite | 댓글 1개
  • 에버퀘스트는 1990년대 후반 MMORPG 시장에서 주요 성공 사례로, 약 55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함
  • 이 게임의 탄생 배경에는 Sony Interactive Studios America에서의 비주류 프로젝트와 열정적인 프로듀서 John Smedley의 주도적 역할이 있음
  • 디자인 철학은 단순함과 재미 추구에 집중하여, 플레이어 간 전투(PvP)를 금지함으로써 접근성과 안정성을 높임
  • 눈에 띄는 3D 그래픽과 적극적 온라인 커뮤니티 전략으로 대중의 관심과 상업적 성공을 거둠
  • 높은 몰입도와 장시간 플레이로 인한 사회적 논란도 촉발했으며, 이후 MMORPG 및 디지털 미디어의 중독성 논의로 확장됨

MMORPG 시장에서의 혁신과 에버퀘스트의 등장

  • 1990년대 후반 MMORPG 장르에서 Ultima Online이 개척자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EverQuest가 그 뒤를 잇는 두 번째 주자로서 상업적 대성공을 거둠
  • EverQuest의 등장 배경에는 Sony Interactive Studios America(이후 989 Studios)의 스포츠 게임 중심 기업 문화, 그리고 별도의 온라인 게임 프로젝트에 대한 관리진의 낮은 관심이 있었음
  • John Smedley는 개인적 열정과 온라인 Dungeons & Dragons 경험을 결합해, 소규모 팀과 함께 EverQuest의 기획을 주도함

기획과 팀 구성 과정

  • Smedley는 Brad McQuaidSteve Clover라는 두 개발자를 San Diego 로컬에서 발굴, 이들과 함께 MMORPG 제작에 착수함
  • 이 팀은 처음 6개월간 독립된 오피스에서 게임의 80페이지짜리 세부 디자인 문서를 완성함
  • EverQuest의 설계는 우연적 실험을 중시한 Ultima Online과 달리, 미리 정밀하게 설계된 구조를 특징으로 함

디자인 철학과 기술적 차별성

  • 에버퀘스트는 심오한 사회 구조나 경제 시뮬레이션보다는, 간단명료하고 액션 위주의 재미에 집중하는 방향을 택함
  • 이 게임은 DikuMUD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 접근성 높은 전투 시스템과 관리·운영의 효율성에 중점을 둠
  • 3DO의 Meridian 59의 베타 테스트를 참고해, 3D 1인칭 시점을 도입함으로써 몰입감과 현대적 게임성을 향상시킴

PvE 중점의 설계와 경쟁 게임과의 차별화

  • 초기 Ultima Online은 이상적인 플레이어 주도 사회 구현을 강조했으나, 현실적으로 플레이어 간 살인(Griefing) 문제가 심각했음
  • 에버퀘스트는 이와 달리 PvE(Player vs. Environment) 를 고집하며, 플레이어 간 전투를 금지해 안전하고 친화적인 게임 환경을 조성함
  • 이 결정이 대다수 MMORPG 유저들에게 호응을 얻으면서, 궁극적으로 에버퀘스트의 급성장과 상업적 성공을 견인함

마케팅, 서비스, 성장 과정

  • 에버퀘스트는 전통적인 오프라인 홍보보다, 온라인 커뮤니티, 뉴스그룹, MUD 출신 유저 등을 통한 게릴라 마케팅에 집중함
  • 1999년 3월 공식 출시 후, 초기 하루 1만 명 이상의 등록자를 기록하며 빠르게 성장함
  • 서버 관리에서 일시적 트래픽 문제 발생, 네트워크 인프라 확장 등 운영상의 도전도 있었음
  • 박스 패키지 확장팩을 포함한 유료 콘텐츠와 월 구독 모델로 신규 수익 구조를 구축함

사회적 파급효과 및 논란

  • 높은 몰입도와 장기간의 플레이 시간으로 인해 early 2000년대부터 게임 중독, 현실과의 단절 등 사회적 우려가 대두됨
  • 실제 유저의 사망 사건, 가정 내 문제 등으로 매스미디어 및 사회학자, 교육자, 보건 전문가가 게임의 사회적 영향력을 논의하기 시작함
  • EverQuest의 “엔드리스 게임플레이”, 영속적 진척 시스템은 긍정적 중독성과 함께, 일부 유저에게는 부정적 심리·사회적 영향을 남김

확장과 경쟁, 영향

  • 에버퀘스트는 2005년 기준 55만 명 최고 동시 구독자를 기록했으며, 수차례의 주요 확장팩을 출시함
  • 이후 World of Warcraft의 등장으로 주도권을 내주긴 했으나, MMORPG 장르 대중화와 온라인 상호작용의 표준을 제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함
  • 게임 내 아이템의 현실 거래(eBay 등), MMORPG 내 ‘세컨드 라이프’적 경험 등도 새로운 시장과 사회문화 변화를 유발함

결론 및 주요 시사점

  • 에버퀘스트의 성공은 대규모 온라인 게임의 사업 모델, 기술적 구현, 커뮤니티와 사회적 책임 논의, 게임 중독성 등 현실 세계의 다양한 이슈를 선제적으로 제기하였음
  • 이 게임이 남긴 다면적 유산은 이후의 온라인 게임은 물론, 디지털 미디어 문화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침

참고 문헌 및 자료 출처

  • 본문에는 Matthew S. Smith의 EverQuest, Timothy Rowlands의 Video Game Worlds: Working at Play in the Culture of EverQuest, Edward Castronova의 Synthetic Worlds 등 다수 학술서적 및 컴퓨터 게임 잡지, 온라인 뉴스와 블로그 자료 등이 인용됨
  • 대표적 온라인 기사로는 ShackNews의 “Better Together: Stories of EverQuest”, Massively Overpowered의 “The Game Archaelogist: How DikuMUD Shaped Modern MMOs” 등이 있음
Hacker News 의견
  • 나는 거기 있었던 사람으로서, 처음 급여명세서에는 Verant가 찍혀 있었고 SOE로 넘어가기 직전에 입사한 기억을 갖고 있음. 사람들이 잘 모를 수 있는 사실은, MMO 구독 수익 덕분에 회사 내부에서 여러 실험이 자유롭게 이루어졌다는 점임. 발매되지 않은 MMO RTS 프로젝트도 있었고, 여러 장르를 MMO로 만들어볼 수 있을지 시도해 본 적 있음. 그리고 SWG가 대표적인 예임. 덕분에 EQ2에는 굉장히 독특한 멤버들이 있었음. Ken Perlin이 대사로 얼굴 애니메이션을 동기화하는 립싱크 작업을 했고, Brian Hook은 렌더러 작업에 참여했음. 그 외에도 여러 재능 있는 인재들이 있었음. 우리가 실제로 하지 않은 일도 많았음. JK Rowling과 해리포터 MMO 관련 미팅 때문에 해리포터 시리즈 전권을 정독하기도 했지만, 협상은 결렬됨. 격동의 시기였음. 추가로 기사에 언급된 분들 중 Brad McQuaid와 Kelly Flock 등은 이제 세상에 없음. SOE가 위치했던 Terman Court의 사무실 단지도 이미 오래전에 철거됨. 마지막 날 내 사무실 문에 서서 유칼립투스 나무를 바라보며 이 광경을 다시는 못 볼 거란 사실을 묵상했는데, 정말 그 예감이 맞았음
    • 흥미로운 이야기임. MMORTS 실험까지 했다는 건 몰랐음. 나는 WoW가 성공한 이후 개발됐지만 출시되지 못한 MMORTS 프로젝트의 리드 엔지니어였음. RTS를 MMO로 바꾸는 건 정말 어려운 장르라는 생각임. 관련 영상
    • 나는 EverQuest를 못 해봤지만 SOE의 또 다른 게임에서 추억이 많음. 고등학교 내내 Cosmic Rift에 중독됐었음. 근데 누군가 갑자기 구독제로 바꿔버리는 바람에, 게스트 계정으로 접속해서 체험하는 재미가 없어졌고, 그 결과 커뮤니티도 무너졌으며 결국 게임도 얼마 안 가 사라졌음. 그 뒤로 Cosmic Rift의 전신인 Subspace로 돌아갔고, 그 이후 Kazaa, Skype, Joost로 유명한 PriitK가 커뮤니티와 함께 클라이언트를 새로 개발해서 Continuum이라는 버전으로 나옴. 그 게임을 10년 넘게 플레이했음
    • SWG 베타 당시 정말 멋진 시간을 보냈음. 목표했던 그 거대한 야망이 결국은 게임의 발목을 잡아서 아쉬웠음. 고마움의 마음임
    • EQ 덕분에 게임과 기술의 발전 가능성을 깊이 생각할 수 있었음. 직접적으로 내 게임 인생에 영향을 크게 미친 혁신적인 경험이었음
  • 중요한 소식임. Daybreak가 EverQuest 에뮬레이터 서버인 The Heroes Journey를 상대로 소송 중임. 이 서버가 독특한 방식으로 원작보다 더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임. 서버 운영자들은 커뮤니티에 긍정적인 결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사실이 자신들 쪽에 있다고 믿는다고 밝힘. 자세한 소송 상황은 여기 참고, 에뮬레이터 FAQ는 여기
  • EverQuest를 정말 사랑했음. 내 인생 최고의 게임 추억 중 하나임. 그 당시에 실제 세상에 들어온 느낌, 게임보다 세상이 먼저인 느낌이 유독 강했음. 위험과 경이로움이 가득했고, Qeynos에서 Freeport로 바다를 건너 배를 타는 긴 여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서사적 경험임. 하지만 지금은 게임에 투자할 시간이 없어 예전 느낌을 다시 갖긴 어려울 듯함
    • 그 시절에는 두 번째 모니터로 게임 위키를 켜놓고 자세한 정보나 지도를 찾아볼 수 없었음. 전부 스스로 시행착오와 탐험을 통해 배우거나, 게임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며 알아냈어야 했음. 어떤 던전을 안전하게 통과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러웠음. 애써서 얻은 지식임이 틀림없음. 요즘 그런 경험을 재현하려면 세계가 매번 무작위로 변화해서 기존에 만들어진 모든 가이드가 소용 없게 해야할 텐데, 현실적으로 그 시절 창조적 경험의 창은 닫힌 것 같음
    • Freeport까지의 먼 여정이 내게도 특별한 추억임. 정보도 없고 레벨도 낮은 초보 시절, 낯선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죽을까 두려워했던 기억, 도중에 모든 소지품을 잃고 되찾기 위해 뛰어다녀야 했던 긴장감이 마법 같았음. Mithaniel Marr 서버에서 평범한 인간 팔라딘으로 활동했음. 여러 의견에 공감하며, 1999년 당시 처음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듯한 놀라운 감각이었음. 지금은 이런 마법이 평범해졌기에, 다시는 똑같이 느낄 수 없을 듯함
    • 도시 간 이동이 EQ에서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었음. 다른 부분은 별로였음. 하지만 미리 경로를 공부하고 준비하면 어느 정도 도달할 수 있지만, 항상 위험이 도사리는 도전적인 경험이었음. 이런 여행 중심 게임이 혹시 있을지 궁금함
    • 나는 개인적으로 EQ가 싫었음. UO가 지향하던 진짜 살아있는 세계가 사라진 느낌이었음. 그런데 EQ는 당시 평범한 게이머가 원하는 방향의 게임이었고, UO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흐름이 보였음. 결국 WoW가 그 방식을 완성했다고 생각함. UO가 원했던 모습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건 아쉬움임. 플레이어들이 대부분 두 부류로 나뉘었는데, 어느 쪽도 UO 원래 비전과 맞지 않았고, 결국 한쪽이 다른 쪽을 몰아내며 역사가 결정됨
    • 내 EQ 첫 기억은, 튜토리얼 퀘스트를 마친 뒤 밤길을 뛰다가 사자에게 잡아먹힌 사건임. 아무것도 몰랐지만 알아낼 생각에 푹 빠졌던 기억임
  • 초기 EverQuest에서는 단순한 몬스터조차 강해서 반드시 파티 플레이가 필요했고, 거대한 맵과 던전, 매매도 모두 동굴안에서 직접 외쳐야 했음. 26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향수에 젖어 Project Quarm이나 Project 1999 서버를 켜서 해보지만, 실제로 플레이하는 것보다 추억이 훨씬 더 소중하게 느껴짐. 바쁜 직장과 아이 셋을 둔 지금은, 어떻게 그때 그 긴 시간 게임을 했는지 스스로도 신기함
    • EQ의 루클린 바자회는 지금도 내가 만난 게임 시스템 중 가장 독특하고 멋졌던 것임. 캐릭터를 주차시켜 상점을 개설하고, 직접 돌아다니며 각 상점별로 아이템을 확인할 수 있었음
    • 그 동굴 장터에선 사기도 있었음. 거래창을 닫았다가 똑같은 아이콘의 저급 아이템으로 빠르게 바꿔서 다시 열곤 했음. GM이 뭔가 조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항상 구매 전 아이템을 꼼꼼하게 확인했음
  • 내가 플레이하던 도시에선, 경비병을 위한 퀘스트를 너무 많이 해서 "부패한 경비병" 평판이 망가지고, 결국 그 경비병이 날 보면 즉시 공격했음. 선량한 캐릭터를 플레이하다가, 실제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도시에서 더 이상 플레이를 못하게 됐음. 억울할 법하지만, 이런 독특한 시스템을 본 적도 없고, 다른 어떤 게임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못 했음
    • 부패한 Qeynos 경비병―Qeynos는 SonyEQ를 반대로 쓴 이름임. 특정 종족/직업에 따라 경비병이 적대적으로 변하는데, 깊은 악감정이 쌓이기 쉽고, Plains of Karanas 서쪽 경비탑에 있는 부패 경비를 잡고 뱃지를 정직한 경비에게 넘기면 중간 레벨까지 훌륭한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음. 평판은 저레벨 퀘스트로 천천히 복구도 가능함
    • WoW에서는 Booty Bay에서 유사한 시스템이 있었음. 해적을 죽여 Booty Bay 평판을 올린 다음, 다시 경비병을 잡아 Bloodsail Buccaneers 진영 최고 평판을 달성해야 했음. 2.5배의 명성 노가다는 몇 주가 걸렸고, 다 끝나면 경비병이 바로 공격해서 Booty Bay에 접근조차 못 했음. 우리가 하는 일은 정말 재미있음
  • 대학 4학년 때 EQ를 시작해서 학사 경고로 학교를 그만뒀지만, 최고의 추억임. 새로운 서버에 직접 길드를 만들었고, 서버 전체에서 유명하고 강력한 팀으로 성장시켰음. 대규모 길드를 이끄는 데엔 엄청난 계획과 관리가 필요했고, 거기에 시간과 열정을 쏟았음. 플레이어 참여도와 아이템 분배 공정성을 위해 PHP 3와 MySQL로 최초의 "루팅" 웹 앱 중 하나도 직접 제작했음. World of Warcraft 개발팀의 많은 멤버가 우리 길드 출신임. 기억에 남는 순간들로는, 거의 완성되지 않았던 엔드게임 지역인 Plane of Air에서 깊은 곳까지 들어간 경험, 원래 '킬 불가'였던 Avatar of War를 다수의 인챈터가 경호원을 컨트롤하여 처치하는 방식으로 공략해 성공했던 사건이 있음. 곧바로 패치되어 경호원은 더이상 조종이 불가해짐. 엔드게임 지역의 사망 패널티도 매우 까다로웠음. 열쇠 아이템이 시체에 들어 있어서, 전멸하면 시체를 회수하기까지 몇 시간이 걸렸음
  • EverQuest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주체성을 경험했음. 10대 시절, 공략과 시스템을 연구해서 길드 운영 효율을 높이고, 내가 한 노력이 대규모 조직 전체의 성공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상황이 정말 강렬한 동기부여였음. 어른들이 내 근성과 아이디어를 존중해준 것도 학교에서 못 느꼈던 특별함이었음. 그 정도의 성장 실감은 "진짜" 커리어를 쌓은 후 10년 정도 지나서야 다시 경험했음
  • 네덜란드 10대들이 렘브란트 명화 앞에서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Gijsbert van der Wal의 2014년 사진이 종종 디지털 중독 세대의 상징처럼 쓰이는데, 내 관점에서 그들은 수업이나 현장학습 과제를 하고 있는 모습일 뿐임
    • 뭐든 가능하지만 그 사진이 유독 공감대를 얻는 이유가 있음. 기술과 소셜미디어의 부정적 면을 체감하는 사람들이 많고, 예전의 소박한 시절을 그리워함. 물론 스마트폰의 이점도 크지만, 우리가 그 대가로 무엇을 잃었는지도 충분히 이해함
  • '고블린 엉덩이'가 WoW 스크린샷인 것처럼 보임. EQ에도 비슷한 모델이 있었지만, 저 이미지는 WoW 스타일이 확실함. EQ의 고블린 뒷모습은 여기에서 볼 수 있음
  • 내 커리어의 시작을 EverQuest에 단독으로 돌릴 수 있음. ShowEQ와 eqemu 커뮤니티에서 PHP로 서버 관리 앱을 만들면서 시작해, x86과 C++ 리버스엔지니어링까지 갈고 닦았음. Kelethin의 리프트 구현을 하려다 그랬음. 지금도 새로운 그래픽 API나 게임엔진을 만질 때마다 어김없이 EQ 존 렌더러를 만들고 있음. 내 인생 최고의 게임은 아니었지만, 가장 큰 임팩트를 준 게임임. 또, 커뮤니티가 내실있어서 엄청난 자극을 받았고, 많이 배울 수 있었음. 13살에 "ROT13이 무슨 깨지지 않는 암호야?"라고 채팅하다가, 이후 능숙한 리버스 엔지니어로 성장했던 과거가 생각나서 웃음 지음
    • 나 역시 EverQuest 자동화를 통해 스크립팅이란 개념을 처음 배움. Misty Thicket Picnic 파밍용 경로 자동화 스크립트로 경로 탐색에 기초 지식을 쌓았고, UI 오버레이를 만들어 기본 창을 대체해 봤음. 그리고 해킹 플러그인 디스어셈블을 통해 포인터, 점프, 디스어셈블리를 직접 익힘
    • 나도 mq2 매크로가 13살 인생의 첫 프로그래밍 언어였음
    • ShowEQ를 통해 Linux 배우고 환경설정 경험을 쌓음. 부트 매거진 CD로 Debian 설치하다 PC를 망칠 뻔했던 초창기도 있었음. XFree86 설정 잘못했다가 모니터가 고장날까봐 덜컥 겁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