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요한 글이라면 직접 쓴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함
다른 사람에게 읽히길 기대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AI에 외주 주는 건 무례한 일처럼 느껴짐
내가 시간을 들여 읽어야 할 이유가, 작성자가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면 사라지는 것 같음
나는 기술 문서는 AI에 맡기지만, 이야기는 절대 맡기지 않음
기술 문서는 AI가 나보다 잘 쓰지만, 창작 이야기는 AI가 끼면 지루하고 어색해짐
두 가지가 동시에 참일 수 있다고 생각함
나도 완전히 동의함
글이 AI가 쓴 것임을 알아차리는 순간 바로 탭을 닫음
최소한의 프롬프트만 던지고 나온 AI 글 덩어리(wordslop) 를 읽으라고 하는 건 무례함
잘 말했음. 특히 IMHO 대신 IMO를 쓴 점이 마음에 듦
나는 반대함
글쓰기의 목적은 아이디어 전달임
만약 글이라는 매체가 이제 막 발명된 시점이었다면, “중요한 이야기는 직접 말로 전해야 한다”고 주장했을지도 모름
글로 전달하는 것도 결국 새로운 표현 방식일 뿐임
신부가 자신의 공동체 맥락을 AI에 충분히 입력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함
설령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침묵의 서약을 어기는 행위가 될 수 있음
좋은 강론(homily) 은 특정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쓰이는 법임
만약 일반 대중용 강론이 더 효과적이었다면, 바티칸은 이미 표준 강론집을 냈을 것임
평균적인 신부의 자질에 대해 꽤 신뢰가 있는 듯함
한 신부도 같은 우려를 표현했음 — 공동체의 현실과 동떨어진 평범한 강론이 문제라고 함
관련 영상: YouTube 링크
사실 표준 강론이 전혀 없는 건 아님
다만 교부들의 유명한 강론이 전해질 뿐, 공식 표준으로 만든 것은 아님
내가 들은 강론들은 대부분 미리 써둔 원고였고, 마지막에 시사 발언을 덧붙였음
예를 들어 “오바마에게 투표하지 말라”는 식이었음
그날 이후 아내는 다시는 성당에 가지 않았음 (댈러스의 St. Rita 교회였음)
차라리 고해성사 녹음을 시작하면 어떨까 상상해봄
Gemini 3.1이 백만 토큰 분량의 그 데이터를 학습한다면 흥미로울 것 같음
우리 교회 목사님이 어제 설교 시작 전에 AI 사용 고지(disclaimer) 를 붙였음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함
나는 업무에서 AI를 쓰는 게 자연스럽지만, 영적 경험이나 문화적 표현을 AI가 대신한다는 건 불쾌하게 느껴짐
그건 이중잣대가 아님
컴퓨터가 컴퓨터에게 명령하는 건 괜찮지만, 컴퓨터가 인간에게 감정을 느끼라고 하는 건 이상함
이런 식으로 토큰 세탁(token laundering) 이 생기는 것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순간임
왜 내가 AI를 쓰는 건 괜찮고, 종교인이 쓰는 건 불편하게 느껴질까?
종교 지도자가 영적 조언을 챗봇에 외주 준다는 건 결국 인간의 게으름(sin of sloth) 을 드러내는 일임
이런 일이 젊은 세대에게 종교의 신뢰를 더 떨어뜨릴 수도 있음
기사 내용은 교황 레오의 발언 중 일부를 과도하게 해석한 것 같음
핵심은 AI로 강론을 빨리 쓰면, 신부들이 이 일을 의미 있는 사색이 아닌 단순 업무로 취급하게 된다는 점임
“교황의 말을 과도하게 해석하는 건 미국 가톨릭의 전통”이라는 농담을 덧붙임
AI로 강론을 쓰는 신부라면 프롬프트를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함
그것이 신학적 방향과 어조를 결정하기 때문임
신뢰와 책임이 중요한 공동체에서는 투명성이 도덕적 의무임
— ChatGPT의 발언이라고 밝힘
Paul Theroux의 단편에서, 파문된 신부가 다른 신부들을 위해 설교문을 대필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이야기가 있음
이제 그 일자리마저 AI가 가져가고 있음
AI 사용을 옹호하진 않지만, 많은 신부들이 이미 재탕 강론이나 인터넷에서 복붙한 설교를 하는 걸 봐왔음
어떤 신부는 너무 수준 높은 설교를 해서, 신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음
설교의 목적은 마음을 움직이는 것임
청중의 이해를 얻지 못했다면 그건 실패한 설교임
다만 신자들이 스스로 마음을 닫았다면 그건 다른 문제임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음
새로 온 은퇴 신부의 설교가 훨씬 흥미롭고 깊이 있었음
하지만 회중은 반복과 단순한 표현을 더 좋아해서 반응이 미지근했음
인간이 쓴 나쁜 강론과 AI가 쓴 강론, 뭐가 더 나쁠까?
어차피 매주 의미 있는 통찰을 전하는 건 누구에게나 불가능함
AI도 결국 옛 강론 재활용일 뿐임
강론을 재활용하는 게 꼭 나쁜 건 아님
주제는 대부분 시대 초월적(evergreen) 이고, 모든 신자가 매번 참석하는 것도 아니니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잘 먹혔던 설교를 다시 쓰는 것도 괜찮음
“시골뜨기(yokels)”라는 표현이 웃겼음
LLM은 놀라운 기술이지만, 인간과의 진짜 상호작용에서는 삶의 의미를 빼앗는 느낌임
우리가 Claude의 생각을 알고 싶다면 직접 물어보면 됨
인간이 AI의 확성기가 되어선 안 됨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검색이나 Claude에게 직접 묻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대신 물어보는 경우가 많음
교황도 Claude Opus 5.2가 나오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름
웃김
교황이 매일 CC 터미널에 붙어 있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질 거라는 농담 (/s)
“/s”를 빼먹었다고 지적함
코드 생성과 강론 작성은 비슷한 점이 있음
AI가 도와도, 결국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있어야 좋은 결과가 나옴
AI는 표현 도구이지, 사고의 대체물이 아님
공동체의 고민을 진심으로 성찰한 사람이 쓴 강론은 문법이 서툴더라도 훨씬 의미 있음
교황의 메시지는 결국 “생각을 외주 주면, 마음도 외주 준다”는 것임
반대로, 공동체를 진심으로 아낀다면 흥미로운 강론을 전하고 싶을 수도 있음
하지만 그게 개인의 강점이 아닐 수도 있음
그리고 교황은 프란치스코가 아니라 레오임을 정정함
예전에는 사람들이 비밀을 교회에 고백했지만, 이제는 AI에게 고백함
자발적으로 권력을 넘기는 구조가 비슷함
광고가 붙기 시작하면 사람들도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 같음
전통적인 고해성사는 항상 로컬 처리(local processing) 였음
ChatGPT 로그보다 신부가 고해 내용을 새는 게 훨씬 어려움
(농담으로 “하늘의 클라우드에는 이미 모든 죄의 기록이 있다”고 덧붙임)
“관찰받고 이해받고자 하는 욕망”이 과거엔 신에게 향했지만, 이제는 데이터 마이닝 알고리즘으로 구현되고 있음
인간은 항상 심판과 관찰을 원했고, 그것이 문명의 결속을 가능하게 했다는 Deus Ex의 Morpheus 대사를 인용함
모든 걸 권력(power) 의 문제로 보는 건 빈곤한 시각임 고해성사는 권력이 아니라 해방의 행위임
신부는 고해 내용을 누설하면 자동 파문되고, 죽음까지 감수해야 함
반면 빅테크와 AI는 비밀이 아닌 이윤과 권력을 추구함
그래서 두 체계는 본질적으로 다름
종교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종교가 지탱해온 문화적 기반의 중요성을 간과함
신부에게 고백하는 건, Sam Altman의 고문 기계에 고백하는 것보다 훨씬 덜 위험함
Hacker News 의견들
나는 중요한 글이라면 직접 쓴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함
다른 사람에게 읽히길 기대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AI에 외주 주는 건 무례한 일처럼 느껴짐
내가 시간을 들여 읽어야 할 이유가, 작성자가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면 사라지는 것 같음
기술 문서는 AI가 나보다 잘 쓰지만, 창작 이야기는 AI가 끼면 지루하고 어색해짐
두 가지가 동시에 참일 수 있다고 생각함
글이 AI가 쓴 것임을 알아차리는 순간 바로 탭을 닫음
최소한의 프롬프트만 던지고 나온 AI 글 덩어리(wordslop) 를 읽으라고 하는 건 무례함
글쓰기의 목적은 아이디어 전달임
만약 글이라는 매체가 이제 막 발명된 시점이었다면, “중요한 이야기는 직접 말로 전해야 한다”고 주장했을지도 모름
글로 전달하는 것도 결국 새로운 표현 방식일 뿐임
신부가 자신의 공동체 맥락을 AI에 충분히 입력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함
설령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침묵의 서약을 어기는 행위가 될 수 있음
좋은 강론(homily) 은 특정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쓰이는 법임
만약 일반 대중용 강론이 더 효과적이었다면, 바티칸은 이미 표준 강론집을 냈을 것임
관련 영상: YouTube 링크
다만 교부들의 유명한 강론이 전해질 뿐, 공식 표준으로 만든 것은 아님
예를 들어 “오바마에게 투표하지 말라”는 식이었음
그날 이후 아내는 다시는 성당에 가지 않았음 (댈러스의 St. Rita 교회였음)
Gemini 3.1이 백만 토큰 분량의 그 데이터를 학습한다면 흥미로울 것 같음
우리 교회 목사님이 어제 설교 시작 전에 AI 사용 고지(disclaimer) 를 붙였음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함
나는 업무에서 AI를 쓰는 게 자연스럽지만, 영적 경험이나 문화적 표현을 AI가 대신한다는 건 불쾌하게 느껴짐
컴퓨터가 컴퓨터에게 명령하는 건 괜찮지만, 컴퓨터가 인간에게 감정을 느끼라고 하는 건 이상함
왜 내가 AI를 쓰는 건 괜찮고, 종교인이 쓰는 건 불편하게 느껴질까?
이런 일이 젊은 세대에게 종교의 신뢰를 더 떨어뜨릴 수도 있음
기사 내용은 교황 레오의 발언 중 일부를 과도하게 해석한 것 같음
핵심은 AI로 강론을 빨리 쓰면, 신부들이 이 일을 의미 있는 사색이 아닌 단순 업무로 취급하게 된다는 점임
그것이 신학적 방향과 어조를 결정하기 때문임
신뢰와 책임이 중요한 공동체에서는 투명성이 도덕적 의무임
— ChatGPT의 발언이라고 밝힘
Paul Theroux의 단편에서, 파문된 신부가 다른 신부들을 위해 설교문을 대필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이야기가 있음
이제 그 일자리마저 AI가 가져가고 있음
AI 사용을 옹호하진 않지만, 많은 신부들이 이미 재탕 강론이나 인터넷에서 복붙한 설교를 하는 걸 봐왔음
어떤 신부는 너무 수준 높은 설교를 해서, 신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음
청중의 이해를 얻지 못했다면 그건 실패한 설교임
다만 신자들이 스스로 마음을 닫았다면 그건 다른 문제임
새로 온 은퇴 신부의 설교가 훨씬 흥미롭고 깊이 있었음
하지만 회중은 반복과 단순한 표현을 더 좋아해서 반응이 미지근했음
어차피 매주 의미 있는 통찰을 전하는 건 누구에게나 불가능함
AI도 결국 옛 강론 재활용일 뿐임
주제는 대부분 시대 초월적(evergreen) 이고, 모든 신자가 매번 참석하는 것도 아니니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잘 먹혔던 설교를 다시 쓰는 것도 괜찮음
LLM은 놀라운 기술이지만, 인간과의 진짜 상호작용에서는 삶의 의미를 빼앗는 느낌임
우리가 Claude의 생각을 알고 싶다면 직접 물어보면 됨
인간이 AI의 확성기가 되어선 안 됨
교황도 Claude Opus 5.2가 나오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름
코드 생성과 강론 작성은 비슷한 점이 있음
AI가 도와도, 결국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있어야 좋은 결과가 나옴
AI는 표현 도구이지, 사고의 대체물이 아님
공동체의 고민을 진심으로 성찰한 사람이 쓴 강론은 문법이 서툴더라도 훨씬 의미 있음
교황의 메시지는 결국 “생각을 외주 주면, 마음도 외주 준다”는 것임
하지만 그게 개인의 강점이 아닐 수도 있음
그리고 교황은 프란치스코가 아니라 레오임을 정정함
예전에는 사람들이 비밀을 교회에 고백했지만, 이제는 AI에게 고백함
자발적으로 권력을 넘기는 구조가 비슷함
광고가 붙기 시작하면 사람들도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 같음
ChatGPT 로그보다 신부가 고해 내용을 새는 게 훨씬 어려움
(농담으로 “하늘의 클라우드에는 이미 모든 죄의 기록이 있다”고 덧붙임)
인간은 항상 심판과 관찰을 원했고, 그것이 문명의 결속을 가능하게 했다는 Deus Ex의 Morpheus 대사를 인용함
고해성사는 권력이 아니라 해방의 행위임
신부는 고해 내용을 누설하면 자동 파문되고, 죽음까지 감수해야 함
반면 빅테크와 AI는 비밀이 아닌 이윤과 권력을 추구함
그래서 두 체계는 본질적으로 다름
신부에게 고백하는 건, Sam Altman의 고문 기계에 고백하는 것보다 훨씬 덜 위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