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cker News 의견
  • 이 글에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알고리즘 기반 소셜미디어의 거품 속에 얼마나 쉽게 갇힐 수 있는가임
    ‘섹시함’은 사실 사라진 적이 없고, OnlyFans나 하이퍼섹슈얼 가챠 게임, 그리고 여성 타깃 게임인 Love and Deepspace 같은 사례들이 그걸 증명함. 이런 현상은 특정 온라인 소수 집단의 담론일 뿐인데, 그들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게 문제임

    • 내 20년 된 Flickr 계정 경험상, 단순한 단체 사진에서도 가슴이 큰 여성이 포함된 사진은 조회수가 100배 이상 높았음
      노출이 전혀 없는 평범한 사진인데도 이런 결과가 나와 흥미로웠음. 일부는 명시적 콘텐츠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비노출적 관음성을 선호하는 듯함. 결국 여성은 어떤 옷을 입든 성적 대상화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깨달음
    • 애니 가챠 게임을 ‘미용실에서 예쁜 여자 둘 얘기했다가 친구 잃은 사건’과 비교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함
      이런 논의가 소수에게만 국한된 이유는, 우리가 성적 콘텐츠를 억제하는 플랫폼 구조 속에 있기 때문임. ‘섹시함’과 ‘성적임’은 다름
    • 작가는 개인 간의 에로틱한 연결을 말하고 있음. 포르노 소비는 오히려 그런 몰입을 방해함
    • 언급된 예시들은 ‘섹시함’과는 거리가 있음. 작가는 미디어가 아니라 현실 속 인간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음
    • 오프라인 친구가 있다고 해서 ‘터미널리 온라인’이 아닌 건 아님
      나도 금융권 사람들과 어울리지만, 그들 역시 AI·크립토 버블 속에 있음. 결국 현실 대화조차 온라인 알고리즘의 반향을 강화함
  • “세상 전체를 상대로 방어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음
    모든 생각과 행동이 인터넷에 노출되면서, 언제든 디지털 마녀사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김. 낯선 사람에게 분노를 쏟으면서도, 정작 그 분노를 조장하는 시스템에는 분노하지 않게 됨

    • 이런 분노의 방향이 왜곡된 이유는, 그 분노로 이익을 얻는 세력이 있기 때문임. SNS 기업들이 심리학자를 고용해 사용자의 감정을 조작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게임은 끝났음
    • 온라인에 자신을 드러내는 건 이제 스토킹, 협박, 사기, 선전 등 수많은 위험을 동반함
    • 하지만 대부분의 디지털 대화는 여전히 사적임. 나는 동료와 1:1로 대화하고, 그들이 스크린샷을 퍼뜨리지 않을 거라 믿음. 결국 오프라인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음
    • 이런 분노의 순환이야말로 자본이 SNS에서 얻는 가치의 절반임. 사람들을 거울의 미로 속에 가둬두는 구조임
  • 이 글에서 마음에 걸린 건 이념적 예외 처리
    작가는 #MeToo나 ‘캔슬 컬처’를 특정 정치적 맥락에서만 옹호함. 하지만 그렇게 되면 비판받는 행동이 언제나 정당화될 위험이 있음. 진정한 자유주의자는 사회의 성 인식을 바꾸려는 사람이지, 도덕적 잣대를 무기로 삼는 당파적 인물은 아님

    • 제도적 성폭력 근절과 평등한 관계의 에로티시즘을 동일시하는 건 말이 안 됨. 작가는 타인을 성적 대상화한 게 아니라, 단지 내면의 감정을 성찰한 것뿐임
    • 나도 처음엔 불편했지만, 오히려 작가가 자신의 버블을 드러내며 메타적으로 증명한 셈이라 흥미로웠음
    • 글 전체가 ‘캔슬 컬처’의 일반화를 잘 묘사하면서도, 독자들의 반발을 피하려는 덕목 시그널링을 한 점이 재밌었음. 자유주의적 태도와 청교도적 태도는 공존할 수 없음
  • “그녀들에게 사과하라”는 조언은 반사회적 발상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내밀한 욕망을 고백하는 건 부적절함

    • 마치 꿈속 일로 화내는 것 같음. 대응할 방법이 없음
    • 타인을 원치 않게 노출시키는 건 금기임. 그런 요구를 하는 친구라면 잃는 게 낫다고 생각함
    • 단순한 끌림은 뇌의 비이성적 반응일 뿐,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면 사과할 이유가 없음
    • 결국 실수는 그 감정을 친구에게 털어놓은 것뿐임
    • 해를 최소화하려면 타인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찾아온 순간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 균형이 필요함
  • 나는 가톨릭 문화권에서 자랐지만, 성 억압의 근원이 종교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음
    종교가 사라져도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억압을 만들어냄

    • 서구 문화의 억압은 종교에서 비롯됐을 수 있지만, 모든 사회엔 일정한 성 억압이 존재함. 인간이 서로에게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임. 피임과 의학이 발전했어도 여전히 불륜·강간·유해한 관계 같은 문제는 남아 있음
    • 무신론 국가에서도 억압은 존재함
    • 오늘날의 억압은 와이파이가 달린 망치 같음. 도구만 바뀌었을 뿐임
    • Stirner의 관점처럼, 신을 버렸지만 ‘신적 속성’을 인간에게 투사했을 뿐임. 종교는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뀐 셈임
    • 어쩌면 종교가 이런 억압을 빌려온 것일 수도 있음
  • 이 글의 ‘에로티시즘’이라는 단어 사용은 부적절하다고 느낌
    낯선 사람에게 순간적으로 느낀 성적 생각은 진정한 의미의 에로티시즘이 아님. 진짜 에로티시즘은 합의된 사랑과 친밀함을 예술로 승화하는 것임. 지금은 상업적 포르노와 정부의 검열주의 사이에서 그 의미가 사라졌음

    • 작가는 단순히 욕망에 솔직해지는 태도를 말한 듯함. 하지만 ‘에로틱’이라는 단어는 이미 의미를 잃었음
    • 오히려 그런 순간적 감정이야말로 순수한 에로티시즘일 수 있음. 성적 의도가 없어도 감각적 긴장이 생길 수 있음. 대부분의 성인은 이런 욕망을 억제하는 법을 배움. 미국의 성 담론이 너무 왜곡돼 단어의 의미가 사라진 게 안타까움
  • 작가의 친구 관계가 이상하게 느껴짐. 안정된 관계가 있었다면 이런 대화는 안 나왔을 것 같음
    오히려 인터넷은 에로티시즘을 증폭시켰음. 포르노, 게임, 앱 등에서 사람들은 익명으로 더 솔직해졌음

    • ‘관계 공유’가 무슨 뜻인지 궁금함. 오픈 릴레이션십을 말하는 건지 묻고 싶음
  • 정말 훌륭한 글이었음. Gen X 세대로서 조카 세대가 겪는 온라인 현실을 보며 작가의 결론에 공감함. 표현하기 어려웠던 생각들을 명확히 정리해줘서 인상 깊었음

  • 어느 정도는 맞지만, 문제는 단순히 ‘감시받는 두려움’이 아님
    인간의 자아는 본질적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됨. 그런데 지금은 그 관계의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옮겨갔음.
    예전엔 사진 찍히는 일이 드물었지만, 이제는 24시간 카메라 앞에 있음. 이런 환경이 자아의 구조 자체를 왜곡함. 존재한다는 건 곧 ‘보여진다’는 것이 되었고, 그 방식이 알고리즘적으로 조작되고 있음

  • 참고로 이 글의 저자는 McMansion Hell 블로그의 작가임

    • 예전에 썼던 F1 관련 글도 훌륭했는데, 현재는 삭제되어 웹 아카이브 버전으로만 볼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