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쓰기
(paulgraham.com)- 좋은 글은 문장이 잘 흐르거나 올바른 아이디어를 담거나, 혹은 그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함
- 문장 소리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과정이 아이디어의 정확도와 깊이를 동시에 향상시킴
- 글을 수정하면서 생기는 제약이 내용을 나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끎
- 리듬감 있는 문장 구성은 아이디어의 본질에 맞닿아 있어, 읽기 쉽고 검토하기 좋은 글이 됨
- 내용과 표현의 일치성이 높을수록 정합성과 진실성도 높아지며, 둘은 결국 하나로 연결됨
Good Writing
두 가지 좋은 글의 기준
- 좋은 글이란 소리가 좋은 문장과 올바른 아이디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질 수 있음
- 얼핏 보면 이 둘은 자동차의 속도와 색처럼 무관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밀접한 관련이 있음
- 문장을 더 듣기 좋게 고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더 명확해지고 설득력 있게 다듬어짐
좋은 문장을 만들며 아이디어를 다듬는 과정
- 나는 책 레이아웃 작업 중, 문장을 페이지에 맞추기 위해 줄이는 작업을 하다가 오히려 글이 더 좋아지는 경험을 자주 함
- 이는 우연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어떤 제약 속에서도 조금 더 좋은 형태로 정돈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임
- 상자 속 물체를 흔들어 더 빽빽이 정렬되는 원리처럼, 문장을 다듬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도 정제됨
읽기 쉬운 글 = 아이디어를 검토하기 쉬운 글
- 문장이 자연스럽게 흐르면 읽기 부담이 줄어듦
- 이로 인해 글쓴이 자신이 글을 반복해서 읽으며 오류를 찾아내기 쉬워짐
- 글을 쓸 때보다 읽고 다시 고치는 시간이 훨씬 많기 때문에, 읽기 쉬운 글은 더 나은 글로 연결됨
리듬감과 생각의 구조
- 좋은 글은 대체로 리듬이 좋음
- 음악처럼 규칙적인 리듬은 아니고, 생각의 구조에 맞춘 자연스러운 흐름을 가짐
- 짧은 문장은 단순한 생각을, 긴 문장은 복잡한 생각을 표현하는 데 적합
- 생각이 가지처럼 퍼지기 때문에 글은 직선 구조에서 이를 표현하려 애쓰며, 리듬이 그 정렬의 단서가 됨
좋은 소리는 진실함과 연결됨
- 글이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선 생각이 정돈되어 있어야 하므로, 내부 정합성이 높아짐
- 거짓을 아름답게 쓰려면 거짓을 거의 믿는 수준으로 몰입해야 가능, 결국 사실처럼 보이게 설계된 허구일 뿐
- 반면 어색하고 정리가 안 된 글은 아이디어 자체도 정리가 안 되었을 가능성이 높음
글쓰기의 목적과 그 한계
-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쓰는 글에만 이 원리가 적용됨
- 이미 존재하는 실험이나 창작 결과를 단순히 설명하는 글에서는 이 상관관계가 약함
- 따라서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글쓰기에서만 좋은 소리와 좋은 내용이 깊게 연결됨
결론
- 어설프게 쓰인 글은 아이디어의 질도 낮을 확률이 높음
- 문장 소리와 아이디어의 정합성은 분리된 두 축이 아닌, 하나의 밧줄 같은 구조
- 막대(rod)가 아니라 로프(rope)처럼 여러 부분이 얽혀 있는 구조임
- 한쪽을 당기면 다른 쪽도 따라 움직이듯, 표현을 다듬으면 생각도 다듬어짐
- 좋은 글쓰기란 표현과 내용이 함께 정제된 상태를 뜻함
각주
- 중간에 새로운 내용을 삽입하려고 할 때 글의 흐름이 깨질 수 있음. 이는 사고의 구조(트리 형태)와 글의 구조(선형성)에서 비롯된 문제임. 그럴 땐 종종 주석으로 보완함
- 과도한 외부 제약(예: 음절 수 강제 등)은 오히려 글과 아이디어를 망칠 수 있음
- 글을 고치는 과정에서 반복 문제 등 어색한 부분이 실제로 아이디어의 문제와 연결돼 있음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음
Hacker News 의견
- 나는 스타일이 콘텐츠를 더 올바르게 만드는 것이 PG가 믿는 방식(예: 문장 길이를 짧게 쓰는 것)에 있다고 보지 않음, 오히려 더 풍부한 스타일(짧지도 않고, 과하게 화려하지도 않은,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 스타일)이 덜 뻔한 사고방식을 반영하며 더 많은 신호를 전달함을 믿음<br>예를 들어 이탈리아 작가 Giuseppe Pontiggia가 노벨문학상이 해마다 Borges에게 돌아가지 않은 것에 대해 쓴 글에서 “매년 스웨덴 아카데미는 두 개의 상을 수여하는데, 하나는 수상자에게, 다른 하나는 Borges에게는 수여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사용한 사례를 들 수 있음<br>이런 스타일은 단순히 "올해도 Borges가 받지 못했다"를 넘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드러냄<br>PG의 글은 대부분 내용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직접 몇 편 번역해보니 스타일이 허약한 느낌, 즉 요점을 잘 전달하지만 단순한 구조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가 있음<br>Pontiggia 같은 경지의 스타일은 이 글의 프로세스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작가만이 접근할 수 있는 매우 다른 과정임
- Douglas Adams 작품에서 “우주선들은 하늘에 벽돌이 떠 있지 않은 방식과 아주 비슷하게 떠 있었지요”라는 문장과 유사점을 느낌<br>이런 식으로 농담을 어렵게 풀어내면, 독자가 더 오래 기억하고 스스로 똑똑하다고 느끼게 만듦<br>Paul의 매끄러운 스타일은 개념 전달에는 도움이 되지만, 기억에 남는 임팩트는 적어지는 것 같음
- 나는 PG의 스타일을 '역보라색 수사(inverse purple prose)'로 묘사함<br>과하게 단순화된 문장이 오히려 내용보다 더 강조되어 산만함 유발<br>최소한의 단어 수만을 중요시하는 단순 접근은 오히려 인지적 부담을 늘리는 느낌, 우리의 두뇌는 일정 수준의 균형 잡힌 복잡함에 익숙해져 있음
- 반대로 해석할 여지도 있음<br>즉 “멋진 글이 참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어설픈 글은 아이디어 자체도 잘못된 경우가 많다” 같음<br>이 부분은 영화 Palombella Rossa에서 나온 “나쁘게 말하는 자, 나쁘게 생각하고, 나쁘게 산다. 말은 중요하다!”와 유사함<br>이탈리안 예시가 많아서 국제적인 청중에겐 아마 다소 생소할 수 있음
- 원문 인용문을 찾고 싶다면, 이 블로그에서 일부분을 미리보기로 소개한다고 함<br>아마 2009년 6월 21일자 'Il sole 24 ore' 신문에 실린 내용일 수 있음
- 많은 괄호를 글에 집어넣으면 객관적으로 글이 나빠짐
- Paul Graham은 문장도 별로고, 아이디어도 허접하다고 생각함<br>좋은 문장이나 제대로 된 아이디어 둘 다에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이런 주제를 논할 자격이 없다고 봄
- 몇 시간 전 다른 곳에서 이 포럼이 너무 냉소적이고 씁쓸해졌다고 불평하셨던 걸 기억함
- 엔드노트가 나무 구조의 아이디어를 선형 에세이로 풀어내는 도구로서 의미 있다는 부분에 공감함<br>David Foster Wallace가 매우 많은 엔드노트와 함께 집요하게 아이디어를 다듬어내는 걸 연상시킴<br>PG의 주장에 일부 동의하지만, 훌륭한 엔지니어들 중에는 탁월한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생각을 잘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음<br>즉, 실제로는 그들이 만든 결과물로 옳음이 입증되지만, 글로 표현하면 어색해지는 경우가 존재함<br>JFK의 추도 연설은 듣기에는 멋지지만, 감동이 사라지면 핵심 메시지가 남지 않아 금세 잊혀지는 유려한 말임<br>JFK 연설 영상과 비교해, DFW의 ‘This Is Water’는 언어적 아름다움은 덜해도 진실성이 더 크게 다가옴<br>PG의 아이디어는 구어체 연설과 맞지 않는 느낌, '진실 = 아름다움' 공식에 대한 반례로 소개하고 싶음
- 나무 구조의 아이디어가 선형 텍스트 에세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고 생각해서, 확장에 엔드노트가 꼭 필요하다는 주장엔 동의 못함<br>각 단락의 첫 문장이 주제를 담고, 이후 세부적으로 확장해가는 구조가 에세이의 기본임<br>주석(footnote)은 주요 논지와 무관한 정보를 보충하거나 추가 읽기 자료로 안내할 때에만 좋은 쓰임이 있음<br>주요 논지 확장의 수단으로 주석을 쓴다면, 본문에 포함시키거나 아예 빼는 것이 좋음
- 나는 만약 Graham이 부자가 아니었다면 아무도 그의 글을 읽거나 칭찬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는 부류임<br>심지어 맞춤법 검사기도 돌렸으면 좋았겠음
- 그는 처음 글을 쓸 때는 그렇게 부자가 아니었을 거임<br>또 다른 부자들도 글을 쓰지만, 아무도 그런 글들은 읽지 않음
- 여기서 핵심은 반복적 글쓰기가 문장력뿐 아니라 아이디어의 핵심까지 함께 발전시킨다는 점임<br>잘 쓰려면 반복적인 편집과 피드백이 필수임<br>이 두 가지가 의외로 밀접하게 연결됨<br>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PG 에세이는 평소답지 않게 난해했고, 더 간결했어도 됐을 것 같음
- "잘 들리는 글이 더 옳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에, 만약 그의 얘기가 외관상의 그럴듯함(verisimilitude)을 얘기한다면 어느 정도 맞다고 봄<br>하지만 철학적으로 보면, 많은 독재자들이 달변가였지만 메시지는끔찍했음<br>수많은 소설 중에 문장이 아름답다고 해서 실제로 더 진실하다 말할 수 없음<br>Paul이 진지하게 진실을 찾으려 노력하는 건 존경스럽지만, 이 에세이에서는 진실의 '모양'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임<br>좋은 글이 진실에 가까워 보이게 만드는 건 맞지만, 본질적인 진실과 직접적 연결은 아니고, 아이디어의 전달 방식과 더 관련됨
- 독재자들이 잘 들렸지만 메시지는 끔찍했다는 지적에, 끔찍하다고 해서 사실이 아닌 건 아님<br>끔찍한 사람들 중 일부는 진실을 악의적으로 사용하기도 함
- '끔찍하다'는 표현이 메시지 전달력의 부족을 의미하지 않음<br>좋은 글쓰기의 목적은 결국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임
- 레이아웃 작업 중 한 줄 넘치는 단락이 생기면, 나는 보통 문장을 줄여 그 한 줄을 없애곤 했음<br>이런 제약이 오히려 글을 더 낫게 만든다는 현상은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임<br>출판 편집에서는 'Widows, Orphans, Runts'라는 용어가 있음 (위키)<br>결국 시각적으로 보기 좋아진 글이 더 읽기 편해짐<br>“작가는 첫 번째 독자다”라는 말도 재즈 뮤지션 Winton Marsalis가 “음악은 항상 청자를 위한 것이지만, 그 첫 번째 청자는 연주자 자신”이라고 한 것과 닮아 흥미로움 (영상)<br>“좋은 글이 참일 수 있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서투른 글은 내용도 잘못된 경우가 많음”<br>내가 아쉬웠던 점은, 글 앞부분에 이 견해에 대한 반론이 마지막에 가서야 명확해지는데, 처음부터 밝혀줬으면 더 깊이 공감했을 것 같음<br>처음엔 미끼 같고, 읽고 나면 약간 낚인 기분임
- 솔직히 말해 12권의 책을 썼지만 과부, 고아 타입세팅 문제는 거의 못 겪음<br>좋은 조판 프로그램(예: LaTeX, Typst)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 일임
- “잘 들리는 글이 더 옳을 가능성이 크다”는 믿음은, 요즘 사실과 거짓이 뒤섞인 시대엔 위험한 생각임<br>AI가 만들어내는 그럴듯한 허위 정보가 점점 늘어나는 현실 때문임
- rhyme-as-reason 효과를 떠올리게 함<br>운율이 맞으면 이유도 그럴싸하게 느껴지는 인지적 편향
- Marx가 Proudhon을 두고 “프랑스에선 좋은 철학자라서 경제학을 못해도 되고, 독일에선 뛰어난 경제학자라서 철학을 못해도 된다”라고 한 인용문을 들며, Paul이 테크 업계에선 위대한 사상가로 평판이 있지만 그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듦
- 이 글은 너무 많은 점에서 틀려서 거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질 정도임<br>중앙 주장(self-defense) 하나하나가 오히려 그 반례가 되고 있음<br>예를 들어, 30년 농사를 지은 바보가 농사 노하우를 글로 쓴다고 생각해 보자면, 문장력은 떨어져도 내용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음<br>즉, 서툰 글로도 사실을 전달하는 건 충분히 가능함<br>그저 멍청하면 멍청하게 쓸 뿐임
- PG가 원래 추구하는 것이 뭔지 생각해야 함<br>겉으론 '올바른 아이디어'나 '좋은 흐름'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설득력’ 즉, 대중을 겨냥한 효과적인 수사임<br>간단한 메시지가 복잡한 메시지보다 대중에게 먹히는 것처럼, ‘좋은 글쓰기’란 독자에게 뭔가를 제공하는 글이어야지 일방적으로 요구만 해서는 안됨
- “올바르지 않으면 멋지게 들릴 수 없다”는 주장은 LLM 시대의 현실과 맞지 않음<br>AI는 자신감 있게 틀린 정보를 넘치게 생산함<br>이 글 자체도 AI 시대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함<br>좋은 글쓰기가 평준화된 세상, 아직도 좋은 아이디어 자체는 살아있지만, 아이디어의 표현이 부족하다면 LLM과의 협업이 반복적인 자기편집보다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질 것임<br>자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글쓰기(예: 저널링)라면 본문의 논리가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