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은 끝이 없다”는 말처럼, 과거 농경 사회에서는 남자는 밭에서, 여자는 집안일을 맡았음
그 일은 끝없는 노동이었고, 가족을 꾸리는 건 부모와 아이 모두가 매달려야 하는 잔혹한 생존의 협업이었음
산업혁명과 녹색혁명이 인류에게 얼마나 변혁적 사건이었는지를 종종 잊고 지냄
18~19세기 이전에는 대가족이 일반적이었고, 노인들도 함께 살며 음식 준비나 옷 만들기를 도왔음
아이들은 학교 대신 집안일을 거들었고, 산모 사망률이 높아 재혼으로 가족이 확장되는 경우도 많았음
이런 배경이 동화 속 계모와 의붓자매 이야기의 원형이 되었음
사실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열매나 씨앗을 줍는 등 일을 했음
인류의 대부분 시기 동안은 유목적 생활이었고, 사냥과 채집이 중심이었음
농경 사회의 고된 노동은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의 현상임
수렵채집인은 농부보다 삶이 덜 고됐다는 연구를 읽은 적 있음
하지만 그 방식은 낮은 인구 밀도만 유지할 수 있었기에, 결국 농경 사회에 밀렸음
인류학계에서 이 견해가 얼마나 일반적인지는 잘 모르겠음
Robert Caro의 『The Path To Power』를 읽어보면, 전기와 수도가 없던 시절 여성의 삶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생생히 묘사되어 있음
30대 여성이 70대처럼 보일 정도로 삶이 고됐다는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음
어린 시절 루이지애나 북부의 친척 농장을 방문했던 기억이 있음
수도도, 실내 화장실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아이였던 나는 그게 모험처럼 느껴졌음
나중에 솜밭에서 일하며 흑인 가족과 함께 일한 경험은 내게 큰 문화적 충격이었음
그들은 여름엔 밭일, 겨울엔 다른 일로 생계를 이어갔고, 나는 그들의 근면함을 잊지 못함
2025년 이전, 조상들은 단순한 집안일조차 끝없는 노동으로 여겼음
옷을 개고, 운전하고, 직접 요리하고, 개를 산책시키는 일까지 모두 사람이 해야 했음
하루 종일 일해도 차 한 대 사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음
왜 UBI(기본소득) 가 기술 유토피아의 전제처럼 여겨지는지 의문임
로봇이 노동과 군사력을 모두 대체한다면, 정부가 시민을 유지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듦
멕시코에서 자랐는데, 부모님보다 가정부와 정원사를 더 자주 봤음
기술이 싸지면 결국 모두가 채택하게 됨 — 60년대 TV가 전자식 베이비시터였던 것처럼
나는 오히려 사이버펑크식 빈곤한 UBI 사회를 상상했음
최소한의 식량과 공간만 주어지는 그런 디스토피아적 형태로 말임
100년 후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를 보고 “그때는 참 불편했지”라고 말할 것 같음
시대마다 ‘옳은 역사관’이라 믿는 가치가 변한다는 점이 흥미로움
과거의 미학에는 정직함과 인간미가 있었다고 느낌
나무와 금속은 진짜 재료로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공동체적 온기가 있었음
여름마다 찾는 호숫가의 옛 통나무집들은 이제 울타리 친 대저택으로 바뀌었지만, 그 시절엔 더 인간적이었음
사실 과거엔 대부분 장식할 돈이 없었음
지금 우리가 말하는 ‘장인의 물건’은 소비사회가 만들어준 여유의 산물임
싸구려 물건 덕분에 다른 곳에 시간과 자원을 쓸 수 있게 된 셈임
하지만 나는 현대 소재의 놀라운 내구성에도 감탄함
값싼 마이크로화이버 담요 하나가 10년 넘게 멀쩡함 내 블로그 글에서도 썼듯, 지금은 오히려 물건이 오래가는 황금기라고 느낌
플라스틱 제품은 결국 지갑을 천천히 비우는 구조임
브랜드가 인수되고, 품질이 떨어지고, 결국 ‘엔쉬티피케이션’ 을 거쳐 사라지는 과정이 반복됨
1700년대엔 수공예품이 너무 비싸서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 한 벌의 옷만 가졌음
지금은 누구나 저렴한 물건을 가질 수 있고, 부자는 여전히 ‘진짜’를 살 수 있음
결국 모든 시대엔 불만이 존재함, 인간은 늘 더 나은 것을 찾는 존재임
Cottagecore 같은 유행은 단순히 ‘귀여움’이 아니라 의미를 찾는 몸부림이라 생각함
산업화와 자동화가 인간의 일과 예술을 비인간적으로 만들 때마다, Arts & Crafts 운동이나 Art Nouveau처럼 반작용이 나타났음
Vonnegut의 『Player Piano』도 같은 맥락의 경고였음
Kottke.org의 그래프를 보면, 인류 역사 대부분 동안 어린이 절반이 성인 전에 사망했음
2020년엔 4.3%, 일본·노르웨이는 0.3%에 불과함
나도 이 통계를 떠올렸음 유아 사망률만큼 과거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지표는 없음
항생제가 보급되기 전의 삶은 정말 공포 그 자체였음
관련 논의는 Bills of Mortality HN 스레드에서도 다뤄졌음
과거는 ‘귀엽진’ 않았지만, 전부 디킨스식 비극도 아니었음
공동체, 의식, 진정성 같은 건 그리워할 만함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좋은 점을 선택적으로 결합할 수 있음
과거의 물건은 대부분 부자만 좋은 품질을 누릴 수 있었음
지금 남아 있는 ‘좋은 옛 물건’은 생존 편향의 결과임
‘깊은 공동체성’은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통제와 억압의 대가가 따름
부자 몇 명만이 지금의 평균적 삶과 비슷한 편안함을 누렸고, 나머지는 참혹한 빈곤 속에 살았음
과거의 ‘공동체’는 종종 소문과 억압의 장이었음
‘똑똑한 사람’이 오히려 낙인 찍히던 시대였고, 지금의 기술인들은 그 시절엔 아마 불행했을 것임
Beatles의 노래처럼, 예전엔 은퇴 후 시골 별장을 사는 게 꿈이었음
돈이 있으면 전원생활도 낭만적일 수 있었지만, 빚 없이 자급자족하기는 어려웠음
Isle of Wight는 지금도 아름답지만, 관광업 외엔 일자리 부족으로 젊은 세대에겐 힘든 곳임
휴양지의 부동산 불평등이 심각함
스웨덴에서는 여전히 별장을 사는 문화가 활발함
여름마다 일하러 가는 셈이라 우스꽝스럽지만, 문화적 전통으로 자리 잡았음
Cottagecore는 일종의 ‘마리 앙투아네트식 판타지’ 임
현실의 고생은 빼고 낭만만 소비하는 형태임
Beatles의 노래는 단지 은퇴자의 소박한 주거를 말한 것이지, 지금의 Cottagecore와는 다름
“모든 음식이 신선했다”는 말은 기억의 왜곡일 수도 있음
실제로는 재료가 제한적이고, 배고픔이 음식의 맛을 높였을 가능성이 큼
대공황과 2차대전 시기엔 식량 배급과 품귀가 일상이었음
정원에서 나는 채소는 계절 한정이었고, 냉동 보관은 전기료 폭탄이었음
지금의 마트 채소 진열대를 보면 당시 요리사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임
내 외할머니는 트리키노시스를 두려워해 돼지고기를 돌처럼 구웠음
닭고기도 대부분 통조림으로 팔렸고, 향신료나 신선한 과일은 사치품이었음
“신선한 음식”은 냉장고가 작고 외식이 비쌌기 때문이지, 재료가 좋았던 건 아님
계절 음식을 반년 동안 기다리며 먹던 시절엔, 기대감이 맛을 배가시켰음
직접 재배한 채소는 확실히 풍미가 강함
방울토마토는 포도처럼 달고, 옥수수는 생으로 먹어도 맛있음
하지만 현대 유통망 덕분에 언제든 좋은 식재료를 구할 수 있음
과거가 지금보다 불편했다고 해서, 그들이 끊임없는 비참함 속에 살았던 건 아님
지역과 시대에 따라 삶의 질은 달랐고, 브뤼겔의 농민화처럼 거칠지만 즐거운 삶도 있었음
다만 현대의 치과 치료 같은 건 정말 감사해야 함
과거를 완전히 어둡게만 그리면, 그 시대 사람들의 인간성을 지워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됨
Hacker News 의견
“여자의 일은 끝이 없다”는 말처럼, 과거 농경 사회에서는 남자는 밭에서, 여자는 집안일을 맡았음
그 일은 끝없는 노동이었고, 가족을 꾸리는 건 부모와 아이 모두가 매달려야 하는 잔혹한 생존의 협업이었음
산업혁명과 녹색혁명이 인류에게 얼마나 변혁적 사건이었는지를 종종 잊고 지냄
아이들은 학교 대신 집안일을 거들었고, 산모 사망률이 높아 재혼으로 가족이 확장되는 경우도 많았음
이런 배경이 동화 속 계모와 의붓자매 이야기의 원형이 되었음
인류의 대부분 시기 동안은 유목적 생활이었고, 사냥과 채집이 중심이었음
농경 사회의 고된 노동은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의 현상임
하지만 그 방식은 낮은 인구 밀도만 유지할 수 있었기에, 결국 농경 사회에 밀렸음
인류학계에서 이 견해가 얼마나 일반적인지는 잘 모르겠음
30대 여성이 70대처럼 보일 정도로 삶이 고됐다는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음
어린 시절 루이지애나 북부의 친척 농장을 방문했던 기억이 있음
수도도, 실내 화장실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아이였던 나는 그게 모험처럼 느껴졌음
나중에 솜밭에서 일하며 흑인 가족과 함께 일한 경험은 내게 큰 문화적 충격이었음
그들은 여름엔 밭일, 겨울엔 다른 일로 생계를 이어갔고, 나는 그들의 근면함을 잊지 못함
2025년 이전, 조상들은 단순한 집안일조차 끝없는 노동으로 여겼음
옷을 개고, 운전하고, 직접 요리하고, 개를 산책시키는 일까지 모두 사람이 해야 했음
하루 종일 일해도 차 한 대 사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음
로봇이 노동과 군사력을 모두 대체한다면, 정부가 시민을 유지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듦
기술이 싸지면 결국 모두가 채택하게 됨 — 60년대 TV가 전자식 베이비시터였던 것처럼
최소한의 식량과 공간만 주어지는 그런 디스토피아적 형태로 말임
시대마다 ‘옳은 역사관’이라 믿는 가치가 변한다는 점이 흥미로움
과거의 미학에는 정직함과 인간미가 있었다고 느낌
나무와 금속은 진짜 재료로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공동체적 온기가 있었음
여름마다 찾는 호숫가의 옛 통나무집들은 이제 울타리 친 대저택으로 바뀌었지만, 그 시절엔 더 인간적이었음
지금 우리가 말하는 ‘장인의 물건’은 소비사회가 만들어준 여유의 산물임
싸구려 물건 덕분에 다른 곳에 시간과 자원을 쓸 수 있게 된 셈임
값싼 마이크로화이버 담요 하나가 10년 넘게 멀쩡함
내 블로그 글에서도 썼듯, 지금은 오히려 물건이 오래가는 황금기라고 느낌
브랜드가 인수되고, 품질이 떨어지고, 결국 ‘엔쉬티피케이션’ 을 거쳐 사라지는 과정이 반복됨
지금은 누구나 저렴한 물건을 가질 수 있고, 부자는 여전히 ‘진짜’를 살 수 있음
결국 모든 시대엔 불만이 존재함, 인간은 늘 더 나은 것을 찾는 존재임
Cottagecore 같은 유행은 단순히 ‘귀여움’이 아니라 의미를 찾는 몸부림이라 생각함
산업화와 자동화가 인간의 일과 예술을 비인간적으로 만들 때마다, Arts & Crafts 운동이나 Art Nouveau처럼 반작용이 나타났음
Vonnegut의 『Player Piano』도 같은 맥락의 경고였음
Kottke.org의 그래프를 보면, 인류 역사 대부분 동안 어린이 절반이 성인 전에 사망했음
2020년엔 4.3%, 일본·노르웨이는 0.3%에 불과함
유아 사망률만큼 과거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지표는 없음
항생제가 보급되기 전의 삶은 정말 공포 그 자체였음
관련 논의는 Bills of Mortality HN 스레드에서도 다뤄졌음
과거는 ‘귀엽진’ 않았지만, 전부 디킨스식 비극도 아니었음
공동체, 의식, 진정성 같은 건 그리워할 만함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좋은 점을 선택적으로 결합할 수 있음
여성은 인구를 유지하려면 평균 6명의 아이를 낳아야 했음
관련 글: Life, Work, Death and the Peasant II
그리고 Our World in Data의 아동 사망률 통계
지금 남아 있는 ‘좋은 옛 물건’은 생존 편향의 결과임
‘똑똑한 사람’이 오히려 낙인 찍히던 시대였고, 지금의 기술인들은 그 시절엔 아마 불행했을 것임
Beatles의 노래처럼, 예전엔 은퇴 후 시골 별장을 사는 게 꿈이었음
돈이 있으면 전원생활도 낭만적일 수 있었지만, 빚 없이 자급자족하기는 어려웠음
휴양지의 부동산 불평등이 심각함
여름마다 일하러 가는 셈이라 우스꽝스럽지만, 문화적 전통으로 자리 잡았음
현실의 고생은 빼고 낭만만 소비하는 형태임
“모든 음식이 신선했다”는 말은 기억의 왜곡일 수도 있음
실제로는 재료가 제한적이고, 배고픔이 음식의 맛을 높였을 가능성이 큼
정원에서 나는 채소는 계절 한정이었고, 냉동 보관은 전기료 폭탄이었음
지금의 마트 채소 진열대를 보면 당시 요리사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임
닭고기도 대부분 통조림으로 팔렸고, 향신료나 신선한 과일은 사치품이었음
“신선한 음식”은 냉장고가 작고 외식이 비쌌기 때문이지, 재료가 좋았던 건 아님
방울토마토는 포도처럼 달고, 옥수수는 생으로 먹어도 맛있음
하지만 현대 유통망 덕분에 언제든 좋은 식재료를 구할 수 있음
과거가 지금보다 불편했다고 해서, 그들이 끊임없는 비참함 속에 살았던 건 아님
지역과 시대에 따라 삶의 질은 달랐고, 브뤼겔의 농민화처럼 거칠지만 즐거운 삶도 있었음
다만 현대의 치과 치료 같은 건 정말 감사해야 함
과거를 완전히 어둡게만 그리면, 그 시대 사람들의 인간성을 지워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