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AI를 사용하세요
(shawnsmucker.substack.com)- AI 식단 계획은 빠른 답을 주지만, 요리를 좋아하는 친구와 통화하며 암 진단·외로움·정원 이야기를 듣는 접촉을 줄임
- 캠핑 여행도 AI로 짜면 Pennsylvania의 강과 산길을 아는 친구와 하루 종일 문자하고 늦게 맥주를 마시는 시간이 줄어듦
- 사람에게 직접 묻는 비효율은 술자리, Facebook 친척 이야기, 고친 세탁기의 자부심 같은 삶의 잡음까지 함께 데려옴
- 결혼식 축사나 시를 AI가 완벽하게 만들면, 기저귀·한밤중 수유·걱정의 몸의 기억에서 나온 서툰 부모의 말이 밀려남
- 창작과 애도의 아름다움은 숙련 전의 어색함, 실패, 다른 인간의 목소리, 미묘한 불완전함 속에서 생김
AI가 대신할 때 줄어드는 인간적 접촉
- 식단 계획에 AI를 쓰면 요리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전화하지 않아도 되지만, 길어진 통화 속에서 친구 아버지의 암 진단, 외로움, 봄 정원과 이른 서리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함께 줄어듦
- 캠핑 여행을 AI로 계획하면 Pennsylvania의 강과 산길을 잘 아는 친구와 하루 종일 문자를 주고받거나 늦게 맥주를 마시며 만나는 계기가 사라짐
- 친구에게 직접 묻는 비효율적인 과정은 술에 취해 끝나는 밤, Facebook의 친척 이야기, 직접 고친 세탁기에 대한 자부심 같은 삶의 잡음까지 데려옴
- AI는 필요한 답을 빠르게 주지만, 사람에게 묻는 과정에서 생기는 예상 밖의 대화와 관계의 세부까지 대신하지는 못함
창작과 말의 불완전함
- 자녀의 결혼식에서 AI로 완벽한 축사, 시, 연설, 노래를 만들면 부모가 직접 쓴 서툰 말은 밀려남
- 부모의 말은 기저귀를 갈고, 한밤중에 먹이고, 늦게 귀가한 아이가 죽었을까 봐 울었던 몸의 기억에서 나옴
- 기계의 말은 살아본 적도, 독창적 생각도, 유산이나 관계의 파탄과 회복된 우정의 기쁨도 겪지 않은 말로 대비됨
- 책, 에세이, 예술, 사진 작업에서도 AI는 좋은 프롬프트만 있으면 숙련이나 유능함에 가까워지는 쉬운 길처럼 보임
- 직접 만드는 일에는 시간을 들여 기술을 익히고, 한동안 평범하거나 서툰 상태를 견디며, 마음속 느낌이 페이지에 닿지 않는 실패까지 포함됨
- 장례식 노래마저 부고, Facebook 게시물, 알고리듬의 무작위 인용을 Chat, Gemini, Claude에 넣어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상상되며, 결과는 위생적인 달콤함에 가까워짐
- 인간적인 삶의 아름다움은 더 나을 수 있었다는 갈망, 처음에는 어색하고 고통스러운 가치 있는 일, 다른 인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리고 그 모든 미묘한 불완전함 속에서 발견됨
댓글과 토론
Hacker News 의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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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로 나간 마라톤 티셔츠를 만들 때, 웃긴 문구를 같이 고민하는 대신 ChatGPT에 물어보고 결과 중 하나를 골랐던 순간이 있었음
그 즉시 길을 잃은 느낌이 들었고, 창의성·인간성·무언가에 영혼을 쏟는 시간이 사라진 것 같았음. 고작 티셔츠 문구 하나 때문에 한 시간쯤 실존적 위기 비슷한 걸 겪었고, 새 프로젝트에서도 가끔 공허함을 느낌.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빨리 만들 수 있지만, 독창적인 무언가라면 AI가 만든 결과를 보면서도 “내가 떠올린 것”이라고 느끼기 어렵다- AI 코딩을 실험한 뒤로 성취감이 완전히 사라졌음
직접 코드를 치며 만든 프로젝트는 내가 뭔가를 만들었고 세상에 내놓은 책임이 있다는 느낌이 있는데, AI가 만든 프로젝트를 끝내면 아무 느낌도 없음. “이전엔 없던 코드가 이제 존재하지만, 내가 실제로 한 건 없다”는 공허함만 남음. 내 GitHub 프로젝트가 DMCA로 내려가면 화나겠지만, AI로 만든 저장소라면 그냥 삭제하고 다시는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음 - Suno를 쓸 때는 Claude나 다른 모델로 가사를 만들고, 노래를 생성한 뒤 어색한 부분을 고치다 보면 점점 Claude보다 나다운 노래가 됨
주로 재미로 하지만 꽤 즐겁다. Suno 덕분에 작년 12월 MIDI 키보드도 샀고 실제 DAW도 실험 중임. 원래 음악을 좋아했고 FL Studio로 비트를 만들곤 했는데, 예전의 FL Studio가 그랬듯 AI도 배척받는 분위기가 있음. Suno 커뮤니티 안에서도 AI가 가사를 쓰게 했다고 서로 깎아내리는 걸 보면 이상함. 다만 내가 100% 공감하지 못하는 경험, 예를 들어 gangsta rap처럼 내 삶과 맞지 않는 장르는 만들고 공개하기가 불편함 - 목표에 따라 다름. 친구들과 저녁 내내 웃긴 문구를 떠올리는 게 목적이면 AI를 쓰지 않는 편이 맞고, 마라톤처럼 복잡한 행사를 준비하면서 티셔츠를 빨리 끝내고 다음 일로 넘어가는 게 목적이면 도구를 쓰는 게 맞을 수 있음
AI 도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무심함과 생각 없음이 문제임. 그건 언제나 문제였고, AI가 새로 만든 것도 더 악화시킨 것도 아님 - 휴대폰과 AI를 둘러싼 흐름이 Isaac Asimov 세계관의 “Solarians”를 떠올리게 함: https://asimov.fandom.com/wiki/Solaria
그들은 타인과의 접촉을 싫어하는 인간 종족이었고, 각자 넓은 땅으로 떨어진 사유지에서 살았음. 지금 문화와 사회도 그런 방향으로 계속 밀려가는 듯함. “소셜” 미디어에 글을 쓰지만 실제로는 전혀 사회적이지 않고, 쇼핑몰 한가운데서 자기 의견을 외치는 것에 더 가까움 - 티셔츠에 영혼을 쏟는 끝없는 시간이라니, 본인은 좋았겠지만 팀원들은 그렇게까지 신나 있지 않았던 것 같음. 그걸 AI 탓으로 돌리긴 어려워 보임
시간이 필요함. 이건 기술과 도구 사용 능력의 문제임. AI는 엄청난 창의성을 가능하게 하지만, 아직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일 뿐임. 사회가 적응하고 모두 진정하면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 자유가 생김. 티셔츠라면 직접 그리고 AI로 거친 부분만 다듬거나, 스타일 변환을 하거나, 아예 쓰지 않아도 됨. “내가 다 한다”와 “남에게 맡긴다” 사이에 이제 슬라이더가 생긴 셈이고, 그 지점을 직접 고를 수 있다는 게 멋짐
- AI 코딩을 실험한 뒤로 성취감이 완전히 사라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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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Veritasium의 “What Everyone Gets Wrong About AI and Learning”이 떠오름: https://www.youtube.com/watch?v=0xS68sl2D70
“세상에는 무거운 물건이 가득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근육질이 아니다.” AI는 기회임. 한편으로는 마음과 사회생활을 위축시키는 데 쓸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고를 성장시키는 데 쓸 수 있음. 대부분은 게으른 선택을 하겠지만 다르게 선택할 수도 있음. 예를 들어 연설문을 AI에게 쓰게 하진 않지만, AI의 비평을 받으면 내 연설은 더 좋아짐. 여전히 내 생각, 내 아이디어, 내 말, 내 의미이고, 어디서 힘이 빠지는지나 청중을 잃을 지점을 피드백받아 내가 고치는 것임. 그러니 AI에게 연설문을 쓰게 하지 말고, 스스로를 더 밀어붙이는 데 쓰면 됨- 예전에는 우리를 더 밀어붙이는 역할을 친구, 가족, 동료가 했음. 그걸 잃어가고 있는 것 같음
- “선택”이면 좋겠지만, 이제 AI는 검색에 들어가 있고 VSCode를 설치하면 프롬프트 입력창이 놓여 있으며 사용을 유도함. 물론 끌 수는 있지만 기본값이 되어버렸음
조카에게 코딩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모든 접점이 즉답을 제공하기보다 스스로 고생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단련하길 바람 - 새 기술은 매번 학습, 교육, 개인 성장을 근본적으로 바꾼다고 약속하지만 결국 99%의 사람에게는 가장 게으른 방식으로 쓰였음. 라디오, TV, 인터넷, 이제 AI까지 그랬음
좋은 식단과 운동을 할지 GLP-1을 쓸지와 비슷함.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정의상 대부분은 그런 조언을 따르지 않을 것임 - AI를 사고와 글쓰기 과정을 보강하는 데만 썼고, 처음엔 이 즉각적인 자원을 쓰지 않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느꼈음
그런데 1년 뒤에는 글을 제대로 못 쓰게 됨. 이제 연구들은 탈숙련이나 인지적 항복 같은 표현을 쓰고 있고, 스스로도 그 둘을 뚜렷하고 개인적으로 겪었음. 나름의 안전장치가 그 함정을 막아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음. 이제는 컴퓨터 근처에서도 글을 쓰지 않음 - 그 시의 요지는 오히려 인간에게 물어보라는 것 아닌가 싶음
그러면 딴길로 새고 상관없는 대화에 끌려 들어가겠지만, 그게 인간답다는 뜻임. 그런 산만함을 최적화해서 없애려 하면 인간과의 상호작용도 스스로 빼앗게 됨. 애초에 왜 최적화해야 하는지, 최종 목표가 뭔지도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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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화제가 된 YouTube 채널 “Dad, how do I?”가 떠오름. 그런 채널이 있어도 괜찮다고 여기면서, 사람들이 자기 아버지에게 묻지 않고 그 채널을 본다고 슬퍼하진 않는 듯함
Mr. Smucker에게는 플라이 낚시를 좋아하는 친구와 그 사람에게 물어볼 시간이 있는 모양인데, 그건 좋은 일임. 하지만 내게 그런 친구가 없거나 빨리 답이 필요하면 그냥 운이 없는 건가? 이런 글의 충동은 이해하고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알지만, 시간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다른 경로에 접근할 수 없어서 답이 필요한 질문을 했다는 이유로 감정적으로 몰아붙여지는 느낌은 싫음- 글쓴이 삶에 있는 특이하고 구체적인 사람들의 예시를, 독자도 똑같은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는 꾸짖음으로 읽는 건 이해하기 어려움
“AI나 인터넷으로 가기 전에, 네가 아는 고유한 사람들을 떠올리고 연락해보라”는 뜻으로 읽었음 - 동의하지 않는 글에서 억지로 다른 의미를 짜내려는 필요를 잘 모르겠음. 원문 어디에도 “그런 친구가 없으면 그냥 망한 것”이라는 뜻에 가까운 내용은 없음
- 그 채널은 운영자가 자라면서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시작한 것 아닌가? 그건 중요한 맥락으로 보임
- 여기서 풀어볼 게 많음. 우선 AI의 편의성이 강화하는 나쁜 현대적 사회 착각 중 하나는, 플라이 낚시 질문이 긴급하다는 믿음임
웹 검색이 이 충동을 길렀고 스마트폰이 증폭했으며, 사람들이 실제 사회적 상호작용을 끊고 사소한 잡학을 휴대폰으로 찾아보게 만들었음. AI는 그걸 굳힐 위험이 있음. 정말로 빠른 답, 더구나 인터넷이나 AI 챗봇의 불확실한 답이 필요한 경우는 극히 드묾. 그게 상상도 안 된다면 너무 조급한 경보 상태로 살고 있는 것일 수 있고, 스트레스와 불안이 건강을 해치기 전에 자신을 점검해보는 게 좋음
둘째, AI 없이도 답은 여전히 손에 닿는 곳에 있음. 그 역할에서 AI는 조악한 수집기이자 바꿔쓰기 도구일 뿐임. 아웃피터에게 전화하거나 이메일을 보내면 기꺼이 도와줄 것이고, 친구 네트워크의 더 깊은 노드에 닿을 수도 있고, 주제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간과 대화할 수도 있음. 이건 긴급 의료 상황을 제외한 거의 모든 주제에 적용됨 - 플라이 낚시 좋아하는 사람에게 플라이 낚시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 과소평가하고 있음. 30초 이상 알고 지낸 사이일 필요도 없음
심지어 NYC에도 회원 1,000명 넘는 낚시 모임이 있음
- 글쓴이 삶에 있는 특이하고 구체적인 사람들의 예시를, 독자도 똑같은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는 꾸짖음으로 읽는 건 이해하기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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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글임. 기술자들이 세상에서 인간성을 제거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음. 인간성은 지저분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그래서 두려워하는 것 같음
- 자연 서식지의 동물과 감금된 동물을 생각했음. 고릴라를 정글에서 떼어 작은 동물원 우리에 넣으면 최악의 경우 미치고, 좋게 봐도 우울해짐. 범고래는 지느러미가 꺾이고 야생으로 돌아가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으며, 심리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추측만 가능함. 슈퍼맥스 교도소의 인간도 같은 문제를 보임
지금 사람들에게도 둠스크롤링과 좌식·고립 생활을 만드는 기술 때문에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듯함. AI는 어떤 사람들에게 마지막 못이 될 수 있음. 챗봇을 진짜 친구와 confidant처럼 대하며 현실의 인간관계를 잃어버리기 때문임. 요즘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만 봐도, 광범위한 정신건강 위기가 점점 심해지는 걸 알아차리기 어렵지 않음. 우리는 스스로 작은 감옥을 만들고 문을 잠갔음. 거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Matrix에 들어가는 것처럼 실시간으로 인간적 연결을 잃어가고 있음 - 의식 논의가 나올 때마다 이런 느낌을 받음. 의식은 아직 전혀 잘 이해되지 않았고, 예를 들어 “어려운 문제”에는 과학적 진전이 사실상 없음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건 그냥 분자이고 자유의지는 없으며,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전부 환상이고, 과학이 언젠가 환원할 것”이라고 말하길 더 선호함. 이해 불가능할 수도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인정하기보다, 자기 자신의 경험을 부정하고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걸 보면 놀랍다 - “이게 사회 전체에 좋을까”라는 질문에는 기술자들이 파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복잡성이 있다고 봄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의 일부 장점은 인정하지만, 사회적 수준에서 엄청난 순손실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와 관심 경제 때문에 더 분열되고, 더 화나고, 더 우울하고, 더 자기중심적이 됐음. 결국 예전 상사가 말하던 것처럼 “모든 건 사람에 관한 것”임 - 인터넷에 대해서도 오래전부터 비슷하게 느꼈음. 친구가 별로 없거나, 친구 만들기가 어렵거나, 사회적 상호작용이 힘들기 때문에 인터넷이 좋다는 말을 반복해서 봤음. HN에서도 그런 댓글을 자주 보고, 이 스레드에도 있음. 젊었을 때 나도 비슷한 말을 했음
하지만 인터넷이나 기술에 더 기대면, “대면 상호작용 = 어렵다”는 피드백 고리를 더 먹여 살리게 됨. 어려운 건 맞지만, 그런 상황에 적극적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결코 편해지는 법을 배울 수 없음. 성장은 고생을 필요로 하고, 이 말은 최대한의 공감을 담아 하는 것임. Solaris의 Snaut가 말하듯, 인간에게는 인간이 필요함 - “기술이란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도록 세상을 배열하는 재주다.”
—Max Frisch
- 자연 서식지의 동물과 감금된 동물을 생각했음. 고릴라를 정글에서 떼어 작은 동물원 우리에 넣으면 최악의 경우 미치고, 좋게 봐도 우울해짐. 범고래는 지느러미가 꺾이고 야생으로 돌아가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으며, 심리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추측만 가능함. 슈퍼맥스 교도소의 인간도 같은 문제를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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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정확히 핵심을 찌름. 특히 온전히 인간적이어야 하는 부분에서 AI 콘텐츠를 소비하고 싶은 사람은 없음
동시에 그 시가 손수 만든 커스텀 블로그가 아니라 Substack에 올라왔다는 점도 있음. 인간을 드러나게 해주는 도구가 있고, 인간이 있고, 인간에게 뭔가를 팔기 위해 인간인 척하는 공장식 사업 콘텐츠가 있음. “해야 해서 만든” 콘텐츠가 인간을 묻어버리는 가운데, 일부는 인간을 드러내고 보상하는 도구를 만드는 작은 구석에 있음- 오래된 수작업 웹사이트를 엄청 좋아하고, 그런 사이트는 죽지 않을 것이며 브라우저가 앞으로도 오래 그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웃기기도 함
하지만 Substack의 문제는 “블로그가 기계로 생성됐다”가 아님. 기계 생성 블로그 사이트는 블로그가 커진 이후 계속 있었고, 한때 Blogspot과 Wordpress가 사실상 양강이었음. Substack의 문제는 두 가지인데, 실제로는 후자가 핵심임. 첫째, Post-Zuckerberg식 “모든 게 회사 레터헤드를 따라야 한다” 병에 걸렸고, 이건 Substack만의 문제는 아니며 디자이너들이 더 혼나야 함. 둘째, 나치 블로그가 모인 나치 바라는 점이고, 이게 Substack을 쓰지 말아야 할 진짜 이유임 - “Substack에 있으면 진짜 블로그가 아니라 반짝이는 페이지 비대화일 뿐”이라는 해석은 좀 억지로 느껴짐
콘텐츠는 훌륭함. 이 도구는 글쓴이가 프리미엄 콘텐츠로 돈을 받을 수 있는 마찰이 낮은 방법을 제공하고, 대부분의 기기에서 작동함. 저자가 직접 페이지 게시 방법을 배우다 좌절해 포기하는 것보다 Substack에서 읽는 편이 낫다. 문제가 있다면 더 나은 Substack 대안이 필요할지도 모름 - 훌륭한 글쓰기 능력과 블로그 셀프 호스팅 능력을 동시에 갖춘 사람은 기술계를 벗어나면 꽤 드문 조합임
- “손수 만든 커스텀 블로그가 아니라서”라는 식의 엘리트주의도 핵심을 놓치는 것 같음
- 오래된 수작업 웹사이트를 엄청 좋아하고, 그런 사이트는 죽지 않을 것이며 브라우저가 앞으로도 오래 그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웃기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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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좋았고, 몇 년째 이런 생각을 자주 해왔음
대규모 언어 모델이 처음 나왔을 때 “이게 내 삶의 일부를 조금 빼앗는 것 아닌가? 나는 프로그래밍하고 문제를 풀고 예상치 못한 걸 배우는 걸 좋아하지 않나?”라고 생각했음. 지금은 매일 수백만 토큰씩 광범위하게 쓰면서도 여전히 그 질문을 함. 레시피나 건배사나 캠핑 여행에는 쓰지 않고, 지루한 일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데 씀. 예를 들어 어떤 것을 빠르게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측정하고, 내가 놓친 벤치마크 항목을 찾아내고, 각 접근법에 대한 벤치마크 하네스를 만들고, 변경이 동작이나 출력을 바꾸지 않는지 테스트를 만들고, 결과를 특정 스키마의 데이터베이스에 넣게 하고,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 돌림
빨라지는 대상은 대개 예전 같으면 건드리지 못했을 애플리케이션 구석의 단일 쿼리임. 이제는 할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고 자원 사용을 줄일 수 있음. 놓치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음. 프로그래밍은 덜 하지만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냄. 고용주는 매우 만족하고, 팀은 내 작업을 그 어느 때보다 더 높이 평가함. 그 대비가 이상하게 느껴짐
그래도 답은 모르겠음.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시간이 그립다. 하지만 애초에 목적이 내가 만지작거리는 것이 아니라, 고용주를 위해 특정 목적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름. AI가 내 삶의 일부를 빼앗은 건지, 아니면 바꾼 건지 모르겠음. 여전히 머리를 쓰고, 문제를 생각하고, 버그를 찾고, Claude와 함께 풀기 위해 머릿속으로 추적함. 다만 실제로 비트를 옮기는 일은 예전만큼 거의 하지 않음. 여전히 매우 갈등됨. 친구와 가족이 레시피, 이미지, 글쓰기 같은 “진짜” 일에 AI를 쓰는 걸 보면 너무 불편함. 그런데 프로그래밍도 진짜 일인가?- 솔직히 개인 프로젝트에서 AI를 쓸 때는 코드를 만지작거리는 즐거움 일부가 모델을 만지작거리는 즐거움으로 바뀐 느낌임
프롬프트를 쓰고, 안전장치를 만들고, 하네스를 세우는 등 다른 종류의 작업이 필요하고, 그것도 나에게는 꽤 재미있음 - 레시피를 글쓰기와 같은 “진짜” 범주에 넣을지는 모르겠음. 유명인 요리책도 수십 년 동안 같은 레시피를 약간만 바꿔 되풀이해왔을 것임
Reese Witherspoon의 요리책을 사서 따라 하는 것과 대규모 언어 모델에 묻는 것의 차이가 뭘까? 둘 중 어느 쪽도 앞치마를 두르고 재료를 직접 섞어주지는 않음
- 솔직히 개인 프로젝트에서 AI를 쓸 때는 코드를 만지작거리는 즐거움 일부가 모델을 만지작거리는 즐거움으로 바뀐 느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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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매일 직접 만나서 손길과 체온을 느끼며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음. 하지만 서로 다른 나라에 살아서 대신 매일 FaceTime으로 통화함
솔직히 옆집에 살아도 매일 찾아갈 시간을 늘 내지는 못할 수 있음. 주머니 속 기기로 이야기할 방법이 있다는 건 받아들일 만한 타협임. 반대로 전화가 발명되지 않은 150년 전이었다면 부모님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살겠다는 결정을 아예 하지 않았을지도 모름. “기술은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한다” -
인간 상호작용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글쓴이는 AI가 우리를 어떻게 고립시키는지 아름답게 보여줬음. 하지만 인간 상호작용의 숨은 비용도 있고, AI는 그 어려움을 완화해줌
의사 친구는 내가 건강 불안이 생길 때마다 공짜 의료 조언을 구하길 원하지 않을 것임. 셰프 친구도 레시피 때문에 막힐 때마다 전화받고 싶지 않을 것이고, 작가 친구도 이전 초안에서 10%만 바뀐 내 책 20번째 초안을 읽고 싶지 않을 것임. 이런 의존은 관계에 세금처럼 작용하고, 상대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음
또한 충분히 포용적이지 않은 커뮤니티도 많음. 인간 답을 얻고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도 상호작용 자체가 고통스러울 수 있음. Stack Overflow에 글을 올리던 시절이 어땠는지 기억하지 않나? Stack Overflow가 단 하나의 예외였다고 믿을 수 있을까?
인간의 상상력과 지식이 주변 인간관계에 묶여서도 안 된다고 봄. 내 사회적 그룹이 작거나, 그 그룹이 가진 지식의 다양성이 작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나은 대안이 99% 답하지 않을 대학 교수에게 연락하는 것이라면, 생각하고 탐구하지 말아야 하나? 많은 사람이 이제 학습과 연결 대신 AI를 쓴다는 건 맞고, 나도 AI가 초인적 자동완성처럼 작동하면서 프로그래밍 지식이 약해졌음을 느낌. 하지만 AI 덕분에 원래라면 접근하지 못했을 수많은 것을 배웠고, 전체적으로는 나를 더 나아지게 했다고 봄- 이런 대화의 핵심에는 “AI가 최선인 영역”은 굳이 더 장려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있다고 봄
사람들은 AI를 쓸 것이고, 많이 쓸 것임. 균형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는 입장이라면, 실제 사용이 “AI가 부족함”보다 AI가 너무 많음 쪽으로 자연스럽게 기운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 이런 대화의 핵심에는 “AI가 최선인 영역”은 굳이 더 장려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있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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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AI에만 해당하지 않음. Uber, AirBNB, Facebook 등은 모두 예전에 공동체가 하던 일을 유료 대리물로 대체하는 역할을 함
때로는 모든 디지털 기술이 인간 대 인간 접촉을 대체하려는 사업처럼 느껴짐- 기술이 타인과의 접촉을 줄여온 건 늘 그랬던 것 아닌가? 자동차 덕분에 기차에서 다른 사람 옆에 앉을 필요가 줄었고, GPS 덕분에 길을 물어볼 필요도 줄었음
- Facebook은 그렇다 쳐도 Uber와 AirBNB는 잘 모르겠음. Uber가 어떤 공동체 기능을 대체했는지 보이지 않음
AirBNB는 공동체에 파괴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해결하려는 필요를 공동체가 예전에는 어떻게 충족했는지도 불분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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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사람이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고개를 들어달라고 하면 짜증을 냄
예전에 어떤 소셜 미디어에서, 차 안에 앉은 사람이 아파트 발코니에서 젊은 남자 셋이 맥주를 원샷하는 장면을 찍은 영상을 봤음. 같이 노는 게 민망한 일이고, 게시자가 루저들을 현장에서 잡았다는 식의 뉘앙스였음. 소셜 미디어로 “진짜” 일반 정서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맥주를 약간 우스꽝스럽게 마시는 정도의 취약성만으로도 공개 조롱을 위해 녹화될 수 있다면, 연결을 시도하기 꺼리는 세대에 공감하기 어렵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