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Xiv의 내부 이야기 - 과학을 뒤바꾼 가장 혁신적인 플랫폼
(wired.com)- arXiv는 1991년 Paul Ginsparg가 만든 오픈 액세스 과학 논문 저장소로, 지금도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플랫폼 중 하나로 사용됨
- 기존의 느리고 비싼 학술 출판 구조를 우회하여, 연구자들이 심사 전(preprint) 논문을 즉시 공유할 수 있도록 하여 과학 협업과 혁신에 기여함
- arXiv는 단순한 자동화 스크립트에서 출발했지만, 현재는 월간 2만 건 이상의 논문 제출과 500만 명의 이용자를 갖춘 거대한 플랫폼으로 성장
- 초기에는 비공식적이고 가볍게 운영되었으나, 이후 운영 코드 복잡성, 내부 갈등, 기술 노후화 등의 문제를 겪으며 수차례 위기를 넘김
- 현재는 Simons Foundation의 지원과 새 리더십 아래 클라우드 이전 및 Python 코드 리팩토링이 진행 중이며, 여전히 Ginsparg는 품질 필터링 문제에 몰두 중
arXiv의 기원과 과학 출판 구조에 대한 도전
- 물리학자 Paul Ginsparg는 The Godfather 의 대사를 인용하며 자신이 만든 플랫폼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 없는 심정을 표현함
“Just when I thought I was out, they pull me back in!”
“이제 겨우 빠져나왔다 싶었는데, 또다시 끌려 들어갔어!” - 그는 Cornell University의 교수이자 MacArthur Genius Grant 수상자로, 35년 전 동료 평가 전(preprint) 논문을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 저장소인 arXiv를 개발함
- 현재도 arXiv.org는 고전적인 웹 1.0 스타일의 디자인과 Cornell의 상징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 단순한 외형과 달리 arXiv는 과학 지식 유통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 플랫폼임
- arXiv가 중단된다면,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심각한 업무 차질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실제로 많은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이 arXiv에 매일 접속함
“Everybody in math and physics uses it. I scan it every night.” — Scott Aaronson
“수학과 물리학 분야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용하고 있어요. 저는 매일 밤 훑어봐요.”
arXiv의 역할과 학술 출판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
-
사회 각 분야에는 고질적인 문제 구조가 존재하며, 학계에서는 출판 시스템의 불합리성이 대표적 문제로 지적됨
-
대형 출판사인 Elsevier, Springer 등의 영리 모델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비판받음:
- 저자에게 무보수 논문 작성 요구
- 다른 연구자가 무료로 편집을 수행하는 구조
- 완성된 논문은 고가에 판매되며, 기관은 높은 구독료를 부담
“Calling their practice a form of thuggery isn’t so much an insult as an economic observation.”
“이들의 방식이 폭력이라고 부르는 건 모욕이 아니라 경제적 사실이에요.” -
전통적인 동료 평가(peer review) 는 수개월에서 1년까지 소요되며, 이 느린 과정이 정보 유통의 병목으로 작용함
-
반면, arXiv는 논문 심사 이전 단계(preprint) 에서 누구나 즉시 공개하고 접근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출판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함
-
arXiv의 핵심 혁신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요약 가능함:
“Showing that you could divorce the actual transmission of your results from the process of refereeing.” — Paul Fendley
“연구 결과의 전달과 동료 평가 과정을 분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죠.” -
이러한 구조는 COVID-19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의미 있는 과학적 발견을 신속하게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함
- arXiv에서 영감을 받은 bioRxiv, medRxiv 등이 생명과학 분야로 확장되었으며,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한 가능성도 제기됨
arXiv의 품질 관리 구조
- arXiv에 제출되는 논문은 공식적인 peer review를 거치지 않지만, 분야별 전문가들의 자발적 검토를 통해 기본적인 학문적 기준과 규정을 유지함
- 주요 품질 관리 요소:
- 원본 연구만 허용
- 조작된 데이터 금지
- 중립적인 표현 사용
- 또한, 제출 논문은 자동화된 시스템을 통한 기초 검수도 진행됨
- 이러한 검증 절차 없이는 arXiv가 사이비 과학 또는 비전문가 제출물로 넘쳐날 위험이 있음
arXiv의 영향력과 Ginsparg의 현재 모습
- 2021년, 학술지 Nature는 arXiv를 “10 computer codes that transformed science” 중 하나로 선정함
“10 computer codes that transformed science”
“과학을 변화시킨 10대 컴퓨터 코드” - arXiv의 과학 협업 촉진 역할이 높이 평가받았으며, 현재는
- 260만 편 이상의 논문 보유
- 매달 2만 건의 신규 제출
- 월간 사용자 수 500만 명 기록
- 21세기 주요 과학적 발견 다수가 arXiv를 통해 최초 공개되었으며, 그 예시로는
- 현대 AI 붐을 일으킨 “transformers” 논문
- 밀레니엄 난제 중 하나인 푸앵카레 추측의 해법 등이 있음
- arXiv에 올라온 논문이 후속적으로 권위 있는 저널에 실리는 경우도 많음, 하지만 arXiv에 공개된 순간부터 누구나 접근 가능하다는 점이 핵심 장점으로 작용함
“Just because a paper is posted on arXiv doesn’t mean it won’t appear in a prestigious journal someday.”
“arXiv에 논문이 올라왔다고 해서, 나중에 권위 있는 저널에 실리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arXiv의 내부 현실과 지속 가능성 문제
- 과학자들에게 arXiv는 공공 도서관이나 GPS처럼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인식되지만, 실제 arXiv 운영은 마찰 없는 이상적 플랫폼과는 거리가 있음
- arXiv는 그동안 다음과 같은 문제에 직면해 왔음:
- 관료적 갈등
- 노후화된 코드
- 스파이 사건까지 발생
- Ginsparg는 이 현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함
“A child I sent off to college but who keeps coming back to camp out in my living room, behaving badly.”
“대학에 보낸 자식이 자꾸 집에 돌아와 거실에 눌러앉아 말썽을 부리는 꼴이에요.” - 인터뷰 요청을 FAQ로 돌리거나 직접 방문을 만류하는 등, Ginsparg는 여전히 arXiv와의 거리두기 시도를 이어가고 있음
Ginsparg의 성격, 취향,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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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haca(Cornell 소재지)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Ginsparg는
- 유쾌하고 장난기 많은 성격
- 동시에 제한 없이 자신의 철학을 관철하는 완고함을 가짐
- 그의 예전 상사였던 Geoffrey West의 표현에 따르면
“Quite a character, infamous in the community, extremely funny, a great guy.”
“상당히 개성 있는 사람이고, 커뮤니티에서 유명하죠. 굉장히 웃기고, 멋진 사람이에요.” - Ginsparg 자신은 arXiv 관련 기사를 평가절하하며 말함
“So many articles, so few insights.”
“기사야 많지만, 통찰은 적어요.” - 현재 69세인 그는 사이클링과 등산을 즐기는 활동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으며, 복장은 늘 편안한 여행자 스타일임
Ginsparg의 사무실과 최근 관심사
- Cornell 물리학과의 사무실은 “지저분하다”기보다, 오래된 물건들이 정지된 시간 속에 놓인 듯한 분위기를 가짐
- 90년대 택배 상자, 오래된 잡지, CRT 모니터, 백악관 초대장 등 존재
-
Stephen Wolfram이 보낸 책에는 유쾌한 메모가 있음
“Since you can’t find it on arXiv :)”
“arXiv에서 찾을 수 없을 테니 :)”
- 유일하게 활발히 사용되는 것은 양자 측정 이론 관련 수식이 가득한 칠판
- 사무실 외에서도 그는 건물 구조, 직원 동선, 매년 날아드는 새의 종류까지 세세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 관찰력을 보임
- AI 논문 급증과 함께 증가한 저품질 논문 문제에 대해 우려하며, 이를 걸러낼 수 있는 “holy grail crackpot filter” 를 개발 중
“The holy grail crackpot filter.”
“궁극의 사이비 논문 필터” - arXiv의 질 관리를 위해 지금도 스스로 하드 드라이브를 복구하면서까지 언어 모델을 실험 중임
- 이 같은 행동은 arXiv의 품질 유지 책임감을 스스로 느끼는 태도로 해석 가능
arXiv의 탄생과 초기 역사
- arXiv는 원래 과학 인프라가 아닌, Ginsparg의 NeXT 머신에서 돌아가던 단순한 셸 스크립트 모음이었으며, 1991년 6월, 콜로라도 학회에서의 계기를 통해 만들어지게 되었음
- 당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포닥이자 물리학 프리프린트 메일링 리스트를 운영하던 Joanne Cohn이 “물리학 논문을 공유할 중앙 시스템이 없다”는 문제를 언급함
- 소속이나 인맥에 따라 메일링 리스트 접근 여부가 갈렸고, 논문 공개까지 수개월이 소요되는 비효율성 존재
- 어떤 물리학자가 “여행 중 이메일 논문이 너무 많아 저장 공간이 가득 찬다”는 우스갯소리를 하자, Ginsparg는 자동화된 논문 배포 시스템의 필요성을 인지함
- Cohn에게 “자동화 생각은 안 해봤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Go ahead and do it yourself.”
“그럼 네가 한번 해봐.”
- Cohn에게 “자동화 생각은 안 해봤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 이튿날 Ginsparg는 실제로 스크립트를 짜서 완성했고,
“My recollection is that the next day he’d come up with the scripts and seemed pretty happy about having done it so quickly.”
“제 기억엔 그가 바로 다음날 스크립트를 만들었고, 그렇게 빨리 만든 걸 무척 즐거워했어요.” — Joanne Cohn
Ginsparg의 시대적 위치와 arXiv의 기술 진화
- Ginsparg는 종종 인터넷 시대의 포레스트 검프로 비유되며,
- Harvard 재학 당시 Bill Gates, Steve Ballmer와 동급생이었고
- 형은 Stanford에서 AI 선구자 Terry Winograd와 공부했으며
- 두 사람 모두 Arpanet 이메일 계정 보유, 이는 당시로선 매우 드문 일이었음
- Cornell에서 이론물리학 박사 학위 취득 후 Harvard에서 교수직을 시작했으나, 종신재직권 거절로 Los Alamos로 이직함
- 이곳에서는 고에너지 이론물리학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과 운동 중심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지역 조건이 있었음
웹 이전의 arXiv 시스템과 웹 기반으로의 진화
- arXiv는 초창기 웹사이트가 아닌 이메일 자동 응답 서버였고, 몇 달 뒤 FTP 서버도 함께 운영되었음
- 이후 Ginsparg는 “World Wide Web”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듣고 처음에는
“I can’t really pay attention to every single fad.”
“모든 유행에 다 관심을 가질 순 없잖아요.”
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1993년 Mosaic 브라우저의 등장을 계기로 흥미를 느껴 웹 인터페이스를 직접 구축함
- 이후 Ginsparg는 “World Wide Web”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듣고 처음에는
- 그는 CERN의 Tim Berners-Lee와도 교류했으며, 그를 “검정참치를 잘 굽는 프로그래머”로 기억함
“Tim grilled excellent swordfish at his home in the French countryside.”
“Tim은 프랑스 시골 자기 집에서 검정참치를 기가 막히게 구워줬죠.”
이름의 유래와 코드베이스 정비
- 1994년, 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자금 지원을 받아 초기 셸 스크립트를 보다 안정적인 Perl 코드로 리팩토링하기 위해 두 명의 개발자를 채용함
- Mark Doyle: 후에 American Physical Society의 CIO가 됨
- Rob Hartill: IMDb 프로젝트 병행 중이었으며, 이후 Apache Software Foundation에서도 활동
- arXiv의 초기 주소는
xxx.lanl.gov
였는데, “xxx”에 지금의 의미는 없었으며, 이후 아내와 함께 “더 나은 이름”을 고민하다 그리스 문자 chi(χ)를 활용해 ‘arXiv’로 결정“She wrote it down and crossed out the e to make it more symmetric around the X.”
“아내가 적어보더니 ‘e’를 지우고 ‘X’를 중심으로 대칭적으로 만들었어요.” - 초기에는 별도의 조직도 없이 개발자 1~2명, 관리자는 대부분 지인 및 동료들이 맡았으며, 연간 100건 정도의 논문을 예상했지만 초기부터 월 100건으로 시작해 급성장함
커뮤니티의 급속한 확장과 arXiv의 정착
- Ginsparg의 말에 따르면,
“Day one, something happened, day two something happened, day three, Ed Witten posted a paper. That was when the entire community joined.”
“첫날 뭔가가 일어났고, 둘째 날도 마찬가지였고, 셋째 날 Ed Witten이 논문을 올렸죠. 그때 전 커뮤니티가 합류했어요.” -
Edward Witten은 현대 최고의 이론물리학자이자 “살아있는 가장 똑똑한 사람”으로 불리며, 그 역시 다음과 같이 언급함
“The arXiv enabled much more rapid worldwide communication among physicists.”
“arXiv는 전 세계 물리학자 간의 소통을 훨씬 빠르게 해줬어요.” - 이후 수학, 컴퓨터 과학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었으며, Ginsparg 본인도
“It was fun.”
“재미있었어요.”
라며 arXiv 초기 개발 경험을 회상함
arXiv의 확장과 갈등의 시작
- arXiv의 사용량이 급증함에 따라 대형 소프트웨어 시스템들이 겪는 확장성과 운영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특히 서버 속도 저하와 모더레이션 부담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음
- 예를 들어, “stanford.edu”로부터의 트래픽 폭주로 인한 서버 과부하 사건이 있었으며, 이는 훗날 Google을 만든 Sergey Brin과 Larry Page가 arXiv를 웹 크롤링하던 시기였음
“Years later, when Ginsparg visited Google HQ, both Brin and Page personally apologized to him for the incident.”
“몇 년 후 Ginsparg가 Google 본사를 방문했을 때, Brin과 Page는 직접 그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 예를 들어, “stanford.edu”로부터의 트래픽 폭주로 인한 서버 과부하 사건이 있었으며, 이는 훗날 Google을 만든 Sergey Brin과 Larry Page가 arXiv를 웹 크롤링하던 시기였음
arXiv의 생존 전략과 출판 업계로부터의 독립성 확보
- arXiv가 살아남은 가장 큰 이유는 전통적 학술 출판의 기득권 구조로부터의 공격을 피한 점에 있으며, 이는 초기부터 사용자가 제출 시 “arXiv가 해당 논문을 비독점적으로 영구 배포할 수 있다”는 조항에 동의하게 한 전략 덕분임
- 이 조항 덕분에 논문이 다른 저널에 출판되더라도 arXiv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게 되었으며, 거대 출판사들이 폐쇄를 시도할 유인을 제거함
Los Alamos에서의 이탈과 Cornell로의 복귀
- arXiv가 과학계에 점점 더 중요한 인프라로 자리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Los Alamos 연구소 내부에서는 arXiv 프로젝트를 크게 지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연구소보다 영향력이 커진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음
- Ginsparg는 당시를
“dreamlike and heavenly” “꿈결 같고 천상의 시기”
- 라고 표현했지만, 1999년 Wen Ho Lee 간첩 사건 이후 연구소 내 분위기가 급변하면서 보안 강화 조치와 심리적 피로 누적으로 이직을 결심하게 됨
- 당시 성과 평가에서 “a strictly average performer with no particular computer skills”
→ “평균 수준의 성과자이며, 특별한 컴퓨터 기술은 없다”는 혹평을 받았고, 갓 태어난 딸과 교육 환경 문제도 이직 이유 중 하나였음
- 당시 성과 평가에서 “a strictly average performer with no particular computer skills”
- Ginsparg는 당시를
- 결국 Ginsparg는 모교인 Cornell로 복귀하면서 arXiv도 함께 옮겨졌고, 그는 “최대 5년 안에 arXiv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함
“They disseminate material to academics, so that seemed like a natural fit.”
“도서관은 학술 자료를 배포하니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였다.”
도서관 내에서의 운영 충돌
- 하지만 Cornell 도서관은 arXiv의 기술적 복잡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제출 로직 하나만 해도 수많은 예외 처리가 요구되는 구조였기에, 단순한 자료 저장 시스템으로 취급한 것이 문제였음
- Ginsparg와 초기 멤버들은 도서관 측이 arXiv를 일종의 사후적 덤으로 여겼다고 느꼈고, 반대로 도서관 측은 Ginsparg가 지나치게 직접 개입한다는 인상을 받았음
“Good lower-level manager … but his sense of management didn’t scale.”
“좋은 실무형 관리자이지만, 관리 역량이 대규모 운영에 적합하지 않았다.” - 2000년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arXiv는 안정적인 개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운영되었음
Ginsparg의 철학과 운영 방식에 대한 비판
- Ginsparg는 여전히 자신이 직접 코드 리뷰를 하고 오류를 찾아내는 실무 중심의 개발자 성향을 유지했으며, 외부 강연이나 고위 자문 역할에는 냉소적 태도를 보임
“Larry Summers spending one day a week consulting for some hedge fund—it’s just unseemly.”
“Larry Summers가 일주일에 하루씩 헤지펀드 자문을 한다는 건 보기 좋지 않다.” - 그러나 오랫동안 계속 관여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으며, arXiv는 점점 규모가 커졌고
“bigger than all of us” — Stephanie Orphan (arXiv 프로그램 디렉터)
“우리 모두보다 커진 존재”
라는 인식이 공유되기 시작함 -
지적설계론 물리학자의 소송, 표절 논란, 모더레이터 권한 남용 비판 등 다양한 논쟁이 불거졌으며
- 특히 2009년에는 독립 물리학자 Philip Gibbs가 arXiv의 반대 플랫폼 viXra를 창설함
- 이는 “arXiv의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는 거의 무규제 플랫폼”으로, 괴상한 이론이나 아마추어 논문들이 주로 등록됨
- 대표적 예시로는 “π는 거짓이다”는 논문(링크)이 있음
- 특히 2009년에는 독립 물리학자 Philip Gibbs가 arXiv의 반대 플랫폼 viXra를 창설함
코드베이스 관리 문제와 개발 관행의 충돌
- arXiv는 점점 더 대규모 코드베이스로 성장했으며, 초기 구조는 유지보수성과 테스트를 고려하지 않은 방식으로 구성되었기에
- “안전점검 없는 건물 공사”와 유사한 구조적 문제 발생
- 이는 빠른 초기 개발은 가능했지만 장기적 기술 부채와 복잡도 증가를 야기함
- Ginsparg는 여전히 도서관 측의 승인 없이 직접 코드 검토 및 수정에 개입했고, 이로 인해
“micromanaging and sowing distrust”
“지나친 개입과 불신 조성”
이라는 비판을 받게 됨
은퇴 시도와 잔류, 그리고 내부 갈등의 고조
- 2011년 arXiv의 20주년을 맞이한 Ginsparg는 은퇴 결심을 굳히고, Nature에 “ArXiv at 20”이라는 제목의 작별 인사를 게재함
“For me, the repository was supposed to be a three-hour tour, not a life sentence.”
“내게 arXiv는 세 시간짜리 여행이었지, 평생형은 아니었다.”
“ArXiv was originally conceived to be fully automated, so as not to scuttle my research career.”
“arXiv는 내 연구 경력을 해치지 않도록 완전 자동화를 목표로 설계되었다.”
“But daily administrative activities associated with running it can consume hours of every weekday, year-round without holiday.”
“하지만 arXiv 운영에 따른 행정 업무는 평일마다 수 시간을 소모하고, 연중무휴로 이어졌다.” - 이후 일상적인 운영은 Cornell 도서관에 이관되고, Ginsparg는 자문 위원으로 물러날 계획이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음
- 일부 직원들은 Ginsparg가 코드를 “인질처럼 붙잡고 있다” 며 GitHub나 내부 공유를 거부한다고 비판했으며,
- 그는 과거 하루 만에 구현하던 기능이 이제는 몇 주나 걸린다는 점에 대한 좌절감을 표현함
“I learned Fortran in the 1960s, and real programmers didn’t document.”
“나는 1960년대에 Fortran을 배웠고, 진짜 프로그래머는 문서화를 하지 않았다.”
(→ 질문자에게 심장마비급 충격을 안긴 답변으로 묘사됨)
경영 혼선과 구조 개편
- arXiv는 기술 문제에 더해 관리적 혼란도 겪었으며,
- 2019년에는 Cornell 내에서 arXiv의 소속 부서가 컴퓨팅 및 정보과학부로 이관되었지만 몇 달 후 다시 변경됨
- 이후에는 상업 학술 출판 경험을 가진 인사가 운영 책임자로 부임했지만, 1년 반 만에 퇴임함
“There was disruption … it was not a good period.”
“혼란이 있었고,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 arXiv 내부자
- 전환점은 2022년, Simons 재단의 지원으로 개발 인력을 대거 확보하고,
- Cornell의 Ramin Zabih 교수가 운영 책임자로 임명되며,
- 클라우드 이전과 Python 기반 코드 리팩터링 작업이 본격화됨
개인적 면모와 성찰
- Ginsparg는 기자와의 인터뷰 도중에도 아들의 자전거를 정비해주고, 자전거 여행 중 상대의 체력에 대해 놀림을 주는 등 장난기 있는 태도를 유지함
- 마지막 오르막에서 그는
“I might’ve oversold this to you.”
“내가 이 코스를 과대평가했을지도 모르겠네.”
라며 피곤함을 인정함
- 마지막 오르막에서 그는
- 여러 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기자는 그의 끈기와 완고함에 arXiv의 생존 이유가 있다고 언급했고, 이에 대해 Ginsparg는 뜻밖의 반응을 보임
“One person’s tenacity is another person’s terrorism.”
“누군가에겐 끈기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테러리즘일 수도 있다.” - 그는 이어
“I’ve heard that the staff occasionally felt terrorized.”
“직원들이 가끔은 공포감을 느꼈다고 들었다.”
라고 인정함
arXiv의 현재와 미래
- 현재 arXiv는 여전히 극적인 운영을 이어가고 있으며,
- 2023년에는 상온 초전도체 발견을 주장한 논문이 빠르게 반박되었고, 이는 arXiv의 빠른 피드백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음
- 반대로, 정상적인 논문이 “선동적 표현”이나 “비전문적 언어”를 이유로 철회되는 사례도 있어 “검열” 논란도 있음
- 대표 사례: h-index 창시자 Jorge Hirsch의 논문 철회 사건
- 반대로, 정상적인 논문이 “선동적 표현”이나 “비전문적 언어”를 이유로 철회되는 사례도 있어 “검열” 논란도 있음
Ginsparg의 현재 태도와 애착
- 그는 스스로를 “오픈 사이언스의 선구자”로 포장하는 것에 거리를 두며, 거창한 미션보다는 아이디어 실험의 장으로서 arXiv를 즐기고 있음
“There are various aspects of this that remain incredibly entertaining.”
“이 프로젝트에는 여전히 매우 재미있는 부분들이 있다.”
“I have the perfect platform for testing ideas and playing with them.”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놀 수 있는 완벽한 플랫폼이 있다.” - 비록 arXiv 운영 코드에는 더 이상 손대지 않지만, 여전히 ‘가짜 논문 필터’를 개발하는 개인 프로젝트에 몰두 중임
“It’s like that Al Pacino quote: They keep bringing me back.”
“그 Al Pacino 대사처럼, 계속 나를 다시 끌어들이는 거야.”
“But Al Pacino also developed a real taste for killing people.”
“하지만 Al Pacino는 결국 사람 죽이는 데 맛을 들였지.”
(→ arXiv에 대한 애증과 스스로의 집착을 유머로 표현한 것)
Hacker News 의견
- 90년대에 "xxx"라는 표현이 오늘날의 의미를 가지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님
- 이 글은 공공재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미시적 사례로, 약간의 우울한 분위기를 가짐
- 작은 서비스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를 유지하기 위한 도움을 받기 어려움
- 서비스가 커지면 주목받게 되고, 이를 다른 목적으로 변질시키려는 시도가 생기며, 이로 인해 도움을 받는 것이 어려워짐
- 과학자들에게 arXiv 없는 세상은 공공 도서관 없는 세상과 같음
- Zenodo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으며, 이는 CERN에서 호스팅하고 더 많은 기능을 제공함
- 2021년 Nature 저널은 arXiv를 과학을 변혁시킨 10대 컴퓨터 코드 중 하나로 선정했음
- 이 기사는 유료 벽 뒤에 있으며, 연간 $199로 열람 가능함
- arXiv의 라이선스 중 일부는 비상업적 용도로만 사용 가능함
- 특정 논문의 주 페이지에서 라이선스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음
- arXiv는 .ps, .tex, .pdf 형식의 학술 논문 업로드를 허용함
- 인터넷과 웹은 과학에서 가장 변혁적인 플랫폼임
- arXiv는 컴퓨터 과학 학위가 없는 사람이 프로그래밍 언어를 독자적으로 개발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해 논문을 보류 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