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존 수단인 직업 이상의 존재로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건 사실상 사치임
스스로를 부양할 수 없으면 다른 건 다 무의미해짐
사람들의 불안을 덜어주는 방법은 ‘인간적 가치’ 같은 말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생계 수단을 보여주는 것임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가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은 타인에게는 별 가치가 없음
내 영혼이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걸로 돈을 주는 사람은 없음
수십억의 영혼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인간 개개인은 대체 가능하고 소모적인 존재임
선진국 사람들은 그 현실로부터 오랫동안 보호받아왔지만, 이제 그 충격이 문 앞까지 다가오고 있음
나도 두렵지만,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려 함
네가 부정하지 않으려는 건 결국 개인적인 두려움에 대한 것 아님?
인간의 가치를 돈으로만 정의하는 건 순환 논리에 불과함
아이가 쉽게 만들어진다고 해서 부모에게 가치가 없는 건 아님
“우리는 대체 가능하다”는 말이 친구나 가족에게도 해당되는지 궁금함
고용주 입장에서는 맞을 수 있지만, 인간관계에서는 그렇지 않음
자신을 단순한 소비자로 축소시킨다면 그런 결론이 나올 수도 있음
하지만 관계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이며, 서로 돌보고 돌봄을 받는 관계는 경제적 가치 이상임
장인어른이 63세에 해고되었을 때, 재정적 문제보다 정체성 상실이 더 큰 타격이었음
평생 한 직장에서 일하며 “나는 CEO야”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분이었음
그걸 보며 ‘나는 일로만 정의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AI 시대가 오면서 나 역시 좋은 개발자라는 정체성에 의존하고 있음을 깨달음
다만 서서히 다가오는 변화라,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음
정치인들이 자리를 놓지 못하는 이유도 비슷한 내적 신화 때문일지도 모름
나는 오히려 열심히 일한 뒤 게으름의 보상을 즐기고 싶어 하는 타입임
어떤 사람들은 스트레스 상태에 중독된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신경전달물질 변화 때문일 수도 있음
“You are not your job”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는 Sancho Studio를 운영하는 Jacob”으로 시작하는 건 아이러니함
하지만 그건 현대 독자층이 직업으로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임
“너는 네 일이 아니다”라는 말은 맞지만, 일을 잃는 건 여전히 큰일임
미국에서는 소득, 건강보험, 사회적 지위, 일상적 인간관계까지 잃게 됨
“기술이 대체돼도 괜찮다, 다른 걸 하면 된다”는 말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만 가능한 이야기임
“사람들과 연결되는 능력이 너를 대체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말은, 대인관계에 서툰 기술자들에게는 공허하게 들림
글 속 “다른 일” 링크가 자전거 여행 사이트로 연결되는 걸 보면, 저자는 생계 걱정이 없는 듯함
예전에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들이 “예전엔 인쇄공이었다”고 말하던 게 떠오름
그래도 미국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새 일자리를 빨리 찾고 더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음
“무엇을 하느냐”에 집착하는 건 미국 중심적 문화임
다른 나라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직업을 묻지 않음
나는 수십 년을 알고 지내도 친구의 직업을 모를 때가 많음
사람 자체가 중요하지, 직업은 부차적임
나는 내 일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너는 네 일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음
미국만의 특성이 아니라, 인도나 중국에서도 비슷한 문화가 있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통근·수면으로 하루를 보내기에, 취미나 휴식이 드묾
유럽에서만 예외를 봤음
그래도 친구의 직업에 호기심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움
그 사람이 하루의 절반을 보내는 일을 이해하는 건 인간적인 관심임
그런 문화가 어떤 지역에서 가능한지, 대화 시작법을 배우고 싶음
미국에서는 성인이 되면 개인성이 사라지는 문화가 있음
부모가 되면 자신을 완전히 희생해야 한다는 신화가 퍼져 있고, 예전처럼 취미나 공동체적 육아가 사라짐
인류 역사 내내 사람들은 자신을 집단에 기여하는 역할로 정의해왔음
오늘날도 다르지 않음. 사람들은 처음엔 네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고, 나중에야 개인으로 관심을 가짐
하지만 그건 ‘직업’이 아니라 사회적 역할임
정체성을 한 가지 역할에만 의존하지 말고, 관계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야 함
직업을 묻는 건 단지 사회적 관습일 뿐임
나는 번아웃을 겪은 뒤, 사람들에게 직업 대신 취미나 관심사를 묻기 시작했음
사실 과거에는 사람을 알고 나서 역할이 정해졌음
지금처럼 먼저 직업으로 규정하는 건 산업혁명 이후의 현상임
내 주변에서는 “무엇을 하느냐” 대신 “무엇에 시간을 쓰느냐”고 묻는 표현을 씀
덕분에 대화를 철학, 연극, 책 같은 주제로 자연스럽게 이끌 수 있음
예전엔 함께 자란 사람들과 일하며 평생 친구가 되었지만, 지금은 직장 동료는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일 뿐임
경제 구조상 그 이상을 기대하는 건 환상임
“기술이 대체돼도 괜찮다, 자전거 여행을 하겠다”는 말은 멋지지만, 대부분은 청구서를 내야 함
소프트웨어 업계가 지금까지 경제적 특권층이었기에 가능한 말임
저자 같은 사람들은 아마 부양가족이 없는 독신자일 가능성이 큼
그래서 이런 글들이 현실감이 떨어짐
몇 년 안에 UBI(기본소득) 나 UBS(기본서비스) 가 필요해질 것 같음
AI가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할 텐데, 정부가 대응하기까지 10년의 공백기가 걱정됨
어떤 나라에서는 소프트웨어도 그냥 평범한 중산층 직업임
결국 해고의 충격은 다 똑같이 올 것임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이 일에 쓰이기에, “너는 네 일이 아니다”는 말은 이상주의적 바람처럼 들림
일을 그만두면 얼마나 같은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지 시험해보면 됨
선언만으로는 부족함
나는 은퇴했지만 여전히 같은 사람임
일 외에도 항해, 음악, 목공, 고양이, 체스 등 다양한 정체성이 있음
나는 오히려 일할 때 자아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음
그래도 굶지 않으려면 일해야 함
일은 자아실현의 장소가 아니라 돈을 버는 수단임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로 사회에 가치를 제공함
사회는 취미나 여가로 돌아가지 않음
일은 단순히 시간의 절반이 아니라, 삶 전체에 스며드는 구조임
교육과 훈련까지 포함하면 인생의 대부분이 직업 중심으로 돌아감
그럼에도 “너는 네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건 현실 부정처럼 느껴짐
게다가 직장에서 신뢰와 우정이 제한된 구조는 인간의 자유를 침해함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감시와 경쟁이 내재된 환경에서 보내고 있음
“공감, 따뜻함, 존재감” 같은 인간적 능력은 자동화될 수 없는 핵심 가치임
이 능력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며, 다른 모든 것은 그에 비하면 부차적임
문화적 맥락은 중요함
미국에서는 성공=도덕적 가치, 실패=게으름으로 여겨짐
반면 짐바브웨에서는 연령과 존중이 사회 질서의 핵심임
터키에서는 가족의 소유 구조 때문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함
영국에서는 경제적 독립이 곧 자율성을 의미함
결국 ‘직업으로 정의되는 정체성’은 사회적 분류 도구일 뿐임
중요한 건 그 틀을 스스로 믿지 않고, 타인에게도 적용하지 않는 태도임
Hacker News 의견들
우리는 생존 수단인 직업 이상의 존재로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건 사실상 사치임
스스로를 부양할 수 없으면 다른 건 다 무의미해짐
사람들의 불안을 덜어주는 방법은 ‘인간적 가치’ 같은 말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생계 수단을 보여주는 것임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가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은 타인에게는 별 가치가 없음
내 영혼이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걸로 돈을 주는 사람은 없음
수십억의 영혼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인간 개개인은 대체 가능하고 소모적인 존재임
선진국 사람들은 그 현실로부터 오랫동안 보호받아왔지만, 이제 그 충격이 문 앞까지 다가오고 있음
나도 두렵지만,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려 함
아이가 쉽게 만들어진다고 해서 부모에게 가치가 없는 건 아님
고용주 입장에서는 맞을 수 있지만, 인간관계에서는 그렇지 않음
하지만 관계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이며, 서로 돌보고 돌봄을 받는 관계는 경제적 가치 이상임
장인어른이 63세에 해고되었을 때, 재정적 문제보다 정체성 상실이 더 큰 타격이었음
평생 한 직장에서 일하며 “나는 CEO야”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분이었음
그걸 보며 ‘나는 일로만 정의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AI 시대가 오면서 나 역시 좋은 개발자라는 정체성에 의존하고 있음을 깨달음
다만 서서히 다가오는 변화라,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음
나는 오히려 열심히 일한 뒤 게으름의 보상을 즐기고 싶어 하는 타입임
어떤 사람들은 스트레스 상태에 중독된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신경전달물질 변화 때문일 수도 있음
“You are not your job”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는 Sancho Studio를 운영하는 Jacob”으로 시작하는 건 아이러니함
“너는 네 일이 아니다”라는 말은 맞지만, 일을 잃는 건 여전히 큰일임
미국에서는 소득, 건강보험, 사회적 지위, 일상적 인간관계까지 잃게 됨
“기술이 대체돼도 괜찮다, 다른 걸 하면 된다”는 말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만 가능한 이야기임
예전에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들이 “예전엔 인쇄공이었다”고 말하던 게 떠오름
“무엇을 하느냐”에 집착하는 건 미국 중심적 문화임
다른 나라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직업을 묻지 않음
나는 수십 년을 알고 지내도 친구의 직업을 모를 때가 많음
사람 자체가 중요하지, 직업은 부차적임
나는 내 일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너는 네 일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음
유럽에서만 예외를 봤음
그 사람이 하루의 절반을 보내는 일을 이해하는 건 인간적인 관심임
부모가 되면 자신을 완전히 희생해야 한다는 신화가 퍼져 있고, 예전처럼 취미나 공동체적 육아가 사라짐
인류 역사 내내 사람들은 자신을 집단에 기여하는 역할로 정의해왔음
오늘날도 다르지 않음. 사람들은 처음엔 네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고, 나중에야 개인으로 관심을 가짐
정체성을 한 가지 역할에만 의존하지 말고, 관계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야 함
나는 번아웃을 겪은 뒤, 사람들에게 직업 대신 취미나 관심사를 묻기 시작했음
지금처럼 먼저 직업으로 규정하는 건 산업혁명 이후의 현상임
덕분에 대화를 철학, 연극, 책 같은 주제로 자연스럽게 이끌 수 있음
경제 구조상 그 이상을 기대하는 건 환상임
“기술이 대체돼도 괜찮다, 자전거 여행을 하겠다”는 말은 멋지지만, 대부분은 청구서를 내야 함
소프트웨어 업계가 지금까지 경제적 특권층이었기에 가능한 말임
그래서 이런 글들이 현실감이 떨어짐
AI가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할 텐데, 정부가 대응하기까지 10년의 공백기가 걱정됨
결국 해고의 충격은 다 똑같이 올 것임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이 일에 쓰이기에, “너는 네 일이 아니다”는 말은 이상주의적 바람처럼 들림
일을 그만두면 얼마나 같은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지 시험해보면 됨
선언만으로는 부족함
일 외에도 항해, 음악, 목공, 고양이, 체스 등 다양한 정체성이 있음
그래도 굶지 않으려면 일해야 함
사회는 취미나 여가로 돌아가지 않음
교육과 훈련까지 포함하면 인생의 대부분이 직업 중심으로 돌아감
그럼에도 “너는 네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건 현실 부정처럼 느껴짐
게다가 직장에서 신뢰와 우정이 제한된 구조는 인간의 자유를 침해함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감시와 경쟁이 내재된 환경에서 보내고 있음
“공감, 따뜻함, 존재감” 같은 인간적 능력은 자동화될 수 없는 핵심 가치임
이 능력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며, 다른 모든 것은 그에 비하면 부차적임
문화적 맥락은 중요함
미국에서는 성공=도덕적 가치, 실패=게으름으로 여겨짐
반면 짐바브웨에서는 연령과 존중이 사회 질서의 핵심임
터키에서는 가족의 소유 구조 때문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함
영국에서는 경제적 독립이 곧 자율성을 의미함
결국 ‘직업으로 정의되는 정체성’은 사회적 분류 도구일 뿐임
중요한 건 그 틀을 스스로 믿지 않고, 타인에게도 적용하지 않는 태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