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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S Steel은 1901년 세계 최대 기업으로 출범해 미국 철강의 60% 이상을 만들었지만, Nippon Steel 인수 발표 전 시가총액은 약 80억 달러에 그쳤고 생산 비중도 12% 까지 낮아짐
  • 초창기 경영진은 가격 인하 경쟁보다 안정적인 고가격과 산업 조율을 택했으며, “Gary Dinners”를 통해 가격 질서 유지를 규모의 경제보다 우선함
  • Universal Beam Mill, 연속 압연, BOF, 연속 주조, 미니밀(minimill) 같은 핵심 기술에서 반복적으로 늦었고, 경쟁사 기술을 라이선스하거나 뒤늦게 도입하는 일이 이어짐
  • 2차대전 이후 미국 철강은 세계 생산의 60% 이상을 차지했지만, 일본과 독일 업체가 새 설비를 빠르게 받아들이면서 1955~1970년 미국 철강 수입은 10배 이상 늘어남
  • 1980년대 이후 대규모 감원과 설비 폐쇄로 효율성은 높아졌지만, 미니밀 전환도 2020년에야 본격화해 기술을 이끄는 선도자보다 추종자에 가까운 궤적을 보임

세계 최대 철강사에서 인수 대상으로

  • US Steel은 일본 철강사 Nippon Steel에 인수될 예정이라는 발표를 계기로, 한때 미국과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기업이었던 회사의 쇠퇴를 돌아볼 사례가 됨
  • 인수 발표 전 시가총액은 약 80억 달러로 Fortune 500에 들기 어려운 규모였고, 순위로는 약 690위에 해당함
  • 1901년 설립 당시에는 미국 철강의 거의 3분의 2를 생산했지만, 현재 비중은 12% 에 머무름
  • 현재 생산량은 1955년의 약 3분의 1 수준이며, 고용 규모는 온라인 반려동물 용품 소매업체 Chewy와 비슷함

과잉설비와 통합의 논리

  • 20세기 전환기 미국 철강 산업은 영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이자 가장 효율적인 산업이 됨
  • Andrew Carnegie의 Carnegie Steel 같은 경쟁자들은 생산능력과 점유율을 키우며 가격을 크게 낮췄고, 1870~1896년 철강 가격은 80% 이상 하락함
  • 철강 생산은 대규모 고정비와 큰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이었음
    • 고로, Bessemer converter, open hearth furnace가 클수록 단위 비용이 낮아짐
    • 수요가 낮아도 설비를 계속 돌리려는 유인이 커져 가격을 한계비용 바로 위까지 낮추는 경쟁이 벌어짐
    • 19세기 말 미국 철강 생산능력의 거의 절반은 매년 사용되지 않았음
  • 1900년 은행가와 산업가들의 만찬에서 Carnegie Steel 사장 Charles Schwab이 합병을 통한 산업 합리화의 이점을 말했고, 4개월도 안 돼 JP Morgan 주도로 대형 통합이 이뤄짐
  • US Steel은 Carnegie Steel, Federal Steel, National Steel, American Sheet Steel, American Hoop 등 여러 회사를 결합해 만들어짐
    • 세계 최초로 가치가 10억 달러를 넘은 회사였음
    • 직원은 16만 8,000명, 연간 생산량은 거의 900만 톤이었음
    • 미국 전체 철강의 60% 이상을 생산함

Gary 체제의 가격 안정과 보수적 문화

  • 초대 경영자인 Elbert Gary는 순환적이고 혼란스러운 철강 산업에 안정성을 가져오려는 보수적 경영자였음
  • Carnegie Steel식 가격 인하 경쟁 대신, 일반적으로 더 높은 가격을 설정하고 철강 수요가 흔들려도 가격을 높게 유지함
  • US Steel은 규모 덕분에 생산비 이점을 얻었지만, 절감분은 소비자 가격 인하보다 높은 이익으로 남겨짐
  • Gary는 정기적인 “Gary Dinners”에서 업계 지도자들을 모아 가격 수준을 합의하게 했고, 협조하지 않는 업체는 다른 업체들에 의해 “discipline”을 받음
  • Carnegie 시절의 치열한 경쟁 문화에 익숙했던 일부 전직 Carnegie 임원들은 이 전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철강사로 떠남
  • Gary는 독점에 적대적인 정치·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회사를 해체하려는 법무부 소송을 막아냄
    • 법원은 Gary Dinners를 US Steel이 가격을 단독으로 정할 힘이 없다는 증거로 보고 독점이 아니라고 판단함

반복된 기술 지연

  • US Steel은 최신 철강 기술 채택에서 지속적으로 뒤처졌고, 더 앞선 경쟁사의 기술을 라이선스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음
  • 초기 US Steel의 정책은 1936년 잡지에서 “No inventions; no innovations”로 요약될 만큼 보수적이었음
  • Universal Beam Mill

    • 1902년 Henry Grey는 Universal Beam Mill을 발명함
    • 기존 I형 빔은 더 넓은 플랜지가 필요할 때 철판을 용접하거나 리벳으로 붙여야 했고, 이 과정은 비싸고 시간이 많이 들었음
    • Universal Mill은 넓은 플랜지 빔을 한 번에 압연할 수 있게 해 추가 철판 부착 공정을 없앰
    • Grey는 먼저 US Steel에 설계를 가져갔지만 재무위원회가 거절함
    • 미국 최초의 Universal Mill은 전 Carnegie 사장 Charles Schwab이 이끌던 Bethlehem Steel이 건설함
    • 건설용 철강 시장에서 점유율이 떨어지자 US Steel은 1926년 Bethlehem으로부터 Universal Mill을 라이선스해야 했음
  • 파이프와 연속 압연

    • 1920년대에는 전기저항 용접으로 대구경 파이프를 만드는 기술이 발명됨
    • 이 기술도 처음에는 US Steel에 제안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회사는 채택하지 않았고, 몇 년 뒤 경쟁사를 따라잡기 위해 도입함
    • 비슷한 시기 넓은 강판을 연속 압연하는 기술이 등장해 생산비를 크게 낮춤
    • US Steel은 1902년부터 연속 강판 압연을 조사했지만 노력을 중단했고, 경쟁력을 유지하려고 다른 곳에서 기술을 라이선스함
  • 거대한 조직의 관리 문제

    • US Steel의 거대한 규모는 관리하기 어렵고 둔한 조직을 만들었음
    • 공장 현장의 정보가 여러 관리 계층을 거쳐 최고경영진까지 올라가는 데 시간이 걸렸고, 다양한 사업장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어려웠음
    • Gary가 만든 보수적 문화와 최고경영진 인재 유출이 겹치며, 더 민첩한 경쟁사에 시장점유율을 잃음
    • 1941년 생산량은 연간 거의 3,000만 톤으로 설립 당시의 세 배였지만, 시장점유율은 60% 이상에서 약 35% 로 하락함

2차대전 이후의 우위와 안일함

  • 2차대전 말 미국 철강 산업은 압도적 지위를 가짐
    • 전쟁 중 미국 철강 생산은 3분의 1 이상 늘어남
    • 다른 주요 국가의 철강 산업은 크게 파괴됨
    • 1945년 미국은 세계 철강의 60% 이상을 생산함
  • 1946년 일본 철강 생산량은 56만 톤으로, 미국의 6,600만 톤에 비해 매우 작았음
  • US Steel은 1950년대 중반에도 미국 철강 생산의 평균 약 30% 를 담당했고, 두 번째로 큰 Bethlehem Steel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철강을 생산함
  • 경쟁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 철강사들은 안일해졌고, 전후 미국 철강 산업은 때때로 “dodo period”로 불림
  • 1947~1957년 철강 가격은 연 7% 상승했고, 회사들은 큰 이익을 누리면서 세계 다른 지역의 진전을 무시함

BOF, 대형 고로, 연속 주조에서 일본에 뒤처짐

  • 전후 미국 철강사들은 새 수요를 맞추기 위해 생산능력을 늘렸지만, 주로 기존 기술인 open hearth furnace를 사용함
  • 1954년 미국 철강 생산능력의 90% 이상은 open hearth furnace였고, 나머지는 전기로와 Bessemer converter였음
  • 염기성 산소로(Basic Oxygen Furnace, BOF)

    • 1952년 Basic Oxygen Furnace(BOF) 가 등장함
    • BOF는 Bessemer converter처럼 철을 빠르게 강철로 바꾸면서도, 질소 취성이나 광석 종류 제한 같은 단점을 줄임
    • 1950년대 말에는 BOF가 open hearth furnace보다 더 싸게 철강을 생산할 수 있음이 분명해졌고, 미국에서는 1958년 이후 새로운 open hearth 기반 일관제철소가 건설되지 않음
    • US Steel은 수명이 남은 비싼 open hearth 설비를 버리기를 꺼렸고, 1962년에도 경영진은 open hearth steel이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함
    • 첫 BOF는 1964년에야 건설했으며, Kaiser Steel 같은 미국 경쟁사보다 늦었음
    • 1964년 Kaiser Steel은 철강의 43% 를 BOF로 생산함
    • 같은 시기 BOF는 미국 철강의 약 17%, 일본 철강의 약 55% 를 생산함
  • 대형 고로와 연속 주조

    • 일본은 더 큰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며 미국보다 훨씬 큰 고로를 운영함
    • 1970년대 중반 Nippon Steel의 평균 고로 크기는 US Steel 평균의 4배였음
    • 1977년 일본 고로의 절반 이상은 부피가 2,000㎥ 를 넘었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고로가 2.6% 에 불과했음
    • US Steel은 Gary Works의 대형 고로 문제를 겪은 뒤, 매우 큰 고로 운영 경험이 더 많던 일본에 도움을 구해야 했음
    • 연속 주조는 개별 잉곳 대신 연속 슬래브를 만들어 압연 필요량을 줄임
    • 미국 기업들이 관련 연구의 상당 부분을 개척했지만, 다른 나라들이 더 빨리 채택함
    • 1975년 미국 철강의 연속 주조 비율은 9% 였고, 일본은 31%, 서독은 24% 였음
    • US Steel은 1990년대 초가 되어서야 연속 주조를 널리 도입함

해외 경쟁과 보호주의 대응

  • 1960년대 초 미국 철강 산업의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함
  • 일본 등 해외 생산자들은 BOF와 연속 주조 같은 최신 기술을 채택했고 산업 규모도 키움
  • US Steel을 포함한 미국 철강사들은 낡은 기술과 높은 노동비용을 안고 해외 생산자와 처음으로 본격 경쟁하게 됨
  • 1958년에는 독일과 일본 일부 철강사가 미국 생산자와 가격 경쟁을 할 수 있었고, 1970년대 중반 일본 철강의 투입 비용은 미국 비용의 거의 절반 수준이 됨
  • 1955~1970년 미국 철강 수입은 10배 이상 증가해, 미국 생산량 대비 2% 미만에서 15% 이상으로 올라감
  • US Steel은 과거처럼 원하는 가격을 정하고 업계가 따라오게 하는 price leadership을 유지할 수 없게 됨
  • 1971년 US Steel은 여전히 미국 최대 철강사였지만, 규모 면에서는 일본 Nippon Steel에 뒤처짐
    • 연간 생산량은 2,700만 톤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1941년보다 적었음
    • 미국 시장점유율은 약 24% 로 내려감
  • 미국 철강업계는 운영 개선보다 “불공정” 해외 무역 관행에 대한 정부 보호를 요구함
  • 1968년 일본과 유럽 철강사들은 Lyndon Johnson 대통령의 요청으로 미국 수출을 인위적으로 제한하기로 합의함
    • 이 조치는 미국 생산자에게 설비 현대화와 운영 개선을 위한 “breathing room”을 주려는 목적이었음
    • 실제로는 미국 철강사의 자본투자가 협정 이후 감소함

철강 위기와 미니밀의 부상

  • 1973년 미국은 1억 3,700만 톤의 철강을 생산해 세계 최대 생산국이었고, US Steel은 매출 기준 미국 13위 기업이자 미국 최대 철강사였음
  • 당시에는 철강 수요가 20세기 대부분처럼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이 널리 퍼져 있었음
  • 1972년 US Steel 회장 Edwin Gott는 1980년까지 세계 철강 수요가 25%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함
  • 실제로 1973~1984년 세계 철강 수요는 거의 정체했고, 산업화 국가에서는 약 25% 감소함
  • 과잉설비를 안은 철강사들은 변동비를 약간 넘는 가격에 해외 시장으로 철강을 팔 유인을 갖게 됨
  • 미국 철강 수입은 전체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1970년대에 계속 증가했고, 해외 철강사에 대한 시장점유율 손실은 거의 모두 US Steel에 집중됨
  • 보호조치의 한계

    • 미국 생산자들은 1974년 Trade Act에 따라 수십 건의 antidumping 사건을 제기함
    • 1978년에는 외국 철강사가 총생산비 아래로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trigger price mechanism”이 도입됨
    • 1984년에는 새로운 자율 수출 제한도 이뤄짐
    • 이런 조치로 철강 수입은 1984년 2,600만 톤에서 1989년 1,700만 톤으로 줄었지만, 미국 내부에서 떠오른 미니밀의 위협은 막지 못함
  • 미니밀의 구조적 차이

    • 기존 철강은 철광석을 고로에서 선철로 만들고, 이를 open hearth나 BOF에서 강철로 바꾸는 대형 일관제철소에서 생산됐음
    • 1960년대 후반 등장한 미니밀은 철광석 대신 고철을 전기로에서 다시 녹여 철강을 만듦
    • 고로를 제거한 미니밀은 일관제철소보다 훨씬 싸게 지을 수 있었고, 생산 톤당 건설비는 적게는 10분의 1 수준이었음
    • 더 작은 규모에서도 수익성 있게 지을 수 있었고, BOF 전환으로 open hearth보다 고철 사용량이 줄어들면서 필요한 고철도 널리 공급됨
    • 초기 미니밀 철강은 구리 같은 불순물 때문에 BOF 철강보다 품질이 낮아 철근처럼 품질 요구가 낮은 제품에 먼저 경쟁력을 가짐
    • 기술이 개선되면서 미니밀은 US Steel 같은 대형 일관제철 업체의 시장을 더 많이 잠식함
    • 1974~1994년 일관제철 업체의 생산능력은 50% 이상 줄었고, 미니밀 생산능력은 360% 증가해 미국 철강 생산능력의 30% 에 도달함

축소와 생존, 그러나 늦은 전환

  • 1980년대 초 US Steel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약 20% 로 떨어졌고, 해외 저비용 철강사와 국내 미니밀보다 효율성이 크게 낮았음
  • 과거에는 규모 덕분에 가장 수익성 높은 철강사 중 하나였지만, 이 시기에는 가장 수익성이 낮은 축에 들어감
  • US Steel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대응함
    • 1979년 17만 1,000명이던 고용은 1995년 2만 1,000명 미만으로 줄어듦
    • 수십 개 공장을 폐쇄함
    • 광산, 창고, 교량 건설 같은 보조 사업을 매각함
    • 미니밀과 경쟁하기 어려운 철근, 중량 구조용 철강 시장을 포기함
    • 미니밀이 여전히 어려움을 겪던 강판 제품에 집중하고, 소수 대형 공장으로 운영을 모음
  • 1985년까지 US Steel은 150개 이상의 시설을 폐쇄했고, 1998년 철강 생산능력은 1973년 정점 대비 71% 감소함
  • 구조조정은 생산성을 크게 높였고, US Steel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일관제철사 중 하나가 됨
  • 다만 가장 효율적인 미니밀의 생산성과는 여전히 맞추기 어려웠음
  • 1998년 수입 철강은 미국 생산량의 37% 에 이르렀고, 2000년 전기로는 미국 생산의 47% 를 차지함
  • US Steel은 많은 경쟁사가 실패한 상황에서도 생존함
    • Kaiser Steel은 18분기 연속 손실 뒤 1983년 문을 닫음
    • 1997~2001년에는 30개 철강사가 파산했고, 오랜 경쟁사 Bethlehem Steel도 포함됨
  • 기술 혁신에서는 여전히 한발 늦었음
    • US Steel은 2020년에 미니밀 회사를 인수하고 Alabama에 자체 미니밀을 건설하면서야 미니밀을 도입함
    • 현재 미니밀은 US Steel 국내 생산량의 약 25% 를 담당함
    • Nucor 같은 회사는 thin slab casting technology에서도 앞섬
  • 미국 철강 산업의 동력은 미니밀 쪽으로 이동했고, 전기로에서 생산되는 미국 철강 비중은 계속 커짐
  • Nucor는 2015년 생산량에서 US Steel을 앞질렀고, 현재 미국 최대 철강 생산자임

선도보다 추종에 가까웠던 기업 문화

  • US Steel은 설립부터 철강 산업의 변동성에 대한 보수적 반응으로 만들어졌고, 이 성격이 초기 운영과 문화에 영향을 줌
  • 회사가 달성한 규모의 경제는 소비자에게 낮은 가격으로 돌아가기보다, 다른 철강사를 압박하고 소비자에게서 더 많은 돈을 얻는 방식으로 사용됨
  •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게 되자, US Steel과 미국 철강업계는 소비자가 저가 해외 철강을 사지 못하게 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함
  • 운영 효율성 개선은 다른 선택지가 거의 없어진 뒤에야 이뤄짐
  • 회사의 큰 규모는 관리상 둔함을 만들었고, 지난 100년의 주요 철강 기술인 연속 압연, BOF, 미니밀 채택에서 모두 늦었음
  • 자체 기술 혁신 시도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함
    • 연속 압연은 너무 일찍 포기함
    • 1950년대에는 다른 생산자들이 포기한 뒤에도 산소를 측면에서 불어넣는 BOF 대안 개발에 여러 해를 씀
    • 1970년대에는 Q-BOP라는 또 다른 BOF 대안을 개발하려 했지만 성공적으로 자리 잡지 못함
  • 지난 세기 주요 철강 기술 가운데 US Steel에서 나온 것은 없음
  • 오늘날 US Steel은 20세기의 산업 거인과 크게 달라졌지만, lean하고 경쟁력 있는 회사가 된 뒤에도 기술 개발과 산업 발전을 이끄는 리더보다는 따라가는 회사에 가까운 문화가 남아 있음

댓글과 토론

Hacker News 의견들
  • 역사와 경제를 볼 때 자주 놓치는 요소가 2차대전 중 일본·독일 산업 기반의 파괴가 끼친 영향이라고 봄
    영국과 미국은 낡은 산업 시스템을 그대로 가진 채 남았고, 일본과 독일의 철강 산업은 주로 미국 자금으로 완전히 다시 태어나야 했음
    두 나라는 과거의 유산이 거의 없어서 가장 현대적인 기술과 과학으로 새로 시작했고, 북미 산업은 1900년대부터 천천히 진화한 반면 독일과 일본은 1950~60년대에 뜨겁게 출발함
    그래서 1970년대에 건설·설계·제조에서 미국과 영국을 앞서기 시작한 현대적 접근에 모두가 감탄한 것도 이상하지 않으며, 중국의 산업 재탄생은 더 늦게 시작됨

    • 흥미로운 서사지만 대체로 사실과 다름. 글에서도 말하듯 US Steel과 미국 철강업계는 충분한 이익을 내고 있었지만, 그 이익을 제강 설비 개선에 재투자하지 않았음
      대신 책임자들은 “big steel”의 상사라는 이유로 큰 보너스와 임금 인상을 챙겼고, 특히 1980~9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많은 산업이 제품 생산보다 임원 보상에 더 집중하게 됨
      대표 사례가 자동차 산업이 “품질 좋은 차 만드는 법을 잊었다”는 것인데, 실제로 잊은 게 아니라 최고위층에 돈을 퍼붓는 데 더 집중하고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덜 집중한 결과였고, 일본 자동차 업체에 시장을 크게 빼앗긴 것도 그 사고방식 변화의 직접 결과였음
    • 영화 The Mouse That Roared가 떠오름. 독일과 일본이 폭격당한 뒤 미국에 의해 재건되는 걸 본 작은 가상 국가가, 미국과 일부러 전쟁을 시작해 패배하자는 훌륭한 개발 계획을 세움
      스포일러를 하자면, 실수로 전쟁에서 이겨버리는 비극을 감당하게 됨. 기억으로는 장군들이 당연히 질 거라고 가정했기 때문에 장군들은 계획을 몰랐던 설정이었음
    • 대형 화재를 겪은 여러 도시, 예컨대 New York이나 Chicago가 격자형 도로망으로 재건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함
      반면 Boston은 큰 화재가 없었고, 오늘날 “여기서는 거기로 갈 수 없다”는 말로 유명함
    • 미국 산업의 미래 해법은 US Steel 폭격인가?
      고속철도 노선을 막는 NIMBY들을 치우는 데도 효과적일지도 모르겠음
    • 독일 산업 기반은 2차대전 뒤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음
      특히 서독에서는 대부분이 여전히 쓸 만했고, 다시 가동하는 데 필요한 재건도 많지 않았음
      Trümmerfrau가 완전한 파괴 속에서 독일을 Wirtschaftswunder로 재건했다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신화임
      덧붙이면 Marshallplan의 효과도 대개 크게 과장되며, 방대한 관료주의 때문에 실제 영향은 비교적 작았음
  • 이 링크를 보니 반가움. 내 경력이 Pittsburgh의 US Steel 데이터센터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 주제가 궁금했음
    다만 이 재구성이 대체로 부정적이고, US Steel이 USX로 진화한 큰 부분을 무시하는 것 같아 아쉬움. Marathon Oil의 참여를 당시 보완적 자산 전략으로 긍정적으로 보든, 이후 매각 역사를 감안해 부정적으로 보든 빠진 게 많음
    내가 일했던 데이터센터에는 수작업 메인프레임 운영 시대에서 PC API의 토큰링 네트워크, 접착 코드 기반 추상화와 자동화로 넘어가는 기술 혁신이 있었음
    사람들이 은퇴하면서 수작업 노동을 최소화했던 과정은 예전 기술 협업자 중 누군가 은퇴 후 책을 쓰지 않는 한 역사책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큼
    Pittsburgh의 US Steel 데이터센터에서 함께 일한 CMU 출신들은 Boston부터 Seattle까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만난 사람들만큼 똑똑했음

    • 전혀 의심하진 않지만, 어떤 종류의 혁신이었는지 궁금함
      전략적이었는지 전술적이었는지, 핵심 역량과 얼마나 가까웠는지, 업계 최초가 얼마나 있었는지, 이익·성장·시장점유율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는지 알고 싶음
      글만 보면 혁신과 투자가 계속 단기 재무 목표에 막힌 것처럼 보임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 많고 변혁적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제대로 성장할 기회를 받지 못했다는 건 쉽게 믿을 수 있음
    • 끝까지 읽고 비슷한 느낌을 받음. 20세기를 보내는 여러 방식 중 US Steel에 묶여 있던 게 꼭 나쁜 선택은 아니었음
      “어찌 보면 Harvard 시스템은 1636년 이후 매일 실망스러웠다…” 같은 식임
    • 기술 혁신이 철강 생산이라는 핵심 목적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모르겠음
      언급한 것들은 실제 사업에서 벗어난 산만한 일이고, 내부에서 만들 게 아니라 사왔어야 함
      아니면 기술 쪽으로 전환하고 제철소는 운영하고 싶어 하는 누군가에게 넘겼어야 했음
  • US Steel이 SF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책을 의뢰해서 미래 참고 그림에 철강이 많이 나오도록 한 적 있지 않았나?
    요청만 하면 무료로 받을 수 있었고, 그 책들이 영화 업계에서 유명해져서 결국 미래 영화의 우주선이나 차량 같은 것들이 늘 강철로 디자인됐던 걸로 기억함

    • 맞음, Syd Mead를 떠올린 것 같음. 여기 그 시리즈가 있음
      https://sydmead.com/category/gallery/us-steel/
    • starship과 cybertruck에 쓰이는 스테인리스강을 누가 공급하는지 궁금해짐
      어쩌면 US Steel이 선견지명이 있었던 셈일 수도 있음
  • Nucor가 미국 철강업계 1위가 된 과정을 보려면 Richard Preston의 “American Steel”(1992)이 좋음
    저자는 Nucor의 첫 연속 박판 주조 미니밀 건설과 가동 현장에 있었음. Nucor는 직접 만들려다 실패한 뒤 독일 회사의 새 실험적 연속 주조기를 사서 그 주변에 공장을 세웠고, 이 설비는 고철을 판재로 바꿀 수 있었음
    “하루 종일 쓰레기통을 찍어낼 수 있다”는 식이었고, 품질이 점차 좋아져 곧 자동차 부품용 철강도 만들게 됨. 이전의 철강 재활용은 자동차가 철근이 되는 식의 저급 철강 생산에 가까웠는데, 이로써 재활용 순환이 닫힘
    선진국의 1인당 사용 중 철강량은 일정 수준에 도달한 듯함. 미국에서 생산되는 철강의 약 69%는 같은 철강이 계속 도는 것이고, 콘크리트 안에 묻힌 저급 철근을 제외하면 비율은 더 높아짐
    아직 새 철강을 만들고 쓰는 곳은 개발도상국이며, 그들은 철강 기반시설이 아직 충분하지 않음
    여기서 “미니밀”은 “1제곱마일보다 작다”는 뜻에 가까움. Nucor의 Crawfordsville 공장[1]도 작지 않음
    US Steel의 Gary Works[2]와 비교해볼 만하며, 100년 된 그 공장은 이제 미국에 남은 거의 마지막 대형 공장임
    US Steel은 어쩐지 이 변화를 놓쳤음
    [1] https://earth.google.com/web/@39.97805108,-86.8271336,264.41...
    [2] https://earth.google.com/web/@41.62932676,-87.36187513,174.7...

    • 아주 좋은 책이지만, 출간된 지 31년이 지나 당시 Nucor 수장 같은 인물 중 일부는 이제 세상을 떠났음
      용강이 든 레들이 떨어지고, 녹은 강철이 물이 고인 낮은 곳으로 흘러 들어간 사고를 묘사한 장은 끔찍함. 사망자가 더 많지 않았던 게 다행임
    • Nucor 본사가 우리 사무실 근처에 있음. 지역 Coca-Cola 병입 업체와 비슷한 크기임
      CEO의 자아를 과시하는 거대한 건물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무실 건물임
    • Gary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https://en.wikipedia.org/wiki/Magnitogorsk
      “1928년 소련 대표단이 Ohio주 Cleveland에 도착해, 미국 컨설팅 회사 Arthur G. McKee와 Magnitogorsk에 US Steel의 Gary 제철소를 복제해 세우는 계획을 논의했다”
  • 철강은 앞으로도 발전 잠재력이 큰 기술임. 핵심어를 꼽자면 공융 용액, 벌크 금속 유리, 붕소강이 있음
    어떤 선진국이든 자국 철강 생산을 외국 손에 넘긴다는 건 미친 일처럼 느껴짐. 내 나라에서는 5년간 기계공으로 일했다는 이유로 전면전 상황에서도 병역 면제가 가능했을 정도임
    US Steel이 혁신하지 못하고 외국 소유가 어쨌든 문제가 아니라면, 이번 변화는 좋은 일일 가능성이 큼. Zaibatsu 체계는 철강이라는 산업과 잘 맞음

    • 미국은 자기 군 복무자들에게 트롤링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음. 미국이 그런 전쟁·군사 고려를 더 이상 실제로 신경 쓰는지 잘 모르겠음
      최근 선박 건조 기간을 본 적 있나?
      소재 쪽은 전적으로 동의함. 다만 기업들이 보통 최적화하는 방향은 그게 아님. 글 자체가 상당히 분명히 보여줌
      US Steel은 독점이 되자마자 독점처럼 행동했고, 혁신은 멈추고 돈 빼내기가 시작됐음. 복종을 명령하는 것이 표준이었고, 모든 경쟁자는 실패할 거라고 스스로 확신했으며, 이미 묻어둔 비용 밖에는 투자하려 하지 않았음
    • US Steel과 미국 내 철강 생산은 같은 게 아님
      회사 이름은 법적 실체의 이름이지, 그 회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아님
    • 철강 생산은 여전히 현지에서 이뤄질 것이고, 상대는 가까운 동맹인 Japan
      전쟁이 난다고 제철소가 증발하는 것도 아님. 만약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일본이 적대적으로 변한다면 국유화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강제하면 됨
      미국에는 Defense Production Act가 있어서, 국방상 필요가 정당화되면 정부가 상황을 바꿀 여지가 충분함
  • 혁신이 정말 핵심 문제였는지는 잘 모르겠음. 이 글은 US Steel이 개발한 합금들을 실제로 다루지 않는데, 합금이야말로 철강을 철강답게 만드는 요소임
    금속에 다른 원소가 아주 작은 비율만 들어가도 강도와 탄성에 극적인 영향을 주는 방식은 늘 흥미로웠음
    US Steel은 더 복잡한 합금도 시도했고, 예를 들어 Corten 강을 개발했음. 가장 큰 사례는 아마 Pittsburgh의 US Steel 빌딩일 것임[1]. 녹이 사실상 보호층으로 작동하는 강철임
    이 글이 보여주는 건 무엇보다 US Steel이 외국 공급업체와 경쟁할 수 없었다는 점임. 미국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노조 중 하나였고 지금도 그런 Steel Workers Union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도 흥미로움
    원인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외국산 철강의 강도 부족을 보완하려고 5% 더 써야 하더라도 가격이 20% 싸다면 더 많이 수입하는 편이 단순히 더 저렴함
    [1] https://en.wikipedia.org/wiki/Weathering_steel

  • 할아버지는 한국전 참전 뒤 30년 동안 금속 작업장에서 일했음
    1970년대에 미국산 철강 품질 문제 때문에 중국산 철강으로 바꿨다고 들은 기억이 있음. 서부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산 원자재를 쓰라는 정치·사회·노조 압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듯함

    • 아마 일본산을 뜻했을 가능성이 큼
      1970년대 중국에는 큰 철강 산업이 없었을 것 같고, 당시 정치 상황을 생각하면 설령 가능했더라도 미국에 수입되긴 어려웠을 것임
    • 권리의 역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함. 부유한 사회에서는 정부에 더 많은 노동자 권리를 요구하게 되고, 이는 관료주의와 노동비용 증가로 이어져 규제가 낮은 제3세계 국가에서 물건을 수입하거나 생산을 외주화하는 쪽이 더 매력적이 될 수 있음
      국가들은 이미 서로 자유지상주의적 상호작용 속에서 움직이고 있음. 이런 세계 경제의 측면이 흥미로움
  • 경영대학원 농담이 떠오름. US Steel은 무엇을 만드는가? 답은 “철강”이 아니라 이고, 그게 모든 회사의 목적이라는 것임

    • 요전 날 많은 기업의 자연스러운 경로는 은행이 되고 결국 카지노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음
      Pokémon이라면 모든 기업의 최종 진화형은 임원들이 투자자 돈으로 도박하는 카지노일 것임
      경제에 놀랄 만큼 잘 들어맞음. Harvard는 학교라기보다 은행에 가깝고, US Steel은 철강이 아니라 돈을 만든다는 농담이 있음
      항공사는 비행기 운항을 피하고 항공 마일리지 은행을 운영하려 하며, Hasbro는 더 이상 장난감이 아니라 돈만 만듦
      오늘 Intel 관련 글에서도 핵심 평은 금융권 출신들이 오래전에 장악했다는 것이었음
    • 사실이긴 하지만 위험한 사고방식임
      철강을 만드는 데 더 집중하고, 기술 발전을 마지못해 끌려가듯 따라가기보다 따라잡으려 했다면 요즘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었을지도 모름
    • 오래전에 General Motors의 어떤 임원이 GM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사업하는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사업한다고 말했다는 글을 읽었음
      당시에는 날카롭게 들렸지만, 이후로는 그게 GM이 길을 잃은 지점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됨
  • 철강 산업에 관심 있고 미국 북동부를 방문하거나 거주한다면 Pennsylvania주 Bethlehem의 National Museum of Industrial History가 좋은 방문지임[0]
    Smithsonian과 연계된 곳이고, 지금은 사라진 Bethlehem Steel 공장의 수리 작업장 중 하나에 자리함
    미국 철강 생산과 여러 산업 기계에 대해 폭넓게 소개하며, 덤으로 대체로 온전하지만 버려진 제철소 부지를 걸어볼 수 있음
    흥미롭게도 Pennsylvania의 그 지역은 비단 생산 중심지이기도 했고, 그 지역에서는 제철소에서 일한 남성보다 비단 생산에 고용된 여성이 더 많았음
    [0] https://www.nmih.org/

  • 미국 철강 생산의 대략 70% 가 이제 고철에서 나옴
    이 변화의 일부는 성장 둔화 때문이었고, 정상 상태라면 거의 모든 철강이 고철에서 나올 수도 있음. 오염물질이 한계가 되겠지만
    앞으로 알루미늄이 더 많은 철강을 대체할 것으로 봄. Tesla와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gigacasting”을 보면 알 수 있음

    • 어떤 용도에 알루미늄이나 재용해 고철을 쓸 수 있는지는 그 용도가 소재에 얼마나 까다로운지에 달려 있음
    • 철강에는 알루미늄에서 얻기 어려운 유용한 성질이 많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
      자신에게 맞는 재료가 뭔지 알려면 금속공학자와 상담하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