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cker News 의견
  • 소셜 미디어에 대한 비판이 정말로 강력하다면, substack 같은 곳에서 논쟁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듦. 지금 많은 것들이 만족스럽지 않음. 소셜 미디어는 우리가 이런 현실을 직접 볼 수 있게 해줌. 단순히 개인 이념으로 상관관계를 연결하는 것은 인과관계를 찾는 것과 다름. 소셜 미디어가 방대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해악도 분명히 존재할 거라 생각함. 모든 요소들이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음. 걱정하는 대중을 노린 책들이 종종 특정 연구만 골라 담는데, 이런 게 데이터와 동떨어진 여론을 만들 수 있음. 어떤 저자는 아이디어를 표현하려고 책을 쓰지만, Jonathan Haidt 같은 이는 자신의 이념을 많은 사람에게 설득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 같음. 요즘 관점이 곧 현실이라는 생각이 확산됨. 많은 사람을 설득하면 그게 사실이 되어버림. 분명히 소셜 미디어의 부정적인 면을 인정할 준비는 되어 있음. 분명한 ‘이유’와 ‘방식’을 알려주면 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름. 무턱대고 전부 부정하는 건 오히려 개선을 막는다고 봄. 여러 각기 다른 이슈들이 우연처럼 모두 나쁘다고 얘기될 때는 뭔가 숨겨진, 증명되지 않은 근거가 있거나 정보가 편향적으로 제시된 것이 아닐지 의심이 듦

    • 이 주제는 단순히 substack에서만 논의되는 게 아님.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에서 논쟁되고 있음. 예를 들면 호주는 소셜 미디어 이용 연령을 16세로 제한했고, 프랑스는 15세임. 학교나 국가에서 다양한 휴대폰 금지를 시도 중임. 내부 고발자들이 Facebook 자체 연구에서 피해가 드러날 걸 우려해 연구를 은폐했다는 주장도 있음. 개인적으로 소셜 미디어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닌지 생각할 필요가 있음
    • 알고리즘 기반 큐레이션 자체가 해롭다고 생각함, 특히 기업이나 정치 이익에 오염되었을 때 그 정도가 더 심해짐. 우리는 사람들이 이슈를 많이 얘기하고, 의견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다른 사람 반응으로 정보를 해석함. 알고리즘은 이런 전통적 정보 흐름을 파괴함. 전파 방식만 달라지고, 해석은 그대로 유지됨. 이게 최악의 경우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음
    • 이 주제가 전통 언론에서도 점점 더 많이 다뤄지고 있어서 첫 번째 문장은 넘기는 게 좋을 것 같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소셜 미디어가 순손실(net-negative)이라고 말하는 게 변화의 시작임. ‘각 개별 문제를 따로 평가하자’는 학문적 방식은 이런 이슈에 정치적 동력을 부여하지 못함. (혹은 Facebook 시대의 ‘social media’ 자체가 ‘인터넷’의 한 부분일 뿐이고, 그 중 한 영역을 문제 삼는다고 볼 수도 있음)
    • 소셜 미디어의 나쁜 점을 명확히 밝히면 개선될 수 있지 않겠냐는 의견에,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중독성을 최대로 끌어올리도록 소셜 미디어를 설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문제점은 충분하다고 생각함. 전자담배의 유해성도 하나하나 성분을 따져봐야 금지해야 하는지 판단할 필요가 없듯이, 아동 대상 소셜 미디어 금지는 과하다고 보지만, 학교 내 휴대폰 금지는 논란거리가 되어선 안 된다는 입장임
    • 복잡한 논리가 필요 없다고 봄. 중독성 있는 것은 해롭고, 소셜 미디어는 중독성을 띄도록 설계되어가고 있음. 중독성이 높을수록 해로움. 특히 아이들이 더 취약함. 이런 점을 볼 때, 소셜 미디어도 특별한 반증이 없다면 해로울 것이라는 가능성이 높음
  • 정치인이라면 사람들이 나를 찍어줘야 하고, 내 지지층이 있어서 그 사람들은 이미 내 편임. 나머지 너무 많은 사람을 소외시키지 않고, 적당히 중도층을 잡아 50%에 근접하려고 함. 반대로, 인플루언서라면 참여도(engagement)가 필요함. 전체의 10%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고, 그들의 관심을 계속 붙잡아야 하므로 메시지를 늘 자극적으로 유지함

    • 요즘은 전자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 같음. 미국이나 서유럽에서 점점 더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정치권에서 극단적 언사와 정책이 증가하고 있음. 정치인이나 정당이 중도층보다 극단 지지층의 참여도(engagement)에더 집중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됨
    • 나는 동의하지 않음. 주류 정당은 분명히 중도층을 노리지만, 소수 정당들은 극단적 입장을 대변하는 게 더 이익일 때가 많음. 강하게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더 잘 투표하고, 또 극단적 입장이 더 눈에 띄기 때문임
    • 이 글의 요점을 흥미롭게 정리한 것 같음. 집단 정체성에 따라 소셜 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강조하는데, 사실 중요한 건 소셜 미디어가 우리 사회적 담론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하는 점임
    •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투표하는 사람이 늘어난 걸 보면,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방식을 줄여야 한다는 메시지조차도 정당의 주요 이슈가 될 만큼 충분히 많은 대중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임
  • 테크와 소셜 미디어에 반대하는 논쟁에서 제일 어려운 점은 ‘만약 그게 없었으면 세상이 어떻게 달랐을까’라는 반사실적(couterfactual) 상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임. 예를 들어 온라인 데이팅 앱이 없었다면 그저 지금과 똑같은데 앱만 없는 게 아니라, 다른 유형의, 더 지역 중심적이고 건전한 사교 방식이 생겼을지도 모름. 나는 요즘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몇 시간을 보내느니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식의 논리보다는, 소셜 미디어가 모두에게 어떤 상품을 팔려고만 하는 ‘사회적 연결 대체재’라는 사실에 집중함. 대부분 이 점에 동의하는 듯함

  • 나는 “알고리즘 기반” 소셜 미디어, 즉 참여도를 핵심 목표로 설계된 형태가 문제라고 생각함

    • 최근 Tiktok에 “Streak Pets”라는 기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됐음. 도파민 중독을 유발하는 활동 자체를 마치 게임처럼 만들어 참여도를 극대화하는 전략임. Tiktok 내에서 유저 두뇌가 피로해지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더 오래 사용하게 만들 고민을 반복하는 팀 미팅이 상상됨
    • 여기서 말하는 ‘engagement(참여도)’는 결국 광고 노출 극대화의 다른 말임. 광고 수익을 최적화하다 보면 플랫폼은 이익만 챙기고 사용자에 대한 관심은 사라짐
  • 나는 예전에 하루 4시간 이상 Facebook에 빠져 살았음. 작년 11월에 한계에 이르러 아예 소셜 미디어를 끊음. Facebook은 비활성화, Twitter는 완전 탈퇴, LinkedIn app도 삭제하고 데스크톱에서 뉴스피드 차단 확장만 쓰며 메신지만 봄. 구글, Chrome, Youtube 모바일 앱도 삭제하고 Safari 시크릿 모드로만 간단히 접근함. 폰에서 앱만 치워도 금단증상 없이 쉽게 그만둘 수 있었고, 전혀 아쉽지 않으며 삶의 질이 훨씬 좋아짐. HN은 가끔 보는 정도라 중독성도 못 느낌

    • 팁을 하나 주자면, Firefox 모바일에서 Leechblock을 쓰면 루틴처럼 웹사이트를 도는 습관을 쉽게 차단할 수 있음. 해로운 사이트를 무의식적으로 방문하는 근육기억이 있어서 블락해버림
    • 하지만 개인의 탈퇴가 오히려 시스템 전체에는 나쁠 수 있다고 봄. 남은 소셜 미디어 인구가 더욱 극단화될 수 있음. 개인의 성향이 격해지기 쉽다면 개인 탈퇴를 지지하지만, 오히려 더 침착한 사람들이 떠나면 더 위험해질 수 있음
  • 나도 비공식적으로 내 나름의 소셜 미디어 금단 실험을 해봤는데, 결과는 훨씬 더 기분이 좋아졌음. 다른 데이터는 필요 없음

    • 나도 마찬가지임. 우울한 뉴스도 SNS의 끊임없는 댓글 알림 없이 보면 불안 루프에 빠지지 않음. 그냥 지루해지면 꺼버리고 거리를 두게 됨. 2016년 이후로 Facebook을 아예 끊었고, 오히려 정보를 더 모른다는 느낌만 남았음. 그 후로 점차 포럼, Instagram, Reddit도 끊음. 남은 건 가끔 개그 보려고 들어가는 Youtube 뿐임. 기분이 더 차분해지고 내가 내 삶을 주도한다는 느낌을 받음. 이런 기업들이 사회에 거의 기여도 없이 너무 큰 영향력을 가지는 현실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함
    • 나도 같은 실험을 해봤고, 같은 결론임
  • 몇 달간 fb, Reddit, x, Instagram을 깔았다가 정말로 얼마나 중독성이 강한지 실감함. 결국 앱만 삭제하고 계정은 남겨둔 채 웹버전만 제한적으로 사용함

  • 많은 댓글들이 Hotelling의 법칙( 위키피디아 링크 ) 을 간과하는 것 같음. 정치에 적용하면 이런 게임 플랜이 나옴: 양당제라면 일단 자기 당의 중간 위치에서 메시지를 시작함. 그러면 자기 당 중간~전체 중도까지, 그리고 중간보다 더 바깥에 있는 일부도 잡음. 이 전략으로 예선에서 이기는 데 도움이 됨. 그 다음에는 서서히 인구 전체의 중간으로 이동해야 함. 이러면 자기 당과 반대쪽당의 중도까지 잡을 수 있음. 반대쪽당도 똑같이 다른 방향에서 옴. “그럼 애초에 중도에서 시작하면 안 되냐?”는 질문에, 그러면 예선을 못 이기고, 중도를 노리는 두 당에 모두 밀려버림

  • 최근까지 온라인 익명성의 자유를 믿었지만, 이제는 익명성이 건전한 사회에서 감당하기 힘든 무게임을 체감하게 됨. 인간은 대가 없이 전 세계 수백만 명과 익명으로 연결될 책임감을 감당할 수 없는 존재임을 느낌

    • 강력한 반론은, 완전한 실명제로 인해 정치적 이견이나 체제 비판이 억눌리는 위축 효과가 심할 것이라는 점임. 이런 부작용이 일부 극단 사례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생각함
    • 만약 지금 Charlie Kirk 사건 반응을 이야기한다면, 익명성 자체가 문제는 아닌 듯함. 실명으로 표현된 의견들도 익명 못지않게 극단적임. 오히려 실명일 때 더 과격해지는 경향이 있음. 실명이 오히려 소속감 신호로 강한 메시지를 유도할 수도 있음
    • 익명성은 크게 영향이 없다고 생각함. 악의적 발언도 실명으로 충분히 많이 올라옴. 익명에 의해 생각이 달라진다면, 원래 신념이 약했던 것 아닐지 되새겨 봄
    • 사실 익명 없이도 책임감 있게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건 대다수에게 무리라고 생각함. 실명 기반으로도 LinkedIn에서 기업에 신고하거나, 괴롭힘, 사생활 침해 등 부작용이 많음
    • 만약 인터넷이 세계 최대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라면, 익명성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봄. 내가 운영하는 DNS 기반 공개 텔러메트리 서버도 정상 요청 한 번 당 1,000번 이상의 악의적 요청이 옴. 이런 트래픽을 거부(REFUSED)해야 하고, 해당 아이피도 공개하지 말라는 규정이 있지만, 아이피가 위조됐는지 알 방법도 없음. 아이피를 공개해서 전 세계적으로 상황을 공유해야 진짜 문제인지, 스푸핑인지 알 수 있음. 인터넷에는 경찰이 없기 때문에(있었다면 BCP 38가 실행돼서 이 문제는 사라졌을 것임) 현실은 지속적으로 악용됨
  • 이런 질문 유도형, 클릭 유도형의 ‘사실은 다르다’류 게시물은 작성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덜 흥미로움

    • 글의 도입부에서 ‘긴 에세이’ 운운하는 걸 보고 바로 페이지 닫았음. 단순히 길다는 게 좋은 글은 아님
    • “나는 소셜 미디어의 정치적 영향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문구를 읽자마자 탭 닫음
    • 저자가 “polemicizing”, “putative”, “epistemic” 같은 어려운 용어 없이도 똑같은 요점을 충분히 전달할 수도 있었을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