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컴퓨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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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xguru](https://news.hada.io/@xguru)
- Published: 2026-05-25T22:39:36+09:00
- Updated: 2026-05-25T22:39:36+09:00
- Original source: [susam.net](https://susam.net/childhood-computing.html)
- Points: 1
- Comments: 1

## Topic Body

- **어린 시절 컴퓨팅**은 1992년 여덟 살 때 전학 간 학교의 컴퓨터실에서 시작됐고, 작은 산업 도시 학교에 컴퓨터실이 있다는 것 자체가 특별했음
- 컴퓨터실의 IBM PC 호환 기종은 **실리카 공장**에서 물려받은 오래된 기계였고, 한 달에 약 두 시간만 5¼인치 플로피로 MS-DOS와 Logo를 실행할 수 있었음
- 하드디스크가 없고 저장 공간이 귀해 작업은 전원을 끄면 사라졌으며, 프로그램 보관은 코드를 **공책에 손으로 적는 일**에 가까웠음
- 실제 컴퓨터 시간이 적어 대부분의 **Logo 프로그래밍**은 집에서 펜과 그래프 종이로 이뤄졌고, 친구들은 코드를 베껴 변형한 뒤 다시 입력했음
- Moon Bugs, Space Invaders, Digger, Grand Prix Circuit 같은 게임은 직접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남겼고, 30년 뒤에도 **소리와 냄새**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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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실에서 시작된 어린 시절 컴퓨팅
- **Susam Pal의 어린 시절 컴퓨팅**은 1992년 여덟 살 때 전학 간 학교의 컴퓨터실에서 시작됐고, 작은 산업 도시의 학교에 컴퓨터실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당시에는 특별했음
- 컴퓨터실의 기계들은 마을의 중심이던 **실리카 공장**에서 물려받은 오래된 IBM PC 호환 기종이었고, 한 달에 약 두 시간만 사용할 수 있었음
- 컴퓨터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신발을 벗어야 했고, 교사는 비싼 기계를 먼지 없이 유지해야 한다고 안내함
- 대부분의 컴퓨터는 **흑백 CRT 모니터**를 달고 있었고, 하드디스크는 없었으며, RAM은 몇백 KB 수준에 그침
- 매번 5¼인치 플로피 디스크로 MS-DOS를 메모리에 올린 뒤, 다른 디스크로 `LOGO.COM`을 실행해 작은 Logo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거북이를 움직였음
- 하드디스크가 없고 저장 공간이 귀해 작업은 저장되지 않았고, 컴퓨터를 끄면 모두 사라졌음
- 프로그램을 남기는 방법은 코드를 **공책에 손으로 적는 일**이었고, 초기 Logo 프로그래밍에 대한 별도 기록은 [FD 100](https://susam.net/fd-100.html)에 남아 있음

### 종이 위의 프로그래밍과 게임의 기억
- 실제 컴퓨터 사용 시간이 너무 적어 대부분의 **Logo 프로그래밍**은 집에서 펜과 종이로 이루어졌고, 그래프 종이에 결과를 따라 그리며 프로그램을 “테스트”함
- 이렇게 준비한 프로그램은 컴퓨터실에서 약 30분 동안 실제로 실행할 수 있었음
- 기억에 남는 Logo 프로그램은 집 모양 윤곽을 따라 움직이는 **애니메이션 점선**을 그렸고, 친구들은 코드를 베껴 쓰고 세부를 바꿔 자신만의 변형을 만들었음
- 이 프로그램은 사실상 첫 “자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처럼 받아들여졌고, “원하는 대로 해도 되지만 재미있는 수정을 하면 보여달라”는 식의 비공식 라이선스가 붙었음
- 배포 방식은 완전히 아날로그였고, 친구들이 연필로 코드를 공책에 옮긴 뒤 컴퓨터실에서 다시 입력함
- Logo 과제를 성공적으로 끝내면 교사가 컴퓨터 게임을 하게 해줬고, 처음 해본 게임은 **Moon Bugs**였음
- 좋아했던 게임에는 **Space Invaders**, Bricks, Grand Prix Circuit이 있었음
- Space Invaders는 직접 게임을 만들고 싶게 했지만, 당시 알고 있던 GW-BASIC과 제한된 컴퓨터 접근만으로는 단순한 텍스트 입출력 프로그램보다 복잡한 것을 만들기 어려웠음
- 2022년 성인이 된 뒤에야 Invaders풍 게임인 [Andromeda Invaders](https://susam.net/invaders.html)를 만들었고, 5초를 기다리면 자동으로 플레이되는 모드도 포함함
- Windmill Software가 만든 **Digger**는 자체 부팅 디스크로 제공되어 DOS 디스크를 먼저 넣는 절차 없이 바로 부팅해 실행할 수 있었음
- Accolade Inc.의 **Grand Prix Circuit**은 `GPEGA` 명령으로 실행했고, 오프닝 음악을 기다리게 만든 게임이었음
- Logo와 GW-BASIC으로 기본적인 2차원 도형만 그리던 시절에는, 키보드 입력으로 탐색 가능한 3차원 가상 세계의 투영을 컴퓨터 프로그램이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옴
- 30년이 넘은 뒤에도 컴퓨터실의 **기계 소음**, POST 비프음, 닫힌 에어컨 방의 특유한 냄새가 선명하게 남아 있음
-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비슷한 냄새를 마주치면 어린 시절 컴퓨팅의 초기 기억으로 되돌아가며, 그 경험은 경이와 탐험으로 가득한 가장 강하고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음

## Comments



### Comment 58207

- Author: neo
- Created: 2026-05-25T22:39:37+09:00
- Points: 1

###### [Hacker News 의견들](https://news.ycombinator.com/item?id=48256597) 
- 1985년에 **C64**를 샀고, 지금은 에뮬레이터나 YouTube로 그래픽과 사운드를 다시 볼 수 있지만 전원을 켠 직후 케이스에서 새어 나오던 **따뜻해진 회로기판 냄새**가 늘 기억남  
  같이 온 카세트 플레이어는 테이프 헤드 설정이 틀어져 있었는데,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왜 대부분의 게임이 로드되지 않는지 아무도 몰랐음. 그래도 프로그램 저장과 로드는 됐고, 사용자 설명서와 도서관에서 찾은 프로그래밍 책의 게임 목록을 따라 BASIC 프로그램을 입력해 내 카세트에 저장하기 시작함  
  설명서에는 BASIC 튜토리얼뿐 아니라 그래픽, 스프라이트, 사운드 같은 하드웨어 기능도 나와 있어서, 특정 주소에 특정 숫자를 `POKE`하면 스프라이트를 화면에 띄우고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됨. 카세트 플레이어를 고치고 번들 게임을 로드할 수 있게 됐을 때는 이미 프로그래밍에 깊이 빠져 있었고, 그 게임들도 결국 누군가 앉아서 만든 것이라면 나도 배울 수 있다고 느꼈음. 그 뒤로 계속 프로그래밍하고 있음
  - **C64 운영체제**가 BASIC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였다는 점이 정말 좋았음. 게임을 하려고 하드웨어를 쓰더라도 `LOAD "*",8,1` 같은 식으로 약간의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했음
  - 처음에는 C64만 살 돈이 있었고, 직접 입력한 프로그램의 **체크섬**이 맞으면 정말 안도했음. 저장 매체가 없으니 그 순간뿐인 프로그램이거나 카트리지뿐이었고, 나중에 테이프 드라이브를 사고 마지막으로 하드 드라이브를 샀음  
    그래도 Apple II나 Sinclair, Ti99 같은 경쟁 기기와 비교하면 기능 대비 꽤 싼 편이었다고 봄

- 학교에는 **Windows 3.1**이 깔린 오래된 컴퓨터들이 있었고, 터치 타이핑 프로그램만 쓸 수 있었음  
  첫 가족 컴퓨터는 1995년에 샀고, 기억이 맞다면 166MHz Pentium / 16MB RAM / Windows 95였으며 당시 가격이 3,500~4,000달러 정도였음. 3년 뒤 Half-Life 출시 직후 복사본을 구했는데, 별도 그래픽 카드가 있는 그 컴퓨터로도 겨우 돌렸음. 그 시절 게이머로 최신 그래픽을 따라가는 건 정말 비쌌음  
  그 전에는 전동 타자기가 있었고, 컴퓨터의 주 용도도 문서 작성과 업무였음. 첫 프로그래밍 경험은 HTML 파일 편집이었고, 도서관에서 프로그래밍 책을 찾아봤지만 인구 3,000명짜리 시골이라 Pascal 또는 Delphi 책 하나뿐이었음  
  동네에 “컴퓨터를 정말 잘한다”는 몇 살 위의 천재 아이가 있다길래 찾아갔더니 방 선반에 큰 **Borland C++** 박스가 있었고, 직접 만들던 3D 비행 시뮬레이터 클론과 Doom 비슷한 것을 보여줘서 압도당했음. 그는 닷컴 붐 때 아주 잘됐고 대학을 건너뛰고 바로 취업함  
  몇 년 뒤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반쯤 은퇴한 개발자가 동네로 이사 와 학교와 협력하며 Java 프로그래밍 수업을 열었고, 훌륭한 선생님이어서 그때 컴퓨터 일을 하고 싶다고 결심함
  - 내 경력은 사실상 **두 번의 큰 행운** 덕분임  
    첫 번째는 1990년대 초 아버지가 자영 출판 일을 돕기 위해 PC를 샀고, 당시 PC들처럼 QBasic과 GORILLA.BAS 같은 게임 소스 코드가 미리 들어 있어 혼자 있는 시간이 많던 내성적인 아이가 마음껏 만져볼 수 있었던 것임  
    두 번째는 비교적 예산이 있는 컴퓨터실과 아주 열린 마음의 컴퓨터 교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다닌 것임. 믿을 만하다는 걸 보이면 거의 원하는 걸 하게 해줬고, 학교는 대체로 Mac 중심이었지만 나는 고등학교 때 Microsoft 쪽을 좋아해서 졸업할 무렵 학교 신문용 **Windows NT 파일·웹 서버**를 세우고 운영할 수 있게 됨. 다른 친구는 Linux에 빠져 있었고 RedHat으로 제도실에 비슷한 걸 할 수 있게 허락받았음  
    성향과 기회가 맞아떨어졌고, 그렇게 이후 25년 동안 기술 분야에서 일하게 됨  
    지금 걱정되는 건 너무 많은 기술이 잠겨 있다는 점임. 오늘날 그런 자유를 주는 학교는 드물 것이고, 휴대폰에는 IDE가 미리 설치되어 있지 않으며 “승인되지 않은” 앱 설치조차 공격받고 있음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산업, 도구, 운영체제는 더 열려 있어야 함. **만져보고 고칠 수 있어야** 가장 동기 있는 아이들이 배운다. 어딘가의 헤지펀드 수익률을 극대화하려고 모든 걸 닫아버린 탓에 뛰어난 인재들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고, 미국의 금융화는 큰 실수였음
  - 터치 타이핑 시험용 지문이 네트워크 어디에 저장돼 있는지 찾아낸 적이 있음. 그 뒤 시험이 꽤 웃겨졌음  
    물론 사춘기였던 내 기준에서 웃겼다는 뜻임

- 9살쯤 **RPG Maker**에서 갑자기 변수를 이해한 순간이 기억남. 그 전에도 HTML 같은 건 해봤지만, 변수를 이해하자 세상이 열렸고 VB6 프로그램도 가능해졌으며 모든 게 갑자기 맞아떨어졌음  
  작동 원리의 기초를 한 번 이해하면 아이나 청소년은 이후 아주 빠르게 발전하기 쉽다고 느낌. 내 아이에게도 가능한 한 이른 시기에 **컴퓨팅의 기초**를 이해하게 해주고 싶고, 그래야 세상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 알 수 있다고 봄
  - 간단한 텍스트 기반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Pascal의 조건문만으로는 부족했음. 아버지에게 물었더니 내가 원하는 건 **반복문**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해주셨고, 그 순간 어떤 프로그램이든 쓸 수 있는 도구를 모두 받은 느낌이었음
  - 어릴 때 PHP에서 **클래스**가 뭔지, 왜 유용한지 이해하지 못해 고생했던 기억이 있음. 쓸데없는 추상화처럼 보였지만 결국 이해되는 순간 세상이 열렸고, Zend Engine을 훨씬 더 많이 이해하게 됐으며 소프트웨어 공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함  
    물론 나중에 다시 깨달음을 얻어서 지금은 클래스를 피함

- 1980년대 중반의 **Tandy 1000 SX** 때문에 내 삶 전체가 기술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됨  
  몇 살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한 자릿수 나이였을 때 아버지가 집에 가져오셨고, 아버지는 지역 소매 체인의 초기 컴퓨터 기반 판매시점관리 시스템과 사무실 메인프레임을 관리했음  
  필기체 쓰는 법보다 먼저 게임을 하려고 사운드·그래픽 카드의 **IRQ 인터럽트**를 설정하는 배치 파일을 만드는 법을 배웠고, 8~9살에는 컴퓨터 캠프에서 BASIC으로 게임 만드는 법을 배움. TandyNet으로 처음 온라인을 경험했고, 90년대 중반 HTML 0.9로 첫 웹사이트를 만들었음. 정신없는 시기였지만 약 30년 된 지금의 IT 경력으로 이어짐
  - 나도 같은 **Tandy 1000 SX**와 Commodore 64를 갖고 있었음. 부모님이 비디오 게임을 좋게 보지 않아서 Pac-Man 말고는 한 자릿수 나이에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장비였음  
    요즘 컴퓨터에 대한 큰 불만은 코딩을 “배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점임. Commodore 같은 경우 인터페이스 자체가 프로그래밍 언어였고, 어떤 의미에서는 쓰기 위해서라도 약간의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했음. iOS 기기는 오랫동안 로컬 개발이 불가능했는데, 초창기보다는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도 JIT는 허용되지 않음

- 내게는 **소스 보기 시대**가 시작점이었음. 2001년쯤 Geocities 페이지의 HTML을 복사해 Notepad에서 수정했고, 프로그래밍 언어가 뭔지는 몰랐지만 배경색을 바꾸고 marquee를 추가하는 법은 알았음  
  저장하고, Alt-Tab으로 전환하고, 새로고침하는 즉각적인 피드백만으로도 빠져들기에 충분했음

- 냄새 얘기가 강하게 와닿음. 대학교수의 자녀라 대학 컴퓨터실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었고, 교수실 냄새는 플라스틱, 먼지, 약간 탄 고무 냄새였음  
  그 냄새는 내게 하나의 세계였고, 멋진 게임뿐 아니라 그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어른들의 **마법 같은 세계**에 접근한다는 뜻이었음  
  12~13살 때 아버지가 제곱근 방정식을 계산하는 Turbo Pascal 프로그램 출력물을 주며 입력해서 실행해보라고 했고, 그게 내 프로그래밍 경력의 시작이었음

- 어린 시절 컴퓨터를 접할 행운은 없었지만, 이런 글은 특히 **소리** 때문에 향수를 느끼게 함. 제한된 자원 속에서도 그 시절 사람들은 좋은 것들을 만들어냈음

- 게임을 돌리려고 **MS-DOS 시작 설정**을 최적화해서 사용 가능한 메모리를 확보하던 기술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함. gorillas.bas를 들여다보던 것도 기억남  
  내게는 아마 더 배우고 실험하고 싶게 만든 계기였음. 아들에게도 비슷한 창의적 탐색을 권하고 싶은데, 지금 세대의 게임과 영상에 끌려가는 환경에서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음
  - `DEVICE(HIGH)` 줄을 만지고 `FILES=`와 `BUFFERS=`를 조정하고, `MEMMAKER.EXE`를 몇 번이고 돌리며 뭔가 달라질 것처럼 기대하던 시간이 인정하기 싫을 만큼 많았음. 하지만 진짜 핵심은 제조사가 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기계가 하게 만드는 것**이었음  
    지금 세대 아이에게는 합리적인 모딩 API가 있는 게임, 예를 들면 Lua 같은 스크립트를 쓸 수 있고 멀티플레이에서 만든 것을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찾아볼 것 같음  
    그다음에는 Lua를 계속 쓰면서도 게임 전체를 제어할 수 있는 **LÖVE** 같은 패키지로 넘어가, 프로그래밍을 실제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탐색하고 다루도록 도와주면 좋겠음. 더 낮은 수준에 관심을 보이면 더 깊이 파고들게 돕겠지만, 시작점으로는 모딩과 스크립팅이 가장 좋아 보임
  - 오래돼서 희미하지만 조금 기억남. 설정 파일을 망쳐서 이웃집에 뛰어가 작동하는 설정 파일을 복사해오던 것도 기억남. 아마 `Himem.sys`였던 듯함
  - 맞음. `config.sys`, `autoexec.bat`, EMS, HIGHMEM, 초기 Sound Blaster 드라이버, 마우스 드라이버, 네트워크 드라이버가 전부 골칫거리였음  
    가장 실행시키기 어려웠던 건 Quarantine이었던 것 같지만, 확실히 최고의 게임 중 하나였음. 그 시대치고 상상력이 대단했고, 호주 게임이었으며, 나중에 유명해진 밴드들의 음악도 들어 있었음  
    [https://www.youtube.com/watch?v=QwO8XWbB1Pk&list=PLA5hK1g6CN...](<https://www.youtube.com/watch?v=QwO8XWbB1Pk&list=PLA5hK1g6CNRuQ5MDeW0etmhRnf6XY1DE3>) [https://www.playdosgames.com/play/quarantine](<https://www.playdosgames.com/play/quarantine>)

- 나도 어릴 때 컴퓨터를 쓰기 시작해 좋아했고 Nintendo도 갖고 있었지만, 요즘의 **반(反)스크린 유행**에는 마음이 복잡함  
  아들은 아직 아주 어리고 아내는 스크린을 전혀 쓰지 않길 원함. TikTok이나 Facebook을 쓰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Apple II를 사거나 Raspberry Pi 에뮬레이터를 마련해 온라인이 아니던 옛날 작은 게임들을 같이 할까 생각 중임
  - 우리도 지금 아이들과 같은 단계에 있음  
    완고한 “스크린 금지” 사고는 아동 웰빙 분야의 비기술적 리더들이 붙잡은 넓은 붓질 같은 지렛대라고 보이고, 그 배경은 이해함  
    하지만 어릴 때 기술을 만지고 실험할 수 있었던 덕분에 먹고사는 사람으로서는 더 균형 잡힌 접근을 보게 됨. 인터넷에서 분리한 **Linux 박스**를 마련해 아이들이 마음껏 만지게 할 수도 있음. Windows는 XP 시절 이후 많이 발전했지만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갔다고 봄  
    이렇게 하면 Big Tech의 심리적 반복 고리나 YouTube의 알록달록한 도파민 기계에 갇히지 않을 수 있고, 사실 “스크린 금지”의 동기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함. 잘 조절된 노출은 필수임

- 그 시절 그래픽 프로그래밍의 좋은 점은 화면에 뭔가를 그리면 프로그램이 지울 때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임  
  덕분에 멋진 그래픽을 쉽게 만들 수 있었음. 예를 들어 원의 점들을 계산해 하나씩 찍으면, 화면에는 원이 그려지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음  
  “현대적” 그래픽 라이브러리들은 SDL도 아마 포함해서, 매 프레임 화면 전체를 다시 그리게 만들어 이런 방식을 어렵게 했고, 같은 효과를 내려면 프로그램이 이전에 그린 모든 점을 기억해야 함  
  예전 작업 흐름은 그래픽 프로그래밍을 정말 재미있게 만들었지만, 현대의 **빠른 렌더링 파이프라인**은 지루하고 재미가 적음. 그런 것들이 하나씩 컴퓨팅의 재미를 빨아들였음
  - 이른바 **보존 모드**와 **즉시 모드** 그래픽 라이브러리는 대부분의 플랫폼에 계속 존재하고, 원하는 쪽을 골라 쓰면 됨
  - 이 글을 보니 깊은 기억 하나가 갑자기 맞춰짐  
    80년대 초 IBM PC가 등장했을 때 Hercules의 그래픽 카드는 CGA보다 뛰어난 놀라운 물건이었음. 아버지 친구 집에서 그걸로 원 같은 걸 그려봤는데, 그 컴퓨터에서는 그래픽이 **그대로 유지**됐음. 화면 지우는 법을 알아내야 했지만, 내 컴퓨터에는 Hercules 카드가 없어서 유지되지 않았음. 지금까지 무슨 일이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알겠음
  - 오래돼서 10년도 넘었지만, SDL은 새 내용을 렌더링하기 전에 clear 함수를 호출하지 않으면 화면 내용을 남겨둘 수 있었던 것 같음. 다만 창 크기 조절 시 얼마나 잘 동작할지는 모르겠음
  - SDL은 비교적 고수준 API이고, **프레임버퍼 방식 그래픽**도 잘 동작함. 다만 합성 기능이 없는 X11 창 관리자에서는 창을 움직일 때 흥미로운 깨짐이 생기는 일부 경계 사례가 있을 수 있음
