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법은 겉보기엔 공정하지만 실제 적용에서는 불의하게 작동함
나도 ‘허가 없이 행진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적이 있음. 행진 허가제를 두는 건 문제가 없지만, 그 법이 분리정책 유지나 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막는 데 쓰일 때는 부당해짐
법을 어길 때는 공개적이고 사랑으로, 그리고 처벌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 그런 태도야말로 법에 대한 가장 깊은 존중의 표현임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놀라움과 감탄이 함께 밀려옴. 요즘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함
요즘 이런 말을 잘 듣지 못하는 이유는 처벌이 너무 가혹하기 때문임
법정에 서는 건 막대한 비용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임. 변호사 비용만 수천 달러, 재판비용과 벌금까지 감당하기 어렵고, 신용기록에도 평생 남음
이건 전형적인 시민 불복종의 사례임
합법과 정의는 다르며, 지난 250년 동안 정의의 개념은 계속 확장되어 왔음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Civil Disobedience 구절이 떠오름 — 법은 사람을 더 정의롭게 만들지 않으며, 오히려 법을 존중하는 마음이 불의의 도구가 되기도 함
오늘날엔 이 ‘불의한 법’의 원리가 ICE나 연방 기관 쪽에서 반대로 작동함
예를 들어 ICE 요원이 불필요하게 Renee Good을 사살했지만, 살인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낮음
관련 기사: USA Today 보도
요즘 사람들은 잃을 게 너무 많음
체포나 시위 이력이 있으면 중산층으로서의 삶이 막히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다른 길을 찾아야 함
이런 현실이 정부 안팎의 부패를 조용히 자라게 함
“법은 공정하지만 적용은 불의하다”는 말의 다른 면은 배심원 무효화(jury nullification) 임
대부분의 미국인은 이 개념을 모름. 하지만 이는 시민이 법의 부당함을 바로잡을 수 있는 오래된 권리였음
매년 MLK Day마다 이 편지를 다시 읽음
올해 마음에 남은 구절은 “시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비이성적 믿음”에 대한 경고였음
시간은 중립적이며, 선의의 사람보다 악의의 사람이 더 효과적으로 사용해왔다는 통찰이 인상적임
“역사의 아크는 정의로 향한다”는 낙관적 문장과 대조적으로 느껴짐
처음 이 편지를 읽었을 때, 내 딸이 King의 딸과 비슷한 나이였음
그때 받은 충격이 인종·성평등에 대한 내 신념을 굳게 만들었음
아이에게 “왜 놀이공원에 갈 수 없냐”고 설명해야 하는 부모의 절망이 너무 생생하게 다가왔음
“왜 백인들은 유색인에게 그렇게 심하게 대하나요?”라는 아이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음 — “이건 경제적 노예제 때문이야. 부유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을 착취해 부를 유지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세대를 이어 벗어나지 못하게 됨”
고등학교 때 ‘버밍햄 감옥에서 보낸 편지’ 를 필독서로 배웠던 게 정말 감사함
권위에 의문을 품던 시기에 이 글을 읽고 평생 남을 인상을 받았음
이런 글을 커리큘럼에 넣은 선생님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음. 용기 있는 교육자가 이런 텍스트를 공유할 때, 사회는 조금씩 변함
이 편지는 민주적 낙관주의의 유물처럼 느껴짐
많은 이들이 Martin과 Malcolm을 대비시키지만, 그 구도는 피상적임
Malcolm X의 The Ballot or the Bullet(PDF 링크)을 보면, 그는 폭력의 상징이 아니라 현실주의자였음
단순히 법으로 평등을 입법화할 수 없다는 그의 지적이 핵심임
두 사람의 사상은 암살 당시의 모습으로만 고정되어 있지만, 그들의 사유의 진화를 함께 봐야 함
결국 “폭동은 들리지 않는 자들의 목소리”라는 말이 현실이 되었음
지금도 여전히 시의적절한 글임
“법은 공정하지만 적용은 불의하다”는 대목이 특히 와닿음
법과 집행 사이의 괴리가 사회의 큰 실패임
법을 만들지만 집행 수단을 마련하지 않아, 결국 ‘지켜지지 않는 약속’만 늘어남
King이 말한 ‘미지급 어음’의 비유가 떠오름
법의 조항과 집행이 분리될 때, 개인의 편견이 그 사이를 채우게 됨. 이 구조를 고쳐야 함
이 편지의 한 구절은 지금도 시대 초월적 울림을 줌
“어떤 사람들이 예배하는 신은 누구인가? 왜 그들은 침묵했는가?”라는 질문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함
이 연설은 권위가 아닌 영향력으로 변화를 이끌어낸 교본 같음
하지만 당시 Black Panthers나 Malcolm X의 동료들은 무장투쟁을 준비하고 있었음
King의 비폭력 노선이 강조되지만, 실제로는 ‘당근과 채찍’ 이 함께 존재했음
역사 교과서가 비폭력만을 미화하는 건 현실의 절반만 보여주는 셈임
Martin Luther King Jr. 는 내 사고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임
최근에는 용서의 개념을 자주 떠올림. “용서하되 잊지 않는다”는 태도는 진정한 용서가 아님
진정한 용서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용기를 갖는 것임
또 그가 말한 “증오가 증오를 낳는다”는 구절은 여전히 마음에 남음
관련 설교문: Loving Your Enemies (Stanford King Institute)
어떤 극우 인사는 이 논리를 J6 폭동 참가자의 정당화에 이용하려 할 수도 있음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주장임
그들은 비폭력 훈련도 없었고, 조직적이지도 않았음
요즘 운동들이 흔히 그렇듯, 느슨한 폭도적 움직임이었음
문제의 핵심은 의사당을 강제로 점거했다는 점임
그곳은 일반에 개방된 공간이 아니었고, 폭력적 침입이었음
Hacker News 의견들
어떤 법은 겉보기엔 공정하지만 실제 적용에서는 불의하게 작동함
나도 ‘허가 없이 행진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적이 있음. 행진 허가제를 두는 건 문제가 없지만, 그 법이 분리정책 유지나 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막는 데 쓰일 때는 부당해짐
법을 어길 때는 공개적이고 사랑으로, 그리고 처벌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 그런 태도야말로 법에 대한 가장 깊은 존중의 표현임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놀라움과 감탄이 함께 밀려옴. 요즘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함
법정에 서는 건 막대한 비용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임. 변호사 비용만 수천 달러, 재판비용과 벌금까지 감당하기 어렵고, 신용기록에도 평생 남음
합법과 정의는 다르며, 지난 250년 동안 정의의 개념은 계속 확장되어 왔음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Civil Disobedience 구절이 떠오름 — 법은 사람을 더 정의롭게 만들지 않으며, 오히려 법을 존중하는 마음이 불의의 도구가 되기도 함
예를 들어 ICE 요원이 불필요하게 Renee Good을 사살했지만, 살인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낮음
관련 기사: USA Today 보도
체포나 시위 이력이 있으면 중산층으로서의 삶이 막히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다른 길을 찾아야 함
이런 현실이 정부 안팎의 부패를 조용히 자라게 함
대부분의 미국인은 이 개념을 모름. 하지만 이는 시민이 법의 부당함을 바로잡을 수 있는 오래된 권리였음
매년 MLK Day마다 이 편지를 다시 읽음
올해 마음에 남은 구절은 “시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비이성적 믿음”에 대한 경고였음
시간은 중립적이며, 선의의 사람보다 악의의 사람이 더 효과적으로 사용해왔다는 통찰이 인상적임
“역사의 아크는 정의로 향한다”는 낙관적 문장과 대조적으로 느껴짐
처음 이 편지를 읽었을 때, 내 딸이 King의 딸과 비슷한 나이였음
그때 받은 충격이 인종·성평등에 대한 내 신념을 굳게 만들었음
아이에게 “왜 놀이공원에 갈 수 없냐”고 설명해야 하는 부모의 절망이 너무 생생하게 다가왔음
나는 이렇게 답했음 — “이건 경제적 노예제 때문이야. 부유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을 착취해 부를 유지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세대를 이어 벗어나지 못하게 됨”
고등학교 때 ‘버밍햄 감옥에서 보낸 편지’ 를 필독서로 배웠던 게 정말 감사함
권위에 의문을 품던 시기에 이 글을 읽고 평생 남을 인상을 받았음
이런 글을 커리큘럼에 넣은 선생님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음.
용기 있는 교육자가 이런 텍스트를 공유할 때, 사회는 조금씩 변함
이 편지는 민주적 낙관주의의 유물처럼 느껴짐
많은 이들이 Martin과 Malcolm을 대비시키지만, 그 구도는 피상적임
Malcolm X의 The Ballot or the Bullet(PDF 링크)을 보면, 그는 폭력의 상징이 아니라 현실주의자였음
단순히 법으로 평등을 입법화할 수 없다는 그의 지적이 핵심임
두 사람의 사상은 암살 당시의 모습으로만 고정되어 있지만, 그들의 사유의 진화를 함께 봐야 함
결국 “폭동은 들리지 않는 자들의 목소리”라는 말이 현실이 되었음
지금도 여전히 시의적절한 글임
“법은 공정하지만 적용은 불의하다”는 대목이 특히 와닿음
법과 집행 사이의 괴리가 사회의 큰 실패임
법을 만들지만 집행 수단을 마련하지 않아, 결국 ‘지켜지지 않는 약속’만 늘어남
King이 말한 ‘미지급 어음’의 비유가 떠오름
법의 조항과 집행이 분리될 때, 개인의 편견이 그 사이를 채우게 됨. 이 구조를 고쳐야 함
이 편지의 한 구절은 지금도 시대 초월적 울림을 줌
“어떤 사람들이 예배하는 신은 누구인가? 왜 그들은 침묵했는가?”라는 질문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함
이 연설은 권위가 아닌 영향력으로 변화를 이끌어낸 교본 같음
King의 비폭력 노선이 강조되지만, 실제로는 ‘당근과 채찍’ 이 함께 존재했음
역사 교과서가 비폭력만을 미화하는 건 현실의 절반만 보여주는 셈임
Martin Luther King Jr. 는 내 사고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임
최근에는 용서의 개념을 자주 떠올림. “용서하되 잊지 않는다”는 태도는 진정한 용서가 아님
진정한 용서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용기를 갖는 것임
또 그가 말한 “증오가 증오를 낳는다”는 구절은 여전히 마음에 남음
관련 설교문: Loving Your Enemies (Stanford King Institute)
어떤 극우 인사는 이 논리를 J6 폭동 참가자의 정당화에 이용하려 할 수도 있음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주장임
요즘 운동들이 흔히 그렇듯, 느슨한 폭도적 움직임이었음
그곳은 일반에 개방된 공간이 아니었고, 폭력적 침입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