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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시카고에서 AppleCare Dispatch 현장 수리를 맡으며, 데스크톱 Mac 보증 수리가 고객 집 안으로 들어가던 시절의 운영 방식을 보여줌
  • Apple Store 수리 지연, 재수리 실패, VIP 고객, 재택 수리 요청 같은 예외 상황에서 독립 수리점 직원이 부품과 진단 도구를 들고 파견됨
  • 수리 담당자는 Apple Genius와 같은 인증을 갖췄지만 고객 응대 교육은 거의 없었고, 내부 PDF 가이드와 웹 도구, 채팅 지원에 기대어 문제를 처리함
  • 차 없이 시카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해 2시간 방문 창 안에 도착하고, 집 안에서 Mac을 분해·수리·진단한 뒤 고장 부품을 Apple에 반송하는 방식이었음
  • 제한적인 Apple 감독 아래에서도 고객 만족도, 부품 오주문, 데이터 손실, 부유층 고객의 요구, 현장 안전이 실제 업무의 큰 리스크였음

AppleCare Dispatch라는 방문 수리 업무

  • 2008년 대학 졸업 후 시카고로 이주해 Craigslist로 구직하다가 교외의 Apple Authorized Repair Center에 취업함
    • 주요 자격은 낮은 급여를 받아들이고 본인 도구를 직접 사는 것이었음
    • 연봉은 25,000달러였고 수리 건당 일부 보수가 추가됨
  • 맡은 일은 AppleCare Dispatch였음
    • 데스크톱 Mac 사용자가 특정 지역에 살고 보증 지원을 요청하면 AppleCare가 부품과 현장 수리 인력을 보낼 수 있었음
    • 보통 매우 화난 고객, Apple Store 수리가 잘못된 고객, Apple Store 내부 수리가 밀린 경우, 재택 수리 요청, 중요 고객에게 적용됨
  • 방문 절차는 단순하지만 책임이 컸음
    • FedEx로 받은 부품을 챙겨 고객 집에 감
    • 2시간 방문 창 안에 도착해야 함
    • 고객 집에서 데스크톱 Mac을 분해하고 부품을 교체함
    • 진단을 실행한 뒤 기존 부품을 회수해 Apple에 반송함
  • 차가 없어 대부분 시카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함
    • CTA 카드로 도시 곳곳을 다녔음
    • 현장 수리 보수는 높지 않았고,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 시카고에서 연봉만으로는 여유가 적었음

Apple과 독립 수리점 사이의 느슨한 연결

  • 수리 담당자는 Apple Genius와 같은 인증을 갖췄지만, Genius Bar와 달리 고객 서비스 교육은 받지 않았음
    • 하루 종일 Mac 하드웨어를 고쳤고, 처리 시간 기대치는 빡빡했음
  • Apple은 백엔드 웹 패널과 채팅 클라이언트를 제공함
    • 개인 Apple ID가 웹 도구와 연결됨
    • 도구 이름은 ASX였던 것으로 기억함
    • 부품 주문, Apple 담당자와의 채팅, 문제 에스컬레이션, 추가 지원 요청이 가능했음
  • 부품 주문 구조는 정확한 진단을 압박했음
    • 첫 부품 이후 추가 부품에는 Apple이 낮은 요율을 지급함
    • 수리 담당자들은 최소한의 부품 교체로 문제를 맞히는 데 익숙해짐
  • Apple과의 관계는 가깝지만 불투명했음
    • Apple 내부에서도 이 프로그램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보였고, 주로 고위 AppleCare 지원 인력만 아는 듯했음
    • 수리 품질 감사가 가능했지만 실제로 받은 기억은 없음
    • 고객 만족도가 지급 요율을 사실상 결정해 지각을 피하고 경험을 좋게 만들려 했음
  • 2008~2010년경 시카고에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음
    • 전체가 약 20명 정도였고, 독립 소매점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금방 알게 됨
    • 고객 만족도 수치가 높으면 Apple은 크게 관여하지 않았고, 내부 PDF 수리 가이드와 진단 도구를 제공하는 정도였음
  • Apple Retail이 커지면서 Apple Authorized Service Providers와 Apple의 관계는 더 적대적이고 통제적인 방향으로 바뀜

현장 수리에 쓰던 도구와 진단 방식

  • 처음 2년은 Manhattan Portage 메신저백을 썼지만, 하루 6시간 이상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니며 어깨가 크게 아팠음
  • 드라이버는 Wiha 정밀 드라이버를 선호함
  • 당시 Mac은 FireWire로 부팅할 수 있었고, 현장에서는 FireWire 800 LaCie 드라이브가 표준처럼 쓰였음
    • 여러 OS X 설치 프로그램을 파티션에 넣어 고객의 기존 환경으로 복구할 수 있게 함
    • 부팅 가능한 OS X 설치본도 넣어 진단 소프트웨어를 실행함
  • 현장 도구에는 케이블 고정용 Kapton tape, 검은색 spudger, Universal drive cable도 포함됨
  • 하드디스크 수리는 보통 DiskWarrior로 부팅해 복구를 시도하고, 실패하면 드라이브를 교체하는 흐름이었음
    • DiskWarrior로 부팅이 가능해져도 드라이브를 교체했음
    • 드라이브가 살아 있으면 SATA-USB 어댑터로 데이터를 복사할 수 있었음
    • 데이터가 사라진 고객에게 세금 자료 같은 파일이 없어졌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음

기억에 남은 방문 수리 사례

  • 9/11 음모론 고객의 Mac Pro

    • 초기 출장 중 하나는 개인 주택의 Mac Pro logic board 교체였음
    • Mac Pro logic board 교체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조명이 필요한 수리였음
    • 고객은 9/11이 내부 소행이라는 영상을 틀어놓고 수리 중 계속 보거나 들으라고 요구함
    • 사무실은 문서, 사진, 스크랩이 쌓인 공간이었음
    • Mac Pro 부팅 후 데스크톱에는 고객이 편집한 9/11 관련 영상과 이를 판매하는 웹사이트 자료가 있었음
    • 수리 후 진단을 통과하고 logic board에 일련번호를 옮긴 뒤 떠남
    • 고객은 술을 마시며 대화를 계속하자고 했지만 거절함
  • Lake Shore Drive의 부유층 고객

    • Lake Shore Drive의 고가 건물에 사는 고객도 방문함
    • 도어맨과 직원들은 계약자를 하대하거나 출입을 막을 수 있음을 과시하는 일이 많았음
    • 한 도어맨은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게 하며 메인 엘리베이터는 거주자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용이라고 말함
    • 어느 전문의 부부의 집에서는 iMac의 죽은 하드디스크를 수리함
    • 서재에는 오래된 책과 Picasso 스케치 등 원본으로 보이는 미술품이 있었고, 방 안에 수백만 달러어치 물건이 먼지를 쌓고 있었음
    • 집은 5년 가까이 살았는데도 막 이사 온 듯 상자와 임시 배치가 남아 있었음
    • 냉장고에는 생수, 고가 샴페인, 주스, 과일, 에너지 음료 정도만 있어 “prop fridge” 같은 상태였음
    • 이런 고객들은 수리 담당자를 거의 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음
    • 사람이 있는 방의 불을 끄거나, 수리 담당자를 두고 나가며 보안 시스템을 켠 경우도 있었음
    • 첫 방문 이후 이 부부는 몇 년간 임의의 문제 수리를 위해 다시 불렀지만 이름은 배우지 않은 듯했음
  • HARPO Studio와 Oprah 관련 호출

    • Chicago의 HARPO Studio에서 “high profile” 컴퓨터 수리 호출을 받음
    • Oprah Winfrey Show가 촬영되던 장소였음
    • 유명인 관련 호출은 종종 필자에게 배정됐고, 본인은 그런 호출을 특별히 원하지 않았음
    • 이 수리는 여러 부품이 배정된 점에서 특이했음
    • 당시 Steve Jobs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직원이 수리를 승인하면 일련번호에 특별 코드가 붙어 사실상 제한 없이 부품을 주문할 수 있었다고 함
    • 유명인 케이스에서도 AppleCare가 문제를 없애기 위해 여러 부품을 보내는 일이 있었음
    • iMac의 하드디스크, 화면, 메모리, Wi-Fi를 교체함
    • 알루미늄 iMac은 유리를 흡착컵으로 떼고 LCD를 분리해야 내부 부품에 접근할 수 있었음
    • LCD 먼지는 고객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어 빠르고 깨끗하게 작업해야 했음
    • 화면과 logic board를 잇는 두꺼운 케이블을 끊는 것은 악몽 같은 실수였음
    • Oprah가 방에 들어오자 책상 아래로 숨었고, 이후 사람들에게는 인사할 시간이 없었다고 거짓말함
    • 실제로는 Oprah가 한 일을 떠올리지 못해 긴장했다고 함
    • 빌린 차로 간 주차 구역에는 주차 딱지가 붙었고, 수리 보수 대부분이 벌금과 기름값으로 나감

부유층 주택의 반복 업무와 백업 관리

  • Lincoln Park, Streeterville, Old Town 등 부유한 동네의 brownstone 주택 방문이 많았음
    • 집에는 앞쪽 공용 출입구, 옆쪽 가족 출입구, 뒤쪽 또는 지하 직원 출입구가 있는 경우가 많았음
    • 집 운영은 주로 아내와 개인 비서, 때로는 보모가 조율함
  • 초기 AppleCare 수리 외에도 프린터, 라우터 같은 임의 기술 작업을 맡는 일이 많았음
    • 수리는 빠르게 끝나는 편이라 추가 작업을 크게 꺼리지는 않았음
    • AppleCare 담당자를 괴롭히는 고객에게는 문제를 없애기 위해 현장 인력이 보내지는 것 같았다고 느낌
  • 부유층 대상 소규모 서비스 생태계도 자주 마주침
    • 과외, 가정 요리사, 운전기사, 보안, AV 설치 등 여러 서비스 업체가 드나듦
    • AV 설치 업체와 비공식적으로 퇴근 후 협업해 Apple TV와 Mac Mini를 디지털 미디어 허브로 설치하기도 함
    • 파티 선물용 iPod 200대를 설정하거나 방마다 iPad를 연결하는 일도 있었음
  • iCloud Photos 이전에는 백업을 하지 않아 하드디스크 고장 시 사진과 파일이 영구 손실되는 일이 흔했음
    • 고객들은 Apple에 아는 사람이 있다거나 해고시킬 수 있다고 위협하거나 애원하기도 함
    • 실제로 Apple 쪽에서 필자의 이름이나 개인 정보를 묻지 않아 이런 위협은 힘을 잃었다고 느낌
  • 부유층 Mac 관리 사업에서 Time Machine은 반복 수익원이 됨
    • Time Machine 실패 알림을 확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백업 실패 시 방문 일정을 잡아 고침
    • 저장 공간이 부족해지면 더 큰 드라이브를 구매함
    • 드라이브 도난에 대비해 Time Machine 백업을 암호화된 외부 위치에도 보관함
    • tmnotifier 같은 앱이 Time Machine 실패를 이메일로 알릴 수 있음: https://tmnotifier.com/
  • 로컬 Time Machine을 원격 백업보다 선호함
    • 복원 완료까지 현장에 있어야 하므로 로컬 복원이 더 빠름
    • 가족용 iMac에 임원들의 비밀 회사 문서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어 백업은 반복적으로 암호화해야 함

현장 안전과 부품 반송 문제

  • 학교는 100대 노트북이나 20대 iMac처럼 대량 수리 케이스를 열기도 했음
    • Chicago Public Schools IT 부서는 깨끗한 작업 공간을 마련해줘 대량 수리일을 선호했음
  • 현장 수리 담당자들 사이에서 개인 안전은 자주 나오는 주제였음
    • 필자는 차 없이 다니는 유일한 사람이었음
    • 커뮤니티에서는 강도를 당할지가 아니라 언제 당할지의 문제라는 분위기가 있었음
    • 불안해지면 사무실에 전화하는 척해 자신의 위치를 아는 사람이 있음을 주변에 알렸음
  • 어느 날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의 학교에서 대량 수리를 마치고 밤에 나옴
    • HTC Dream의 Android v1 휴대폰은 통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였음
    • 가방과 iMac 박스에는 고장 부품들이 들어 있었음
  • 버스를 기다리던 중 한 남성이 박스를 요구하며 폭행을 위협함
    • 남성은 박스 안에 iMac이 있다고 생각한 듯했음
    • 필자는 고장 부품이 든 박스를 넘기고 막 도착한 버스로 뛰어감
  • Apple 채팅 담당자는 부품을 운송 중 분실로 처리해 지표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함
    • 경찰에 갈지는 원하면 해도 된다는 반응이었음
    • 몇 주 뒤 Apple에서 작은 Apple 노트북을 우편으로 받았고, 사건과 직접 연결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점이 재미있었다고 느낌

댓글과 토론

Hacker News 의견들
  • 90년대 중반에 이런 일을 했는데, 부자들 집 안을 보는 게 정말 재미있었음
    바퀴 달린 사다리를 타고 다녀야 할 정도로 큰 서재가 있는 집들이었고, 지루해 보이는 주부 몇 명에게 추파도 받았음. 한 미국 여성이 미국에서 가져온 잉크젯 프린터를 변환기에 연결했는데 주파수 변환이 안 되는 장치라 프린터가 마법의 연기를 전부 뿜어냈고, 큰 펜트하우스를 가득 채울 정도였음. 그 일을 계기로 범죄 조직과도 연결됐고, 훔친 하드디스크 수십 GB를 받아 아마 세계 최대급 warez FTP와 Razor 1911 같은 상위 해적판 그룹들의 덤프 사이트를 만들게 됨

    • 불타는 물건 때문에 연기가 차는 방이나 건물에는 절대 들어가면 안 됨
      영화 속 영웅처럼 숨 참고 들어가거나 옷으로 입을 막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 번 숨을 들이마시고 기침하면 곧바로 연기를 폐로 빨아들여 무력화될 수 있음. PVC 같은 물질은 탈 때 염소 가스를 내고, 이는 폐 점액을 염산으로 바꿔버림. 연기 자체도 가연성이 있어서 문을 열면 산소가 들어가고, 산소+연료+열 조합으로 갑자기 엄청난 열이 발생할 수 있음
    • 2000년대에 창문 청소 일을 하며 부자들 집 안에 많이 들어갔고, 그게 일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었음
      다만 경험은 꽤 달랐는데, 그들은 친절했고 중산층 주부들보다 더 인간적으로 대해줬으며, 자기 사양에 맞춰 지은 집을 자랑스러워했음. 대부분 성공한 사업을 일군 사람들이었고, 내가 호기심을 보인 게 그들에게는 기분 좋게 느껴졌거나 젊게 열심히 사는 자신들의 모습을 봤을지도 모름
    • 이런 경험담은 불법복제가 조직범죄와 밀접하다는 반불법복제 단체들의 서사와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임
      처음에는 그 주장이 의심스러웠는데, 이런 사례를 보면 완전히 터무니없지는 않아 보임
    • 2000년대에 비슷한 일을 했고, 남의 삶을 엿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노인들의 컴퓨터에서 강제로 보게 되는 포르노는 정말 별로였음
      특히 “컴퓨터 쓰는 법을 배우겠다”며 옆에서 내가 하는 걸 지켜보려 할 때는 모든 면에서 어색했음
    • 한동안 뉴욕에서 Mac 여러 대를 ISDN 회선으로 인터넷에 연결하는 네트워크 작업을 전문으로 했어서, 무슨 얘기인지 정확히 알겠음
  • 이 글이 좋은 건 그냥 쓰고 싶어서 쓴 글이라는 점임
    좋아요를 받거나, 구독을 유도하거나, 제품을 팔거나, 기술력을 과시하려는 글이 아니라 그냥 공유하려고 쓴 옛날 인터넷 콘텐츠 같음. 그런 목적들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고, 뚜렷한 동기 없이 쓰인 글을 보는 게 신선함

    • 읽으면서 왜 익숙한 느낌인지 생각해보니, 예전의 사내 IT 지원 일과 응급구조 일을 섞어놓은 것 같았음
      매일 동네의 집과 사업장을 돌아다니고 도시 곳곳을 운전하던 게 그리움. 처음 사무직으로 옮겼을 때 지역사회와 단절된 느낌이 컸고, 보수가 비슷하기만 하다면 지금의 원격 시스템 관리자 일을 접고 저자 같은 일을 해볼 생각도 있음
    • 기분이 나아진다면 글 아래에 “이런 이야기가 좋았다면” 같은 문구와 함께 Patreon 링크가 붙어 있다고 상상해도 됨
    • 짧은 일화들이 가볍게 읽기 딱 좋은 길이였고, 한입 크기 간식 같았음
  • 이 글을 보며 그 시절 고객지원 담당자에게 재량이 많았다는 점이 그리워짐
    요즘은 모든 게 대본화되고 지표화돼서 고객센터에 연락하면 빙빙 돌리거나 실효성 없는 해결책만 받기 쉬움. “상급자 연결”조차 대개 권한 없는 다른 담당자에게 넘겨져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정도임. 어릴 때 Mac 메인보드가 고장났고 AppleCare는 보증이 끝났다고 했지만, Sears에서 산 연장 보증 영수증이 있었음. Sears 담당자에게 “학교 과제용 컴퓨터이고 수리비를 낼 돈이 없어서 이 보증을 산 것”이라고 하자, 그 담당자가 나와 AppleCare를 3자 통화로 연결해 처리했고 다음 날 Apple 수리 기사가 왔음. 지금 누군가에게 그 정도 자율성이 있다는 상상 자체가 낯설다

    • 흥미로운 건 비용 관리 담당자들이 얼마나 빠르게 고객지원 담당자의 자율성을 없애고 모든 것을 불투명한 티켓 시스템 뒤에 숨겼는가임
      2010년대에는 직원 500명 정도의 비교적 작은 회사에서도 이런 일이 빠르게 벌어졌음. 처음엔 문제별로 전화할 “담당자들” 목록이 있었는데, 대기업식 MBA 유형의 누군가가 와서 없애버림. 곧 5개의 티켓 대기열이 생기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같은 1~2명이 각 대기열을 지원함. 처리 시간은 나빠지고, 사용자와 지원팀은 더 불행해지고, 티켓 SaaS 비용을 내며, 전체를 운영할 “Global Head Of __” 같은 자리까지 생김. 대신 이제 그 모든 고통을 측정할 수 있게 됨
    • Apple과 몇몇 회사는 지금도 어느 정도 괜찮게 해내는 것 같음
      전화 메뉴를 한참 돌고 이미 해본 해결책을 긴 대본대로 다시 들어야 하지만, 에스컬레이션 사다리를 몇 단계 올라가면 아직도 실제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에게 닿을 수 있음. 그래도 예전과 같지는 않음
    • “학교 과제용 컴퓨터이고 그럴 돈이 없다”는 설명을 해야 하는 대신, 그걸 기본값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음
      컴퓨터 소유와 관련된 많은 상황은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있고 여유 자금이 없는 사람에게 비슷하게 중요함
    • 2011년에 Apple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음
      쌍둥이 중 한 아이의 iMac이 Singapore 서비스 센터에서 해결되지 않았고, 둘의 iMac 화면에는 같은 불량 배치처럼 보이는 세로줄까지 생겼음. 답답해서 Steve Jobs에게 “Singapore의 사후지원이 형편없다”는 긴 이메일을 보냈는데, 다음 날 연락이 왔고 Apple이 두 대를 모두 새 iMac으로 교체해줌. Steve가 직접 읽었는지 비서가 봤는지는 모르지만, APAC 지역 서비스 책임자가 직접 해결을 맡았다는 점이 꽤 놀라웠음
  • 정말 좋은 이야기임
    은퇴한 친구들에게도 이런 글쓰기를 권하고 싶음. 기억나는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짧은 일화 몇 개로 시작하면 됨. 우리가 Cicero는 아니더라도 우리 생애 동안 역사는 크게 바뀌었고, 흥미로운 시대를 거쳐 온 교사, 농부, 정비사, 의사 같은 사람들이 겪은 사회·문화·기술 변화와 인물, 유머, 재난은 미래에 충분히 흥미로울 것임

  • 2004~2006년쯤 대형 소매점의 컴퓨터 수리 데스크에서 일했고, 부업으로도 수리를 많이 했는데 솔직히 부업이 본업보다 돈을 더 벌어줬음
    뉴욕 곳곳을 돌아다니며 대체로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문제를 고쳤고, 수리 후 결제를 회피하려는 사람도 흔했음. 흔한 방식은 돈 대신 마약이나 성관계를 제안하는 것이었고, 그럴 때는 감당 가능한 만큼만 내라고 말한 뒤 최대한 빨리 빠져나오는 게 유일하게 제정신인 대응이었음. 부자나 유명인 고객도 몇 있었고 재미있는 시기였지만, 하루 일을 마친 뒤 긴 지하철을 타고 또 일하러 갔다가 다시 오래 돌아오는 생활에 지쳤음

    • 나도 컴퓨터 가게에서 일하며 고객들에게 따로 고용되곤 했음
      아쉽게도 돈 대신 성관계를 제안받은 적은 없고, 받았다면 받아들였을지도 모름. 마약도 제안받은 적은 없지만 그건 하지 않음
  • 예전에 Apple Certified Technical Consultant였고, 주로 뉴욕의 소규모 사업장을 위한 관리형 서비스 일을 했지만 가끔 사업주나 고위 임원의 집으로 호출되곤 했음
    Hamptons의 거대한 집이나 Upper East Side의 4층 브라운스톤 같은 진짜 큰 집들이었음. 한 번은 AirPort Extreme 여러 대로 구성된 고객 네트워크 문제를 해결하러 갔는데, 그중 하나가 침실 침대 밑에 있었음. 15분쯤 배를 깔고 엎드려 노트북으로 그 망할 장치를 초기화하려다 근처 작은 의자를 보고 끌어와 앉았고, 편해지자 뒷다리 두 개로 기대며 흔들고 있었음. 그때 집주인이 들어와 “필요한 거 있—맙소사 제발 일어나요”라고 했음. 알고 보니 그 의자는 연방 이전 시대, 즉 1700년대 초반 물건이라 내 연봉만큼은 나갈 법했음. 다행히 손상은 없었지만 트라우마로 남았고, 그 집에 다시 수리하러 초대받지는 못함

  •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어느 시점에도 아무도 내 이름이나 정보를 묻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나면 협박은 금세 힘을 잃었다. 익명인 사람을 협박하긴 어렵다”였음

    • 내게는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음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10대 자녀를 감시해달라”는 요청이 폭증했고, 아이 노트북에 사실상 스파이웨어를 설치하거나 초기 MDM 소프트웨어를 iPhone에 넣으려는 식이었음. 이런 일은 늘 불편했는데, 큰 이유 중 하나는 10대들이 나에게 매우 못되게 굴었기 때문임. 한 15세 여자아이가 엄마가 방을 나가자마자 “엄마한테 설정했다고 거짓말하면 500달러 줄게요”라고 했고, 내가 매수될 수 있다고 생각한 데 기분이 상했지만 사실 맞는 말이었음. 나는 500달러를 받고 엄마에게 추적 소프트웨어가 다 설정됐다고 말했음. 엄마가 나중에 확인하고 작동하지 않으면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지만 절대 확인하지 않을 걸 알았고, 다만 그 아이가 납치라도 돼서 내가 저녁 뉴스에 나오는 일만 없길 바랐음. 그달 월세가 좀 부족했으니 어쩔 수 없었음
    • 이 부분은 잘 이해가 안 됨
      그냥 Apple에 전화해서 어떤 계약업자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면 Apple이 기록에서 이름을 찾을 수 있었을 것 같음
  • 글을 잘 씀
    특히 “초기 상사들이 다 그랬듯, 그의 핵심 자질은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이었다”라는 문장만으로도 따로 블로그 글을 읽고 싶어짐

  • 지금은 50살인데, 20대에는 몇 년 동안 대학 도시에서 1인 Mac/PC 수리점으로 생계를 유지했음
    거의 매일 출장 수리를 갔고, 매일 저녁에는 집 작업장에서 맡겨진 기기를 고쳤음. 말도 안 되는 기대를 가진 컴맹 사업주, 난해한 취미를 가진 외로운 중년 남성, 빠듯한 예산으로 세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10년 된 PC를 살리려는 초부자, 몇 년치 데이터를 잃고 “얼마가 들든” 복구하겠다는 작가, 기가바이트 단위 포르노를 가진 신앙심 깊은 아버지, 기본 컴퓨터 지식이 너무 없어서 오히려 감탄하게 만든 대학생들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음. 완전히 추억 여행 같은 글이었음

  •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약 10년간 이런 일을 했고, 글에서 말한 “가구의 일부”가 된다는 표현이 정말 정확함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의식하지 않는지 놀라울 정도였고, 그 부작용으로 오히려 나를 신뢰하게 됨. 인터넷뱅킹 로그인, 이메일, 사적인 대화, 사진까지 전부 보게 됨. 나는 늘 신중했고 나쁜 짓은 하지 않았지만, 성가신 존재처럼 취급받을 때는 정말 그러고 싶어지는 순간도 있었음. 남편이나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되는 경우도 몇 번 있었고, 특히 상대 배우자가 옆에서 자기 파트너가 얼마나 훌륭한지 말하고 있을 때는 처리하기 매우 어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