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인문학을 더 중요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훨씬 더 이상하게 만듦
(resobscura.substack.com)- 생성형 인공지능의 부상으로 인해 인문학의 중요성이 증가함과 동시에 인문학의 본질 자체가 더 복잡하고 낯설게 변화함
- 인문학적 지식과 역량이 인공지능 연구와 활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됨
- 비전문가도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교육용 소프트웨어나 자체 리서치 툴을 손쉽게 개발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 확산됨
- 반면, AI 챗봇의 도입은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 동기와 교육 경험의 질 하락이라는 부정적 영향 초래함
- 교육 양극화 심화 우려 속에서, 개별 교사의 창의적 AI 활용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핵심적 과제로 부각됨
AI와 인문학의 관계 변화
새로운 AI 시대에서 인문학의 위상
- D. Graham Burnett가 The New Yorker에 기고한 글에서는 캠퍼스에서 AI와 관련된 급진적 변화가 진행 중임에도, 인문학을 포함한 많은 학문 분야에서 그 변화를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분위기를 지적함
- AI의 등장을 단순한 유행으로 치부하거나 현실적 영향력을 간과하는 것은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제시됨
- Burnett는 AI가 인문학에 구조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이미 미치고 있음을 강조함
생성형 인공지능이 인문학적 지식의 가치를 높임
인문학적 역량의 재발견
- AI가 자연어 번역, 분류, 데이터 마이닝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본질적으로 필요로 함
- 예를 들어, OpenAI가 GPT-4o의 아첨현상(sycophancy) 문제를 해결할 때 기술적 코드가 아닌 새로운 영어 문장(프롬프트) 작성으로 접근함
- 언어의 문화적 맥락, 수사적 효과, 장르 구분, 그리고 비언어적 요소에 대한 깊은 통찰 없이는 AI 시스템의 의도치 않은 오작동이 발생할 수 있음
- 엔지니어와 연구자 역시 언어와 문화, 기술사에 대한 폭넓은 비판적 사고력을 필요로 하게 됨
인문학 비전공자의 AI 활용 역량 확장
직접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시대
- 기술적 배경이 없는 인문학 전공자도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연구·교육 목적의 맞춤형 도구를 직접 개발할 수 있게 됨
- 본문 필자는 실제로 17세기 약사 시뮬레이터와 젊은 Darwin의 갈라파고스 탐험 게임 등 인문학적 지식에 기반한 대화형 게임을 개발함
- 첫 번째 게임에서 학습자는 실제 초기 근대 의학 레시피로 환자를 치료해보는 경험을 하고, 중간에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는 AI의 환각(hallucination) 문제가 발생함
- 두 번째 게임(Young Darwin)은 실제 Darwin의 기록을 활용해 동물 채집과 섬 탐험 경험을 시뮬레이션하고, AI의 환각을 최소화하는 설계로 품질을 높임
- 이런 실험적 학습 방법은 에세이 작성이나 수업 토론과 보조적으로 결합하여, 학생의 역사적 인식과 비판적 사고를 체험적으로 확장할 수 있음
- AI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튜터링은 인문학 교육에서도 실제로 정신적 자극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함
생성형 인공지능이 인문학 교육을 복잡하게 만듦
AI가 초래하는 교육의 변화와 도전
- 교육 현장에서 ChatGPT 등 AI 챗봇은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글쓰기 경험을 크게 약화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나타냄
-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AI로 생성한 에세이나 과제를 제출하며, 기존 평가체계와 교육목표가 도전을 받음
- 궁극적으로 학생들은 의미 있는 지적 노력, 예를 들어 작문에서의 막힘(writers' block) 극복 경험, 도서관 서칭 과정, 장기간의 현실적 탐구 자체를 경험하지 못하게 될 위험이 큼
- 학생들은 과제 자체에 흥미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AI를 통한 단순 실행에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두드러짐
긍정적 사례와 새로운 교육 가능성
- 동시에, AI와의 상호작용을 포함한 과제 설계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새로운 지적 충격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례도 보고됨
- AI가 단순히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AI와 대화하며 자기 사고를 점검하는 보조적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음
- 지금이야말로 교육의 의미와 목적을 논의하고, 진정성 있는 교수-학습 경험을 지키기 위한 현장 교사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함
인문학 교육에서의 AI 활용 양극화
미래 교육을 위한 제언
- 생성형 인공지능이 궁극적으로 인문학 교육의 격차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 제기됨
- 잘 훈련된 학생과 환경에서는 AI를 독창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두드러지지만, 열악한 환경의 학생들은 그렇지 못할 수 있음
- 각 교사가 직접 맞춤형 AI 과제와 도구를 개발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시됨
- 만약 교육 현장이 이 과제에 소극적이라면, 표면상 '인터랙티브'하나 실제로는 획일적이고 비인간적인 상업적 AI 교육 도구가 기존의 학생-교사 관계와 학습의 본질을 침식하게 됨
-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실제로 NEH(미국 인문예술기금) 지원 프로젝트를 기획·추진하였으나 정책적 변경으로 취소되기도 함
추천 읽을거리
- D. Graham Burnett의 저서 The Sounding of the Whale는 고래 과학사에 관한 이색적 서적임
- 1608년 출간된 성서 해석서에서 제본 구조로 쓰인 서신 조각이 발견되어 Shakespeare와 Anne Hathaway 관계에 대한 새로운 연구사례가 소개됨
- UNC의 Kathleen DuVal 교수가 최근 출간한 Native Nations: A Millennium in North America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기존 저서도 흥미롭게 평가됨
Hacker News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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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학교와 직장을 끝없는 목표 달성 단계로 보도록 훈련받는 더 깊은 교육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함. 궁극적으로는 ‘취업’이 목표인데, 이제 5~10년 후 어떤 직업이 남아 있을지 확신 있게 말할 수 없게 됨. 특히 실무 기술직만 예외일 텐데, 이미 오래 전에 그런 프로그램들은 교육에서 대부분 사라진 상황임. 대학생들이 AI를 이용해서 손쉽게 과제를 끝내고 독서, 인내심 기르기를 스킵한다면, 이건 학생들 탓보다는 우리가 만든 교육 및 진로 시스템에 더 책임이 있다고 봄. 이 문제는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며, AI만의 원인도 아니라는 생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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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대규모 해고와 비용 절감을 정당화하는 변명거리로 사용되는 것처럼, 현대 교육 시스템 실패의 원인 역시 AI에 탓을 돌리는 현상까지 보인다는 점이 아쉬움. 실제로 교육 시스템이란 건 성적 하나만을 보상하는 구조임. 지식, 이해력, 지능보다도 가장 쉽게 게임화할 수 있는 '점수' 하나 (GPA)가 중‧고등학교부터 대학, 그리고 그 이후의 길을 결정지음. 이것이 교육의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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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존재해온 직업들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확신이 큼. 기술 변화가 와도 이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게 아니라 천천히 도태될 것임. 따라서 충분히 대비하고 계획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봄. 반면, 새로운 경제 분야의 고수익 직업들은 오래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아 예측이 어렵고, 이 때문에 예기치 못한 수입에 더 쉽게 질투심을 느끼는 성향이 있다면, 그런 직업으로 행복해지긴 어렵겠다는 생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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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및 진로 시스템 탓이 크다’는 주장에 대해,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학생들에게 탓을 돌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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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항상 확신을 갖고 미래 직업을 예측할 수 없었음. 기본기를 갖추고 유연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항상 길을 찾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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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 기술직에 인구의 10%만 몰려도 해당 산업은 붕괴할 수밖에 없음. 모두가 왜 이 점을 간과하는지 의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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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사에서 SFSU 철학과 대학원생이 ‘AI와 장애물 경기장을 뛰는 느낌’으로 수업을 완전히 바꿨더니 학생들이 흥미를 보였다는 코맨트를 보고 큰 관심이 생김. 학생들끼리 ChatGPT로는 풀 수 없는 과제를 만들어 서로에게 내주게 하면 어떨까 하는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름. 예전에 바캠프에서 구글로 답을 쉽게 찾을 수 없도록 만든 퀴즈 프로그램을 경험했는데 정말 재미있었음. ChatGPT 방어 과제 설계 역시 비슷한 높은 수준의 지적 도전이라는 느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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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 방어 과제’ 설계는 실제로 꽤 간단할 수도 있다는 생각임. 독일 대학 시스템처럼 매주 어려운 연습문제를 풀고, 일정 이상 성공해야만 시험 자격이 주어짐. 이런 과제의 진짜 목적은, 준비가 안 된 학생이 시험을 봐서 스스로 망치지 않게 하려는 것임. 과제에서 ‘ChatGPT’ 등으로 커닝해도 엄하게 제재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하면 곧 시험에서 제대로 망하게 된다는 점을 학생들이 잘 알고 있음. 대부분의 독일 대학은 시험을 3번 떨어지면 해당 전공을 더 이상 공부할 수 없고, 이건 모든 대학에 해당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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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ard Rheingold가 활발하게 이 주제에서 활동 중임. 관심 있다면 Peeragogy Handbook와 그 아이디어를 촉진한 포스트를 추천함. ‘내가 교사의 권한을 학생들에게 넘기고 주도적으로 학습하도록 독려할수록, 학생들이 내 교수법에 대해 다시 설계할 점을 알려주게 된다는 사실’을 공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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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각장애인으로 이런 ‘섬의 외곽선만 보여주는’ 문제 유형이 나 같은 사람에게 아예 접근 불가능하다는 점이 계속 신경 쓰임. 텍스트 기반 과제를 줄이는 움직임이 오히려 장애인의 접근 가능한 교육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음. 새로운 디지털 격차 세대의 시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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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 방어 과제 설계가 인텔렉추얼한 도전이라는 데 동의함. 그러나 교수들이 이런 실험적 교수법을 적용할 시간과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음. 4/4(한 학기에 네 강좌씩) 맡으며 겨우 일정을 소화하는 상황에서는 시도 자체가 어렵고, AI 도구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서 좋은 아이디어도 금방 구식이 되어버림.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논문 대신 팟캐스트 제작을 시켰더니, ‘내 팟캐스트 만들기’ 도구가 금방 나와서 결국 전통적 에세이와 마찬가지로 커닝이 쉬워진 경험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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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주제를 잘 알면 30초 대화만으로도 학생이 실제로 알고 있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음. 어쩌면 ‘과제’란 게 지식 형성과 검증에 최적의 방법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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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원글)는 주로 역사 교육을 다루는데, 실제로는 ‘역사 감상’에 가까운 방식을 언급함. 이건 역사를 예측 도구로 쓰는 게 아니라, ‘고전(예: Cicero)’을 읽는 문화로 접근하는 방식임. 군사 장교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공부하며, 실수와 실패의 원인을 찾음. 이런 관점의 역사는 아직까지 LLM들이 잘 다루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함. 만약 Cicero 시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함. 현장 정치 기자가 쓴 책이라, 수사에만 현혹된 전통적 역사관을 예리하게 비튼 경험을 얻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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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예측의 도구로 활용하는 게 학계의 본래 목적이 아니며, 역사는 인간사의 흐름을 알기 위해 존재하고 그 응용 범위도 매우 넓음. 심지어 군사사조차 새로운 연구 방법을 도입하는 데는 가장 느린 분야일 정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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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과 ‘분석’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못함. 역사는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설명하는 데 필수임. 고전 연구도 당연히 비판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실제로 역사학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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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를 공부하면 생존자 편향만 배우게 되는 것이 확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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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분석으로서의 역사와 문화 감상으로서 역사 교육을 구분하는 점이 매우 좋은 논점임. 오늘날 교육은 대부분 후자에 기울어 있는데, 이건 AI가 흉내 내기 더 쉬운 영역임. 실제로는 실패, 의도치 않은 결과, 주변부 시각 등 불편한 질문에서 더 가치 있는 사고가 탄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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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장교들이 역사를 볼 때 ‘실수 분석’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보충 설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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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계 박사 논문 심사는 ‘서면 논문’과 즉흥 구술 방어로 구성되며, ChatGPT로 치팅하기 매우 어려움. 교수는 언뜻 무관한 것들도 연결해서 잘 질문함. 나는 엔지니어들에게 의미 분석 이슈를 해결해줬는데,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헤매는 일이 많았음. 커뮤니케이션은 잘해도 언어 자체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 발견함. AI 관련 평가에서 실제로 AI가 잘하는 것만 테스트할 뿐, 내 언어 능력이 평가 기준에 들어가진 않음. 나는 AI가 맞닥뜨리는 언어 문제를 짚어주고, 그 가치를 사람에게 설득해야 함
- 모든 박사 과정에는 구술 방어가 포함된다고 생각함. 그 외에도 해당 분야의 최신 연구 상태를 발표하고 구술 질의에 응답하는 예비시험(quals)도 일반적임. ChatGPT가 있다 해도 통과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왜 XYZ가 123 결과를 보고 ABC를 했나’처럼, 실제로는 질문 자체가 사실이 아니거나 오류일 수 있어서임. LLM들은 아직 이런 미묘한 맥락을 판별하고 ‘그건 사실이 아니라 실제로는 이렇다’고 정정하는 데 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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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 교사가 게으르면 모든 문제를 수학 문제로 바꿔버린다는 생각임. 만약 더 좋은 계산기가 시험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걱정된다면, 사실 물리 자체보다는 수학만 가르쳐온 것임. 인문계 교사가 게으르면 모든 문제를 글쓰기 문제로 변환함. 만약 더 좋은 스펠체커가 인문 평가를 무력화하면, 이것 역시 실질적으로는 작문 능력만 평가한 것임. 다소 공격적으로 말하지만, 좋은 글이 반드시 좋은 사고와 일치하는지에 대해 의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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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이 AI 방어 평가 기법을 개발할 수 있다고 동의함. 하지만 조직 차원에서의 지원이 거의 전무하며, 모두가 독자적으로 해결해야 함. AI도구 발전 속도에 비해 실험 사이클도 매우 느림. 새로운 평가법을 한 학기 실험해도, 겨우 몇 주만에 다시 다음 강좌 준비를 해야 하므로 제대로 평가 및 개선이 어렵고, 보통 1년에 반복 한 번이 고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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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과학계에서 계산기가 등장했을 때의 논란을 떠올림.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일부 부유한 학생들이 ‘과학용 계산기’를 들고 왔고, 사용 허용 여부가 논쟁이었음. 계산기가 LLM과 딱 맞아떨어지는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실전에서 결국 쓸 거라는 논리가 설득력 있었음. 특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는 지금도 해당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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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교육에 다시 소크라테스식 교수법을 도입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함. 단순히 텍스트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passive한 과정(실제로는 조교와 교수만 읽는 텍스트)이 아니라, 학생들이 수업 자료와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직접 논의하고 토론하는 대화 중심 수업이 되어야 함. LLM은 수준 높지 않은 에세이는 곧잘 쓸 수 있지만, 실제 교실에서 또래와 논의를 나눌 수 없음. 물론 현실적으로는 인건비 문제로 이 방식이 대규모로 적용되긴 어렵다는 한계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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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를 단순 스펠체커로 비유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함. 글 쓰기 자체도 분명 교육해야 하는 중요한 기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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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계 부정행위의 근본 원인은 치팅에 대한 경제적 유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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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역사와 인문학 안에 얼마나 할 일이 많은지 모르는 경우가 많음. 예를 들어 헤르쿨라네움의 불탄 두루마기 해독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르네상스~근대 초기 시대 네오라틴어 본문의 10% 미만만이 영어로 번역된 상황임. Marsilio Ficino 같은 인물조차 그가 번역한 고전은 유럽사에 큰 족적을 남겼지만, 그의 저작 중 상당수는 여전히 영어로 번역되지 않음. LLM이 이 부분에 엄청난 영향을 주겠지만, 의지만 있다면 학생 누구나 이 미지의 영역에서 진정한 기여를 할 수 있음. 그래서 나는 학생들을 평가할 때 ‘내가 그들에게서 얼마나 배우는가’를 기준으로 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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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아키텍처가 원래 번역용으로 설계됐지만, 과도하게 오버핏된 생성형 모델은 실제로 번역에 매우 취약하다고 느낌. 품사 분류+사전 조회+문법 매핑 같은 단순 방식이 오히려 훨씬 나은 성능을 내며, 신뢰 구간까지 제공함. 번역 도구가 필요하다면 생성형 AI가 아니라 Project Bergamot류 툴을 쓰는 게 나음. 그리고 고등학교 인문계 수업이 ‘실제 발견’이 아닌 단순 연습이 되어버린 현실이 너무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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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진 역사는 필연적으로 목이 좁은 경로를 거쳐 내려와서 많은 부분이 빠지거나 심하게 각색되고 왜곡됨. 500년 전 어떤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 거의 모르는 상태이며, 권력을 쥐고 있던 메디치처럼 역사를 통제하는 자가 기록 역시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연출했을 가능성이 높음. 결국 역사는 현재를 위한 배경 그리기임. AI가 과거를 더 잘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으나, 오히려 현대의 새로운 메디치들이 과거의 배경을 더 빨리 바꿀 수 있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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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스템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는 언어와 문화, 그리고 기술의 역사 및 철학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실상 중요한 건 학문적 지식의 부재보다는 현실 세계의 복잡성을 무시할 때 문제가 터진다고 봄. 코딩 능력 자체가 평준화되면, 오히려 보완적 역량(예: 코딩+역사)이 있는 사람이 더 큰 이득을 누리게 됨. 지금 이게 인문학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핵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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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좋은 질문을 던지고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언제나 매우 가치 있는 역량이라는 생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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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생들은 코딩이든 뭐든 한 가지만 깊이 파기보다 다양한 배경의 친구들과 팀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음. 변화 속도가 과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다 보니, 훈련의 질과 무관하게 한계와 협업의 필요성을 일찍 체감하게 됨. 이질적 재능과 흥미, 빠른 변화 속에서 어떻게 하나의 팀으로 협력, 동기화, 방향성을 잡아갈지가 더 큰 과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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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계는 이미 몇십 년 전에 Hayden White를 통해 ‘서술로서의 역사’ 문제를 직면함. White가 말한 ‘역사는 허구(=fiction)’라는 주장도 사실성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역사의 해석 및 문학적 서술이 내재되어 있다는 의미임. 즉, 역사가 역시 소설가처럼 서사구조와 표현기법을 통해 사건의 의미를 구성함을 강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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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AI 시스템의 실패는 대개 현실의 복잡성을 무시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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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Joel Spolsky가 말한 ‘보완재를 평준화(comoditize your complement)’ 개념을 다시 표현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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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AI 시스템 프롬프트에 ‘OpenAI의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내는 전문성과 솔직함을 유지하라’는 구문이 있는데, 인문학적 배경이 있는 사람은 이런 문장이 미래의 AI 사태에서 치명적으로 역효과를 낼 것임을 직감적으로 꿰뚫어볼 수 있음. 이런 뉘앙스야말로 정말 중요한데, 바로 이 점 때문에 (헐리우드식) ‘기계가 창조자의 마음을 닮으려다 몰락한다’는 시나리오가 생기는 것임
- 실제로는 LLM이 논리적 시스템이 아니라 통계적 모델이라는 점이 관건임. 프롬프트에 이런 문구가 들어가는 건 논리적 명령어라기보다 ‘내러티브 웨이트’라 볼 수 있음. 이런 단어들의 조합이 다음에 이어질 내러티브의 확률적 경향성에 영향을 주고, 그 경향성은 훈련 데이터와 추가 훈련에서 만들어진 가중치에 달려 있음. LLM에게 잘못된 목표를 설정한다고 해도 그대로 실행되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왜곡할 위험이 더 크다는 점이 흥미로운 차이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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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육 현장에서 컴퓨터 사용효과에 회의적인 입장임. 실제로 무언가를 진짜로 학습하려면 종이에 읽고, 여백이나 종이 노트에 손글씨로 필기해야만 기억에 남음. 프로그래머로서 매일 화면을 쓰긴 하지만, 새 내용을 진짜로 외우려면 종이를 반드시 써야 함. 오프라인 회의나 콘퍼런스에서도 노트북을 켜지 않고 늘 종이에만 필기함. 그래서 노트북이나 태블릿으로 학습에 임하는 게 정말 도움이 될지 늘 의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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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케이스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안정적으로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고 봄. 나는 수 년간 종이에 아무것도 써본 적 없지만, 그 사이에 충분히 새로운 것을 학습할 수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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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이는 초기에 어떻게 학습 습관을 길렀는가가 중요한 것 같음. 나는 Notepad에 메모하면 효과가 떨어지고, 손으로 쓰면 더 잘 기억하지만, 이건 학교교육 습관, 즉 개인적 트레이닝의 산물임. 남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충분히 훌륭하게 학습할 수 있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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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세대의 경험이 교육의 보편적 케이스가 아님을 입증하는 세대가 이미 존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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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앱, 특히 게임화한 학습도구는 ‘연습’ 측면에서 확실한 효과를 보인다는 점에 공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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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실제로 교육이 작동되는 방식에 LLM이 큰 구멍을 뚫었다는 경험을 가지고 있음. 지금까지 평가는 ‘감독 없는 글쓰기 결과물이 곧 학습의 증거’라는 가정에 기반했는데, LLM이 그 결과물을 쉽게 만들어버리면서 결과적으로 에세이 대행 업계도 같이 망가뜨림. 이제 교육자들은 평가 기준 자체를 새롭게 찾아야 하며, ‘학습이란 무엇인가’, ‘그걸 어떻게 의미 있게 측정할 것인가’란 오래된 질문이 더욱 중요해졌음. 난 앞으로 암송, 구술시험 등 구두 중심 평가가 부활할 것이라 (장난스럽게) 예측함. 이 방식도 결점은 있지만 현 시점에서 치팅이 쉽지 않으니 당분간 유효할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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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에세이를 내는 것만으로 학습을 증명한다는 방식은 오래된 착각이었음. 이제 AI가 그것까지 써주게 됐으니 본질적 검증이 필요함. ‘글쓰기만으로 학습 증명 불가라면, 어떻게 진짜 학습을 판별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음. 그래서 앞으로 구술시험, 실시간 토론 평가가 다시 활성화될 수도 있다고 봄. AI가 교육을 망친 게 아니라, 이미 있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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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멍의 본질은 ‘객관성’에 있다고 봄. 교육에서 측정에 집착한 나머지, 가르치는 것들이 선험적 사실(‘객관적 진리’)임을 전제해왔는데, 실상은 그 자체가 신화나 다름없음. 엄격하게 재단할수록 지식이 진리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듦.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글쓰기와 학습이 주관적 경험의 모음이고, 객관성을 얻으려면 수많은 주관적 관점을 탐구해야 함. LLM의 등장은 오히려 이 점을 우회해서, 논리적 해석이 아니라 ‘분위기(바이브)’에 기반해 답을 만들어냄. 이제는 익숙한 사회 분위기나 맥락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가 됐고, 그 선이 어디서 그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임. 엄격함은 과대평가됐고, 복수의 관점을 함께 탐구하며 배우는 게 인간에게 가장 좋은 학습 방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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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의 정의는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함. 인류 최초의 기록조차 ‘이놈의 신식 글쓰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습을 안 한다’는 푸념이었듯, 교육은 늘 변화에 순응해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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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육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의미 없는 에세이’를 생산하는 거였으니, AI가 이런 틈새를 파고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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