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불법 복제에서 사라진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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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xguru](https://news.hada.io/@xguru)
- Published: 2026-07-17T07:47:05+09:00
- Updated: 2026-07-17T07:47:05+09:00
- Original source: [pigeonsandplanes.com](https://www.pigeonsandplanes.com/read/music-piracy-what-cd-oink-nine-inch-nails-strea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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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pic Body

- Oink와 **What.CD**는 단순한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를 넘어, 방대한 음악을 고품질로 보존하고 이용자의 지식과 노동으로 운영된 비공개 음악 공동체였음
- 초대·면접·업로드 비율·지속적 시딩을 요구한 **엄격한 규칙**은 수사기관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동시에, 공개 파일 공유 서비스보다 포괄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자료실을 유지하게 했음
- Nine Inch Nails는 유출을 팬의 도덕성보다 **음반 산업의 유통 실패**로 보고 디지털 우선 발매, USB 유출 캠페인, 무료 BitTorrent 배포를 실험하며 다운로드 시대에 대응함
- What.CD가 2016년 프랑스 당국의 서버 압수 직후 16만5,000명 이상의 이용자를 남기고 폐쇄될 무렵, **월 10달러 스트리밍**은 비슷한 접근성을 합법화했지만 세밀한 큐레이션과 공동체 기반의 발견 경험까지 재현하지는 못함
- **Spotify식 스트리밍**은 음악 접근 비용을 낮췄지만 수백만 회 재생되는 음악가조차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렵고 중개자에게 돈이 집중되는 구조를 바꾸지 못해, 불법 복제가 사라진 뒤에도 음악가의 정당한 보상 문제는 남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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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b Sheridan과 초기 파일 공유 경험
- Nine Inch Nails의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Rob Sheridan**은 1997년 저해상도 애니메이션 GIF 웹사이트를 만들었으며, 자신이 dancing baby 밈에 책임이 있다고 회고함
- 인터뷰에서 입은 “HOME TAPING IS KILLING MUSIC” 티셔츠의 문구는 1980년대 영국 음반 슬리브에 해골 모양 카세트와 함께 쓰였고, 이후 The Pirate Bay 로고에도 활용됨
- 고등학생 때 취미로 웹사이트를 만들며 HTML을 익혔고, 라디오에서 녹음한 뒤 **RealAudio**로 압축한 Nine Inch Nails의 1997년 싱글 `The Perfect Drug` 유출본을 처음 내려받음
- 1998년 Pratt Institute 재학 중 기숙사 로컬 네트워크의 공개 폴더에 공유된 MP3 컬렉션을 접하며 불법 파일 공유에 깊이 빠져듦
  - 당시 앨범 하나를 들으려면 18달러를 지불해야 했지만, 파일 공유 덕분에 구매하기 어려웠던 앨범을 먼저 접하고 훨씬 다양한 음악의 팬이 됨
- 직접 만든 Nine Inch Nails 팬 사이트가 밴드의 관심을 끌면서 1999년 공식 웹페이지 디자인을 맡았고, 학교를 떠나 New Orleans의 스튜디오로 옮긴 뒤 창작 파트너와 아트 디렉터로 역할을 넓힘
- *The Downward Spiral* 후속작을 비밀리에 만들던 팀에 LimeWire 같은 신기술을 소개했으며, Nine Inch Nails의 작업은 새로운 기술과 적극적으로 충돌하고 실험하는 방식으로 전개됨
- 음반사가 고급 식사·호텔·전용 차량에 큰돈을 쓰면서도 음악가에게 그 돈이 돌아가지 않는 모습을 본 Sheridan은 Trent Reznor에게 “이제 CD가 왜 18달러인지 알겠다”고 말함

### Oink’s Pink Palace가 만든 비공개 음악 자료실
- Sheridan은 Reznor를 비공개 BitTorrent 음악 트래커 **Oink’s Pink Palace**에 초대했고, Reznor는 이후 [Vulture 인터뷰](https://www.vulture.com/2007/10/trent_reznor_and_saul_williams.html)에서 이를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음반점”이라고 부름
- Oink는 Napster와 The Pirate Bay 같은 공개 파일 공유 서비스 이용자를 겨냥한 법적 조치에 대응해, 영국의 21세 컴퓨터과학 학생이 2004년 시작함
- 몇 년 만에 사실상 모든 앨범의 고품질 다운로드를 제공하는 대규모 음악 애호가 공동체로 성장함
  - 세밀한 관리와 높은 자료 품질 덕분에 궁극의 음악 수집가 공간이나 Criterion Collection 자료실에 초대받은 듯한 경험을 제공함
  - 반면 LimeWire는 뒤엉킨 할인점 바닥을 헤매는 경험에 가까웠음
- Nine Inch Nails의 2005년 복귀 앨범 *With Teeth*는 매장 발매 몇 주 전부터 Oink에서 내려받을 수 있었음
- 밴드 측은 팬들이 발매일까지 기다리지 않은 일을 비난하는 대신, 음반사에 음원을 전달하는 순간 유출될 수밖에 없는 **유통 방식의 실패**로 판단함
  - 좋아하는 밴드의 새 앨범을 즉시 듣거나 3주를 기다리는 선택을 더 이상 단순한 도덕 문제로 볼 수 없었음
  - 이후 디지털 버전을 자체 사이트에서 먼저 공개하고 음반사에 전달한 뒤, CD를 나중에 발매하는 방식을 택함

### Nine Inch Nails의 유출·무료 배포 실험
- 2007년 투어 공연장에 새 싱글이 담긴 **USB 드라이브**를 숨겨 의도적으로 유출하고, *Year Zero*의 디스토피아 세계를 체험하는 [대체현실게임](https://42entertainment.com/work/yearzero)을 시작함
  - MP3 파일과 투어 상품에 암호화된 단서를 넣어 웹사이트와 전화번호로 이어지게 함
  - 참가자들은 앨범 콘셉트, 뮤직비디오, 커버 아트에 이어 최종적으로 앨범 전체를 발견할 수 있었음
- 2007년 10월 경찰이 Oink 서버를 급습하고 운영자를 체포함
- Sheridan은 다음 날 [*The Death of Oink, the Birth of Dissent, and a Brief History of Record Industry Suicide*](https://web.archive.org/web/20140704065021/http://www.demonbaby.com/blog/2007/10/when-pigs-fly-death-of-oink-birth-of.html)를 공개함
  - Oink는 당시 가장 완전하고 효율적인 음악 유통 모델이었음
  - 같은 수준의 합법적 음악 서비스가 있다면 높은 월 이용료도 기꺼이 지불할 의사가 있었음
- Nine Inch Nails는 2008년 *The Slip*을 웹사이트 직접 다운로드와 **BitTorrent**로 무료 배포하며, 오랫동안 지속적이고 충실하게 지지해 준 팬들에게 선물함
  - Radiohead가 전년도 *In Rainbows*를 원하는 만큼 지불하는 방식으로 내놓았기 때문에 주요 밴드 최초의 무료 발매는 아니었음
  - 청중의 이메일 주소를 확보하고 곧 진행할 투어와 티켓 판매를 알리면서 무료 배포의 경제적 가치를 실험함
- 당시 음악 접근 비용은 높은데도 Apple은 주머니에 수백만 곡을 보관할 수 있다고 홍보했지만, Sheridan에게는 그 수백만 곡을 구매할 돈이 없었음

### What.CD의 등장과 방대한 카탈로그
- Oink 폐쇄 후 음반사들이 기존 사업을 이어가는 동안 **What.CD**가 빠르게 빈자리를 채웠고, 전신에 필적하는 방대한 라이브러리와 공동체를 구축함
- What.CD는 디지털 환경에서 음반 산업이 충족하지 못한 수요를 채웠으며, 이후 스트리밍이 같은 수요를 인정하고 대중화함
  - 스트리밍에는 큰 결함이 있지만, 음악 역사 전체를 자유롭게 탐색하는 접근성은 과거 비공개 클럽을 경험한 사람에게 특히 놀라운 변화였음
- What.CD는 카탈로그 작성, 시딩, 음질, 파일명에 **엄격한 규칙**을 적용함
- 가입하려면 기존 회원의 초대를 받거나 **IRC 면접**을 통과해야 했음
  - 면접은 오디오 형식, 리핑, 토렌트, 트랜스코딩에 관한 높은 이해도를 요구함
  - 온라인 음악 애호가 공동체에서 회원 자격은 불법 복제 세계의 성배처럼 여겨짐
- 4chan 음악 게시판에서는 회원들이 접근 권한을 자랑하거나 초대장을 구했고, 비공개 트래커가 과대평가됐다는 반응에는 흔히 [여우와 포도 우화](https://en.wikipedia.org/wiki/The_Fox_and_the_Grapes)가 인용됨
- `Counter Strike` 클랜의 회원에게 초대받은 뒤 “Beyond here is something like a utopia”라고 적힌 로그인 화면을 통과해 방대한 규칙과 자료를 접함
- 거의 모든 음악가의 앨범·재발매판·재프레싱판을 찾을 수 있었음
  - **FLAC 무손실 음원**부터 MP3 V2까지 다양한 품질을 제공함
  - CD·바이닐·디지털 다운로드 중 원하는 출처의 리핑본을 선택할 수 있었음
  - 오래된 Mediafire 링크를 찾거나 여러 토렌트 사이트를 뒤질 필요 없이 희귀 앨범까지 한곳에서 구할 수 있었음

### 엄격한 가입·시딩 규칙이 만든 신뢰성
- 새 회원이 초대장을 얻으려면 직접 여러 토렌트를 올리고 **Power User** 등급까지 올라가야 했음
- 전 What.CD 직원이자 운영자였던 가명 ‘Brian’에 따르면 이런 장벽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음
  - 공개 트래커는 수사기관도 쉽게 가입해 토렌트를 내려받고 연결된 이용자를 확인할 수 있지만, 비공개 사이트의 높은 진입 장벽은 접근을 어렵게 함
  - 공개 사이트에서는 다운로드 후 시딩을 중단하기 쉽지만, 비공개 트래커는 1인 1계정과 업로드·다운로드 비율을 추적해 자료를 계속 공유하도록 유도함
- **비율 관리**와 단일 계정 정책은 자료를 포괄적이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기반이 됨
- Brian은 2010년 면접을 통과한 뒤 사이트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들어간 노력과 이용자들이 보이는 존중에 놀람
  - 포럼과 IRC가 활발했고, 지식과 결과물이 지속적으로 관리되는 네트워크를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음
  - 밴드와 앨범마다 관련 음악가를 보여 주는 워드 클라우드가 있어 연결된 항목을 클릭하며 음악을 발견할 수 있었음
  - 회원들은 개인 취향이나 주제에 따라 “Pitchfork에서 10점을 받은 모든 앨범”, “표지에 기차가 있는 모든 앨범” 같은 콜라주를 제작함
- 2011년 운영진이 된 Brian에게 What.CD는 Reddit과 Instagram 댓글 중심의 인터넷에서 살아남은 **게시판형 공동체** 중 하나였음
  - 처음에는 면접팀에 참여했고, 이후 계정 규칙을 집행하는 운영팀에서 민감한 업무를 맡음
  - 고등학교 숙제를 하지 않는 시간에 운영 업무를 처리함

### 요청 보상 시스템과 Salinger 유출 사건
- 2011년 무렵 What.CD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음악 자료실**로 성장했으며, Oink의 실패에서 배운 운영 보안으로 수사기관의 주목을 피함
- 직원들은 법적 조치를 계속 우려했지만, Brian이 재직하던 시기에 가장 크게 체감한 위협은 J.D. Salinger 유산 관리 측과 관련된 짧은 사건이었음
- 인기 기능인 요청 시스템은 회원이 원하는 자료에 자신의 업로드 크레딧 일부를 보상으로 거는 **현상금 경제**였음
  - 일반적인 요청은 Amazon이나 iTunes에서 약 20달러를 내고 자료를 구매한 뒤 업로드하면 충족할 수 있었음
  - 아직 출시되지 않은 인기 음반에는 여러 이용자가 보상을 추가했고, 음반점 직원이 발매 전에 창고에서 사본을 가져와 올릴 유인이 생김
  - 이 구조 때문에 What.CD가 여러 앨범 유출의 최초 출처가 되기도 함
- 최대 요청은 Princeton Library의 잠긴 방에서 직원 감독 아래 예약 열람만 가능했던 Salinger의 미발표 단편 “**The Ocean Full of Bowling Balls**”였음
- 오랫동안 절대 충족되지 않을 농담 같은 요청으로 여겨졌지만, 2013년 11월 한 이용자가 1999년에 인쇄됐다고 알려진 원고 25부 중 하나를 찾아 [온라인에 유출함](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3/nov/28/salinger-unpublished-stories-leaked-online)
- 전 세계 언론이 이를 다루자 토렌트는 빠르게 삭제됨
  - Salinger 유산 관리 측이 적극적으로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사이트에 계속 둘 수 없었음
  - 운영진은 크게 경계했지만, Brian이 아는 범위에서는 실제 수사기관의 조치로 이어지지 않음

### 2016년 갑작스러운 폐쇄
- 2016년 11월 로그인 화면에는 최근 사건으로 What.CD를 폐쇄하며 현재 형태로는 곧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모든 사이트·이용자 데이터를 파기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남
- [프랑스 사이버범죄 사이트를 인용한 보도](https://pitchfork.com/news/69889-torrent-website-whatcd-shuts-down/)에 따르면 당국은 그날 What.CD 서버 여러 대를 압수함
- 폐쇄는 직원을 포함한 **16만5,000명 이상**의 등록 이용자에게도 예고되지 않았으며, 사이트는 돌아오지 않았고 추가 세부 정보도 공개되지 않음
- Brian이 파악한 사건의 흐름은 다음과 같음
  - 프랑스 집행기관이 내린 서버는 민감한 데이터를 저장하지 않는 역방향 프록시였지만, 실제 서버로 이어지는 연결 정보가 있었을 가능성은 남아 있었음
  - 해당 서버를 교체하고 프랑스의 호스팅을 다른 곳으로 이전해 운영을 계속할 수도 있었음
  - 그러나 운영진은 집행기관의 조치가 0건에서 1건으로 바뀐 순간 위험 수준도 달라졌다고 판단함
  - 당국이 다음 서버까지 추적할지 알 수 없어 모든 데이터를 삭제하고 운영을 중단함
- 운영진에게도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사이트와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짐

### 스트리밍이 대체한 접근성과 바꾸지 못한 경제
- What.CD 폐쇄와 비슷한 시기에 스트리밍이 대중화되고 CD 판매가 계속 감소하면서 음반사들은 물리 매체 발매에서 멀어졌고, 대형 사전 유출도 드물어짐
- 월 **10달러 구독**만으로 하드디스크에 파일을 내려받지 않고도 사실상 음악 세계 전체에 접근할 수 있게 됨
- What.CD 이용자들은 폐쇄 뒤 마지못해 Spotify 유료 이용자로 옮겨갔고, 음반사가 음악 불법 복제와의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한 것으로 받아들임
- Sheridan이 2007년에 예상한 것처럼 음악은 거의 무료에 가까워졌고, Oink 같은 불법 사이트만 제공하던 접근성을 이제 소액의 합법적 서비스가 제공함
- 그러나 현재의 **스트리밍 경제**는 음악가에게 지속 가능하지 않음
  - 음악이 무료에 가까워지는 과정에는 음악가 보상 방식을 재협상하는 해법도 포함됐어야 함
  - 월 수백만 회 재생되는 음악가도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반면 Spotify는 Joe Rogan에게 1억 달러를 지급함
  - 창작에 참여하지 않은 중개자가 큰 몫을 가져가고 음악가는 항상 마지막 순서로 밀림
- Spotify 모델은 좋아하는 식당에 티셔츠를 살 때까지 음식을 무료로 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비슷함
- 공연 수익이 충분하다면 스트리밍을 마케팅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음악가가 투어에서도 불리하고 돈이 억만장자와 기업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많아 그렇게 해석하기 어려움

### 음악 접근성 뒤에서 사라진 공동체
- What.CD의 핵심은 토렌트 기술보다 음악 팬들이 시간·노력·지식을 자발적으로 투입한 **공동체형 기록 보관소**였음
- 인터넷은 음악가에게 새로운 문을 열었지만, 온라인 공간의 기업화와 알고리듬 중심 전환은 유기적인 음악 발견과 독립 공동체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상을 남김
- 음반 산업은 불법 복제가 막았다고 여겨진 음악가의 재정적 안정성을 제공하지 못한 채, 낮은 보상과 획일화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내놓음
- What.CD가 갑자기 사라진 지 거의 10년이 지나도 로그인할 때 느꼈던 발견과 참여의 경험을 재현한 스트리밍 서비스는 없음
- 이용자의 음악 불법 복제는 과거가 됐지만, **음악가가 창작물에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문제**는 끝나지 않음

## Comments



### Comment 61933

- Author: neo
- Created: 2026-07-17T07:47:06+09:00
- Points: 1

###### [Hacker News 의견들](https://news.ycombinator.com/item?id=48930454) 
- 가장 그리운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문화적 공감대와 네트워크 효과**임. 당시에는 친구 집단마다 특정 하위문화를 파고들며 앨범을 모았고, 내 iPod은 우정의 결실처럼 온갖 음악으로 채워졌음  
  인기나 취향 알고리즘의 선입견 없이 앨범을 듣다가 남들은 건너뛴 곡이나 차트에 오른 적 없는 밴드를 사랑하게 됐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iPod까지 자기 음악이 전해진 줄도 모르는 캐나다 인디 밴드의 곡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음. Spotify에서도 앨범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감상의 90%는 좋아하는 곡과 똑같이 들리는 자동 재생목록으로 흘러가고, 곡명과 밴드명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게 됨. 의식적으로 AI 음악을 듣지는 않지만 재생목록이 서서히 AI 음악으로 채워져도 알아차리지 못할 듯함. 항의하는 마음으로 턴테이블을 사서 희귀 음반을 찾는 즐거움을 되찾았지만 예전과 같지는 않음
  - 내게는 반대로 **Spotify의 Discover Weekly**와 YouTube가 스스로는 만나지 못했을 다양한 음악을 찾아주는 훌륭한 수단이 됐음. 친구들과 음악 취향이 상당히 다른데, Spotify를 다르게 사용해서인지 알고리즘이 특이한 취향에 적응해서인지는 모르겠음
  - 알고리즘보다 플랫폼이 쓰는 **발견이라는 표현**이 오해를 부름. 진짜 발견에는 다음 음악가를 고르는 시간, 왜 좋아하는지 돌아보는 과정, 소장 목록을 다듬는 일, 다른 사람과 감상을 교환하는 일이 필요하지만 플랫폼은 이를 몇 분이나 몇 초로 압축한 효율성을 판매함  
    Instagram은 계속 짧은 영상을 떠먹여 성찰할 시간을 없애고 이를 콘텐츠 발견의 해결이라고 부르며, LLM도 방대한 정보를 떠먹여 생각할 여백을 없앰. 이런 서비스는 접근성을 해결할 뿐 발견이나 깊은 성찰, 회고까지 해결하지 않는데도 마치 전부 해결한 것처럼 포장함. 직접 멈추고 생각하려면 훑어보기보다 열 배는 많은 시간이 들지만 그 과정이 필요함. 이 글도 LLM으로 빠르게 쓸 수 있었겠지만, 내 생각을 공개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성찰하려고** 20분을 들여 썼음. 필요한 것은 글쓰기나 발견을 대신하는 도구가 아니라 성찰을 돕는 도구임
  - 2026년에도 **친구들의 취향이 모인 iPod** 같은 경험을 되살릴 수 있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과 만날 때 Spotify나 Apple Music에서 빈 재생목록을 만든 뒤 휴대전화를 건네고 곡을 추가해 달라고 부탁함  
    핵심은 내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고르지 말고, 상대가 열정을 느끼는 곡이나 앨범만 넣으라고 하는 것임. 서로의 음악 취향을 진심으로 알고 싶다는 뜻도 전해져 즐겁게 관계를 쌓을 수 있음
  - 그 네트워크 효과의 상당 부분은 **젊었기 때문**일 수도 있음. CD를 복사하던 시절의 우리는 대개 십 대나 청년이었고 음악 공유 자체가 함께 즐기던 활동이었음  
    Spotify 같은 플랫폼을 계속 이용하면서 불평만 할 필요도 없음. 이사했다고 계정을 삭제당한 뒤 앱도 지웠고, 이제 아이와 도서관에 갈 때 음악을 빌림. Bandcamp, Qobuz, 지역 축제의 낯선 밴드, iPod 개조 등 대안은 많으며 Constantinople과 Huun-Huur-Tu도 지역 축제에서 발견했음
  - 내 음악 애호가 친구들은 Spotify에서 바로 그런 **친구 기반 네트워크 효과**를 누림. 파일 대신 재생목록을 공유하고, 추천을 통해 친구의 친구와도 연결됨  
    모임에서 누군가 특정 재생목록 연작을 만든 친구를 알아보고 한 시간 동안 음악과 공연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음. 즐거움의 핵심은 불법 복제라기보다 음악을 얻던 방식의 새로움과 당시의 나이였을 가능성이 큼. 이제 어떤 음악에도 빠지지 못한다면 불법 복제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음악과의 신혼기가 끝난 것에 가까워 보임. 이전 세대도 부트레그 테이프, 친구의 믹스테이프, 공연이 진짜 재미였다며 온라인 불법 복제가 음악 발견을 망쳤다고 했으니 같은 순환이 이어지는 셈임

- 지금도 스트리밍 서비스에는 세상 모든 음악이 보관돼 있지 않으므로 **음악 불법 복제의 필요성**이 남아 있음. 노르웨이 경제지 D2에 실린 앨범조차 합법 경로에서 찾지 못해 Discogs에서 중고 CD를 50~100달러에 사거나 옛 사이트의 후계 서비스를 알아야 할 수 있음  
  그런 CD는 Oink나 What에도 없었거나 서비스 이전 과정에서 사라졌음. [https://www.dn.no/d2/musikk/stena-line/lars-holte/spotify/ha...](<https://www.dn.no/d2/musikk/stena-line/lars-holte/spotify/han-solgte-mer-plater-enn-a-ha-og-dde-men-eventyret-var-over-nesten-for-det-startet/2-1-691950>)
  - 스트리밍 서비스는 한편으로 **전 세계 음악에 대한 접근성**을 제공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8비트 커버와 AI 음악이 넘치지 않도록 걸러야 하는 어려운 위치에 있음. 예전 음반 매장처럼 무엇을 음악으로 소개할지 결정하는 중재자 역할도 맡게 됨
  - 일부 음악은 **유기된 비디오 게임**과 비슷함. 권리자를 알아내기 어렵고, 찾아낸 뒤 허락을 받기는 더 어려우며, 스트리밍 수익 6센트를 위해 서류와 절차를 요구하면 무명 음악가는 거절할 수도 있음  
    불법 복제가 없었다면 완전히 잊혔을 앨범도 많았을 것임
  - 스트리밍에 모든 음악이 있더라도 소장하려면 결국 **DRM 없는 사본**이 필요함. 전부 디지털 판매되거나 DRM 없이 제공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임
  - 그 앨범은 **Spotify에서도 찾을 수 없는지** 궁금함
  - Ray Manzarek와 Roy Rogers의 **Translucent Blues**가 어떤 합법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없고 YouTube의 앨범 전체 업로드 하나만 남아 있어 안타까웠음

- iPod 시대의 Apple은 사람들이 **불법 복제 음악을 재생할 기기**를 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임. 저장 가능한 곡 수와 음악 가격, 소비자의 가처분소득을 비교하면 합법 구매만으로 기기를 채우기 어려웠음  
  iPod과 P2P 파일 공유는 놀라울 만큼 상승효과를 냈고, iTunes Store는 합법 음원점인 동시에 음반사를 Apple 생태계에 끌어들이는 수단이었음. 당시의 기술 혁신은 착취적인 기업을 곤란하게 하면서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던 시절처럼 느껴짐
  - 이미 보유한 **CD 소장품을 휴대용 기기**에 옮기려는 수요도 흔했음
  - 모든 스트리밍의 기원을 불법 복제에서 찾을 수도 있음. Spotify는 불법 음원으로 초기 목록을 채웠다는 의혹이 있고, Crunchyroll은 **애니메이션 불법 공유 사이트**로 출발했음
  - **iTunes Match**는 불법 복제 음악까지 합법화해 주기도 했음. [https://news.ycombinator.com/item?id=2625967](<https://news.ycombinator.com/item?id=2625967>)
  - 당시 iTunes는 구매하지 않은 음악이라고 판단하면 **전체 보관함을 삭제**하는 것으로 악명 높었기에 Apple이 불법 복제를 묵인했다고 보기는 어려움
  - 첫 iPod은 Wi-Fi가 없었고 Nomad보다 작은 **5GB 저장 공간**만 제공해 128kbps 기준 약 85시간을 담을 수 있었음. 당시 보유한 CD만 해도 그보다 많았음  
    영국에서는 자기 CD를 추출하는 일조차 기술적으로 불법이라니 다시 CD를 사는 편이 나을 듯함

- What.cd는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지닌 방대한 자원이었지만 가장 그리운 것은 **포럼의 깊이**임. 논문만큼 긴 글을 쓰면 다른 사람도 같은 정성으로 답했고, 주제 하나를 토론하려고 몇 시간씩 조사했으며 아마 그곳에서 가장 좋은 글을 썼음  
  높은 진입 장벽이 잡음을 줄이고 공동체에 진지하게 참여할 사람을 모았으며, Hacker News도 그 포럼에서 알게 됐음. 앨범별 댓글과 포럼의 사람 추천은 알고리즘 추천보다 훨씬 뛰어났고, What에서 음악을 소비하는 일은 절반이 학습이었음. 저조한 음반 판매의 원인은 불법 복제가 아니라 **유통 문제**였고 역사가 이를 입증했으며, 프랑스 당국보다 Spotify가 먼저 What.cd를 죽였다고 봄
  - What.CD 포럼은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아이디어와 정성을 들고 모인 학회 같았음. 후계 사이트는 더 작고 조용해서 서로를 모두 아는 단골 술집에 가깝게 느껴짐  
    지금도 그곳에서 음악을 발견하고 수집하지만 What.CD 포럼은 내가 겪은 최고의 포럼이었으며, 누군가 보관해 두어 옛 스레드를 다시 읽을 수 있기를 바람
  - **초대 전용 음악 불법 공유 사이트**라는 조건이 공동체를 만들기에는 꽤 좋은 기반이었지만, 내가 쓴 글의 품질은 그리 높지 않았음
  - 글의 수준을 생각하면 **What.cd 포럼 보관본**이 어디엔가 남아 있기를 바람
  - 흥미를 끝까지 유지해 주는 잘 쓴 장문을 읽으니 인터넷 장문을 읽는 능력을 잃은 게 아니었음. 남용되는 **AI 상투어**와 본론 전에 관계자들의 불필요한 인생사를 여러 문단 늘어놓는 글에 지쳤을 뿐임

- 어디를 찾아야 하는지 알면 **음악 불법 공유 생태계**는 여전히 건재함. 2000~2010년대 OiNK, What, Waffles의 마법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잘 관리되는 사이트가 아직 존재함
  - 서구권의 공개 P2P 공유는 거의 죽었고 **Rutracker**만 활발하게 유지됨. 5년 전 모은 P2P 사이트 북마크 중 60%가 사라졌으며, 서구권 비공개 초대 사이트는 주로 해외 시드박스로 모든 자료를 배포하는 열성 이용자가 떠받침함  
    Rutracker는 다른 길을 택해 기부금을 모아 보존 담당자들에게 HDD를 사 줬고, 데이터센터 서버 비용과 달리 일회성 투자로 처리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는 보통 가정 회선으로 직접 배포함
  - 여러 음악 트래커에 좋은 자료가 많아도 **What.cd의 보관 규모**는 특별했음. What.cd에서 산 맥주 냉각기는 가장 자랑스러운 소장품 중 하나임
  -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쉽게 내려받을 수 있어, 인터넷이 안 되는 자동차 같은 곳을 위해 **터미널에 링크를 붙여 넣는 것**만으로 추출할 수 있게 됨
  - Undernet 등의 옛 IRC 채널도 있었음. 차단당할 정도의 노골적인 불법 자료는 아니면서 공식 지원도 없는 회색지대에 머물렀고, 공동체 채팅과 음악 추천, 관리자 봇, 잡학 퀴즈가 `#mp3_...` 같은 채널에 함께 있었음
  - 새 음악을 찾기가 정말 어려움. SD 카드의 곡은 지나치게 반복해 들었고, 어릴 때 좋아했던 록과 유명 밴드 앨범은 대부분 확보했지만 지금 좋아하는 **전자음악**은 좋은 곡을 찾기 힘듦  
    2000~2010년대 팝 테크노 명곡 폴더가 있고 Basshunter가 경력 전체보다 더 큰 행복을 줬으며, 집에서는 주로 SomaFM의 앰비언트를 들음. Hello Meteor는 최악의 앨범도 9점짜리지만 Darren Tate는 대부분 형편없다가도 `Prayer For God`처럼 다이내믹 레인지를 훌륭하게 다룬 곡을 내놓음. 많은 DJ가 대량으로 평범한 곡을 만들다가 운 좋게 한 곡만 건지는 듯해 좋은 전자음악을 찾기가 특히 어려움

- OiNK 이후 무엇도 같은 느낌을 주지 못했지만, 수십 년 뒤 **금요일 신작 탐색**을 시작하면서 그 이상의 발견감을 되찾았음  
  좋아하는 세부 장르를 기준으로 다음 주 발매 목록을 훑고 모든 Bandcamp 링크를 새 탭에 열며, Bandcamp가 없으면 장르에 따라 YouTube에서 싱글을 찾음. 약 100개 링크를 몇 초씩 들어 본 뒤 10~20%를 Excel에 기록하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앨범 전체를 감상해 보통 1~2장을 구매함. 손은 많이 가지만 음악을 이만큼 높이 평가한 적은 없었음
  - **금요일 신작 탐색**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함
  - OiNK는 음악뿐 아니라 공동체였기에 무너졌을 때 정말 상심했고 티셔츠도 늘 갖고 싶었음. Waffles가 장기 후계자가 될 줄 알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고, What.cd도 OiNK만큼 몰입하게 만들지는 못했음  
    지금은 Plexamp에 남은 옛 보관함을 작은 **음악 타임캡슐**처럼 간직한 채 평범한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자가 됐음

- Audiogalaxy와 특히 **Soulseek의 공동체**가 그리움. 희귀 브레이크코어나 일본 개러지 펑크처럼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 소장 목록을 구경하고 직접 대화할 수 있어 음악 친구와 좋은 추천을 얻는 훌륭한 방식이었음
  - **Soulseek**는 여기 나온 서비스 중 최고이며 거의 모든 자료를 찾을 수 있음. 25년간 유지된 거대한 공동체에 무손실 음원까지 폭넓게 갖춰져 있고, 수백만 개의 음원 파일과 체계적으로 정리된 50TB 데이터를 가진 사람도 있음  
    지금 시점에서는 서비스를 폐쇄하기도 상당히 어려워 보임
  - 자유 소프트웨어와 UNIX 이용자라면 [https://nicotine-plus.org/](<https://nicotine-plus.org/>)를 쓸 수 있음. 다만 중앙 서버가 독점 소프트웨어이고 BitTorrent보다 사용성이 덜 다듬어졌으며, 내려받는 음반의 정확한 `LABEL/CATALOGNUMBER`를 확인하고 싶어 비공개 트래커로 옮긴 뒤에는 사용하지 않음
  - Audiogalaxy는 현재 접속 중인 파일뿐 아니라 **과거 한 번이라도 공유된 모든 파일**을 찾아보고 다시 온라인이 될 때까지 대기열에 둘 수 있어 훌륭했음  
    별도 전화선이 없던 시절, 모두 외출하면 전화선을 점유한 채 전화 접속 인터넷으로 실행해 두었다가 돌아와 보면 대기열에 넣은 사실조차 잊었던 파일들이 받아져 있어 신났음
  - **Soulseek**는 지금도 활발하게 돌아감
  - 합법 서비스 쪽에서는 초기 **last.fm**이 훌륭했음. 학생 시절 자동 추천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청취 습관을 Soulseek 소장 목록처럼 둘러보며 며칠씩 새 음악을 발견했음

- “정보는 자유로워지려 한다”와 “자동차를 내려받지는 않겠죠”가 유행하던 시절이 떠오름. 요즘은 지식재산권을 옹호하는 글이 많아 Hacker News가 낯설 때도 있음  
  다만 1990년대와 2000년대 초가 정말 더 좋았는지, 그 시절을 겪은 이들이 나이 들어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뿐인지는 의문임
  - 기업이 저작권으로 개인을 착취할 때는 **저작권에 반대**하면서도, 기업이 개인의 권리를 무시해 착취할 때는 저작권 또는 최소한 동등한 집행을 지지할 수 있음. 핵심은 문화적 착취와 사회적 영향임
  - AI가 **정보는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관념**을 바꿨음. AI 기업은 불법 자료까지 가능한 모든 정보를 가져와 모델에 넣고, 저작권이 걸린 원본과 비슷한 결과를 저작권에서 세탁된 형태로 질의할 수 있게 했음  
    정보가 실제로 더 자유로워지자 그것을 만든 사람이 억만장자나 무명의 대기업만이 아니라 우리 같은 개인이며, 이들의 생계와 후속 창작이 타격받는다는 사실이 드러남. 예전 불법 복제는 가난한 십 대의 반항이라 공감하기 쉬웠지만, 지금은 **수조 달러 규모 기업의 산업적 수집**이라 동정하기 어려움
  - 내려받기 속도를 빼면 불법 복제의 난이도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임. 과거에는 평범한 이용자가 법적 조치를 당할 위협이 더 컸고, 현재 배포 집단은 출시 속도보다 품질과 파일 크기에 더 집중함  
    전체적으로는 오늘날의 **불법 복제 생태계가 더 건전한 상태**라고 봄

- 13살 때 사촌에게 LimeWire를 소개받았고 무작위 음란물 제목 사이에서 **Burial**이라는 음악가를 발견했음. 이름이 거칠게 느껴져 내려받았는데 대단한 행운이었음
  - 과격한 뉴 메탈을 배경으로 편집한 **Final Fantasy FMV**도 그 시절의 상징임. LimeWire 티셔츠도 가지고 있었고 회사가 대학에서 면접까지 진행했는데, 그 중요한 역사적 물건이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음

- 폐쇄형 비공개 트래커는 **인류 문화를 보존하는 희망의 보루**임. OiNK 이후 세대가 바뀔 때마다 더 나아졌고, 현재 사이트가 언젠가 닫히더라도 공동체는 계속 살아남을 것임  
  소수만 기억하는 잊힌 언더그라운드 음악이나 특정 바이닐의 고유한 소리를 다른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음. 결국 이를 지탱하는 것은 공동체와 음악에 대한 애정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